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제를 적절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들을 조심스럽게 정의해야만 한다. 개혁신학은 복음주의 신학보다도 더 오래되었으며, 복음주의 신학은 비교적 현대적 현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을 정의함으로써 시작해야 한다.
I. 복음주의 신학
A. 배경적 뿌리
나는 미국인이기 때문에 미국 복음주의에 관심의 초점을 두고 영국 복음주의에 대한 논의를 피하려고 한다. 미국 복음주의 신학의 뿌리는 웨슬레 운동의 발생을 동반한 18세기 영국에서 발견될 수 있다. 또 아마도 복음주의 신학의 뿌리는 18세기 독일에서 일어난 경건주의 운동에서도 발견된다. 두 개의 역사적 운동은 확실하게 현대 미국 복음주의를 형성 시켰다.
이 강연의 목적을 위하여 나는 복음주의 신학의 뿌리가 영국 감리교회나 독일 경건주의 보다도 시간적으로 오늘날에 더 가까운 것을 전제한다. 이 전제는 논쟁적이지만 나는 나의 강의를 좀더 짧게 하려고 한다!
복음주의 신학이 19세기 미국에서 그 시작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여 그 뿌리를 추적하는 것은 반드시 쉬운 작업은 아니다. 하나의 운동으로서 복음주의는 다른 방식들로 다루어 질 수 있다. 그것이 19세기 독일 자유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반작용으로 된 것으로 또침례교와 감리교의 신학과 교회학의 지속적인 성장으로 된 것으로 세 번째 견해는 처음의 두 가능성을 결합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미국 복음주의 신학은 독일 자유주의에 대한 반작용이며 동시에 침례교와 감리교의 신학과 교회학의 지속적인 발전으로 보는 견해이다.
B. 미국에서 근본주의의 발생
19세기의 말과 20세기의 초에 일반적으로 근본주의라고 불리우는 하나의 운동이 미국에서 일어났다. 이 운동은 분명한 가르침을 거부하는 주류 교회와 교단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났다. 많은 주류 교단들 안에서 동정녀 탄생이 의문시 되었고, 성경의 권위가 공격을 받았고, 기적의 실재가 부인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다. 이런 성경의 가르침을 붙잡은 사람들과 이런 가르침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근본주의자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들이 이 이름을 갖게된 이유는 20세기 초에 출판된 근본주의라는 책자의 이름 때문이다.
근본주의자라는 이름이 붙은 첫 번째 사람은 위대한 구 프린스톤 신학자인 그레함 메이천(J. Gresham Machen)이다. 그러나 종종 문화적으로 보수적이며 어떤 변화들에 대하여 반대하는 근본주의자들과 메이천과 같은 위대한 지적인 학자들과의 연대는 오래가지 못하였다.
지식인들과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부흥가들을 포함하는 미국 근본주의의의 발생은 메이첸과 다른 사람들에 의해 대표되는 신학적 현실에 이미 흘러들어 갔다. 두 운동의 일시적인 연합으로부터 우리는 실수 없이 우리가 “현대 복음주의 신학”이라고 부르는 것의 발전을 구별한다.
C. 현대 복음주의 신학의 발생
1920년대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신학교 인준기관인 신학협의회(the Association of Theological Schools, ATS)는 대학원들이나 큰 주류의 재정으로 기본 자산을 가진 신학교들과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2차 세계 대전이후에 첫 번째로 인가를 받은 복음주의 신학교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풀러 신학교였다. 그러므로 하나의 운동으로서 현대 복음주의 신학은 아마도 2차 대전 이후의 현상이다.
D. 현대 복음주의신학의 특징들
20세기 초 미국에서 복음주의 신학은 놀랍게도 초 교파적이었다. 그 당시 미국의 교파적인 혼합에서 복음주의는 연합 감리교회, 연합 장로교회, 복음 루터교회 그리고 남 침례교회에서 발견된다. 이런 교단들은 주류로 간주되는데 근본주의와 복음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포함하고 있었다. 가끔 복음주의 신학의 운동은 특별한 교단 보다는 초교파적인 기구들과 밀접하게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2가지의 실례가 풀로 신학교와 달라스 신학교의 기관들이다. 복음주의 신학의 다른 실례의 본거지는 IVF, CCC, 네비게이토 그리고 크리스차니티 투데이와 같은 파라처치(para-church) 기관들 이다.
현대 복음주의 신학은 근본주의의 교리를 붙잡고 있다. 그 기초와 함께 현대 복음주의 신학은 침례교회에서 널리 붙잡고 있으며 감리교회에서는 초기에 그리고 웨슬리 전통에는 지금도 계속 붙잡고 있다. 대부분의 근본주의자들은 전 천년의 종말론을 붙잡는다. 장로교회에서는 구파 장로교회와는 대조적인 신파 장로교회와 밀접하게 동조하고 있다.
II. 개혁신학
A. 일반적으로 쉬운 정의
일반적으로 개혁신학은 복음주의 신학보다도 쉽게 정의를 할 수 있다. 그것은 16세기의 종교개혁과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대륙에서는 존 칼빈과 영국에서는 존 낙스의 이름과 관계를 가지고 있다. 미국에서 개혁신학은 보통 특별한 교단들과 연관을 가지고 있다. 이것들은 큰 대륙의 개혁 교단들(CRC, RCA)과 많은 장로교회들을 포함한다.
B. 특별하게 까다로운 정의
비록 개혁주의라는 칭호를 주장하는 미국의 교단들이 있지만, 개혁주의라고 불리우는 모든 신학이 참된 개혁주의가 될 수 없다! 나는 구 프린스톤 신학자인 B. B. 워필드의 개혁신학의 정의로서 개혁신학이란 “성경적 기독교가 본래의 특성을 발휘하는 것(come into its own)”이라는 그의 정의를 사용하기를 싶다. 그러나 이런 정의는 뜨겁게 논쟁거리가 된다. 그러므로 나는 이 강연의 목적을 위하여 개혁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성경무오에 보다도 현대적인 생각과 더불어 전통적인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요리 문답들, 벨직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그 문답, 그리고 돌트신조)을 붙잡는 개인들과 교파를 말한다.
III. 개혁신학과 복음주의 신학 사이의 긴장
A. 운동에 있어서 유사성과 차이성
1. 신학적 유사성
개혁주의 고백서들은 복음주의의 중요한 신학적 핵심을 지지한다. 이 점에서 복음주의와 개혁주의 신학은 동의한다. 복음주의와 개혁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고백이 한 개인의 삶에 영향을 주어야 하는 것에 동의한다. 우리가 개인주의적 경건이라고 부른 것이 두 운동의 신학에서 중요하다.
2. 교회와 국가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유사성
일반적으로 두 운동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주장한다. 복음주의 신학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에 대한 방어 거점이다. 개혁주의 전통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에 관한 문제에 강하지 않으며, 교회는 법인자격으로 정치적인 분야에 참여하는 것에 삼가야 한다고 제안한 그래함 메천으로 부터 그 견해를 지지 받는다. 그가 확신하는 것은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서 31/4 조항과 일치한다. 메이첸이 믿는 것은 개개인 기독교인들은 국가 법률을 준수하지만 정치에 개개인 기독교인들은 신앙의 행위에서와 정치에 참여하는 것과 공동체 교회 기구가 정치에 참여하는 것 사이에 강한 구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3. 경건과 개인주의에 있어서 차이점
그러나 개혁주의 신앙고백서들은 근본주의적이며 복음주의적이지 않다. 개혁주의 신앙고백서 복음주의가 아닌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신앙고백서들이 신학과 삶 사이에 특별한 관계를 분명하게 진술하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신학은 경건에 대하여 제한된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것은 오르지 개인들에게만 관계한다. 재 세례파와는 대조적으로 개혁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는 중보자의 왕권으로 정치적, 문화적 그리고 교육적인 것을 포함한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B. 각각의 운동은 다른 운동에 반대는 두려움
1. 사회복음에 대한 복음주의의 두려움
근본주의자들과 복음주의자들은 사회복음에 대하여 연합하였다. 1917년 자유주의 신학자 월터 라우센부쉬(Walter Rauschenbuch)가 “사회복음을 위한 신학”(A Theology for the Social Gospel)을 출판하였다. 라우센우쉬 자신은 그 운동의 비판에서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것보다도 보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복음주의 운동을 분류할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랑의 실재와 노동의 복지로서 하나님의 나라에 노력하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 나라는 사람들을 적절하게 사회화하기를 필요로 한다. 악한 사회구조들이 죄악의 상황을 지속하게 하기 때문에 그것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많은 복음주의자들에게는 이것은 개혁주의 신학과 같은 건전한 신학을 잘라 줄이는 것으로 본다.
2. 금주에 대한 복음주의의 두려움
복음주의 신학은 음료로서 술의 사용을 반대하는데 연합하였다. 심지어 복음주의자 시카고의 무디(Dwight Moody)도 금주운동을 주장하는데 동의하였다.
개혁주의 신학은 이 문제에 대하여 복음주의 신학을 반드시 지지하지는 않았다. 금주운동은 14개 주가 술 소비를 금지하던 바로 그때 미국 시민전쟁에 시작하여 미국헌법 수정 제 18조 (금주법)가 비준되던 해인 1919년 최고점에 이르렀다. 이 수정은 취하게 하는 액체의 공장, 판매, 수송을 금하였다. 이것은 교회와 국가 관계에서 긴장이 있었던 한번의 시기였다.
금주에 대한 문제는 장로교회 안에서 대단히 많이 강조를 하였다. 예를 들면 정통장로교회(Orthodox Presbyterian Church) 제 3차와 4차 총회에서 7명의 다른 장로들이 교회로 하여금 모든 목사들과 장로들이 절대 금주을 위하여 싸울 것을 촉구하는 건의들이 있었다. 제 4차 OPC 총회에서 그들은 당시에 조처를 취하지 않기 결정을 하였다. 이 문제는 또 그 다음 5년은 바로 그 교단에서 표면화되지는 않았다. 정통 장로교회가 주류에 대하여 다루는 문제는 복잡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총회는 위원을 선출하여 OPC 와 사회에 대한 관계를 일반적으로 그리고 다른 교회 기관들과는 특별하게 연구를 하도록 했다. 그리고 다음 총회에서 우리 교회의 메시지와 방법이 이 세대의 필요를 채우고 OPC가 영향력을 증가시키고 오늘날 우리의 삶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추천할 만한 방법과 수단을 가져오도록 했다. 많은 노력과 모임을 가진 후에 위원회에서는 다수파의 보고서와 소수파의 보고서를 제출하였지만 위원회에서 계속하지 않도록 결론을 내렸다. 그 문제에 대한 어떤 공식적인 답변도 결코 없었다.
3. 개인과 사회에 대한 개혁주의의 두려움
비록 메이첸은 자신이 근본주의자임을 선언했지만, 심지어 출판에서, 그는 말하기를 근본주의자란 전 천년주의자들 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 현대주의에 대항하여 초자연적 기독교를 분명하고도 논쟁적으로 믿는 자들이다라고 한다. 사회복음에 대한 복음주의의 두려움을 알고 있는 메이첸은 사회복음주의를 공격하였다. 비록 메이첸은 사회복음이란 문구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역사적 기독교란 그것이 사회적이기 보다는 개인적이기 때문에 모든 사회적 발전에 적대적인(inimical)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구 복음주의는 개인을 얻기를 추구하는 것으로 말해진다.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좋은 복음주의는 개인을 구원하고 세상을 운명에 맡기는 대신에 삶의 물리적 조건을 향상시키고, 여기 이 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로 불리우는 것을 세우기 위하여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추구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메이첸은 확신하기를 사회에 반대하는 개인의 구도는 이분법의 잘못된 전형이라고 한다. 그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개인적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이다. 한 인간이 세상으로부터 영적으로 구원을 받았을 때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는 세상을 도피해서 신비한 묵상의 장소로 가서는 안되며, 오히려 정의를 위한 전투를 위해 다시 세상으로 보내져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다시 한번 그가 우리에게 상기 시키는 것은 기독교 그 자체는 개개인의 영혼에 우선권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근본주의 혹은 그가 부르는 역사적 기독교는 실제적이기 보다는 교리적이다 라는 보는 견해에 반대하면서 결론을 내린다. 그가 먼저 말하는 것은 반대 그 자체는 마음이 좁은 것을 상징하지만 교회는 믿음의 기초를 분석하는 것과 인간으로서 물리적인 고통을 완화시키는 것 사이의 이분법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고 한다. 사실상 교회는 두 개를 모두 해야 한다. 그중 하나를 무시하는 것은 분명히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후에 그는 말하기를 “만일 우리의 믿음의 지적인 방어가 가난한 자들에 대한 우리의 의무를 소홀하게 한다면, 우리는 스스로가 큰 죄를 범하는 것이다” 라고 한다. 그는 종교개혁 시대의 부흥처럼 기독교의 부흥을 고대한다. 그리고 그 시대가 올 때 훌륭하고, 이타적이며 고귀한 것을 파괴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촉진할 것이며, 보이는 것들을 구원하는데 방해를 하지 못하며 인간을 압박하지 못하게 하며 이 세상에서 조건들을 증진 시킬 것이다.
4. 분리에 대한 개혁주의의 두려움
1959년 헐버트 알리버(C. Herbert Oliver) 장로교회의 흑인 목사는 인종관계와 인종 차별에 대항하여 “육신은 결코 영광을 돌리지 못한다”(No Flesh shall Glory)라는 책을 썼다. 그는 그 책의 한 곳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종차별은 기본적으로 비인간적이며 비자연적인 것처럼 절대적 인종 차별의 철저한 제도는 인종 차별된 구룹을 다루는데 있어서 모든 도덕과 예의를 대담하게 버린다. 기독교 가르침에 의하여 영향을 받은 양심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는지는 이해하기 힘들다. 인종 차별화된 집단의 지적이며 교육적인 표준을 개선하기를 원하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은 고통스런 딜레마에 직면하는데 교육과 인종차별은 섞여질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상호 배타적이다. 계몽주의가 번성하는 곳에서 인종차별은 있을 수 없다. 인종차별이 거의 완성된 곳에서는 지적인 성장이 효과적으로 억눌려 있다.
대부분의 미국 복음주의는 남부에 위치하기 때문에 인종차별은 복음주의 안에서 특별한 문제로서 인식되었다.
C. 낙태논쟁에 대한 복음주의와 개혁신학의 연대
미국 대법원이 1973년에 로(Row)와 와드(Wade)의 싸움에 대한 판정이 있기 전에 앞서, 보수적 장로교회의 지각 있는 지도자들은 낙태가 중요한 사회적 문제임을 알고 있었다. 1968년 OPC는 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문제를 조사하고 정책 방침서를 만들기로 하였다. 이 방침서에서 OPC는 낙태가 합법적으로 되기 전에 강한 반대를 보였다. 이 보고서의 시작의 문단은 실로 예언적이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낙태가 살인이라면, 어떤 경우에 있어서는 낙태 자유화로의 현재 걸음은 히틀러, 스탈린 그리고 헤롯 대제의 잔인성 보다도 더 나쁘며 보호받지 못한 인간들을 살인으로 인도할 수 있다.“
적절한 성경 본문들을 신학적으로 분석한 후에, 위원회는 그들의 분석에 대한 3가지 조치를 추천하였다. 그들이 제안한 것은 총회가 낙태 반대 결의를 받아들이고 그 문제에 대한 더 많은 연구가 회중들과 당회와 장로들에 의하여 있도록 하게 하며, 그런 질문들을 관련된 성경적 원리에 의하여 가르쳐주며, 현재 다루고 있는 법안과 관련하여 또 그들의 공동체에 적절한 상황과 관련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도록 제안을 하였다. 일년 후에 대법원은 미국에 전역에서 낙태를 찬성하는 것으로 판결했다.
다시 한번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교회가 교회적 선언을 만드는 문제에 대하여 보수적 장로교회에서 긴장이 있었다. 낙태 보고에 대한 소수파의 보고가 있었다. “소수파 보고서의 저자에게 나타난 것은 교회가 1937년 거절하기로 한 것을 해야하는 직전에 있고, 성경목록(scriptural catalog)에 부가적인 의미를 첨부해야할 직전에 있는 것이다. 후에 소수파 보고서는 진술하기를: 국가법률에 의해 종교적 원리를 강요하는 것에 대항하여 용기를 가지고 이것을 동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운명을 이 길에 두는 것은 종교적 자유를 거부 당하며 사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예견되는데 그것은 매우 위험한 진로이다. 역사의 연구가 많은 증거를 제공한다.”
D. 결론: 미국 개혁신학은 지금도 문제들에 대답할 필요가 있다.
이 보고서는 거의 우리를 한 바뀌 돈다. 메이첸의 죽음 이후 보수적 장로교회는 절대금주 문제에 씨름하였고 그 주제에 열띤 토론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찬성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회원들에게 비 성경적인 요구로 간주되는 것을 강요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비록 절주는 찬양 되었고, 술취함은 정죄 되었으며, 많은 목사와 장로들이 주류를 금하기로 선택하였지만, 그러나 교회는 그 절주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낙태에 대한 소수 보고서는 오직 교회가 1970년에 같은 패턴을 따를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낙태에 대한 소수 보고서는 두 번째 원리를 질문하였다. 국가 법에 의해서 만들어진 종교적 원리를 강행하는 것을 교회가 권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것이었다? 소수파 보고서는 그 길은 위험한 진로라고 말한다.
우리가 간단하게 관찰하는 것은 메이첸의 시대부터 1970 년대까지 교회가 사회 문제에 대한 세세한 역할에 관한 의견의 변동이다. 원리적 질문에 대한 답변이 줄어질 때까지 가능한 장로교회에서 사회적 활동은 표면상 지그자그의 경로로 계속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개혁주의 신학과 복음주의 신학의 관계성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준비한다.
IV. 개혁주의 신학의 부흥 없이 복음주의 신학의 몰락
A. 명제
이 발표의 나머지 명제는 개혁주의 신학의 부흥 없이는 복음주의 신학도 몰락한다는 것이다. 미국 복음주의의 몰락을 예측하는 것은 처음에 거만하고 시기 상조처럼 들릴 수 있다. 이 명제가 성급한 것이 아닌 것을 보이기 위하여 또 그 명제를 확증하기 위하여 복음주의 신학에게 몇 개의 어려운 질문을 물을 필요가 있다.
B. 복음주의 신학이 어디로 향할 것인가?
복음주의 신학 안에 몇 개의 어지럽게 하는 최근의 경향들이 있다.
1. 성경의 포기
자기의식이 있는 복음주의는 고의로 성경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성경이 오늘날 크리스천이 직면한 도전들을 위하여 충분하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의 가르침을 포기하였다.
a. 기독교상담과 교육에서 포기한 구체적인 예
보이스는 말하기를 “그들은 성경이 크리스천이 성장을 이루는데 충분하고 생각하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세속적 치료법으로 돌아갔다.
b. 예배에서 포기한 구체적 예
많은 목사들은 그들의 예배에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기 위하여 성경 진리의 아주 예리한 요소들을 허물었다. 보이스는 다시 말하기를 그들은 오락을 전공하고 있다고 한다.
2. 이 세대의 방식에 따르는 미국 복음주의.
바울 로마서 12 장 2절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고 말한다.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것은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것과 같은 개인의 윤리적 문제를 포함 할 수도 있지만, 하지만 그가 단지 개인적인 경건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실수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마음의 전적인 개혁을 옹호하고 있다.
a. 순응에 예로서 세속화
세속화는 복음주의 신학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어서 그것이 교회를 어떻게 건축하며, 실내장식은 어떻게 하며 심지어 설교를 어떻게 하는지 까지 명령한다.
b. 물질주의와 학문적 존경의 일어남
물질주의
미국 복음주의에서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은 고액의 사례비를 받고 비교적 힘있는 사람들이다. 이 논문의 목적은 사례를 잘 받는 목회자를 깎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어떤 목회자들도 그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장로교회의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은 보통 목사의 사례비의 6 내지 7배를 받는다.
학문성에 대한 존경의 일어남
확실히 누구나 복음주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학문적 능력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보는 것에 대하여 논의를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대가를 치러서 미국 복음주의는 학문적 존경을 얻으려고 하는가? 이 문제는 성경론과 관련된다; 상위의 학문적 학위를 얻기 위하여 무오성을 포기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복음주의자를 표명하는 저명한 자들은 지금 성경의 축자적 영감에 반대하고 있다. 잘 알려진 교수이며 정통 장로교회 장로인 마크 놀(Mark Noll)은 그의 책 “복음주의 정신의 스캔들“(Scandal of the Evangelical Mind)에서 주장하기를 (구)프린스톤학자들이 가졌던 성경 무오성은 잘못 지도되었으며, 그것은 기독교에 본질이 무엇인지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하며,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키는 것은 우리가 구주를 깊이 믿는 것이라고 한다. 영국 복음주의 신학자 맥그래스(Alistair McGrath)도 그것과 비슷한 주장을 받아 드린다. 맥그래스는 특별히 찰스 핫지(Charles Hodge)를 비판하면서 말하기를 “성경의 권위에 대한 핫지의 분석은 궁극적으로, 계몽주의 주제를 반영하는 것에서 비롯된 언어 본질의 고백적이며 맹목적 이론(an acknowledge and implicit theory of the nature of language)에 근거했다”고 한다.
3. 미국 복음주의는 무 분별화 되고 있다.
무 분별화란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철저한 방법으로 삶을 보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나의 요지를 보여주기 위하여, 현재 미국 사회와 19세기의 사회를 비교해 본다면 큰 차이점을 주목할 것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은 19세기 동안 미국 사회는 노예제도나 연방정부의 제한과 같은 복잡한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글을 읽을 수 있도록 교육을 받은 것이다. 이 무 분별화은 전 미국의 문제였으며 단지 복음주의의 문제만이 아니었고, 그들이 미국 사회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그들 역시 모든 질병으로부터 고통을 당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였다. 보이스(Boice)는 말하기를 슬프게도 우리 문화에서 텔레비전의 지배는 교회와 설교에 큰 충격을 주었다. 예배는 즐기는 쪽으로 확산되고 설교자는 사람들이 좋은 시간을 갖도록 도와 줌으로써 사람들을 얻으려고 한다.
1923년 미국 장로교회(남장로교회)에서는 14,000 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소요리 문답을 암송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언 머레이(Ian Murray)가 말하기를 오늘날은 “신학도들 가운데서도 성경에 대하여 무식하다”고 한다. 20년 이상을 미국에서 가르친 우리들이 경험하는 바이다. 나는 한국에 있는 여러분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4. 미국 복음주의는 실용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복음주의 운동에서 사람의 마음을 끄는 미국의 방법은 미국 실용주의와 선천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교회 성장이론가들이 세미나를 주도한다”라고 보이스(Boice)는 다음과 같이 한탄한다“ 그 세미나에서 설교자들은 일반사람들을 그들의 시장으로 생각하도록 그리고 복음을 매력적으로 패케지로 팔 필요가 있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도록 가르침을 받는다.”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사회적 관심을 끌 수 있는 유명한 이름의 사람들과 함께 협회들을 장려하는데 갈망하고 있다.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에 대하여 우리는 듣는 것은 “그가 설교한 멧세지를 유리하게 만드는 최고의 유명인사와 함께 친목을 시도했다”고 한다. 이런 실천은 재앙적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더군다나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자유주의자들, 로마 카톨릭자들, 그리고 유대인들과 협력하기로 그들이 결정하는데 있어서 실용주의적이었다.
5. 복음주의자들은 예전의 오류를 새로운 형태로 받아 드리고 있다.
18세기에 어떤 스콧트랜드 신학자가 가르친 것은 “사람이 자신(혹은 그녀)의 삶의 어떤 변화에 관계없이 사도신경에 증언한 것처럼 예수께서 실제로 죄 때문에 죽으셨다 라는 것에 설득된 사람들은 의롭게 된다”고 했다. 이 오래 전 신학적 오류를 달라스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어떤 사람들을 통하여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 이런 잘못된 가르침은 잔 핫지스(Zane C. Hodges)가 쓴 글들에서 나타나는데 다른 복음주의자들에 의하여 올바르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그들이(달라스에서 가르치는 Zane Hodges와 다른 사람들) 회개, 치리, 그리고 내면의 영적 변화의 증거를 주는 행동의 필요성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들이 이것을 믿음에다 행위를 부가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어떤 개신교나 복음주의자나 개혁주의자들이 구원적으로 믿음에 행위를 연결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복음주의자들은 믿음의 본질이 죄로부터 회개를 요구하며 그리스도와 동행하기 위하여 새롭게 갈망하기를 요구한다.
6. 미국 복음주의자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합류하고 있다.
1994년 “복음주의자들과 로마카톨릭주의자들이 함께: 3천년에 있어서 기독교 선교”(Evan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 The Christian mission in the third millennium) 라는 제목의 25 페이지 분량의 문서가 뉴욕에서 출판되었다. 25명의 복음주의적 루터란 지도자들과 카톨릭 지도자들이 그리고 패커(J. I. Packer)를 포함하여 거기에 서명하였다. 크리스차니티 투데이 (Christianity Today)도 ECT를 지지했다. 존 맥아더(John F. MacArthur)는 즉시 ECT를 거절했다. 그의 책 “무모한 믿음“(Reckless Faith)은 ECT에 반대하고 있다. 이안 머래이(Ian Murray)는 판단하기를 이제 ”복음주의자들 가운에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잘 알려진 신학자 웰즈(David Wells)가 개탄한다. ”한때 복음주의의 영혼에 물을 주었던 역사적 정통주의의 시내는 이제 문화적 무식 때문에 사람들이 세속적인 것을 세속적인 것으로 알지 못하고 세속인 것으로 파멸을 받았다고 한다. . . . 과거 수십 년 동안 현대문화와 쉽게 연합한 기독교 신앙은 어리석은 천국에서 살고 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것에 관하여 그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다
. . . 그것이 영혼에 관계된 것이 아니라면 그 특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
C. 결론
오늘 여러분에게 발표한 나의 논문은 개혁주의 신학의 부흥 없다면 미국 복음주의 신학은 스스로 그것을 파괴할 것이며 혹은 아마도 이미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의 임무는 미국 복음주의 신학의 존속을 위하여 필요한 대답들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에게 배당된 주제가 아니다.
그러나 내가 확신하는 것은 모든 올바른 신학은 하나님에게 궁극적인 영광을 돌려야 한다. 미국 복음주의 신학이 하나님께 올바른 영광을 드리지 못하는 한 그것은 실패하게 될 운명에 놓일 것이다. 미국의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인간의 능력을 그 영광에 혼합하고 있으며 그것은 그 영예를 잃고 있다. 그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개혁신학에 합류하여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이라고 선포한다면 아마도 그들의 계승은 개탄 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출처 : Tong - save777님의 기본통
출처 : 실버 말씀운동
글쓴이 : 萬事恩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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