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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 직분의 위임식 출29:1~9

by 【고동엽】 2022. 2. 24.

제사장 직분의 위임식         출29:1~9       

 

서론

 

마르틴 루터는 1517년에 로마 가톨릭의 교리적, 윤리적 부패에 대항하여

95개 조항을 써서 비텐베르크 성 안에 있는 성곽교회 정문에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 조항들에 대해 토론을 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조항의 내용들이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덕분으로)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개신교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개 수도승에 불과했던 루터를 가만히 내버려둘 가톨릭이 아니었습니다.

교황 레오 10세와 신성로마제국의 막강한 황제 찰스 5세가 그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1521년에 보름스 국회가 열렸고, 루터를 소환해서

“이 책(루터의 저서들)에 기록된 사상들을 철회하겠느냐?”고 물었고,

그 질문에 루터가 “나는 하나님의 말씀과 내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한 철회할 수 없다!”,

“하나님이여, 내가 여기 서 있으니 나를 도우소서!”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것입니다.

 

그러자 찰스 5세는 소위 보름스 칙령을 발표하였는데, 그 내용은

“누구든지 마르틴 루터를 죽이는 자는 살인죄에 적용을 받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루터의 목숨이 파리 목숨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루터를 보호해 주던 섹소니(Saxony) 지방의 프레드릭 선제후가

그를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루터는 그곳에서 1년 동안 피신해 있으면서,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렇게 극심한 핍박이 있는 중에도 마르틴 루터는 1520년에 종교개혁의 근간이 되는

세 권의 책을 저술하였는데, 『교회의 바벨론 유수』,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하여』,

『독일 귀족에게 고함』입니다.

 

특별히 『교회의 바벨론 유수』는 로마 가톨릭의 일곱 가지 성례를 전면 부정하며,

주께서 명하신 성례는 ‘침례’와 ‘주의 만찬’ 두 가지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루터의 이 책으로 말미암아 로마 가톨릭과 결별을 선언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관하여』라는 책을 통해

“복음이 그리스도인에게 자유를 준다”는 진리를 피력했고,

마지막으로 『독일 귀족에게 고함』을 통해 “모든 성도는 하나님 앞에 제사장이다”라는

소위 ‘전 신자 제사장 직분’ 개념을 주장하게 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신약시대에는 사제 계급과 평신도 계급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요지였습니다. 루터가 이처럼 ‘전신자 제사장 직분’을 주장하게 된 것은

신약성경에 분명한 근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벧전2:9절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계5:10절에도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제사장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 기도할 수 있고,

하나님께 직접 영광도 돌릴 수 있는 제사장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 신자 제사장 직분’의 개념입니다. 어떤 분은 ‘만인제사장직’이라고도 말을 하는데,

이것은 ‘만인’이라는 단어가 불신자를 포함한다고 오해할 수 있으니, 정확한 용어가 아닙니다.

 

출19:6절에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제사장 나라는 제사장이 있는 나라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모든 백성이 제사장 되는 나라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는 이것이 실현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오직 아론의 후손만 제사장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사장이 됨으로써

출19:6절의 말씀이 영적으로 온전히 실현된 것입니다.

 

▲출29장은 ‘제사장 위임식’에 관한 말씀입니다.

‘위임’이라는 말은 영어로 ‘Delegation’이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뜻은 “나의 권한을 네게 나누어준다”입니다.

 

그러나 여기 제사장들의 위임식은 ‘Delegation’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권한의 위임이 아니라 헌신과 봉헌을 뜻하는 ‘Consecration’에 가깝습니다.

 

이 단어는 출28:41절에 처음 등장했고, 29장에 두 번째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제사장 위임식은 모세가 가지고 있는 권한을 나누어 준다는 개념이 아니고

하나님이 특별히 택하시고 구별하셔서 헌신되도록 세우신다는 의미입니다.

 

‘Consecration’은 원래 왕이 왕관에 보석을 장식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마치 왕이 자기 왕관에 보석을 장식하는 의식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가랴 9:16절에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면류관의 보석이라고 했습니다. 금으로 된 면류관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멋집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그 면류관에 박힌 보석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29장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위임식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론은 대제사장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아론의 아들들은 제사장으로서 신약시대의 모든 성도들을 예표합니다.

 

그러니까 아론은 대제사장으로 예수 그리스도,

아론의 아들들은 제사장으로 모든 성도들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을 중보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도 알고 인간도 알아야 합니다.

신성도 가져야 하고 인성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재할 수 있는 분은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이십니다.

 

딤전2:5절에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아론은 어떻게 대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까?

아론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참 중보자는 아닙니다.

그는 참 중보자를 예표하는 인물인 것입니다.

 

오늘은 제사장의 위임식에 대해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면류관의 보석으로 삼으신,

왕 같은 제사장된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은혜가 무엇인지 일곱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제사장은 하나님이 특별히 택하신 사람들입니다(Elected People).

(*제사장은 우리 각자 성도, 나를 의미합니다)


출19:6절에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제사장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만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한 자는 거룩한 제사장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아론과 그의 아들들만 선택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이고,

하나님이 하신 주권적인 사역을 인간이 비판하거나 판단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누가 참 성도가 될 수 있을까요마찬가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만 참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한 사람은 복음을 들어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그 내용이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우스꽝스러운 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하여, 믿음을 선물로 받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람만이 참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롬8장 29~30절에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교리’는 성경의 위대한 진리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택하시고, 어떤 사람은 버리실까요? 그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일이고, 인간이 비판해 봤자 아무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저 인간은 그 앞에 굴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6:44절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셔야만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이 있어야만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롬11:5절에도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만 참된 믿음을 갖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일곱 번째 왕이었던 아합이 나라를 통치할 때,

그는 이세벨이라는 악한 아내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 신을 숭배하도록 하였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북 이스라엘의 온 백성들이 바알 신을 숭배하고 배교한 것 같아 보였지만,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이 택하셔서 남은 자가 칠천이나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남은 칠천명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참된 신앙을 지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는 신학과 신앙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지 않는 인본주의적인 신학입니다.

 

◑2. 제사장은 물두멍의 물로 깨끗이 씻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Washed People).

 

출29:4절에 “너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물두멍은 번제단과 성막 사이에 있는 기구인데, 큰 세숫대야처럼 생겼습니다.

그 곳에 있는 물로 아론과 그 아들들을 씻기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그들을 목욕시키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모든 성도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말씀으로 씻김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목욕을 한 존재들입니다. 영적으로 목욕한 존재입니다.

 

슥13:1절에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신약시대가 되면 죄를 씻는 샘이 열리게 되리라는 내용의 예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그를 믿는 사람들의 죄를 모두 씻어주는 샘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구속의 씻음’(Washing of Redemption)입니다.

 

또 디도서 3장 5절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중생의 씻음’(Washing of Regeneration)입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성도들의 더러움을 씻어

새 사람이 되게 하시는 사역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술을 마시고, 바람도 피고, 죄를 짓고, 우상숭배도 했습니다.

이렇듯 우리 속에는 타락한 본성이 있어서 귀신들이 역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귀신이 떠나가고 우리 속에 성령이 들어오셔서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이것이 중생의 씻음입니다.

 

엡5:26절에도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십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말씀의 깨끗케 하시는 능력으로 정결해진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은 신발을 신지 않고 일하기 때문에 날마다 발을 씻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요 13:10).

이미 목욕한 사람은 발만 씻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목욕한 자들이기 때문에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범죄하면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쓰임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지은 죄는 목욕으로 씻는 것이고,

믿은 후에 짓는 죄는 발을 씻어 죄 용서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소에 들어가서 일을 할 수 있는 정결한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3. 제사장은 모세로부터 합당한 의복을 입힌 사람들입니다(Clothed People).

 

제사장은 모세가 입혀준 합당한 의복만 입고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일반 제사장이 고의를 입고, 겉에 흰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띠를 띠어 옷을 단정하게 한 후, 머리에 관을 쓰고 일을 했다는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일반 제사장의 복장 위에 청색 겉옷을 입고

그 위에 에봇과 판결 흉패를 달았습니다. 머리에는 터번과 같은 관을 쓰고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쓰인 띠를 두르고 일을 한 것입니다.

 

이 모든 의복은 모세가 다 입혀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사장이 바른 옷을 착용하고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한 제사장들이 스스로 만든 옷은 아무것도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모두 하나님이 디자인하신 의복을 입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모든 의복을 다 준비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의의 옷을 모두 예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의의 옷을 입지 못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옷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벽하게

의로운 삶을 사심으로 그를 믿는 자들에게 전가하실 의의 옷을 준비해 주시는 것입니다.

 

갈3:27절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또 이사야 61:10절에도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옷을 우리에게 입혀주시는 분이십니다.

천국은 착한 사람이 가는 곳이 아닙니다. 의의 옷을 입은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착해서 천국을 가려면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착해야 하는 것입니까?

터럭만큼의 죄도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믿고 그 분이 준비해 주신 의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마22:11~12절에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자기 아들 혼인잔치에 사람들을 초청했는데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길에 나가 만나는 대로 초청을 했습니다. 그 잔치에는 반드시 예복을 입어야 했는데,

한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임금이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너는 예복을 입지 아니하였느냐?”

 

그랬더니 그는 입이 있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임금이 그 사람의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운 곳, 곧 지옥에 떨어지게 한 것입니다.

의의 옷을 입지 않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준비해 주신 의의 옷을 입었다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4. 제사장은 머리에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Anointed People).

 

7절에 “관유를 가져다가 그 머리에 부어 바르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관유를 만드는 방법은 출30:22~33절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몰약, 육계, 창포, 계피 및 감람기름을 섞어서 제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에 사용되는 모든 기구에 관유를 바르고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도 바르고 그들의 옷에도 발라서 그들을 거룩하게 하여

제사장 직분을 행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시편 133:2절에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모든 성도들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은 것은 아닐 수 있지만,

최소한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요일2:20절에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성령의 내주를 성령의 기름부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기름부음이 이미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기름부음을 가지고

자신의 영적인 우월함을 주장하거나 자신이 특별한 존재임을 자처한다면 그는 이단입니다.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 사람 마음속에 교만함이 가득해서

“나는 너희와 다르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주 못된 사상입니다.

 

제사장 중에 기름부음을 받지 못한 아론의 아들이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 받았습니다. 그리고 기름부음은 어떤 신체적인 특별한 경험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찬양인도자가 황홀경에 빠져서 몸에 진동이 올 수 있고, 방언이 터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체적인 경험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단언컨대 성령의 기름부음이 아닙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모든 성도들에게 이미 임한 것입니다.

 

◑5. 제사장은 속죄제를 통해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이다(Forgiven People).

 

제사장이 먼저 죄 사함을 받지 않으면, 제사장 일을 할 수 없습니다.

29:10~14절에 보면 아론과 그 아들들은 수송아지를 성막으로 끌고 와서 그 머리에 안수하고,

모세가 그 송아지를 잡아 그 피로 단 뿔에 바르고 나머지는 단 밑에 모두 쏟았습니다.

그리고 기름과 내장은 번제단 위에 불사르고 나머지 고기와 가죽과 똥은

진 밖에 가지고 나가 불사르는 것이 속죄제입니다.

 

29:10~14절의 속죄제는 특히 대제사장을 위한 것인데

이처럼 성직의 위임식에서 죄의 회개가 선행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즉 이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중보자 역할을 담당할 대제사장 (아론과 그 후손)

역시 죄인임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한 아론의 반차를 쫓는 대제사장이 드리는 제사는 불완전하고 일시적임을 지적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완전하고도 영원한 제사를 가르친 것입니다(히9:11~15, 10:1-14)

 

◑6. 제사장은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된 사람들이다(Consecrated People).

 

속죄제가 끝나면 수양 두 마리를 가지고 번제를 드리는데,

첫 번째 수양은 모두 불태워 드립니다.

이것은 제사장이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되어야 함을 가리킵니다.

 

제사장이 수양 한 마리를 취하여 머리에 안수하고 그 피는 단 주위에 뿌리고 각을 뜬 후

모두 불태워 하나님께 드립니다.

제사장은 그 삶 전체가 하나님께 헌신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목사만 헌신된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하나님께 헌신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인제사장

제사장은 한 번 위임식을 받으면 은퇴할 때까지 계속해서 제사장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헌신되지 않은 사람 천 명보다 헌신된 사람 한 명이 훨씬 낫습니다.

전쟁이 나면 오합지졸은 모두 도망가는 것입니다. 적과 맞서 싸울 용사 한 사람이 훨씬 귀한 것입니다.

헌신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은 헌신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7. 제사장은 ‘위임식 수양’을 드려 성화된 사람들이다(Sanctified People).

 

제사장이 번제로 드리는 두 번째 수양을 ‘위임식 수양’이라고 하는데,

이 양을 잡아서 그 피로 자기 몸 곳곳에 바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화를 의미합니다.

 

19~25절에 보면 ‘위임식 수양’을 번제로 드리는 것은 여느 번제와 동일한 방식이지만,

두 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모세가 수양의 피를 취하여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오른 귓부리와 오른손 엄지,

오른발 엄지에 발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를 관유와 섞어 옷에 바릅니다.

이것은 제사장들이 귀로 듣는 일이나 손으로 행하는 일,

그리고 발이 향하는 곳의 모든 영역에서 성결해야 함을 가리킵니다.

즉, 제사장은 그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께 열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가 뉴에이지 음악이나 듣고, 포르노를 보고, 술집이나 다닌다면

어떻게 성결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것들은 제사장에게 합당하지 않는 일들입니다.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모든 지체를 의의 병기로 드리라고 명령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6:13절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둘째는 제사장이 수양의 가슴과 넓적다리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광주리에 담긴 무교병, 누룩 없는 떡, 과자, 무교전병을 하나씩만 하나님께

불태워드리고 모두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사장의 몫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먹지 못하고 다음 날까지 저장할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제사장의 일반적인 삶을 모두 책임져 주실 것을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결론

 

본문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란 명칭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은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도들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합되어 계신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은 제사장의 의복을 입고 칠일동안 성막에 계속 머무르며

속죄제와 번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제사장들에게 얼마나 철저한 헌신을 요구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엄청난 특권을 주셨습니다. 택하셨고, 중생의 씻음을 주셨고,

의의 옷을 입혀 주셨고, 성령의 기름부음을 주셨고, 죄 사함을 주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특권만 생각하지 말고 의무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조석으로 상번제를 드리고 모든 지체를 의의 병기로 드려 거룩하고

성화된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의무의 말씀인 것입니다.

 

특권을 받은 사람은 의무도 수행하라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탁월한 제사장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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