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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인 명설교편◑/이정익목사 명설교(385편)

믿음의 경주

by 【고동엽】 2021. 11. 2.

 믿음의 경주

 

 

 

 

                                      3:12-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일 즉 뒤에있는 것은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

 

                        하여 ... 달려가노라.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금년은 소의 해라고 합니다. “소처럼 우직하게 살자”는 슬로건도 나왔습니다. 작가 심우섭이 상주시 사벌면 묵산리에서 있었던 전설을 책으로 펴냈습니다. 동네에 누렁소 한마리가 있었습니다. 이웃집 할머니가 너무 잘해주었습니다. 할머니가 죽자 소가 병이 나서 앓다가 어느 날 고삐를 풀고 사라졌습니다. 혹시나 하고 할머니 무덤에 가 보니 거기 앉아 기진 한 채 울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사진을 보여주자 기운을 차린 소는 집으로 와 할머니 집부터 찾았습니다. 동네에서는 의리 있는 소라 해서 죽은 후 할머니 무덤 곁에 묻어 주었다고 합니다. 금년 한해는 우리 모두 이 소처럼 우직하게 살았으면 합니다.

 

 성경에 그 소처럼 아주 우직하게 살았던 사람이 사도바울입니다. 본문은 그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내용입니다. 본문에서 빌립보교회에 예수님의 모범을 본받아 겸손히 서로 섬기고 살아가라고 권고했습니다. 당시 핍박자들은 바울을 따라다니며 괴롭혔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그들을 “개들(2), “행악자(2)”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기 개는 그냥 개가 아니고 길거리를 배회하는 악한 개들을 표현한 말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경멸의 대상을 말할 때 “개들”이라고 표현했고 특히 거짓 교사들을 표현할 때 “개”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들은 숨어서 바울을 괴롭히고 거짓 사도라고 부추겼지만 바울은 개의치 않고 오직 선한 전도자로 충실하려 애썼습니다. 그러면서 고백하기를 “나는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고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 나는 오직 예수께로부터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12)”고 했습니다. 바울은 한때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사람으로 살다가 어느 날 예수를 만나고 회심하여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때 가진 그의 목표는 “예수 안에서 완전해 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나는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즉 “주께서 나를 구속해 주셨으니 나도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려간다”는 뜻입니다.  

 

 당시 빌립보교회 교우들은 아직도 율법주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행위, 의식, 할례를 강조하고 율법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받은 영적은혜가 전부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나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여기 뒤에 있는 것은 율법주의, 그의 이력, 혈통을 말합니다. 바울은 “지금 나는 그것들에 대해서 미련이 없다, 나는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내가 예수를 만나 회심한 것이 다가 아니고 영적 성장을 위해서 달음질 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는 작은 체구의 사람이었지만 큰 생각, 큰 뜻, 깊은 믿음, 원대한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이 바울의 생각과 각오로 시작했으면 합니다.    

 

 

 

 

 

기대

 

 

 

 

바울은 “앞에 있는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늘 상을 기대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최선을 다 하고 달려갔습니다. 바울은 믿음을 달리기 경주에 비유했습니다. 달리는 자에게는 상이 있듯이 신앙의 마지막에는 상이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기대와 미래와 오늘 심은 것이 있는 사람은 바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대가 있는 사람은 달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루게 됩니다. 노만 필 박사가 “꿈을 가지라”는 말을 했습니다. 꿈을 가지려면 먼저 세 가지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마음에 그림을 그리는 일”입니다. 즉 계획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막연한 계획이 아니고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라고 했습니다. 그림을 구체적으로 그리게 되면 오늘 수고하고 준비하여 마침내 꿈을 이루게 됩니다. 마음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우중 씨는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고층 건물을 짓겠다고 동분서주 했습니다. 그때 마다 경쟁 대상인 미국의 건설사가 볼 때 작은 사람, 작은 나라에서 큰 건물을 짓겠다고 다니는 모습이 우습게 보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한국 같은 조그만 나라에서 어떻게 큰 건물을 짓겠다고 그러느냐”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김우중 씨가 “하루 8시간씩 일하는 미국은 그런 건물 짓지 못하지만 우리 한국은 하루 24시간씩 일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실제로 그런 일을 해 낼 수 있었습니다. 정주영 씨는 50년 전에 “나의 소원은 우리 손으로 만든 배와 자동차들이 세계 5대양 6대주를 누비고 다니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50년 전 우리 손으로 그렇게 높은 빌딩을 짓는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손으로 만든 배와 자동차들이 5대양 6대주를 누비고 다닌다는 것도 꿈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꿈이 50년 만에 실제로 일어난 것입니다. 마음에 그림이 기리는 일이 이렇게 중요한 일입니다.  

 

 두 번째는 기도하는 일입니다. 계획이나 꿈은 내가 그리고 가지는 것입니다.  그 꿈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꿈을 감독하시고 조정하시고 이루십니다. 어떤 분이 출근하니 책상위에 해직 통지서가 놓여 있었습니다. 순간 원망과 분노가 일어났습니다. 마침내 가출해서 방황하다가 돌아와 아내에게 “나 죽고 싶소, 내가 지금까지 최선을 다했는데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소”하고 원망을 했습니다. 그 모습을 아내가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한마디 했습니다. “내가 옆에서 지켜보니까 당신은 이 상황을 놓고 진지하게 기도하는 것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 말에 남편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원망을 떨쳐내고 건축업을 시작했는데 잘 되었습니다. 여기저기 출장을 다니며 호텔에 묵었는데 값이 너무 비쌌습니다. 모텔에 묵으니 시설이 너무 낡았습니다. 그래서 중간급 숙박시설을 하면 어떨까 생각하다가 만든 것이 오늘 “홀리데인 인”이라는 호텔 체인점을 개발한 캐몬스 윌슨입니다.  

 

 

 세 번째는 “실현하는 일”입니다. 즉 행동하라는 말입니다.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를 때는 엘리사가 소를 끌고 밭을 갈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엘리야가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엘리사는 하던 일을 멈추고 집에 가서 쟁기를 부수고 소를 잡아 동네사람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배설하고 따라나섰습니다. 선지자의 길이 아무리 어려워도 실패자로 고향으로 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각오를 나타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지자로서 뜻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단의 로마인들이 로마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배를 타고 아프리카 칼타고로 떠납니다. 마침내 도착하자 타고 온 배에 불을 질러 태워 버렸습니다. 아무리 고향이 그리워도 구세계에는 가지 않겠다는 각오 때문입니다. 그것이 실현하는 태도입니다. 실현하려면 행동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앞에 있는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누구도 못 말입니다. 이런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지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실현하고 이루고 성취하는 것입니다.

 

 

 

 

열심

 

 

 

 

사도바울은 12절과 14절에서 “달려간다”는 말을 두 번씩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나는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에 두 가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나는 아직도 영적 성숙을 더 이루어야 한다”는 말일 것이고 또 하나는 “지난 시간 나의 삶에 오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쉴 시간이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주 열정적으로 일했습니다. 바울은 그 삶을 “달려간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열심히 전도자로 살아가는 모습 중에 대표적인 모습은 사도행전 1419절 이하에 있는 모습일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루스드라에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이 나타나 방해했습니다. 이웃 도시인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까지 와서 방해를 했습니다. 그래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전도를 하니 화난 유대인들이 바울을 돌로 쳤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동구 밖에 던지고 돌무더기를 쌓았습니다. 성경을 보면 그때 “제자들이 둘러섰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제자들이 “장례 치룰 일을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참 후 바울이 돌무더기를 헤치고 나왔습니다. 그때 그의 몸은 부러지고 깨지고 터졌을 것입니다. 그 몸으로 성내로 들어가 하루 밤을 지낸 후 다음날 더베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더베는 30km 되는 거리입니다. 그 길을 순전히 걸어서 갔을 것입니다.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감동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바울이 가는 곳 마다 인도하시고 함께 하시고 기적으로 동반하셨던 것입니다. 그가 물에 빠지면 건지시고 독사에 물리면 낫게 하시고 감옥에 갇히면 찬송하고 법정에 서면 일장 전도를 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곳에는 반드시 기적이 수반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삶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제자들이 고기도 잡히지 않는데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그물을 던졌습니다. 던지고 또 던지고 밤새워 던졌습니다. 그 모습을 뒤에서 예수께서 보시고 저들이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하고 그들을 불러 제자를 삼으셨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는 고넬료의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베드로를 청하라”는 계시를 주셨습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2004년도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남자 수영선수들이 사이판으로 전지훈련을 떠났습니다. 수영장에서 연습을 무제한 거듭하는 동안 하나 둘씩 떨어져 나갔는데 마지막까지 남은 선수는 중3 열네 살짜리 박태환 뿐이었다고 합니다. 박태환은 하루 보통 1 5m씩 연습했습니다. 1 5 m면 길이 50m 짜리 수영장을 하루 150번씩 왕복한 길입니다. 세계적인 수영선수가 되려면 총 5 km를 연습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길이는 지구 반 바퀴인데 하루 1 m 16년 반을 헤엄쳐야 하는 거리라고 합니다. 한국 양궁선수들이 특히 잘하는 이유가 보통은 하루 연습량이 100발씩 쏘는데 한국선수들은 하루 300-500발씩 쏜다고 합니다. 그리고 올림픽이 가까워지면 밤에 불 켜놓고 천발씩 쏜다고 합니다. 이봉주는 마라톤을 위해 매일 30-40km씩 뛰었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뛴 길이가 지구 5바퀴가 넘는다고 합니다.

 

 세상에 그냥 되는 일이 없습니다. 뭔가 이루려면 남다른 열심히 있어야 합니다. 당뇨병은 옛날에는 없었습니다. 없던 것이 아니고 유전자가 감추어 있어서 없었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임신도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옛날에도 양가집 규수들만은 임신이 잘 안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운동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앉아서 수놓고 글 쓰고 평안하게 살았기 때문에 감추어 있던 유전자가 고개를 들었기 때문에 불임된 것입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불공만 드리면 불임 규수들이 임신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감천이 아니고 하루에 108배씩 100일 동안 불공을 드려보십시오. 온 몸에 땀이 젓을 만큼 심한 운동이 됩니다. 그러니까 고개를 들었던 당뇨병 유전자가 다시 고개를 숙인 까닭입니다. 오늘도 불임자가 많은 것은 모두 편하게 살아서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1960년대 새마을 운동할 때 새벽 일찍 일어나서 보리밥 한 그릇 먹고 하루 종일 일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는 초저녁에 잠자리에 들면 곧 잠이 왔고 그때는 곁에만 다가가도 애가 생겼습니다.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때 그물이 채워지고 꿈이 이루어지고 땀 흘린 만큼 열매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나는 쉬지 않고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목표

 

 

 

 

사도바울은 “푯대를 향하여 .. 상을 위하여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12절에서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13절에서 “내가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14절에서 “푯대를 향하여 .. 달려간다”고 했습니다. 삶에는 달려가는 목표와 푯대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삶에, 그 신앙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달려가는 이유는 복음의 씨를 심기 위함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생산적인 삶은 복음의 씨를 심는 생활입니다. 사도바울이 그토록 쉬지 않고 달려간 것도 복음의 씨를 심기 위함이었습니다. 장차 주어질 천국에서 주어질 상을 위해서 오늘 심었습니다. 그리고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는 뛰어다녔고 부지런히 심고 다녔습니다. 예수를 만난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성숙한 영적 성장을 위해서 그는 매일같이 쉬지 않고 뛰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부르신 그 부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는 열심히 뛰고 달려갔습니다.

 

 

 신앙생활은 심는 생활입니다. 오늘 열심히 심으면 때가 되면 열매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심는 생활에서 가장 좋은 씨는 영혼을 구원하는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전도는 가장 생산적인 투자입니다. 사도바울은 입버릇처럼 한 말이 “달려간다”는 말이었는데 그 달려가는 목적이 전도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내 골육지친이 예수를 믿는다면 나는 주께로부터 끊어져 저주를 받는다 해도 감수하겠다고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그는 얼마나 다급한 마음으로 전도에 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바울시대에는 로마가 세상 끝이라고 믿었습니다. 로마가 전도되면 주님이 오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결혼하는 것도 잊고 가정이루는 일 따위는 바울에게는 사치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웠는데 뜻이 있는 사람들은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도 좋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렇게 절박한 심정가지고 전도를 했고 복음의 씨를 뿌렸고 시간을 바쳤습니다.

 

 전도는 이렇게 긴박성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안일하고 안정되고 평안을 추구하면 못합니다. 북극 선교사 구루펠 일행이 배타고 북극으로 갔습니다. 마침내 북극에 도착해서 짐을 풀자 배에 불 질러 태워 버렸습니다. 아무리 고난이 있어도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는 각오 때문입니다. 그들이 전도에 실패해서 집에 돌아가고 싶어도 다른 방법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길을 하나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일만 남겨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기도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왜 안 들어 주시겠습니까. 능력은 땅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머리에서 나오지도 않습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것입니다. 고로 구루펠 일행의 북극 선교가 성공한 것입니다.  

 

 여러분, 새해 너무 머리나 땅이나 방법에만 의존하지 마십시오. 너무 현실이나 재미나 일이나 사업이나 오늘에만 매여 살지도 마십시오. 그러면 꿈을 잃게 되고 목적을 잃게 됩니다. 삶에서 목적을 잃게 되면 더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어느 장로님이 4월에서 6월이면 골프를 치느라고 주일을 빠졌습니다. 목사님이 “이 다음 천국에 가면 골프를 실컷 치게 될 텐데 그러냐”고 하자 “천국도 골프장이 있습니까, 정말 있는지 확인해 주십시오”하고 말했습니다. 얼마 후 이 둘이 다시 만났습니다. “천국의 골프장 알아보셨습니까” 그러자 목사님이 말씀했습니다. “알아보니까 분명히 있습디다, 그런데 또 한 가지 확인한 것은 당신이 두주 후에 그 골프장에 부킹되어 있습디다.” 그때 그 장로님이 얼마나 놀랐을 것인지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종말론적인 신앙이 최고입니다. “당신이 두주 후에 부킹되어 있더라.” 그 한마디 말에 골프에 대한 정이 뚝 떨어졌을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인의 가장 숭고한 책무는 열심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새해는 사도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매일같이 달려가는 삶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기대를 가지고 열심히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힘쓰면 주님이 여러분의 앞길과 삶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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