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죽음까지도 극복합니다! (사 38:1-8)
여러분! 우리의 인생 길에서 가장 쓸쓸하고 외로운 시간이 있다면 그것이 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종말의 시간, 즉 죽음의 시간일 것입니다. 그 시간은 엄숙하고 두렵고 떨리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아주 심각한 시간이고 무지막지한 시간입니다.
정답게 살던 부부사이를 사정없이 갈라놓고 부모와 자식 사이를, 형제와 형제사이를 무지막지하게 갈라놓는 시간입니다. 죽음! 거기에는 용서도 없고, 정상참작도 없고 인정사정도 없습니다. 가정으로부터 처자식들로부터 이웃으로부터 그리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 사정없이 갈라놓습니다. 이것이 죽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죽음에 대해서 아예 생각하기조차 꺼려합니다. 왜냐하면 유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바로 나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타조 사냥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타조는 날개가 있으면서도 날지 못하는 동물입니다. 그 대신 힘이 세고 다리가 길어서 그 뛰는 속도가 상당히 빠른 동물입니다. 타조는 사냥꾼들에게 쫓길 때는 아주 빠른 속도로 도망을 간다고 합니다.
도망가다가 힘이 빠지고 지치면 머리만 모래 속에 묻고 그 큰 덩치를 세우고 꼼짝도 않고 사냥꾼들이 와서 잡을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잡혀 죽게 됩니다.
우리들에게도 죽음과 같은 위기가 올 수가 있습니다. 타조처럼 도망가서 되는 것도 아니고 숨는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문의 주인공 히스기야 왕이 죽음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했는가를 보여줍니다. ◀제목 소개!▶
본문의 히스기야왕은 크게 두 가지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국가적으로 위기를 맞이한 것이고, 또 하나는 개인적으로 질병으로 인한 생명의 위기가 그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존 프리벨'은 '인간의 극한 상황은 곧 하나님의 기회'라고 했습니다. 본래 위기라는 말은 '위험'이라는 말과 '기회'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위기에는 항상 위험도 있고, 또한 기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주어진 위기는 '하나님의 축복의 신호'입니다. /믿으시면 아멘!/할/
오늘 본문에 히스기야 왕은 자신에게 부딪친 위기를 축복의 기회로 삼은 축복의 사람입니다. 이것을 우리도 배워야 합니다.
1. 먼저 히스기야 왕에 대해서 잠깐 알아보겠습니다.
그는 25세의 젊은 나이에 남 왕국 13대 왕으로 등극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하스 왕인데 천하에 둘도 없는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아하스는 하나님을 버리고 온 성에 우상의 전각을 세워 섬기면서 종교적으로도 부패했고, 정치적으로도 부패해서 당시 많은 의인들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아하스 왕이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욕심만 채우는 정치를 하다가 나라가 여지없이 어지러워져 국민들이 도탄에 빠졌습니다. 그러다가 아하스가 죽고 그의 뒤를 이어 히스기야가 25세 젊은 나이에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왕이 되자마자 나라를 망친 아버지를 본받지 않고 선한 왕이었던 다윗을 본받아 국가적으로 대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그가 가장 먼저 개혁에 손을 덴 것은 종교였습니다. 아버지가 섬기던 우상들을 다 무너뜨렸습니다. 그리고 백성들로 하여금 진정한 예배를 드리도록 했습니다.
그는 다짐하기를 '이제 나와 온 백성은 하나님만 섬기리라'는 마음을 품고 정직한 왕이 되어 백성들을 사랑했습니다. 자신의 사생활도 깨끗했습니다. 그리고 정치도 바르게 했고, 군사력을 증강시켰습니다.
그렇게 되자 하나님은 남 유다를 복을 주어 14년의 태평성대를 누리게 되었고 히스기야는 마침내 하나님과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엇인가 이루어 놓을 때 위기가 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14년의 태평성대가 신앙의 병을 앓게 하였습니다. 신앙이 느슨해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신앙이 느슨해지면 꼭 무슨 사건이 터집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셔서 깨우치기 위함입니다. 히스기야 14년에 북방 앗수르왕 산헤립이 랍사게 장군과 수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북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남 유다까지 삼켜 버리려고 예루살렘을 포위해 버렸습니다. 그 사건이 36장 이하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국가적인 위기가 온 것입니다. 그 뿐입니까? 마침내 히스기야가 병이 들어 죽을 날이 임박해왔습니다. 개인의 위기입니다.
본문 1절을 보면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병은 죽을병이었습니다. 이제 히스기야는 죽어야 합니다. 방법이 없습니다. 병에도 사람이 일시적으로 고치면 낫는 병도 있습니다. 일을 많이 해서 발생하는 몸살이라든지 불결해서 발생한 전염병을 고치면 낫습니다. 쉬든지 약을 먹으면 곧 낫습니다. 그리고 몸 속에서 발생하는 병의 경우는 수술하면 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병중에도 죽을병이 있습니다. 이 병은 고칠 방법이 없습니다. 여기 히스기야가 바로 이 죽을병에 걸린 것입니다. 이제는 죽는 길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이 이쯤 되면 정신이 들게 되고 생각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 동안 막연했던 사람들도 이쯤 되면 다급한 신앙으로 바꿔지기 시작합니다.
형식적으로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도 이쯤 되면 발걸음이 바빠집니다. 그동안 별 소리를 다하고 우습게 굴던 사람들도 이쯤 되면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끔 사람들을 이 같은 막다른 처지로 몰아넣어 자만하고 교만했던 마음을 겪게도 하십니다.
▶사람이 죽음이 다가오면 대처하는 방법이 대체로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⑴우선 지극히 인간적인 방법이 나타납니다.
몸이 좋다는 약이 있으면 값이 아무리 비싸도 아낌없이 사다가 먹습니다. 그래도 안 되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법을 강구합니다. 점도 쳐보고, 굿도 해보고 심지어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도 무당한테 간다고 합니다.
어떤 권사 님은 하도 답답하니까 점쟁이한테 찾아갔었다고 합니다. 가서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니까 점쟁이가 쳐다보지도 않고 하는 말이 '예수나 잘 믿지 여기는 왜 왔어?'하고 핀잔을 줘서 혼나기만 하고 그냥 돌아왔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을 지경이 되면 이렇게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쓰게 됩니다.
⑵아예 처음부터 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사람은 무당을 찾아갈 만한 용기도 없습니다. 무슨 좋다는 약을 먹어보려고 하는 의지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암이라는 진단이 내려지자마자 지레 죽습니다. 대처해 보려는 의지도 전혀 없고 아예 처음부터 포기해 버립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에게는 병명을 미리 알려주면 안 됩니다. 그러면 더 살 것도 며칠 못 가서 죽고 맙니다.
⑶그런가하면 똑같은 죽음이라고 할지라도 신앙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진정한 신앙의 힘은 바로 이런 때에 위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면 인생의 위기가 오고 죽음의 고비가 올 때, 하나님께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 신앙으로 더 서게 됩니다. /할/
본문의 히스기야를 보겠습니다. 지금 죽을병을 걸렸습니다.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고 절망스럽고 또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때 히스기야 에게 이사야 선지자가 찾아온 것입니다. 아마도 히스기야는 한 가닥 희망을 가졌을 것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종 선지자가 자기를 찾아왔으니 '혹시 살려주지 않을까?'하고 기대를 걸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다. 찾아온 선지자 이사야는 더더욱 절망적인 소리를 합니다.
1절 "그 즈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무슨 말입니까? 주변을 정리하라는 것입니다. 빨리 후계자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죽음을 통보한 것입니다.
이제 히스기야는 별 방법이 없습니다. 선지자가 와서 죽어야 한다고 했으니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테면 사형선고입니다. 사람이 이쯤 되면 참 암담합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기다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은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습니다. 본인도 본인이지만 주위 식구들이 더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죽음도 잘 택해야 합니다. 조금은 섭섭할지 모르지만 고통 없이 갑자기 죽는 것도 죽음의 복입니다. 어느 장로님은 연세가 75세이셨는데 전날 밤까지 잘 지내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잠자리에서 운명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오늘 본문의 히스기야 왕이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신분을 보면 그는 왕입니다. 돈이 없어서 죽어갑니까? 권력이 없어서 죽어갑니까? 아닙니다. 돈도 있고, 권력도 있었지만 죽음만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이 정도가 되면 절망하고 낙심하고 포기하고 자포자기를 합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은 이런 위기에 더욱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멘!/
여러분!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당부하십니다. '내가 세상을 이긴 것처럼 나를 믿는 자는 다 이길 수 있느니라' /할/
확실히 히스기야 왕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위기 속에 신앙이 더 강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영안을 크게 뜨고 히스기야의 믿음을 봐야 될 줄 믿습니다. 그는 절대 절망, 절대 위기 가운데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믿음 있는 자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죽음까지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어떤 위기도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믿/아멘!/
2. 히스기야는 어떤 모습으로 기도했는가?(2)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기도는 자세도 귀하고, 내용도 귀해야 됩니다. /믿/ ▶그의 기도의 자세를 보겠습니다. '얼굴을 벽으로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왕의 높은 의자에 앉아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낮은 벽을 향해 돌아앉아서 기도한 것입니다. 여러분! 왕이 벽에다 얼굴을 대고는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솔직한 모습입니다. 죽음 앞에서 왕이 어디 있습니까? 죽음 앞에서 체면이 어디 있습니까? 체면은 배가 부를 때 세우는 것이고, 여유가 있을 때 세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배가 부를 때 하나님이 어떻고, 교회가 어떻고, 목사가 어떻고, 사모가 어떻고, 시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 다급해 보십시오. 체면이 어디 있고, 어디라고 바쁘다는 소리가 나옵니까?
히스기야는 왕의 보좌에서 내려앉아 체면을 버리고 체통을 버리고 신하들이 보는 앞에서 벽을 향해 통곡을 했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⑴'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의사 표시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바라고 믿는 의미입니다. 또 기도의 장애물을 뛰어 넘어서 기도하겠다.'는 의지의 표시입니다.
이런 기도가 위기 극복의 비결입니다. '벽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 죽음까지도 극복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할/
어떤 성경학자는 히스기야의 이런 기도를 '하나님과 자신의 사이에 아무 것도 끼여들지 못하게 독대하며 성전 쪽을 향하여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또 이런 기도는 '모든 세상 줄을 끊어버리고 다른 생각하지 않고 오직 전심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자세'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일사각오의 자세입니다. 기도는 땀을 짜며, 피를 짜며, 생명을 짜며 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는 분명히 응답이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는 약한 자가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심지가 담대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강한 믿음의 사람이 기도합니다. 히스기야는 나라의 위기 앞에서도 기도했고,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기도했습니다.
히스기야는 기도의 맛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님께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그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할 자는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보다 더 큰이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안에서는 절대 절망이 없습니다. /아멘!/
기도는 훈련입니다. 기도는 습관입니다. 우리 예수님도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⑵'벽을 향했다'는 말은 사람과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해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 향하여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벽 쪽에는 그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성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히스기야의 눈앞에는 두꺼운 벽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벽 너머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벽 너머에는 응답하시는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문제의 벽 앞에 설 때가 많이 있습니다. 고난, 질병, 실패, 낭패의 벽 앞에 설 때가 있습니다. 이 벽만 바라보면 절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벽 건너편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 없었던 소망이 생겨난다는 말입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얍복강 강가의 벽 앞에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환도 뼈가 부러질 만큼 기도했을 때 기어이 응답을 받지 않았습니까?
주님을 보십시오. 십자가의 벽 앞에서 땀방울이 핏방울 되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십자가의 쓰디쓴 잔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이 잔이 없었더라면 부활의 태양이 따라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할/
히스기야를 보세요! 지금 죽음이 눈앞에 왔습니다. 히스기야는 자신에게 다가선 절망의 벽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한 것입니다.
인간은 벽을 쌓고 담을 만듭니다만 하나님은 그 벽을 허물고 무너뜨리시는 분이십니다. /아멘!/ 우리 앞엔 벽이 많습니다. 넘기 힘들고 무너뜨리기 힘든 벽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그 어떤 장애물도 하나님이 다 제거해 주신다고 시119:16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할/
3. 히스기야의 기도의 내용도 귀합니다(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더라!"
①기도의 대상을 바로 알고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그렇습니다. 오직 기도의 대상은 우상이나, 달이나, 해나. 선황 당이나, 바위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툭하면 무당을 찾아가 빌고 그럽니다. 그러나 진정한 기도의 대상은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을 지금도 신실하게 이루어 주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해야 응답을 받습니다. /믿/
렘33:3절 "너는 내게 부르짖어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 다음 '내가' 내 목소리로 기도해야 합니다. 시141:1절에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임하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 문제는 내가 잘 알고, 내 사정, 내 형편도 내가 제일 잘 압니다. 감사도, 찬송도 내가 해야 합니다.
시138:1절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양하리이다"
②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산 것을 내놓고 기도한 것입니다.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이는 평소에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산 것을 기억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즉 진실하게 살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성도의 본분을 다했으니 그것이 결코 헛되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고후1:12절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진실은 믿음입니다. 진실은 아멘입니다.
여러분, 어떤 믿음이 훌륭한 믿음입니까? 바로 믿고 바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3박자가 있습니다.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행하며 살자'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은 좋은데 사는 꼴이 우스꽝스러운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옳고 바르게 사는 것 같지만 믿음이 없습니다. 바로 믿고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히스기야는 진실하게 살았다고 기록합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사람들 앞에서만 경건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 앞에서는 경건이 없고, 사람들 앞에서만 경건한 모습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거짓됨이 없이 진실하게 살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하나님께 기억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③전심으로 충성한 것을 내어놓고 기도했습니다. '전심으로 행하며'
여기 전심은 최선을 다 했다는 말입니다. 기도도 전심으로 했고, 봉사도 전심으로 했고, 감사도 헌신도 전심으로 했다는 말입니다.
히스기아 왕은 전심으로 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세워놓은 우상의 전각을 다 무너뜨렸습니다. 또 그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무너졌던 제단을 다시 수축하고 하나님 앞에 예배다운 예배를 드림으로 백성들의 신앙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심으로 믿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전심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그냥 대충대충 믿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정성을 쏟으시고,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들의 정성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들의 모든 사정을 하나님은 다 잘 알고 계십니다. 과부의 두 렙돈을 보시고 그에게 복을 주셨던 하나님은 오늘날도 우리들의 환경이 어렵고 조건이 어렵고 힘들지만 최선을 다해 신앙으로 봉사하고 헌금하는 그 모습을 절대로 놓치지 않고 보시고 계십니다. /할/
그러므로 믿음도 충성도 전심으로 해야 합니다. 온 마음을 쏟아서 하면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히스기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는 진실과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했고 순종하며 살아왔다'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특히 '주 앞에 행하며 주의보시기에'라는 말이 아주 귀한 말입니다. 이 말은 '당신의 면전'이라는 뜻으로 '나는 순간, 순간 주님을 대면하며 살았습니다.'라는 기도입니다. 어느 안전이라고 제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이런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전심을 다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라고 하십니다. 딤전4:15절에서는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고 하셨고, 롬12:11절에서는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할/
④하나님 앞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내어놓고 기도했습니다.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여기서 선은 하나님이 옳게 여기심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기뻐하는 삶의 내용이 선입니다.
지금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는 신앙의 행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종교 개혁을 하고, 말씀의 운동을 일으키고, 우상을 다 파괴하고, 바른 예배 운동, 온전한 십일조 교육, 유월절 절기 예배를 회복시켰습니다.
히스기아는 정치를 바르게 했습니다. 백성들의 것을 착취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돌보고 물이 맑게 흐르게 했습니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이 맑습니다. 왕이 부정이 없으니 밑의 사람들이 엄두도 못 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윗물이 맑지 못하다'고 사람들이 공공연히 말합니다. 지도자가 깨끗해야 나라가 깨끗해집니다. /할/
그 다음 히스기아 왕은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할 만한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한 가지만이라도 선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오래 오래 기도응답의 조건이 될 수 있습니다. /믿/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앞에 선한 일을 하십시오, 하나님 보시고 기뻐하시는 일만 하시면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롬12:1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시147:11절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할/
⑤눈물을 내 놓았습니다. '심히 통곡하니'
눈물이 가장 많은 나라가 한국입니다. 한국의 배우들이 세계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연기는 '우는 연기'라고 합니다. 연기를 하면서 정말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는 연습을 합니다.
새가 소리를 내는 것을 서양인들은 노래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새가 운다.'고 말합니다. 한이 많은 민족이라 눈물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눈물의 기도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⑴눈물 속에는 진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물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진실을 보시며 눈물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십니다.
▶황해도 재령 읍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정찬유 장로님이 살고 계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사업이 잘 되어서 주일성수도 잘 하시고 십일조도 정확하게 하시고 신앙생활에 모범이 되시는 분이셨습니다.
어느 날 자기 집을 2층 양옥으로 잘 짓고 있었습니다. 그 날 밤에 꿈을 꾸는데 하나님의 책망이 있었습니다. '내 집(교회)은 다 삭은 양철집을 그대로 두고 네 집만 이층 양옥으로 그렇게 잘 짓느냐?' 밤에 자다가 이 음성을 들은 그는 벌떡 일어나서 무릎을 꿇고 앉아서 회개기도를 했습니다. 이 음성을 듣고서야 하나님의 집이 너무나 초라한 것을 알았습니다.
그 날 밤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아서 흠뻑 울었습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이 죄인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일부터 당장 하나님의 집부터 짓겠습니다.'
이튿날 그는 설계사를 데려다가 성전부터 다시 설계하여 멋있게 짓고 그리고 자기 집을 완성시켰습니다. 이것이 당시 한국 최초의 성전이었던 황해도 '재령 동부 교회'입니다.
⑵눈물 속에는 감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노사 분규가 극한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회사 이야기입니다.
노조측은 20%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었고, 회사측은 그렇게 임금을 인상하면 회사 운영이 안 된다면서 절대 불가에서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 타협의 틈이 없었습니다. 결렬이었습니다. 감정 대립까지 하고 양편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폭우와 함께 천둥 번개 치면서 나갈 수가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양편은 다시 자리에 앉았습니다. 침묵만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 때 회의실 문틈으로 물이 새 들어와서 사장 머리와 옷에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 때 노조 위원장이 빨리 일어나 자기 윗옷을 벗어 사장 머리에 씌워줍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사장님! 죄송합니다. 우리 때문에 이런 봉변을 당하게 되어서 미안합니다.' 이 때 사장은 눈물을 주르륵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고맙소. 나는 당신들이 나와 회사를 적으로 생각하는 줄만 알았소. 당신들이 나를 사랑하는 진심을 보았으니 요구를 들어 주리이다.'
사장은 주머니에 도장을 꺼내더니 20% 임금 인상안에 도장을 찍으려고 하자 노조 위원장이 다급하게 '사장님! 아직 도장을 찍지 마십시오. 우리도 양보하려는 선이 있었습니다. 20% 인상으로는 회사 경영이 어렵습니다. 낮추겠습니다. 사실은 15%도 과합니다.'
드디어 하나가 되었습니다. 눈물 한 방울은 그 회사를 살렸습니다. 눈물에는 감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⑶눈물 속에 건강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심리학자가 '아이들이 왜 우는가?'라는 글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욕구불만 때문에 울고, 의사표시를 위해서 울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 운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울음은 어린아이들에게는 언어입니다. 아이들은 아파도, 기분 나빠도, 배가 고파도 웁니다. 그런데 울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최근 미국의 보건과학센터에서는 웃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는 것도 건강에 좋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우는 것도 그냥 우는 것이 아니라, 소리내서 눈물을 흘리고 우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우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해소되기 때문에 우리의 신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평균 수명이 짧은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남자가 여자보다 덜 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본문의 히스기아는 기도할 때 보통 운 것이 아니고 심히 울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눈물 앞에 약하십니다. 특히 히스기아의 눈물은 보통 눈물이 아닙니다. '왕의 눈물이요, 왕이 통곡'입니다. 이 눈물은 보통 범인들의 눈물이나, 통곡과는 다른 눈물입니다.
히스기야의 이 눈물은 어떤 눈물입니까? 분해서 우는 눈물입니까? 억울해서, 슬퍼서 우는 눈물입니까?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구원에 은총에 감격하는 눈물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 바로 살지 못한 것을 통회하는 참회의 눈물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눈물에 약하십니다.
다윗도 눈물의 신앙인이었습니다. 시6:6절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얼마나 그가 눈물을 많이 흘렸던지 시56:8절에 보면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베드로도 이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하다가 닭이 울자 주님의 말씀이 생각이 나서 밖으로 뛰어 나가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런 통곡의 눈물이 있었기에 예수님은 다시 그를 찾아오셔서 양을 먹이고, 치라고 목양명령을 주신 것입니다.
히스기아의 눈물은 회개의 눈물이요, 감사의 눈물이었습니다. 복음 운동은 눈물 없이는 할 수가 없습니다. 시126:5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할/
어려운 환경 가운데 하나님께 봉사하는 것 이것도 눈물입니다. 핍박받고 견디는 것 이것도 눈물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앞에 히스기아의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 내 눈물이 없는 것을 용서해 주소서' 우리는 벽을 향하여 이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눈물의 기도에 약하십니다. /믿/
4. 히스기아의 기도의 응답도 귀합니다(5-6).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의 종 이사야를 통해서 옵니다. 그의 응답이 5-6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 오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①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이것은 응답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출3:7절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보시고 들으시고 아시는 분이십니다.
②눈물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눈물 자체는 수분과 약간의 염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은 다양한 의미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헤리크'라는 사람은 '눈물은 눈으로 말하는 고상한 언어'라고 말했습니다. '세네카'는 '눈물을 많이 흘러내릴수록 영혼이 깨끗해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흘리는 회개의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히스기아는 고난 때문에 기도했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는 말씀 속에서 우리가 다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는 하나님이 들으실 만큼 해야 하고, 회개의 눈물은 하나님 보실 만큼 흘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아의 기도는 하다가 마는 기도가 아니었고 눈 커플이나 적시는 그런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이실 만큼 한 기도했고 보실 만큼 한 통회의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죽음까지도 극복한 비결이요, 무기요 방법입니다. /할/
③15년의 생명을 더 연장시켜주셨습니다.
이 생명은 덤으로 주어진 생명이요, 보너스로 주어진 축복입니다. 그렇다면 남은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히스기야를 보자! 그가 죽을병에서 나옴을 받고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도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언제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남은 생을 세상만을 사랑하며 살지 말고 하나님의 기쁘시고 선한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멘!/
④앗수르 왕에게서 건져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당시 앗수르는 최강국으로 뚝하면 선민 이스라엘을 침략해 와서 많은 것을 약탈해 가는 민족이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히스기아가 기도하지 않은 것입니다만 보너스로 주신 것입니다. 병 고쳐 달라고 기도했더니 병도 고쳐주시고 나라도 지쳐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⑤예루살렘 성을 영원히 보호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하나님이 이 민족을 지켜 주셔야 하고 하나님이 우리들의 가정을 지켜 주셔야 합니다. 시127:1절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할/
⑥징조를 보여주셨습니다. 8절 "보라 아하스의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일영표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도를 물러가니라"
당시는 해시계를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아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응답의 징조로 해를 뒤로 10도나 물러가는 기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해가 서쪽으로 가다가 동쪽으로 다시 돌아가 버렸으니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도의 응답의 약속으로 태양을 움직이시기까지 하신 것입니다. /할/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세상에 가장 무섭고 큰 고통은 죽음입니다. 죽음까지도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가 방법입니다. 히스기야는 기도로 죽음까지도 극복하였습니다. /할/ 그렇다면 죽음보다 덜한 문제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기도하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믿/
'키엘케코르'는 '기도는 하나님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기도 자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했고, '맥런'이라는 분은 '이 세상에 살면서 때때로 생의 어려운 일을 만나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 기도의 끈을 묶어서 온전히 기도에 매달리라 그러면 승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남미와 북미를 대조해 보겠습니다. 남미가 북미보다 더 풍요하고 땅도 좋습니다. 지하자원도 많고 모든 환경이 탁월합니다.
남미에 있는 브라질은 80%가 문맹자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이과수폭포가 그 곳에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긴 아마존 강도 그 곳에 있습니다. 물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나무도 많습니다. 옥토입니다. 그런데도 못사는 나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북미에 있는 미국은 풍요하고 잘 사는 나라입니다. 세계 최강국입니다. 그러나 남미는 아직도 선진국에 들지 못 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들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미국의 '로저 밥슨' 기자가 남미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정치가를 만났습니다.
기자가 인터뷰하는 데 그 정치가가 기자에게 도리어 이렇게 질문합니다. '북미보다 남미가 지하자원과 물도 풍부하고 모든 환경이 좋습니다. 그런데 왜 남미보다 북미가 더 잘 살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밥슨 기자가 대답하지 못 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데 그 정치가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남미는 황금을 구하려는 스페인 사람들이 의해 점령을 당했고, 북미는 기도하며 하나님을 잘 섬기는 청교도들이 점령했기 때문이지요. 여기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죽음까지도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는 능력입니다. 기도가 방법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기도이외는 이런 유가 나가자 않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많큼 기도가 중요합니다. /아멘!/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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