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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본문, 독자 중심의 해석들 / 송영목 (고신대 대학교회 담임, 부경성경연구원장)

by 【고동엽】 2021.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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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해석학(hermeneutics)을 왜 공부해야 하는가? 해석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성경을 주석 할 수 있지 않는가? 이런 질문은 자연스럽다. 여기에 소개되는 해석 방법론을 모두 그대로 수용하라는 의도는 없음을 분명히 하라. 현대의 폭발적인 해석 방법론의 소개는 혼동을 초래하며, 그 중에서 분명히 개혁주의 해석과 전제에서 볼 때 문제가 있는 것이 있다. 하지만 해석학 없는 신약 석의와 신학은 연장 없이 사냥하는 것과 같다. 분명히 할 것은 신약 해석 방법론은 본문이 말하도록 돕는 것이지 본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영감된 말씀이다. 본문 위에 즉 본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무엇도 있을 수 없다.

성경해석학을 ‘문학적, 역사적, 신학적’ 해석방법론으로 분류할 수도 있고, W.R. Tate처럼 ‘본문 배후의 세계(the world behind the text), 본문 안의 세계(the world within the text), 본문 앞의 세계(the world in front of the text)’로 분류할 수도 있다. W. Egger는 공시적 해석과 통시적 해석으로 양분한다. 물론 문학적 해석과 역사적 해석은 신학적 해석을 위한 기초공사다. 성경의 신적 기원과 모든 시대를 향한 적합성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우리는 성경의 인간적인 요소를 좀 더 살펴보아야 한다. 성경이 어떤 특정한 시공간적 배경에서 인간의 언어로 기록되었다면 저자, 본문, 독자, 이 세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1. 저자 중심의 해석방법론(Author-centered methods)


주로 역사비평이 여기에 속함(양식비평과 편집비평을 위해서는 별지를 참고하라). 실제 저자(real author)의 의도가 곧 본문의 의미라는 방식. 복음서의 경우, 복음서 저자의 의도를 찾아서 석의하려는 편집비평(redaction criticism)은 대표적인 저자 중심적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구성비평(composition criticism)이란 말은 편집비평을 대체하는 용어로도 쓰이지만, 이 둘의 차이점은 편집비평이 편집자의 자료의 전승의 사용이나 배열에 초점을 둔다면, 구성비평은 통일성있는 문학작품을 쓴 성경 기자의 문학적 특징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이 저자 중심의 해석은 저자의 의도를 살핌으로 역사적인 원래의 의미(신약의 경우 주로 1세기 중반)를 찾으려 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역사적인 성격을 가지는 장점이 있다. 저자 중심의 해석의 약점은 무엇인가? 저자의 의도를 찾기 위해 저자의 상황을 재구축할 때 한계가 있다. 2000년이라는 시간적 간격(gap)을 극복하더라도 어떤 경우에는 그 저자의 역사적 상황과 본문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모호할 때가 있다.


2. 본문 중심의 해석 방법론(Text-centered methods)


본문(text)의 자세히 읽기(close-reading)가 여기에 속한다. 그 뿌리는 1950년대의 일반 문학에서 사용된 방법인 신비평(New Criticism)이라고 할 수 있다. 본문은 저자를 떠나 독립적으로 그리고 자율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탁자(table)를 연구하려면 더 이상 탁자를 만든 사람의 상황과 제작 과정을 반드시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단지 우리 손에 들어온 완성된 제품, 완성된 연구 대상으로서의 탁자만 자세히 보고 연구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성경 주석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종 형태로의 본문만 자세히 연구하면 되지, 저자의 상황이나 저자의 자료의 수집과 배열을 몰라도 된다는 것이다. 본문은 자율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저자와 독자에게서 독립적인 본문을 전제로 하는 방법이다.
주로 본문의 언어, 구조, 문학적인 고안 장치들이나 특성을 살핀다. (모든 인간의 사회적인 행위들은 추상적인 규칙과 관습의 명시라는 사상에 기초하여, 본문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보다는 본문이 어떻게 의미하는가에 초점을 두는) 구조주의(structuralism)와 서사비평(narrative criticism)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서사비평에서는 본문에 의해 만들어! 진 내재된 저자(implied author)와 내재된 독자(implied reader= 저자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이상적인 독자이다)의 관련성으로 연구하지 혈육을 가진 실제저자와 실제 독자가 결정적이지 않다. 주관성이 약점이며, 실제 저자와 독자를 무시하는 것 역시 큰 문제점이다.
하지만 서사비평은 plot(이야기 구성-줄거리), 인물(plat and round), 시간(story time과 실제 시간) 그리고 관점들(point of view: 공간적-spatial, 시간적-temporal, 용어적-phraseological, 그리고 심리적-psychological 관점에 기초하여 도출되는 신학적 혹은 이데올로기적-ideological 관점)을 찾는 점에서 유용하다. 이것을 위해서는 본문을 주도면밀하게 읽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3. 독자 중심의 해석 방법론(Reader-centered methods)


단순화시켜 말하면 주로 포스터모던의 해석 경향이 여기에 속한다. 독자가 의미를 창출하거나 의미 창출에 공헌하거나, 저자의 죽음을 선포하는데 이것은 어불성설이다. 왜? 저자 없는 독자는 없기에. 독자가 본문을 이해하는데 따라 의미가 창출되고 달라지기도 하기에, 독자가 의미 결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3.1. 독자반응 비평(미국에서는 reader-response criticism, 유럽에서는 reception theory)이 대표적인 방법론이다. 의미는 본문과 독자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저자의 역할을 최소화한다. 독자가 앞 뒤 글의 흐름을 보고(사람이 볼 때 그렇다는 말이지 하나님 편에서 그렇다는 말은 아닌) 논리적인 비약이나 이해하기 힘든 부분에는 예상과 회상을 통해서 틈을 메울 필요가 있는 부분은 메운다. Stanley Fish, Norman Holland, Wolfgang Iser의 글을 참고하라.
3.2. 해체주의(Deconstructionism): 하나의 텍스트를 해체하는 것은 의미와 함축의 논리들이 갈등하는 것을 이끌어 내는 것이며 이와 함께 그 텍스트가 결코 정확하게 의미하는 바를 의미하지 않으며 의미하는 바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제이다. 자크 데리다(J. Derrida. b. 1921)로 대표되는 해체주의는 본문에 나타난 의미의 고정성-확정성을 거부하며, 독자가 주관적인 의미를 창출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독자반응비평과 긴밀히 연관된다. 본문을 두 종류로 나눈다: writerly text(대체로 open conclusion을 가짐)와 readable text(의미가 쉽고 대체로 고정된 본문).
3.3. 이념적 해석들(Ideological criticism) 즉 여성주의적 해석, 해방신학적 해석, 식민지 후기 해석(post-colonialism), 한국의 민중신학적 해석이 이 부류에 속함. 독자의 선입견을 할 수만 있으면 제거하여 객관적으로 해석하려는 비평시기의 해석 원리를 반대하여, 독자의 선입견이나 이데올로기는 해석에 있어 제거될 수 없는 것이며 필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전제 없는 해석은 없기 때문이다.


4. 개혁주의적 평가


제 아무리 신기하고 좋게 보이는 방법론이라도 성경의 권위나 영감을 해치는 것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 그리고 해석학의 확장은 개혁주의 해석학을 숙지한 후에 할 일이다. 먼저 성경신학에 관한 입장과 개혁주의-전제주의적 인식론을 정리해야 한다. 이런 기초가 없으면 사상누각이다. 하나님 중심의 성경해석과 송영으로서의 해석학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근본주의적이면 발전 없다.


나가는 말


현대 해석학은 실제로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이 변화가 우리에게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발전적이고 건설적인(constructive) 개혁해석학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 우리가 '항상 개혁해 가는 교회'(ecclesia semper reformanda)의 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경 해석학에는 여전히 수구답습적 혹은 근본주의적 입장을 고수하여 이 원리를 건설적으로 적용치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 칼빈이 다 해놓았기 때문에 신학의 발전이 더 이상 없다면 좁게는 해석학, 넓게는 신학을 오랜 시간을 투자하여 공부할 필요성이 있겠는가? 시대의 흐름을 필연적으로 따라갈 필요는 없지만, 알아야 됨은 다시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 작업에 충실하지 않으면 우리의 개혁주의 해석학은 다른 나라의 개혁교회의 해석학과 다를 뿐 아니라 더 이상 ‘항상 개혁해 가는’(semper reformanda) 해석학이 될 수 없고 Ghetto화되고 만다. 우리의 신학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이 있다면 다양한 학문 활동의 장을 통해 도전과 응전의 방식으로 알려야 한다.


출처: http://blog.naver.com/holyhillch/60050759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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