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의인의 감사! (합 3:16-19)
오늘은 성찬식을 드립니다. ●성찬의 참 뜻은 무엇인가?
①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입니다(고전11:24-25).
기념이란 "기억하여 잊지 않는 것(국어 대 사전)"입니다. 우리는 성찬의 떡과 포도즙을 나누면서 주님이 날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 당하신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하고 그 사랑과 뜻을 되새기고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②성찬은 세상 죄악과 욕심으로 향하던 나를 죽이는 예식입니다.
"주여! 내 죄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다시는 죄를 멀리하고 거룩한 주님의 모습을 닮아 살게 하옵소서!"하고 기도 드려야 하겠습니다.
③성찬은 주님과의 깊은 교제를 확립하는 예식입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내 속에 채우니 이제는 예수님을 내 중심에 모시고 주님과 깊은 교제를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참으로 이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고, 예수님만 의지하고 살게 된 겁니다. 그러니 성찬을 받은 사람은 기도생활, 예배생활, 성경 읽기를 날마다 더욱 힘써야 합니다.
④성찬은 성도가 주안에서 사랑으로 뜨겁게 연합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함께 나누었는데 서로 미워하고 다투고 대적하며 살면 안됩니다. 우리는 이제 주님의 피로 한 형제 자매가 된 공동체입니다.
⑤성찬은 부활의 소망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몸은 무덤에 장사된 3일만에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거룩한 성찬을 받은 우리도 주님처럼 마지막 주님 재림 때에는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그 소망을 굳게 가집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도 부활의 능력을 힘입게 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⑥성찬은 이 몸을 주님께 드려서 주님을 위해 살고 주를 위해 죽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입니다(롬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⑦성만찬의 중심은 두 가지입니다. 초림과 재림입니다.
고전11:26절 "너희는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여기서 '주의 죽으심'은 초림 예수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 고 '오실 때까지'는 재림입니다. 이런 의미를 모르면 성만찬 떡을 먹지말고 성만찬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바울은 말합니다.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광장에 개 조각상이 있다고 합니다. '보비'라고 하는 작은 개가 떠돌아다니면서 굶주리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아주 말랐습니다. '조크'라고 하는 한 노인이 '보비'를 발견하고 식당에서 저녁 한 끼를 잘 사 먹였습니다. 얼마 후에 노인이 죽었습니다. 문상객들이 노인의 시신을 운구할 때 그 개가 졸졸 그 뒤를 따라다닙니다. 장례를 치렀습니다. 매장하는 인부들이 개를 쫓아내도 가지를 않습니다. 장례식이 끝났습니다. 사람들이 다 돌아간 뒤에도 '보비'는 떠나지 아니하고 밤낮으로 노인의 무덤을 지키고 있습니다. '보비'가 묘지를 떠날 때는 매일 오후 먹을 것을 찾아서 나설 때뿐이었습니다.
'보비'의 행동에 감동한 마을 사람들이 '보비'를 위해서 작은 집을 지어주었습니다. 14년을 하루같이 묘지를 지키던 '보비'도 죽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에게 식사 한 끼 따뜻하게 해 준 친절에 그토록 헌신적이었던 '보비'를 노인 옆에 묻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기념하기 위하여서 '에딘버러' 광장에 조각상을 세웠습니다. ▶짐승도 따뜻한 밥 한 끼의 은혜를 잊지 아니하고 평생 동안 그 무덤을 지켜내고 감사를 표시했는데, 우리 인간들은 뚝하면 배신하고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은 일년동안의 우리 인생들의 출입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추수감사절▶로 예배를 드립니다.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에 '참으로 지혜로운 자는 어떤 사람인가?' 그것은 '모든 경우에 있어서 배우는 사람'이다. '참으로 강한 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자신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면 '정말 부자는 어떤 사람인가?' 그것은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정말 부자이다'라고 했습니다. 참 감사는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와야 됩니다. 감사만이 선한 것입니다.
▶감사에는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무엇인가 충족되는 데서 오는 감사'입니다. 배가 고팠다가 배불리 먹게 되면 만족하게 됩니다. 어렵게 살다가 좀 나아지면 감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이 바로 욕구충족에서 오는 감사입니다. 그러나 이 감사는 지극히 순간적이며 일시적입니다. 다시 배고프고 부족해지면 원망하고 불평하게 됩니다.
다음은 '철학적인 감사'입니다. 이것은 생각하는데서 오는 감사입니다. 이를테면 어제와 오늘을 비교해서 어제보다 오늘이 낫다고 생각하기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헬라의 철학자 '탈레스'는 세 가지를 비교하면서 감사했습니다. 그것은 금수로 태어나지 않고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감사하고, 천대받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고 남자로 태어난 것이 감사하고, 야만인으로 태어나지 않고 헬라인으로 태어난 것이 감사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은총적 감사'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이것은 본질과 존재 자체에 대한 감사입니다. 환경이나 소유의 조건에 따라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무엇이 되었다>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내가 어떤 관계가 되었다>는 것을 아는데서 오는 감사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되었고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되었다는 데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할 수 있을 때에 고난 중에도 감사하고, 내일이 불확실함에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3대 절기가 있습니다. ①봄에 유월절이 있는데 무교병을 먹어서 무교절이라고도 하며, 이는 애굽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나온 날입니다.
②여름에는 맥추절인데 칠칠절이라고도 하고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그것은 밀, 보리를 거두어들이고 그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③가을에 있는 수장절인데 초막절이라고도 하는 절기입니다. 이것은 가을에 곡식을 다 거두어들이고 지키는 절기인데 광야 40년 동안 천막을 치고 생활하면서 그 고난 중에도 만나를 내려 먹여주시고, 반석에서 샘물이 내게도 하시고, 메추라기 떼를 몰아다 먹여주시고, 앞에는 홍해 바다가 가로막고 뒤에는 애굽 군사가 추격해 올 때 하나님의 기적으로 바다가 갈라져 육지같이 잘 건너고 애굽 군사들은 바다에 수장 지낸 것 등을 기억하며 감사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시청각 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신32:7절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어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어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감사도 연습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잘하려면 기도를 연습하고 배워야 합니다. 은혜 받았다고 기도를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좀더 깊이 알려고 한다면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감사도 배우고 연습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감사하는 법을 배우고, 믿음 좋은 주변 형제들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는지 눈여겨보면서 배우고 연습해 보십시오. 그러면 드디어 나에게도 감사가 체질화되고 생활화되며 나아가 습관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배워서 습득한 사람은 훨씬 더 감사가 풍성하고, 깊이 있는 감사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감사를 가르쳐주기 위해서 1년 중 중요한 명절 3개를 지정해서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렇게 매년 몇 개월에 한 번씩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기뻐하다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연히 감사를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그 감사가 체질화되고 생활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대하셨습니다.
▶오늘날의 감사절은 영국 국교의 탄압에서 벗어나 1620년 102명(남 78명, 여 24명)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 '플리머스'에 도착해서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굶어 죽고 얼어죽었지만,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농사를 지어서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면서 감사의 예배를 드린 것이 그 기원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하여 감사절을 국경일로 정하고 4일간이나 공휴일로 정한 나라는 미국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감사할 줄 아는 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국가는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교회들을 파괴하며 배은망덕하기 때문에 예외 없이 다 거지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북한과 남한을 대조해 보면 분명히 알 수가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는 bc 약 600년에 이스라엘은 격동기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 때까지 세상을 지배하고 이스라엘을 장악하고 있던 앗수로의 수도 니느웨가 신흥 제국인 바벨론에 함락되었고, 당시 강대국 이였던 애굽도 바벨론과의 전쟁에서 대패함으로 서서히 세계는 바벨론 시대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강대국끼리 세력 다툼을 하고 있는 틈바구니에서 남 유다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도 더 큰 문제는 하나님의 심판을 눈앞에 두고도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타락이 극에 달해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있었습니다.
통치자들은 강대국에게 조공을 바치기 위해 백성들의 것을 착취하고 압제하며 권력자들의 배만 채웠고, 회개를 외치는 선지자들을 마구 잡아 죽이는 일이 벌어 졌으며, 예배행위는 형식적으로 치우쳐 있었고, 곳곳에 우상의 전각들로 성지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힘없는 백성들은 아무 희망이 없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선지자 하박국이 등장합니다.
'하박국'의 이름의 뜻은 '포옹하다, 끌어안는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열렬한 포옹"을 의미합니다. 두 가지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뜨겁게 포옹해 주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뜨겁게 받는 자'란 뜻입니다. 또 하나는 '그 시대의 고민을 끌어안고 눈물 흘리던 사람'입니다.
하박국서는 3장으로 되어 있는데, 전체를 보면 하박국도 그 시대가 가지는 모순과 절망, 그리고 슬픔과 탄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왜 이러한 일이 있어야만 합니까?' 묻고 하나님께 대답을 받는 그런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박국이 하나님께 품었던 의심 세 가지가 있었는데, 그 첫째는 "왜 선택받은 이 민족이 이렇게도 고통이 많고, 어려움이 많습니까?"를 물었습니다. 한마디로 '이 고통의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가?'를 물었고, 하나님은 "그 이유는 바로 너희들의 죄 때문이다"라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고통의 원인이 바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있는가?' 탄식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 사랑하시는가? 안 하시는가?' 이렇게만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 그의 질문은 "악인이 왜 형통하는가?"를 물었습니다.
우리 죄 때문에 우리가 고생한다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문제는 지금 이 나라가 적군 앞에서 오륙을 당하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바벨론 사람들인데, 우리보다 더 죄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이방의 할례 없는 저 백성들, 그들이 어떻게 우리를 칠 수가 있단 말입니까? 도대체 불의한 자들이 득세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기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 "내가 이방백성들을 축복한 것도 아니고, 그들이 잘 나서 높여 준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 힘이 있게 된 이유는 내가 그들을 진노의 막대기로 택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 심판과 분노의 도구이니라"
물론 이 이방 백성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진노의 도구인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힘과 능력으로 강해지고 정복하는 것이라 생각해서 교만하고 분노하고 제 멋대로 다 하지만, 하나님의 답변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네게 진노의 막대기가 필요해서 그들을 강하게 한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대답이었습니다.
▶세 번째 질문은,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였습니다. "또한 저 진노의 막대기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원수들은 영원히 번영할 것입니까? 우리들은 이렇게 망하고 끝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대답하십니다. "아니다. 저 진노의 막대기들은 사용기간이 지나면 그들의 죄에 따라 내가 심판 할 것이다. 그러나 선택받은 너희들은 깨닫고 회개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것이다." 이런 대답이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당부하시기를 "낙심치 말고 절망하지 말아라.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 안에 소망을 두어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정녕 구원이 날이 올 것이다" 그라면서 강조하시는 말씀은, 2:4절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박국은 이 말씀을 받고 백성들에게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당부했고, 자기도 그 신앙 안에 살았습니다. ▶후에 사도 바울이 이 신앙을 본받아 로마서의 주제로, 갈라디아서에서도, 히브리서 에서도 이 신앙을 주제로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이 말씀에 기초한 것'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의인'이란 '의'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습니다. 의인은 믿음을 먹고사는 자입니다. /할/
▶이제 하박국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성전으로 들어가서 기도하고 찬양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가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하면서 고백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3:2절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하박국이 놀랐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백성들의 죄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는데 알고 나서 깜짝 놀란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나니까, 영적인 눈이 떠져 바르게 현실을 바라보니까, 이건 뭐 죄가 보통 많은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뭘 몰라서 그렇지 정말로 영안이 열리면 내 죄가 얼마나 많은지 깜짝 놀라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싫어하시는지 그걸 알고 놀랍니다.
더구나 이 심판이 끝이 아니고 심판 뒤에는 아름다운 구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또 깜짝 놀랍니다. 이 처절한 절망 안에서 낙심할 수밖에 없지만 이 징계 뒤에 구원을 허락하여 주시는 그 은혜 앞에서 지금 그는 놀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놀라야 합니다. 무엇에 놀라야 합니까?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 이것에 대해 놀라야 합니다. 정말로 놀라야 합니다.
또 하나는 이렇게 쓸모 없는 나를 하나님은 왜 이렇게 사랑하시는지? 왜 붙들고 놓지 않으시는지? 끝까지 붙들고 나를 변화시키기 위하여 애쓰시는지? 이 은혜를 알 때, 이 은혜를 감당할 수 없어서 놀라야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충격과 감격!" 이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무언가 짜릿한 감격을 맛보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가장 큰 감격은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지 바로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로 알면, 거기서 가장 큰 감격이 철철 넘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감격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감격이 없습니까? 왜 찬송만 불러도 하품이 나오고, 죄인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눈만 멀뚱멀뚱하고, 옆 사람은 감사해서 우는데 "뭐가 저렇게 감사한가? 나는 장사도 안 되는데…"
왜 이렇게 감격이 없느냐? 자기를 모르고 하나님을 몰라서입니다! 진실로 나를 알고, 하나님을 알면 감격하게 되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때 하나님이 그렇게 지키시고, 훈련시키시고 나를 이곳까지 인도해 주셨구나' 감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돌이켜보고 깨닫는 은혜입니다. 감사도 그렇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니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의 사랑을 깊이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감사가 나옵니다. 친구의 우정도, 이웃의 사랑도 깊이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감사가 나옵니다.
■이제 하박국은 성전에서 놀라고 감격하다가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2절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부흥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부흥은 '우리 심령이 다시 사는 것'입니다. '부흥'을 영어로는 '다시 생명을 준다, 즉 다시 살리는 것'이 부흥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의 심령이 다시 살면 다시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날도 우리 심령이 먼저 살아나면 우리의 환경도, 교회 부흥도,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할/
▶2절 하반절에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이런 겸손한 기도가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할 능력이 죄인들에게는 없습니다. 죄는 지었지만 심판을 감당할 능력이 죄인에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비는 것입니다. '하나님! 벌받아 마땅한 존재입니다. 다만 불쌍히 여겨주시고 긍휼을 베풀어주옵소서' 이런 겸손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의인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를 찾아봅시다.
1. 환난 날에 감사하고 있습니다(16).
솔로몬 왕이 죽은 후 주전 931년 분단이 되었습니다. 931년부터 두 나라로 분단되어 지내다가 주전 721년에 북 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했으니까 분단되어서 110년 간이나 두 나라로 존재해 왔습니다.
그런데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망할 때 남쪽 유다는 그것이 자기들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아주 태연해 했습니다. 그들은 죄가 많아서 그렇게 되었지만 자신들은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북쪽에는 성전이 없는데 자기들에게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고 자기들은 성전에서 예배를 열심히 드리고 있으니까 자기들은 북 이스라엘하고는 다르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고, 그 성전에서 날마다 화려한 예배가 드려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껍데기만 남은 형식적인 예배였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자신들의 만족을 위해 드리는 자위적인 예배였을 뿐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북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우상을 섬기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고, 예배를 무시하고, 거룩한 성일을 무시하다가 멸망당했습니다. 그런데 남쪽 유다가 똑 같은 전철을 밟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국제 정세는 강대국이었던 앗수르제국이 멸망하고, 애굽 역시 국운이 기우려지면서 신흥국가인 바벨론이 강경한 세력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들은 어떤 존재였는가? 1:6절 이하에 보면, '사납고 성급하며, 두렵고 무서우며,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독수리의 날음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박국 선지자가 떠는 것도 이 무서운 신흥 강대국인 바벨론이 유대나라를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머지않아 말을 타고 창검을 번쩍이며 유대나라를 침략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국내사정은 말이 아닙니다. 종교는 타락되었고, 정치는 썩었고, 군사적으로도 바벨론과 맞서 싸울만한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탈진상태입니다. 그러한 사정 속에서 하박국선지자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나라 안을 보았고, 나라 밖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입술이 떨렸고, 뼈가 썩는 것 같은 아픔이 엄습했으며, 그리고 온 몸이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나라꼴이야 어찌되건 나만 편하고 잘 살면 된다는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나라가 어렵고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하박국은 그 어려운 상황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찬양을 드리는데 혼자 드리는 것이 아니라, 악기를 동원해서 성가대와 함께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1절에 '시기오놋에 맞추어 노래'하고 있습니다. 19절에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악대장의 지휘로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환난 날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오히려 그 시련으로 말미암아 신앙과 인격이 더 깊어짐을 체험하게 됩니다. 나무는 가물 때에 뿌리가 깊어지고, 겨울 찬바람에 단단해 집니다.
어머니는 해산의 고통가운데 자녀에 대한 깊은 정이 생기게 되고, 부부는 고생하면서 정이 듭니다. 환난이 우리를 성숙시킵니다. /믿/
■소아마비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어느 나이 어린 소녀가 자기의 일기장에 이런 기도문을 썼습니다. '주님! 오늘도 바른 손으로 글씨를 쓰게 해 주시고, 두 눈으로 엄마 아빠를 보게 하시고, 파란 하늘을 보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오늘도 짜증부리지 않고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 어린 소녀의 기도야말로 성숙한 기도이며, 더없이 맑은 심령 속에서 우러나온 고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50:14-15절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본문의 하박국은 환난 중에도, 고난 중에도 주님께 감사하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원수가 쳐들어오고, 함성소리를 들으면서 부르는 찬양이야말로 믿음이 강한 자만이 부를 수 있고, 승리를 믿는 사람들만이 부를 수 있는 승리의 찬양인줄 믿습니다.
2. 무에서, 즉 없어도 드리는 감사, 즉 실패 속에서 드리는 감사입니다(17).
17절 속에 무려 6가지가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농경사회입니다. 사실 하박국에게 없는 여섯 가지는 그들 생활에 있어서 절대로 필요한 생활필수품들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백성들이 먹는 일종의 양식입니다. ▶포도는 그들 음료로서 사용했습니다. ▶감람나무는 기름을 짜서 불을 밝히기도 하고 성전의 불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밭의 식물은 양식이었습니다. ▶양은 옷을 만들어 입고 ▶소는 밭을 가는 수단이었고 동시에 소나 양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제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것이 다 없습니다. 지금 하박국선지자는 전쟁이 터지면 이 모든 것이 없어질 것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이 다 없을지라도 하나님 한 분으로 감사하겠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없을지라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 이것은 성도만이 가지는 특권이요, 힘입니다. '없을지라도' 이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입니다. 성숙한 신앙은 '없을지라도'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진 것들,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감람나무, 밭에 양식, 소와 양 따위 등 재산도 건강도 명예도 출세도 소위 눈에 보이는 재산이나 소유라는 것은 없어질 가능성이 많은 것들입니다.
전쟁 때에 없어질 수도 있고, 재난이나 질병, 또는 실패 때문에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들이 넉넉하다고 해서 감사하는 신앙은 마치 어리석은 부자의 소행과 같습니다.
눅12:16절 이하에 보면, 어떤 부자가 농사에 크게 성공했습니다. 큰 창고를 짓고 그 곡간에 곡식을 가득가득 쌓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하기를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은 많이 쌓아 두었으니 이제 마음껏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노래를 부를 때, 하나님께서 그 부자의 꼴을 보시고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려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여러분! 이 얘기는 오늘 현대인들의 얘기입니다. APT를 사고 고급 승용차를 사고, 승진이 되고, 그래서 배가 부르다고 믿는 현대인들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이라도 네 생명을 불러 가면 남은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여러분!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습니까? 있고 없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네가 실패했다고, 병들었다고, 무너졌다고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시간이 지나다보면 하나님이 다시 세울 때가 있고, 높일 때가 있고, 채울 때가 있습니다. /믿/ 그러므로 여러분! 하박국처럼 모든 것이 다 없을지라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은 감사하는 자에게 감사에 조건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자이십니다. /믿/ 우리가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3.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의 근원이 무엇인가?(18)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 다음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감사가 진정한 감사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 때문에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매투헨리'는 '하박국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한 것은 모든 것이 다 사라져도 하나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시는 분임을 믿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마28:20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4. 이런 감사의 신앙! 성숙한 신앙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감사의 신앙! 성숙한 신앙을 가지려면, ▶하나님만이 나의 힘으로 믿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물질을, 권력을, 지식을, 자기의 기술을 힘으로 믿고 삽니다. 이런 세상 적인 힘은 상대적이지만 하나님의 힘은 절대적인 힘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감사를 드리며 사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의 힘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사슴처럼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사슴 발은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또 높은 곳으로 올라갈지라도 피곤하거나 떨리지 않은 동물이랍니다. 사슴은 포수가 잡으려고 하면 높은 곳에 뛰어 올라가 우뚝 서서 쳐다봅니다. 그러나 포수는 높은 곳으로 따라 잡을 수가 없기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높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추격을 당하지 않도록 높은 데로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되 높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이 말은 '은혜 위에 은혜'속에 살아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날라보면 저공비행을 할 때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비가 내리고 구름이 덮여서 앞이 캄캄합니다. 그러나 창공 높이 올라가면 구름도 안개도 비도 없습니다. 항상 빛 가운데 밝은 창공을 날게 됩니다.
우리가 은혜의 높은 경지에 오르면 세상의 환난이 와도, 세상의 어떤 어려움이 와도 거기에 매이지 아니하고 은혜로 자유하며 살 수 있습니다. 항상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게 됩니다. /할/
그렇다면 높은 곳은 어디입니까? 성전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높은 곳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곳입니다. 하늘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믿음의)날개를 달아주며, 사슴처럼 높은 곳으로 오르도록 힘을 주는 곳입니다.
5.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 가지 은혜를 주십니다.
①우리에게는 '에벤에셀'의 은혜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목숨이 유지되고 있는 것과 지금도 건강한 몸으로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신 에벤에셀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의 목숨을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숨을 지켜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음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우리의 건강도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건강을 위해서 입을 옷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지금까지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에벤에셀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할 줄 아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②우리에게는 '임마누엘'의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고아처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임마누엘로 같이 하시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고 돌보아주십니다.
③우리에게는 '여호와이레'의 은혜가 있습니다.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준비하셔서 앞으로도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찬434장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 형통하리라" /할/
6. 감사가 축복입니다.
①감사는 '축복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입니다.
시100;4절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기에서 '그 문'은 하나님께서 계신 그 궁정(성전)의 문입니다. 승리가 있고 응답이 있는 곳입니다.
요10;9절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하나님을 뵈올 수 있는 집의 문'을 말합니다. 구원을 얻는 문이요, 들어가고 나오며 꼴을 얻는 문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되는 문입니다. 능력이 되는 문입니다.
②감사하는 마음은 '믿음의 열매'입니다.
믿음이 떨어지면 우리의 마음속에 무엇이 싹틉니까? 원망과 불평,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이것들은 감사의 싹을 자르는 요소들입니다.
③감사하는 마음은 '축복 받은 마음'입니다.
감사는 분명 하나님이 주신 마음입니다. 아무나 감사할 수가 없지요! 그러므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는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지그 지글러' 박사는 "나는 감사할 줄 모르면서 행복한 사람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④감사하는 마음은 '더 큰 감사를 불러들이는 마음'입니다.
확실히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감사할 일이 더 많이 생깁니다. 감사하는 곳에는 또 기적이 일어납니다.
스펄전은 "별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시고, 햇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해와 달이 필요 없는 영원한 천국의 빛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시50: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⑤감사의 조건은 '찾아 만드는 사람의 것'입니다.
감사는 감사할 조건을 찾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감사가 넘치는 부유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의 뜻도 그런 것입니다.
⑥감사는 또 감사를 낳습니다.
감사는 감사로 끝나지 않습니다. 감사엔 약속이 있고, 감사는 또 감사를 낳습니다. 갈6:7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감사를 심는 자는 분명히 감사를 거두게 하십니다. 이것은 변할 수 없는 영적인 법칙입니다.
▶영국의 성경 주경학자인 '메튜 헨리'는 "감사는 산수에서 더하기(+)와 같아서 모든 것에 감사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더해진다. 어떤 일이든지, 어디서든지 감사하면 플러스의 축복이 주어진다. 그러나 반대로 원망과 불평은 빼기(-)와 같아서 있는 것까지 빼앗기고 없어진다"고 말했습니다.
⑦감사의 원료가 있습니다.
골3:17절 "예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예수의 이름은 성도가 갖고 있는 하나님의 인감도장입니다. 여러분, 인감도장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예수님은 그 자신의 인감도장을 우리에게 주셨고 무슨 일을 하든 이것으로 쓰라는 것입니다. 감사도 그의 이름을 힘입어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⑧감사는 천국은행에 투자한 것이고, 우리의 창고를 채우는 축복의 길입니다.
우리 인간들에게는 각각 자기 소유의 창고를 갖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광이란 창고가 있었습니다. 가을이 되면 이 광에 곡식으로 꽉 채웠습니다. 부자 집에는 큰 창고가 있었습니다. 몇 만석씩 농사하는 사람들은 이런 창고에 가득히 채워 놓고 만족해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네 창고에 새 포도즙으로 가득 채우고 넘치게 주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창고는 비어 있으면 안 됩니다. 만약에 우리의 창고를 비어 있다면 그 집은 망한 집입니다. 우리 믿음의 수확을 천국 창고에 채우는 감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추수감사절 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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