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25
이에 다니엘이 왕이 바벨론 박사들을 멸하라 명한 아리옥에게로 가서 이르매 그에게 이같이 이르되 바벨론 박사들을 멸하지 말고 나를 왕의 앞으로 인도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 해석을 왕께 보여 드리리라 이에 아리옥이 다니엘을 데리고 급히 왕의 앞에 들어가서 고하되 내가 사로잡혀온 유다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얻었나이다 그가 그 해석을 왕께 아시게 하리이다
참으로 은혜로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24절에는 다니엘의 모습을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고, 25절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아리옥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의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이 과연 어떠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귀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2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에"라는 말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찬미를 드렸습니다. 그런 후에 "다니엘이 왕이 바벨론 박사들을 멸하라 명한 아리옥에게로 가서"라고 했습니다. 14∼15절에 있는 말씀처럼 아리옥의 관직은 시위대 장관이었습니다. 아리옥은 그때 바벨론 박사들을 다 죽이라는 느부갓네살 임금의 명령을 집행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이러한 일을 맡고 있던 아리옥이 오히려 왕과 다니엘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아리옥에게 갔습니다. 아리옥에게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기뻐하소서. 내가 꿈을 알았나이다. 그러니 왕이 약속한 상금과 선물과 큰 영광은 이제 내 것입니다." 이렇게 말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게 상을 주든지 말든지 상관없습니다." 이런 것은 전혀 다니엘의 안중에 없습니다. "그에게 이같이 이르되 바벨론 박사들을 멸하지 말고." 바벨론 박사들을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나를 왕의 앞으로 인도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 해석을 왕께 보여 드리리라." 내가 왕의 꿈과 해석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바벨론 박사들을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이 제일 먼저 무엇을 했다고 했습니까?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앞세우고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습니다. 그 다음에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를 제일 뒤에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의 삶의 태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쁨이라고 하는 말의 영어 단어가 무엇입니까? joy입니다. j는 "jesus"의 약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가장 앞세우고, 그 다음에 o는 "other," 다른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y는 "yourself," 너 자신을 제일 뒤에 두라는 것입니다. 누구를 제일 앞에 둡니까? 예수님을 제일 앞에 두고, 그 다음에는 나보다 누구를 먼저 생각하라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그 다음에 제일 뒤에 나를 생각하는 것이 바로 joy입니다. 이것이 믿음 생활, 기쁨 생활입니다. 기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앞세우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제일 나중에 나를 생각할 때 따라오는 것이 바로 기쁨입니다. 오늘도 다니엘처럼 하나님 제일주의, 그리고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가운데 주님 주시는 기쁨과 평강이 여러분 모두의 마음속에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반대로 25절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아리옥의 모습이 어떠한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25절을 보십시다. "이에"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다니엘이 아리옥에게 와서 "내가 왕의 꿈과 해석을 알았습니다"고 했을 때 아리옥이 어떻게 했습니까? "다니엘을 데리고 급히 왕의 앞에 들어가서 고하되"라고 했습니다.
왜 급히 들어갔겠습니까? 자세한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만 우리가 몇 가지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꿈 때문에 번민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왕을 생각하는 충정에서 그랬을 수도 있고, 죽어가는 불쌍한 바벨론 박사들의 생명을 하나라도 구하기 위해서 급한 마음에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2:6에서 왕이 약속한 선물과 상과 큰 영광을 차지할 수도 있다는 자기 공명심에서, 왕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급히 왕의 앞에 들어가서 고하는데 첫 마디가 무엇입니까? "내가"라고 했습니다. "내가 사로잡혀온 유다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얻었나이다." 자기가 얻었다고 했습니다. 자기 공명심을 나타냈습니다. 이것이 안 믿는 사람의 생리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우화가 있지 않습니까? 큰 연못에 개구리들이 많이 모여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기러기가 하늘을 날아가다가 물을 마시기 위해서 연못가에 내려왔습니다. 개구리 한 마리가 기러기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기러기에게 자기 소원 하나를 들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무슨 부탁인데? 말해봐." "나도 너처럼 하늘을 날아보고 싶은데 딱 한번만 나를 도와서 하늘을 날 수 있도록 해줘." 기러기는 개구리가 하늘을 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개구리가 작대기를 하나 주워왔습니다. "한쪽 끝은 내가 물고 다른 한쪽은 네가 물고 있으면 네가 하늘을 날을 때 나도 따라서 하늘을 날 수 있지 않겠니?" 마음씨 좋은 기러기가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기러기가 개구리와 함께 연못 위를 천천히 돕니다. 그 모습을 보고 밑에서 개구리들이 개굴개굴하면서 감탄을 합니다. "야, 멋있다. 저렇게 멋진 생각을 도대체 누가 했을까?" 그 소리를 듣고 하늘을 날고 있던 개구리가 입이 근지러워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누구긴 누구야? 내가 했지." 입을 벌려서 내가 했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순간 어떻게 되었습니까? 보기 좋게 떨어졌습니다. 하늘에서 곤두박질해서 허리가 부러졌다고 했습니다. "내가!" "내가!"하면 허리 부러집니다. 조심하세요.
아리옥이 바로 그랬습니다. "내가 사로잡혀온 유다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얻었나이다." 자기가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경에 보면 이 2:25 이하에 이제 아리옥이라는 이름이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도 아리옥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그때부터 느부갓네살 임금의 관심은 오직 다니엘에게 있습니다.
나를 내세우면 다른 사람이 인정해줄 것 같지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허리만 부러집니다. 그러지 말고 다니엘처럼 하나님 제일주의, 하나님을 언제나 앞세우고,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내 의견이 옳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의견도 얼마든지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 고집만 내세우면 안됩니다. 잘못입니다. 내 의견이 옳을 때는 다른 사람의 의견도 역시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상대를 존중해야 합니다. 나도 잘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너무 고집 피우는 것도 잘못입니다.
항상 나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고 나는 제일 나중에 놓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 된 모습입니다. 또 그리할 때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강이 넘치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다니엘의 모습을 본받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에 다니엘이 왕이 바벨론 박사들을 멸하라 명한 아리옥에게로 가서 이르매 그에게 이같이 이르되 바벨론 박사들을 멸하지 말고 나를 왕의 앞으로 인도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 해석을 왕께 보여 드리리라 이에 아리옥이 다니엘을 데리고 급히 왕의 앞에 들어가서 고하되 내가 사로잡혀온 유다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얻었나이다 그가 그 해석을 왕께 아시게 하리이다
참으로 은혜로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24절에는 다니엘의 모습을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고, 25절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아리옥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과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의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대조적으로 보여주면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이 과연 어떠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귀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2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에"라는 말로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찬미를 드렸습니다. 그런 후에 "다니엘이 왕이 바벨론 박사들을 멸하라 명한 아리옥에게로 가서"라고 했습니다. 14∼15절에 있는 말씀처럼 아리옥의 관직은 시위대 장관이었습니다. 아리옥은 그때 바벨론 박사들을 다 죽이라는 느부갓네살 임금의 명령을 집행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이러한 일을 맡고 있던 아리옥이 오히려 왕과 다니엘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아리옥에게 갔습니다. 아리옥에게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기뻐하소서. 내가 꿈을 알았나이다. 그러니 왕이 약속한 상금과 선물과 큰 영광은 이제 내 것입니다." 이렇게 말했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내게 상을 주든지 말든지 상관없습니다." 이런 것은 전혀 다니엘의 안중에 없습니다. "그에게 이같이 이르되 바벨론 박사들을 멸하지 말고." 바벨론 박사들을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나를 왕의 앞으로 인도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 해석을 왕께 보여 드리리라." 내가 왕의 꿈과 해석을 알기 때문에 더 이상 바벨론 박사들을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이 제일 먼저 무엇을 했다고 했습니까?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앞세우고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았습니다. 그 다음에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를 제일 뒤에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의 삶의 태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쁨이라고 하는 말의 영어 단어가 무엇입니까? joy입니다. j는 "jesus"의 약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가장 앞세우고, 그 다음에 o는 "other," 다른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 y는 "yourself," 너 자신을 제일 뒤에 두라는 것입니다. 누구를 제일 앞에 둡니까? 예수님을 제일 앞에 두고, 그 다음에는 나보다 누구를 먼저 생각하라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그 다음에 제일 뒤에 나를 생각하는 것이 바로 joy입니다. 이것이 믿음 생활, 기쁨 생활입니다. 기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앞세우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제일 나중에 나를 생각할 때 따라오는 것이 바로 기쁨입니다. 오늘도 다니엘처럼 하나님 제일주의, 그리고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가운데 주님 주시는 기쁨과 평강이 여러분 모두의 마음속에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반대로 25절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아리옥의 모습이 어떠한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25절을 보십시다. "이에"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다니엘이 아리옥에게 와서 "내가 왕의 꿈과 해석을 알았습니다"고 했을 때 아리옥이 어떻게 했습니까? "다니엘을 데리고 급히 왕의 앞에 들어가서 고하되"라고 했습니다.
왜 급히 들어갔겠습니까? 자세한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만 우리가 몇 가지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꿈 때문에 번민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왕을 생각하는 충정에서 그랬을 수도 있고, 죽어가는 불쌍한 바벨론 박사들의 생명을 하나라도 구하기 위해서 급한 마음에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2:6에서 왕이 약속한 선물과 상과 큰 영광을 차지할 수도 있다는 자기 공명심에서, 왕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급히 왕의 앞에 들어가서 고하는데 첫 마디가 무엇입니까? "내가"라고 했습니다. "내가 사로잡혀온 유다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얻었나이다." 자기가 얻었다고 했습니다. 자기 공명심을 나타냈습니다. 이것이 안 믿는 사람의 생리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우화가 있지 않습니까? 큰 연못에 개구리들이 많이 모여서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기러기가 하늘을 날아가다가 물을 마시기 위해서 연못가에 내려왔습니다. 개구리 한 마리가 기러기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기러기에게 자기 소원 하나를 들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무슨 부탁인데? 말해봐." "나도 너처럼 하늘을 날아보고 싶은데 딱 한번만 나를 도와서 하늘을 날 수 있도록 해줘." 기러기는 개구리가 하늘을 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주면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개구리가 작대기를 하나 주워왔습니다. "한쪽 끝은 내가 물고 다른 한쪽은 네가 물고 있으면 네가 하늘을 날을 때 나도 따라서 하늘을 날 수 있지 않겠니?" 마음씨 좋은 기러기가 부탁을 들어주었습니다.
기러기가 개구리와 함께 연못 위를 천천히 돕니다. 그 모습을 보고 밑에서 개구리들이 개굴개굴하면서 감탄을 합니다. "야, 멋있다. 저렇게 멋진 생각을 도대체 누가 했을까?" 그 소리를 듣고 하늘을 날고 있던 개구리가 입이 근지러워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누구긴 누구야? 내가 했지." 입을 벌려서 내가 했다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순간 어떻게 되었습니까? 보기 좋게 떨어졌습니다. 하늘에서 곤두박질해서 허리가 부러졌다고 했습니다. "내가!" "내가!"하면 허리 부러집니다. 조심하세요.
아리옥이 바로 그랬습니다. "내가 사로잡혀온 유다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얻었나이다." 자기가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성경에 보면 이 2:25 이하에 이제 아리옥이라는 이름이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느부갓네살 임금도 아리옥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그때부터 느부갓네살 임금의 관심은 오직 다니엘에게 있습니다.
나를 내세우면 다른 사람이 인정해줄 것 같지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허리만 부러집니다. 그러지 말고 다니엘처럼 하나님 제일주의, 하나님을 언제나 앞세우고,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내 의견이 옳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의견도 얼마든지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내 고집만 내세우면 안됩니다. 잘못입니다. 내 의견이 옳을 때는 다른 사람의 의견도 역시 옳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상대를 존중해야 합니다. 나도 잘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너무 고집 피우는 것도 잘못입니다.
항상 나보다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고 나는 제일 나중에 놓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 된 모습입니다. 또 그리할 때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강이 넘치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다니엘의 모습을 본받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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