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24090

주님의 걸음이 머무는 집 (막5:21~24) 주님의 걸음이 머무는 집 (막5:21~24)갈릴리의 물결은 여전히 사람들의 한숨과 닮아 있었습니다. 낮은 데서 일어나는 파문은 금세 사라지는 듯 보이지만, 그 아래에는 설명할 수 없는 깊음이 숨어 있습니다. 사람의 생애도 그러합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그 영혼의 밑바닥에는 아무에게도 다 말할 수 없는 떨림과 눈물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떨림의 한복판에서 시작됩니다. 바다를 건너오신 예수님께 수많은 무리가 모여들고, 그 수많은 얼굴들 사이에서 한 사람이 앞으로 나옵니다. 그는 회당장 야이로였습니다. 사람들 앞에 서면 체면이 있는 사람, 공동체 안에서 인정받는 사람, 질서와 규범과 명예의 자리에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야이로는 직분으로 서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버지로 서 있.. 2026. 4. 4.
무덤 사이에 피어난 구원의 아침 (막5:1~17) 무덤 사이에 피어난 구원의 아침 (막5:1~17)주님께서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를 잠잠케 하신 그 밤이 지나자, 배는 마침내 이방 땅 기슭에 닿았습니다. 제자들의 가슴에는 아직도 폭풍의 흔들림이 남아 있었고, 젖은 노를 잡았던 손끝에는 두려움의 떨림이 다 마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밤의 바다는 단지 자연의 광포함만을 보여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더 깊은 풍랑 앞으로 데리고 가고 계셨습니다. 물결의 광란보다 더 사나운 혼돈, 바람의 포효보다 더 음침한 절규, 사람의 몸 안에 파고든 어둠의 거처 앞에 그들을 세우고 계셨습니다. 바다는 잔잔해졌으나, 이제 그들이 발 딛는 육지는 또 하나의 폭풍이 기다리는 자리였습니다. 그곳은 거라사인의 지방이었습니다. 그곳에는 사람들의 마을이 있었으나.. 2026. 4. 4.
폭풍 위에 누우신 주님 (막4:35~41) 폭풍 위에 누우신 주님 (막4:35~41)그날 저물녘이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해가 하루의 가장자리로 밀려나고, 빛이 물러가며, 어둠이 조용히 세상의 윤곽을 삼키기 시작하는 시간,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이 한마디는 단순한 이동의 지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백성을 향한 구원의 선언이었고, 시간과 역사와 운명과 죽음을 건너는 은혜의 초청이었습니다. 인간은 늘 자기 편에서 생각합니다. 지금 있는 자리, 익숙한 기슭, 손에 잡히는 안전, 계산 가능한 내일, 눈에 보이는 질서 속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저편으로 부르십니다. 믿음은 늘 저편으로 건너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는 늘 익숙한 해안을 떠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늘.. 2026. 4. 4.
은밀히 자라나는 나라의 봄 (막4:26~32) 은밀히 자라나는 나라의 봄 (막4:26~32)갈릴리의 바람은 늘 눈에 보이지 않으나 들판을 흔들고, 들판은 흔들리면서도 그 바람의 이름을 묻지 않습니다. 하늘은 때로 맑고, 때로는 구름을 깊이 내려 땅의 숨을 덮지만, 씨앗은 그런 하늘의 표정 하나하나에 일일이 항의하지 않습니다. 그저 묻혀 있습니다. 어둠 속에 있습니다. 눌려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썩어지는 듯 조용히 누워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합니다. 어제와 오늘이 똑같고, 오늘과 내일도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침묵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는 자라고 있습니다. 아무도 듣지 못하는 땅속의 미세한 진동으로, 아무도 보지 못하는 생명의 밀어올림으로, 아무도 계산하지 못하는 은혜의 리듬으로, 하나님의 나라.. 2026. 4. 4.
헤아림의 그릇에 부어지는 은혜 (막4:24~25) 헤아림의 그릇에 부어지는 은혜 (막4:24~25)주님께서는 씨를 뿌리시는 분이실 뿐 아니라, 뿌려진 씨가 어떤 마음의 밭에서 어떤 열매를 맺는지를 끝까지 바라보시는 분이십니다. 바람처럼 스쳐 가는 한마디를 하시고 떠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층을 흔드시고, 영혼의 가장 은밀한 방을 열어젖히시며,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붙들고 사는지를 드러내십니다. 막4:24~25의 말씀은 겉으로 보기에는 짧고 단정합니다. 그러나 그 짧은 말씀 안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방식으로 인간의 심령 안에서 역사하는지가 응축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더 받으리니 있는 .. 2026. 4. 4.
등경 위에 놓인 비밀의 빛 (막4:21~22) 등경 위에 놓인 비밀의 빛 (막4:21~22)밤은 언제나 조용히 내려앉습니다. 해가 지고 나면 들판의 윤곽은 서서히 흐려지고, 낮 동안 분주하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하나둘씩 느려집니다. 문들은 닫히고, 창가의 불빛은 더 또렷해지며, 어둠은 세상을 덮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늘 우리에게 말합니다. 어둠은 결코 최종 승자가 아니라고. 어둠은 잠시 덮을 수 있으나, 빛을 삼킬 수는 없다고. 마가복음 4장 21절과 22절의 말씀은 바로 그 거룩한 반전의 선언처럼 우리 앞에 서 있습니다.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이 말씀은 단지 생활의 상식을 비유로 .. 2026. 4. 4.
좋은 땅에 숨은 기적(막4:10~20) 좋은 땅에 숨은 기적(막4:10~20)주님께서 바닷가에 서서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던 그날, 햇살은 물결 위에 부서지고 있었고, 사람들의 얼굴 위에는 각기 다른 기대와 갈증이 얹혀 있었습니다. 어떤 이는 병 고침을 바랐고, 어떤 이는 놀라운 표적을 구경하려 했으며, 어떤 이는 단지 군중의 열기 속에서 자기 외로움을 잊고 싶어 그 자리에 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눈은 언제나 사람의 겉모습을 뚫고 마음의 밭을 보셨습니다. 귀를 향해 말하시는 듯하나 실상은 심령의 깊은 흙을 향해 말씀하시는 분, 입술에 들리는 소리보다 영혼에 새겨질 생명의 씨를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 그분이 뿌리시는 것은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온 생명의 씨앗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본문은, 씨를 뿌리시는 .. 2026. 4. 4.
씨 뿌리시는 손길 (막4:1~8) 씨 뿌리시는 손길 (막4:1~8)갈릴리 바닷가에는 늘 바람이 먼저 도착하였습니다. 사람보다 먼저 물결이 출렁였고, 배보다 먼저 햇빛이 반짝였으며, 말보다 먼저 침묵이 깔렸습니다. 그날도 그러하였습니다. 주님은 다시 바닷가에 서 계셨고, 사람들은 다시 그분께로 몰려왔습니다. 누구는 병든 몸을 끌고 왔고, 누구는 답답한 가슴을 안고 왔고, 누구는 풀리지 않는 삶의 매듭을 움켜쥔 채 왔습니다. 세상은 각 사람의 얼굴을 다르게 만들었으나, 그들이 주님 앞에 나온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목마름이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무엇을 갈망합니다. 먹어도 배고프고, 웃어도 허전하고, 소유해도 공허한 그 깊은 허기 속에서 사람은 결국 말씀을 찾게 됩니다. 사람은 떡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2026. 4. 4.
문 밖에서 부르시는 더 깊은 가족 (막3:31~35) 문 밖에서 부르시는 더 깊은 가족 (막3:31~35)주님께서 한 집 안에 앉아 계셨습니다. 바깥은 분주하였고, 안은 숨죽인 열기로 가득했습니다. 사람들은 빽빽이 둘러앉아 한 말씀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주님의 입술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누군가 조심스럽게 전했습니다.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그 한마디는 인간의 정서로만 들으면 따뜻한 소식처럼 들립니다. 피로 맺어진 사람들이 찾아왔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혈육을 가장 끈끈한 관계라 말합니다. 핏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고, 어린 시절의 추억은 세월을 건너서도 사람의 가슴을 붙잡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 주님은, 놀랍고도 눈물겨운 방식으로, 이 땅의 모든 관계를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깊고 더 영.. 2026. 4. 4.
은혜를 거슬러 닫힌 입술 (막3:28~30) 은혜를 거슬러 닫힌 입술 (막3:28~30)주님께서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실 때, 그 시선은 언제나 죄인의 상처를 찌르기 위한 칼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빛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빛 앞에서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어떤 사람은 오히려 눈을 감아 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고, 어떤 사람은 “이 빛은 빛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막3:28~30은 바로 그 두 갈림길 앞에 선 인간의 비극과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를 동시에 품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 전체에서도 유난히 떨리는 숨결로 읽히는 대목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죄를 사하시는 주님의 한없는 자비와, 그 자비를 끝까지 거절하는 인간의 완고함이 마주 서 있기 .. 2026. 4. 4.
결박당한 강한 자를 넘어 (막3:20~27) 결박당한 강한 자를 넘어 (막3:20~27)주님께서 사역의 한복판에 계실 때, 언제나 햇빛만 비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은혜가 가장 찬란하게 임할 때, 오히려 가장 짙은 그림자가 따라붙곤 했습니다. 하늘의 빛이 땅에 닿을수록, 사람의 눈에 가려져 있던 어둠은 더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마가복음 3장 20절에서 27절은 바로 그 엄숙한 순간을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으나, 무리가 다시 모여들어 식사할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이 장면은 너무도 짧게 지나가지만, 그 속에는 복음의 뜨거운 체온이 배어 있습니다. 주님은 한가한 구경꾼이 아니셨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의 상처와 절망과 눈물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가셨고, 그 때문에 자신의 몸을 돌보실 틈도 없으셨습니다. 구원의 일은 늘 그렇게 시작됩니다. 하늘의.. 2026. 4. 3.
산 위에서 부르신 이름들 (막3:13~19) 산 위에서 부르신 이름들 (막3:13~19)주님께서 바닷가의 소란을 뒤로하시고 산으로 오르십니다. 아래에는 여전히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했을 것입니다. 병든 자들이 손을 내밀고, 귀신 들린 자들이 소리치고, 호기심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다음 말씀과 다음 기적을 기다리며 웅성거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잠시 군중의 열기에서 물러나 산으로 오르셨습니다. 복음서는 아주 짧게 기록하지만, 그 짧은 구절 안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움직이는 깊은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많이 모으는 일보다 먼저 사람을 세우는 일을 하셨습니다. 기적을 행하는 손보다 먼저, 함께 있을 사람들을 부르시는 사랑의 마음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사건보다 사람을 통해 흘러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제도 이전에 부.. 2026. 4. 3.
밀려오는 어둠, 물러서지 않는 은혜 (막3:6~12) 밀려오는 어둠, 물러서지 않는 은혜 (막3:6~12)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였다는 말로 시작되는 이 본문은, 짧지만 놀랍도록 깊고 무거운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주님의 손끝에서는 회복이 일어났고, 메마른 손이 펴졌으며, 굳어 있던 생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생명의 자리 바로 옆에서 사람들은 죽음을 의논합니다. 병든 손이 살아난 그 회당에서, 병든 마음은 더 깊이 굳어집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을 살리시는 그 순간,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기로 뜻을 모읍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역설입니까. 이 얼마나 인간의 심장을 꿰뚫는 진실입니까. 기적 앞에서도 사람은 회개하지 않을 수 있고, 은혜 앞에서도 완고할 수 있으며, 진리.. 2026. 4. 3.
펴신 손, 살아난 날개 (막3:1~5) 펴신 손, 살아난 날개 (막3:1~5)회당 안에는 숨소리마저 조심스러운 안식일의 정적이 깔려 있었습니다. 돌기둥 사이로 스며드는 빛은 고요했고, 사람들의 시선은 조용히 한 방향으로 기울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는 말씀을 듣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었고, 흠을 잡기 위해 온 사람들도 있었고, 아무 말 없이 자기 상처를 끌고 들어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손은 말라 있었습니다. 그는 아마 많은 날들을 그 손과 함께 살았을 것입니다. 어떤 날은 부끄러움으로, 어떤 날은 체념으로, 어떤 날은 남모를 분노로 그 손을 소매 속에 감추었을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그의 손을 보았겠지만, 그의 밤은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의 형편을 알았겠지만, 그의 심장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 회당.. 2026. 4. 3.
안식을 회복하시는 주님 (막2:23~28) 안식을 회복하시는 주님 (막2:23~28)밀밭 사이로 바람이 지나갑니다.바람은 늘 소리보다 먼저 옵니다. 보이지 않지만 스치고, 붙잡을 수 없지만 흔들고, 말하지 않지만 깊은 것을 일깨웁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주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는데, 배고픈 손들이 이삭을 잘라 비벼 먹었습니다. 아주 작은 동작이었습니다. 손끝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손짓이 거대한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보기에는 그것은 단지 이삭 몇 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경계를 넘는 행동처럼 보였고, 금기를 깨뜨리는 몸짓처럼 보였고, 거룩함을 훼손하는 불경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신 것은 달랐습니다. 주님은 사람의 손이 아니라 사람의 굶주림을 보셨고, 행위가 아니라 필요.. 2026. 4. 3.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막2:21~22)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막2:21~22)주님의 말씀이 인간의 심장을 찢어 열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 말씀은 단지 귀에 닿는 소리가 아니라, 오래 닫혀 있던 내면의 문에 조용히 손을 얹는 하나님의 손길이 됩니다. 마가복음 2장 21절과 22절은 짧습니다. 그러나 짧다고 해서 가볍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복음의 본질과, 그 복음을 담아내는 인간의 심령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놀라우리만큼 압축해서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낡은 옷에 새 천 조각을 붙이지 않는다고 하셨고,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너무도 일상적인 비유입니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그림입니다. 그러나 그 비유가 겨누는 중심은 매우 깊고 날카롭습니다. 그것은 단지 생활의 지혜가 아니라, 옛 시대와 새 시대가.. 2026. 4. 3.
신랑이 오신 날 (막2:18~20) 신랑이 오신 날 (막2:18~20)세상에는 오래 배운 슬픔이 있습니다. 사람은 기쁨보다 먼저 상실을 배우고, 노래보다 먼저 한숨을 배우며, 잔치보다 먼저 허기를 배웁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을 기다리지만, 사실 기다림의 가장 깊은 바닥에는 언제나 한 가지 목마름이 있습니다. “누가 내 텅 빈 마음을 채울 것인가.” 배는 음식으로 채워질 수 있으나, 영혼은 떡으로만 살지 못합니다. 입술은 물로 적셔질 수 있으나, 존재는 물만으로는 살아나지 못합니다. 사람은 사랑을 원하고, 용서를 원하고, 받아들여짐을 원하고, 끝내는 죽음보다 강한 어떤 약속을 원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에는 늘 금식이 있었습니다. 먹지 않는 행위로써 더 큰 것을 갈망하는 몸짓, 손을 비움으로써 하늘을 붙드는 기도, 입을 다물고 가.. 2026. 4. 3.
은혜가 앉으신 식탁 (막2:14~17) 은혜가 앉으신 식탁 (막2:14~17)갈릴리의 바람은 늘 사람들의 옷깃을 스치며 지나갔지만, 어떤 날의 바람은 유난히 더 깊이 사람의 속을 건드릴 때가 있습니다. 호숫가에 이는 바람은 고기 냄새와 땀 냄새와 삶의 먼지를 실어 나르지만, 그날 가버나움의 길목에 불어온 바람은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바람 속에는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부르심이 실려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을 겨누고, 한 사람의 굳은 심장을 두드리고, 한 사람의 닫힌 문을 여는 하늘의 명령이 실려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누가 깨끗한 사람이고 누가 더러운 사람인지 쉽게 판단합니다. 누가 가까이할 만한 사람이고 누가 멀리해야 할 사람인지 금세 결론 내립니다. 그러나 복음은 늘 인간의 결론이 끝난 자리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2026. 4. 3.
지붕을 뚫고 내린 은혜 (막2:1~12) 지붕을 뚫고 내린 은혜 (막2:1~12)가버나움의 한 집 안에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찼습니다. 숨결과 숨결이 부딪히고, 발끝과 발끝이 포개질 만큼 좁았습니다. 문 앞에도 사람이 가득하여, 더는 들어설 틈이 없었습니다. 그 집은 어느새 작은 우주가 되었습니다. 바깥에서는 먼지 일고, 안에서는 말씀의 향기가 피어오르며, 사람들의 눈빛은 한 곳을 향해 모였습니다. 예수께서 계셨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시는 주님이 그곳에 계셨고, 그분의 입술에서 떨어지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눌린 영혼에게는 빛이었고, 메마른 심령에게는 봄비였으며, 오래 닫혀 있던 가슴에는 문을 두드리는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그런데 그 집으로 오고 있는 또 하나의 발걸음이 있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발걸음이 아니라 어깨의 흔들림이었습니다. 네.. 2026. 4. 3.
손 내미신 거룩한 사랑 (막1:40~45) 손 내미신 거룩한 사랑 (막1:40~45)한 사람의 삶이 무너지는 데에는 아주 긴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때로는 단 한 번의 진단으로, 단 한 번의 낙인으로, 단 한 번의 외면으로, 사람은 세상 한복판에서 순식간에 바깥으로 밀려납니다. 몸은 아직 숨을 쉬고 있는데, 관계는 이미 죽어 있고, 입술은 아직 말을 하는데 아무도 그 말을 들어 주지 않으며, 심장은 아직 뛰고 있는데 세상은 그를 마치 없는 사람처럼 지나쳐 갑니다. 오늘 본문 앞에 서 있는 그 나병환자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그는 병만 앓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고립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는 상처만 가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배제를 뒤집어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피부만 병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제도의 담.. 2026. 4. 3.
새벽 어둠을 가르신 주님의 길 (막1:35~39) 새벽 어둠을 가르신 주님의 길 (막1:35~39)아직 세상이 눈을 뜨기 전이었습니다. 밤이 완전히 물러가지도 않았고, 아침이 다 밝아오지도 않았습니다. 어둠과 빛이 서로의 경계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 사람의 마음으로 말하면 울음과 소망이 동시에 머무는 시간, 바로 그때 예수님은 일어나셨습니다. 사람들이 아직 주무시고 있었고, 마을은 아직 고요했으며, 어제의 기적에 대한 소문도 잠시 침묵 속에 묻혀 있던 그때, 주님은 홀로 한적한 곳으로 나아가셨습니다. 복음서는 이 장면을 짧게 기록하지만, 그 짧은 문장 안에는 하늘과 땅을 잇는 깊은 울림이 숨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전날 밤 늦도록 병 고침과 귀신 축출의 광경을 보았습니다. 가버나움은 숨 막히는 은혜의 충격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수많은 .. 2026. 4. 3.
해질 무렵 문 앞에 서신 주님 (막1:32~34) 해질 무렵 문 앞에 서신 주님 (막1:32~34)해가 저물었다는 말은 단순히 하루가 끝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저녁은 자주 인간의 한계가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낮에는 버티던 얼굴이 저녁이 되면 무너집니다. 사람들은 낮 동안에는 자기의 체면으로 서 있지만, 해가 기울기 시작하면 자기의 진짜 형편을 숨기지 못합니다. 낮에는 웃던 사람이 밤에는 울고, 낮에는 강한 척하던 사람이 밤에는 자기 상처를 바라봅니다. 그래서 저녁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영혼의 은유입니다. 인간의 밝음이 서서히 꺼져 가고, 자기 힘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견디는 척하던 내면이 마침내 무너지는 시간입니다.바로 그때, 마가복음 1장 32절에서 사람들은 병든 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옵니다. 얼마나 놀라운 장면입니까. 사람들은 .. 2026. 4. 3.
열병 곁에 서신 손길 (막1:28~31) 열병 곁에 서신 손길 (막1:28~31)갈릴리의 아침 공기는 늘 사람의 숨결과 함께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바닷가에는 젖은 그물이 놓여 있었을 것이고, 골목마다 밤새 식지 않은 흙냄새가 서려 있었을 것이며, 집집마다 오늘 하루를 견뎌야 하는 사람들의 낮은 한숨이 보이지 않는 안개처럼 걸려 있었을 것입니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 오늘과 다르지 않을 내일, 그렇게 흘러가는 삶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간다기보다 버티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평범함의 한복판, 그 누구도 크게 주목하지 않았을 작은 동네에,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한 걸음이 들어옵니다. 예수께서 오십니다. 그분은 성전의 높은 대문으로만 들어오지 않으셨습니다. 왕궁의 계단을 통해서만 임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의 박수와 나팔소리 사이로만 .. 2026. 4. 3.
거룩하신 이의 한마디 (막1:23~27) 거룩하신 이의 한마디 (막1:23~27)가버나움 회당 안에는 이미 오래된 숨결이 배어 있었습니다. 안식일마다 사람들이 모여 들었고, 율법의 낭독이 있었고, 익숙한 기도가 흘렀고, 전통의 자리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늘 하던 대로 들어왔고, 늘 앉던 자리에 앉았고, 늘 듣던 어조로 말씀을 들을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회당 안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은 익숙함이 지배하던 공간에 하늘의 낯선 빛을 들여오셨습니다. 그분은 단지 새로운 교훈 하나를 더하는 정도가 아니라, 썩은 공기 속에 새 창문을 여는 바람처럼, 굳어버린 영혼 위에 하나님의 살아 있는 현재를 쏟아 부으셨습니다. 그분의 등장은 조용했으나, 그 임재는 천둥 같았습니다. 그분의 걸음은 사람의 발걸음이었으나, 그분의 권위는 하늘 보.. 2026. 4. 3.
권위로 임하시는 말씀 (막1:21~22) 권위로 임하시는 말씀 (막1:21~22)가버나움의 아침은 언제나처럼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갈릴리의 바람은 어제와 다르지 않았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늘 그러하듯 분주했을 것입니다. 장사하는 자는 물건을 정리하고, 아이들은 골목을 지나며 웃고, 병든 자는 여전히 아픈 몸을 이끌고, 지친 자는 지친 마음을 숨긴 채 하루를 맞이했을 것입니다. 세상은 늘 그렇게,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직전에도 아무 일 없는 듯 흘러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언제나 인간의 평범한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오십니다. 하늘은 종종 요란한 번개보다 조용한 발걸음으로 역사를 바꾸십니다. 막1:21~22는 바로 그 순간을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고,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무.. 2026. 4. 3.
부르심 앞에 남겨진 그물 (막1:16~20) 부르심 앞에 남겨진 그물 (막1:16~20)갈릴리 바다의 아침은 늘 그렇듯 조용히 밝아왔을 것입니다. 밤새 물결을 헤치며 나아갔던 작은 배들이 물가에 닿고, 젖은 그물에서는 바다 냄새와 노동의 냄새가 함께 피어올랐을 것입니다. 손마디는 굳어 있고, 어깨는 무겁고, 삶은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수고를 반복하는 듯 보였을 것입니다. 해는 떠오르지만 사람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해가 뜨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날은 새벽이 와도 영혼은 아직 밤중에 머물러 있습니다. 몸은 물가에 서 있지만 마음은 먼 데 가 있고, 손은 그물을 붙들고 있지만 가슴은 설명하기 어려운 허기와 공허를 붙들고 살아갑니다. 먹고살기 위해 던지는 그물은 분명 필요한 것이지만, 인간은 빵만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 어느 날은 더 사무치게 .. 2026. 4. 3.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막1:14~15)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막1:14~15)갈릴리의 공기는 늘 사람 냄새가 났습니다. 호수에는 그물 젖는 냄새가 있었고, 장터에는 생선과 먼지와 땀과 동전의 냄새가 뒤엉켜 있었습니다. 로마의 그림자는 멀리 있으면서도 가까웠고, 백성들의 한숨은 가까이 있으면서도 하늘에 닿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누구는 세금 때문에 울고, 누구는 병 때문에 앓고, 누구는 죄 때문에 밤을 새웠고, 누구는 아무런 이름도 붙일 수 없는 허무 때문에 멍하니 길 끝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살고 있었으나, 어딘가 깊은 곳에서는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먹고는 있었으나 목말랐고, 웃고는 있었으나 안쪽에서는 울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세상이 굴러가는 듯했으나, 영혼의 시계는 멈춘 듯한 시대였습니다.그때 복음이 걸어 들.. 2026. 4. 3.
광야에 서신 승리 (막1:12~13) 광야에 서신 승리 (막1:12~13)세례의 물가에는 하늘이 열렸습니다.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셨고, 아버지의 음성은 사랑의 깊은 강처럼 아들의 존재 위에 흘러내렸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그 음성은 우주의 중심에서 울려 나오는 선언이었고, 모든 어둠을 밀어내는 빛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복음서는 그 찬란한 장면을 오래 붙들어 두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 같으면 그 영광의 자리에서 조금 더 머물고 싶을 텐데, 성경은 우리를 곧장 다른 장면으로 데려갑니다. 환호에서 적막으로, 강가에서 광야로, 하늘의 열림에서 바람에 모래가 날리는 침묵으로, 성부의 음성에서 사탄의 유혹으로 데려갑니다. 마가는 이 전환을 매우 짧고도 강렬하게 기록합니다. 마치 칼로 어둠을 가르듯 단호합니다. “성령이 곧 예수.. 2026. 4. 3.
광야를 가르며 오시는 복음 (막 1:1~11) 광야를 가르며 오시는 복음 (막 1:1~11)처음은 언제나 작게 열리는 듯 보입니다. 한 줄의 문장, 한 사람의 외침, 한순간의 침묵, 먼지 이는 길 위에 선 한 인물. 그러나 하나님께서 시작하시는 처음은 언제나 세상의 끝을 향해 뻗어 갑니다. 사람의 눈에는 보잘것없는 문장 하나처럼 보일지라도, 하늘은 그 한 문장을 붙들고 역사를 다시 씁니다. 마가복음은 바로 그렇게 시작됩니다. 탄생의 서사도 길지 않고, 족보의 장엄한 문장도 길게 늘어놓지 않으며, 별이 뜨는 밤의 정경을 세밀하게 묘사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번개처럼, 칼날처럼, 심장을 여는 나팔소리처럼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이 시작은 한 문장의 도입이 아니라, 잃어버린 세상의 새 창조의 문입니다. 죄가 .. 2026. 4. 3.
세상 끝까지 함께하시는 왕 (마28:16~20) 세상 끝까지 함께하시는 왕 (마28:16~20)갈릴리의 산은 조용하였습니다. 십자가의 피 냄새가 아직 세상에 남아 있고, 무덤의 돌문이 열리던 새벽의 떨림이 아직 제자들의 가슴에서 다 사라지지 않았는데, 그들은 주께서 일러 주신 그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발걸음은 무거웠고, 눈빛은 흔들렸으며, 마음은 믿음과 두려움 사이를 오갔습니다. 어떤 이는 이미 부활의 소식을 들었고, 어떤 이는 그 소식을 마음으로는 붙들고 싶으나 아직 자기 안의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태는 놀랍도록 정직하게 기록합니다.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이 한 문장은, 얼마나 우리를 닮았는지요. 경배하면서도 흔들리는 마음, 무릎은 꿇었으나 생각은 아직 다 정돈되지 않은 영혼, 찬송은 부르.. 2026. 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