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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깨어 있어라! (마 25:1-13)

by 【고동엽】 2022. 2. 8.

그런즉 깨어 있어라! (마 25:1-13)

 

마24장과 25장은 이름하여 '종말 장'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은 열 처녀의 비유로 소개됩니다. 1절에 보면 본문은 '그때에'로 시작됩니다. 마태복음에서만 이 단어는 약90회나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어떤 구체적인 시간이나 시점을 나타내기보다는 대략적 시간을 가리킬 때 사용한 말입니다.
그때가 어떤 때입니까? 즉 '인자가 오는 때, 종말론적 심판의 때'를 의미합니다. 기독교는 5중 복음을 믿습니다. 주님의 '성육신, 십자가 죽으심, 부활, 승천, 재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승천까지는 이루어졌고, 이제 남은 것은 재림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종말의 때입니다. 오늘 본문은 쉽게 말씀드리자면 예수님이 심판주로 오실 때 어떤 성도가 천국에 올라갈 것인가를 쉽게 비유해서 열 처녀 중에 기름을 준비한 처녀가 신랑을 맞이할 수 있고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다섯 처녀는 낙오자로 남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혼식 이야기지만 종말을 준비하라는 메시지입니다.
▶유대인들의 혼례식과 장례풍속이 있습니다. 이런 문화를 알고 말씀을 들으면 더 큰 은혜가 됩니다. 그 당시 팔레스틴의 결혼식은 하루 이틀이 아니라 일주일씩 그 축제가 계속됩니다. 그리고 결혼식은 대낮이 아니라 보통 저녁이나 한밤중에 거행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 땅은 낮이 너무 더워서 그랬고 또한 히브리 개념으로는 '저녁이 하루의 시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신랑은 자기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서 오랜 시간을 즐기다가 한밤중쯤 되어 신부의 집으로 행진을 합니다. 한편 신부는 친구들과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신랑을 기다리게 됩니다. 마침내 신랑이 도착하게 되면 신부는 자기의 친구들인 들러리들과 함께 나가 신랑을 영접하여 등불을 켜고 이제 신랑의 집으로 떠나는 연등행렬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또 이스라엘에는 사람이 죽으면 이런 장례 풍습이 있습니다. 하나는 그 시신 뒤에 상제가 따라가는데 여자를 앞세웁니다. 여러분, 왜 여자를 앞세우는지 아세요? 하와가 뱀에게 지지 않았다면 죽음이 없었을 텐데 여자 때문에 죽음이 왔다고 해서 책임을 지라고 여자를 앞세운다고 합니다. 또 두 번째는 울음꾼을 삽니다. 우리는 3일장, 5일장해서 시체가 부패돼도 실컷 울고, 상여 나갈 때도 붙잡고 울고, 무덤에 가서도 우는데 유대 나라 풍습은 절대 생명이 떠나면 밤에 시신을 집에 두지 않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시신을 묻어야 됩니다. 만약에 해가 7시에 지는데 사람 이 6시에 임종을 했다면 그 울음을 울 시간이 한 시간밖에 안 남잖아요? 그래서 한 시간 동안 다 못다 우니까 돈을 주고 울음꾼을 산다는 것입니다. 웃기지요?
그리고 반드시 장례식을 마치고 집에 와서는 달걀을 삶아서 톡톡 깨어서 까먹는다고 합니다. 그 속에 인생들에게 주는 강한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언젠가는 이렇게 톡 깨어지는 인생이라는 사실을 상고하면서 '나도 언젠가는 깨어질 인생이니까 내 영혼을 귀중히 여기자'는 어떤 신앙의 결심과 결단을 하면서 까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런 문화 속에서 이런 영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본문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신랑이 오므로 준비된 자들은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여기서 문이 닫힌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이 닫히기 전에 졸음이 오기 전에, 인생의 황혼기가 되기 전에, 건강하고 눈이 밝으며 총명이 흐려지지 않았을 때에 준비할 것을 준비하고 일할 것을 일하라는 말씀입니다.
'세르만테스'는 '태양이 비취고 있는 동안에 건초를 말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알고 살라는 말입니다. 헬라어 시간에는 크로노스(historical)가 있고 하나님의 때를 말하는 카이로스(historic)가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때'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 카이로스의 시간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즉 '때를 알고 살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은혜 받을 때 은혜 받아야 합니다. 고후6:2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회개의 때가 있습니다. 땅을 쳐도 회개할 수 없을 때가옵니다. 당신의 종말이 문득 다가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 ▶봉사의 때가 있습니다. 포도원에 들여보낼 때가 있고, 일을 맡기실 때가 있습니다. 기회 가 지나고 나면,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축복의 때, 복 받을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 복이 올지 모르니 늘 준비된 심령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할/
▶옛날 어느 마을 부자 집에 미련한 머슴 한 명이 있었습니다. 주인은 그에게 지팡이를 하나를 주면서 '자네보다 미련한 사람을 만나거든 주라'고 놀리면서 머슴에게 주었습니다. 얼마 후 그 주인은 중병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머슴이 그의 방에 들어가자 주인은 '이제 나는 먼 길을 떠나게 되었네!'하고 말했습니다. '어디로 가시며, 갈 준비는 다 되었습니까?'라고 머슴이 물었습니다.
주인은 기가 막혀 남의 죽음 앞에서까지 미련을 떤다고 하면서 '죽음의 길에 무슨 준비가 필요하며, 어디로 가는지도 나도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머슴은 '주인님! 하루 여행을 떠나도 목적지를 정하고 여행준비를 하는데 그런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하니 당신이 제일 미련하십니다.'고 말하면서 전에 주인에게서 받았던 지팡이를 다시 돌려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준비는 '예수 믿고 천당'가는 준비입니다. /아멘!/
여러분은 준비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사람은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준비를 해야 합니다. 준비 없이 시작하는 일은 목적을 달성하기가 힘이 듭니다. 준비하는 것만큼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했느냐에 따라 그 일을 그만큼 성취하게 됩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말이 있습니다. 군대에서 많이 즐겨 사용하는 말입니다. 비단 군대 만이겠습니까? 만사가 그러합니다. 창업을 하기 위해서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도 준비해야 합니다. 결혼하는 사람도 준비해야 합니다. 어린 아기를 출산 할 사람도 준비해야 합니다. 새해를 위하여 예산을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를 하되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노후(老後)를 준비해야 합니다. 은퇴를 준비하여야 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죽음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언제 부르실 것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여러분, 매를 맞아도 준비하고 있다가 맞는 것과 준비 없이 맞는 것은 다릅니다.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가 맞으면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준비 없이 맞으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통일을 위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도 공생애 3년 간의 사역을 위해서 30년을 준비하셨습니다.
오늘은 2008년도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그 마지막 날, 세계 종말을 바라보며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신앙의 위대한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제목 소개!▶

 

서론부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만은 옛날 유대인들의 결혼식은 하루뿐만 아니라 일주일씩 그 잔치가 계속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혼식이 대낮이 아니라 보통 저녁이나 한밤중에 거행한다고 합니다. 신랑은 자기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서 오랜 시간을 즐기다가 한 밤중쯤 되어 신부의 집으로 행진을 하고 신부는 신부의 친구들과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신랑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마침내 신랑이 도착하게 되면 신부는 자기의 친구들인 들러리들과 함께 나가 신랑을 영접하여 등불을 켜고 이제 신랑집으로 떠나는 행렬이 벌어집니다. 본문에서 열 처녀란 신부가 아닌 결혼잔치에 초대된 신부의 들러리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저녁 무렵부터 등을 들고 나가 신부를 맞이하려고 오는 신랑을 기다렸다가 다른 일행을 혼인잔치에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여기서 처녀의 숫자가 10명이라는 말은 10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로 예수님 당시 유대회당을 구성할 수 있는 최소의 인원이요, 여기 종교집회에 필요한 정족수입니다. 그 당시 유대의 풍속에서는 장례행렬이나 결혼행렬의 들러리는 반드시 10명의 인원으로 채워졌다고 탈무드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문의 열 처녀는 모든 시대에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며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을 가리킵니다. 본문의 신랑은 예수님이요, 우리는 그의 신부 될 자입니다. 등을 들고 있다는 것은 전도를 받아 교회에 나와서 교인이 되었음을 의미함이요, 등불은 빛으로서 성도의 착하고 의로운 행실을 가리킵니다.
마5:14-16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할/
여기서 빛은 믿는 자의 행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행실이 바르지 못하면 하나님이 욕을 먹습니다. 행실이 바르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습니다. 바울은 엡5:8-9절에서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착함은 악의 반대되는 선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선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게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선을 설명하실 때,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이웃을 돌봐졌던 사람입니다. 의로움은 불의를 행치 아니하고 정직하고 의롭게 사는 것을 말하며 진실함은 거짓되지 않고 외식하지 않는 자를 의미합니다.
한 마디로 예수 믿는 자들은 빛 된 행실을 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처럼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이 일을 하면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이것을 먹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이곳에 가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여러분 빛 된 행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활인줄 믿습니다. /아멘!/
2절에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슬기 있는 자와 미련한 자가 5명씩 양분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숫자에 대한 의미보다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 가운데 슬기로운 자와 미련한 자가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등은 가지고 나갔으나 기름을 가지지 아니했고, 슬기 있는 처녀들은 등과 여분의 기름을 그릇에 담아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신랑이 빨리 오지 않습니다. 비유를 살펴보면, 등을 밝힌 채 꽤 많은 시간을 족히 기다린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신랑 신부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의 꽃을 피웠으나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처녀들은 앉아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열 처녀가 다 졸며 자는데, 밤중에 소리가 나기를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고 소리를 칩니다.

그 때 정신을 차리고 저마다 등을 준비하는데, 미련한 처녀들이 슬기 있는 처녀들에게 부탁했습니다.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고 말하자, 슬기 있는 처녀들은 대답하기를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도착했고, 예비하였던 처녀들은 신랑과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이 닫혔습니다.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라고 애원했지만, 신랑은 대답하기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비극입니다. 이 사실이 가슴에 와 닿아야 합니다. /믿/
여기 나오는 열 처녀는 불신자들이 아니라 교회에 속해 있는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이 신부집으로 오는 것은 주님의 재림을, 혼인잔치는 최종적인 구원'을 의미합니다.
열 처녀의 비유는 우리에게 교회 안에 두 종류의 신자가 있음을 말해 줍니다. 그 하나는 진실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형식적인 신앙생활로 만족하는 신자들입니다.
여기 '슬기롭다'의 원어는 '지혜롭고 준비성과 분별력이 있는 자'를 가리킵니다. 여러분 신앙은 뭐니뭐니해도 준비하는 신앙이 귀합니다. 늘 말합니다만 준비하는 신앙 인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위탁합니다. /아멘!/
여기 '미련하다'의 원어적인 의미는 '우둔한, 얼빠진 자'라는 의미로 '깨어있지 못한 자'를 의미합니다. 우리 모두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 안에 들어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할/

 

1. 슬기로운 자는 어떤 자인가?

 

①슬기로운 자는 기름을 준비한 자들입니다.
성령으로 심령의 불을 밝히는 자입니다. 성령 받았다는 말은 성별 되었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죄와 악으로부터 분리되었으며 세상의 흑암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사람들을 가리켜 성령 받은 사람, 기름을 준비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충만한 사람은 인간 역사의 변화의 주도권을 쥔 자입니다. 자기를 이기는 자이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상하고, 상심하고, 약해지고, 억압받고, 열등의식을 갖고 피해의식 속에 무수한 좌절과 절망과 고독과 실패와 병마 속에 허덕이는 모습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높은 사람은 높은 사람대로 근심하고, 낮은 사람은 낮은 사람대로 고민합니다. 그러나 기름을 준비한 사람들은 이 시대가 잃어버린 진리를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할/
많은 사람들은 재물이 세상을 구원하는 줄 믿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빵이 세상을 구원하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느니라.' /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자유 함을 얻습니다. 여러분 행여나 지금도 두렵고 떨립니까?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강하고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느니라.' 세상을 이긴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이 이겨 놓은 길, 우리가 믿음으로만 달려가면 역사는 일어납니다. /믿/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안정, 평화, 성취, 번영'을 원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얻었을 때 기뻐하고 얻지 못할 때 낙심합니다. 한 평생 거칠고 험한 세상을 살면서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향하여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여러분 우리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평화가 필요합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도 평화가 있어야 하고 역사적으로 평화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평화를 주노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내가 준다'는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내가 다스리고 내가 해결하고 내가 책임지고 내가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다스리는 것에 평화가 있습니다. /할/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고, 나를 그분께 맡긴다는 것이고, 내 삶의 중심을 예수 중심으로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란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말입니다. 슬기로운 자는 기름을 준비한 자인데 '예수님의 영으로 충만한 자, 예수님과 함께 하는 자'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면 크게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할/
3절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또 말합니다만 기름은 신앙생활의 원초적인 힘이 되는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생명력 넘치는 내면적 생활과 성령 충만, 믿음 충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기름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는 성령의 체험조차 얻지 못한 외형적인 성도를 가리킵니다. 즉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미련한 다섯 처녀처럼 신랑 예수님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본문에서 주는 교훈입니다. 이 사건은 불행 중에 가장 큰 불행이요, 비극 중에 가장 큰 비극입니다.

 

②슬기로운 자는 깨어 있는 자이다.
오늘 제목도 '그런즉 깨어 있으라'입니다. 깨어 있는 자란 한 마디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 즉 기도하는 자입니다. 믿음은 능력이요, 이 능력은 기도를 동반하지 않고는 얻을 수가 없습니다.
유능한 설교자 스펄전 목사는 '10년을 염려하는 것보다 차라리 10분간 기도하는 편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레날드 레보넬은 '천만 명의 군중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단 한 사람이 더 위대하다'고 했습니다. 발튼 비쳐는 '슬픔과 고통으로 엎드려 있느냐? 기도할 것 밖에 없다. 핍박당하고 욕을 먹고 미움을 받느냐? 기도할 것 밖에 없고, 죽음이 너희 집안에 찾아 왔느냐? 기도할 것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도 '기도 외에는 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기도가 그렇게 중요합니다. /아멘!/
성경은 수 없이 많은 구절들과 장에서 기도해야 하고 기도함으로 얻는 축복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의 책이며 기도의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깨어 있는 자는 늘 기도 속에 사는 자입니다.

 

①그렇다면 기도가 무엇입니까?
⑴하나님과 대화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출33:11절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독립지도자 모세는 친구와 서로 이야기하듯이 하나님과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입니다. 기도의 헬라어의 '엔툭시스'는 '대화한다. 회견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⑵속삭인다는 뜻이 있습니다. 히브리어의 '라하스'는 '속삭인다. 귓속말로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중요하지 않는 대화는 떠들어댑니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얘기는 속삭입니다. 그리고 귓속말로 합니다. 또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정답게 속삭이기 마련입니다. 기도는 내가 제일 사랑하는 주님과 속삭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할/
⑶간구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답답한 사정, 나의 억울한 형편, 또는 기쁜 사정, 내 생애의 모든 문제, 나의 삶의 모든 일들을 주님께 부탁하고 간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⑷희생의 향기입니다. 기도라는 말 중에 '아탈'이라는 히브리 단어가 나오는데 그 뜻은 '회생의 제자를 드리기 위해 살육했다'는 뜻이 있습니다. 또한 계시록에서는 기도를 '성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기도는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먼저 바친 후에 드려야 되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②또한 상징적으로 기도의 의미가 있습니다.
⑴영혼의 호흡입니다. 죽었느냐 살았느냐를 분별할 때 우리는 숨을 쉬느냐 쉬지 않느냐를 봅니다. 맥박은 숨이 끊어진 후에 서서히 중단되지만 숨은 생명이 끊어짐과 동시에 즉 영혼이 떠남과 동시에 정지됩니다.
영적인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죽었느냐 살았느냐를 분별할 때 '그가 기도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또 병든 사람은 호흡이 불규칙합니다. 그래서 산소 호흡기를 통하여 인공호흡 시킵니다. 기도를 안 하는 사람은 그 영이 병든 사람입니다.
⑵기도는 영혼의 싸움입니다. 기도는 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만이 나 자신의 정욕과 욕망을 이길 수 있으며 세상에서도 사단의 권세에서도 이길 수 있습니다.
⑶기도는 축복의 조건입니다. 축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지금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또 기도는 모든 일의 열쇠입니다. 호텔 지배인이 가지고 있는 마스터키입니다. 이 키는 아무 방이나 열수 있습니다. 여러분 길이 막혀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도 기도하면 여리고 성이 무너지듯이 길이 열립니다. /믿으시면 크게 아멘!/
③그렇다면 누가 기도할 수 있습니까?
⑴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기도할 수 있습니다.

⑵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온 사람은 누구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⑶상한 마음을 가지고 나온 사람입니다.

⑷용서와 회개의 마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⑸믿음으로 주 앞에 나온 사람 누구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④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까?
⑴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요14:13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⑵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살전5:16-18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⑶하나님과의 '교통이요 교제'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런고로 인간의 지식이나 기술과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영적 기도로써 교통할 수가 있고 교제할 수가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즐겁게 해 드리기 위해서라도 더 많은 시간을 주님과 함께 가져야 합니다.
⑷영적 성장을 위하여 더욱 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한 만큼 신앙이 성숙됩니다. 행여나 여러분 영적 침체 속에 있습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를 원하십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의 능력이 필요합니까?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실 때 기도해야 합니다.
⑤그런데 기도 속에 포함되어야 할 기본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⑴찬양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⑵죄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시66:18절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사59:2절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여러분 죄의 고백으로만이 비로소 우리의 마음을 찬양과 감사, 그리고 탄원을 할 수 있게 됩니다.
⑶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방법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감상도 명상도 아닙니다. 기도는 지적 동의도 지적 묵상도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렘33: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또 빌4:6-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할/
무엇보다도 능력을 얻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고난 속에서도 기도하십시오, 우리 신앙의 사람들을 남이 같지 못한 특별한 비밀의 문이 있습니다. 그 문은 기도의 문입니다. 삶의 지혜를 위해 기도하고 유혹을 이기기 위해 기도하고, 믿음의 역사를 위해 기도하고 부모 형제자매 나라와 민족, 주의 종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특히 말세에 깨어 있지 아니하면 마귀의 종이 되고 맙니다. 베드로는 벧전5:8-9절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했습니다.
⑥기도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도 기적이 일어납니다. 요15: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또 주님은 마21:22절에서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⑦기도는 깨어 있는 자의 표적입니다. 오늘 본문 속에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깨어 있었습니다. 그 때 6절에 보면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한 밤 중에 신랑 예수가 오셨습니다. 여기서 밤중은 종말의 때가 정점에 이르렀음을 의미하며 또한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어떤 정해진 시각이나 예고도 없이 예상치 못하는 시점에 오실 것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한 때 한국교회에 세대주의자들의 외침 때문에 혼동의 시대를 맞이한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92, 10, 28일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다미선교회의 종말론 때문에 많은 무리들이 동조하여 세상을 어지럽게 했습니다.
그 당시 동아일보 특집 난에 부산의 모 중학교 선생이 이 시한부 종말론에 빠져 직장도 때려치우고 시한부 종말론에 빠졌으며, 수원의 여대생은 학교도 그만두어 버렸고, 대전에 한 가장은 전제 집을 뽑아 사글세로 옮긴 뒤 그 돈을 다미선교회에 헌금했다고 가정불화가 일어나 이혼을 했고, 학생들이 공부를 멀리 접어 두고 길거리에서 92년 20월 28일에 예수가 오신다고 외치고 다닌 때가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주가 오시는데 '공부를 해서 뭐하고 돈을 벌어서 뭐 하느냐?'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함으로 많은 곳에서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정통성이 있고 뿌리가 있는 장로교단에서 믿음생활을 하는 것이 큰복입니다. /믿/
우리가 잘 알다시피 마24:3절에 보면 감란 산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의 재림과 말세의 징조를 묻자 주님이 대답하시기를 '난리와 난리 소문이 날 것이다. 그러나 끝은 아직 아니다'고 하셨습니다. '나라와 나라가 대적하고 곳곳에서 기근과 지진이 일어나는데 이때부터 재난이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상징적인 의미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하셨고, 노아의 때와 같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도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가 다 멸망당하기까지 깨닫지 못했던 일을 상기시키시면서 세상의 타락을 말씀하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타락한 세상인 것을 분명하며 주님이 오실 날이 멀지 않은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10월 28일이라고 못을 박는 것은 성경에 없는 말씀이기에 거부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에서 우리 주님은 오실 그 날자와 시간은 오직 하나님의 권한 속에 있다고 겸손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만약 주님이 '언제 오실 것인가?'를 못 박았다면 세상은 온통 난리가 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죽음도 비밀로 하셨고 세상의 종말로 비밀로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열심히 신앙의 등불을 들고 행하며 깨어 기도하기만 하면 '신랑이로다'하고 외칠 때 들림 받게 됩니다. /믿/아멘!/
마24:40절 이하에 휴거사건을 말씀하셨는데 두 사람이 밭을 매다가 한 사람은 올라가고, 두 사람이 매를 갈다가 한 사람은 올라가고, 휴거 전까지 열심히 일하다가 올라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열심히 생업에 충성해야 합니다. 깨어 있는 자가 신랑 예수를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3. 우리는 지금이 졸며 잘 때가 아니라 깰 때입니다(롬13:11-14).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도적이 밤중에 침입할지라도 주인이 깨어있으면 절대로 집을 뚫고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영적으로 캄캄한 밤중에 도적같이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깨어 있는 성도들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이에 대하여 살전5:4절 이하에 보니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찌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할/
그런즉 우리는 항상 영적으로 깨어서 믿음을 준비하여 주 예수께서 언제 강림하시든지 당황하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4.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이루어집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①우리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마10장에서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파송하시면서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23)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14:1-3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심문하는 자리에서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26:64)고 하셨습니다.
②그리고 천사들의 증언이 있습니다. 행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비롯한 오백 여 성도들이 지켜보는 데서 승천하시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말하기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11)고 하였습니다.
③그리고 사도들의 예언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하기를 살전4:16-17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고, 약5:7-9절에서 야고보 장로님은 말씀하기를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는 그의 서신 벧후3:10절에 말씀하시기를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계1:7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재림은 분명히 있습니다. 신앙은 그 날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히9: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하였고, 고후5:10절에는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20:12-15절에는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슬기로운 성도들이 됩시다! 세월이 참 빨리 갑니다. 시90:10절에서 모세는 말하기를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이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면 가야 합니다. 그런데 그분 앞에 설 때가 문제입니다. 여러분, 주님 앞에 떳떳하게 설 자신이 있으십니까? 아모스 선지자는 말씀하기를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암4:12)고 했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는 것일까요?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믿/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신랑을 맞이할 수 있는 신부의 자격은 처녀라고 하셨습니다. 처녀의 특징은 순결성이고, 또 처녀의 특징은 예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겉모양의 아름다움보다는 속마음의 아름다움을 보십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의 순결을 중하게 보십니다. 그리고 약혼한 처녀라야 합니다. 약혼한 처녀들은 아무리 좋은데서 혼담이 와도 거절합니다. 약혼자는 약혼한 남자만을 생각하고 약혼자의 편지를 소중하게 여기며 약혼 선물을 기쁘게 소유합니다. 여기서 약혼자의 편지는 성경 말씀이요, 약혼 선물은 성령입니다. /아멘!/
한 마디로 주님을 사랑하기를 세상의 권세 부귀영화보다 더욱 사랑하고 주님의 편지인 성경을 애독하고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신랑 예수님과 약혼한 자입니다. 계14:4절에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사랑의 마음을 소유하고 어디든지 따라가야 합니다. 그분이 인도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 발로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믿/
약혼한 처녀들은 결혼날짜를 학수고대하며 신랑만을 그리워합니다. 사랑의 대상이 바꿔졌습니다. 전에는 부모와 형제와 친구와 이웃과 세상을 사랑했었는데 이제는 그 대상이 약혼자인 신랑으로 바뀌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본문 속에서 신앙의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은 분명히 이루어질 것이며, 그 때 두 종류로 나눠질 것이 또 분명합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올라가는 부류가 있고, 미련한 다섯 처녀들처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고 외면당하는 부류가 있습니다. 마24:41절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분명히 두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쉽게 표현하면 천국 가는 사람과 지옥 가는 사람으로 나눠집니다.

우리 모두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깨어 있는 자들이 되어 주님 오시는 날 기쁘게 들림 받아 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생복락의 축복을 받아 누리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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