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 자의 백배, 영생의 약속 (막10:28~31)
버린 자의 백배, 영생의 약속 (막10:28~31)베드로가 주님 앞에서 조심스레 입을 엽니다. 그 말은 자랑처럼 들리기도 하고, 서운함처럼 들리기도 하며, 어쩌면 어린아이 같은 확인의 몸부림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이 한 문장 안에는 제자의 헌신도 있고, 제자의 가난도 있으며, 제자의 떨림도 있습니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버릴 때 반드시 묻고 싶어집니다. 내가 버린 것은 헛되지 않은가. 내가 포기한 시간은, 내가 내려놓은 눈물은, 내가 감당한 외로움은, 정말 하나님 앞에서 기억되는가. 그 질문은 오래된 질문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도, 모세가 애굽의 궁정을 등질 때도, 다윗이 광야에서 밤하늘 아래 도망자처럼 울 때도, 선지자들이 조롱 속에..
2026. 4. 7.
산 위에 번진 아들의 영광 (막9:1~13)
산 위에 번진 아들의 영광 (막9:1~13)주님께서 때로는 우리를 평지에서 부르시고, 때로는 골짜기에서 붙드십니다. 그러나 어떤 날에는, 참으로 드물고도 거룩한 어떤 날에는, 우리를 산 위로 데려가십니다. 사람의 소리가 멀어지고, 세상의 분주함이 얇아지고, 영혼의 숨결이 또렷해지는 자리, 거기서 하나님은 우리가 눈으로만 보던 예수님이 아니라, 영광으로 불타는 그리스도를 보게 하십니다. 막9:1~13은 바로 그런 장면입니다. 이 본문은 단지 변화산의 신비를 기록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제자들의 눈앞에서 살짝 젖혀진 영원의 휘장이고, 고난의 길 한가운데서 번쩍 열리는 하늘의 창이며, 십자가로 내려가기 전에 먼저 보여 주신 왕의 광채입니다. 고난이 끝나고 영광이 오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주님께서 친히 ..
2026. 4. 5.
열리라, 은혜의 귀와 혀여 (막7:31~37)
열리라, 은혜의 귀와 혀여 (막7:31~37)주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오사 시돈을 지나 데가볼리 가운데로 갈릴리 호수에 이르셨을 때, 사람들은 한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는 듣지 못하는 자였고, 말도 분명히 하지 못하는 자였습니다. 세상은 늘 이런 사람을 주변으로 밀어냅니다. 말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 속마음을 다 전하지 못하고, 남의 말을 온전히 듣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과 한 겹, 두 겹, 세 겹의 벽을 두른 채 살아갑니다. 그는 사람들 속에 있었으나 사람들과 함께 있지 못한 사람이고, 소리의 세계 가까이에 있었으나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웃음이 터져도 반쯤만 알았을 것이고, 이름이 불려도 제때 돌아보지 못했을 것이며, 사랑한다는 말과 위로의 한숨과 새벽의 새소리와..
2026. 4. 5.
목자 없는 양 떼를 품으신 주님 (막6:30~34)
목자 없는 양 떼를 품으신 주님 (막6:30~34)사람은 때때로 너무 오래 달려서,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립니다. 발은 움직이는데 마음은 멈추어 있고, 입술은 웃고 있는데 영혼은 메말라 있으며, 손은 부지런한데 속사람은 무너져 내리는 때가 있습니다. 하루를 견디고, 한 주를 버티고, 계절을 통과하면서도, 정작 자기 영혼이 얼마나 지쳐 있는지 모른 채 살아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듯하나, 안쪽 깊은 곳에서는 말 못 할 피로가 소리 없이 쌓여 갑니다. 몸의 피곤은 잠으로 조금 풀릴 수 있으나, 영혼의 피곤은 침대가 아니라 품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인정으로도, 세상의 성공으로도, 바쁜 사역의 열심으로도, 그 깊은 피곤은 완전히 가셔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
2026. 4. 5.
낯익음에 가려진 영광 (막6:1~6)
낯익음에 가려진 영광 (막6:1~6)주님의 발걸음이 다시 고향 쪽으로 향하실 때, 그 길은 낯선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 먼지의 빛깔도, 바람의 냄새도, 사람들의 억양도, 골목의 굽은 모퉁이도 모두 예수님께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그곳에서 자라셨고, 그곳에서 손에 나무의 결을 익히셨으며, 사람들의 얼굴을 오래 바라보며 세월의 흐름을 지나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막6:1~6은 낯선 땅에서 벌어진 거절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장 잘 안다고 여겼던 자리에서 가장 깊이 오해받으신 하나님의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비극이 있고, 죄의 눈멂이 있으며, 동시에 구원의 놀라운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멀리 있는 원수들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이웃들, 무지한 이방이 아니라 익숙한 동네 사람들이, 주님의 영광 앞..
2026. 4. 4.
옷자락에 스민 구원의 빛 (막5:25~34)
옷자락에 스민 구원의 빛 (막5:25~34)사람의 눈에는 오래된 병이었으나, 하늘의 눈에는 오래된 눈물이었습니다. 사람의 손에는 닳아버린 진단이 남아 있었으나, 하나님의 손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구원의 이야기가 들려 있었습니다. 열두 해였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계절 몇 번이 지나가는 정도도 아니고, 인생의 한 토막이 통째로 병의 이름 아래 묶여버린 세월이었습니다. 피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육체의 고통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삶에서 힘이 새어 나가고, 기쁨이 새어 나가고, 존엄이 새어 나가고, 소망이 새어 나가는 상태를 뜻합니다. 몸에서 흐르던 것은 피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젊음이 흘렀고, 재산이 흘렀고, 관계가 흘렀고, 웃음이 흘렀고, 내일을 기다리는 마음이 흘렀습니다. 사..
2026.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