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가 최고다! (행 13;1-3)
사람들은 최초를 최고로 여기게 됩니다.
사람들은 두 번째는 기억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를 기억하게 됩니다. 최초가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비행기를 처음 만든 사람은 미국 데이튼에서 자전거 상점을 경영하던 목사 아들 라이트 형제입니다. 처음 만들고 날렸을 때 겨우 1분 남짓 나르다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늘 날 비행기하면 라이트 형제를 기억합니다. 그 후 엄청난 보잉 747 비행기를 개발한 사람을 우리는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최초만 기억합니다. 최초가 최고이기 때문입니다.
전화를 처음 만든 사람은 알렉산더 그래햄 벨입니다. 그 후 전화기를 엄청나게 발전시켰지만 누가 그렇게 개조하였는 지 우리는 모릅니다.
최초가 최고입니다.
우주 비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 다녀 온 우주비행사는 수 십명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달나라에 최초로 발을 디뎠던 암스트롱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최초가 최고입니다.
최초가 최고인 이유가 있습니다.
1. 첫 번은 어렵기 때문입니다. 창조는 개조보다 얼마나 어려운 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2. 첫 번은 수고가 있기 때문입니다. 최초로 그 일을 하고 최초로 그 일을 해내느라고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개척자의 시계는 보통 사람도다 5분 빠르지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상상을 초월합니다.
바울 이야기로 들어 갑니다.
바울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선교사입니다. 그런데 역사상 최고의 선교사가 되었습니다.다. 바울을 능가할 선교사는 없습니다.
35명이 지난 9월 3일에 인천 공항을 출발하여 9월 15일까지 12박 13일 동안 바울이 전도하였던 곳을 순례하고 돌아 왔습니다.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운 탐사였습니다.
바울이 태어난 다소를 먼저 들렀습니다. 바울의 집터에 바울이 마시던 우물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바울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감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최초로 사역하다가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안디옥을 둘러 보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4차 전도하러 누비던 세계를 바울의 숨결을 느끼며 돌았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7교회도 모두 들러 보았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빌라델피아 교회, 사데 교회, 두아디라 교회, 버가모 교회, 서머나 교회 그리고 에베소 교회를 흥분과 신비를 느끼며 들러 보았습니다. 요한이 유배당하여 요한 계시록을 기록한 밧모섬도 들렀습니다. 섬에 들어 갈 때나 나올 때에 나뭇잎 하나 흔들림이 없는 그렇게 고요한 날이었습니다. 잔잔한 바다를 항해하며 바울이 며칠을 타고 다니던 바다에서 이제는 쾌속정과 페리호를 타고 바울을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그리스로 넘어 와서 바울이 전도하였던 아덴의 아크로폴리스 언덕, 재판받던 고린도 그리고 네압볼리, 데살로니가까지 둘러 보았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수고하였는 지 피부로 금방 알 수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선교하며 수고하였던 이야기를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간증할 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오늘 날의 선교사들은 한 곳에 정착하며 기반을 잡고 열심히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항성 선교사가 아니라 유성 선교사입니다. 바울은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갈 곳은 없는 선교사입니다.
4차 전도하며 당시 세계를 누볐던 선교사입니다.
가는 곳마다 정면으로 도전하며 복음을 증거하였던 대단한 선교사였습니다. 최초가 최고입니다. 바울이 쓴 13권을 읽노라면 바울은 4가지 확신에 넘쳐 선교하였던 선교사였음을 한 눈에 알 수가 있습니다.
1. 소명의 확신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를 복음 전도자로 부르셨다는 소명이 너무나 확실하였습니다. 당시 12명의 제자들만 사도로 칭함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바울을 사도로 임명한 적이 없습니다. 바울은 자칭 사도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이 불러 주셨다는 확신이 철철 넘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셨는 데 누가 무엇아라 하겠느냐?>
바울이 13권 성경를 썼씁니다. 쓸 때마다 첫 마디는 소명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로마서가 바울의 첫 책입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롬 1;1)
다음 책이 고린도서인데 고린도서도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고전 1;1)
그 다음 책이 갈라디아서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 바울은>(갈 1;1)
그 다음 에베소서도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엡 1;1)
빌립보 교회를 향하여 쓴 편지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빌 1;1)
바울은 무슨 말을 하든지 하나님이 자기를 선택하여 주셨다는 소명이 분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여 주셨다는 데 누가 무어라겠습니까? 그 분이 선택하여 사도로 만들었으니 자기는 하나님의 종이기에 하나님의 일만 하겠다고 확신을 가지고 았었기에 온 세계에 확신있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나포레옹이 프랑스 황제로 즉위하여 있을 때였습니다. 군사들 앞에 말을 타고 서있는 데 갑자기 말이 펄쩍펄쩍 뛰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감히 말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나포레옹이 말에서 떨어지면 다치거나 죽을 지도 모르는 순간이었습니다. 한 신하가 목숨을 걸고 달려 와 말고피를 잡고 말을 진정시켰습니다. 황제는 너무나 기뻐서 그를 보고 말했습니다.
<너는 사병이 아니라 지금부터 장교다.>
이 말을 듣자 말자 그는 장교들이 서있는 자리로 가서 섰습니다. 장교들이 눈짓을 하며 말했습니다.
<너는 여기 서면 안 된다. 사병이다 저리로 가라. 여기는 장교 대열이다.> 그 때 그가 말했습니다.
<황제가 장교라는 데 당신들이 무슨 말을 합니까?>
이것이 바울의 당당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도로 불러 주었으니 사람들이 무엇이라 부르든지 자기는 자기를 사도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사도로 일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베드로는 사도로 부르고 바울은 성자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사도로 부르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누가 무엇이라 하여도 하나님이 사도도 부르셨다는 확신이 철철 넘쳤기에 하나님의 사도로 당당하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셨다는 소명이 확실하면 하나님의 일을 확실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는 확신은 자신감을 줍니다.
2. 체험의 확신
바울은 체험이 확실하였기에 누가 무엇이라고 하고 ,어떤 어려움이 와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예수믿는 이들을 핍박하였습니다.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유대교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짓밟는 배교자로 여겼습니다. 환란과 핍박을 받아 도망간 유대인들을 쫓아가서 잡아 죽이는 일을 바울은 하였습니다.
변화되면 그 날이었습니다.
외국으로 도망간 유대인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올라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바울은 살기가 등등하였습니다. 몇 명이 같이 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정오의 빛보다 더 강한 빛이 비췄습니다. 얼마나 강한 지 눈이 멀었습니다. 땅바닥에 엎어졌습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 9;4)
바울이 물었습니다.
<주여 뉘시오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행 9;5-6)
그런데 다음 성경은 이상한 말을 하여 주고 있습니다.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행 9;7)
눈이 멀 정도도 강한 빛이 쏟아져 내렸는 데 옆 사람은 보지 못 하였습니다. 참으로 신기합니다. 이 때 바울은 누가 무엇이라고 하여도 흔들리지 않는 확실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바울의 마음을 흔들 수 없게 확실하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한 마디로 말합니다.
<확실한 체험은 확신을 줍니다.>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체험이 확실하면 누가 무엇아라 하여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신비주의에 빠지면 안 되지만 신비체험은 많이 하면 할수록 좋습니다.
3. 복음의 확신
바울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은 복음이라고 확실히 믿었습니다. 바울은 이 세상 사람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이라고 확실히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어려움과 환란이 와도 누구에게도 복음을 주어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바울은 복음외에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강제로라도 복음을 주어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 3;4-9)
바울은 복음에 대한 확신이 넘쳤기에 담대하게 복음을 외칠 수가 있었습니다.
터키에 들어 갔더니 지난 4월 18일에 있었던 사건으로 온통 화제거리들이었습니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입니다. 터키는 요한 계시록 7교회가 번창하였던 나라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에 의하여 복음화되었던 나라입니다. 기독교의 꽃이 찬란하게 피워졌던 나리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99%가 회교입니다. 7500만명 중에 기독교인은 겨우 3000명 가량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숨도 못 쉬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일 예배도 차안에서 몰래 드려야 했습니다. 더구나 아프카니스탄 문제로 떠들썩할 때 들어 갔기에 조심하여야 했습니다. 우리는 예배드리면서 얼마나 울었는 지 모릅니다. 예배를 드리고 나니 모두가 눈시울이 벌겋게 되어 있었습니다.
틸만 독일 목사님이 터키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있었습니다. 터키 목사님, 터키 전도사님과 세 명이 한 팀이 되어 일하고 있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매 주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19살된 미성년 소년 몇 명이 찾아와서 성경공부를 같이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터키에서는 회교도들 때문에 타국인이 복음을 증거하며 붙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회교 국가의 법이었습니다.
스스로 찾아온 소년들이라 같이 몇 주 성경 공부를 하였습니다. 4월 18일 저녁이었습니다. 모두 모였습니다. 성경공부를 하려고 한 장을 다 읽었을 때였습니다.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경공부하던 소년들이 칼을 들고 위협하면서 세 명을 묶었습니다. 그리고 법을 어겼으니 죽이겠다고 위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회교로 개종하면 살려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물로 거절하였습니다.
두 명이 보는 앞에서 틸만 독일 목사를 150번 칼로 찔렀습니다. 그리고 토막을 냈습니다. 창자를 꺼내서 도마에 놓고 토막냈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빵 자르는 칼로 천천히 톱질하였습니다. 핸드폰으로 동영상 촬영을 하면서 태연하게 그렇게 하였습니다.
다음으로 터키 목사님에게 개종을 강요하였습니다. 역시 거절하자 159 번 칼로 찔러 죽이고 그렇게 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도사를 수없이 찌르고 그렇게 하였습니다. 서머나에서 온 청년이 이 모습을 온 세계에 인터넷을 알렸습니다. 그래서 온 세계가 알게 되었습니다.
전도사님 아내가 말했습니다.
<우리 남편은 2000년 동안 누구도 못 하던 말을 하였습니다.> 틸만 독일 목사님 사모님 수산나가 말했습니다.
<우리 남편은 훌륭합니다. 회교도 당신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살아도 회교도로 살기를 바랄 것입니다. 나도 이 곳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나는 남편이 죽은 이 곳을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 계속 살아 갈 것입니다.>
모두가 복음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복음만은 결코 양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확신있게 일한 것은 복음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4. 동행의 확신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함께 동행하여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은 그 자체가 능력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3-5)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십니다.
바울이 처음오 일하였던 안디옥 교회에서 교인들이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행 11;21)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면서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기에 주님이 항상 같이 동행하여 주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랬기에 그렇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봅니다
바울이 에베소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복음을 증거할 때였습니다. 수많은 기사와 이적이 따랐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오는 지 바울이 미처 안수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바울의 손수건을 가져다가 아픈 사람에게 얹으면 낫고 귀신들린 사람에게 대면 귀신이 떠나가는 역사까지 일어났습니다.
나는 외치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일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바울이 전도하던 루스드라에 가보았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행 14;10)
한번도 걸어 본적이 없는 앉은 뱅이가 바로 일어나 뛰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바울과 바나바 앞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쓰스 신과 허메 신이 사람의 몸으로 가장하고 여기에 왔다>(행 14;11)
바울은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확신하였기에 그렇게 확신에 차서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던 요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한은 에베소에서 순교하였습니다. 복음을 증거하다가 잡혔습니다. 독약을 주었습니다. 아무리 독약을 마시게 하여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향수에게 먹여 보았습니다. 즉각 죽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이 옆에서 보고 즉각 살려 주었습니다.
아무리 칼로 찔러도 안 죽어서 밧모섬으로 유배를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기도하다가 요한 계시록을 쓰고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다시 에베소에 와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에베소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최초가 최고입니다.
바울은 최초의 복음 전도자입니다. 최고의 복음 전도자입니다. 그가 그렇게 확신있는 선교사가 된 데에는 네 가지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 소명의 확신
2. 체험의 확신
3. 복음의 확신
4. 동행의 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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