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대한 무오성과 불오성에 대하여...
풀러신학교를 중심으로 일어났던 무오와 불오의 논쟁으로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무오를 포기하고 불오를 택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무오가 옳다고 보며, 그 입장에 서 있습니다. (그렇다고 불오의 입장을 견지하는 분들이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성경은 구원이나 신앙과 관련된 것 뿐만 아니라 역사와 과학등과 관련된 것에 있어서도 무오한 정보와 가르침을 제공하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 견지하셨던 성경관이라고 확신합니다.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회에서 회원들에게 요구하는 신앙고백 조항은 두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심에 대한 고백이고, 둘째는 성경만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이 확언하는 모든 면에서 무오하다 (불오가 아닙니다)는 고백입니다.
따라서 성경의 무오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불오만 받아들이는 사람은 복음주의자라고 해도 진보적 또는 좌파의 복음주의자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대다수의 근본주의자들과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의 전적 무오를 믿는 점에서 동일한 지점 위에 서있습니다.
복음주의자들이 문화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성경을 해석한다고 할 때 좋은 예가 노예제도 일 것입니다.
성경이 기록된 당시는 이미 문화적으로 노예제가 확립된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노예제도 자체를 거부하지 않고 인정하는 맥락에서 기록이 됩니다. 그것은 성경이 문화의 옷을 입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노예제도하에서의 관행과는 판연하게 다른 신앙적 교훈을 동시에 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바울은 그리스도인 주인이 노예를 존중할 것과 노예를 위협하지 말라고 교훈합니다. 그리고 노예들도 건성으로 억지로 하지말고 기쁨으로 주인을 예수님 섬기듯 하라고 교훈합니다. 이런 교훈은 그 당시의 관행을 사실상 정면으로 도전하는 교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노예제도라는 문화적 상황을 거부하지 않았지만, 그 제도하에서의 비기독교적인 관행에는 도전을 한 것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 복음주의자들이 성경을 통해 강조해야 할 것은 노예제도 자체의 옳음이 아니라, 노예제도를 뛰어넘는 주님의 교훈입니다. 그런데 19세기 미국남부의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이 노예제도 자체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점만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노예제도가 성경적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성경의 문화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해석이라는 것이죠.
성경이 강조하여 가르치는 것은 노예제도 자체가 기독교적이고, 성경적이라는 사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문제가 있는 제도에도 불구하고 그 상황을 주님이 주신 것으로 받아들이되 기독교의 원리인 서로 사랑과 서로 존중과 서로 아낌의 원리를 실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고 존중하다 보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겠습니까? 결국에는 노예제도가 폐지되는 지점까지 가게 되는 것입니다. 노예제도를 폐지하라고 성경은 명시적으로 가르치지 않지만, 이미 기독교의 원리 속에 그것이 암시되고 있는 것이죠.
근본주의자들은 노예제도를 거부하지 않는 성경을 보고 노예제도를 더 강화해 나갔지만, 복음주의자들은 그 제도 하에서 기독교적 원리를 실천함으로, 노예제도 폐지에 공헌하게 된 것입니다.
이 점이 두 진영의 성경해석학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만드는 것이죠.
동성애 문제는 사실상 단순히 문화적 차원이 아니고,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재론의 여지가 없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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