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인생을 살자! (잠 17:1/22)
세월이 너무 빨리 갑니다. 엊그제 2008년도의 정월을 맞이한 것 같은데 어느덧 12월의 둘째 주간입니다. '괴테'는 '인생아 너는 근심 없이 기쁨으로 세상을 산 날이 얼마나 되는가? 헤아려 보라'고 묻었습니다. 여러분 지난날이 즐겁고 행복했습니까? 그런데 인생살이가 마냥 즐겁고 행복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석가는 '인생은 고해'와 같다고 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의 죽음만이 고통을 벗는 최선책'이라고 했습니다. 니체는 '인생의 태어남은 비극의 탄생'이라고 절규했으며, 케얼케고르는 '인생은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자'라고 했습니다.
철학은 인생의 삶을 비관적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빌4:4절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했고, 또 롬12:12절에서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빵을 구하듯이 즐거움도 구합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기뻐하는 종교요, 즐거움을 찾는 종교요, 생명을 얻은 종교입니다. 복음이란 기쁜 소식이란 뜻이요, 하나님의 나라는 기쁨과 사랑만이 있는 곳입니다. 롬14:17절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고, 또 롬15:13절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지나간 세월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아 있는 지금 이 한 날이 더 귀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아멘!/ ◀제목 소개!▶
세상이 온통 불경기로 인하여 사람들마다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기쁨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안에 참 행복이 있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오늘 행여나 가난하고, 외롭고, 슬프고, 고민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기뻐하고 즐거워합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믿/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향하여 사43:1절에서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하십니다.
어떤 것이 내 것이 되려면 둘 중에 한 가지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먼저 내가 그것을 만든 경우 그것은 내 것이 됩니다. 그 다음 내가 만든 것은 아니지만 내가 값을 주고 사면 그것이 내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중적인 의미에서 저와 여러분을 가리켜 '너는 내 것'이라고 주장하십니다. 먼저는 친히 나를 만드셨기 때문이요, 다음은 나를 값을 주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 철학에서 풀지 못하는 명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 해답을 아주 명확하게 해 줍니다. 창1:27절에 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가르쳐 줍니다.
종종 사춘기 학생들이 자기 어머니에게 이런 항의를 합니다. '엄마 날 왜 이렇게 낳았어? 좀 더 예쁘게 만들지' 그러면 어머니의 대답은 '얘는 내가 그렇게 낳고 싶어서 낳았겠니?' 맞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부모님의 작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셨다면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것입니다. /믿/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인 저와 여러분에게 거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불행에 울며 탄식하며 괴로워하고 저주스럽게 사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삶이 즐겁고 행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주님은 요10:10절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고, 다윗은 시84:10절에서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행복한 삶의 고백이 아닙니까?
행복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소유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사람이 있고, 하나는 존재에서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소유를 추구하고 있지만 거기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유에 행복이 있는 줄 알고 시장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정치 시장에서 권력을 소유하고 명예 시작에서 명예를 소유하고 상품시장에서 사치와 허영을 만족시키려 하지만 이런 소유는 더 더욱 갈증을 더하게 합니다.
또 사람들은 외적인 조건들이 좋아지면 행복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얼굴만 예쁘면 좀 더 행복 할 텐데, 내가 돈만 많으면 더 행복할거야? 내가 지식을 많이 쌓으면 행복해질 거야! 내가 명예를 얻으면 행복해질 텐데...' 그런데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외적 조건들을 다 갖추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그것 때문에 불행해진 사람들의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뛰어난 미모로 세계 사람들로부터 인기와 부러움과 찬사를 받던 '마릴린 몬로'는 '나는 외롭다'고 절규하며 자살했습니다. 현대 그룹의 총수도 자살을 했습니다. 공부를 많이 한 박사들이 종종 자살로 끝나는 경우를 봅니다. 가장 큰 권력을 누리던 사람이 그 권력 때문에 자기가 키운 부하에게 비참한 최후를 마치고 간 전직 대통령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에게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은 어떤 다른 인간이나 물질이나 환경이나, 사건이 절대 아닙니다. 오직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으로만이 진정한 인생의 만족과 행복이 오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같은 시대에 살았던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의 임금으로 약 15년 동안 왕위에 있던 '네로' 황제입니다. 그가 살던 왕궁은 복도의 길이만도 1마일이나 되는 호화찬란한 궁성이 있습니다.
집안에 모든 벽은 상아와 자개로 장식되었고, 천장에는 특별한 사워 장치가 붙어 있어서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향수가 이슬처럼 포근히 뿌려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네로 황제가 머리에 쓰고 있던 왕관은 10만 달러가 넘는 것이었고, 그가 사용하던 노새와 조랑말은 은으로 장식된 신발을 신겼습니다. 네로 황제는 값비싸고 좋은 옷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한번 입었던 옷을 두 번 다시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세상의 극치의 부귀영화를 다 누렸지만 네로 황제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허무와 공포가운데 스스로 생명을 끊는 자살로 일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네로 황제와 똑같은 시대, 똑같은 문화권에서 살았던 또 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울입니다.
바울도 예수를 알기 전에는 누구 못지 않은 세상의 야심과 집착으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후에 놀라운 새 사람으로 변화를 받아 일생을 기쁨과 환희 속에서 승자와 영광으로 산 사람입니다.
바울은 때로는 쇠사슬에 묶여 매도 맞고 감옥에서 고통도 당하며 생명의 위협을 수차래 겪었지만 세상의 그 무엇이나 어떤 사람도 이분의 담대하고 확고한 신앙에서 넘쳐 나오는 행복을 막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고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땅의 것만으로는 절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하늘을 바라보고 사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사람은 '위를 보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위에 계신 하나님을 위하여 변함 없이 살 때만이 참 행복과 참 만족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믿/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거짓된 행복에 너무 많이 속고 살아왔습니다. 이것을 소유하면 행복하려니 생각하고 미친 듯이 뛰어봤지만 그곳에 참 행복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귀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행복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요1:12). 롬8:1-2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할/
우리는 이래봬도 죄에서 자유 함을 얻었으며 사망의 늪에서 건짐을 받은 존재입니다. 이 사실이 기뻤기에 다윗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내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힘'이라고 했습니다. 이 기쁨은 돈으로 얻은 기쁨보다 크고, 명예나 지식이 주는 기쁨보다 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능력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가 계신 곳에는 반드시 기적과 이사와 표적이 따릅니다. 예수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그 믿음에 변화가 옵니다. 믿음이 변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믿음이 그 자체를 바꾸기 때문입니다. /할/
교회는 고치는 곳입니다. 말이 고쳐지고, 생각이 고쳐지고 얼굴표정이 고쳐지고 나의 건강이 고쳐지고 영혼의 상태도 고쳐집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예수님을 붙들고 큰 것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안에서 큰 것을 계획하십시오, 예수 안에서 큰일을 도모하세요! 렘33:2절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이십니다. 그 분 안에 기적이 있습니다. /믿/ ▶그 분 안에서 인생을 즐겁게 살자!
1.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을 즐겁게 살도록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로 하여금 행복하게 살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창1:28절 "하나님이 그들(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인간)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①'에덴'이란 말은 낙원이란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형상대로 당신의 모양을 따라 지은 사람들을 위하여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습니다. 각종 과일이 주렁주렁 달리고 보기 좋은 꽃들이 피어났습니다.
또 '에덴'은 기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면 낙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라고 하는 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②'너희는 너희의 에덴을 소중히 지키라'는 명령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여기서 에덴은 우리의 가정이요,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너희 가정에 준 기쁨을 잘 간직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누어주신 행복을 소중히 지키며 살아가라고 하는 뜻도 됩니다.
③사람은 누구입니까? 즐겁게 살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맛있는 과일을 주셨고 강과 바다와 땅과 자연을 주셨고 자연을 다스리며 일할 수 있는 일터도 주셨고 배필과 동물들도 주셨고 하나님과 교제하면 즐겁게 사는 축복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즐거움의 대상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즐겁게 살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인생은 보기에 따라서 슬픈 것이 될 수도 있고 즐거운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음식 만드는 것을 귀찮게 생각하면 귀찮지만 재미있게 생각하면 아주 재미가 있습니다. ▶노동하는 것도 귀찮게 생각하면 힘들지만 재미있게 생각하면 아주 보람 있고 재미가 있습니다. ▶여행하는 일이 얼마나 즐겁고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운동하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물론 세상을 살아가면서 힘 든 일도 있고, 괴로운 일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픈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재미있고 즐거운 일로 바꾸어지기도 합니다.
④창1-2장에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파라다이스인 에덴동산을 보세요!
⑴계절마다 맛있고 아름다운 과일을 먹으며 즐겁게 살도록 준비하셨습니다.
⑵강과 동산과 강들과 땅과 그 속에 있는 금은보석을 만들어 놓으시고 그것들을 아담과 하와에게 주시며 그것들을 '다스리고 지키면서 재미있고 즐겁게 살라'고 분부했습니다. 강산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들을 개발하고 다스리고 지키는 일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산과 바다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자연을 즐기며 사는 즐거움을 주셨습니다.
⑶돕는 배필을 만들어 주시면서 즐겁게 살도록 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서로 연애하고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멋지고 재미있고 즐겁습니까? 연애할 때는 눈이 어두워져서 상대방이 모두 왕자같이, 선녀같이, 천사같이도 보입니다.
⑷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들을 지으시고 그들과 더불어 즐겁고 살라고 분부했습니다.
⑸또한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행복하고 기쁘게 살도록 지어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는 사람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특성과 능력을 가리킵니다.
⑹하나님은 사람을 즐겁게 살도록 만드셨을 뿐 아니라 우리 사람을 즐거움의 대상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하여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사65:19). /할/
2. 진정한 즐거움은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물으면 선뜻 '예'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마치 생명 없는 조화처럼 겉모습만 화려하고 행복해 보일 뿐,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경우를 많이 봅니다.
서두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소유에서 행복의 조건을 찾습니다. 자신의 외적인 것에서 찾습니다. 소유가 행복과 정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물질을 소유하고 건강을 소유하고 명예를 소유하고 권력을 소유하고 인기를 소유하고 존경을 소유하고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쾌락, 고급 옷과 외제차를 소유하면 행복해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소유를 통하여 잠깐의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이 존재할 때만 행복감을 주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행복을 주는 요소는 아닙니다. 주어진 것들이 살아짐과 동시에 행복도 살아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행복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참 만족과 행복은 누가 주시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주십니다. /믿/
이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슬픔이 있고, 탄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죄에서 용서받은 그리스도인은 즐거운 마음을 가질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 속에 사는 자들입니다. 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이름 석 자가 하늘나라 생명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천국에서 살집을 마련해 주셨는데 '순금맨션 APT'가 준비된 줄 믿습니다. /할/
다윗은 시51:11절에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①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사람은 어디에서도 참 만족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인간에게 약속된 에덴의 즐거움은 죄로 인하여 상실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에덴의 즐거움은 예수 안에서 회복됩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거듭난 사람은 인생을 슬프게 살지 않습니다. 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후5: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아멘!/ 그리스도 안에 새로운 천국이 시작됩니다. 여러분, 즐겁게 사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믿기 때문에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사는 사람들은 이제부터 불평과 원망하는 버릇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나쁜 버릇은 불평하고 원망하는 버릇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파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을 자꾸 하다보면 지혜가 없어집니다. 창의력도 융통성도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만을 늘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넘치도록 주시는 하나님이 내 속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늘 풍요의식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 주님도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믿되 즐거운 마음으로 믿었고 사랑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를 매고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 그는 너무 기쁜 마음에서 춤을 둥실 추면서 '내가 여호와 앞에 뛰놀리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의 이 모습이 구원받은 진지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믿/
②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잠15:16절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무슨 말입니까? 재물이 좀 부족해도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이 크게 부하고 괴로움과 근심 속에서 사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재물만 있으면 최고의 복으로 압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면 행복이 있고 삶이 부유하여지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가정을 보면 가난하게 살 때는 가정에 행복이 있었는데 부자가 되면서부터 가정을 잃고 불행해진 사람도 많이 보았습니다. 부자가 된다고 해서 인생의 근본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 있으면 침대는 살 수 있으나 단잠을 살수는 없습니다. 음식은 살 수 있으나 식욕을 살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호화로운 옷은 살 수 있으나 인격을 살수는 없습니다. 집을 돈으로 짓고 가꿀 수는 있으나 가정을 돈으로 살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돈으로 마음에 평안을 못삽니다. 돈으로 천국을 사지 못하고, 돈으로 죄지은 양심을 달랠 수 없으며, 죄 사함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돈으로 존경이나 명예를 살수도 없습니다.
▶인생이 살아가는 데 소유와 행복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동물적인 행복은 배불리 먹고 입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영적인 존재인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할 때'만이 참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③'잠언'서에서 행복의 조건이 되는 성경 구절을 보면 모두다 하나님을 바로 경외하는 자들에게 오는 행복입니다.
⑴지혜가 행복을 줍니다. 그 지혜가 누구로부터 옵니까? 잠9:10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⑵건강이 행복입니다. 그 건강이 누구로부터 옵니까? 잠10:27절 "여호와를 경외하면 장수하느니라. 그러나 악인의 연세는 짧아지느니라."
⑶자녀의 출세가 행복입니다. 그 자녀들을 누가 지켜 줍니까? 잠14:26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⑷행복을 가로막는 인간의 최대의 불행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잠14:27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⑸행복을 가로막는 재앙을 피하는 비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잠19:23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느니라."
⑹행복의 큰 조건인 '재물, 영광, 생명'은 어떤 자에게 임하는가? 잠22:4절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⑺칭찬 받는 것도 행복입니다. 잠31:30절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할/
행복한 가정의 첫 번째 순서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행복한 것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은 구원의 기쁨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초조하지 않습니다. /할/
3.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실천자가 될 때 내 마음이 즐거움을 찾습니다.
사랑은 인생을 즐겁게 합니다. 사랑은 기쁨을 생산합니다. 인생의 모든 즐거움은 거의가 다 다른 사람을 섬기며 봉사하며 기쁨을 주려고 했을 때 얻어진 보상입니다. 남을 슬프게 하면 내가 슬퍼집니다. 남에게 근심을 주면 내 마음에 근심이 되돌아옵니다. 남에게 한 송이 꽃을 꺾어 주는 사람은 자기 손에 향기가 묻어온답니다. 그러나 남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은 자기 손에 먼지가 묻고 흙이 묻게 되어 있습니다. /믿/
어머니들이 가장 즐거운 시간은 품에 앉긴 어린아이를 사랑하는 순간이라고 합니다. 아들이 장성하여 성공하고 출세해도 아들에게서 얻는 즐거움은 적어진답니다. 왜? 그만큼 사랑이 식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사람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이기심은 항상 행복을 억누르며 삶의 기쁨을 빼앗아 갑니다. 그러나 희생과 봉사는 하나님의 행복의 샘을 열고 우리 마음의 기쁨의 생수를 붓습니다.
예수님은 요15:10-11절에서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할/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이든지 남을 도울 수 있다면 자꾸 도와 주시요! 남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면 자꾸 주십시오! 그러면 자기 이미지가 바꿔집니다. 남에게 믿음을 줄 수 있을 때, 남에게 힘을 줄 수 있을 때, 자꾸 주십시오, 주안에서 남에게 좋은 것을 자꾸 주십시오, 그리하면 준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얻게 됩니다.
눅6: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또 갈6:7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혼자서는 살수가 없습니다. 더불어 사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가정을 이루고 또 이웃과 이웃이 모여서 사회라는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관계 이상으로 사람과의 관계도 중요시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수직이라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수평입니다. 수직과 수평의 관계가 십자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가 불화 등을 이루면 먼저 깨어지는 것이 기쁨과 평안이고 떠나가는 것이 축복입니다.
▶여러분, 미움이 무섭습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미워하다가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미워하다가 노예로 팔아 버렸습니다. 미움은 사랑의 반대입니다. 우리 모두 미움을 버리고 사랑하면서 삽시다.
사랑이 최고의 덕목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받는 것도 귀하지만 주는 사랑이 더 귀한 것입니다. 인간의 참 기쁨과 참 만족은 다른 사람을 섬기며 봉사하며 기쁨을 주려고 할 때, 얻어지는 보상입니다. 만약 우리가 섬김을 받고자 한다면 마음에 즐거움을 얻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섬김의 부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은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하이데거'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섬기는 자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고, 사랑은 용납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롬13:8절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있듯이 빚진 사람은 빚자만 나와도 가슴이 덜컹거립니다. 빚진 죄인이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이 말은 당해보지 않고서는 실감할 수가 없습니다. 빚진 죄인이라는 말은 심리적으로 그 만큼 무거운 짐을 지우는 의미입니다. 정말 빚은 무섭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이자가 붙습니다. 오늘 행여나 빚진 성도가 있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다 갚을 수 있는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사랑의 빚 외에는 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빚은 서로 질 수가 있습니다. 사랑은 주든지 받든지 그 사랑 속에는 진정한 행복이 삯 트게 됩니다. 솔로몬은 잠15:17절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국가나 어떤 공동체든 미움이 있고 분쟁이 있는 곳에는 축복이나 성장이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가정에서도 서로 돕고 이해하면서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될 때, 행복한 가정,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류간에 불화가 그칠 날이 없고 부부간에 갈등이 심하고 부모와 자식간에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가정 치고 되는 것이 없습니다. 더 나가서 국가의 운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는 IMF때보다 더 큰 경제의 한파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 뭉치고 뜻을 모으고 힘을 모으고 마음도 모아 서로 사랑하며 협력할 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믿/
4. 하늘의 소망을 사모하며 살 때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롬5:2절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인간의 모든 즐거움은 미래의 보장된 약속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참 기쁨은 미래지향적이어야 합니다. 내일의 축복이 없다면 오늘의 축복은 무의미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늘나라의 큰 축복과 약속된 영광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미래의 영광을 알면 현재의 어떠한 환란도 오히려 즐거워할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롬5:3-4절에서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아무리 환란이 휘몰아쳐도 미래에 받을 영광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즐겁다는 것입니다. 또 롬8:18절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아멘!/ 사도바울은 이런 귀한 소망이 있었기에 옥에 갇히면서도 태창에 찔리면서도 항상 기뻐했습니다. /할/ 우리 모두 '새 하늘과 새 땅'의 천국을 바라보며 힘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5. 성령의 충만함은 또 다른 영적인 즐거움을 가져다줍니다.
롬15:13절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할/
성령 충만하지 않고는 절대로 하나님의 행복으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하기 전에 사도바울은 히브리인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바리새인임을 내세워 교만했으며 율법에 흠이 없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가말리엘 문하생인 것을 행복의 조건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성령 받고 난 바울은 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하나님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얻었습니다.
행7장의 스데반 집사는 유대인들에게 너희들이 예수님을 죽였노라고 맹공격을 퍼붓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임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장엄한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하나님만 주목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볼 때 소망을 얻습니다.
사람을 주목하는 신앙생활은 언제나 실패합니다. 목사를 주목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주목해야 합니다. 교회란 완전한 사람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모이는 곳입니다. 구원받았다고 완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교회란 완전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완전해 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목사가 뭐 그러느냐고 비난받을 때도 있습니다. 권사가, 집사가, 교인도 그럴 수 있습니다. 모두가 그럴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보면 실망이 없습니다. 히12: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아멘!/
즐거운 인생을 삽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위하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십시오, 세상 사람들은 물질, 권력, 명예를 쫓아다니느라고 애 쓰지만 곧 지쳐버리고 맙니다. 많은 사람은 쾌락을 위해 시간을 쓰면 행복할 줄 알지만 그것은 잠시 잠깐의 행복이요, 지나고 나면 후회와 피곤과 질병 속에서 눈물을 짓게 된답니다.
인생을 즐겁게 삽시다. 우리 모두 주님 안에서 근심을 버리십시다. 잠15:13절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주안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마음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6. 화목이 즐거움의 원천입니다.
본문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리라'고 했습니다. 시133편에 보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감탄하셨습니다. 형제가 서로 화목하는 것 이상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형제의 화목, 이웃과의 화목, 특히 부부간의 화목은 절데 행복과 즐거움의 원천'이 됩니다.
잠21:9절을 보면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집에 사는 것 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옛 말에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원칙입니다. 본문 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이 즐거움과 화평을 누리고 살 때 사람의 몸에 가장 필요한 강한 엔도르핀이 몸 속에서 생산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엔도르핀이 어디에서 생산이 되느냐 하면 바로 뼈 속에서 생산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이 불화 하게 살고 근심 속에서 살게 되면 뼈 속에서 생산되어야 하는 이 힘의 원천이 되는 항원이 말라 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죽음입니다. 그래서 화목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성경이 자꾸만 우리에게 '기뻐하라, 감사하라, 화목 하라'고 하시는데 그것은 바로 이 같은 이치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화목을 이루기 위해 서로 노력해야 합니다. 인간은 모두 허물 투성입니다. 그 허물을 덮어 줄 때 아름다운 관계는 이루어집니다. 잠10:12절에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 우리는 화목하기 위해서 열심히 서로를 사랑해야 합니다. 벧전4:7절 이하에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했습니다. /할/
우리 기독교는 화목의 종교입니다. 롬5:1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후5:19절에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을 부탁하셨을 뿐만 아니라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거든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제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요? 형제가 화목하지 않은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롬12: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하셨고 히12: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해야 화목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과 화평한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7. 왜 우리가 행복하게 즐겁게 살아야 합니까? 특별한 열쇠가 있기 때문입니다.
①천국 열쇠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마16:19절에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노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할/
눅12장에 한 부자는 창고에 가득 찬 곡식을 바라보며 기분이 째졌습니다. 그는 독백하기를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외칠 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다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 부자는 창고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 큰 창고에 없는 것 하나가 있었으니 바로 천국 열쇠입니다.
천국열쇠는 믿음을 고백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하나님께서는 천국열쇠를 주셨습니다.
②축복 열쇠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말3:10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에 없도록 붓지 아니 하나 보라"
③건강의 열쇠가 있습니다. 즐겁게 사는 것이 건강의 비결입니다(잠17;22).
말4:2절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④해결의 열쇠가 있습니다. 마7:7-8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기도하는 이에게는 응답의 문이 열립니다. 기도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사업이 막혀 있습니까? 사업의 문이 열리도록 응답의 열쇠를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기도의 열쇠를 사용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인생을 즐겁게 행복하게 사는 참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 자료 18,185편 ◑ > 자료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런즉 깨어 있어라! (마 25:1-13) (0) | 2022.02.08 |
---|---|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시 62:1-12) (0) | 2022.02.08 |
사명 따라 살게 하소서! (행 20:22-24) (0) | 2022.02.08 |
다윗 왕의 마지막 유언! (대상 28:5-10) (0) | 2022.02.08 |
누가 복 있는 사람인가? (시 1:1-6) (0) | 2022.02.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