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이 오신 날! (눅 2:1-14)
▶찬송 109장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의 유래가 있습니다.
1818년 크리스마스 이브.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인 '니콜라스' 성당엔 큰 일이 생겼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찬미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오르간이 고장이 났기 때문입니다. 마을엔 수리공도 없었습니다. 꼼짝없이 그곳 사람들은 찬송과 음악이 없는 크리스마스를 보내야 할 판이었다.
신부 '요셉 모르'는 그건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다가 그에게 오르간 대신 기타로 반주를 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신부는 2년 전 자신이 지은 시 한 곡을 가지고 급히 성가대 지휘자인 '프란츠 그루버'에게 달려가 작곡을 부탁했습니다. 시를 보고 금세 좋은 영감이 떠오른 '그루버'는 3시간만에 곡을 만들었는데,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세계인이 가장 즐겨 부르고, 즐겨 듣는 캐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이렇게 탄생을 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의 서부전선. 독일군과 연합군 사이에 단 하루도 총성이 멎을 날이 없던 그곳에 크리스마스 이브가 찾아왔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독일군 참호에선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울려 퍼졌습니다. 그러더니 독일군의 한 병사가 참호에서 나와 반짝이는 촛불로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를 들고 영국군 진영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소리쳤습니다.
그걸 본 영국군은 총을 내려놓고, 독일군에게 성탄 인사를 건넸습니다. '죽음의 땅'으로 불리던 서부전선엔 잠시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바로 평화입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할/ ◀제목소개!▶
마1:18벌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수님 탄생의 말씀입니다. 요셉과 정혼한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였습니다.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을 알고, 요셉이 파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20).
더욱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했습니다. 아들을 낳을 것까지 일러주고, 이름까지 일러주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좀 특별났습니다.
때마침 호적 령이 내려졌습니다(눅2:1). 모든 사람들이 호적하려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호적 령은 인구조사로 각 가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요셉은 다윗의 족속으로 베들레헴이 그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살던 곳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에 갔습니다.
마리아는 만삭이었는데, 호적하려 모여든 사람들로 인해 방을 구하지 못하여 마구간에서 몸을 풀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렇게 또 특별났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특별납니다.
①선지자로 하신 말씀 곧 예언대로 태어났습니다.
마1: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처녀가 아이를 낳은 너무도 특별난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태어난 날자가 정확한가, 아닌가에 얽매일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보통 사람들의 '태어남'과 다릅니다. 태어남이 아니라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 전부터 말씀(로고스)으로 하나님과 함께 계신 분입니다. 그가 사람의 몸을 입고 자기 땅에 오신 것입니다(요1:11).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의 유대 베들레헴의 한 여관집의 마구간 구유에 오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곧 이 땅의 성탄절입니다. 그런데 이 땅이 그를 영접치 아니했습니다. 영접하는 자의 가슴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가슴속에 들어오시는 날, 그 날이 바로 그 사람의 성탄절입니다. /믿/할/
우리 성도들은 각각 자신의 성탄절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가슴속에 들어오신 날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자신의 가슴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리하고 계셔야 합니다.
②여자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기 '여자의 후손'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왜? 여자의 후손이라고 했는가? 보통 사람 곧 자연인은 아담의 후손입니다. 다시 말해서 남자의 후손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남자의 후손과 대조되는 말입니다. 남자의 후손 곧 아담의 후손은 범죄자의 후손으로 모두가 죄인입니다. 원죄를 안고 태어납니다.
그러나 여자의 후손은 성령으로 잉태된 죄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분입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이기고, 사망을 이기고, 멸망을 이기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대속제물로 내어놓았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시는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③때가 차매 오셨습니다.
갈4:4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여기 '때가 차매'의 '때'는 하나님의 경륜의 때를 말합니다. 곧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말합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창3:15절의 '여자의 후손'입니다.
때가 차매 오셨습니다. 오리라 예언된 대로 때가 차매 오셨습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특별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셨습니다. 아담의 후손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이 또한 얼마나 특별납니까! 이렇게 특별난 날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나신 날, 곧 성탄절입니다.
④예수 성탄은 자기 땅에, 자기 백성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요1:11절 "자기 땅에 …자기 백성"이라고 했고, 요13:1절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했습니다.
⑤세상에 있는 자기 백성은 죄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요1:11절 중에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다"고 했고, 눅19:9절에서는 잃어버린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했고, 막2:17절에서는 비유하기를 "병든 자"라고 했고, 벧전2:25절에서 베드로는 제각기 자기 길로 가버린 "길 잃은 양"이라고 비유했습니다.
⑥그의 오심은 이러한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눅19:10절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했고, 막2:17절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했습니다.
딤전1:15절에서 바울도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⑦죄인 구원은 오직 예수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드림에 있었습니다.
막10:45절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여기 '대속물'이란 팔려가 버린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대신 지불하는 몸값을 가리킵니다.
바로 그것은 예수께서 자기 몸을 십자가에서 대신하여 희생함으로 죄 값인 사망을 지불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말하기를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벧전1:18-19).
⑧바로 이것이 성탄의 복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눅2:10절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예수 탄생은 '좋은 소식, 곧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했고,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했습니다. 그 큰 이유는 '온 인류는 죄인'이기 때문이요, 그 죄인에게는 '구원만이 기쁨의 좋은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2.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세요!
①시므온!(눅2:25-29)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얼마나 주님을 사모하고 기다렸는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죽을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사모하는 자 속에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②안나!(눅2:36-38)
안나라는 사람은 결혼해서 7년 만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84년 동안 성전에서 금식하고 기도하며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주님은 오십니다.
렘29:12-13절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주님의 위로를 받고 나서, 사업이 잘 되는 것, 자식이 잘 되는 것에 기뻐해야 합니다.
세상의 위로를 받는 사람은 반드시 그것 때문에 실패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면서 일을 해야 승리합니다. 사업이 잘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정이 잘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잘되게 하시는 하나님께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성 테레사 수녀(1910-1997)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8세부터 수녀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되지 못하고 후에 고등학교 교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1948년에 하나님의 결정적인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어렵고 가난한 인도 빈민가로 가게 됩니다. 그 곳에서 테레사 수녀는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단체를 만듭니다. 그리고 고아와 나병 환자를 평생 돌봅니다.
1979년 그는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시상식장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이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테레사 수녀는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위로해 주시는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바라는 자 속에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어느 날 천사가 세 친구를 찾아와 소원을 물었습니다. 하나씩 들어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물은 것입니다.
천사가 첫 번째 사람에게 소원을 물었습니다. "별처럼 빛나는 스타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약속대로 스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두 번째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그는 "나는 킹 왕이 되고 싶습니다." 천사는 약속대로 그 사람을 킹 왕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사람은 욕심이 많았습니다. 두 친구 위에 있고 싶었습니다. 천사가 무엇을 들어 주었으면 좋을지 물자 그는 "나는 둘 다 되고 싶었습니다. 스타도 되고 킹도 되고 싶습니다." 천사는 그의 소원도 들어 주었답니다. 무엇이 되었겠습니까? '스타와 킹', 그러니까 스타킹이 되어 양말신세가 되었다는 웃기는 이야기입니다.
3. 주님이 오시는 날! 그 당시 상황을 알아보자!(마2:1-12)
①헤롯왕은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고 많은 어린 생명을 학살했습니다.
헤롯은 권세욕이 대단한 사람으로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 간교한 수단을 다 부렸습니다. 그의 나이는 70여세였고 통치 말년이었습니다. 더욱 포악해지고 반대 세력에 대해서는 무참하게 짓밟는 폭군이 되어 있었습니다. 폭군 헤롯은 예수님을 자신에 대한 정치적 도전자로 알았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를 찾아왔다고 하였을 때 '왕'이란 말 때문에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의 왕위를 빼앗을 반란자라도 나타난 것으로 알고 어리석은 헤롯은 하나님의 평화의 복음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헤롯은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사실은 경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죽이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박사들이 그냥 돌아갔기 때문에 기다려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결국 헤롯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그 지역에서 출생한 모든 어린아이들을 죽입니다. 마2:16절에 보면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 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였다고 했습니다.
인류 역사에 찾아보기 어려운 끔찍한 유아 대학살이 베들레헴에서 일어났습니다.
②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 나신 소식을 듣고도 무관심했습니다.
헤롯왕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을 모았습니다. 헤롯이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들은 성경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구약에 예언된 내용을 들어서 그 곳이 베들레헴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들은 구약 미가서 5:2절에 예언된 말씀으로 대답했습니다. 미가선지자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마2:6)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베들레헴에 가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8Km밖에 있는 베들레헴이 먼 곳이 아니었습니다.
박사들은 오랜 기간을 걸려서 멀고 먼 동방에서 이곳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렇지만 유대 땅에 사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보았던 별을 보지 못했습니다. 목자들이 베들레헴 들녘에서 들었던 천사들의 찬양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알려주던 천사들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성경을 알고 있으면서도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 가운데도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시는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만나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믿어야 합니다. 성탄절을 맞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합니다.
요1:10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③동방 박사들은 아기께 엎드려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박사들은 이상한 별을 보고 구세주가 나신 것을 알았습니다. 마2:2절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별을 보고 메시야가 나신 것을 알았다고 말합니다.
민24:17절에 장차 오실 메시야를 '하나의 별'이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편에서 저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동방 박사들은 이상한 별을 보고 성경에 언약한 메시야가 오셨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마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 기회가 있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를 믿는 기회가 사람마다 다릅니다.
성경 지식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각 사람의 마음에 무엇인가 진리를 깨닫게 하는 빛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그런 감동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것이 성령의 감동입니다. 믿음은 성령의 감동으로 시작됩니다. 마음에 성령의 감동을 주어서 무엇인가 깨달음을 주실 때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와야 합니다.
박사들은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마2;11절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 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황금은 왕에게 드리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의 사신으로 갈 때에 반듯이 황금을 가지고 갔습니다. 박사들이 황금을 예수께 바쳤다는 것은 예수님을 만 왕의 왕으로 믿었다는 증거요, 또한 유향은 제사장이 성전에서 향기를 내기 위해 피우는 것으로 그들은 예수를 대제사장으로 믿었다는 것이요, 몰약은 시체에 바르는 방부제로써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상징한 것으로, 예수가 '메세야'임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들은 왕을 알현할 때 귀한 예물을 드리는 그런 섬김의 태도였습니다. 우리도 주님이 받으실 만한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찬양도 예물입니다. 정성이 담긴 헌금도 예물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어떤 삶을 가지고 나오셨는가? 아브라함은 이삭을 드렸습니다.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를 드렸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 전체를 드렸습니다.
1년 동안 진실하게 살았습니까? 나의 직장 생활과 사업을 경영하면서 주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인가 확신하셨습니까? 주신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했습니까? 예물을 드리는 내 손이 부끄럽지 않아야 합니다. 엎드린 내 몸이 거룩해야 합니다.
▶동방 박사들은 헤롯의 부탁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마2;12절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 가니라" 박사들은 헤롯으로부터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박사들은 꿈으로 계시를 받고 그대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왕의 말을 듣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여리고의 기생 라합이 병사들을 속이고 이스라엘의 정탐 군을 숨겨준 그런 믿음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복음을 전하다가 끌려가서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19-20)고 하던 그런 믿음입니다.
4. 예수님의 탄생은 우리 인간에게 어떤 축복이 되는가?
①구원의 축복입니다(마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그 후로 우리 인간은 죄악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찾아오게 되었으며, 그리고 죽은 후에는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아야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롬3:23). 과연 이 영원한 형벌에서 구원해줄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할/
②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마1:23).
임마누엘이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어떻게 됩니까?
⑴우리를 축복하시며(창26:3),
⑵우리의 갈 길을 인도하여 주신다고 했습니다(창48:21).
⑶두려움과 공포가 떠나가고(민14:9),
⑷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하시며(신2:7),
⑸우리를 강하게 만들어 주신다고 했습니다(삼하18:14). 뿐만 아니라
⑹우리를 형통하게 하시고(왕하18:7),
⑺우리의 영을 소생케 하시며(사57:15),
⑻우리의 마음에 평강을 주신다고 했습니다(살후3:16). /할/
▶옛날 어느 나라에 사냥을 아주 좋아하는 왕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사냥을 하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서 그만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본 나무꾼이 그 왕자를 구해서 정성스레 치료한 뒤 왕궁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임금님이 너무 고마워서 나무꾼을 불렀습니다.
"내 아들을 살려 주었는데 너에게 큰 상을 내리고 싶구나, 네 소원이 무엇이냐? 무엇이든지 말해 봐라!" 하고 말하자 "임금님, 제가 할 도리를 한 것인데 무슨 소원이 있겠습니까? 그저 임금님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큰 영광입니다. 소원이 있다면 저희 집에 한번 오셔서 하룻밤만 묵어가시면 큰 영광이겠습니다." 임금님은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그 다음날부터 임금님의 행차를 위해서 대궐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파송되었습니다. 좁을 길을 넓히고, 좋은 식사를 준비하고, 나무꾼의 집도 멋있게 새로 지었습니다. 이 나무꾼은 어떤 소원도 이야기하지 않고 다만 임금님과 하룻밤만 함께 지내기를 소원했을 뿐인데, 그의 모든 생활이 달라졌습니다. 그가 사는 마을이 달라지고, 진입로가 달라지고, 환경이 달라지고, 집이 달라졌습니다.
여러분, 임금님하고 하룻밤만 잔다고 해도 이렇게 달라지는데, 하물며 세상 우주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그 하나님과 함께 하신다면 우리의 생활에 엄청난 변화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주님은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시리라"(마6:31∼33) 고 말씀했습니다.
③기쁨의 축복입니다(눅2: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그랬습니다. 주님의 탄생은 우리 인간에게 큰 기쁨을 주시는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슬픔과 걱정, 그리고 절망 속에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시16:11절에서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바로 기쁨의 종교입니다.
동방에서 별을 연구하던 박사들은 마2:10절에 보니까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그랬습니다. 동방박사는 아직 아기 예수를 보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 별만 보고도 그들은 기쁨이 충만했다고 했습니다. 생각만 해도 기쁘고, 듣기만 해도 기쁘고, 마음속에 감동만 받아도 기쁜 것입니다.
요15:11절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영국의 시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마음이 즐거우면 하루 종일 걸을 수 있는데, 마음이 슬프면 1마일도 못 가서 피곤해 진다!" 그랬습니다.
④ 평화의 축복입니다(눅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사9:6절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아는 사람은 마음의 평강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요14:27절에서 예수님은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그러므로 예수 안에 사는 사람은 불안과 두려움, 공포에서 벗어나 참 평화와 안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⑤부요케 하시는 축복입니다(고후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부요케 하시는 하나님, 다시 말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부자가 되게 하시기 위해 오셨다고 했습니다.
시112:1∼3절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 그 의가 영원히 있으리로다."
⑥막힌 담이 헐어지는 축복입니다.
주님은 하늘과 땅에 다리를 놓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엡2:14절 "그는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또 16절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예수님은 막힌 담을 헐고, 중간의 큰골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리입니다. 보이지 않는 다리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분은 우리와 하나님을 연결하는 유일한 다리입니다.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다리입니다.
요14:6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어떤 시인은 말하기를 "현대인들은 담을 쌓는 일은 쉽게 하지만 다리를 놓는 일은 좀처럼 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의미 있는 말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본문 11절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마1: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예수는 우리 죄를 속량하시려고 갈보리에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재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 프랜시스'는 다미엔 성당에서 기도를 드릴 때 환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 모습은 십자가에 달려서 붉은 피를 흘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프란시스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주신 주님이시여” 라고 눈물로 고백하고 그 후에 자신도 온전히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받쳤다는 것입니다.
▶'모라비안교'를 창설한 '젠센돌프'도 어느 날 박물관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 있는 성화를 보는 순간 성화에서 예수님의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나를 사랑하사 십자가에서 지금도 고난을 받으시는 주님이시여” 라고 통곡하면서 헌신을 결단하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오심을 맞이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주님의 다시 오시는 재림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승화되는 귀한 성림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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