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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18,185편 ◑/자료 16,731편

복음서 녹취 15

by 【고동엽】 2022. 3. 27.

오늘은 복음서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복음서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마태, 누가, 요한복음에 대한 압축적인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요즘은 글을 쓰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면 글씨가 나오고 출력을 하게 되면 내가 썼던 내용에 대해서 문자화 되어 있는 틀을 확보할 수 있는데 고대 사회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스라엘 공동체에는 다른 나라보다 조금 글을 아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었는데 고대 근동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100명 가운데 5명, 많아야 10명 정도가 글을 읽거나 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글이라는 것이 옛날에는 권력이었습니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 일단 글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두 번째가 글을 쓰기 위해서 잉크라든가 파피루스나 양피지로 만들었던 글을 쓰는 재료를 구입하는 것도 굉장히 고가였습니다. 그렇다면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라는 사람이 복음서를 기술하였는데 이 사람들은 고가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누구 읽으라고 복음서를 썼을까요?. 이것을 우리가 질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아주 선명합니다. 데오빌로라는 각하에게 그 복음서를 헌정한 겁니다. 물론 데오빌로라는 것이 개인의 이름일 수도 있고 데오와 빌로라는 것을 나누어 보면 신을 사랑하는 자라는 말입니다. 데오빌로라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했던 일단의 무리에게 보낸 글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에게 보낸 것일 수도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공동체에게 보낸 것일 수도 있는데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4개 복음서를 기술하게 될 때 수신자가 누구였을까, 누구 읽으라고 방대한 분량의 복음서를 기술했을까 라고 했을 때 신학자들은 보통 이렇게 얘기합니다. 마태복음을 받아 읽었던 사람들을 마태 공동체, 마가복음을 받아 읽었던 사람들을 마가 공동체, 요한복음을 받아 읽었던 사람들을 요한 공동체라 합니다. 쉽게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마태는 마태 공동체가 읽을 것을 염두에 두면서 마태복음을 썼다 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이 4개의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쓰여진 것이 마가복음입니다. AD 70년경입니다. 그다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AD 80년경 그리고 요한복음을 AD 90년경으로 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은 이렇게 해석합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안에 어떤 내용이 마가복음에도 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이 공동으로 기록하고 있는 어떤 내용이 있다고 할 때 이것은 10년 후에 기록된 마태복음이 마가복음을 참고했을 거라고 보는 겁니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마가복음이 마태복음을 참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마가복음이 마태복음보다 먼저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가 뭐냐면 마가복음보다 10년 늦게 쓰여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서로 다른 곳에서 쓰여졌는데 마가복음에 없는 내용이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마태와 누가가 마가복음을 참고했을 수는 없을 겁니다. 마가복음에는 그런 내용이 없으니까요. 참 놀라운 것이 뭐냐면 비슷한 시기에 서로 다른 지역에서 기술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마가복음에 없는 내용이 똑같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뭐죠?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의 산상설교가 있고 누가복음에는 평지 설교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도 예수님의 주기도문이 나오고 누가복음에도 예수님의 주기도문이 나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이런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질문이 나옵니다. 마가복음에는 없는 내용인데 서로 다른 지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공동으로 기록된 내용이 있더라, 어떻게 마태와 누가가 이것을 함께 기록할 수 있었지? 여기서 신학자들은 이런 추측을 하는 겁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공통된 이야기는 자세히 보니까 대다수가 예수님의 말씀인 겁니다. 산상설교, 평지설교 이것은 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마가복음에는 안 나오는데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마태와 누가복음에는 나온다는 겁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어떻게 추측했냐면 당시 초대교회 안에 예수님의 말씀만 따로 모아 놓은 어떤 문서가 있지 않았을까, 이것을 학자들은 ‘큐’라고 합니다. 그 예수님의 말씀만 따로 모아 놓은 큐라고 하는 자료를 마태와 누가가 참고하지 않았겠는가 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를 뭐라고 부르냐면 마태 특수자료,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내용을 뭐라고 하겠습니까? 누가 특수자료라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태복음은 28장까지 있는데 마태복음은 크게 3개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첫째 마가복음에 있는 내용이 일부 있습니다. 마태와 마가복음에 공동으로 나오는 것은 마태복음이 마가복음을 참고했다고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마가복음의 내용이 일부 있고 두 번째가 마가복음에는 없는데 마태와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내용이 있는데 대다수가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만 모아 놓은 큐라고 하는 텍스트를 참고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니까 마가복음 플러스 큐 그 다음에 다른 복음서에는 안 나오고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를 마태 특수 자료라고 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크게 3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가복음 플러스 큐 플러스 마태 특수자료, 그러면 여러분 누가복음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겠습니까? 마가복음 플러스 큐 플러스 누가 특수자료입니다. 예를 들어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 이것은 누가복음에만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것들을 누가 특수자료라고 합니다. 그래서 4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쓰여진 것은 마가복음이고 다음에 쓰여진 복음서들은 최초의 복음서인 마가복음을 참고했을 것이고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만 따로 모아 놓은 큐라고 하는 자료가 있었을 거라고 추측하고 그리고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자기 복음서에만 나오는 특수한 말씀이 있었을 거라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이 3가지가 결합되어서 지금의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이나 요한복음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라고 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기다렸던 메시아이고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심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토라 아닙니까? 토라를 보통 우리가 오경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를 오경, 다섯 개 두루마리라고 이야기하는데 마태복음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냐면 유대인들이 강조하는 오경에 맞대응하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5개로 모아 놓았습니다. 산상설교, 천국의 비유 이런 식으로 예수의 말씀을 5개로 모아 놓았는데 이것을 마태 오경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크게 마태 오경과 즉 예수님의 설교 5개와 일곱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는 제2의 출애굽 사건을 일으키는 지도자입니다. 예수는 제2의 모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참된 구원을 가져다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것이 마태복음입니다. 두 군데 구절을 찾아보겠습니다. 하나가 마태복음 4장 23절입니다. 여기 ‘저희 회당’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원래 초대교회는 유대교라는 우산 안에 존재했습니다. 예수가 메시아라는 고백만 달랐지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견지해 왔던 할례, 성전 제사, 안식일법 준수 다 그대로 지켰습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가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그런데 23절에서 저희 회당이라고 얘기합니다. 저희 회당이라는 말은 뭐냐면 유대교와 교회가 갈라섰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전에는 회당은 우리 것이었습니다. 성전도 우리 것이었습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회당에 모이기를 힘썼는데 이제는 회당을 뭐라고 표현하냐면 저희 회당이라고 말합니다. AD 66년부터 있었던 유대 전쟁 이후에 초대 교회와 유대교는 완전히 갈라섭니다. 유대교는 초대 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합니다. 회당 출입 금지령을 선포합니다. 마태복음이 언제쯤 쓰여졌다고요? AD 80년경입니다. 그러니까 AD 80년경은 이미 유대교와 초대 교회가 분리된 이후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는 회당을 말할 때 뭐라고 하냐면 우리의 회당이 아니라 저희의 회당인 겁니다. 유대교의 회당인 겁니다. 이런 표현을 통해서 마태복음이 언제쯤 쓰여진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6장 12절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주기도문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dl 갖고 계신 성경을 보시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에서 죄라는 말에 각주 표시되어 있지 않습니까. 각주를 따라 쭉 내려가 보시면 헬라어 해놓고 ‘빚진 자를 탕감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빚도 탕감하여 주옵시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잘 보십시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가끔 어떤 단어에 각주 표시가 있고 내려가 보게 되면 이런 의미 이렇게 되어 있는데 이것은 각주에 있는 내용을 위에 있는 내용과 바꾸어도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똑같다는 겁니다. 그런데 위에는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라고 되어 있고 밑에는 ‘빚진 자를 탕감하여 준 것 같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죄와 빚이라는 전혀 다른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복음서 읽으실 때 정말 주목하셔야 될 것 가운데 하나가 뭐냐면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어떤 언어로 기록되었습니까?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신약의 27권은 다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왜 헬라어로 기록되어 졌냐면, 초대 교회 당시 대부분의 교회는 헬라어를 사용하던 지역에 존재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 에베소교회, 고린도교회가 다 그렇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로마 지역을 중심으로 교회가 많이 있었다면 아마 신약 성경은 라틴어로 기록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27권이 다 헬라어로 기록된 이유는 당시 초대교회 대부분이 헬라어를 사용하던 지역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이라는 가나안 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터키를 중심으로 하는 소아시아, 그다음에 알렉산드리아, 그리스 대부분 헬라어를 사용하던 지역입니다. 그래서 헬라어를 사용하던 지역에 교회가 많았기 때문에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은 헬라어로 기록된 겁니다. 그래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도 헬라어로 기록되어졌습니다. 그런데 여러분께서 한번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선포하신 산상 설교를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님이 산에 올라가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선포하실 때 예수님이 헬라어로 말씀을 하셨나요? 예수님이 헬라어로 말씀하신 것을 누군가가 녹음하고 몇 십년이 지나고 그 녹음을 녹취해서 마태복음을 기록한 건가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뭘 기억하셔야 되냐면 복음서 자체가 1차 번역서라는 것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1차 번역서라는 말은 뭐냐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아람어를 사용하셨습니다. 갈릴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아람어를 썼습니다. 심지어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도 히브리어를 쓴 것이 아니라 아람어를 썼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당연히 히브리어를 썼겠지 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히브리어는 조선시대의 한문과 똑같은 겁니다. 조선시대 대다수 사람들은 한글을 사용했습니다. 지식층에서만 한문을 사용했습니다. 똑같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일상의 언어는 아람어였습니다. 왜 아람어를 사용했냐면 이스라엘이 5대 제국의 식민지배를 받을 때 로마의 식민지배를 받기 전에 어디의 식민지배를 받았습니까? 셀루커스 왕조입니다. 그 전에는 페르시아입니다. 셀루커스 왕조와 페르시아의 공용어가 아람어입니다. 그래서 제국의 지배 가운데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아람어를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히브리어를 썼겠지, 아닙니다. 히브리어는 식자층만이 알고 있는 문자언어였습니다. 일상에서는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람어를 사용했습니다. 예수님도 아람어로 말씀하신 겁니다. 그러니까 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을 모아놓은 것이 산상설교, 하나님 나라 비유 이런 것인데 예수님이 사용하신 말씀을 그대로 풀어놓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아람어로 말씀하셨는데 복음서는 헬라어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헬라어로 기록된 복음서 자체가 1차 번역서라는 겁니다. 여기서 문제가 벌어지는 겁니다. 흔히 번역을 반역이라고 합니다. A 나라의 언어를 B 나라의 언어로 바꾸려고 할 때 가장 온전한 번역이 가능하려면 A 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언어 체계와 B 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언어 체계가 1대1로 그대로 상응 관계를 이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번역이라는 것이 매끄럽기가 참 어렵습니다. 예를 들자면 그리스 헬라어는 굉장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용어가 많습니다. 라틴어는 굉장히 실용적이고 실제적입니다. 그러니까 헬라어를 라틴어로 번역하려면 참 어렵습니다. 전 세계 어느 나라 언어도 언어의 체계가 완벽하게 똑같은 나라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친인척에 대한 언어 표현이 굉장히 구체적이고 방대한 편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만 하더라도 한 단어를 가지고 할머니와 어머니를 함께 표현합니다. 한 단어를 가지고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함께 씁니다. 한 단어를 가지고 아들도 되고 손자도 되고 후손도 됩니다. 무슨 말이냐면 문맥에 따라서 이것이 아들인지, 손자인지, 후손인지를 정확하게 가려내야 된다는 겁니다.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A 나라 언어를 B 나라 언어로 번역한다고 할 때 가장 유사하고 의미가 통하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우리가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들은 예수님이 하셨던 아람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겁니다. 그래서 복음서를 보시면 이 아람어를 헬라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것은 아람어 원어를 그대로 쓰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뭐죠? 달리다쿰, 에바다 이것이 아람어입니다. 이것을 헬라어로 번역하지 않고 예수님이 쓰셨던 그 고유한 음성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는 겁니다. 그랬을 때 주기도문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산에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실 때 아람어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것을 헬라어로 기록하고 있는 겁니다. 이때 아람어와 헬라어가 1대1의 상응 관계가 된다면 이상적이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람어의 ‘호바’라는 단어는 죄라는 의미도 있고 빚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호바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헬라어에는 죄라는 단어도 있고 빚이라는 단어도 있지만 죄와 빚이라고 하는 두 가지 의미를 함께 담고 있는 단어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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