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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욥기 18장1-21 / 욥의 친구 빌닷의 지당하면서도 잘못된 조언

by 【고동엽】 2022. 11. 13.
■2021-11-5(금)■


(욥기 18장)


1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이르되
2 너희가 어느 때에 가서 말의 끝을 맺겠느냐 깨달으라 그 후에야 우리가 말하리라
3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하게 보느냐
4 울분을 터뜨리며 자기 자신을 찢는 사람아 너 때문에 땅이 버림을 받겠느냐 바위가 그 자리에서 옮겨지겠느냐
5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불꽃은 빛나지 않을 것이요
6 그의 장막 안의 빛은 어두워지고 그 위의 등불은 꺼질 것이요
7 그의 활기찬 걸음이 피곤하여지고 그가 마련한 꾀에 스스로 빠질 것이니
8 이는 그의 발이 그물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려들며
9 그의 발 뒤꿈치는 덫에 치이고 그의 몸은 올무에 얽힐 것이며
10 그를 잡을 덫이 땅에 숨겨져 있고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길목에 있으며
11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라게 하고 그 뒤를 쫓아갈 것이며
12 그의 힘은 기근으로 말미암아 쇠하고 그 곁에는 재앙이 기다릴 것이며
13 질병이 그의 피부를 삼키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의 지체를 먹을 것이며
14 그가 의지하던 것들이 장막에서 뽑히며 그는 공포의 왕에게로 잡혀가고
15 그에게 속하지 않은 자가 그의 장막에 거하리니 유황이 그의 처소에 뿌려질 것이며
16 밑으로 그의 뿌리가 마르고 위로는 그의 가지가 시들 것이며
17 그를 기념함이 땅에서 사라지고 거리에서는 그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을 것이며
18 그는 광명으로부터 흑암으로 쫓겨 들어가며 세상에서 쫓겨날 것이며
19 그는 그의 백성 가운데 후손도 없고 후예도 없을 것이며 그가 거하던 곳에는 남은 자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
20 그의 운명에 서쪽에서 오는 자와 동쪽에서 오는 자가 깜짝 놀라리라
21 참으로 불의한 자의 집이 이러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의 처소도 이러하니라




(묵상/욥 18:1-21)


◆ 빌닷의 잘못된 조언


(3) 어찌하여 우리를 짐승으로 여기며 부정하게 보느냐


욥의 친구들은 나름대로 욥이 회복되도록 도움을 주는 조언을 하였는데, 받아들이기는커녕 오히려 자신들을 나무라자 이제는 욥에게 짜증 낸다.


그들의 기준으로는 욥은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했다. 고난을 당하는 주제에 어디 감히 토를 다는가?
이제 욥은 불쌍히 여길 가치조차 없는 사람이 되었다.


빌닷은 악인이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되는지를 열심히 설명한다.


악인의 빛은 꺼지고
그의 발은 그물에 빠지고, 덫에 치이며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라게 하고
질병이 그의 피부를 삼키며
그는 공포의 왕에게로 잡혀가고
밑으로 그의 뿌리가 마르고 가지가 시들 것이며
백성 가운데 후손도 없을 것이다.


지당한 말이다. 욥도 그런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조심하며 온 힘을 다해서 의롭게 살려고 하지 않았던가?
욥의 친구들도 그동안 욥이 얼마나 의롭게 살았는지를 잘 알 것이다.


그런데 고난이 닥치자마자 그들은 욥을 정죄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고난 자체가 욥이 악인임을 드러낸다고 믿었다. 
얼마나 단순한 생각인가?


사실 대부분 사람은 이렇게 단순한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개인의 고난을 개인의 죄로만 간주하는 생각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가?


특히 자신이 평소에 못마땅하게 생각한 사람이거나 자신을 못살게 군 사람이라면 그는 하나님께 벌을 받았다고 속단한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히 9:27).
예외는 없다. 그리고 지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끔찍한 곳이다. 그런 심판은 죽고 난 뒤에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살아있는 사람을 정죄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것이라고 단정하면  안된다. 그것은 죄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끝날 수 없다. 


심지어 예수님조차도 그런 오해를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는데, 사람들은 그분이 하나님께 징벌을 받는 것이며 매를 맞고 고난을 당한다고 믿었다 (사 53:4)


그런 속단과 판단이 하나님 보실 때는 매우 악한 것임을 잊지 말자.


우리는 고난 당하는 사람을 무조건 긍휼히 여겨야 한다.
그것이 성도다운 태도다. 


성경은 고난의 이유를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다.


아벨이 죽게 된 것은 아벨이 악해서가 아니라 가인이 악했기 때문이다(창 4:8).


이스라엘 백성들이 메마른 광야 생활을 하도록 하신 것은 다른 나라보다 죄를 많이 지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신 8:3)이었다.


실로암 소경이 태어나면서 장님이었던 것은 그나 그의 아비의 죄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요 9:3).


욥의 고난은 무슨 이유일까?
우리는 욥기가 끝날 무렵에 여기에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욥은 단순히 하나님과 사탄의 내기에 사용된 게임 말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욥이 얼마나 인내가 강한가를 시험하시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위해서 더 깊고 위대한 길로 인도하신다.
욥이 알지 못했던 욥의 깊은 것을 끄집어내신다.
욥은 아직 그것을 알 수 없다. 단지 현실이 힘들고 괴로울 뿐이다.


욥기 전체가 우리에게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주님,
잘못된 지식으로 형제를 실족케 하는 일이 없게 해주십시오.
환난 당하는 자를 위로할 수 있는 지혜와
회개가 필요한 형제를 온유하게 권면할 수 있는 분별력을 주십시오.
그리고 매사에 말을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같이 하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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