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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5:1-5 흔적이 있는 자
에스라5:1-5 말씀으로 흔적이 있는 자라는 제목으로 같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 손을 보면 상처투성입니다.
칼로 베이고 냄비에 데여서 손에 상처가 많습니다.
또 축구선수의 발을 보면 울퉁불퉁합니다.
야구선수의 손을 보면 손에 굳은살이 단단히 박혀있습니다.
어제 김연아 선수가 역전으로 우승했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피겨스케이트를 하니까 몸을 U자로 휘느라 허리가 많이 아프다고 합니다.
농구선수나 핸드볼 선수도 온 몸에 멍이 들어 있습니다.
다들 자기분야에서 열심히 한 사람들은 무엇인가 흔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신앙생활하면서 주님 앞에 아무런 흔적 없이
이 세상을 마치고 주님 앞에 선다면 부끄러울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하다가 왔느냐’라고 물어 보신다면 ‘하나님 보셨잖아요. 무엇하다 왔잖아요’하면서 흔적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되야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스룹바벨 성전을 건축하는데 여러 가지로 방해가 있어서 성전건축을 미루고 있을 때 학개와 스가랴가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고 하므로 스룹바벨 성전이 건축되는 과정속의 얘기입니다.
학개와 스가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스룹바벨, 예수아가 일어나서 전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가 나와서 ‘누가 너희를 명해서 전을 건축하느냐’라고 물어볼 때 4절에 ‘우리가 이 건축하는 자의 이름 고하였다’고 했습니다.
16절에 보면 세스바살이 나옵니다.
스룹바벨과 세스바살이 나오는데 같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스룹바벨이 그 다음에 일 한 사람이고 먼저 일한 사람이 세스발살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역대상 3:18에 보면 여호야김 왕의 아들이 세낫살이 나오는데 이 사람이라고 하기도 하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그런데 4절에 보면 건축하는데 이름을 고했다고 할 때
16절에 ‘세스바살이 이르러 전지대를 놓았고’라고 하는 말이 있기 때문에
세스바살이 시켜서 했다고 말을 했을 것이다라고 봅니다.
5절에 보면 ‘하나님 유다 장로들을 돌아보셔서 능히 성전 건축하는 역사를 폐하지 못하게 하고 다리오 왕에게 고해서 답장이 오기를 기다렸다’고 오늘 본문 내용이 말하고 있습니다.
성전 건축을 하는데 중단이 됐지만 방해를 못하고 학개와, 스가랴와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세스바살과 장로들이 힘들 합해서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해 가는 큰 흔적을 남기는 내용이
오늘 본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무엇인가 흔적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했느냐고 물어본다면 무엇인가를 했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지
아무것도 한것없이 복만 빌다가 복 받고 살다 왔다고 하면 안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어떤 흔적을 가져야 될 것인가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첫 번째 라5:1-2
1 선지자들, 곧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가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어 유다와 예루살렘에 거하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언하였더니
2 이에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과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가 일어나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매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함께 하여 돕더니
첫 번째 낙심해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증거하는 흔적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학개와 스가랴는 성전건축을 낙심해서 미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학개서에 보면 ‘나무를 가져다가 성전을 건축하라’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때 전부다 낙심상태에 있었는데 학개가 그 말을 시작하고
스가랴가 2달 있다가 그 말을 시작하므로 성전건축이 재개돼서
에스라 6장에 완성되는 내용을 말합니다.
여기서 학개와 스가랴가 큰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낙심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증거하는 사람이 학개와 스가야입니다.
솔로몬 성전이 파괴되어 지고 70년 있다가 귀환해 와서 성전을 건축하지만 16년 동안 미루어 지고 있었습니다.
완성 못하고 있다고 학개를 통해서 또 2달후에 스가랴를 통해서 낙심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이 증거됨으로 말미암아
2절에 보면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일어나 성전건축을 시작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전건축을 재개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이 학개와 스가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세상을 살다보면 여러 가지 일을 만나게 됩니다.
요즘에는 낙엽 떨어지는 것을 보니까 낙엽이 떨어지면 떨어지는 대로 운치가 있고,
그리고 내년에 파릇하게 새싹이 나면 그 나름대로 아름답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항상 좋은 일만 우리 앞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모저모로 인도해 가시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낙심가운데 있어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얘기를 해서 나 자신이 먼저 서고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쳐서 소망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낙심해서 힘들고 어려우면 주저앉으려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꾸 세워서 그 사람이 걸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것,
말을 해주고 증거하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어떤 매개체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 매개체가 없이 어떤 사람이든지 쭉 나갈 수 없습니다.
저도 한참 힘들 때 앞은 깜깜하니 안 보일때가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산업대학교를 걸으면서 제가 ‘낙엽을 밟으며’그러니까 옆에 있던
사모님이 ‘암담했을 때가 생각나네’ 그러더라구요.
어려울 때 은행나무 잎을 밟으면서 이것을 언제까지 밟아야 하나 하면서 걸었었던 때가 생각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시작이 끝이 있는 것이고, 항상 그것이 계속 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을 갖도록 자꾸 얘기해주어야 합니다.
부부지간에도 다른 사람이 낙심하면 다른 사람이 세워주고, 용기를 주어야 합니다.
제가 처음 운전 시작할 때 용산 쪽에 있는 약간 높은 언덕에 3번째에 서 있었는데
앞차는 신호를 받아서 다 지나가는데,
나는 아무리 밟아도 차가 앞으로 안나가고 뒤로 밀리는 겁니다.
뒤에서는 안 간다고 빵빵거리고 나는 못 가고 있으니까 등에서 식은땀이 나더라구요.
그때 내 뒷사람이 내가 초보자인줄 알고 와서는 학원에서 배운대로 해보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학원에서 배운대로 하니까 쭉 하고 올라가는 겁니다.
저는 지금도 운전할 때 그 사람 생각이 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낙심해 있을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증거해주는 흔적이 우리에게는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는 흔적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사람은 나를 잊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도 뒤에서 빵빵거리면 그 사람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우리에게 흔적이 있어야 하는데 그냥 지나가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낙심가운데 있어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말해주는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갈6:14, 17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바울은 주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편지도 쓰고 교회도 세우며
일을 많이 한 바울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예수님의 흔적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바울과 같이 우리 주님의 뜻을 이루도록 낙심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소망의 말을 할 수 있는 흔적을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라5:3-4
3 그때에 강 서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 동료가 다 나아와 저희에게 이르되 누가 너희를 명하여 이 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하기로
4 우리가 이 건축하는 자의 이름을 고하였으나
두번째 방해해도 하나님 일을 잘 하도록 감당하는 흔적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 스달보스내와 닷드내가 성전재건을 못하도록
‘누가 너희에게 전을 건축하라고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총독이 닷드내입니다. 이 사람들은 바사의 관리인데 성전건축을 방해하려는
권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더니 4절에 ‘우리가 이 건축하는 자의 이름을 고했다’고 합니다.
16절에 보면 ‘세스바살’이 성전건축을 하라고 했다고 하는 표현이 나옵니다.
‘세스바살이 하라고 해서 합니다’라고 얘기했다는 겁니다.
아무리 바사가 또 스달보스내와 닷드내가 방해를 해도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한 사람이 세스바살인 것입니다.
2절에도 보면 스가랴, 학개가 얘기하니까 스룹바벨과 예수가 일어났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방해를 해도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6장에 성전을 다 완성하게 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을 할 때 늘 방해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럴 때 조심해야 됩니다.
우리 주님 안에 머물기보다 세상으로 가기는 쉽습니다. 세상으로 가는 것은 순간입니다.
예전에 오래된 신앙생활한 사람을 봤는데 지금은 신앙생활을 안하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옆에서 소망을 심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겁니다.
우리가 올바로 신앙생활 한다고 하면 방해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일날 성경책만 끼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방해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방해가 분명히 있습니다.
여기에 공부하러 오시는 분들도 멀리서 옵니다. 충청도 광천에서 오시는 분도 계십니다.
계속 공부를 하려고 하면 못 가게 찾는 사람도 많고, 부르는 사람도 많고,
문제도 많이 생긴다고 합니다.
방해가 들어오면 내가 올바로 가고 있으니까 방해가 있구나 알고 물리치는 흔적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 세스바살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 ‘누가 이 일을 시켰냐’고 하니까 4절에 사람들이 ‘세스바살이 시켰어요’했을 겁니다.
‘세스바살 너 왜 시켰어’ 하니까 ‘바사 왕이 허락했다’고 세스바살이 말했다는 겁니다.
아무리 방해를 해도 하나님의 일을 잘 하도록 감당하는 사람이 세스바살, 스룹바벨, 예수아 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 앞에 많은 박해가 있습니다.
내가 영적 심령성전으로 만들어지려면, 내가 관점이 바뀌어서 하나님의 뜻이 내 속에서 역사하고,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 프로그램안에서 하나님의 심정을 잘 이해하려고 하면 분명히 방해가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주보를 보세요. 같이 크게 읽겠습니다.
1. 말씀을 듣고 관점이 바꿔지게 하는 교회
2. 하나님의 심정이 깨달아 지게 하는 교회
3. 살아가는 삶 속에서 변화되게 하는 교회
이렇게 되려면 항상
안에 계신 주님을 깨달으며,
옆에 계시는 주님을 의식하며,
앞에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모님은 가끔 하계역 앞에 있는 노점에서 채소를 삽니다.
그런데 그 분이 안나오면 그 옆에 계신 할머니한테 가서 물건을 삽니다.
어제는 안나오셔서 옆에 계신 할머니한테 가서 물건을 사러갔는데 할머니가 ‘사모님이세요?’ 라고 묻더래요. 그래서 ‘그렇습니다’ 대답했대요.
한번도 사모님이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그러면 그렇지 점잖으시더라’그러더래요.
그래서 사모님 하는 말이 ‘옆에 계신 주님을 의식하며’살아야 된다고 하더라구요.
그렇습니다. 항상 우리 주님하고 나하고 같이 있는 겁니다.
내가 한 말 주님이 다 들으십니다.
아무말 안 해도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있어요. 하나님이 나를 보고 있다고요.
항상 이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을 늘 깨달아야 해요,
옆에 계시는 주님을 의식해야 해요, 앞에 계시는 주님을 보고
우리는 말씀을 듣고 관점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관점이 바뀌어진 사람은 강남에 타워팰리스를 100억채를 갖은 것 보다
더 큰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강남에 있는 타워팰리스는 우리가 육신을 갖고 있는 동안만 필요한 것이지 죽고나면
다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관속에 가지고 가라고 해도 못 가져갑니다.
못가지고 갈 것을 위해서 애쓰지 마세요.
우리는 말씀을 듣고 관점이 바꿔져야 되고, 하나님의 심정이 깨달아져서
삶 속에서 변화가 이루어 져야 합니다. 그럴려고 하면 방해가 많습니다.
‘꼭 그렇게 해야돼?’ ‘그것이 신앙생활이야?’ ‘왜 이렇게 어려운 소리만해’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절대로 아무리 방해를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여 흔적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우리에게 아무리 힘들고 두려운 방해가 있어도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피할 길을 내시니까 잘 감당하여 흔적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딤후1장에 오네시보로가 나옵니다.
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부겔로와 허모게네는 손해가 날까 싶으니까 안 찾아 왔습니다.
그러나 오네시보로는 날마다 찾아 왔습니다.
다른 사람은 안 찾아 와도 오네시보로는 계속 찾아 왔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흔적 있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방해를 해도 끝까지 바울을 찾아온 흔적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정말로 내 관점이 바뀌고 하나님이 심정이 깨달아져서
삶에서 변화가 되어지려고 하면 방해가 있습니다. 그
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해 가는 흔적 있는 저와 여려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라5:5
5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아보셨으므로 저희가 능히 역사를 패하게 못하고 이 일을 다리오에게 고하고 그 답조가 오기를 기다렸더라.
세 번째 어려워도 하나님이 돌아보시도록 헌신하는 흔적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유다 장로들이 힘들고 어려움 가운데도 헌신하니까 하나님이 장로들을 돌아봤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희가’ 닷드내와 스달보스내가 ‘이 역사’ 성전건축 하는 역사를 패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 일을 다리오에게 고했습니다. ‘이 일을 왕이 허락했습니까?’ 물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리오 왕의 답조가 오기를 기다렸다고 그랬습니다.
여기에 있는 장로들이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돌아보실 정도로 헌신했는가 입니다.
그러니까 5절에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아보셨다’ 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이 돌아보실 만큼 헌신했던 유다장로들이 있었기 때문에 스달보스내와 닷드내가 성전건축 하는 역사를 패하게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다리오 왕의 답조가 오기까지는 중단은 하지만 못하게는 못했다는 겁니다.
장로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겁니다.
스룹바벨 성전을 건축하는 데도 이런 헌신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흔적이 있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을 잘 감당해 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이 돌아보시도록 헌신했다고 하는
흔적이 있다고 하는 사람은 자기의 생을 가치 있게 사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지금 낙엽은 떨어지지만, 봄이 오면 싹이 돋고, 여름이 되면 무성해지고,
또 가을이 되어 낙엽이 됩니다. 낙엽이 다 떨어지고 겨울이 오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봄이 있다고 하면 여름이 있고 가을이 있고 겨울이 있습니다.
그것은 누구에나 옵니다. 항상 돌아가는데 우리 앞에 겨울이 오기 전에 ‘무엇을 했느냐’ 고 하나님이 물으신다면 ‘어려워도 하나님이 돌아보시도록 헌신했습니다’ 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항상 우리의 삶 속에서 세상적인 복을 받아서 잘 살려고 하기보다는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흔적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흔적은 영원히 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할 때는 힘들고 아프지만 나중에 보면 너무나 귀한 것이 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빌2:30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헌신했던 에바브로디도의 얘기입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파견한 사람이 에바브로디도입니다.
죽기에 이르러도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헌신했던 사람이 에바브로디도 였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로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이 돌아보시도록 헌신하여 흔적이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돼서 우리 삶이 가치 있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뿌듯한 삶을 살아가는 흔적이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흔적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첫 번째 낙심해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증거하는 흔적이 있는 사람
두 번째 방해해도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흔적이 있는 사람
세 번째 어려워도 하나님이 돌아보시도록 헌신하는 사람이 되어서
가치 있고 소중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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