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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욥기 16장1-22 /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신다

by 【고동엽】 2022. 11. 13.
■2021-11-3(수)■
 
(욥기 16장)
 
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이런 말은 내가 많이 들었나니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
3 헛된 말이 어찌 끝이 있으랴 네가 무엇에 자극을 받아 이같이 대답하는가
4 나도 너희처럼 말할 수 있나니 가령 너희 마음이 내 마음 자리에 있다 하자 나도 그럴 듯한 말로 너희를 치며 너희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 수 있느니라
5 그래도 입으로 너희를 강하게 하며 입술의 위로로 너희의 근심을 풀었으리라
6 내가 말하여도 내 근심이 풀리지 아니하고 잠잠하여도 내 아픔이 줄어들지 않으리라
7 이제 주께서 나를 피로하게 하시고 나의 온 집안을 패망하게 하셨나이다
8 주께서 나를 시들게 하셨으니 이는 나를 향하여 증거를 삼으심이라 나의 파리한 모습이 일어나서 대면하여 내 앞에서 증언하리이다
9 그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적대시 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원수가 되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보시고
10 무리들은 나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나를 모욕하여 뺨을 치며 함께 모여 나를 대적하는구나
11 하나님이 나를 악인에게 넘기시며 행악자의 손에 던지셨구나
12 내가 평안하더니 그가 나를 꺾으시며 내 목을 잡아 나를 부숴뜨리시며 나를 세워 과녁을 삼으시고
13 그의 화살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사정 없이 나를 쏨으로 그는 내 콩팥들을 꿰뚫고 그는 내 쓸개가 땅에 흘러나오게 하시는구나
14 그가 나를 치고 다시 치며 용사 같이 내게 달려드시니
15 내가 굵은 베를 꿰매어 내 피부에 덮고 내 뿔을 티끌에 더럽혔구나
16 내 얼굴은 울음으로 붉었고 내 눈꺼풀에는 죽음의 그늘이 있구나
17 그러나 내 손에는 포학이 없고 나의 기도는 정결하니라
18 땅아 내 피를 가리지 말라 나의 부르짖음이 쉴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라
19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
20 나의 친구는 나를 조롱하고 내 눈은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니
21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노니
22 수년이 지나면 나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갈 것임이니라




(묵상/욥 16:1-22)


◆ 욥의 고통


"너희는 다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이로구나"(2)


재난을 주는 위로자. 이것처럼 어울리지 않는 말이 없다.
모름지기 위로자는 그를 위로해야 되건만, 친구들은 위로자라는 명목으로 조언한다는 것이 오히려 욥을 더욱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욥의 친구처럼 조언한답시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다. 고통을 겪는 자에게는 조언이 모두 상처가 되기에 십상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메시지가 없으면 함부로 조언하지 말고, 위로하고 격려하라.


입장 바꿔놓으면 욥도 얼마든지 그런 식의 조언은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욥은 입으로는 친구를 강하게 하며 입술의 위로로나마 근심을 덜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 욥의 오해


(9) 그는 진노하사 나를 찢고 적대시하시며 나를 향하여 이를 갈고 원수가 되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보시고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찢고, 적대시하고 이를 갈고 원수가 되시며 날카로운 눈초리로 보신다고 믿었다.


'나를 꺾으시며 내 목을 잡아 나를 부서뜨리시며 나를 세워 과녁으로 삼으시는 하나님'(12)
'그의 화살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사정없이 쏨으로 욥의 콩팥들을 꿰뚫고 욥의 쓸개까지 흘러나오게 하시는 하나님'(13)


욥의 말을 들으면 하나님이 잔혹하신 분으로 느껴진다.
욥은 이런 하나님을 증오했을까? 그렇지 않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행하신 일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고 있을 뿐이다. 그 와중에서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 20절에 욥이 하나님을 향하여 눈물을 흘렸다는 구절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다.


욥은 자신이 어떤 위치인가를 잘 알았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설사 하나님께서 자기를 죽여도 할 말이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욥의 신앙이 그 정도는 된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철저히 오해했다.
하나님은 욥을 미워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누구보다 욥을 사랑하신다. 욥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신다고 믿었어야 했다.
그러나 어떤 인간이 이렇게 모진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수 있을까?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우리는 이런 인간들을 신약에서 만나볼 수 있다. 돌에 맞고, 감옥에 갇혔어도 찬양했던 바울,


선교지에서 세 명의 자녀를 잃고 결국 아내까지 병으로 죽었어도 여전히 주님의 사랑을 의심치 않고 죽을 때까지 충성했던 중국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


공장은 불타고 상심한 중에 배의 파선으로 네 명의 자녀까지 모두 죽게 되었지만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413장)라는 찬양을 지은 호레이쇼 스패포드,


자녀들까지 순교 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격려하며 자식에게 기쁨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권면한 북한 어머니.


동경대에서 박사학위 받아서 잘 살 수 있는 길도 있었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사역하다가 폐암으로 죽은 대학 후배 전광호, 그것을 보고도 여전히 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그의 아내.


끝도 없이 열거할 수 있다.


이들이 모두 세상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그처럼 대단한 것이다.




◆ 중보자를 필요로 하는 욥


욥은 이 모든 고난을 겪고 있지만, 자기 손에는 포학이 없고 자기 기도는 정결하다고 믿었다(17).
친구들은 고난 겪는 주제에 감히 자신의 정결함을 주장하는 욥이 오만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고백은 욥의 양심에서 나온 고백이다.


나는 정결한데, 나를 무섭게 몰아치시는 하나님,
나는 충직한데, 나를 역적으로 취급하시는 왕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얼까?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귀담아들으실 것 같지 않은 분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욥은 중보자의 필요를 느꼈다.
중보자라면 양쪽에서 중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고, 그런 중보자가 하늘에 적어도 한 분은 계실 것이라고 믿었다.
"지금 나의 증인이 하늘에 계시고 나의 중보자가 높은 데 계시니라"(19)
누구라도 나서서 자기를 변호해주시면 좋으련만!


이제 우리에게는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신다.
우리의 모든 사정을 잘 아시는 예수님, 우리의 허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주시는 주님.


예수님은 나의 고통과 고난을 잘 이해하신다.
그것이 병으로 인한 것이든, 사역 때문에 당하는 것이든 모든 고난에 그분은 함께 하신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나를 버린 증거가 아니다.
예수께서도 이 세상에 계실 때 많은 고난을 겪으셨다.
종종 고난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히 12:6).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모든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연결되어 있다.
이것을 믿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자.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기며 광야에서 고생하는 와중에서도 이런 시편을 지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중략)….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 23)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 이러한 다윗의 믿음이 필요할 때다.


주님, 
주님께서 나의 선한 목자되십니다.
주님께서 저를 사랑하심을 감사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하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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