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도끼를 잃은 사람의 의심
우리는 의심을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그 하나는 발명과 발견에 있어서의 실마리가 되는 것과 또 하나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 마귀의 씨가 되는 것이다. 확실히 모든 발명과 발견은, “왜 그럴까” 또는 “그것이 이렇게 혹은 저렇게 되면 어떤 결과가 될까?” 하는 의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대인관계에서 남을 의심하는 것은 단판을 그르치고 나중에는 죄를 빚어내는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중국에서는, “의심을 마귀를 낳는다”고 하는 말이 있다.
옛날 중국에서 이번 어떤 사람이 소중하게 간직하던 도끼를 잃었다. 아끼던 도끼를 잃은 사람은 누군가가 훔쳐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렇게 생각하고 바로 이웃집의 어린아이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게 되었다. 자기와 마주쳤을 때의 거동도 그렇고, 안색도 그렇고, 말하는 품도 예사롭지 않은데다가 얼른 자기를 피해서 가버리는 것이 모두 이상스러웠다. 도끼 임자는 도끼는 틀림없이 이웃의 그놈이 훔쳐간 것으로 더욱 믿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서 잠시 후에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도끼가 자기 집 마루 밑에 두었던 생각이 되살아나서 찾아보니 과연 그대로 있었다. 공연히 남을 의심했다고 후회하고 있는데, 그 어린애가 가까이 왔다. 이번에는 그 어린애의 거동은 조금도 의심스러운 데가 없었다. 도끼 주인은 크게 깨달았다. “남을 의심하면 그 선입견으로 모든 것을 그 의심에 알맞게 생각하므로 더욱 의심스러워 보이고 그와 반대로 남을 좋게 보면 또 그대로 무든 일이 모두 좋게만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도끼 주인은 공연히 어린애를 의심한 것이 부끄러웠다.
2. 믿음과 의심의 차이
“믿음과 의심”이란 짤막한 작가미상의 시를 소개한다.
“의심은 방해물을 보지만 믿음은 길을 봅니다. 의심은 한 걸음을 두려워하지만 믿음은 높이 날아오릅니다. 의심은 ‘누가 믿지?’하고 묻지만 믿음은 ‘내가!’하고 대답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히11:1)
3. 의처증과 믿음
어느 날 고향 후배가 내게 찾아왔다. 그는 대뜸 ꡒ형님 저는 이제 교회를 다니지 않겠습니다ꡓ 라고 말했다. 눈이 아파 하나님에게 일 주일동안 새벽기도를 하며 아침 금식도 하고 이 눈을 위해 열심히 기도를 하였는데 그 눈이 일주일 후에 좋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교회를 다니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내가 ꡒ그것 잘 됐다ꡓ며 그만 교회에 나가라고 했다. 그러자 이 후배가 태도를 바꾸면서 ꡒ아이 형님 왜 그러세요ꡓ라며 붙잡지 않는 나의 태도에 놀란 표정이었다. 나는 의처증 환자 이야기를 비유로 설명을 하였다. 의처증 환자와 결혼을 하면 결혼하는 날부터 신혼이 아니라 감옥이 된다. 남편이 회사에 나가서 5분마다 전화를 하여 부인이 집에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한다. 이런 부인은 마음놓고 목욕도 할 수 없다. 언제나 전화기를 붙잡고 있어야한다. 급기야 의처증이 심한 남편은 부인을 믿지 못하여 출근하면서 대문을 잠그고 나간다.
남편과 같이 길을 걸어가다가 동네 아저씨를 만나 인사라도 하면 부인에게 남편이 ꡒ저 남자 몇 번 만났느냐ꡓ고 따진다. 약국에 들어가서 약사 아저씨에게 쳐다보면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부인에게 ꡒ당신 그 남자에게 보내는 눈길이 예사롭지 않아ꡓ하며 쏘아 부친다. 어떻게 이런 남편과 같이 살수 있겠는가?
우리가 신앙생활 한다는 것은 주님과 결혼생활을 하는 것이다. 주님과 한번 결혼을 했으면 주님이 살아 계신 것에 대해 더 이상 의심을 하면 안된다. 기도해서 아픈 눈이 나으면 주님이 계시고 눈이 낫지 않으면 주님이 안 계시다고 생각하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한번 주님을 믿었으면 눈이 낫든 낫지 않든지 관계없이 주님을 믿어야 정말 주님과 결혼한 사람이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면 나의 기도의 응답과 관계없이 언제나 주님을 믿어야 한다. 주님을 믿는 가장 큰 이유는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죽어주셔서 영원한 천국에 가는 것이다. 영원한 천국에 가는데 눈이 좀 아프면 어떤가? 기도의 응답이 없으면 어떤가? 나의 얘기를 들은 후배는 아주 감사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이런 글이 기억난다.
ꡐ나는 태양이 빛나지 않을 때에도 태양이 있음을 믿는다. 나는 사랑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사랑이 있음을 믿는다. 나는 하나님이 침묵을 지키실 때에도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을 믿고 사는 그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ꡑ
/김원태 목사
4. 믿음과 의심
옛날 어느 곳에 오래된 고목이 한 그루 서 있었습니다. 이 큰 나무 위에는 매들이 날아와 둥지를 짓고 새끼들을 기르고 있었고 나무 밑에는 산돼지들이 새끼를 기르며 살고 있었습니다. 매들이 떨어뜨리는 나뭇잎과 찌꺼기들은 밑에 있는 돼지들의 먹이가 되었고 돼지들의 찌꺼기는 매의 먹이가 되었으므로 이들은 서로 공생하며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이들의 사이가 샘이 난 여우가 이들을 갈라놓기 위한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습니다. 여우는 곧장 매에게로 달려가 "나무 밑에 있는 돼지들은 너희 매를 잡아먹으려고 매일 나무 밑둥을 갉아먹고 있단다. 얼마 못 가서 나무가 쓰러지면, 네 새끼들은 떨어져서 돼지의 밥이 될 것이다. 이따금 나무가 심하게 흔들리지 않던? 그게 바로 나무가 넘어 지려는 징조야!" 하고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돼지에게로 달려가서 "나무 위에 있는 매들은 너희 돼지 새끼들을 잡아먹으려고 항상 기회만 노리고 있단다. 어미 돼지가 먹이를 구하러 멀리 가면 그때 새끼를 잡아먹기 위해 이따금 어미 매가 내려와서 너희 집을 기웃거리며 먹이를 찾지 않던? 그게 바로, 매가 새끼를 노릴 때란 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부터 매와 돼지의 생활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생활이 되었습니다. 매는 모이를 구하러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나간 사이에 나무가 쓰러지면 새끼들이 돼지에게 잡혀 먹힐 것을 생각하니 꼼짝 못하고 항상 새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는 돼지도 마찬가지여서 먹이를 구하러 가지 못하고 매와 돼지는 서로 경계하면서 새끼들만 지키고 있었습니다. 결국 매도 돼지도 굶주려서 죽고 말았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에 불신을 심어주어 우리를 파멸시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5. 물고기의 의심
물고기 두 마리가 싱싱한 지렁이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한 물고기가 그것을 집어삼키려고 하자 다른 물고기가 타이릅니다.
" 저 지렁이는 낚시 바늘에 걸려 있는 거야. 저것을 잘못 삼키면 바늘에 걸려 사람들의 식탁에 오르는 신세가 되고 말아."
그러나 다른 물고기는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 그것을 누가 믿어? 아무도 그것을 증명하지 못했잖아. 어디 사람들의 식탁까지 갔다 온 물고기가 있으면 증명해 봐. 네가 저 지렁이를 욕심내는 거지?"
그 물고기는 덥석 지렁이를 삼켰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바다로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지옥과 천국을 말할 때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천국이나 지옥에 갔다 온 사람이 있으면 내게 그 증거를 보여줘. 그러면 믿을 테니까."
이런 사람들은 끝내 하늘을 보지 못합니다. 지렁이를 삼킨 물고기처럼 후회해도 이미 늦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신에서 싹튼 교만은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어 멸망의 길로 인도할 뿐입니다.
6. 의 심
워털루전쟁의 영웅 웰링턴장군이 승전기념 파티를 열었다. 육.해.공군의 장성과 공을 세운 장교들이 모두 모였다. 웰린턴은 하객들에게 보석이 촘촘히 박힌 지갑을 자랑하고 싶었다. 그런데 방금까지 주머니에 있던 지갑이 사라져 버렸다.
웰링턴은 하객들을 향해 소리쳤다. “보석지갑을 훔쳐간 범인을 잡겠다. 문을 닫아라” 하객들은 호주머니 검사를 하자고 소리쳤다. 그때 한 노장군이 호주머니 검사를 반대했다. 사람들은 노장군을 의심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노장군은 황급히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갔다. 결국 노장군이 범인으로 몰렸다. 1년후 다시 파티가 열렸다. 외투를 입던 웰링턴은 깜짝 놀랐다. 도둑맞은 줄 알았던 보석지갑이 외투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웰링턴은 황급히 노장군을 찾아가 용서를 구했다. “왜 검사를 거부했습니까” 노장군의 대답했다. “그날 밤 아내와 아이들이 굶고 있었습니다. 제 주머니에는 가족들에게 줄 빵 몇 조각이 들어 있었어요” 웰링턴은 통곡을 하며 다시 용서를 구했다. 웰링턴이 호화스런 잔치를 여는 동안 부하의 가족들은 굶주림에 통곡하고 있었다. 웰링턴은 다시는 물건자랑을 하지 않았다.
7. 친구를 의심
옛날 부의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관청에서 일을 보고 있었는데, 친구 몇과 함께 한 집에서 먹고 자고 하였습니다. 하루는 친구 한 사람이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이 친구가 고향에 내려간 후 이 방에서 도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남은 한 친구의 돈주머니가 없어진 것입니다. 친구는 남아 있는 부의를 의심하였습니다. 부의는 큰 일 났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가져가지 않았다고 말해도 그 말이 통하지를 않았습니다. 부의는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얼마를 잃어 버렸나?"
"알면서 묻긴 왜 물어 30냥이잖아?"
부의는 돈을 빌려서 30냥을 친구에게 주면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미안하게 되었네, 한 번만 용서해 주게."
"앞으론 결코 그런 짓을 하지 말게. 이번만은 용서해 주겠네."
친구는 제법 자비를 베푸는 듯이 돈을 받아 넣었습니다. 며칠 후, 고향에 내려갔던 친구가 올라 왔습니다. 이 친구는 호주머니에서 돈 30냥을 끄집어내어 친구에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대단히 미안하게 됐네. 내 주머닌 줄 알고 가져갔지 뭐야, 집에 가서 보니 내 돈주머니는 따로 있지 않겠나."
부의를 의심했던 친구는 부끄러워 두 손을 비비며 부의에게 사과하였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부의는 존경을 받게 되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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