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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하나님께 충성했는가? (고전 4:1-2/딤전 1:12)

by 【고동엽】 2022. 4. 6.

얼마나 하나님께 충성했는가? (고전 4:1-2/딤전 1:12)

 

  수술할 때 마취제가 없다면 생살을 찢어야 하는 아픔으로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였을 가요? 생각만 하여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마취약은 지금부터 약 150년 전에 '제임스 심프슨'이라는 사람이 발명했습니다.
  심프손은 영국 스코트란드에서 빵 굽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14살에 에딘버러 의과대학에 들어가 산부인과 의사 과정을 밟아 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늘 관심사가 어떻게 하면 환자에게 고통을 덜어주며 치료해 줄까?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놀라운 발견을 했습니다.
  창2:21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그는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빼내셨다면 엄청난 수술이다. 대 수술이다. 그런데 아담이 아파하였다는 말이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아프지 않게 갈비뼈를 빼내실 수 있었을까?"
  심프손은 감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그 비결을 놓고 기도하기 시작했고, 마취제 개발 연구에 몰입하다가 드디어 1847년 11월 사람을 마취시켰다가 깨어나게 하는 '클로로포름'이라는 마취약을 발견하는 데 성공한 것입니다.
  이 약은 1853년 빅토리아 왕후가 분만할 때 사용하여 온 세계에 떠들썩하게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영국 의사로서는 최고의 공로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발견이었습니다.
  '심프손'이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제자들이 묻기를 "선생님! 지금까지 선생님이 발견하신 발견 중에 가장 큰 발견은 무엇입니까?" 이 때 심프손이 대답하기를 "나의 가장 큰 발견은 내가 큰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님이 나를 구해 주신 큰 구세주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정말 위대한 신앙인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그 죄에서 나를 건져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다는 사실을 바로 아는 사람은 충성의 자질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오늘 세 번째로 2005년도를 결산하고 새롭게 출발하자는 의미에서 올해 얼마나 하나님께 충성했는가? 체크해 보려고 합니다. ◀제목소개!▶

 

1. 우리가 누구인가?(고전4:1-2)

 

  ①하나님의 일꾼(청지기)입니다(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여기 '일꾼'은 '배아래서 노 젓는 사람'이란 뜻으로, 옛날에 배 젓는 일은 노예들이 했습니다. 여기서는 '예수님을 선장으로 모시고 전적으로 예수님의 삶의 원리를 따라 순종하며 나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맡은 자'란 '청지기'라는 뜻으로서 주인(예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고 행동하는 성도를 말합니다. 즉 자기의 고집이나 주장이 없고 주인의 지시(명령)를 받을 뿐입니다. 

  ②충성해야할 존재입니다(2).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여기 '충성'은 믿음이란 뜻과 '진실'이란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충성이란 정직하고 진실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학식이 있고 재간이 있는 사람보다도 진실된 사람을 더 원하고 쓰십니다.
  ▶영국의 한 박물관에 '폼베이' 화산 폭발로 용암 속에 묻혀 있다가 발굴된 파수병의 상이 있다고 합니다. 이 파수병은 용암이 덮쳐 오는데도 '그 자리에 꼼짝 말고 서 있으라'는 상관의 명령을 받고 조금도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그 상의 이름을 '충성'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어렸을 때 우편 배달부 노릇을 했습니다. 하루는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강물이 불어 강 건너 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기가 어렵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링컨은 우편물을 모자에 담은 채 두 손을 번쩍 들고 간신히 물을 건너 우편물을 배달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링컨은 충직하다는 평이 붙어 다녔다고 합니다. 링컨의 충성심은 훗날 위대한 인물이 되는 바탕이 되었고, 그 높은 인류애의 첫 계단은 역시 충성이었다고 합니다.

  ③하나님께 직분을 받은 자 들입니다.(딤전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들을 충성스럽게 보시고 직분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내 모습이 이 모양인데 왠 충성'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 우리들의 모습도 보시지만, 미래에 깨어지고 부셔져서 하나님의 큰그릇이 될 것을 미리 아시는 분 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딤후2:20-21절 '큰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여기 '큰 집'은 원어로 '오이코스'라는 말로 '넓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고, 적게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집에는 여러 종류의 그릇이 있습니다. 큰집일 수록 그릇이 많습니다. 큰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네 종류의 그릇이 있는데, '금 그릇, 은 그릇, 나무 그릇 그리고 질 그릇'입니다.
  그런데 귀한 그릇도 있고 천한 그릇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릇이라고 다 똑같은 그릇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그릇이 귀한 그릇인가?

  ⑴쓰임 받는 그릇이 귀한 그릇입니다.
  '쓰는 것도 있나니' 그렇습니다. 비싼 금 그릇이라고 귀한 그릇이 아닙니다. 싼 흙으로 만든 질그릇이라고 천한 그릇이 아닙니다. 성경에 '쓰는 것'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그러니까 '쓰는 그릇'이 귀한 그릇이지 안 쓰는 그릇은 귀한 그릇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그 사람을 들어 쓰면 그 사람을 그 순간부터 신분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쓰신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 일어날까요? 여러분! 가슴이 설레지 않습니까?
  매일매일 쓰임 받는 그릇이 귀한 그릇입니다. 쓰지 않고 잘 보관해 둔 그릇은 좋은 그릇이 아닙니다. 어느 분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장롱에 숨겨둔 비단이 되기보다 마루 구석에 놓여진 걸레가 되고 싶다.>
  지금 쓰임 받는 그릇이 귀한 그릇입니다. 각 전도회 회장님과 총무들, 권사님, 여집사님, 집사님, 성가대, 반주자, 구역예배, 전도자 모두 하나님이 수시로 사용하는 그릇들입니다. 하나님은 귀하게 여기십니다.

  ⑵깨끗한 그릇이 귀한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금 그릇이라도 더러우면 쓰지 않습니다. 나무 그릇이라도 깨끗하면 쓰게 됩니다.
  '깨끗하다'는 말은 '헬'로 '카다리조'인데 '완전히 깨끗한 것'을 의미합니다. 어설프게 깨끗한 것이 아닙니다. 흠이 없이 깨끗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비싼 그릇을 쓰시지 않고 깨끗한 그릇을 쓰십니다.
  하나님은 목사를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장로, 권사, 집사를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깨끗한 사람을 쓰십니다.
  ▶옛날에 한 선비가 제자와 함께 길을 가고 있었는데, 길가에 큰 나무를 보자 선비가 공손히 그 앞에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히고 세 번 절을 합니다. 제자가 이상하여 물었습니다. "선생님! 도대체 누구에게 절을 하신 겁니까?" 선비가 웃으면서 "저 나무에게 절 한 것이지" "왜 나무에게 절을 하십니까?" 선비가 "이상할 것 없네. 저 나무는 나에게는 가장 영향력을 미친 스승이라네" "무슨 말입니까?" "내가 어렸을 때. 망나니로 개판 치며 살고 있을 때 아버지가 이 나무를 꺾어서 회초리를 만들었지. 그리고 내 종아리에 피가 나오도록 쳤어. 나는 그 때 아버지를 원망하였지만 결국 이렇게 크게 일하게 되었지. 그래서 나는 이 나무만 보면 그 생각이 나. 이 나무 때문에 내가 바로 살게 되었어" /할/  깨끗한 그릇이 귀한 그릇입니다.

  ⑶합당한 그릇이 귀한 것입니다.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그 때 그 때마다 합당한 사람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그릇이 많아도 그 때 그 때 합당한 그릇이 있습니다. ▶그 상황에 합당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시대에 합당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명에 합당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일에 합당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성림교회가 지금 현재 요구하는 그릇은 어떤 그릇인가?
  ㈀기도의 그릇이 필요합니다. 기도가 능력입니다. 기도가 축복입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의 불이 임합니다.
  ㈁헌신의 그릇이 필요합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헌신자들을 통하여 부흥되고 성장합니다.
  ㈂ 전도의 그릇이 정말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다음 주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영혼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④충성자들에게는 이런 신앙이 필요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열심도 있고 뜨거움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때 중구난방이었고 우왕좌왕하며 혼돈했었습니다. 그 신앙에 중심이 없고 균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적하기를 "하나님을 아는 일과 믿는 일과 섬기는 일에 온전한 분량만큼 성장하라"(엡4:13)고 충고했습니다. 이 말은 '신앙의 삼박자를 가져라'는 말입니다.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행하는 것'입니다.

  ⑴지적인 신앙이 필요합니다.
  이 '지적인 요소'는 '아는 일'을 말합니다. 그냥 믿는 신앙과 깊이 알고 믿는 신앙은 다릅니다. 덮어놓고 믿는 신앙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에 하나가 되라" 즉 '알고 믿으라'고 했습니다.
  온전한 신앙은 말씀의 기초에서 시작합니다. 신앙의 힘은 말씀의 힘에서 옵니다. 그래서 자꾸만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연구하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⑵감성적인 신앙이 필요합니다.
  신앙은 머리로 깊이 알고 가슴으로 믿는 생활이 좋은 신앙입니다. 머리로 하나님을 알았으면 그 다음에는 가슴이 감사하고 찬송하게 하고 죄를 뉘우쳐 고백하게 해 줍니다. 이것이 가슴이 하는 역할입니다. 그래서 신앙 생활하는데 이 가슴이 하는 역할이 참 중요합니다.
  가슴이 뜨거워져야 눈물이 나오고 회개가 터지고 찬송이 우러나옵니다. 머리만 뜨거우면 이론 신앙에 그치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머리로 아는 것은 많은데 그 신앙생활 하는 모습을 보면 기쁨이 없고 만족도 없고 메마릅니다. 감사나 회개의 고백도 없고 뜨거운 기도나 찬송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론 신앙은 창백합니다. 가슴이 차갑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⑶의지적인 신앙이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결단하는 신앙'입니다. 이 결단력은 의지적인 신앙에서 비롯됩니다. 사람이 실수를 해서 죄를 짓게 되면 제일먼저 지적인 요소가 작용합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해 줍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작용하는 것은 정적인 신앙요소입니다. 이것이 가슴으로 슬퍼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의지적인 신앙요소가 작용해서 회개하게 하고 다시 죄 짓지 않도록 결단하게 해 줍니다.
  ▶어떤 소매치기가 그 세계로부터 손을 씻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가면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꾸만 손이 남의 주머니로 들어갑니다. 다시는 안 한다 했는데도 자꾸만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고민하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팔목을 쳤다고 합니다. 그렇게 잘라내는 결단이 없으면 그곳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의지력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이 의지력이나 결단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생활 뿐 아니고 신앙생활에서도 이 의지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온전한 신앙은 알았으면 끊고, 잘라내고, 일어나고, 실천하는 결단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것을 의지적인 신앙이 해 줍니다. 
  위대한 신앙인들을 보면 모두 이 의지적인 요소가 강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인들의 삶을 보면 끊고 돌이키고 잘라내고 일어나고 다시는 그 길에 들어서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나가는 비장한 결단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바울이 지금까지 소중하게 여기던 것을 모두 버리면서 말하기를 '분토와 같이 버리노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미련 없이 버린다'는 뜻입니다. 베드로도 예수께서 '나를 따르라'고 하시니 '고기 잡던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았다'고 했습니다. 엘리사도 엘리야가 찾아와서 '나를 따르라'고 하니 '밭 갈던 소를 잡고 쟁기를 태우고' 좇았다고 했습니다.
  방탕생활에서 돌아온 어거스틴이 회심한 후 길거리에서 옛 여인을 만났습니다. 애써 피했지만 여인이 뒤따라오면서 "나예요, 나!" 하면서 자꾸만 좇아옵니다. 그때 어거스틴이 돌아서서 "너는 너지만 나는 옛날의 내가 아니다" 하고 냉정하게 돌아섰다고 합니다. 이것이 의지적인 신앙입니다.

 

2. 칭찬 받은 빌라델피아 교회!(계3)

 

  계3장을 보면 일곱 교회가 나오는데 오늘날 모든 교회를 대표하여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두 교회는 주님께 칭찬을 받았습니다. 바로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피아 교회입니다. 그런데 한 교회는 주님께 책망을 받고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그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라오디게아 교회가 현대교회의 모습과 똑같다는 지적을 받는데 있습니다.
  현대 도시 문명  속에 살고있는 많은 사람들은 이 라오디게아 교인들과 같이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라오디게아 교회는 무역 항구가 있는 도시에 있기 때문에 많은 세계적인 부자들이 그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은 양털 생산지였기 때문에 밍크 옷이 유명했습니다.
  또 그곳은 의료시설이 잘된 병원이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런 지역적인 좋은 조건 때문에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자들이 모이는 교회, 엘리트가 모이는 교회, 지성인들이 모이는 교회'라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교회를 보시고 구역질이 난다고 하셨습니다. 계3:15-16절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많은 학자들은 이 교회를 현대교회의 그림자라고 지칭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를 주님은 무섭게 책망하십니다. 이 교회는 한 가지도 칭찬 받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성도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무슨 뜻입니까? 바로 이런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멘이신데, 당시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아멘이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순종이 없었고, 충성이 없었고, 헌신이 없었고, 희생이 없었습니다. 나는 참된 증인으로 십자가에 죽었는데, 너희는 어찌하여 증인이 되지 못하느냐? 나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인데, 너희는 근본을 제쳐놓고 왜 이렇게 세상만 좋아하느냐?
  한마디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아멘이 없었기에 주님이 구역질나는 교회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서 아멘 잘하는 성도가 복을 받습니다. 말로만 하는 아멘이 아니라 그 속에 믿음과 순종과 충성과 헌신과 봉사가 같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가리켜 "눈멀고 가난하고 가련하고 불쌍한 교회"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불로 연단한 순금 같은 믿음을 사서 심령을 부요케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우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좀 보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하여 주님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다"고 칭찬을 하십니다.
  무엇이 능력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순종하는 아멘의 신앙생활이 바로 능력입니다. 이런 믿음만 있으면 예수님의 이름이 존귀케 됩니다.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을 칭찬하시면서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계3:12절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할/
  여기 성전 기둥은 예배당이나, 성전 건물 기둥을 말함이 아니요, 교회의 일꾼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전 건물은 기둥이 바로 서 있어야 문을 열고 드나들 수 있는 것처럼, 교회는 기둥 같은 일꾼들이 있어야 든든하고 크게 성장합니다.
  왕상7:21절에 솔로몬 성전에 두 기둥을 세우고 '야긴과 보아스'라고 합니다. '야긴은 견고하다, 그가 세우다'이고, '보아스는 그에게 능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성도들을 축복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 누구누구집사를 우리 교회 '야긴과 보아스'같은 기둥 되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합니다. 어떤 사람이 기둥이 될 수 있습니까? 빌라델비아 교인들같이 '이기는 자, 잘 믿는 자, 승리하는 자'에게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믿/ 

  나라에도 기둥이 있고, 가정에도 기둥이 있고, 교회에도 기둥이 있습니다. 기둥은 많지 않을지라도 참으로 귀합니다. 건물에 기둥이 없을 때 건물의 균형을 유지할 수가 없고, 넘어질 수밖에 없듯이 주님의 교회에서도 기둥이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기둥의 조건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⑴교회의 기둥은 먼저 자기가 죽어져야 합니다.
  기둥은 죽은 나무라야 합니다. 베임을 당해야 합니다. 주님은 마16:24절에서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자기가 죽어진 만큼 그 속에서 주님이 사십니다. 내가 남아 있으면 소리가 나고 부딪치게 됩니다. 바울은 갈2: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⑵교회 기둥은 곧아야 합니다.
  집을 짓는데 꾸불꾸불하게 비뚤어진 나무는 재목으로 쓰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교회 일꾼은 비뚤어진 사람을 쓸 수가 없습니다. 인격이 비뚤어져도 안되고 성격이 모가 나도 안됩니다. 또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해서도 안됩니다. 한번 마음 품었으면 요동함이 없어야 합니다. 아침의 마음과 저녁의 마음이 달라지면 안됩니다. 또 거짓이나 꾸밈이 있어서도 안됩니다. 마음이 곧아야 하고 성격도 곧아야 합니다.
  ⑶기둥은 주춧돌 위에서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기둥이 흔들리면 집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 기둥은 마음이 견고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아직 장로, 안수집사가 없습니다만 두 분의 전도사님과 권사님과 여집사님들과 집사님들과 모든 성도님들이 평생 성림의 기둥이 되어 섬길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변함 없이 오래오래 교회를 섬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신앙이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직분자들, 권사님과 여집사님들은 성도들을 바르게 권면해 주어야 하고 이끌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신앙을 주춧돌 위에 견고히 세워서 신앙의 본과 덕을 세워야 합니다. 리더자가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본을 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기둥이 되기 위해서는 뭐니뭐니해도 충성심이 절대 필요합니다.

 

3. 교회는 충성하는 자들이 필요합니다.

 

  오늘 주제는 충성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충성이란 말이 원어는 '피스토스'인데,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믿음이란 말도 '피스토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충성이란 말은 '믿을만한 사람, 신뢰받을 만한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충성스런 사람들이 절대 필요합니다. 그런데 충성이란 쉽게 표현하면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관청이나 회사나 공장에서 사원을 채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저 사람이 실력이 있는가? 둘째는 저 사람이 믿을만한가? 바로 충성심입니다. 여기서 첫 번째 실력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재능, 전문성을 말합니다. 이 조건도 중요합니다. 실력이 있어야 일을 꾸려나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실력이 있다할지라도 두 번째 조건 성실성이 없으면, 그 사람을 채용할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일을 맡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믿을 만한 충성심이 있는 사람들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어느 단체, 정당, 사회, 어느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로 필요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충성된 일꾼들이 절실한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기 '맡은 자'란 말은 '청지기'란 뜻으로 '전적으로 주인의 뜻을 받들어 주인의 재산과 살림을 관리하는 직책'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성림의 모든 일꾼들은 교회의 살림을 잘 맡아 해 나가는 자들입니다. ▶마25장은 달란트 비유장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충성심을 보시고 축복하십니다. 한 사람은 한 달란트를 받아서 밭에다 묻어놓았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재능을 묻어버린 자입니다. 열심도 묻고, 헌신도 묻고, 봉사도 묻어 버린 신앙의 깊은 잠을 자는 자입니다.
  그러나 두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것을 이용하여 네 달란트를 만들었습니다. 또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도 그것을 이용하여 열 달란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곱으로 충성한 자들입니다. 배가의 운동을 일으킨 자들입니다. 두 구역을 맡겼더니 네 구역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다섯 구역을 맡겼더니 열 구역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배가의 운동을 일으킨 이들에게 "잘 하였도다!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남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할/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에게는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바깥 어두움에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저주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재주와 지식이 많다 하더라도 이 충성의 요소가 결여되면 그는 쓸모 없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어 버리십니다. 이것은 엄청난 불행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지옥 불에 떨어져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존재가 얼마나 불쌍합니까?
  하나님께서 이새의 아들 가운데서 장차 이스라엘의 왕을 골라 기름을 붓고자 할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기를 "그 용모와 신장을 너는 보지 말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로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중심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 사람의 진실성입니다. 바로 그 사람의 충성심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진실성과 충성심을 보시고 그를 왕위에 세웠습니다.

 

4. 그렇다면 여러분 충성의 범위가 어떤 것입니까?

 

  ①작은 일에서부터 충성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작은 일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가난한 과부의 적은 연보를 칭찬했으며(막12:41-44),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셨으며(마18:14), 작은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가 되었으며(마13:32), 작은 한 알의 밀이 많은 열매를 맺게되며(요12:24), 작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집니다(고전5:6).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이 됩니다.  태평양의 물도 수증기의 집합체요, 히말라야 산도 티끌이 모인 것입니다. 결코 작은 것을 무시 못합니다. 큰 것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천리 길도 한 걸음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입니다.
  눅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 하니라"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시시하다고 무시해버렸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적은 것에서부터 충성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단 공무원은 시시해서 못하겠다고 합니다. 부장이나 국장자리면 몰라도 말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말단에서부터 일하는 법을 배워서 올라가야만 그 자리를 유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평신도니까 그저 대강대강 해야지, 다음에 집사직분 받고, 권사직분 받고, 장로직분 받아서 충성해야지> 이렇게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평신도부터 모이기에 힘쓰고 기도생활, 감사생활, 십일조 생활 잘하는 사람이 집사 되고, 권사 되고, 장로 되어서도 잘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더 크게 복을 주십니다. 성경이 주는 교훈은 "적은 일에서부터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적은 일부터 맡기십니다.
  그것에는 두 가지에 비밀이 있습니다. 첫째, 경험을 쌓기 위함이요, 둘째, 그 사람의 충성심을 보고 나서 더 큰일을 맡기시려는 것입니다.
  눅16:10절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서 감사를 하고 십일조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적은 액수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돈을 많이 벌어서도 더 아까워서 못합니다. 십일조로 복 받은 사람은 뭐니뭐니해도 미국의 재벌 '록펠러'입니다. 그는 지독히 가난했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홀어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유언을 깊이 새겼습니다. 17살 청년 때, 어머니가 운명하시면서 남겨준 재산은 어머니의 손때가 뭍은 성경책이었고, 유언은 꼭 십일조 생활을 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록펠러는 감자밭에서 일일 노동을 하면서도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대 재벌이 되어서도 드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록펠러 재단이 생겨서 십일조 전산실이 가동된다고 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작은 의무가 너무나 많습니다. 가령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는 것, 또 자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매일 성경을 읽는 것,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 등등, 하나님은 이런 작은 일에 충성한 자에게 더 큰 능력과 축복을 주십니다. /믿/아멘!/
  요셉이 보디발 집에서 종으로 충성하였더니 하나님은 그에게 애굽의 총리대신의 자리를 주셨습니다. 다윗이 베들레헴 초원에서 아버지의 양을 치는 목자로 충성했더니 하나님은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그를 세웠습니다.
   사랑하는 성림의 성도들이여! 작은 일부터 충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서 '잘했다고 칭찬 받는 성도가 되어 더 많은 것'으로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할/

  ②끝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여러분, 잠시 잠깐 충성하는 것은 쉽습니다. 며칠 동안 충성하는 것도 쉽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변함 없이 충성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랫동안 변함 없이 흔들림 없이 충성하는 것을 바라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은 가난할 때는 열심히 하나님께 매달려서 충성합니다. 그런데 부자가 되고 살만하니까 그만 세상으로 빠집니다. 어떤 사람은 병들었을 때 충성합니다. 그런데 건강 주니까 그만 삼천포로 빠집니다. 어떤 사람은 처녀 총각 때 열심히 하더니 결혼해서는 그만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신앙은 생명입니다. 주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절대 변치 말아야 합니다. /믿으시면 아멘!/
  우리 민족사를 보면 충성된 증인들이 수두룩합니다. 고구려의 을지문덕, 백제의 계백장군, 고려말기의 정몽주, 이조시대의 성삼문을 비롯한 사육신, 한말의 안중근과 이준열사등, 이런 분들이 시대의 맥을 이어 이 나라가 5천년 동안 굳게 버티어 온 것입니다.
  가롯유다는 끝까지 충성하지 못하고 예수님 배반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스스로 목을 매달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제자 중에 데마라고 하는 이도 끝까지 충성하지 못하고 세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끝까지 충성합시다. 계2:10절(하)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할/

  ③교회가 어려울 때 더더욱 충성해야 합니다.
  여러분 따뜻한 봄날 녹음방초 우거진 여름날, 그때는 대나무와 소나무의 절개를 모릅니다. 그러나 눈보라가 휘몰라 치는 엄동설한에는 비로소 송죽의 절개가 나타납니다. 옛날부터 집이 가난할 때에 어진 아내를 안다고 합니다. 어려움이 닥쳐와도 굳건히 참고 견딜 줄 아는 신앙, 이런 신앙이 승리합니다.
  욥이 그랬습니다.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그의 친구들이 어려운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신앙에서 승리했습니다. 옛날부터 나라가 어려울 때 충신이 나온다고 합니다. 조선조때 일본 오랑캐가 침입해서 팔도강산이 그야말로 풍전등화 위기에 놓였을 때, 이순신과 같은 충신이 나온 것입니다.
  교회가 어려울 때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더 열심히 충성합시다. 행11:24절 "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초대교회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가진 박해와 핍박이 몰아왔습니다. 그런 어려운 조건 속에서 바나바는 하나님께 충성했더니 교회에 큰 부흥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환경이 좀 어렵다고 낙심하지 마시고 좌절하지 마시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저 하늘이 무너지고 이 땅이 꺼져도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니 하나님이여 나를 붙잡아 주소서! 강하고 담대하게 서는 신앙이 기적을 일으킵니다. /할/

  ④남이 보든지 안보든지 충성하라!
  한국사람들의 기질은 남이 안보면 안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급계약이 성행했었다고 합니다. 주인이 보든 안보든 나에게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그것이 충성입니다. 누가 시키면 하고 안 시키면 안 하는 것, 이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알아주던 안 알아주던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는 것, 이것이 충성입니다. 한문에 '유명무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름은 있지만 열매가 없다는 말입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예수님의 저주를 받았습니다. 충성은 칭찬이 있건 없건 보든 안보든 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충성입니다.

  ⑤한 마음으로 충성하라!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씀은 '죽는 순간까지'란 뜻도 있지만 '죽음이 앞에 닥치더라' 변절하지 말고, 믿음을 배반하지 말고 충성하라는 뜻입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평안할 때나 환난을 당할 때나 꾸준히 믿음을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기분 좋을 때는 반짝 열심을 내다가도 욕을 먹거나 억울하게 오해를 받을 때는 싹 돌아서 버리고 변절하면 그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⑥충성은 겉과 속이 같아야 합니다.
  한자로 충자는 가운데 중과 밑에 마음 심 자가 있는 것입니다. 마음 한가운데 중심을 바치는 것이 충성입니다. 또 “성”자는 말씀 “言”변에 이룰 “成”자입니다. 말과 행동이 같다는 뜻입니다. 말과 행동이 같아야 충성할 수 있습니다.
  눈가림만 하고 남 보는 데서 뭘 하는 척하고 남이 안 보는 데서는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은 충성된 사람이 못 됩니다. 엡6:6-7절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주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외식하는 자'라고 했는데 이 말은 '우선자'란 뜻입니다. 겉과 속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다르고 시작과 끝이 다른 사람입니다.
  ⑦게으르지 않아야 충성할 수 있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결코 충성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한달란트를 받은 종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5. 이제 충성하는 몇 가지 조심해야 될 문제가 있습니다.

 

  ①그리스도인의 충성은 남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충성하는데 하나님과 성도들로부터 책망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입니까? 자신의 충성을 앞세워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고, 심판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교회는 순종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설치는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는 경우가 종종 나옵니다. 충성해도 조용히 합시다. 왼 손이 하는 것 오른손이 모르게… /할/
  ②그리스도인의 충성은 사람의 판단에 좌우되지 말아야 합니다.
  열심히 일하고 충성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판단을 받을 때, 분명한 믿음이 있으면 좌우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대게 초신자들이 갓 직분 받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참들이 그들에게 '건방지다고 지가 언제부터, 주제파악을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좌우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힘써 충성하면 하나님은 열 고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눅19:17절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또 남을 판단하는 것은 우리 모두 금해야 합니다. 당을 판단하고 정죄하면 오히려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격려해주고 협조해주고 믿어줘야 합니다. /아멘!/

  ③그리스도인의 충성은 하나님의 판단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동기를 판단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겉으로 나타난 결과만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밀한 중에 그 사람의 중심을 동기를 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행위와 동기는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최고를 바라지 않습니다. 최선을 기뻐하십니다. 최선의 신앙, 과부의 두 렙돈을 칭찬하신 이유가 그 여인의 최선의 헌신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전10: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6. 충성하는 자가 받는 복은 무엇인가?

 

  ⑴자손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충성된 아브라함을 보시고 그 자손에게 가나안의 온 땅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느9:8).  하나님께 충성된 자는 그 자손이 복을 받습니다. 충성된 자의 가문은 대대로 번창하고 왕성합니다.  출20:6절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부모가 충성의 씨를 심어 놓으면 자녀들이 열매를 거둡니다.

  ⑵주인의 즐거움에 참례합니다.
    마25:23절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충성된 자에게 하나님의 즐거움이 보상으로 주어집니다.  그리고 주와 함께 먹고 주와 함께 사는 영광을 주십니다.

  ⑶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계2:10절 마지막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의 상급과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충성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아무런 대가 없이 충성만을 요구하신다면 우리는 얼마 못 가서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주시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기로는 시작 있는 것은 끝이 있습니다.  천지창조의 날이 있었으니 세상 끝날 도 올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난 날이 있었으니 죽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귀한 것을 맡은 날이 있었으니 하나님 앞에서 결산하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마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로부터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계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네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 일한 대로 갚아주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둘 것입니다. /아멘!/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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