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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 (눅 5:1-11)

by 【고동엽】 2022. 2. 8.

깊은 데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 (눅 5:1-11)

 

 

영국의 '컨글톤'경이라고 하는 유명한 부자가 있었답니다. 그 사람은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컨글톤'경이 자기 집 하녀가 부엌에서 접시를 닦다 말고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습니다. '내게 만약 5파운드만 있다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컨글톤'경은 하녀에게 다가가 '정말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하녀는 '주인님, 정말 그렇고말고요!' 그래서 그 주인은 하녀의 등을 다독거려 주면서 '내가 5파운드 줄 테니 이제부터는 불평하지 말고 열심히 일이나 하라'고 했습니다.
이게 왠 횡재요 떡입니까? 그런데 주인이 정원으로 나가는데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아이 참, 이럴 줄 알았으면 10파운드라고 말하는 건데, 아유 아까워 내가 미련해서 손해를 보았네!' 그러면서 또 다시 불평을 하더랍니다.
이 일화는 만족할 줄 모르고 끝없이 불평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원망과 불평은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올무랍니다.
▶어떤 분이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몸에 있는 것을 모두 다 빼앗겼습니다.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집으로 돌아와서 기도하는 가운데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오히려 몇 가지로 감사했다고 합니다.
⑴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강도를 당하지 않도록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비로소 깨닫게 되자 그동안 지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했습니다.
⑵몸에 있는 것을 다 빼앗겼지만 목숨을 잃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감사했습니다. ⑶자기는 강도를 당한 사람이지, 강도 짓을 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⑷이번 일을 통해서 앞으로 조심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지혜를 얻게 하신 것에 대해서 감사했다고 합니다. /할/ ◀제목소개!▶

 

오늘 본문의 배경은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 호수는 갈릴리 바다의 별칭입니다. 이 바다는 게네사렛 호수라고도 부르고 갈릴리 바다, 또는 디베랴 바다라고도 말합니다. 이 바다는 하프 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엄청난 양의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주변에는 높은 산들이 둘러서 있으므로 바다 한 복판에서 이따금씩 돌풍현상이 있어나기도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 갈릴리 바다를 중심으로 복음사역을 감당하신 곳입니다. 이곳에서 제자들을 부르셨고, 이곳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고, 38년 된 병자도 고치셨고, 백부장의 종을 고치셨고,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곳이 바로 갈릴리 지방에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이 바다에서 베드로가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초저녁부터 밤이 다 새도록 그물을 계속 던졌습니다. 그러나 새벽녘이 되도록 한 마리의 고기를 건지지 못하고 좌절과 실망 속에서 이제 집으로 돌아가려고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이때 강변에서는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 위에 올라오셔서 시몬에게 청하여 배를 약간 띄우게 하시고 그 배를 설교 단으로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신 주님은 밤이 맞도록 헛수고를 한 시몬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명하십니다. 이 명령은 베드로의 경험으로 봐서는 순종할 수 없는 상식 밖의 명령이었습니다. 시간적으로 낮에는 고기를 잡을 수 없는 때요, 장소 적으로 깊은 곳에서는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베드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습니다. '예수 선생님, 왜 목수가 어부 일에 참견입니까? 난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입니다. 지난밤은 아주 재수 없는 밤이었습니다. 때때로 그런 때가 있습니다. 난 오늘은 피곤하여 그만 집으로 가겠으니 더 이상 간섭하지 마시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고 '선생님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셨어도 한 마리도 잡은 것이 없지마는 주님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하고 즉시 그물을 내린 즉 고기가 너무 많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습니다. /할/
여러분! 오늘 본문 속에 베드로는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위대한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베드로는 고기를 잡는 어부여서 그의 삶의 행동반경이 갈릴리 호숫가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곳에서 인생의 행복의 승부를 건 곳입니다. 배타고, 노 젓고, 그물 던지는 이러한 베드로에게 어느 날 갑자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기적은 오늘날도 일어납니다. 기적은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납니다. 베드로는 일상생활에서 고기 잡고, 술 먹고, 잠자고, 하는 것 밖에 다른 일이 없는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오셔서 불경기로 허덕이는 사업장에서 축복예배를 드려주셨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 설레는 가슴을 안고 영의 눈을 크게 뜨고 갈릴리 해변을 바라보십시오. 현대인들이 매일, 매일 가방을 들고 일터로 출근하는 것처럼 베드로도 자기의 경험을 토대로 그물을 던졌으나 웬일인지 한 마리의 고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밤새도록 힘쓰고 애썼지만 그물만 찢어지는 허탕만 쳤습니다.
우리 인생 길에 부푼 기대와 꿈을 가지고 경험을 바탕으로 열심을 다한 사업장이 왜 이렇게 풀리지 않습니까? 왜 이렇게 꼬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경험이나 재주가 통하지 않아 깊은 절망에 빠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날도 제2, 제3, 제4의 수많은 베드로가 나의 경험과 자식, 나의 재주가 '왜 이렇게 안 통할까?'하고 탄식하며 절망하는 많은 무리들을 봅니다.

 

▶오늘 베드로의 그물에서 몇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①'빈 그물'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피곤과 좌절을 의미합니다. 실망과 허탈을 의미합니다.
때로는 우리도 밤이 다 가도록 수고를 했지만 대가없는 빈 그물을 손에 쥐고 열등의식과 때로는 분노, 그리고 허탈감 속에서 멍해질 때가 있습니다. 빈 그물은 곧 베드로의 허탈감입니다.
②'씻은 그물'은 그 날 고기잡이를 포기하고 체념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도 그물을 버리지 않은 것을 보면 자고 다시 재도전해 보겠다는 작은 소망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빈 그물 속에는 내일의 가능성을 찾아보려는 눈치입니다. '오늘은 조금 팔았으나 내일은 장사가 잘 될 것이다.' 이런 소망으로 사람들은 삽니다.
③'던진 그물'입니다. 실패한 현장에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해가 뜨면 고기가 숨어 버린다는 고기잡이의 불가능성, 그리고 갈릴리 바다 깊은 곳은 물이 차서 고기가 없다는 경험 앞에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이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베드로의 경험은 '어림없는 소린데'라는 생각도 들지만 말씀에 순종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5절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무슨 말인가? 지금 베드로가 '경험이 아닌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아닌 예수를 의지'하고 있습니다. 좌절이 아닌 용기, 포기가 아닌 재도전의 의미가 다시 던진 그물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실패했습니까?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그물을 던집시다. /아멘!/
④'찢어진 그물'입니다. 드디어 베드로는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얼마나 고기가 많이 잡혔던지 그물이 찢어지고 말았습니다. 빈 그물로 끝나는 줄 알았으나 엄청난 풍성함이 빈 그물 속에 들어왔습니다. /할/
⑤'버린 그물'입니다. 이 이야기는 베드로가 밤새도록 수고하다가 고기 한 마리 못 잡았지만 예수님을 만나 말씀에 순종하였더니 풍성한 축복을 받았다는 '해피 앤드'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랐다는 즉 사명을 찾았다는 결단의 말씀으로 끝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속의 주인공이 누구로 보입니까? 많은 사람들은 베드로를 주인공으로 봅니다. 아닙니다.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빈 그물을 들고, 실패 속에 몸부림치는 자에게 오시는 분이십니다. 좌절과 절망 속에 몸부림치는 자에게 오셔서 용기와 힘을 주시고 빈 그물 속에 축복의 가능성을 불어넣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믿/아멘!/


▶우리나라에서 연봉 1억 이상 받는 사람 170명의 의식구조를 조사한 내용이 어느 잡지에 실렸습니다. 잘 되는 사람은 잘 되는 비결이 있었습니다. 억대 연봉자 170명중의 특징 몇 가지만 골라서 말씀드리겠습니다.
⑴도전을 즐깁니다. ⑵결단력이 강합니다. ⑶추진력이 뛰어납니다. ⑷위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⑸책을 많이 읽습니다. ⑹신용을 잘 지킵니다. ⑺현실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⑻일에 대한 집중도가 높습니다. ⑼모든 일에 의욕적입니다. ⑽목표 의식이 뚜렷합니다. ⑾끈기가 있습니다. ⑿변화에 익숙합니다. ⒀모든 일에 낙관적입니다. ⒁항상 긍정적입니다. ⒂모든 일에 자신감이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세 가지 은총이 보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오셨습니다. 베드로는 단 한 번도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한 적도, 만나고 싶다고 기도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오셨습니다. 이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할/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가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찾아가서 만나야 한다면 이 세상의 몇 이나 그 분을 만나고 올 수가 있겠습니까?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찾아 오셔서 만나게 해 주십니다. 이것이 첫 번째 은총입니다.
두 번째 은총은 실패자를 성공 자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 밤에 깊은 곳으로 그물을 내렸더니 두 배에 가득 고기를 잡았습니다. 베드로는 단 한 번도 '두 배에 가득 고기를 잡으리라'고 기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만선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할/
세 번째 은총이 있습니다. 사람 낚는 어부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할/ 한마디로 사명 자로 세워주신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입니다.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 가겠다고 지원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따라오라고 차출하셨습니다. 지원병이 아니라 차출 병입니다. 이것은 전적인 예수님의 은총입니다. 큰일을 한 사람들은 모두 지원병이 아니라 차출 병입니다. 모세도 모세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기드온도 하나님이 억지로 부르셨습니다. 요나도 엘리야나 엘리사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하나님이 불러 쓰셨습니다. 은총이 있어야 큰일을 합니다. /아멘!/
▶사명은 인생을 행복하게 합니다. 사명감에 헌신하는 사람은 보상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키우면서 무엇도 보상을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귀엽고, 그저 사랑스럽고 그저 행복합니다. 사명을 최고의 영광으로 압니다.
▶사명을 주실 때 동행의 복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 사명을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는 약속입니다. 예수께서 새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얼마나 든든합니까?/


▶오늘 우리 모두가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우리 주님을 우리의 삶 속에 모셔야 합니다.
그 날 그 새벽에 갈릴리 호숫가에는 베드로뿐만 아니라 수많은 어부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기업,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그 날 갈릴리 호숫가를 앉아 있는 것처럼 서울 장안에 닻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 날 많은 어부들과 배들이 있었지만 다 기적을 맛본 것이 아닙니다. 그 날 기적의 주인공은 오직 베드로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사업장에 모셔들인 많은 기업들이 기적처럼 성장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모셔들이면 오늘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믿/아멘!/
눅8장에 보면 유대인의 회당 책임자였던 야이로에게 열두 살 난 외동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딸이 원인 모를 중병으로 않다가 그만 죽어버렸습니다. 이제 갓 피어나기 시작한 열두 살 꽃다운 소녀가 죽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애통한 일입니까? 인생에 있어서 가장 두렵고 가장 슬프고 가장 심각한 절망은 뭐니, 뭐니 해도 죽음입니다.
죽음은 오래 살았던 짧게 살았던 간에 죽음 자체가 슬픈 사건이요, 두려운 사건입니다. 야이로의 딸은 이제 갓 피어나는 꽃송이인 열두 살에 그것도 무남독녀의 죽음입니다. 그 슬픔은 과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여러분! 죽음은 아까우니까 봐주고 어리니까 봐주고 돈 많으니까 봐주고, 잘 아니까 봐주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국립묘지에 가면 한때 천하를 호령하던 사람들의 묘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천하를 호령할 수 있었지만 자기 자신을 호령할 수가 없었고, 한 나라를 통치할 수 있었지만 자기의 죽음을 통치할 수가 없었기에 말없이 땅 속에 묻혀 있는 것입니다.
당시 회당장의 지위는 상당한 것입니다. 회당에는 대게 10명의 관리 책임자가 있고, 그 중에서 세 명이 대표격으로 있으면서 예배절차와 재판절차를 담당합니다. 그 중에 야이로는 수석 회당 장이었기에 그때 그의 지위와 명성, 그리고 권세는 대단했습니다.
그런 그도 그의 딸의 죽음 앞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눅8:41절에 보면 그가 예수님께 찾아와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했다고 했습니다.
회당 장에 와서 엎드려 간구했다는 것은 몇 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왔다는 것은 열심이요, 엎드렸다는 것은 겸손이요, 간구했다는 것은 믿음의 기도를 의미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신앙이 있어야합니다.
회당장의 행위와 믿음을 예쁘게 보신 예수님께서 그의 간청을 들으시고 그의 딸을 살리기 위해 가고 있는 도중에 사람들이 쫓아와 비보를 전합니다. '당신의 딸이 좋겠으니 예수님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마시오' 그러나 예수님은 두려워 떠는 야이로에게 '두려워말고 믿기 말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주님의 말씀 속에는 '절망과 슬픔을 내 쫓으시는 주님의 능력과 권세'가 그 속에 있습니다. /아멘!/
주님이 그 집에 도착하니 이미 곡소리가 나고 헌화를 가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때 주님은 믿음이 없는 그들을 다 물리치시고 믿음이 있는 회당장과 제자들을 데리고 그 방에 돌아가 아이의 손을 잡고 '일어나라, 달리다굼'하시니 죽었던 소녀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할/
여러분! 야이로는 주님을 모심으로 죽은 딸의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죽음을 철폐하신 주님이 무엇을 못하겠습니까? 기적의 첫 출발은 제일 먼저 주님을 모시는 삶입니다. /믿/

 

②주님을 우리의 동업자로 삼을 때 기적을 체험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동역자'들입니다. 바울은 롬16:3절에서 '동역자들에게 문안하라'고 했고, 빌4:3절에서는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고 했고, 고전3:9절에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동역자 의식을 가진 자에게 우리 하나님은 사41:10절에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할/ 여러분! 이 시대를 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의 동업자가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아멘!/
세상에는 중요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붙들며 하나님의 영광의 역사를 이 땅위에 이루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그 시대에 제일 중요한 사람들'이랍니다. 남이 인정하던 안 하던 우리가 이 세대에 중요한 사람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⑴우리가 하나님과 동업자가 되려면 말씀을 듣는데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잠28:9절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⑵인간의 비극과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듣지 않은데서 비롯됩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신17:19절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서 그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사도요한은 계1:3절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했습니다.
⑶그 다음에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묵상한다는 것은 말씀을 깨닫고 적용하기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각을 되새기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1편에서 복 있는 사람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많은 열매를 내고 항상 잔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된다고 했습니다.
⑷또한 주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기도생활을 해야 합니다. 믿음의 생활의 실패는 기도 생활이 깊지 못할 때 나타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무엇인가 다릅니다. 여유가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시62:8절에 보면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내 마음을 숨김없이 토할 때 하나님과 신령한 교재가 이루어져 하나님을 동업자로 모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멘!/

 

③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은 일어납니다.
모든 신앙의 사람들의 기적의 원동력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얻어진 결과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습니다. 지팡이 하나만 들고 바로 왕에게 대결하기 위하여 나갔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었기에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노아도 그렇습니다. 산꼭대기에 배를 만들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을 때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또한 여호수아가 그랬고, 이삭이 그랬습니다. 이 사람들은 다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할/
주님이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깊은 곳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깊은 곳에 기적이 있습니다. 깊은 곳에 풍요가 있습니다. 깊은 곳에 신비가 있습니다. 깊은 곳에 축복이 있습니다. 깊은 곳에 목표 달성이 있습니다.' /할/아멘!/
"내가 말씀을 의지하며 그물을 내리겠나이다" 그렇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순종의 삶입니다. ▶어떤 부흥사가 지옥에 가면 여기저기서 껄껄껄 하는 소리로 시끌벅적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회개할 껄, 그때 순종할 껄, 그때 예수님을 잘 믿을 껄, 그때 교회나 잘 다닐 껄'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결단이 기적을 낳습니다. 믿음이 오는데도 감동이 오는데도, 찔림이 오는데도 결단하지 못하고 시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붙들어 주실 수가 없습니다. /믿/
말씀을 듣고 순종한다는 것은 신앙의 행위를 말합니다. 말로만 끝나는 신앙은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약2:17절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또 26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갈릴리 바다에서 그 날 그 말씀을 들은 사람은 많았으나 믿음으로 순종하고 결단한 사람은 베드로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닙니다. 손과 발로 행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주시해 봅니다. '저 장로님 좀 봐! 저 권사님 좀 봐! 저 집사님 좀 봐, 저 사람을 보니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알겠구나!' 예수 믿는 저와 여러분은 행위가 나타나야 합니다.
오늘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었다 해도 그 말씀대로 그물을 던지지 않은 사람에게는 결코 인생의 삶 속에 만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기적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고 일을 저지릅시오, 결단을 가지십시오, 그 날 베드로를 향해 어리석은 짓을 한다고 비웃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결단은 기적을 낳습니다. 순종은 역사가 나타납니다. /아멘!/할/

 

④인생 길에는 꼭 깊은 곳으로 가는 길목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많은 사람들은 깊은 곳으로 가야하는 골목에서 외면해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기적은 깊은 곳으로 나아갈 때 또 망설임이 없이 찾아가는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오늘날 깊은 곳은 어디입니까? 한마디로 예수님 안에 삶입니다. 이 삶을 예수님은 요15장에서 '포도나무와 가지'로 비유했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성도는 가지요 하나님은 그 농부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교회를 포도원에 비유한 것입니다. 교회 생활, 신앙생활이 바로 깊은 곳의 삶입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는 데는 몇 가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주님의 몸으로 된 성전을 우리가 받들어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관심이 있습니다. 교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무엇이 있어야겠구나! 무엇을 해야겠구나!'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가꾸면 우리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생활을 가꾸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공짜가 없습니다. 몸 된 재단을 위해 봉사와 헌신이 따라야 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전을 채워야 할 책임이 여러분들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은 전도입니다. 전도는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아닙니다. 주님이 명령입니다. /믿/ 교회 안에서는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주의 종을 비롯해서 권사님, 집사님, 구역장님 말씀에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을 잘하는 비유로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으로 말씀의 비유를 하셨습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포도나무의 진 액을 받을 수도 없고, 생명이 살수도 없으며 따라서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은 요15:7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미국의 석유 왕이었던 록펠러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그는 젊은 시절 광산업에 손을 대었다가 큰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깊은 좌절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친구에게서 금광을 하나 인수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이미 캐내 갈 금은 다 캐내 갔습니다. 찌꺼기만 남았습니다. 폐광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은행에서 계속 빚 독촉은 날아옵니다. 또 광부들에게 임금을 주지 못하니까 그들이 폭도처럼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록펠러는 결심을 하고서 광산 속 깊은 데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돗자리를 깔았습니다. 그리고 결심하기를 '내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전에는 결코 이 자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는 마음으로 식음을 전폐하면서 기도의 깊은 자리로 내려갔습니다. 그런 가운데 깊은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더 깊이 파라. 때가 되면 원하는 것을 얻으리라!' 인간적인 견지에서 생각하면 아무리 깊게 파도 금이 나올 것 같지는 안았습니다. 그러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베드로가 듣고 그 말씀을 의지해서 그물을 내렸을 때,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 축복을 받았던 것을 생각하면서 록펠러는 광부들을 독려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깊이 파내려 갔습니다.
한참 파내려 갔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펑!>하면서 검은 물줄기가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흔한 지하수와는 달랐습니다. 분석해 보니까 석유였습니다. 유전이 그곳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록펠러는 미국의 석유 왕이 되었습니다. 당대 세계에서 제일가는 갑부가 된 것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나아갈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지금은 더 깊이 기도해야 될 때입니다. 더 깊이 말씀을 묵상하십시다. 더 깊이 헌신하십시다. 그리하면 때가 이르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아멘!/

 

⑤그렇다면 깊은 곳의 영적인 의미가 무엇인가?
⑴경험과 이성을 초월하는 것이 깊은 곳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고기를 잡을 때 공간적으로 얕은 곳에서, 시간적으로 밤에 잡아야 합니다. 깊은 곳, 낮에는 고기를 잡을 수 없는 것이 경험이요, 이성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낮에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고 하셨습니다.
경험과 이성은 믿음이 아닙니다. 경험과 이성은 상식입니다. 경험과 이성 속에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과학은 이성과 경험입니다. 그러나 말씀은 경험과 이성을 초월한 능력자의 힘입니다. 여기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믿/
⑵안 보이는 것을 볼 줄 아는 것이 깊은 곳입니다. 얕게 사는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봅니다. 그러나 깊게 사람들은 안 보이는 것도 볼 줄 압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보지 못 하는 깊은 곳에 있는 고기를 보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본다면 깊은 신앙입니다.
⑶더 큰 것을 바라보는 것이 깊은 곳입니다. 오늘 본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많이 잡게 하려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시는 것이 목표입니다. 예수님은 고기보다 더 큰 베드로를 바라보셨고, 베드로도 고기보다 더 큰 예수님을 따라 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깊은 신앙입니다. /할/
▶청주 서원교회를 섬기는 김동수장로님이 계십니다. 그 분은 정말 훌륭한 장로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분이 한국 도자기를 세웠습니다. 한국 도자기는 한국 최대의 도자기입니다. 한국 역대 대통령들이 다 한국 도자기 그릇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수안보온천에서 제일 좋은 호텔도 가지고 있습니다. 로제 화장품 회사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제 큰그릇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김동수 장로님은 처음에는 청주에서 사기 그릇 장사를 시작하다가 망해 가는 사기 그릇 공장을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장사꾼에서 사업가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업이 어려워서 빚 카드가 100장이 넘었습니다. 매일 빚 때문에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께 '하나님! 장로가 빚도 못 갚고 죽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빚 다 갚는 날 데려 가 주세요.' 그런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어렵게 사업을 하면서도 정직하게 성경대로 했습니다. 그런 중에도 십일조를 정확하게 드렸습니다. 십일조를 수백만 원 드리려고 떼어놓고 나면 아내가 옆에서 전화로 빚쟁이에게 사정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조금만 참아 주시면 갚겠습니다.'
그 때마다 빚부터 갚고 싶은 유혹이 굴뚝같았습니다. 그리고 주문이 밀릴 때면 주일에도 특별 근무를 시키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주일에는 철저히 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특별한 것은 술 마시는 그릇은 일절 만들지 않았습니다. 토기 중에 술과 관계된 그릇이 30%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술에 관계된 그릇은 만들지 않았습니다. 성경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사업을 했습니다.
드디어 1976년 어느 날 처음으로 은행에 잔고가 100만원 남았습니다. 빚을 다 갚았습니다. 그 날 밤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오늘 밤 내 영혼을 불러 가도 좋습니다.' 옷을 깨끗이 입고 죽을 준비를 하고 잠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죽지 않았습니다. 그 후부터 하나님은 김동수 장로님을 엄청나게 축복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오늘 날 한국 최고의 도자기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 분이야 말로 큰 것을 바라 볼 줄 아는 신앙 인이었습니다. /할/

 

⑥오늘 본문 속에 깊은 곳의 삶을 살았던 베드로가 어떤 복을 받았습니까?
⑴목적이 넘치게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밤이 새도록 애쓴 목적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고기를 많이 잡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물이 찢어지게 잡혔습니다. 그래서 그 배만 넘친 것이 아닙니다. 옆에 있는 동료의 배에도 나누어주어 두 배가 넘치는 만선의 복을 받았습니다.
⑵즐거운 비명 속에 살게 됩니다. 베드로가 도와 달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이 비명은 즐거운 비명입니다. 모자라서 도와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넘쳐서 도와 달라는 것입니다. 이런 불경기에 호강의 외침입니다. 이 귀한 삶이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⑶다른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모두가 놀았습니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잘 믿으면 세상 사람들이 보고 깜짝 놀랄 일들이 벌어집니다. '아니! 저 사람! 예수 믿더니 얼굴 좀 봐, 환하잖아, 그렇게 사업이 불같이 일어난다며' /할/ 하나님은 '의인의 요동함은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할/
⑷바른 신앙의 고백자가 되었습니다. 5절에 예수님을 향하여 '선생이여!'라고 부르다가 8절에서 기적을 보고 나서는 '주여!'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선생님으로 보는 것과 주로 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주는 창조주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는 우리 인간의 생사화복이 바로 당신께 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멘!/
⑸'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축복을 받은 베드로가 갑자기 주님 앞에 털썩 주저앉아 엎드립니다. 왜 그럴까요? 그는 이 놀라운 기적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광 앞에 서 있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많은 고기를 얻은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베드로는 자신의 모습을, 아니 주님의 모습을 발견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지금 베드로의 무슨 숨겨졌던 죄가 드러나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무슨 죽을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나는 죄인입니다.' 이 고백은 마치 태양 앞에 드러난 촛불과 같은 자신의 모습을 알았을 때의 경외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인생을 알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바로 안 순간 자신을 알았습니다. 주님은 저 바다의 깊은 곳을 아시고, 저 물고기의 움직임도 아시고, 저 우주의 비밀도 아시며, 내 삶도, 내 미래도, 나의 고민도, 또 나의 필요도 주님은 다 아시고 계시는 분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할/ 그 순간 그 분의 경외감 앞에 털썩 주저앉아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 베드로처럼 '나는 죄인입니다.' 하는 이 고백이 나오기까지는 주님을 만났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람이 진정한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죄인입니다.' 하는 이 고백이 없고서는 우리가 변화되지 않습니다. /아멘!/
▶중세 기독교사에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티토리우스'라는 고명한 수도사가 있었는데 이 수도사에게 '독뱀에 물려 죽어 가는 아이'를 그의 부모가 데리고 와서 살려달라고 간청합니다. '수도사님은 거룩하시고 깊은 기도를 하시니 고쳐 주시옵소서' 너무나 간절히 매달리는 부모를 보고 티토리우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아이를 구할 힘이 없습니다. 나는 50년 간 수도를 했고 모두가 나를 존경한다고 하지만 정직히 말하면 나는 지금도 여자를 보면 음욕이 생기고 좋은 것을 보면 탐욕이 생기며, 밤이 되면 불안이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가짜입니다.' 이 말이 그 수도자의 입에서 떨어지자 그 아이의 코에서 가르다란 숨이 새어나오기 시작하더랍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도 눈물을 흘리면서 말합니다. '저도 평생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이제껏 장사해서 번 돈의 절반은 속여서 벌었습니다.' 그의 아버지의 입에서 이 말이 떨어지자, 이제 아이의 입에서 숨이 새어나오더랍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저도 똑같습니다. 저는 남이 잘된 것을 보면 배가 아팠고, 기껏 낙이란 것이 남편이 돈을 벌어다주면 돈 세는 것을 낙으로 살았습니다.' 이 말이 어머니의 입에서 떨어지자 아이가 기지개를 켜고 일어섰다고 합니다. /할/
⑹가치관이 변화되었습니다. 베드로는 그가 원하고 구했던 고기보다 예수님을 더 원하고 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장 복 받는 비결입니다. 오늘 우리가 베드로에게서 배워야 할 중요한 한 가지는 '버려 두고 좇는 신앙'입니다.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축복이 사명이 되는 모습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받은 축복을 사명으로 바꿀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 복을 왜 주십니까? 너나 잘 먹고 잘 살라고 복을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 복이 사명이 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의 목적을 물어보십니다. '왜 건강해야 하느냐? 왜 돈을 필요로 하느냐? 왜 너의 자식이 잘되어야 하느냐?' 이 물음에 부끄럽지 않을 때 하나님은 모든 것들을 주십니다. 그러니까 축복이 사명이 될 때 하나님은 주신다는 것입니다. /할/
▶처음으로 아프리카에서 다이아몬드를 발견할 당시의 일화입니다. 길에서 아이들이 돌덩어리를 가지고 노는데 그게 다 다이아몬드였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몇 푼 안 되는 상품을 가지고 가서 그 돌들을 거두어 갔습니다. 가치를 아는 사람만이 가치 있는 물건에 투자합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13:44-46)
보석을 아는 자가 보석에 투자합니다. 천국을 아는 자가 천국에 투자합니다. 영생의 가치를 아는 자만이 영생을 위해 다른 것을 버립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따르는 것이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모든 것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저는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행여나 오늘 여러분, 실패한 자가 있습니까? 실패!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전문가도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보통 실패가 아닙니다. 완전한 실패입니다. 요즘은 전문가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 전문가들도 실패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 당시 종교 전문가였던 바리새인들은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야가 눈앞에 다가왔는데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정치 9단이던 다윗도 그 아들과 신하들의 반역을 막지 못하고 쫓겨다녔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 가운데 실패했다고 낙심 마십시오. 실패는 당연한 인생의 한계입니다. 베드로의 실패를 기억하세요. 눈감고도 고기 잡는 베테랑 어부 베드로가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가 다시 만선의 축복의 주인공이 된 것은 '깊은 곳'의 신앙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깊은 곳으로 그물을 내리십니다. /할/ 그래서 베드로가 체험했던 만선의 기적이 우리 모두의 기적으로 받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아멘!/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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