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해석이란 무엇인가?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다. 그런데 그것은 인간의 역사와 문화 가운데 주어진 계시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의 계시가 주어졌을 때의 상황을 고려하여 그 말씀의 원 의미(orignal meaning: what it meant)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파악된 의미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contemporary significance: what it means)를 주는지를 발견해야 한다.
이러한 성경해석은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신앙의 성격과 방향이 바뀌기 때문이다. 바른 해석은 바른 신앙으로 인도하며 잘못된 해석은 잘못된 신앙으로 인도한다. 특히 성경은 일반 문헌과는 다른 신성하고 거룩한 책이다. 따라서 이 책을 함부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신중하고 사려 깊게 해석해야 한다.
2. 본문에 대한 두 가지 접근방식
문헌에 대한 접근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통시적 접근(diachronic approaches)이고 다른 하나는 공시적 접근(synchronic approaches)이다. 통시적 접근은 문헌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추적하는 방식인 반면에, 공시적 접근은 완성된 문헌이 담고 있는 의미를 분석하는 방식이다. 성경본문에 대해서도 이 두 가지의 접근 방식이 이루어진다.
통시적 접근 방식에는 양식비평, 자료비평, 전승사비평, 편집비평 등이 있고, 공시적 접근 방식에는 구조주의, 의미론, 서사비평 등이 있다. 과거에는 독일어권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주로 통시적으로 성경본문을 다루었으나, 1970년대 이후부터는 영미권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주로 공시적으로 성경본문을 분석하는 학자들이 늘어났다.
이러한 해석학에 있어서의 변화는 본문에 대한 통시적 접근 방식이 매우 가설적이었고 사실상 별로 생산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본문을 공시적으로 대하면서 당시의 독자들이 완성된 본문을 통하여 어떤 메시지를 얻었으며 또한 나아가서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훨씬 유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 두 가지를 통합하는 접근방식이 선호된다. 즉 먼저 본문을 공시적으로 보면서 본문의 의미를 찾고, 다음으로 본문의 발전과정을 통시적으로 파악하면서 저자의 의도를 발견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본문에 대한 보다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3. 해석의 요소
저자는 본문이라는 매개체를 사용하여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므로 해석자는 저자와 본문과 독자 모두를 알아야 한다. 즉 저자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며, 본문의 언어적 구조를 알아야 하며, 독자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해석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저자에 대한 지식을 ‘본문 뒤의 세계’(World behind text), 본문에 대한 지식을 ‘본문 안의 세계’(World in text), 그리고 독자에 대한 지식을 ‘본문 앞의 세계’(World in front of text)라고 부른다.
저자와 독자가 처해 있는 사회-역사적 상황: 저자와 독자는 특정한 사회-역사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그들은 필연적으로 특정한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요소들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요소들은 그들이 보내고 받은 본문 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그러므로 정확한 해석을 위하여 그들이 처해 있던 사회-역사적인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본문의 언어학적 요소와 의미 전달 기법: 성경은 구조화된 문법에 따른 글로 기록되었다. 저자는 독자와 바르게 소통하기 위하여 필시 문학적 장치들과 언어학적 요소들을 사용하였다. 따라서 해석자는 본문이 포함되어 있는 책의 큰 구조(Macro structure)와 작은 구조(Micro structure)를 파악해야 하고 본문에 담겨 있는 문법적, 언어학적 요소들을 분석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분석과정은 단순하지 않고 매우 복잡하며 고도의 주의력과 기술을 필요로 한다.
4. 해석의 전제
인간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선입관을 가지고 해석을 한다. 즉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관점에 따라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자의 선입관은 본문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개혁주의자들이 성경에 대하여 가져야 할 전제들이 있다. 그런데 사실 이 전제란 해석하는 자의 전제가 아니라 성경 자체에 대한 전제이다. 즉 개혁주의자들은 해석자의 전제가 아니라 성경의 전제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개혁주의자들이 성경에 대하여 가져야 할 가장 대표적인 전제들은 성경의 역사성과 영감론과 구속사이다.
먼저 성경의 ‘역사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역사성을 인정하는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역사성을 부인한다. 성경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성경이 단지 특정한 사상을 심어 주기 위해서 기록된 책일 뿐이며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는 데에는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혁주의자들은 성경의 역사성을 강하게 주장한다. 그들은 성경의 기록과 고고학적인 발굴(예. 비문의 기록, 유적지의 발견)이 일치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성경을 해석하면서 이러한 역사성에 대한 전제적 이해가 없으면 해석이 이데올로기적이 되어서 상대화 혹은 실존화 되어 버린다.
다음으로 성경의 ‘영감론’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하나님은 성경을 기록하는 자들에게 영감을 주셔서 기록하게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을 단지 받아 적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식과 문예적 특징을 인정하시면서 적게 하셨다. 따라서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사람이다.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성경은 통일성을 가지지만, 동시에 성경의 저자가 사람이기에 각 성경은 나름대로의 독특성(다양성)을 가진다. 이러한 성경 영감론을 우리는 유기적 영감론 혹은 대화식 영감론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영감론에 대한 이해는 성경 해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즉 해석자로 하여금 성경의 통일성과 다양성이라는 이중적 측면을 고려하면서 해석하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속사’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구속사란 성경을 기록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구속사를 모르면 성경을 잘못 해석하게 된다. 구속사적으로 성경을 본다는 것은 삼위 하나님께서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어떻게 일하셨는지가 성경에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즉 성경이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인간들에게 윤리나 도덕을 가르치려고 기록된 책이 아니라 오히려 온 인류에게 삼위 하나님을 알고 믿게 하며 그리하여 영생을 주기 위하여 기록된 ‘복음’ 임을 깨닫는 것이다.
5. 해석의 과정
이제 앞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모두 염두에 두고서 우리가 어떻게 성경을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실제적인 문제를 다루어 보겠다.
1) 본문을 읽고 또 읽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본문을 가능한 한 많이 읽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평소에 성경을 많이 알아야 하며 주어진 본문을 많이 읽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본문의 구조와 의미를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다. 어떤 훌륭한 목사는 한 번의 설교를 위하여 본문을 무려 50번이나 읽는다고 한다. 시간과 여건이 가능하다면 100번이라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여러 번역을 참고할 수 있다. 원어로 읽는 것이 좋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다양한 번역본을 읽으면서 의미의 차이를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언어를 이해할 수 있다면 다른 언어로 기록된 본문을 읽어 보는 것도 유익하다. 여러 다른 번역들을 참고하여 상호 비교하면서 읽으면 본문이 더욱 잘 이해된다. 이때 기도하면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2) 좋은 주석서를 참고해야 한다.
성경을 많이 읽은 후에는 좋은 주석을 읽어 보아야 한다. 사실 일반교인은 물론이거니와 목회자라 하더라도 스스로의 힘으로 본문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게다가 자신의 해석이 옳은지 틀린지를 검증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를 위하여 좋은 주석서를 구입해서 참고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좋은 주석서를 구입하기가 또한 쉽지 않다. 시중에 나와 있는 주석들 중에는 아무런 학문적 검증 없이 쓰여진 주석들이 많다.
그러므로 해당 분야에서 권위 있는 저자가 권위 있는 출판사에서 출간한 좋은 주석을 읽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주석 구입 안내서를 구비하는 것이 좋다. 필자가 알기로 한국어로 된 주석서 구입 안내서는 아직 없다. 영어로 쓰여진 저명한 안내서로는 미국 Baker Academic 출판사에서 출간한 ‘Old Testament Commentary Survey’(Tremper Longman III)와 ‘New Testament Commentary Survey’(D. A. Carson)가 있다. 이 책들은 얇고 이해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어서 영어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라도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다.
3) 본문을 해석해야 한다.
이제 본문을 본격적으로 해석하자. 기억해야 할 것은 좋은 주석을 참고한다 하더라도 결국 해석자를 만족시켜 줄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해석자가 스스로 본문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목회자나 성경연구자는 해석학에 대한 전반적인 개념을 알아야 하며, 해석의 방법과 절차에 대한 소양을 갖추어야 한다. 성경 원어를 알아야 하며,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의 사회-역사적인 정황을 이해해야 하고, 성경의 언어학적-문법적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
본문을 해석하는 일반적인 과정 혹은 절차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본문의 사회-역사적인 정황 파악
본문의 문맥(macro context, micro context) 파악
본문 비평(textual criticism): 필요한 곳에 한하여
본문의 구조 파악: 사고의 흐름과 논리적인 연관관계를 파악함
상세한 해석: 문법적-문예적-신학적 해석
4) 신학적 메시지를 찾아야 한다.
해석의 마지막 단계는 신학적 메시지를 찾는 것이다. 신학적 메시지란 본문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이다. 성경본문이 과거에 가졌던 의미만을 파악하고 마쳐서는 안 된다. 오늘날 우리에게 이 본문이 무슨 메시지를 전하는 지를 발견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본문은 ‘승귀하신 예수님의 현존’(the presence of the risen Jesus)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본문을 통하여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난다. 과거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에게 말씀을 듣고 영생을 얻었으나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을 읽고 영생을 얻는다.
특히 설교자들과 성경교사들은 성경본문의 이야기가 과거의 사건으로만 머물지 않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지를 알아서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청중으로 하여금 본문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이러한 설교적 원리를 위하여 고재수 교수가 저술한 ‘구속사적 설교의 실재’(CLC), 황창기 교수가 저술한 ‘예수님, 교회, 그리고 나’(이레서원), 그리고 졸저, ‘설교자를 위한 마가복음 주해’(CLC) 등을 참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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