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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나를 채우라 (마태복음 12:43-45)

by 【고동엽】 2022.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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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나를 채우라  (마태복음 12:43-45)


미국의 시인[롱펠로]가 시상을 적어놓은 휴지조각이 자그마치 6000달러에 팔린 적이 있습니다. 단순한 휴지 조각에 불과한 종이에 위대한 시인의 문학성이 더해져서 값이 오른 것입니다. [피카소]가 데생을 해놓은 종잇조각은 무려 수백만 달러의 값어치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그 종이에 담겨진 작가의 예술혼 때문입니다. 손바닥 크기의 종잇조각에 미국 정부가 독수리그림의 도장을 찍으면 그것은 100달러짜리 지폐로 변합니다. 그리고 이 돈의 가치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인정해 줍니다. 그것은 종잇조각에 찍힌 미국 정부의 보증을 믿기 때문입니다. 인간자체로는 한없이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에 무엇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는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인격을 보증해 주는 존재가 누구냐에 따라서 삶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담겨져야 할 것이 담아지지 않은 인간이라면 불행합니다. 또한 자신이 무엇을 담고 살아야 할지를 모르고 평생을 사는 인생도 불행한 것입니다. 사실은 사람이 가장 똑똑하고 가치 있는 존재 같아도 한편으로는 자기를 모르고 자기에게 속고 사는 가장 어리석은 존재이기도합니다. 의사이자 심리학자인[빅터 프랭클]은 이런 공허감과 무의미에 시달리는 인간 상태를 철학적으로 <존재적 진공상태>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겉 사람은 멀쩡한 것 같은데 속이 텅 비어 있는 진공상태라는 것입니다. 빈 깡통 같은 존재라는 얘깁니다. 사람이 이렇게 진공상태에 빠지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두 가지 경우를 겪게 되는데 하나가<동조주의>입니다. 말 그대로 무조건 남이 하는 대로만 따라가는 것입니다. 나는 없습니다. 남이 충동하면 아무 생각 없이 멍청하게 그냥 따라갑니다. 또 하나가<전체주의>에 빠집니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만 이건 뭐냐 하면 차라리 내가 꼼짝 못하도록 내 자유라는 것은 아예 포기하고 강제적으로, 압력을 가해서라도 이끌어 주고 나는 그저 따라가고만 싶은 겁니다. 그래서 독재자, 전체주의라는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모르고 아무 생각도 아무런 의미도 없이 빈 깡통처럼 살아가는 존재적 진공상태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가 깊이 생각할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우리 또한 우리 속에, 영혼에 무언가를 채워야하는데 무엇을 채우고 살 것입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우리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교훈이 있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고 기적을 일으키시며 메시야 되심을 증명하자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던 당시의 종교지도자들, 즉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정죄하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안식일을 준수하느냐 안하느냐로 부터 시작해서 병자를 고치신 일에 대해서는 귀신 즉,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고쳤다는 등 별의별 모함을  다하고도 모자라서 오늘 본문에 보면 정말 메시야인지 표적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이들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표적을 구하는 것은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고 믿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비난하고 정죄할 거리를 찾으려고 하는 행위입니다. 이들의 비뚤어진 신앙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마음속에, 영혼 속에 매사를 그렇게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시각으로 보지 말고 제대로 된 것들을 담고 살라고 비유로 빈집의 비유를 들려주시면서 당시 유대인들의 영적인 상태를 꼬집어 주고 계십니다.
자, 봅니다. 여기에 빈집이 있습니다. 깨끗이 수리된 집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살지 않습니다. 물론 실제 집이 아니라 영적 상태를 비유하는 것임을 잘 압니다. 그런데 그 집이 빈 사이에 마귀가 들어와서 자기 집을 만들었다는 얘기입니다. 주인이 없는 사이에 주인이 바뀌어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아니 이래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렇게 된 애초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문제는 빈 집입니다. 집이 비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주인이 돌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은 사탄이 주인행세를 하고 앉았습니다. 아마 처음에는 사탄도 들어갔다 나갔다 했겠지요. 그렇지 않겠습니까? 지나가다가 주인 없는 집인데 정말 괜찮은 집을 하나 발견했다고 합시다. 처음에는 주인을 불러봅니다. 그런데도 주인이 안 나오면 그 날은 잠깐 쉬다가 갑니다. 다음날도 와 봅니다. 그런데 역시 주인이 없어요. 그렇게 며칠을 해도 이것이 주인이 없는 집입니다. 그래서 아예 들어와 앉아버립니다. 우리 마음이 채워져야 할 것으로 채워지지 않고 공허하게 비어있으면 처음에 사탄이 입질을 해봅니다. 그래도 신앙으로 무장되지가 않고 여전히 공허하고 주인이 없는 집처럼 보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주인으로 자리 잡고 들어와 앉습니다. 그렇게 되면 늦은 것입니다. 마음도 신앙도 사탄에게 주인자리를 내 줘버렸으니 어떻게 합니까? 이게 안 되는 것이거든요.

가만히 보면 희한하게도 아무리 허름하고 무너지기 일보직전의 집이라도 사람이 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 지어지고 훌륭한 집일지라도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집이 바로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집이거든요. 잘 수리하고 잘 깨끗하게 청소된 집인데 사람이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마귀란 놈이 혼자서 몇 번 쉬다가 나중에는 엉뚱하게 일곱 마귀가 들어가서 자기 집을 만들었다는 얘기입니다. 비어 있는 집이 이렇게 위험한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의 인격, 마음, 생각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잠깐이라도 비워 두면 주인이 바뀌어 버립니다. 진공상태, 이것이 위험한 순간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람을 대하는데 있어서 죄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을 내가 미워하지만 않으면 죄가 안 되는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미워하지만 않으면 죄가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내가 이미 용서했고 오래오래 참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것이 죄가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여전히 죄입니다. 그러면 생각해봅니다. 내가 모든 것에 대해 아예 마음을 비우고 살면 죄 안 짓고 사는 것입니까? 교회 일에 대해 아예 관여 안하겠다고 빈 마음으로 왔다갔다만 하면 되는 것입니까? 오늘 말씀을 보면 텅 빈 마음은 오히려 사탄의 무대가 되는 것입니다. 봉사 안하는 마음에 사탄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기도 안하고 비워둔 마음에 사탄이 들어옵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에 달란트 비유는 유명합니다. 각각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 받았던 사람들은 일을 많이 해서 배를 남겼지만 한 달란트 받았던 사람은 그대로 가지고 왔다가 주인에게 책망 받습니다. 그 책망의 내용이 뭔지 기억하십니까?"악하고 게으른 종아!"이 말에 주목해 보십시오. 게으르다는 말은 이해가 되지만 악하다는 말은 좀 지나친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결국 악하다는 책망을 받은 것을 보면서 우리는 느끼는 바가 있어야 합니다. 왜 악하다는 것입니까? 무엇이 악하다는 것이지요? 아무 일도 안한 것이 악하다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안 하는 것, 마음과 생각을 비워 두는 것, 이것이 죄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이 공허하고 허탈해서 진공상태가 되면 그 다음에 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절망입니다. 빈 집은 늘 위험합니다. 마찬가지로 텅 빈 마음, 생각, 신앙도 위험합니다. 아무 것도 안하고 소극적으로 그렇게 일을 처리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분들은 앞서서 일하다가 욕먹을까봐 일을 안 하려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소가 없으면 외양간은 깨끗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가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일을 하려고 하다보면 비난도 받습니다. 욕도 먹지요. 어려움도 당하거든요. 이걸 미리 알고도 밀고나가야 일이 되는 거지 요리피하고 조리 피하고 기회주의적으로 살면 그 결국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가 나중에는 자기 자신의 존재적 진공이 오고 맙니다. 건강의 비결이 뭐냐고 물으면 다 압니다. 별다른 거 있겠습니까? 운동해야 되고 그리고 열심히 일을 해야 되고, 더구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 집니다. 보세요. 발을 안 쓰면 발이 약해지고, 허리를 안 쓰면 허리가 약해지고, 눈을 안 쓰면 눈이 침침해집니다. 사람의 머리도 안 쓰면 머리가 멍청해진답니다.  그래 누가 그랬는지 뇌를 안 쓰면 치매가 걸린다고 각 동네 아파트마다 노인정에는 어르신들이 고스톱을 치고 놉니다. 화투를 치면 뇌를 쓰니까 치매에 안 걸린다고요......하여간 뭐든지 사용해야 됩니다.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건강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함으로 건강해진다."일리가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열심히 기쁜 마음으로 사랑과 충성된 마음으로 일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신앙은 더 그렇습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과 성령으로 존재를 채우고 충성되게 봉사하면서 주님의 역사를 이룰 때 신앙으로 충만한 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보증이 찍한 사람은 고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은 인간은 내 속에 나를 비우고 그 분을 모셔 들이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람이 깨끗하고 인품도 쓸 만하고 늘 소제 된 사람처럼 행위도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칭찬 받을만하고 본받을만하다고 합시다. 그러나 그렇게 깨끗한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항상 청소된 것처럼 반짝반짝하고 반질반질한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 속에 무언가로 채워져 있어야합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으로 채워진 사람이라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야 합니다. 성령으로 넘치는 신앙인이라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속에는 신앙으로 가득 찬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김철현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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