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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욥기 17장1-16 /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굽니까?

by 【고동엽】 2022. 11. 13.
■2021-11-4(목)■
 
(욥기 17장)
 
1 나의 기운이 쇠하였으며 나의 날이 다하였고 무덤이 나를 위하여 준비되었구나
2 나를 조롱하는 자들이 나와 함께 있으므로 내 눈이 그들의 충동함을 항상 보는구나
3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리이까
4 주께서 그들의 마음을 가리어 깨닫지 못하게 하셨사오니 그들을 높이지 마소서
5 보상을 얻으려고 친구를 비난하는 자는 그의 자손들의 눈이 멀게 되리라
6 하나님이 나를 백성의 속담거리가 되게 하시니 그들이 내 얼굴에 침을 뱉는구나
7 내 눈은 근심 때문에 어두워지고 나의 온 지체는 그림자 같구나
8 정직한 자는 이로 말미암아 놀라고 죄 없는 자는 경건하지 못한 자 때문에 분을 내나니
9 그러므로 의인은 그 길을 꾸준히 가고 손이 깨끗한 자는 점점 힘을 얻느니라
10 너희는 모두 다시 올지니라 내가 너희 중에서 지혜자를 찾을 수 없느니라
11 나의 날이 지나갔고 내 계획, 내 마음의 소원이 다 끊어졌구나
12 그들은 밤으로 낮을 삼고 빛 앞에서 어둠이 가깝다 하는구나
13 내가 스올이 내 집이 되기를 희망하여 내 침상을 흑암에 펴놓으매
14 무덤에게 너는 내 아버지라, 구더기에게 너는 내 어머니, 내 자매라 할지라도
15 나의 희망이 어디 있으며 나의 희망을 누가 보겠느냐
16 우리가 흙 속에서 쉴 때에는 희망이 스올의 문으로 내려갈 뿐이니라




(묵상/욥 17:1-16)


◆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굽니까?


(3) 청하건대 나에게 담보물을 주소서 나의 손을 잡아 줄 자가 누구리이까


욥은 친구들이 자신을 그들보다 훨씬 더 큰 죄인으로 몰아가는 것이 괴롭다.
자신의 결백을 밝혀줄 자가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욥은 하나님께 호소한다.


"담보물을 주십시오."(3)
이 말은 16장과 연결해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16장 끝에서 욥은 하나님과 자기 사이, 그리고 친구들과 자기 사이에 중재할 자를 요구하는데 그 연장선에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욥의 손을 잡아줄 자, 중보자 되신 그 분이 누구신가?


성도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중보자가 되시고, 구원의 담보물으로서 성령을 주셨다.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고후 1:22)


욥이 그토록 갈망했던 중보자가 우리에게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리고 우리에게 부인할 수 없는 간증이 있는데, 성령께서 내게 계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예수님께서 주되신 것과 창조와 부활, 그리고 십자가의 대속을 이렇게 확고하게 믿을 수 있었겠는가? (고전 12:3)




◆ 욥의 괴로움


(5) 보상을 얻으려고 친구를 비난하는 자는 그의 자손들의 눈이 멀게 되리라


5절은 욥이 친구들에게 쏟아부은 독설처럼 보인다.
그러나 5절은 당시의 속담을 인용한 것이다. 6절에서 욥이 자신이 '속담 거리'가 되었다는 말로 미루어 볼 때 이것은 욥의 독설이 아니라 사람들이 속담을 인용하면서 욥에게 손가락질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표준새번역은 명쾌하게 잘 번역하였다.
"옛 격언에도 이르기를 '돈에 눈이 멀어 친구를 버리면, 자식이 눈이 먼다.' 하였다. 사람들이 이 격언을 가지고 나를 공격하는구나. 사람들이 와서 내 얼굴에 침을 뱉는구나. "(욥 17:5, 6)


속담 자체는 권선징악의 내용이라 별 문제없어 보이는데, 이것을 꺼꾸로 적용할 때 문제가 된다. 즉 자손들의 눈이 먼 것은 친구를 비난했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명제가 참일지라도 그 역은 거짓인 것이 얼마나 많은가!  밥을 계속 못 먹으면 죽는다. 그러면 죽은 사람은 모두 밥을 못 먹은 탓인가? 말도 안된다.


재산을 잃고, 자식을 잃고, 이제는 지독한 피부병으로 고통받으면서 오직 죽기만을 바라는 형편이다. 그런데 이것을 보고 욥이 더러운 이익을 추구했음에 틀림없다고 단정한다. 


욥이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사람들이 자기를 죄인 취급하고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이다.  적어도 친구라면 사람들의 그런 비난을 막아서야 하건만, 오히려 그런 사람들의 비난에 동조하고 더 확신하여 추궁하다니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가?


8절, 9절도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다. 아마도 직역을 하다 보니 그런 번역이 되었을 것이다. 약간의 의역을 도입한 표준새번역이 자연스럽다.
"정직하다고 자칭하는 자들이 이 모습을 보고 놀라며, 무죄하다고 자칭하는 자들이 나를 보고 불경스럽다고 규탄하는구나. 자칭 신분이 높다는 자들은, 더욱더 자기들이 옳다고 우기는구나."(8,9 표준새번역)


12절부터 16절도 개역개정 성경보다는 표준새번역이 앞 뒤 문맥에 자연스럽고 이해하기가 쉽게 번역되었다.
 
" 내 친구들의 말이 '밤이 대낮이 된다' 하지만, '밝아온다' 하지만, 내가 이 어둠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내 유일한 희망은, 죽은 자들의 세계로 가는 것이다. 거기 어둠 속에 잠자리를 펴고 눕는 것뿐이다.  나는 무덤을 '내 아버지'라고 부르겠다. 내 주검을 파먹는 구더기를 '내 어머니, 내 누이들'이라고 부르겠다.  내가 희망을 둘 곳이 달리 더 있는가? 내가 희망을 둘 곳이 달리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 있는가?  내가 죽은 자들이 있는 곳으로 내려갈 때에, 희망이 나와 함께 내려가지 못할 것이다."(12-16. 표준새번역)
 
일반인들이 욥의 절망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욥의 호소는 고난 당하는 자를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함부로 판단함으로써 그들의 심장을 후벼파지 일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교훈한다.
 
주님,
고난 당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을 주십시오.
적절하게 위로할 줄 알게 하시고, 그들이 나보다 더 사랑받는 자일 수 있음을 잊지 않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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