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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서 녹취 13

by 【고동엽】 2022. 3. 27.

오늘 복음서 7번째 시간입니다. 율법의 본질, 하나님의 말씀의 본질을 붙잡고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했던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추구하고자 했던 종교 지도자들은 끊임없이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의 사역은 종교 지도자들의 민낯, 그들이 얼마나 타락하고 부패한 존재인지를 너무나 선명하게 보여주었던 사건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이 힘을 합쳐 예수를 죽이게 되는데 예수를 죽임에 있어서 종교 권력자들이 이용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신명기 21장 23절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나중에 사도행전 7장에 보시면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시면 종교 권력자들이 예수를 죽이기로 하고 빌라도에게 예수를 십자가에 매어 달려 죽일 것을 계속 압박합니다. 처음에는 빌라도가 예수를 풀어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계속 압박하니까 어쩔 수 없이 빌라도가 예수를 십자가에 죽도록 허용해주고 손을 씻으면서 자기는 죄가 없다, 이 모든 죄를 너희가 떠 안아라 라고 말합니다. 유대 종교 권력자들이 당시 산헤드린에서 예수를 불경죄, 성전 모독죄, 율법 파괴죄 이런 것들을 가지고 예수를 충분히 처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산헤드린은 예수를 직접 죽이지 않고 이방의 권력자였던 빌라도의 손을 빌려서 십자가에 매어 달려 죽이고자 합니다. 여기에 굉장히 중요한 의도가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가장 손쉽게 죽일 수있는 방법은 투석형입니다. 산헤드린에서 예수는 사형이라고 한 다음에 성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를 죽이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동안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죠? 예루살렘 성전이 하나님을 브랜드로 이용해서 얼마나 종교 사업을 하고 있는가를 폭로하셨죠.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사람들이 진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해서 종교 사업을 하고 있는 장사꾼들이라는 것을 폭로하셨습니다. 성전이 강도의 소굴이라는 것을 폭로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를 죽이면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예수 한 명은 처형할 수 있지만 예수를 죽인 다음에 후폭풍이 만만치 않은 겁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뭐를 생각하는 거냐면 예수를 제거함과 동시에 예수를 추종하는 모든 사람들도 잠잠케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겁니다. 그때 그들의 눈에 포착된 말씀이 신명기 21장 23절 말씀입니다.

 

신명기 21장 23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나무에 매어 달려 죽은 자마다 하나님께 저주 받아 죽었다는 말씀입니다. 원래 이스라엘에는 살아있는 사람을 나무에 매어달아 죽이는 그런 사형법은 없었습니다. 원래 이 말씀은 뭡니까? 공동체에 굉장히 큰 죄를 범한 사람을 먼저 죽입니다. 주로 투석형으로 죽입니다. 그다음에 이 사람의 시체를 해가 지기 전까지 성문 앞에 매달아 놓는 겁니다. 그래서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이 사람은 하나님께 저주받아 죽었다라는 것을 증거케 하는 겁니다. 원래 그런 말씀이었는데 나중에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서 십자가라고 하는 사형틀이 만들어 집니다. 살아 있는 사람을 잔인하게 오랜 시간 동안 나무에 매어 달려 죽였습니다. 그것이 로마 시대까지 이어지게 된 겁니다. 그런데 이 십자가가 공교롭게도 나무입니다. 나무에 매어달려 죽는 겁니다. 이것을 유대 종교 권력자들은 이용하려 한 겁니다. 그래서 예수가 나무에 매어 달려 죽게 되면, 예수는 누가 죽인 겁니까? 하나님이 죽이신 겁니다. 뭐 때문에요? 하나님께 저주받아 죽은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질문하겠죠. 왜 예수가 하나님께 저주받아 죽었죠 라고 질문하게 되었을 때 당시의 유대교의 관점에서는 설명할 수 있는 내용들이 너무 많은 겁니다. 왜 예수는 하나님께 저주받았을까, 첫째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서 난동을 부렸죠, 둘째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 그 가운데에서도 안식일법, 정결법을 끊임없이 위반했죠. 그리고 너무나 부정한 사마리아 사람과 어울렸죠. 이방 땅을 들락날락 했죠. 이런 것들도 하나님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셋째 하나님이 기대하셨던 거룩한 사람의 모습과 너무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넷째 불경하게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다는 겁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교 안에 있는 신앙적인 내용에 근거했을 때 예수는 하나님께 참으로 불경한 일을 행했고 너무나 참람한 말을 많이 했고 그 결과 하나님께 저주받아 죽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유대 종교 권력자들은 예수만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추종하는 사람들을 한 순간에 제압할 수 있는 방법 선택한 것입니다. 그게 뭡니까? 예수는 하나님께 저주받아 죽었다, 그래서 나무 십자가에 예수를 매어 달려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 권력자인 빌라도의 손을 빌릴 필요가 있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종교지도자의 의도대로 예수님은 나무 십자가에 매어 달려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십자가 죽음이라고 말합니다. 십자가를 우리가 언급할 때마다 꼭 기억하셔야 될 중요한 내용은 뭐냐면 십자가 사건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죽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려 죽였습니까?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입니다. 어떤 죄목으로 죽인 겁니까? 하나님께 저주받아 죽었어, 하나님께 참람한 말을 많이 했어, 너무나 불경스러운 행동을 많이 했어. 결과적으로 누구를 죽인 겁니까? 하나님을 죽인 겁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나오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 때 하나님을 떠나고자 만든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을 출애굽 시켜주신 하나님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것이 금송아지입니다. 의도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왜 문제가 됩니까? 시내산 언약에서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시면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이것이다라면서 당신의 뜻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무엇입니까? 너희를 위해서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행동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위반한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행한다는 많은 것들이 정말 하나님의 궁극적인 원하심인가, 이것을 우리가 진지하게 잘 성찰하고 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다시 한번 잘 음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누구의 이름으로? 거짓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들이 알고 있는 잘못된 하나님의 뜻으로, 누구를 죽인 겁니까? 하나님을 죽인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죽이는 그 사건 안에서 신명기 21장 23절의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했습니다.

 

이 땅의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의 야합에 의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이제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인류 역사 가운데 등장했던 위대한 혁명가들의 죽음과 비슷한 겁니다. 그 시대의 타락과 분노에 대해서 깃발을 들고 나를 따르라 하면서 사람들을 모읍니다. 그리고 기득권 체제에 저항합니다. 그러다 결국 기득권 체제에 의해서 죽임을 당합니다. 일반 역사에 등장했던 혁명가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일반 역사에서는 이 운동을 이끌었던 구심, 지도자가 죽음을 맞이하면 그 운동은 사그라듭니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은 이때부터 놀라운 차별성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이 죽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라고 생각한 그 순간에 제자들이 너무나 담대해지는 겁니다. 예수가 살아 계실 때는 예수와 한편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예수를 부인하고 떠났던 제자들이 예수가 죽은 다음에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한 겁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된 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했던 말이 뭐냐면 우리는 부활한 예수를 만났다는 겁니다. 여기에 예수 사건의 놀라운 특징이 있습니다. 이 땅의 정치 권력과 이 땅의 타락한 종교 권력이 힘을 모아서 예수를 죽였습니다. 너 같은 인간은 죽어야되 라고 하면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이것이 세상이 예수에게 내렸던 마지막 판단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판단을 하나님은 뒤집으셨습니다. 세상의 판단을 뒤집은 하나님의 판단이 뭐죠? 바로 부활 사건입니다. 이 땅의 불의한 정치 권력과 거짓된 종교 권력은 예수를 죽였지만 하나님은 예수를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세상의 판단을 뒤집는 하나님의 판단이 여기에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와 부활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하셔야 할 것이 뭐냐면 세상의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은 다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판단을 더 주목해야겠습니까? 세상의 판단에서 승리하는 자가 되길 원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판단에서 합격하는 인생이 되길 원하십니까? 세상의 판단에서 우리가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판단에서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겠죠. 그 대표적인 모델이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의 길을 따르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세상의 판단에 승리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에서 승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예수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는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그 부활한 예수를 만나고 나서 제자들은 완전히 변화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더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에 모든 것들을 의지하면서 정말 힘 있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 부활을 점점 믿게 됩니다. 그래서 당시 로마나 유대교에서 이 예수 부활을 잠재우기 위해서 반박 논리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두 가지가 뭐냐면 시체 도난설과 예수 기절설입니다. 시체 도난설은 뭐냐면 자꾸 제자들이 예수가 부활했다고 말하고 그 부활의 중요한 증거로 무덤이 비어 있다는 것을 제시하는데, 사실은 예수가 부활한 것이 아니라 한밤 중에 제자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로마 군병들을 몰아내고 예수 시체를 훔쳐갔다, 자기들이 시체 훔쳐 간 다음에 예수가 부활했다고 거짓말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소위 시체 도난설입니다. 또 하나가 뭡니까? 예수 기절설입니다. 복음서에 보시면 예수님은 굉장히 허약하신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허약했다는 것을 뭘 통해서 알 수 있습니까? 십자가에 달리는 죄수는 자기가 지게 될 십자가의 가로 목을 끌고 올라 갑니다. 자기가 스스로 지고 올라 가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십자가의 가로목을 지고 올라가지 못하셨습니다. 누가 대신 십자가의 가로목을 지고 올라갔죠? 구레네 사람 시몬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죄수들을 달아 죽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뭐냐면 사람들로 하여금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는 고통스러운 과정들을 보게 만듦으로서 로마에 저항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십자가 죽음의 목적입니다. 당시 십자가에 달리게 되면 짧으면 하루 이틀, 좀 긴 사람들은 3일까지 버티다 죽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6시간만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셨습니다. 굉장히 빨리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5장에 보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와서 이런 요청을 합니다. 예수의 시체를 저에게 주십시오 이렇게 얘기할 때 빌라도가 제일 먼저 했던 말이 뭐냐면 벌써 죽었냐고 묻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이 굉장히 허약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예수 기절설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 주장하는 겁니다. 그 허약했던 예수가 십자가 상에서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짜내서 고함을 질렀다는 겁니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하면서 기절을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로마 군병들은 예수가 죽은 줄 알고 예수를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마련한 무덤에 누일 수 있도록 허락했다는 겁니다. 아시다시피 중동이 굉장히 덥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무더운 여름보다 중동이 훨씬 생활하기 편합니다. 왜 편하냐면 습기가 없습니다. 습기가 없다 보니까 동굴이나 나무 그늘 아래에 가면 너무 시원합니다. 그래서 예수가 사실 기절한 것인데 동굴에 마련된 무덤에 누였을 때 몇 시간 후에 예수가 깨어났다는 겁니다. 다시 깨어났다는 겁니다. 그 다음부터는 미스터리입니다. 깨어난 예수가 성인 6명 정도가 굴려야만 움직이는 무덤을 막고 있던 돌을 홀로 밀어 여시고 군병들과 육박전을 치르신 다음에 제자들에게 나타났다는 겁니다. 제자들은 뭐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죽었던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뭐라는 겁니까?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 아니라 기절했다가 다시 깨어난 것이다, 이것이 로마와 유대교가 예수 부활했다는 주장에 반박하기 위해서 만들어 낸 예수 기절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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