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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왕, 구원의 길 (막11:1~10) 겸손의 왕, 구원의 길 (막11:1~10)예루살렘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감람산 기슭, 벳바게와 베다니를 지나며 주님은 마지막 길 위에 서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그날 그들이 흔들던 종려 가지보다 더 깊은 흔들림이 곧 온 세상을 뒤흔들 것이라는 사실을. 그날 그들이 외치던 환호보다 더 무거운 침묵이 곧 골고다 언덕을 덮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날 그들이 “호산나”를 외치며 맞이한 그 왕이, 칼을 든 정복자로 오신 것이 아니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는 어린양의 왕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이 장면은 화려합니다. 그러나 그 화려함은 세상의 금빛이 아니라, 눈물과 온유와 순종으로 빛나는 하늘의 광채입니다. 여기에는 소란이 있지만, 그 소란보다 더 깊은.. 2026. 4. 7.
눈뜬 자의 길 (막10:46~52) 눈뜬 자의 길 (막10:46~52)여리고의 길목에는 늘 먼지가 많았습니다. 사람의 발이 많이 닿는 곳에는 늘 흙이 일어나고, 인생의 상처가 많은 자리에는 늘 한숨이 일어납니다. 그 날도 여리고의 길은 분주했습니다. 누군가는 장사를 위해 길을 지나고, 누군가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길을 지나고, 누군가는 단지 군중이 모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자리를 기웃거렸습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발걸음 속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한 사람의 인생은 그 길가에 멈추어 앉아 있었습니다. 보지 못하는 사람, 그러나 누구보다 더 절실히 보고 싶었던 사람. 사람들은 그를 바디매오라 불렀습니다. 세상은 그를 이름으로 부르기보다 상태로 기억했습니다. 그는 맹인이었고, 구걸하는 자였고, 길가에 앉은 자였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사람을 존.. 2026. 4. 7.
섬김의 왕, 십자가의 길 (막10:35~45) 섬김의 왕, 십자가의 길 (막10:35~45)야고보와 요한이 주님 앞으로 다가옵니다. 그들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으나, 그 속마음은 뜨거웠습니다. 입술은 공손했으나, 가슴은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 말은 믿음의 고백처럼 들리지만, 실은 아직 깨지지 않은 자아의 그림자를 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곁에 오래 있었고, 누구보다 가까이서 기적을 보았고, 누구보다 자주 그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있었다고 해서 반드시 깊이 안 것은 아니었습니다. 손이 주님의 옷자락에 닿았다고 해서 심장이 그분의 길을 이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주님 곁에서도 여전히 자신을 꿈꿀 수 있습니다. 심지어 십자가를 말씀하시는 예수님 앞에서조차 .. 2026. 4. 7.
앞서 가시는 주님 (막10:32~34) 앞서 가시는 주님 (막10:32~34)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은 언제나 먼지와 햇빛과 숨결이 뒤섞이는 길이었습니다. 누군가의 발걸음이 앞서면, 뒤따르는 사람들의 마음도 그 걸음의 무게를 따라 무거워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아주 짧고도 깊은 떨림으로 우리를 붙듭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더니 예수께서 앞서서 가시는데.” 이 한 문장 안에는 복음의 심장과 구속사의 비밀, 그리고 우리의 인생 전체를 새롭게 보는 눈이 담겨 있습니다. 주님은 뒤에서 등을 떠미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우리를 위험 속으로 밀어 넣고 홀로 남아 계시는 분이 아니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앞서 가시는 분이셨습니다. 죽음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배신과 조롱과 침 뱉음이 기다리는 길에서도, 고난의 정점이 놓인 길에서도, 주님은 제자.. 2026. 4. 7.
버린 자의 백배, 영생의 약속 (막10:28~31) 버린 자의 백배, 영생의 약속 (막10:28~31)베드로가 주님 앞에서 조심스레 입을 엽니다. 그 말은 자랑처럼 들리기도 하고, 서운함처럼 들리기도 하며, 어쩌면 어린아이 같은 확인의 몸부림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이 한 문장 안에는 제자의 헌신도 있고, 제자의 가난도 있으며, 제자의 떨림도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버릴 때 반드시 묻고 싶어집니다. 내가 버린 것은 헛되지 않은가. 내가 포기한 시간은, 내가 내려놓은 눈물은, 내가 감당한 외로움은, 정말 하나님 앞에서 기억되는가. 그 질문은 오래된 질문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도, 모세가 애굽의 궁정을 등질 때도, 다윗이 광야에서 밤하늘 아래 도망자처럼 울 때도, 선지자들이 조롱 속에.. 2026. 4. 7.
붙들 수 없는 것, 붙드시는 은혜 (막10:17~27) 붙들 수 없는 것, 붙드시는 은혜 (막10:17~27)길 위에는 언제나 먼지가 앉아 있습니다.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는 곳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그 먼지는 누군가의 조급함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갈망이기도 하며, 또 누군가의 눈물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마가복음 10장 17절에서 주님은 바로 그 길 위에 서 계십니다. 성전의 대리석 바닥이 아니라, 사람의 숨결과 실망과 탄식이 묻어나는 길 위에서, 예수님은 한 사람을 만나십니다. 그 사람은 뛰어왔습니다. 그는 늦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자세입니다. 달려왔고, 무릎을 꿇었고, 질문도 옳아 보였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2026. 4. 7.
어린 품에 임한 나라 (막10:13~16) 어린 품에 임한 나라 (막10:13~16)해 질 무렵의 길은 이상할 만큼 사람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낮 동안에는 숨겨 두었던 피로가 얼굴 위로 올라오고, 오래 참고 견디던 사연들이 어깨 위에서 먼지처럼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걸어가시던 그 길도 그러하였습니다. 그 길은 단지 한 지방에서 다른 지방으로 넘어가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향하여 좁혀 들어가는 길이었고, 거절과 배척과 고난과 피와 침묵이 기다리고 있는 길이었습니다. 주님의 발걸음은 이미 골고다의 그림자를 밟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길 위에서, 너무도 의외의 풍경 하나가 피어납니다.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오는 장면입니다. 제자들은 꾸짖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노하지 않으실 것 같은 분이 아.. 2026. 4. 7.
언약의 눈물 (막10:10~12) 언약의 눈물 (막10:10~12)집 안으로 들어오신 주님 앞에서 제자들은 다시 물었습니다. 길 위에서는 무리가 있었고, 논쟁이 있었고, 율법을 시험하려는 차가운 시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집 안은 달랐습니다. 집 안은 더 깊은 말씀이 들리는 자리였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질문이 제기되었고, 제자들 앞에서는 진리가 해부되었습니다. 군중 앞에서는 표면이 드러났고, 제자들 앞에서는 하나님의 심장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아주 단호하고도 아프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함이요,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면 간음함이니라. 짧은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짧은 말씀은 한 가정을 흔드는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타락이 얼마나 깊은지, 그리고 하나님의.. 2026. 4. 7.
하나님이 짝지으신 사랑 (막10:1~9) 하나님이 짝지으신 사랑 (막10:1~9)주님께서 유대를 떠나 요단강 건너편 경계로 다시 들어가셨을 때, 사람들은 또다시 그분께로 몰려왔습니다. 늘 그러하셨듯 주님은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사람의 상처를 만지셨고, 사람의 질문을 받으셨고, 사람의 무너진 자리 한가운데에서 하늘의 뜻을 밝히셨습니다. 그런데 그날 바리새인들이 나아와 주님께 질문합니다. 질문의 모양은 신학이었으나, 그 심장은 함정이었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 물음은 단순히 이혼 제도에 관한 행정적 문의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배우려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려 하였습니다. 그들의 입술은 율법을 말했으나, 그들의 마음은 사랑의 창조주 앞에서 사랑을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질문은 “어디까.. 2026. 4. 7.
작은 자를 살리고 자신을 쳐서 거룩에 이르라 (막9:38~50) 작은 자를 살리고 자신을 쳐서 거룩에 이르라 (막9:38~50)요한은 다급한 목소리로 주님께 아뢰었습니다.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보고 우리가 금하였나이다.” 그 말은 단순한 보고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의 속마음이 드러난 고백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보다 우리의 울타리를 더 사랑하고, 주님의 영광보다 우리의 자리를 더 예민하게 붙들 때가 많습니다. 주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보다 내가 중심에 서 있는 질서가 무너지지 않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길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막9:38~50은 단지 몇 개의 교훈을 나열한 본문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제자도의 깊은 내면을 향해 날아오는 불꽃 같은 말씀입니다. 누가 주의 편인가를 묻는 말씀이기 전에, .. 2026. 4. 7.
작아짐으로 안기는 그리스도의 영광 (막9:33~37) 작아짐으로 안기는 그리스도의 영광 (막9:33~37)가버나움의 한 집 안에는 바깥의 먼지와는 다른 공기가 맴돌고 있었습니다. 길 위에서 날리던 발자국의 소리도, 제자들 사이를 스치던 경쟁의 기류도, 이제는 문이 닫힌 방 안에서 조용히 가라앉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문이 닫힌다고 잠잠해지지 않습니다. 길 위에서 품었던 생각은 방 안으로 함께 들어오고, 입술로 말하지 않은 욕망은 침묵 속에서 더 또렷해집니다. 주님은 그 집 안에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길에서 무엇을 의논하였느냐고. 그 질문은 단순한 확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뿌리를 드러내는 빛이었습니다. 그 질문 앞에서 제자들은 잠잠하였습니다. 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감출 수는 있으나 부정할 수는 없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026. 4. 5.
숨기신 길, 열어 두신 구원 (막9:30~32) 숨기신 길, 열어 두신 구원 (막9:30~32)갈릴리의 길은 조용했습니다. 바람은 들판의 이랑을 살짝 쓰다듬고, 멀리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낮은 하늘을 가르며 지나갔습니다. 사람들의 환호가 들끓던 자리도 아니었고, 병든 자들이 몰려와 옷자락을 붙들던 복잡한 장면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 길은 숨을 죽인 듯한 길이었습니다. 주님은 무리를 피하여 지나가셨고,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드러남을 사랑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때때로 감추어진 자리에서 가장 깊이 빛납니다. 사람은 높은 곳에서 영광을 찾지만, 하나님은 낮아지심 속에서 영광을 완성하십니다. 사람은 승리의 깃발을 기대하지만, 하나님은 찢긴 몸과 흘린 피로 영원한 승리를 세우십니다. 그러므로 이 짧은 본문은 짧지만 결코.. 2026. 4. 5.
무릎으로 여는 하늘의 문 (막9:28~29) 무릎으로 여는 하늘의 문 (막9:28~29)직접적으로 특정 현존 설교자의 문체를 그대로 모사하지는 않겠지만, 요청하신 결을 살려 복음주의적이고 개혁주의적이며 구속사적인 깊이, 도시의 상처를 꿰뚫는 통찰, 목회적 온기와 서정적 울림이 함께 흐르도록 정성껏 엮겠습니다.주님께서 산 아래의 소란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가셨을 때였습니다. 바깥은 여전히 사람들의 목소리로 가득했을 것입니다. 절박한 아버지의 숨결이 아직 문틈에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아이를 짓누르던 어둠의 흔적이 아직 방 안 공기 한편에 차갑게 떠다니고 있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침묵은 무겁고, 얼굴은 붉고, 마음은 갈라진 채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미 길 위에서 수많은 일을 보았습니다. 병든 자가 일어나는 것도 보았고, 귀신이 떠나가는 것도 보았고.. 2026. 4. 5.
믿음 없는 세대 한가운데 임하시는 주님 (막9:14~27) 믿음 없는 세대 한가운데 임하시는 주님 (막9:14~27)산 위에서는 영광이 빛났습니다. 잠시 전까지만 해도 주님의 얼굴은 해처럼 빛났고, 옷은 세상의 어떤 표백으로도 희게 할 수 없는 눈부심으로 찬란했습니다. 하늘의 문이 열리는 듯한 순간이었습니다. 제자들은 그 광경 앞에서 숨을 삼켰고, 인간의 언어가 끝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눈부신지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를 거기 머물게 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다시 산 아래로 내려오십니다. 영광의 산 아래에는 언제나 신음하는 세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정상 아래에는 여전히 눈물의 골짜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의 빛이 비친 자리 아래에는 아직도 어둠이 꿈틀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막9:14~27은 우리에게 아주 깊은 진실 하나를 보.. 2026. 4. 5.
산 위에 번진 아들의 영광 (막9:1~13) 산 위에 번진 아들의 영광 (막9:1~13)주님께서 때로는 우리를 평지에서 부르시고, 때로는 골짜기에서 붙드십니다. 그러나 어떤 날에는, 참으로 드물고도 거룩한 어떤 날에는, 우리를 산 위로 데려가십니다. 사람의 소리가 멀어지고, 세상의 분주함이 얇아지고, 영혼의 숨결이 또렷해지는 자리, 거기서 하나님은 우리가 눈으로만 보던 예수님이 아니라, 영광으로 불타는 그리스도를 보게 하십니다. 막9:1~13은 바로 그런 장면입니다. 이 본문은 단지 변화산의 신비를 기록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제자들의 눈앞에서 살짝 젖혀진 영원의 휘장이고, 고난의 길 한가운데서 번쩍 열리는 하늘의 창이며, 십자가로 내려가기 전에 먼저 보여 주신 왕의 광채입니다. 고난이 끝나고 영광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주님께서 친히 .. 2026. 4. 5.
십자가를 따라 걷는 고백 (막8:27~38) 십자가를 따라 걷는 고백 (막8:27~38)가이사랴 빌립보로 향하시는 예수님의 발걸음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먼지와 침묵이 함께 묻어 있었습니다. 길은 북쪽으로 뻗어 있었고, 제자들의 마음은 아직 남쪽, 곧 익숙한 기대와 오래된 열망 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길을 걷고 있었으나, 아직 주님의 길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았고, 권세 있는 말씀을 들었고, 떡이 많아지는 놀라운 광경 앞에 손으로 남은 조각을 거두기까지 했으나, 정작 그 모든 기적의 중심에 서 계신 분이 누구신지는 여전히 안개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은 단지 하나의 질문이 오가는 장면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인간의 입술이 처음으로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자리이며, 동시에 인간의 육체가 처음으로 그.. 2026. 4. 5.
희미함을 지나 밝아오는 은혜 (막8:22~26) 희미함을 지나 밝아오는 은혜 (막8:22~26)벳새다의 공기는 늘 물가의 냄새를 품고 있었을 것입니다. 갈릴리의 바람은 짠내와 흙냄새를 함께 실어 나르고, 사람들의 하루는 고기 비린내와 땀과 소란으로 채워졌을 것입니다. 배를 끌어올리는 손들, 그물을 손질하는 손들, 살기 위해 분주한 손들, 그리고 그 분주함 속에서 닳고 상한 마음들. 주님께서 그 마을로 들어가시자 사람들이 한 맹인을 데리고 옵니다. 그를 붙잡은 손들에는 조급함이 있었을 것이고, 기대도 있었을 것이며, 오래된 체념 끝에 겨우 피어난 마지막 소망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께 한 가지를 구합니다. “손을 대어 주옵소서.” 얼마나 짧은 청원입니까. 그러나 그 짧은 말 속에는 인생의 긴 밤이 들어 있습니다. 볼 수 없다는 것은 단지 풍경을 .. 2026. 4. 5.
표적을 구하는 눈, 떡을 잊은 마음 (막 8:11~21) 표적을 구하는 눈, 떡을 잊은 마음 (막 8:11~21)바다는 여전히 잔물결을 밀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무리가 광야에서 떡을 먹고 배불렀습니다. 빈 들판에 펼쳐졌던 그 식탁은 인간의 계산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은혜의 자리였습니다. 손에 쥔 것은 적었으나 주님의 손에 들린 것은 결코 적지 않았고, 사람들의 눈에는 보잘것없던 떡이 주님의 축사 속에서 하늘의 넉넉함을 드러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기적이 지나간 자리에서 인간의 마음은 곧장 다른 갈증을 품습니다. 이미 은혜를 맛보았으면서도 다시 증거를 요구하고, 이미 공급을 받았으면서도 여전히 부족을 두려워하며, 이미 주님 곁에 있으면서도 그분이 누구신지를 흐릿하게 잊어버립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잊어버리는 마음, 보면서도.. 2026. 4. 5.
광야에 차려진 은혜의 식탁 (막8:1~10) 광야에 차려진 은혜의 식탁 (막8:1~10)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는 늘 두 가지 배고픔이 함께 있습니다. 하나는 눈에 보이는 배고픔이고, 다른 하나는 누구도 쉽게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영혼의 배고픔입니다. 전자는 손으로 배를 만지며 호소할 수 있지만, 후자는 웃음 뒤에 숨고, 예배 뒤에 숨고, 분주함 뒤에 숨습니다. 어떤 사람은 빵이 없어 배고프고, 어떤 사람은 사랑이 식어 배고프고, 어떤 사람은 오래 기도했으나 응답이 더딘 것 같아 배고프고, 어떤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나 마음 둘 곳이 없어 배고픕니다. 세상은 이런 굶주림을 자주 모른 체합니다. 군중은 숫자로만 보이고, 인생은 효율로만 헤아려지며, 눈물은 통계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한 장면을 열어 보입니.. 2026. 4. 5.
열리라, 은혜의 귀와 혀여 (막7:31~37) 열리라, 은혜의 귀와 혀여 (막7:31~37)주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오사 시돈을 지나 데가볼리 가운데로 갈릴리 호수에 이르셨을 때, 사람들은 한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는 듣지 못하는 자였고, 말도 분명히 하지 못하는 자였습니다. 세상은 늘 이런 사람을 주변으로 밀어냅니다. 말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 속마음을 다 전하지 못하고, 남의 말을 온전히 듣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과 한 겹, 두 겹, 세 겹의 벽을 두른 채 살아갑니다. 그는 사람들 속에 있었으나 사람들과 함께 있지 못한 사람이고, 소리의 세계 가까이에 있었으나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웃음이 터져도 반쯤만 알았을 것이고, 이름이 불려도 제때 돌아보지 못했을 것이며, 사랑한다는 말과 위로의 한숨과 새벽의 새소리와.. 2026. 4. 5.
부스러기 은혜의 식탁 (막7:24~30) 부스러기 은혜의 식탁 (막7:24~30)주님께서 갈릴리의 익숙한 길을 잠시 벗어나 두로 지방으로 들어가셨을 때, 그 걸음에는 설명되지 않는 침묵이 있었습니다. 군중의 소음으로부터 멀어지려는 듯한 걸음, 그러나 사실은 한 영혼의 울음을 향해 곧장 들어가시는 걸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예수님의 사역을 “많은 무리”의 이야기로 기억합니다. 병든 자들이 모여들고, 귀신 들린 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제자들이 그 곁에서 허둥대며 서 있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질문과 시험으로 둘러싸는 그런 장면들 말입니다. 그러나 복음서의 눈부신 아름다움은, 그 많은 군중 속에서도 주님이 언제나 한 사람의 눈물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데 있습니다. 하늘의 왕국은 거대한 군중의 박수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한 사람의 .. 2026. 4. 5.
마음을 씻으시는 주님 (막7:1~23) 마음을 씻으시는 주님 (막7:1~23)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먼 길을 걸어왔으나, 진리를 사모하는 순례자의 걸음으로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발에는 먼지가 묻어 있었지만, 정작 그들의 마음에는 더 깊은 먼지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얼굴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주님의 제자들의 손을 보러 왔습니다. 그들은 생명의 말씀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니라, 떡을 먹기 전 손을 씻었는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그들은 하늘이 땅 위에 내려앉은 그 자리에서, 정작 하늘을 보지 못하고 물 한 대야만 바라보았습니다. 이 장면은 이상하면서도 너무나 익숙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자주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도 우리는 본질보다 형식을 보고, 은혜보다 절차를 보고, 생명보다 .. 2026. 4. 5.
물 위로 오신 주님 (막6:45~56) 물 위로 오신 주님 (막6:45~56)주님의 사역은 언제나 찬란한 한낮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무리를 먹이신 기적의 현장 뒤에는, 사람들의 탄성과 경탄이 가득한 밝은 언덕 뒤편에는, 곧장 어둠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크게 임한 자리 다음에는 종종 인간의 연약함이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방금 전까지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고, 제자들은 손에 남은 열두 광주리를 들고 있었으며, 그날의 해질녘은 분명 승리의 빛으로 물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환호의 자리에 제자들을 오래 머물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타고 먼저 건너가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주님의 깊은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사람은 은혜를 체험한 직후에 가장.. 2026. 4. 5.
광야에 차오른 하늘의 식탁 (막6:35~44) 광야에 차오른 하늘의 식탁 (막6:35~44)해가 기울고 있었습니다. 낮의 빛이 서서히 풀리며 들판 위로 길게 눕기 시작하던 그 시간, 사람들의 얼굴에는 조금씩 피곤이 번져 갔고, 아이들의 눈망울에는 배고픔이 어려 왔습니다. 말씀은 여전히 달았으나 육신은 점점 메말라 갔고, 영혼은 주님 곁에 더 있고 싶어 했으나 몸은 떡을 찾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자리가 막6:35~44의 자리입니다. 저물어 가는 날, 비어 가는 손, 모자라 보이는 계산,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작은 도시락 하나. 그러나 성경은 늘 그렇듯이, 인간의 끝이라고 여겨지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시작을 열어 보입니다. 우리의 밤이 깊어지는 지점에서 주님의 식탁은 펴지고, 우리의 빈손이 더는 감출 수 없는 궁핍을 드러낼 때 하늘의 부요.. 2026. 4. 5.
목자 없는 양 떼를 품으신 주님 (막6:30~34) 목자 없는 양 떼를 품으신 주님 (막6:30~34)사람은 때때로 너무 오래 달려서,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립니다. 발은 움직이는데 마음은 멈추어 있고, 입술은 웃고 있는데 영혼은 메말라 있으며, 손은 부지런한데 속사람은 무너져 내리는 때가 있습니다. 하루를 견디고, 한 주를 버티고, 계절을 통과하면서도, 정작 자기 영혼이 얼마나 지쳐 있는지 모른 채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듯하나, 안쪽 깊은 곳에서는 말 못 할 피로가 소리 없이 쌓여 갑니다. 몸의 피곤은 잠으로 조금 풀릴 수 있으나, 영혼의 피곤은 침대가 아니라 품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인정으로도, 세상의 성공으로도, 바쁜 사역의 열심으로도, 그 깊은 피곤은 완전히 가셔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 2026. 4. 5.
피에 젖은 잔치와 꺾이지 않는 말씀 (막6:14~29) 피에 젖은 잔치와 꺾이지 않는 말씀 (막6:14~29)갈릴리의 바람은 늘 두 얼굴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 얼굴은 들판의 밀 이삭을 어루만지며 햇살의 냄새를 실어 나르고, 다른 한 얼굴은 사람의 숨겨진 죄와 두려움을 휘감아 올리며 마음의 깊은 동굴을 흔듭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말씀은 바로 그 두 번째 바람이 몰아치는 자리입니다. 막6:14~29은 향기로운 백합의 정원이 아니라, 촛불이 흔들리는 궁정의 어두운 복도이며, 잔이 부딪히는 환락의 식탁 뒤에서 피 냄새가 번져 나오는 비극의 현장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성경은 그 음산한 자리를 통하여 여전히 하나님의 빛이 얼마나 꺼지지 않는가를, 진리가 얼마나 목이 잘려도 침묵당하지 않는가를, 의가 얼마나 피를 흘려도 패배하지 않는가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헤롯.. 2026. 4. 4.
보내심의 권능, 비움의 순종 (막6:7~13) 보내심의 권능, 비움의 순종 (막6:7~13)주님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에는 언제나 두 가지가 함께 옵니다. 하나는 은혜요, 다른 하나는 사명입니다. 은혜만 받고 사명을 잊어버리면 신앙은 따뜻한 감상으로 머물고, 사명만 붙들고 은혜를 잊어버리면 믿음은 메마른 의무가 되고 맙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둘을 하나로 묶어 우리 앞에 세웁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그들을 가까이 두시는 데서 멈추지 않으시고, 마침내 세상 속으로 내보내십니다. 주님의 품에서만 머물던 자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걷게 하십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던 자들을, 이제 주님의 말씀을 전하는 입술로 세우십니다. 주님의 손길을 보던 자들을, 이제 상한 세상을 어루만지는 손으로 파송하십니다. 복음은 늘 그렇습니다. 붙드시는 사랑이 보내.. 2026. 4. 4.
낯익음에 가려진 영광 (막6:1~6) 낯익음에 가려진 영광 (막6:1~6)주님의 발걸음이 다시 고향 쪽으로 향하실 때, 그 길은 낯선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 먼지의 빛깔도, 바람의 냄새도, 사람들의 억양도, 골목의 굽은 모퉁이도 모두 예수님께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그곳에서 자라셨고, 그곳에서 손에 나무의 결을 익히셨으며, 사람들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며 세월의 흐름을 지나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막6:1~6은 낯선 땅에서 벌어진 거절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장 잘 안다고 여겼던 자리에서 가장 깊이 오해받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비극이 있고, 죄의 눈멂이 있으며, 동시에 구원의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멀리 있는 원수들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이웃들, 무지한 이방이 아니라 익숙한 동네 사람들이, 주님의 영광 앞.. 2026. 4. 4.
죽음의 집에 들어오신 생명의 손길 (막5:35~43) 죽음의 집에 들어오신 생명의 손길 (막5:35~43)회당장 야이로의 집에는 이미 어둠이 먼저 들어와 있었습니다. 사람의 발보다 먼저 절망이 문지방을 넘었고, 사람의 울음보다 먼저 죽음의 냄새가 방 안에 스며들었습니다. 누군가는 달려와 숨을 헐떡이며 말했습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습니다. 어찌하여 더 선생을 괴롭게 하나이까.” 그 말은 단순한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한 아버지의 심장을 무너뜨리는 망치였고, 한 가정의 하늘을 무너뜨리는 천둥이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직 희망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은 슬픔이었으나, 아직 기도가 가능했습니다. 아직 손을 붙들 수 있었고, 아직 숨을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죽음이라는 단어가 떨어지는 순간, 사람들의 마음은 급격히 닫혀 버.. 2026. 4. 4.
옷자락에 스민 구원의 빛 (막5:25~34) 옷자락에 스민 구원의 빛 (막5:25~34)사람의 눈에는 오래된 병이었으나, 하늘의 눈에는 오래된 눈물이었습니다. 사람의 손에는 닳아버린 진단이 남아 있었으나, 하나님의 손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구원의 이야기가 들려 있었습니다. 열두 해였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절 몇 번이 지나가는 정도도 아니고, 인생의 한 토막이 통째로 병의 이름 아래 묶여버린 세월이었습니다. 피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육체의 고통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삶에서 힘이 새어 나가고, 기쁨이 새어 나가고, 존엄이 새어 나가고, 소망이 새어 나가는 상태를 뜻합니다. 몸에서 흐르던 것은 피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젊음이 흘렀고, 재산이 흘렀고, 관계가 흘렀고, 웃음이 흘렀고, 내일을 기다리는 마음이 흘렀습니다. 사.. 2026.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