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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인 명설교편◑/옥한음목사 설교(66편)

감사는 향기로운 제사 신16장16-17

by 【고동엽】 2022. 2. 8.

감사는 향기로운 제사           신16장16-17             

 

신16:16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맨 하단에 '애양원 일화'가 아주 은혜스럽습니다

   

◑감사하는 습관을 배우십시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감사에 대해서 깊이 말씀을 나누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감사를 잘하면 영적으로 상당히 건강하고 성숙한 신자가 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감사를 잘 모르는 사람에 비해 감사를 잘 아는 사람이 그만큼 건강하고 성숙합니다. 영적인 면

 

뿐만 아니라 육적인 면에서도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건강하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아는 이야기지만, 우리 몸의 내장을 통제하는 자율신경계 안에 부교감 신경이 있습니다.

 

그런데 의학계에 계시는 분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감사하고, 고마워하고, 사랑하고, 아끼고,

칭찬하는 마음으로 계속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부교감 신경계를 자극해서 건강을 촉진시킨다고 합니다.

 

자연히 감사를 잘 안 하는 사람에 비해 감사를 많이 하는 사람이 건강도 좋아진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감사는 100번 해도 손해 볼 것이 없고,

하면 할수록 영과 육에 유익을 가져다 주는 만병통치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감사에 인색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살게 되고 여러 가지 면에서 자신감이 생기게 되자

감사가 점점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향이 그렇기도 하지만

옛날보다 감사가 훨씬 적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작은 예로, 지난 한 해 동안 서울소방방재본부에 소속된 119구급대가 292,000번 이상 출동해서

212,000명 이상을 병원으로 옮겨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119구급대의 헌신적인 봉사로 생명을 건지기도 하고 위기를 벗어나기도 했는데,

그 가운데서 어떤 모양으로든지 감사를 표한 사람은 100중 3명 꼴 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이는 감사할 일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감사가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하나의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에 가마니 깔고 앉아서 예배 드리고

엎드려 기도하던 사람들의 입에선 "주여, 감사합니다."라는 말들이 눈물과 함께 자주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등과 바닥에 패드가 덧대인 고급 의자에 앉아 예배 드리면서도

감사가 메말라 있습니다.

 

30여 년 전에, 제가 미국에서 본 깜짝 놀랄 정도의 수준있는 의자를

오늘날 한국 교회 성도들이 사용할 만큼 생활 여건이 좋아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마니 깔고 예배드리던 우리 선배들에 비해서 감사가 너무 없습니다.

 

설령 있다 해도 그저 입술에 붙어 있는 얄팍한 감사일 뿐 진정한 감사를 보기 어렵습니다.

감사란 은혜 받으면 자동적으로 될 것이라는 미신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은혜를 안 받은 사람보다 은혜를 받은 사람이 감사를 더 많이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를 잘하려면 기도를 연습하고 배워야 합니다.

 

은혜 받았다고 기도를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깊이 알려고 한다면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감사도 배우고 연습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믿음 좋은 주변 형제들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눈여겨보면서 배우고 연습해 보십시오.

 

그러면 드디어 나에게도 감사가 체질화되고 생활화되며 나아가 습관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배워서 습득한 사람은 훨씬 더 감사가 풍성하고, 깊이 있는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좋은 일에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지 못한 일에 감사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성공할 때야 어느 정도 감사할 수 있지만,

실패할 때 진정한 감사를 드리기란, 웬만큼 배우며 연습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힘듭니다.

 

이익을 많이 남겼을 때는 저절로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막대한 손해를 입었는데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만히 들여다보십시오.

평소에 감사하는 법을 배운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굉장한 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발 부탁이니 다른 공부보다 먼저 감사할 줄 아는 법을 배우십시오."

 

또 어떤 사람은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감사의 예술을 터득할 때 비로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습니다."

 

예술은 그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피눈물 나는 수고와 연습을 필요로 합니다.

마찬가지로 감사의 예술을 터득하려면 남보다 더 많이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피눈물 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그래서 그 감사가 나에게 체질화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범사에 감사할 수 있고 감사를 통해 엄청난 은혜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 받아야 자동적으로 감사가 넘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1년 중 중요한 명절 3개를 지정해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본문을 보면 무교절칠칠절초막절이라는 3개의 명절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1년에 3번 추수를 합니다.

 

-겨울 동안 자란 보리를 초봄에 추수할 때가 있습니다.

이 추수기에 맞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교절(초실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은 사흘 연속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봄부터 시작해서 뿌린 밀이 보리가 자라서 추수하는 맥추절,

즉 칠칠절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맥추절은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주신 양식(주식인 밀)을 놓고 감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늦은 가을이 되면 그동안 열심히 가꾼 올리브나 포도, 무화과 같은 과일들을 풍성하게

소출하는 연말이 됩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초막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렇게 1년에 3번의 추수가 있었는데,

여기에 맞춰 큰 명절 3가지를 제정하셔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명절을 지킬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신 은혜들을 회상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도록 한 것입니다.

 

이렇게 매년 몇 개월에 한 번씩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기뻐하다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연히 감사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그 감사가 체질화되고 생활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긴 역사를 살펴보면 정말 불행하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이 3절기를 제대로 지킨 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귀찮다는 이유로 절기가 있다라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수백 년을 보낸 암흑기도 있었습니다. *히스기야 때 유월절 다시 지킴, 대하30장

 

그만큼 하나님께 때를 따라 적절한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이야기해 줍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전철를 밟는 불행한 사람이 되어선 안 됩니다.

감사가 우리에게 체질화되고 습관화 되도록 계속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연습해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키라고 명령하신 3절기를 앞에 놓고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마음에 잘 정리해서 실천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로, 무엇을 감사할 것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1) 유월절(무교절, 초실절)의 감사

하나님께서 왜 유월절을 지키라고 하셨을까요?

과거에 '십계'라는 영화를 보셨으면 그 영화를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그 긴 세월동안 노예생활을 한 국민이 다시 독립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모세라는 위대한 지도자를 세우고 그들을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손으로 구원해 애굽에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 해방시킨 날을 기념하여 유월절로 지킨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감사하라는 의미에서

이 날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어린양의 고기와 누룩이 들어 있지 않은 떡을 먹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무서운 노예의 쇠사슬에서 건져 주셨는지를 나누면서,

그 은혜를 다시 한번 기억하고 감사했던 것입니다.

그만큼 유월절은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가장 기본적으로, 우선적으로 감사해야 될 것은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다는 구원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그 생명이 코의 호흡에 붙어 있는 하루살이와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 중의 죄인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는 원수의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그에게 담당시키사 십자가에서 돌아가게 하시고,

그 위에서 방울방울 흘리신 보혈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말끔히 씻어 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무조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이름 지으시고,

언제든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하나님,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는

하나님 나라와 영생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간 나와서 예배하는 영광스러운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은혜가 아닙니까? 생각할 때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것을 아신다니 기가 막히는구나.

아무것도 하나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값없이 영생을 주셨다니 기가 막히는구나.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 같은 것을 구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구원의 감사가 기본입니다.

 

이 감사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드리지 못합니다.

구원 받은 은혜가 없는데 잘된다고 감사하고, 돈 좀 벌었다고 감사하고,

건강하다고 감사하는 것은 의미 있는 감사가 못됩니다.

 

가장 큰 감사는 구원의 감사입니다. 오늘 이 시간 예배드리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성령이 오셔서

뜨거운 손으로 만져주시고, 여러분의 마음속에 구원의 감격이 다시금 회복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여, 감사합니다.'라고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고 이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감격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유월절은 바로 이런 은혜를 회복시켜 주는 절기였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세상만사 다 흘러갑니다.

 

내가 좋아하던 것이 있다가도 없어질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것도 금방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주신 이 구원, 너무너무 소중한 구원, 영원히 빼앗길 수 없는 이 구원을

나에게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하고 나도 모르게 하나님 앞에 감격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2) 맥추절의 감사

그러면 하나님께서 맥추절을 왜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맥추절은 주식인 밀 농사를 지어서, 추수한 많은 곡식을 창고에 쌓아놓고는,

하나님께서 이처럼 풍성하게 먹고 마실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을 주셨음을 회상하면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왔다는 것을 고백하는 절기였습니다.

 

이것이 칠칠절=맥추절입니다. 단 하루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는 것 하나 하나도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내가 마시는 물 한 방울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서 왔습니다.

나 같은 것을 이렇게 사랑하셔서 일용할 양식을 때를 따라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고 경배하며 찬양하는 절기가 바로 맥추절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감사가 얼마나 많아야 되겠습니까?

비행기를 타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이 한반도 조그마한 땅에 산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군데 군데 손바닥만한 농경지가 여기저기 박혀있습니다.

확 트인 평야가 있는 곳은 남한에서 거의 한두 곳 밖에 없습니다.

 

모두 산과 산 사이에 조그만 논바닥들이 바둑판처럼 박혀있습니다.

거기에서 농사를 지어 우리 조상들이 살았고,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금년에도 쌀이 너무 많이 생산되어서 이제 쌀 쌓아놓을 일이 꿈만 같고,

쌀이 너무 많이 남아돌아 고민을 하는 참 기가 막힌 나라가 되었습니다.

 

태풍이나 전염병이 지나가면 수확할 과일도 없을 것 같은데

가을이 되면 탐스러운 과일들이 종류대로 시장바닥에 가득 쌓여 있습니다.

채소 역시 너무 많이 출하되어서 가격이 폭락 되곤 합니다.

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지 모릅니다.

 

요즘 우리처럼 복이 터진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옛날에 호의호식 하던 솔로몬이나

많은 황제들이 우리처럼 호의호식 했습니까? 우리는 이미 지구촌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모든 나라의 좋은 음식들은 조금만 신경 쓰면 한번씩 다 맛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처럼 다양하게, 신선한 음식을, 그리고 여름이라고 해서 시원한 것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풍성하게 공급해주시는지 모릅니다.

 

이런 은혜를 마음에 담고 '주여, 너무 고맙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하고 경배하는 것이

맥추절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일용할 양식을 놓고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 숟가락, 한 컵이라도 어느 것 하나 감사 없이 먹고 마실 것이 없습니다. 이런 은혜를 우리가 누려야 됩니다.

 

3) 초막절의 감사

왜 하나님께서 초막절을 지키라고 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1주일 동안 다음과 같이 초막절을 지켰습니다.

 

초막절만 되면 사람들은 들로, 산으로 가서 올리브 가지나 종려 가지 등을 잘라 와서

자기 집 옥상이나 마당,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야외에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텐트, 초막처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 들어가서 1주일 동안 가족들이 기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초막절을 지키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고 나서 40년 이상 그런 초막을 짓고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이제 그 광야 생활을 되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어렵고 무서운 광야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도와주시고, 인도하시며,

보호하셨는가를 회상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초막절이었습니다.

 

시편 107편에 보면, 그들의 광야 생활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시107:4-7)

 

그들의 광야생활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었는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방황하고, 성을 찾지 못해 애를 쓰고, 주리고, 목마르고, 근심 중에 빠져서 하루하루 살던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이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도와 주셨는지, 어떻게 때를 따라 먹여주셨는지,

어떻게 원수로부터 지켜주셨는지, 어떻게 그들의 몸에 질병이 생기지 않도록 은혜를 주셨는지

그것들을 회상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토록 하기 위해 나뭇가지로 초막을 지어놓고

그 속에서 살도록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합니까?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보십시오.

우리 가운데 광야 같은 세월을 보내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 기간은 차이가 있을지 모르지만

다 광야 같은 위기를, 광야 같은 역경을 한두 번씩은 경험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그럴 때 그 위기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넘기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지 않습니까?

 

돌이켜 보십시오. 눈 앞이 캄캄한 어려움을 당했을 때 어디를 가야 될지,

어느 쪽에 탈출구가 있는지 모르고 허우적거렸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 위기를 넘겼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과거에도 함께 하셨던 하나님, 앞으로도 광야 길을 다시 걷게 될 때

나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실 줄 믿습니다.'

하고 고백하면서 감사하는 것이 초막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하나님께 특별히 감사해야 되겠습니까?

구원 받은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감사해야 되겠습니까?

날마다 주시는 일용할 양식을 놓고 감사해야 합니다. 무엇을 감사해야 되겠습니까?

환난 당할 때, 어려울 때 도와주신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이렇게 3대 절기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감사해야 될 것인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2. 두 번째로 감사 그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라는 것입니다.

유월절을 지낼 때에는 먼저 우양을 하나님께 끌고 와서 제사를 드린 후 잡으라고 했습니다.(신16:2)

 

왜냐하면 유월절에 잡는 어린양은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그 어린양을 먹는 식구들도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 됩니다.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예수님은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그분을 통해 구원 받게 된 우리는 자동적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 됩니다.

 

그러므로 나를 구원해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것이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말입니다. 레위기 23장 16절 이하에 나타나는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맥추절을 지킬 때 떡을 흔들어 요제를 하나님께 제사로 드리고,

짐승을 불태워 화제를 하나님께 제사로 드렸습니다. 먹고 마실 일용할 양식을 주신 데에

감사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초막절에도 레23:36절 이하에 보면 짐승을 불태워 화제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전부 예배요, 제사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가 왜 이 자리에 나왔습니까?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 위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찬양과 경배를 드리기 위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배를 드리는 우리의 마음에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부족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 은혜를 모릅니다. 환난에서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신 은혜에 대해 감사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감사가 빠져있는 마음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왔다면

우리는 제대로 예배를 드릴 수 없습니다.

왜냐면 감사가 없는 예배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감사 그 자체가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예배가 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감사하다'는 뜻을 지닌 '야다(손을 내민다)'라는 말은 '찬양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신약성경을 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에는 반드시 감사가 들어가야 합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엡5:19-20)

 

이 말씀에도 예배에 하나님 앞에 드리는 감사가 꼭 들어가야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신비로운 제물이 됩니다.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께 감사하면

그 감사가 바로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감사가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감사가 있으면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가 없으면 다른 것이 다 있다 해도 그것은 불안전한 예배일 수 밖에 없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얼마나 감사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이 은혜로 촉촉히 젖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감사가 향기로운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셋째는, 감사는 모든 사람이 다 해야 됨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1년에 3차례씩 명절을 지키라고 당부하시면서 재미있는 명령 한 가지를 주셨습니다.

곧 명절을 지킬 때마다 남자들은 하나님 앞에 와서 얼굴을 보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초막절을 지킬 때에도 남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림으로써

하나님 앞에 얼굴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왜 남자들만 이렇게 보이라고 했을까요?

남자들만 감사하라는 말일까요? 언뜻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들은 가정을 대표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와 얼굴을 보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남자들처럼 하나님 앞에 직접 나오진 않아도

모든 여성들과 어린 아이들은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유월절 양을 잡아 놓고 모든 식구들이 둘러 앉아서 그 양을 먹어야 했습니다.

한 사람도 빠지면 안 됐습니다. 그리고 곡식을 추수한 다음에 모든 가족이 모여서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신데 대해 감사했습니다.

 

초막을 지어놓고 모든 식구가 그 속에 들어가 1주일 동안 기거하면서 광야 생활을 회상하며

하나님 앞에 감사했습니다. 따라서 한 사람도 빠져서는 안 되었습니다.

감사는 모든 사람이 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감사거리가 없어 감사하지 않아도 될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고 하셨습니다.

값없이 얻은 구원에 감사하지 못할 자가 어디 있습니까?

일용할 양식을 높고 감사하지 않아도 될 사람이 누굽니까?

 

광야의 어려운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모든 사람이 '범사에 감사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므로 여기에서 제외될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느 성도의 고백처럼 "나는 장미를 들고는 수백 번 감사를 했지만

가시를 가지고 감사한 일은 한번도 없었습니다."라는 말은 솔직한 고백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감사는 온전한 감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장미를 놓고 감사해야 되지만, 가시를 놓고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가시의 가치를 가르쳐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서 가시를 가지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눈물이 무지개로 바뀌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길 원한다면

장미와 가시를 동시에 놓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평생 장미만 들고 인생을 화려하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도 예외 없이 가시 때문에 찔리고 고통하는 일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도 예외 없이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감사할 것이 없습니까? 이 시간 감사하지 못하겠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감사가 뭔지를 모르기 때문에 못하는 것일 뿐 다 감사할 제목이 있습니다.

 

▲네 번째로, 예물을 들고 나와 감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명령하시기를, 3번 절기를 지키면서

감사를 드릴 때 반드시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경 다른 곳에서도 똑같은 말씀이 몇 번이나 나옵니다. 공수로 여호와께 나와 '감사합니다.‘

라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입으로 감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는 입의 감사와 동시에 마음의 감사입니다.

마음에 진정한 감사가 있어서 입으로 감사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얼마나 잘 아시겠습니까?

'멀리서도 우리의 생각을 통촉하시고...'

그분은 우리 모든 생각의 한 토막 한 토막까지도 다 알고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너무나 세세하게 잘 아십니다. 우리의 약점까지도 다 아십니다.

즉 우리 마음이 재물과 쉽게 밀착된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 마음은 돈의 노예가 됩니다.

쌓으면 쌓을수록 나도 모르게 마음이 돈에게 왕창 사로잡힙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부자가 구원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부자가 구원을 얻는 사례가 거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돈이 많다 보니 마음이 자연히

그 쪽으로 가버리게 되고 그 결과 하나님을 섬길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 아닙니까?

마음으로는 있는 돈을 다 주고 싶어도 돈이 없으니까 주지를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자유하고, 자유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고 주님을 따르게 됩니다.

우리 인간에게 약점이 있습니다. 돈은 가지면 가질수록 내 마음이 자꾸 그곳에 간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도 부인하지 못합니다.

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갑니다.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느니라.'

 

그래서 마음에서 나오는 감사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기 위해 빈 손들고 나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 보물을 네 손에 들고 나와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예물을 손에 들고 나오면 그 예물 때문에 마음까지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정 하나님 앞에 어떠한 감사를 드렸습니까?

입으로는 많은 감사를 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귀한 예물을 손에 들고

그 예물에 내 마음을 담아 드리는 감사를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우리 교인들은 잘 하고 계십니다. 제가 감사헌금을 가끔 확인해 보는데,

감사를 잘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잘 안 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잘 담으시길 바랍니다.

 

△사회복지법인 '애양원'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100년 전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가 나환자들을 수용하기 위해서 여수 지역에 만든 나환자촌입니다.

애양원이 유명해진 것은 지금부터 약 50년 전 위대한 성자 손양원 목사님이 배출되면서부터입니다.

 

그분이 그곳에서 사역하다가 공산당에게 순교를 당하고, 그 두 아들도 순교를 당해 유명해진 곳입니다.

그 애양원에는 손발과 얼굴이 뒤틀린, 한 마디로 소망 없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특별한 몇 가지가 있습니다. 주일예배, 새벽기도회, 수요예배, 금요예배에

모이는 숫자가 똑 같은 한국의 유일한 교회입니다. 한 사람도 결석을 안 한다는 말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배에 다 나오는 교회. 따라서 그들의 가슴은 뜨겁습니다.

 

그들은 양계, 양돈을 하며 살아 갑니다. 그런데 추수감사절이 되면 거기에서 번 돈으로 헌금을 하는데

수천 만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십일조는 말할 나위도 없고,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감사하면서 헌금을 많이 드리는지 모릅니다.

 

한 예로 손양원 목사님 기념관을 세울 때 예산이 10억이 조금 넘었는데,

그 가운데 상당한 부분을 그들의 손에서 나온 헌금으로 충당했습니다.

그리고 여수 지방에 400여 교회가 있는데, 그 중 40개 교회가 이 나환자촌에 있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감사해서 드린 예물로 개척한 교회라고 합니다.

 

문둥병자에게 무슨 감사입니까? 문둥병자 입에서 무슨 감사가 나올 수 있습니까?

그들의 손에 무슨 감사하다는 예물이 들려질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은혜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영적으로 누리고 보니

비록 육신은 망가졌지만 감사할 것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입으로 감사하는 것으로는 도무지 모자라

그 손가락이 없는 손으로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들고 나와 하나님 앞에 예물로 드리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감사를 받으십니다. 이 감사야말로 진정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감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오늘 하나님 앞에 나올 때 예물을 들고 나왔을 것입니다.

한번 조용히 여러분의 마음에 이 예물을 두고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오늘날까지 받은 구원의 은혜, 일용할 양식을 주신 은혜,

가정에 공급해주신 갖가지 은혜, 그리고 어려울 때 눈물 흘려 기도하면 어김없이 응답해 주신 은혜 등등.

이런 은혜를 다 생각해보면 과거에도 감사하면서 예물을 드렸지만,

 

추수감사절을 맞아서 특별히 이런 은혜를 감사하며 드린다고 할 때

그 예물이 너무 적거나 초라하거나 형식적이라면 그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충분히 담긴 예물을 준비해서 드려야

하나님께서 그 예물을 예배로 받으시고 축복해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도우심과 축복 없이는 한 순간도 위기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것들은 하루 아침에 나를 떠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가정이 평안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안심하고 앞날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은혜를 받고 사는데 빈 손들고 나오거나 형식적으로 드리면서

'감사합니다.'라고 할 수 있습니까? 마음이 담긴 예물을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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