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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자유하게 하라 (시37:1-11,막10:17-22)
공기가 혼탁하고 물이 오염된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제일 큰 관심은 건강입니다.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합니다.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면 기꺼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쏟아 붓습니다. 건강식에 관한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언론 매체들은 앞다투어 건강문제와 관련하여 먹을거리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그만큼 대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난 26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1년 사망원인통계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한 우리나라 사람 24만3천명 중 5만9천명(24.4%)이 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해 매일 666명이 사망했으며 이중 162명이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암 사망률은 지난 10년 간 18.3명이 늘어 뇌혈관 질환이나 심장질환, 당뇨병, 교통사고 등 10대 사인 중 '독보적' 수준의 증가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암(인구 10만 명당 123.5명)과 뇌혈관질환(73.8명), 심장질환(34.2명), 당뇨병(23.8명)으로 인한 사망자가 전체 사망자의 50.4%를 차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4대 사망원인'을 구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통계를 보면 혼탁한 대도시에 살면서 건강을 유지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 건강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건강을 지키려고 모든 사람들이 노력하는데도 왜 갈수록 건강은 악화되는 것일까요? 우리가 노력한 만큼 점차 좋아져야 할텐데 반대로 점점 나빠지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오염을 손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는 복잡다단한 사회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입니다. 셋째로 인간의 과다한 욕심이 그 원인이 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제거하면 우리의 건강은 상당히 좋아질 것임에 틀림이 없지만, 사실상 이런 원인을 제거한다는 것은 지금 상태로는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오염된 대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들어가 자연과 더불어 살면 많이 좋아지겠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지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과감하게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들어가 농사를 지으면서 살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좀더 건강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건강은 단순하게 몸만을 잘 관리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마음이나 영혼을 건강하게 하는 일과 깊이 관련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몸의 건강은 우리 영혼이 모든 매임에서 풀려나 자유로울 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몸과 영혼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를 이루고 있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줍니다.
생명의 중심인 영혼
창세기 2장에 보면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living soul)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생명체'로 번역된 부분을 영어성경은 'living soul'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사람은 살아 움직이는 영이라는 뜻입니다. 흙과 하느님께서 불어넣으신 '생명의 기운'이 결국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라고 보았습니다. 흙은 우리의 육체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우리의 생명은 육체가 중심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영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 생명의 건강은 바로 그 중심을 이루는 영에 의해 좌우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올바로 건강을 돌보려면 우리의 영혼을 평안케 하며 자유하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과 연결되어 그가 부어주시는 생명의 기운을 받을 때 참 자유하며 건강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느님이 불어보내시는 바람을 호흡하는 자리입니다. 우리의 폐(肺)가 숨을 쉬듯 하느님이 보내시는 생명의 바람을 호흡할 때 우리의 영혼이 건강하게 자라게 됩니다.
오늘 읽어 드린 시편 37편 말씀에 보면, "네 갈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라. 주께서 몸소 도와주실 것이다. 너의 의를 빛과 같이, 너의 공의를 한낮의 햇살처럼 빛나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우리 자신을 내 맡길 때 그가 우리의 생명의 의를 한낮의 햇살처럼 빛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뜻하는 것이기에 그 의가 빛난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삶 전체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빛을 발한다는 뜻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면 복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자는 하느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하면서, 그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모든 일에 형통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과 항상 연결되어 그가 보내시는 생명의 바람을 호흡할 때 튼튼해지고 점점 자라면서 마침내 하느님의 형상을 닮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이 이와 같이 하느님과 연결되어 건강할 때 아울러 우리의 몸도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께 연결되어 있으면 진정으로 자유함을 얻게 되며, 모든 근심과 걱정, 분노와 격정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기에 우리의 몸도 아울러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욕망으로 억눌린 영혼
그러나 우리 인간은 타락하여 범죄 하므로 하느님께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의 영은 시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야고보서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다"고 하신 말씀대로 영혼이 시들은 우리의 몸은 실상은 죽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영은 온갖 인간의 탐욕과 분노와 시기와 격정으로 억압되면서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영이 이렇게 억압되고 시들면서 우리는 삶의 방향을 잃게 되었고, 그래서 육체의 욕망만을 향하여 달려가면서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오늘 읽어 드린 마가복음에 나온 말씀은 부자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예수님께 나아와 영생을 물었다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라는 말씀에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부자 청년은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가 젊은이인 데다가 부자였고, 일찍 출세하여 관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일찍 야망을 품고 출세를 목표로 노력한 결과 재물도 얻고 사회적 지위도 얻을 뿐 아니라 이제는 영원한 생명까지도 얻으려고 예수님께 찾아 나왔습니다. 그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의 야망을 이루기 위하여 한시도 멈추지 않았을 것이며, 따라서 그의 영혼은 잠시도 평안할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진정으로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를 원한다면 네가 가진 모든 재물과 지위를 버리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럴 때 그의 억눌린 영혼이 자유함을 얻을 것이며 그래야 진정으로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그의 부어주시는 생명의 기운을 통해 그의 영이 자라서 마침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사실상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재물과 지위와 명예를 얻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자연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스트레스는 바로 그의 영혼을 짓누르고 숨막히게 만드는 요소들입니다. 우리 생명의 중심인 영혼이 이와 같이 억압되고 시들게 되는데 어떻게 우리 몸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죄를 깨우치시고 그 죄를 대속하실 뿐 아니라 그 죄 때문에 눌려 질식하였던 영혼을 살려내시고 그 영혼을 자유하게 하시므로 다시 하느님을 만나고 그로부터 생명의 기운을 받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잃어버렸던 영의 세계를 보여주시면서 우리 삶의 목표가 재물이나 명예나 권세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공신화에 사로잡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얻으려고 했던 것들은 사실상 우리를 더욱 깊은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넣는 것에 불과한 것들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네가 그렇게 애써 얻었던 것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네가 원하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영혼이 모든 억압에서 풀려 자유하기 전에는 우리의 생명은 건강할 수 없고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없습니다.
무용가인 홍신자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유를 원하면 영혼의 손짓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영혼이 없는 사람에게는 자유의 느낌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욕망을 따라 살던 삶에서 돌이켜 영혼을 되찾아 자유하게 하면서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향하여 나감을 뜻합니다.
영혼을 짓누르는 독소를 버려라
오늘 본문 시편에 보면 "노여움을 버려라. 격분을 가라앉혀라. 안달하지 말아라. 이런 것들은 자신에게 해로울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노여움이나 격분이 바로 그 영혼을 얽어매는 독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곳곳에서 분노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사람은 자기의 분노 때문에 죽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의 질투 때문에 죽는 법이다. 욥 5:2
화를 내더라도 죄는 짓지 마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엡 4:26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그 모든 것, 곧 분노와 격분과 악의와 훼방과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부끄러운 말을 버리십시오. 골 3:8
구약성경에 보면 질투와 분노 때문에 비극적인 일생을 마친 사람이 있는데, 바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입니다. 그는 청년 다윗이 물매돌로 골리앗을 죽인 이후 백성들이 그를 칭송하는 노래를 듣고부터는 다윗을 질투하고 미워하여 그를 죽이려고 여러 번 시도하고 왕의 체통을 지키지 못한 채 그를 좇아 다녔습니다. 그의 질투와 증오, 그리고 분노가 그의 영혼을 얽어매었고, 이 때문에 그는 평생 부자유한 정신착란자가 되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질투와 증오와 분노와 격정으로 그 영혼을 얽어매면서 스스로 건강을 헤치고 자기의 삶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영화 <벤허>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인공 벤허는 로마 주둔 사령관인 친구 메살라와 생각을 달리하면서 그들의 우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신임 총독의 부임 축하 행진 도중에 벤허의 여동생이 우연히 떨어뜨린 기왓장 때문에 총독이 낙마하면서 벤허의 가족이 모두 잡혀 들어가고 벤허는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메살라는 고의적인 것이 아니고 우연한 사고임을 알면서도 벤허의 가족을 철저하게 짓밟아 버렸습니다.
배에서 노예로 몇 년 동안 노를 젓던 벤허는 전쟁중 로마 사령관의 목숨을 구해주면서 그의 양자가 되어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됩니다. 돌아온 벤허는 친구 메살라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고 전차 경기에서 마침내 그를 꺾고 승리하고, 메살라는 부상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벤허는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나병환자들의 골짜기에 버려진 것을 알게 되면서 피의 복수를 다짐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사랑과 평화를 얻지 못합니다. 그를 사랑하는 에스더에게서 "당신은 파멸을 자초하는 악이 되었다" "증오가 당신을 돌로 만들었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현장에서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라는 음성을 듣는 순간 그를 집요하게 얽어맸던 증오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가 집에 돌아와 에스더에게 말했습니다.
"그분의 목소리가 내게서 칼을 빼앗아 갔습니다"
벤허는 증오심에서 해방되면서 다시 사랑과 평화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운동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근심과 걱정, 질투와 분노, 증오와 적개심을 품고서 아무리 운동을 하여도 건강에 도움이 되지를 못합니다. 오히려 건강을 위하여 운동을 하지만 그것이 몸의 요구를 거슬려 몸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 몸이 몸 자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영과 더불어 있음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그 몸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몸은 결코 기계가 아닙니다. 기계적으로 일정한 운동을 한다고 해서 몸이 건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몸과 연계된 정신과 영혼의 소리를 듣지 못하면 몸의 건강은 기계적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영혼을 얽어매었던 모든 근심과 걱정, 분노와 증오를 털어 내어 영혼을 자유하게 하여야 합니다. 모든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가난하게 할 때 우리의 영혼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영혼이 이와 같이 자유롭게 되면, 몸이 살아나게 되고, 몸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몸이 요구하는 대로 운동하고, 몸이 필요로 하는 음식만을 먹게 되므로 몸과 영이 아울러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영혼의 자유를 맛보아 그 기쁨을 아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영혼을 완전히 자유하게 하지 못하는 욕망의 찌꺼기들이 남아 있어 억누르고 있지는 않은가요? 아직도 무엇인가 바라고 이루고자 하는 욕망의 찌꺼기가 남아 있어 영혼의 자유를 훼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워지면, 여러분의 몸도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사상의학을 한 유명한 한의사를 찾아가 체질을 묻지 않아도 여러분 자신의 체질을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내 몸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게 되면, 그 필요를 채워줄 때 여러분은 건강한 삶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영혼의 자유를 짓누르는 근심과 걱정, 분노와 격정, 증오와 적개심을 모두 내어쫓고 진정한 평화와 기쁨을 누리고, 건강한 몸의 가벼움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유경재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공기가 혼탁하고 물이 오염된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제일 큰 관심은 건강입니다.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하려고 합니다.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면 기꺼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건강을 위해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쏟아 붓습니다. 건강식에 관한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언론 매체들은 앞다투어 건강문제와 관련하여 먹을거리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그만큼 대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난 26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1년 사망원인통계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한 우리나라 사람 24만3천명 중 5만9천명(24.4%)이 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해 매일 666명이 사망했으며 이중 162명이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암 사망률은 지난 10년 간 18.3명이 늘어 뇌혈관 질환이나 심장질환, 당뇨병, 교통사고 등 10대 사인 중 '독보적' 수준의 증가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암(인구 10만 명당 123.5명)과 뇌혈관질환(73.8명), 심장질환(34.2명), 당뇨병(23.8명)으로 인한 사망자가 전체 사망자의 50.4%를 차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4대 사망원인'을 구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통계를 보면 혼탁한 대도시에 살면서 건강을 유지한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 건강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건강을 지키려고 모든 사람들이 노력하는데도 왜 갈수록 건강은 악화되는 것일까요? 우리가 노력한 만큼 점차 좋아져야 할텐데 반대로 점점 나빠지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의 오염을 손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는 복잡다단한 사회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입니다. 셋째로 인간의 과다한 욕심이 그 원인이 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제거하면 우리의 건강은 상당히 좋아질 것임에 틀림이 없지만, 사실상 이런 원인을 제거한다는 것은 지금 상태로는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오염된 대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들어가 자연과 더불어 살면 많이 좋아지겠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지극히 소수의 사람들만이 과감하게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들어가 농사를 지으면서 살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좀더 건강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건강은 단순하게 몸만을 잘 관리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마음이나 영혼을 건강하게 하는 일과 깊이 관련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몸의 건강은 우리 영혼이 모든 매임에서 풀려나 자유로울 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몸과 영혼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닌 하나를 이루고 있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줍니다.
생명의 중심인 영혼
창세기 2장에 보면 "주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living soul)가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생명체'로 번역된 부분을 영어성경은 'living soul'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사람은 살아 움직이는 영이라는 뜻입니다. 흙과 하느님께서 불어넣으신 '생명의 기운'이 결국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라고 보았습니다. 흙은 우리의 육체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우리의 생명은 육체가 중심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영이 그 중심을 이루고 있음을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 생명의 건강은 바로 그 중심을 이루는 영에 의해 좌우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올바로 건강을 돌보려면 우리의 영혼을 평안케 하며 자유하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과 연결되어 그가 부어주시는 생명의 기운을 받을 때 참 자유하며 건강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느님이 불어보내시는 바람을 호흡하는 자리입니다. 우리의 폐(肺)가 숨을 쉬듯 하느님이 보내시는 생명의 바람을 호흡할 때 우리의 영혼이 건강하게 자라게 됩니다.
오늘 읽어 드린 시편 37편 말씀에 보면, "네 갈 길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만 의지하여라. 주께서 몸소 도와주실 것이다. 너의 의를 빛과 같이, 너의 공의를 한낮의 햇살처럼 빛나게 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우리 자신을 내 맡길 때 그가 우리의 생명의 의를 한낮의 햇살처럼 빛나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뜻하는 것이기에 그 의가 빛난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삶 전체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빛을 발한다는 뜻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순종하면 복을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자는 하느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하면서, 그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모든 일에 형통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과 항상 연결되어 그가 보내시는 생명의 바람을 호흡할 때 튼튼해지고 점점 자라면서 마침내 하느님의 형상을 닮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이 이와 같이 하느님과 연결되어 건강할 때 아울러 우리의 몸도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느님께 연결되어 있으면 진정으로 자유함을 얻게 되며, 모든 근심과 걱정, 분노와 격정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기에 우리의 몸도 아울러 자유함을 얻게 됩니다.
욕망으로 억눌린 영혼
그러나 우리 인간은 타락하여 범죄 하므로 하느님께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의 영은 시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야고보서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과 같다"고 하신 말씀대로 영혼이 시들은 우리의 몸은 실상은 죽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영은 온갖 인간의 탐욕과 분노와 시기와 격정으로 억압되면서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영이 이렇게 억압되고 시들면서 우리는 삶의 방향을 잃게 되었고, 그래서 육체의 욕망만을 향하여 달려가면서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오늘 읽어 드린 마가복음에 나온 말씀은 부자 청년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예수님께 나아와 영생을 물었다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라는 말씀에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부자 청년은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가 젊은이인 데다가 부자였고, 일찍 출세하여 관원이 되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일찍 야망을 품고 출세를 목표로 노력한 결과 재물도 얻고 사회적 지위도 얻을 뿐 아니라 이제는 영원한 생명까지도 얻으려고 예수님께 찾아 나왔습니다. 그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의 야망을 이루기 위하여 한시도 멈추지 않았을 것이며, 따라서 그의 영혼은 잠시도 평안할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보시고 '진정으로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를 원한다면 네가 가진 모든 재물과 지위를 버리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럴 때 그의 억눌린 영혼이 자유함을 얻을 것이며 그래야 진정으로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그의 부어주시는 생명의 기운을 통해 그의 영이 자라서 마침내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사실상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재물과 지위와 명예를 얻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자연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스트레스는 바로 그의 영혼을 짓누르고 숨막히게 만드는 요소들입니다. 우리 생명의 중심인 영혼이 이와 같이 억압되고 시들게 되는데 어떻게 우리 몸이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런 우리의 죄를 깨우치시고 그 죄를 대속하실 뿐 아니라 그 죄 때문에 눌려 질식하였던 영혼을 살려내시고 그 영혼을 자유하게 하시므로 다시 하느님을 만나고 그로부터 생명의 기운을 받게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잃어버렸던 영의 세계를 보여주시면서 우리 삶의 목표가 재물이나 명예나 권세가 아니라 하느님 나라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성공신화에 사로잡혀 물불을 가리지 않고 얻으려고 했던 것들은 사실상 우리를 더욱 깊은 죽음의 골짜기로 몰아넣는 것에 불과한 것들임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청년에게 '네가 그렇게 애써 얻었던 것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네가 원하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대답하신 것입니다. 영혼이 모든 억압에서 풀려 자유하기 전에는 우리의 생명은 건강할 수 없고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없습니다.
무용가인 홍신자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유를 원하면 영혼의 손짓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영혼이 없는 사람에게는 자유의 느낌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욕망을 따라 살던 삶에서 돌이켜 영혼을 되찾아 자유하게 하면서 영원한 생명의 세계를 향하여 나감을 뜻합니다.
영혼을 짓누르는 독소를 버려라
오늘 본문 시편에 보면 "노여움을 버려라. 격분을 가라앉혀라. 안달하지 말아라. 이런 것들은 자신에게 해로울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노여움이나 격분이 바로 그 영혼을 얽어매는 독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곳곳에서 분노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사람은 자기의 분노 때문에 죽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의 질투 때문에 죽는 법이다. 욥 5:2
화를 내더라도 죄는 짓지 마십시오. 해가 지도록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 엡 4:26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그 모든 것, 곧 분노와 격분과 악의와 훼방과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부끄러운 말을 버리십시오. 골 3:8
구약성경에 보면 질투와 분노 때문에 비극적인 일생을 마친 사람이 있는데, 바로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사울입니다. 그는 청년 다윗이 물매돌로 골리앗을 죽인 이후 백성들이 그를 칭송하는 노래를 듣고부터는 다윗을 질투하고 미워하여 그를 죽이려고 여러 번 시도하고 왕의 체통을 지키지 못한 채 그를 좇아 다녔습니다. 그의 질투와 증오, 그리고 분노가 그의 영혼을 얽어매었고, 이 때문에 그는 평생 부자유한 정신착란자가 되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질투와 증오와 분노와 격정으로 그 영혼을 얽어매면서 스스로 건강을 헤치고 자기의 삶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영화 <벤허>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인공 벤허는 로마 주둔 사령관인 친구 메살라와 생각을 달리하면서 그들의 우정에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신임 총독의 부임 축하 행진 도중에 벤허의 여동생이 우연히 떨어뜨린 기왓장 때문에 총독이 낙마하면서 벤허의 가족이 모두 잡혀 들어가고 벤허는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메살라는 고의적인 것이 아니고 우연한 사고임을 알면서도 벤허의 가족을 철저하게 짓밟아 버렸습니다.
배에서 노예로 몇 년 동안 노를 젓던 벤허는 전쟁중 로마 사령관의 목숨을 구해주면서 그의 양자가 되어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됩니다. 돌아온 벤허는 친구 메살라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고 전차 경기에서 마침내 그를 꺾고 승리하고, 메살라는 부상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벤허는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나병환자들의 골짜기에 버려진 것을 알게 되면서 피의 복수를 다짐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사랑과 평화를 얻지 못합니다. 그를 사랑하는 에스더에게서 "당신은 파멸을 자초하는 악이 되었다" "증오가 당신을 돌로 만들었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현장에서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라는 음성을 듣는 순간 그를 집요하게 얽어맸던 증오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가 집에 돌아와 에스더에게 말했습니다.
"그분의 목소리가 내게서 칼을 빼앗아 갔습니다"
벤허는 증오심에서 해방되면서 다시 사랑과 평화를 되찾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서 열심히 운동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근심과 걱정, 질투와 분노, 증오와 적개심을 품고서 아무리 운동을 하여도 건강에 도움이 되지를 못합니다. 오히려 건강을 위하여 운동을 하지만 그것이 몸의 요구를 거슬려 몸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 몸이 몸 자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영과 더불어 있음을 알지 못하면 제대로 그 몸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몸은 결코 기계가 아닙니다. 기계적으로 일정한 운동을 한다고 해서 몸이 건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몸과 연계된 정신과 영혼의 소리를 듣지 못하면 몸의 건강은 기계적으로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먼저 영혼을 얽어매었던 모든 근심과 걱정, 분노와 증오를 털어 내어 영혼을 자유하게 하여야 합니다. 모든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가난하게 할 때 우리의 영혼은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영혼이 이와 같이 자유롭게 되면, 몸이 살아나게 되고, 몸이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몸이 요구하는 대로 운동하고, 몸이 필요로 하는 음식만을 먹게 되므로 몸과 영이 아울러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영혼의 자유를 맛보아 그 기쁨을 아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 영혼을 완전히 자유하게 하지 못하는 욕망의 찌꺼기들이 남아 있어 억누르고 있지는 않은가요? 아직도 무엇인가 바라고 이루고자 하는 욕망의 찌꺼기가 남아 있어 영혼의 자유를 훼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로워지면, 여러분의 몸도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사상의학을 한 유명한 한의사를 찾아가 체질을 묻지 않아도 여러분 자신의 체질을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내 몸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게 되면, 그 필요를 채워줄 때 여러분은 건강한 삶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영혼의 자유를 짓누르는 근심과 걱정, 분노와 격정, 증오와 적개심을 모두 내어쫓고 진정한 평화와 기쁨을 누리고, 건강한 몸의 가벼움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유경재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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