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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 감사의 노래(양마가 목사)

by 【고동엽】 2022. 11. 13.

추수 감사의 노래

설교말씀: 시편 65:1-13

설 교 자: 양마가 목사

본 시편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베푸신 풍성한 은혜를 찬양하는 감사의 시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특별 은총에 대한 감사(1-8)와 일반 은총에 대한 감사(9-13)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1) 이 말씀은 시편 저자인 다윗의 하나님께 대한 마음 자세를 말해줍니다.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라는 말씀은 다윗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싶어서 주의 전에서 긴장된 마음으로 고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여 전날의 서원을 갚고자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베푸신 특별 은총과 일반 은총을 생각할 때에 심령에서부터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서원을 이행함으로써 그 은혜를 갚고자 했습니다. 2-13절은 그가 하나님을 찬송하고자 하는 이유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첫째, 기도의 응답에 대한 감사입니다.(2)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가리켜 ‘기도를 들으시는 주’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 기도를 응답해 주시는 분이심을 말해줍니다. 이 때문에 모든 육체가 주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모든 육체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국적,신분,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세상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어떤 특정한 사람이나 특정한 민족의 주가 아니고 만민의 주이시기 때문에 세상 어떤 사람이라도 주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주 주님께 나아와 간구한다고 해서 귀찮게 여기시거나 꾸짖지 아니하십니다. 오히려 끈질긴 과부와 같이 자주 주님께 나아와 강청하는 자를 사랑하시고 귀히 여기시고 그의 기도에 깊이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야고보 선생님은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요14:13,14)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시시때때로 주님께 나아가 모든 문제를 고하고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큰 특권입니다. 불신자들은 평소에는 자신의 의지와 성실을 믿고 큰 소리치며 믿는 자들을 조롱하고 업신여기지만, 막상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기거나 환난을 당하면 도움을 구할 대상을 찾습니다. 점장이를 찾아가기도 하고 고목나무나 산신령에게 새벽마다 정한수를 떠 놓고 100일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리 빌어도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목나무의 속이 왜 비어있는 줄을 아십니까? 이는 사람들이 고목나무에게 무엇을 해결해 달라고 밤낮으로 비는데 고목나무는 해결해 줄 능력이 없어서 고민 고민하다가 속이 다 썩어서 비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 뜻대로 구하면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요일5:14) 다윗은 기도의 종이었습니다. 그는 매사에 주님께 기도함으로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고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하나님을 ‘기도를 들으시는 주’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 사죄의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3) 특별 은총 중에서도 사죄의 은혜는 가장 큰 은총입니다. “죄악이 나를 이기었사오니 우리의 죄가를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죄악이 나를 이기었다’는 말씀은 죄의 세력에 압도당하여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죄는 즐길만한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마음이 원하는대로 함부로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죄는 무서운 세력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죄를 범하면 죄가 나를 삼켜서 죄의 종으로 만들어 버립니다.(요8:34) 죄는 천하장사나 영웅호걸도 무력하게 만들어 쓰러뜨리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에는 댓가가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죄의 쾌락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의 쾌락은 잠시 뿐 그 후에는 무서운 죄의식과 양심의 가책과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하게 됩니다. 쾌락은 순간이요 고통은 지속적이고 영원합니다. 결국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6:23a)

다윗은 죄의 세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체험적으로 알았습니다. 다윗은 백전노장으로서 가는 곳마다 원수를 무찌르고 승리했습니다. 그는 무적의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그도 정욕의 죄 앞에서는 힘없이 쓰러졌습니다. 그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후 이를 은폐하기 위해 충신 우리아를 전쟁 일선에 내보내어 죽게 했습니다. 그는 전제군주시대의 왕이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었고, 그것이 조금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사람들 앞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겼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혔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은 무서운 양심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시편 32:3,4절은 이를 잘 말해줍니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죄는 우리의 인격을 파괴시키고 우리의 삶을 불행하게 하고 우리의 인생을 영원한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무서운 죄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죄는 상대적이고 도덕적인 개념으로보다는 절대적이고 영적인 개념으로 파악되어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고 정욕의 죄를 범했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께 죄를 범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면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면해 주실 때만이 우리는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평강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깨닫고 그 죄로 인해 슬퍼하고 진실되게 고백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요일1:9) 다윗은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고백했습니다.(시32:1)

지난 한 해를 돌이켜 볼 때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하나님께 수 없이 죄를 지었습니다.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저는 죄를 지을 때마다 죄의 짐에 짓눌려 고통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게서는 제가 염치불구하고 나아가 진실되게 죄를 고백하고 사죄의 은혜를 간구하였을 때 저를 정죄치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 피로 정결케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명을 감당할 힘을 주셨습니다. 이 죄사함의 은혜는 여러가지 감사제목 중에서도 가장 큰 감사제목입니다.

셋째, 주님과의 교제에 대한 감사입니다.(4) 다윗의 세번째 감사제목은 주님과의 교제입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있는 상태로 나아가게 되면 죽게 됩니다. 반드시 사죄의 은혜를 받아야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 죄 때문에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젠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 피로 죄사함 받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말할 수 없이 큰 축복입니다. 세상에서는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대통령과 가까이 살면서 교제하는 것을 몸둘 바를 모를만큼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호흡이 코에 붙은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대통령과의 교제도 영광스럽게 생각하거든, 하물며 천지만물과 우리 인간을 지으시고 세상을 그 뜻대로 통치하시는 대주재이신 하나님과의 교제는 얼마나 영광스럽고 복되겠습니까?

또한 사람들과의 교제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찌라도 오랫동안 교제하면 덤덤하거나 싫증이 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만 교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교제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감정적이어서 서로 물고 뜯고 싸우고 속고 속이면서 살아갑니다. 이런 과정에서 사람들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고 괴로워합니다. 사람과의 교제는 우리를 피곤하게 하고 지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교제는 우리의 피곤한 영혼을 소생시키고 참 쉼을 줍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1:28) 하나님과의 교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내면에 잔잔한 평화와 영혼의 기쁨을 줍니다. 우리에게는 먹고 마시는 1차원적인 육신의 기쁨이 있고,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때 누리는 정신적인 기쁨이 있고,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누릴 수 있는 영혼의 기쁨이 있습니다. 인간은 영혼의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리 육신의 기쁨과 정신적인 기쁨을 충만히 누린다고 할지라도 무엇인가 빈 것 같이 마음이 허전하고 참 만족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영혼의 기쁨을 누릴 때만이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오는 영혼의 기쁨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23:1-3) 하나님과의 교제로 말미암아 누릴 수 있는 축복은 돈으로도 살 수 없고 우리의 노력으로도 얻을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사는 그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총입니다. 우리는 매일 말씀공부와 기도하기를 통하여 이러한 은총을 누릴 수 있습니다.

넷째, 구원에 대한 감사입니다.(5-8)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의 의지할 주께서 의를 좇아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이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 곧 세상 모든 사람이 의지할 분이 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구원을 베푸실 때 두가지 방법으로 하십니다.

이 하나님은 그의 의를 좇아 구원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실 때에 결코 불공정한 방법으로 하지 않으시고 의를 좇아 공의롭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 역사도 어린 양을 온전히 희생하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바름으로 이루어졌습니다.(출12:1-14)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실 때에도 하나님의 어린 양되시는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그의 의로 구원하셨습니다. 로마서 3:25절은 이를 잘 말해줍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이 하나님은 그의 크신 능력으로 구원하십니다. 엄위하신 일이란 경이로운 일, 초자연적인 능력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강한 바로의 권세로부터 벗어나는데는 그보다 더 강한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가 죄와 사단의 권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키시므로 그 능력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권세로 부터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를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구원하신 것은 너무나 크고 엄청난 일이어서 일생동안 아무리 감사해도 부족합니다. 우리가 질병에서 구원받거나 화재나 교통사고와 같은 위험으로부터 구원받을 때 감사가 충만하게 됩니다. 하물며 우리르 ㄹ불행하게 하고 영원한 파멸에 이르게 하는 죄의 질병과 사망권세로부터 구원받고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은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것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값비싼 희생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나 만입이 있어 그 은혜를 감사찬송하여도 부족합니다. 우리는 다만 그 은혜에 감격하여 눈물만 흘릴 뿐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제가 무엇이관대 이처럼 말할 수 없이 큰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는지요.”

6-8절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엄위하신 일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6절 말씀은 하나님의 창조역사를 말하고, 7절 말씀은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신 능력의 역사를 말합니다. 이로 인해 세상 모든 사람이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게 됩니다.(8)

다섯째, 풍성한 열매에 대한 감사입니다.(9-13) 우리는 이때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특별은총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특별은총은 예수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만 주시는 영적 축복입니다. 다윗은 이제 일반은총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일반은총은 믿는 자나 불신자나 세상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동일하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에게 동일하게 내리우십니다.(마5:45) 그리하여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동일하게 추수의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실로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9절을 봅시다.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케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저희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 놀라운 지혜로 섬세하게 만물의 상황을 살피시고 창조하신 것들의 부족함을 보충하시고 번영케 하십니다. 이를 가리켜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땅의 열매를 맺어 인간으로 하여금 그 열매를 먹고 살 수 있도록 돌보십니다. 땅에는 씨를 심으면 성장할 수 있는 영양분을 주시고 태양 에너지와 비를 주심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마련하여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씨를 심고 밭을 매고 열심히 일하여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감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비만 내리시지 않으셔도 가뭄으로 말미암아 추수를 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고 감사해야 됩니다. 공부를 잘하여 좋은 성적이 나온 것도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기 때문이요, 사업이 잘되어 재물을 얻게 된 것도 하나님께서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것도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시고 때를 따라서 이것 저것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주님의 풍성한 은총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주시나이다 주의 은택으로 년사에 관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초장에는 양떼가 입혔고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혔으매 저희가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니다”(10-13) 다윗은 주의 은택으로 년사에 관 씌우셨다고 말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1년 농사를 넘치도록 축복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다윗의 고백은 저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저는 지난 1년을 돌이켜 볼 때 주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은혜가 너무 커서 무어라고 감사를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난 인생동안 죄인을 들어 역사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생각할 때에 다만 그 앞에 엎드려 감사와 찬송과 경배를 드릴 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며 기도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와 저희 모임과 이 백성을 세계 만백성의 목자요 영적인 아버지요 성경선생이요 제사장 나라로 계속해서 귀하게 써 주시옵소서.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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