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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자료실 종합모음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3

by 【고동엽】 2022. 3. 27.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3
 
하나님 의를 실행하는 그리스도인 1
 
하나님은 세계에서 개별자로 존재하는 1 사람 아브라함을 선택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 전체가 아니라 일부분 입니다. 기독교 또한 세계 한 부분 입니다. 부분은 전체에 흡수되지 않은 개별자로 존재할 때 그 건강성이 유지 됩니다.
유럽 기독교는 전체 즉 세계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미국 기독교도 거의 사라졌고요. 한국도 매우 위험한 상황 입니다. 이들 모두는 기독교가 자본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와 어떻게 다른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의와 인간 의가 어떻게 다른지 주목하지 못했기 때문 입니다.
 
 
그리스도인 정체성이 무엇이라고 자각할 여유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한국 교회가 맹렬히 사람을 교회로 모으는 일은 (이제 오지도 않습니다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세상에 빛과 소금 역할하도록 부르신데 대한 배반 입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그리스도인 나와 같아야 한다며 차별하고 배제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부르신데 대한 배반 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유일한 계명 이웃사랑에서,
닮음이나 친근함으로 건강한 호의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언어나 사회 실천에 의해 인정하는 의연함(resoluteness)을 공유할 때 유지 됩니다.(1)
쉽게 말해서 그리스도인 행위가 세계인으로부터 인정되고 존중될때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꿋꿋하게 자신 행위를 지켜나갈 때 이웃 사랑 효과가 발생한다는 뜻 입니다.
 
오늘날 거룩함이 흔히 도덕성과 동일한 의미로 여겨집니다. 필자가 반복해서 강조하지만 이것은 그리스 철학 신플라톤주의가 기독교 신학으로 유입된 까닭 입니다. 도덕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도덕이 믿음과 결부되면 기독교 본연 맛을 잃게 됩니다. 도덕 신앙은 자기 수준에 못 미치거나 도덕적이지 않은 사람을 차별하고 배제합니다. 바울은 사랑하면 도덕이 요구하는 현실을 이룰 수 있다고 합니다.(로마13:10)
고대 제사장 종교에 관한한 거룩을 도덕성과 동일하게 인식하는 것은 잘못 입니다. 거룩은 하나님께 속한다는 의미 입니다.(2)
 
 
구약 거룩이 신약에서는 신성 혹은 경건(하기오스)으로 표기 됩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그리스도인이란 도덕으로 바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을 뜻합니다.
하나님나라 백성이란 예수그리스도께서 선포한 하나님 나라 삶을 사는 사람 즉 그리스도를 통해서 생명 자유 평화를 누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을 통해 세상에 이러한 구원된 삶이 전하여 지기를 바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 의가 세상에 실행되는 길 입니다.
 
하나님 의란 무엇인가
 
하나님 의를 옳음(righteousness)이나 정의(justice)로 이해하는 건 성서에 대한 오해 입니다.
의가 한자어 옳을 義로 표기되어서도 그렇지만
오해 원인은 루터가 칭의 교리에서 의를 옳음으로 이해했기 때문 입니다.
루터를 따르는 보수 신학계는 하나님 의를 옳음으로 파악하고 정치 신학하는 진보 신학자들은 정의로 파악합니다.(테드 제닝스)
 
하나님 의는 히브리 성서 '체다카'와 '미슈파트'를 우리말 의로 번역했습니다.
체다카와 미슈파트는 히브리 성서를 최초 그리스어로 번역한 70 인역에서 여러 의미로 번역 됩니다.
1. 옳음(선)과 정의 뜻인 디카이오슈네
2. 심판 판단인 크리시스
3. 자비 동정인 엘레오스
4. 구제 자선인 엘레에오슈네 등 입니다.(3)
 
로마서에 체다카를 그리스어 옳음과 정의라는 디카이오슈네로 기록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의롭다고 부르신 것을 루터가 그리스도인을 옳은 사람이 된 것으로 오해했습니다. 당시는 성서 해석학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이스라엘만 하나님 백성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방인도 하나님 백성되게 하기 위해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인을 부르시는데, 부르실 때 그리스도인을 의롭다 하셨다고 합니다.(로마3:28)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너희만 선택받은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 이방인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 것 입니다.
 
 
의로운 사람이란 이방인도 유대인처럼 하나님과 관계하는 사람이라는 뜻 입니다.
체다카 단어 뜻에는 관계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바울 의도를 풀어 설명하면,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의롭다 부르셨다는 뜻은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믿음으로 하나님나라 백성 삼으셨다는 뜻 입니다. 하나님나라 백성 됨은 구원받음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으로 선택하셨으니 그 구원을 믿음으로 지켜 나갑니다.(로마2:6 빌립 3:12 - 16)
 
루터는 이 부르심을 완전 구원으로 신학화 했습니다. 이것이 루터의 이신칭의 교리 입니다.
그래서 루터는 그리스도 의가 그리스도인에게 전가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완전 구원받았고 옳은 사람이 되었다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예수 믿고 이제껏 바른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날마다 주께서 바른 길로 인도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예수 믿고 바른 사람으로 변화된 사람을 이제껏 보지 못했슺니다.
바울은 생애 말기에 쓴 로마서에서 인간 한계를 절규하며 하나님 은혜를 구합니다.
 
(로마서 7장)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바울은 결코 자신이 어디에서든지 1 번도 변화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보다 결코 바르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습니다.
내가 바른 사람이라는 인식으로는 세상 사람들에게 호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
 
완전한 인간을 추구하는 도덕 신앙은 가난한 사람 정상이지 못한 사람을 불쾌해 합니다. 그들을 도운다해도 인간 존엄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족이나 자신 체면을 위한 구제입니다.
완전한 인간 추구는 성서 가르침이 아니라 신플라톤주의 사상 입니다. 완전한 인간은 낮은 곳에 임하는 하나님 의를 볼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의인 체다카는 이스라엘에 천 년 이상 내려온 다양한 개념 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포로기를 마치고 귀환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 의를 선포합니다. 그는 하나님 의인 체다카를 구원으로 사용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의를 관계를 통해서 이루는 하나님 구원 사역으로 이해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 의가 이루어지는 현실을 증언합니다.
 
(이사야 42장)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요즘 반 기독교 사상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유전 생물학자 리차드 도킨스는「이기적 유전자」에서 기독교를 반대합니다.
그는 세상은 적자생존으로서 약한 생명은 도태되고 강한 생명은 살아남아 인류가 강함으로 진보하는데 기독교가 쓸데없이 약한 사람들을 도운다고 비난합니다.
히틀러가 유대인과 집시 6 백만 명을 죽인 것은 강한 아리안 족만 살아야 하고 인류에 해악되는 유대인과 집시는 지구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 입니다.
히틀러는 권력을 장악하자 자국내 당시 불치병인 심장병과 페병 환자를 모두 수용하여 죽였습니다.
살아나지도 못할 건데 국가에 부담만 준다는 생각 입니다.
 
하나님 의는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에 임합니다. 인간 눈에는 곧 망하고 죽을 것 같지만 하나님 눈에는 그는 쇠하지 않으며 낙담하지 않고 그가 정의를 세우기 때문 입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하나님 앞에 도덕으로 바로 선 사람에게 투표했다는 그리스도인 글을 보았습니다. 믿음을 사랑으로 시위(demonstration)하지 않고 도덕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신앙 강자(elite) 입니다. 예수 시대 바리새인과 같습니다.
강자가 세우는 정의는 거짓 입니다.
그 정의가 기득 세력에 봉사하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 의가 가난한 사람들과 사회 정착을 어려워 하는 젊은이 비정규직 근로자 망해가는 자영업자 병든 사람 돈 없고 힘 없는 노인 소외된 사람 실패한 사람 이주 노동자 고국을 떠난 난민에 임합니다.
그들이 세상에 진정한 정의를 세웁니다.
 
다음회는 하나님 의를 어떻게 실행하는가를 올립니다.
 
1. 케네스 레이너드, 에릭 L 샌트너, 슬라보예 지젝 이웃 정옥현 도서출판 b 2010, 173 - 174p 로렌츠 바이크 - 구원의 별
2. 프리드릭 J 머피 초기 유대교와 예수운동 유선명 새물결플러스 2020, 93p
3. 최의원 구약논문집 기독교문서선교회 1986, 1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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