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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신학 제1강 (김세윤 교수)

by 【고동엽】 2021. 11. 2.

바울신학 제1강


- 김세윤 교수 -


이번학기 신약신학 제1권을 하기로 했는데 보통 신약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적에서 시작하여 어떻게 사도들의 신앙고백이 발생하였는가를 살펴봄으로써 기독교의 발생을 규명하고 사도들의 신앙고백의 의미들을 해석하는것이 신약신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그래서 보통 신약신학을 Ⅰ,Ⅱ로 나누는데 제Ⅰ부에서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 그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반영 예수에 관한 것을 알고 제Ⅱ부에서는 ‘사도들의 선포’예수를 그리스도로 선포함에 있어서 바울은 어떻게 선포했으며 요한은 어떻게 선포하였고 또 신약의 다른 부분에서의 대표적인 신학자들 즉 마태,마가,누가 또는 히브리서의 기자는 어떻게 선포하였는가 하는 사도들의 선포를 다루는 것이 과제이다.

Ⅰ.바울연구의 약사

바울신학을 함에 있어서 서론으로 바울 연구의 역사를 간단히 사펴 봄으로써 바울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를 우리는 알게 되고 또 바울 신학을 연구함에 있어서 주요한 문제들이 무엇인가? 논제들이 무엇인가 알게 된다.

1.종교개혁


종교개혁이 사실은 바울의 복음, 은혜로만,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얻는다는 바울의 복음을 재발견 함으로 종교개혁이 이루어졌다.


SOLA GRATIA(오직 은혜)ꠏꠈ
ꠉꠏꠏꠏꠏꠏꠏꠏ JUSTIFICATION(칭의)
SOLA FIDEI(오직 믿음) ꠏꠎ


그래서 바울신학의 중심을 이렇게 은혜로만,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는 자는 구원이 있다는 구원론에 있다고 보고 바울신학의 중요성을 재발견하고 재천명했다. 그러나 소위 역사비평적인 신학해석 방법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변하게 된 것이다.

2. 역사비평적 신약해석 방법(The Historical-Critical Exegesis)


성경의 역사 비평적 해석이 발달하면서, 이제 상황이 완전히 변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계몽주의 시대의 영향으로 일어난 것인데 바울 서신들에 나타나는 여러 신학적인 사상들을 그들의 역사적인 상황에 비추어서 해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스콜라주이로부터 해방을 하고 바울의 신학사상들을 하나의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해석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방법론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방법론이라고 주장을 하지만 실제로는 바울신학을 현대화하는 경향이 많았다. 실제로는 바울과 그의 신학을 신학자 당대(그 신학을 연구하는)의 시대 전신에 의해서 재해석하고 그 시대 정신에 맞는 것으로 천명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이른바 바울을 현대화하는경향이 있었다. 이것을 자세히 공부하고 싶으면 H.Ridderbos의 ‘바울신학’의 첫 부분(바울 신학의 역사)을 보라. 여기에 비교작 잘 요약되어 있다.

3.. F.C.Baur(1792-1860)-Tubingen 학파
F.C.Baur는 Tubingen 대학의 교수로서 현대 신약신학 또는 바울신학의 아버지라 부리운다. 그가 Tubingen 학파의 대표자였는데 Baur와 Tubingen 학파는 기독교 역사를 헤겔의 관념론적 철학에 의거해서 특히 변증법적 방법론에 의거해서 해석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는바울 신학에 있어서 ‘영’의 개념을 바울 신학의 중심으로 보았다. 그래서 이 ‘영’은 무한하고 절대적인 것으로서, 유한하고 시대적인 ‘육신’에 반대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니까 Baur에의하면 바울은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함으로서 ‘영’을 받고 그 ‘영’에 의해서 하나님과 연합하고 그리하여 유한하고 상대적인 이 세상으로부터 해방되어, 절대적인 자유에 들어간다고 바울이 가르쳤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와같은 신학을 유대 율법과 유대교의 특수 주의에 아직도 매여 있었던 원시 교회의 反에서 발달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정반합의 논리로다음과 같이 말한다. 원시 교회(초대교회)는 유대기독교로서 아직도 율법과 유대교의 특수주의 곧 유대인들만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선택되어서 구원이 유대인들에게만 있다는 유대 기독교(正)에 반해서 이와같은 ‘영’의 기독교, 헬라 기독교(反)를 바울이 전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율법을 중심으로 하는 유대 기독교의 특수주의와 ‘영’을 중심 개념으로 하는 바울 기독교 간의 갈등이 1세기 말부터 2,3세기에 걸쳐서 발달하는 초기 카톨릭 교회에 의해서 合이 되었다고 보았다. 그래서 F.C.Baur와 Tubingen 학파는 유대 기독교의 대표자를 베드로와 야고보, 즉 예루살렘 사도들로 보았고 바울과 베드로가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설정하고 누가의 사도행전과 목회서신이 바로 유대 기독교적인 요소와 바울 기독교적인 ‘영’의 자유를 강조하는 헬라 기독교가 합일된 상태로 본다. 이것이 나중에 카톨릭 교회(보편교회)로 발전해서 고대교회,중세교회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의 사도행전과 목회서신 등의 신학을 소위 ‘초대 카톨릭 교회의 신학’이라고 한다. 요즈음도 불트만 학파에서는 ‘Early Chtholicism’이라는 말을 참 많이 쓴다. 그래서 1960년대,1970년대에 신약신학에서 가장 격력하게 논의된 것이 누가의 신학이다. 누가 신학은 바울 신학의 ‘은혜와 믿음만’의 자유신학에 대한 배반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누가 신학에 대한 집중적인 공격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시계 추가 반대쪽으로 옮겨져서 누가 신학이 역사성 없이 순전히 헤겔적인 변증법적인 논리에 의해서 발전한 신학이 아니라고 하여 누가의 사도행전에 대한 명예회복이 많이 일어났다.

4.. LIBERALISM
Liberalism은 크게는 정통신학을 견지하지 않는 사람들을 전부 Liberalism이라고 하지만 신학역사에 있어서 Liberalism은 주로 19세기 후반 20세기 초(1차 대전 전:1914-1920)까지의 신학운동을 대개 Liberalism이라고 한다. 그들이 특징은 문명낙관론,인간성낙관론에 근거해서 일부 감정을 중요시하는 Romanticism과 부르조아(사회윤리)를 중요시하는 윤리주의 등이다. 그래서 이럴 때는 Liberalism이 좁게 쓰인다.


대표적인 학자들로는 K.Holsten,H.Ludemann,O.Pfleiderer,H.J.Holtsmann 등이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도 F.C.Baur와 마찬가지로 바울의 ‘영(성령)’에 대한 가르침을 중심으로 삼고 특히 그것을 헬라적인 사상적 배경에 의해서 해석을 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중요하고 그들이 제출한 중요한 문제는 바울에게 있어서 신비적-윤리적 체계 category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의 구원론은 두가지 전혀 서로 다른 category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1)법적체계(Juridical/Forensic system)→Justification δικαιοσυνη δικαιοω
법적체계는 영어로 Juridical 또는 Forensic system 이라고 한다. 바울의 이러한 구원론에서는 중생개념이 Justification이다. 하나님의 법정에서 무죄 석방을 받는 것인데 죄인 에수의 대속의 죽음을 통해서 무죄 석방을 받은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법적인 개념이다.


δικαιοω는 ‘의롭게 한다. 의롭다고 선언한다’는 뜻인데 이것은 법정에서의 무죄석방을 하는 것을 나타낸다. 이처럼 구원을 설명함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우리를 위한 expiation(속죄), propitation(화해)로 보아서 하나님이 우리의 죄에 대한 진노함을 풀어버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죄인으로 보지 않고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는 행위이다. 이런 구원론의 체계가 바울에게 있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바로 이것을 바울 신학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바울신학의 모든 다른 요소들이 전부 이 진리에 의해서 포용되고 해석될 수 있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이 우이 죄에 대한 진노함을 풀어버린 대속의 제사인데 그것이 구원의 사건이다.


구원의 덕은 무엇인가? 구원의 덕을 어떤 개념으로 어떤 카테고리로 해석하냔면 법정의 카테고리로서 우리에게 무죄석방이 선언되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 법정의 카테고리가 종교개혁자들에게 있어서는 바울 신학의 구원론의 전부인줄 알았는데 신비적-윤리적(Mystical-Ethical)체계가 있다는 것이다.

(2) ꠆ꠏ
신비적-윤리적(Mystical-Ethical)체계 ꠐ with Christ (συν χριστω)
ꠌꠏin Christ(εν χριστω)


여기에서의 중심 개념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고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어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원론의 체계가 바울에게 또한 있는데 이것이 신비적 체계이다. ‘신비’라는 말은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데서 나왔는데 초월자와 연합한 것을 신비주의(Mysticism)라고 한다. 원래 Mysticism이라느 말에 종교사적인 정의는 바로 초월자와 연합을 꾀하는 사상을 가리킨다.


자유주의 학자들에 의하면 법적체계의 구원론이 바울의 유대교적 배경에서 왔고 바울의 신비적-윤리적 구원론은 헬라적 배경에서 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바울이 헬라 종교와 문화의 영향으로 이와 같은 구원론을 전개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면 우리의 영이 승리를 하고 그리하여 우리 자아가 진정한 사랑과 자유의 삶을 살고 윤리적 탈바꿈을 자져온다. 법적체계의 구원론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이었다. 우리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버린 대속적 죽음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육신의 힘을 이기고 그리고 부활한 예수와 연합해서 그의 부활의 삶에 동참하는 것이다.


자유주의 학자들에 의하면 바울에게 있어서 이러한 두가지 체계가 연합되지 못하고 종합되지 못하고 긴장을 이루는 가운데 공존했다는 것이다. 후에도 다루겠지만 지금까지도 바울의 구원론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는 이 두가지 체게가 따로 따로 나올때 바울의 구원론에 있어서 이 두 쳬계가 서로 독립되어서 혼합되거나 종합되지 못한 상태로 공존하는 것이냐? 아니면 이게 사실상은 한 구원론인데 이에 대한 두가지 다른 표현들이냐? 이것들이 게속 issue로 남아 있다.


자유주의 학자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앞에서 말한대로 감정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낭만주의 시대의 사람들과 같다. 따라서 이들은 감정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며 심리학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바울 신학을 심리학적으로 접근하여 바울의 신학적인 언명들을 심리학적으로 점급하여 해석하려는 경향을 많이 보였다.


대표적으로 Holtzmann은 바울신학에 있어서 다메식 도상에서의 체험을 객관화요, 설명이요, 일반화요, 체계화로 본다. 다메섹 체험 이전에 바울은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에 충실하려고 하면 할 수록 더 큰 죄인임을 깨닫는다. 바리새인 바울의 도덕적인 파산과 그것으로 인한 괴로움을 롬 7장에서 읽어낼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다메섹 도상에서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되었는데 이 새로운 체험을 Holtzmann은심리학적으로 분석해서 바울의 기독론, 구원론 등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래서 Liveralism의 또 하나의 특징이 바로 바울신학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이다. 바울의 신앙 체험을 강조하고 이 신앙 체험을 심리학적으로 표횬함으로 객관화하고 체계화한 것이 바울신학이다. 이렇게 본 것이다. 그래서 말로 표현되고 설며되고 객관화되고 체게화된 이 신학적인 언명들을 이해하려면 그것들이 표현하는 바울의 신앙체험을 깨달아야 하는데 그것을 심리학적인 접근방법으로 깨닫는다는 것이다.

5.W.Wrede
바울 연구에 있어서 분수령을 이루는 Wrede는 예수 연구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마가 복음에 소위 ‘메시야적 비밀’이라는 책을 써서 예수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하고 그리고 복음서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하나의 분수령을 이룬 사람이다.
그런데 그이 조그만책 Paulus(1904)에서 Wrede는 Holtzmann에 의해서 대표되는 19세기 바울 해석을 근본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바울신학은 바울 개인의 종교적인 체험의 표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사,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가 바울신학이 중심이다.


또한 Wrede는 바울신학은 헬라사상에 비추어 해석될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유대교적인 전제에 의해서 펼쳐진 것이기 때문에 묵시문학적 종말론에 의거해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의 주장 가운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바울의 기독론은 역사적 예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바울시대에 널리 있었던 신화적인 구원자 신화를 나사렛 예수에게 뒤집어 씌움으로 발생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의 기독론과 구원론에 근거하는 교회의 신앙고백이 주로 바울의 기독론에 근거하는 한 우리 기독교의 진정한 창시자는 예수가 아니고 바울이라고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여기서부터 생기는 유명한 문제-물론 그전 Liberalism부터 나왔지만 ,이 Wrede에 의해서 더 아주 예리하게 다루어지는 문제가 바울과 예수 였는데 그 순서조차 ‘Paul & Jesus’ 쓴다.(‘예수와 바울’로 쓰는 것이 아니고 ‘바울과 예수’로 쓴다). 바울이 예수를 선포함에 있어서 그 당시의 역사적인 예수와는 별 관계가 없이 당시 유행하던 구원자 신화를 예수께 적용함으로서 이 기독론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Wrede의 조그만한 책이 바울 연구사의 중요한 이유는 이렇다. Liberalism은 바울신학에 있어서 두 가지 구원론인 상이한 체계를 발견하는데에 그치지만 Wrede에 의하면 바울의 구원론의 본질은 법적인 체계이고 따라서 Justification의 카테고리는 바울 신학의 본질적인 일도 아니고 갈라디아나 로마나 빌립보에서 유대주의자들과 싸우기 위해서 임기웅변으로 어쩌면 심지어 기회주의적으로 개발한 전투무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Kamfeslehre(Kamp의 싸움)이라고 한다. 즉 싸움을 하기 위해서 개발한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바울 신학의 중심부분도 본질적인 부분도 아니라고 말한다. 종교개혁자들은 Justification을 바울신학의 중심으로 보았는데 Wrede쯤에 와서는 별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바울 신학의 본질이 아니고 이것은 유대주의자들과 싸우기 위해서 개발한 것인데 그것이 마치 바울 신학의 중심인 것 같이 오해됐다는 것이다.
이미 바울 연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몇 가지 issue들이 우리에게 제기되었다.


역사적인 예수와 바울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이것도 바울 연구의 아주 중요한 issue이다. 신약신학 1같으면 이것을 아주 많이 강조한다. 역사적인 예수의 가르침과 행적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래서 어떻게 바울의 신앙고백과 선포(케리그마)가 발생했나? 여기에서 그런 신학자들이 주장한바 처럼 무슨 단절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아주 오묘한 연결을 했고 승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한 바울신학의 구원론에 있어서 무엇이 제기됐는가? 구원론에 있어서 이런 다양한 카테고리(체계) 이것도 바울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issue이다.


또한 무슨 문장을 이루고 있는가? 도대체 이 칭의론이 바울 복음의 본질이냐? 즉 종교개혁자들이 생각했고 우리가 정통 개신교가 고백해온대로 칭의론이 바울의 구원론의 본질이고 중심이냐? 아니면 이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유대주의자들과 싸우는 그 상황에서 잠깐 개발된 것에 불과하냐? 이런 것도 중요한 issue이다.


또한 바울신학의 중요한 issue는 바울의 사상적 배경이 유대교냐? 아니면 헬라사상이냐? 하는 이런 것도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가 이처럼 바울 연구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는 이유는 바울신학에 있어서 중요한 issue(요점)들을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요점들을 머리 속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6.종교사학파(Religios Deschichtlichie Schule/Religion Historical School)
19세기 말부터 성경의 여러 사상들과 제도들 또는 개념들을 지중해 연안의 세계, 또는 근동 세계의 고대 종교들과 비교하여 연구하는 운동이 발생한다. 이런 운동을 하는 학파를 종교사학파(옛날 문서들에서는 ‘비교 종교학’이라고도 하는데 오새는 잘 안 쓴다.)라고 한다.


그래서 세례와 성만찬을 신비 종교들에 있었던 유사한 행위들과 비교하여 연구하는데 이 학파의 초기에 있었던 사람들은 세례를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한 것으로 해석한다. 가령 롬6장은 헬라 세계의 신비종교들이 자연신(isis,osiris,mithra)들과 같은 것으로 본다. 자연이 어떤가? 봄에 생명이 싹터 가지고 여름에는 무성하고 가을에는 말라 비틀어지고 겨울에는 다 죽어 버린다. 그 다음에 또다시 봄에 생명현상이 솟는다. 이러한 죽고 다시 살아남 즉 죽고 삶의 cycle이 자연현상인데 자연 현상 뒤에 이와 같은 신들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신들이 바로 스스로 죽고 부활하는 신들로 보았다. 그래서 이런 신들과 연합을 하면 병합을 하면 이 신들과 함께 죽고 부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신들과 연합하는 의식하는 것이 바울 교회의 세례 의식과 비슷하고 또한 신들과 지탱하는 수단이 신들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내용은 바울신학에 있어서 성만찬과 비슷하다. 그래서 바울의 세례에 대한 가르침이라든지 성만찬 가르침은 이러한 신들을 섬겼던 신비종교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것이다. 역사적인 예수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원래 유대교적 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팔레스틴 유대 기독교와도 관계가 없고 바울이 헬라 신비종교들에서 빌려 가지고 온것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예수가 주’라는 신앙고백도 다 이런 것에서 왔다는 것이다. 이것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학자가 W.Busset이다.


W.Busset의 유명한 책 ‘Kyrion Christos(1921)라는 책에서 부셑은 일단 W.Heitmuller가 제시한 두 교회론을 이어 받아서 말한다. W.Hertmuller의 두 교회론은 예루살렘 또는 팔레스타인에서의 베드로,요한,야고보 등을 중심으로하는 유대 기독교가 있었고 또한 헬라 기독교가 있었는데 바울이 중심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Jewish Christianity에서는 아직도 율법과 유대교의 언약 사상(선민사상), 유대교의 특수주의(특별히 선택된 백성, 즉 유대주의)가 있었고 Hellenistic Christianity에 있어서는 헬라 종교(신비종교)의 영향 아래 전혀 새로운 기독교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W.Heitmuller의 두 교회론을 받아들여서 그 위에다가 그것을 설명했다.


그는 설명하길 팔레스틴에 있는 유대 기독교에 있어서 예수가 ‘곧 올 인자’ 즉 곧 돌아올, 재림할 인자-‘그 사람이 아들’로서 그를 기다리는 것이 그들이 신앙의 중심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래 지향적인 종말론이 그들이 신앙의 중심이 었다는 것이다. 예수가 인자-그 사람의 아들로서, 곧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와서 그의 심판하고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는 이것이 그당시의 유대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었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바울을 두고 하는 Hellenistic Christianity에서는 예수가 지금 현재 ‘영’으로 그의 예배자들 가운데 임재하는 ‘주’로서 예배의 대상이 되고 지금 현재 그를 신봉하는 자들이 그와의 신비적인 하나됨을 체험해서 구원을 입는다는 것을 신앙이 중심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osiris,isis,mithra 등과 같은 헬라의 신비종교 영향 아래 발달한 새로운 신학이며 새로운 기독교로서 바로 이 헬라 신비종교에서 이러한 여신들이 ‘주’라고 불림을 받았기에 예수도 ‘주’라고 신앙고백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Bousset의 이론에 의하면 초대의 유대 기독교 교회에서는 예수를 예배하지 않았고 다만 예수를 재림하는 인자로 기다릴 따름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Hellenistic Christianity에 와서야 비로소 예수를 예배하게 되고 예수가 예배의 대상으로 신격화되었으며 지금 성령으로 예배자들 가운데 임재하시는 분으로서 그와의 영적인 하나됨을 체험케 하는 분으로 이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Bousset의 기독론, 또는 신학에 의하면 ‘예수가 주다’‘예수가 하나님이 아들이다’하는 신학은 모두 전적으로 Hellenistic Christianity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현재의 구원을 강조하는 구원론은 다 여기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W.Bousset와 쌍벽을 이루는 종교사학파의 대표자는 바로 R.Reitzenstein이다. 그는 ‘Corpus Hermeticum(Hermet:목차)’라는 하나의 문서와 헬라의 신비종교들 그리고 이란의 종교들을 연구하였다. 근동 세계와 지중해 세계에 보편적으로 태초의 인간에 대한 신화(Urmensch Myth/Ur;태초,처음,Mensch;사람/Primal Man Myth)가 널리 퍼져 있었는데 인도로부터 시작하여 지중해 서안까지에 이르는 방대한 중동지역의 고대에 ‘최초의 인간에 대한 신화’가 있었다고 한다. 신화가 약간 변형되어서 인도 종교들에도 나타나고 이란 종교들과 바벨로니아 종교에도 나타나며 에집트의 종교들에서도 다 나타나는데 헬라 종교에도 나타나고 히브리 사람의 종교에도 나타난다. 그래서 창세기의 아담도 사실은 이 중동에 널리 퍼져 있는 태초의 인간에 대한 신화의 한 견해(책)라고 주장했고 이것이 헬라 세계에서는 어떻게 신화로 발전하느냐 하면 헬라의 존재론적인 이원론, 즉 Idea의 세계에 속한 본질(Essence)의 세계, 또는 빛(light)의 세계 또는 영원의 세계에 속한 우리 인간의 영혼(Soul)이 물질의 세계 이 밑의 세상, 우리의 몸(matter body), 이것은 시간의 세계에 속하기 때문에 변화의 노예가 되어서 낳고 ,눕고,병들고,죽는다. Body가 사망에 갇혔다. 그라니까 구원이라는 것은 바로 몸 속에 갇힌 영혼이 Idea의 세계라는 본향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즉 이러한 Idea의 세계에 속한 영혼이 태초의 몸 속에 들어가 타락을 하였고 다시 Idea의 세계에 복귀해서 구원을 입는 것과 같은 헬라적인 인간관,구원관을 객관화한 것이 태초인간 신화라고 보았다. 그래서 Reitzentein에 의하면 태초 인간이 light의 존재였는데 암흑의 존재와 싸워가지고 져서 그의 몸이 산산조각이 났는데 바로 그 빛의 조각(태초인간)들이 우리 인간들의 영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조각을 많이 받아가지고 철학을 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사람으로, 어떤 사람은 조각이 하도 적어가지고 그 본향의 세계에 대해 완전히 망각한 가운데 있다가 결국, 물질주의(육신주의)적인 세상의 종국이 일어나고 이런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IDEA,LIGHT,ESSENCE
SOUL 영원
ꠐ ↑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ꠊ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ꠊꠏꠏꠏꠏꠏꠏ
↓ ꠐ
MATTER(BODY) 시간


그런데 Ur-Mensch가 다시 나타나서 자기 몸 조각을 받은 인간들의 영혼들을 일깨웠는데 암호를 만들어서 그 암호로 일깨웠다는 것이다. 군대에서 암호로 암호하면 자기편으로 알아 듣는다. 이처럼 Ur-Mensch가 와서 인간들에게 암호를 말하면 그 말을 알아 듣는 사람은 자기의 몸 조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빛의 조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만을 다시 이끌로 하늘 나라의 세계(Idea)로 복귀한다. 그런데 그 암호가 바로 비밀지식이다. 이렇게 해서 Ur-Mensch Myth가 바로 영지주의(Gnosticism)로 바뀌어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은 자기들만이 가지고 있는 비밀 지식이 Ur-Mensch의 암호이고,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영혼이 본질의 세계로 빛의 세계로 복귀하여 구원을 받는다고 보았다. 이처럼 인간 영혼이 물질의 결합으로 타락함과 그것으로 복귀함이 구원이라는 전형적인 헬라적 인간관과 구원관을 객관화하고 극화한 것이 Ur-Mensch라는 것이다 .



그런데 Reitzenein은바로 이와 같은 영지주의적인 ‘태초의 인간에 대한 신화’를 바울이 예수에게 뒤집어 씌웠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예수와는 아무 관계없이 예수에게 이 신화를 뒤집어 씌워서 바울의 기독론을 형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기독론에 의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어째서 하나님의 아들인가? 빌2:1-12을 보면 원래 예수가 하나님으로서 본체가 하나님과 같은 분이다. 그렇지만 그 동등함을 취하지 않고 인간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바라는대로 부활했다. 예수가 이렇게 하나님 처럼 하나님의 아들로서 물질의 세상으로 들어와서 암흑의 세상에 죽음을 체험을 맛보고 그러나 다시 부활하여 복귀하는 이 드라마(극화)인 빌2:1-12은 Rietzenstein에 의하면 사실은 바울이 역사적 예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헬라 세계에 태초인간에 대한 영지주의 신화를 예수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서 이 사상을 이어받아 가지고 아주 정교하게 만들고 바울 신학에 있어서 그 근본으로 삼은 사람이 바로 불트만이다.
그래서 1950-60년대 주로 이것에 대한 논쟁이 아주 격렬하였다. 진짜 바울신학이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냐? 바울의 기독론이 영지주의의 신화의 역사화냐? 영지주의 신화를 예수에게 뒤집어 씌움으로 역사화한 것에 지나지 않느냐? 바울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도 바울의 아담, 기독론, 또 바울이 교회를 하나님의 몸이라고 하는 것, 이런 모든 것들에 있어서 Reitzenstein의 영향을 받은 불트만 학파는 이것들 모두가 영지주의에서 왔다고 한다. 진짜 그러는가에 대한 토론이 1950-1960년대에 걸쳐 70년대 중반까지 격력하게 논의되었다. 이것은 바울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issue가 아닐 수 없다.

출처 : 잭슨빌 교회개혁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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