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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50:1 할렐루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시150:2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시150:3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시150:4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시150:5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시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오늘 본문은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현상이 시편 146편부터 150편까지 계속됩니다. 이와 같이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나는 시편을 일명 “할렐루야 시편,” 또는 줄여서 “할렐 시”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할렐루야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먼저 앞에 나오는 세 글자 할렐루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는 “찬양하다”라는 동사에서 나왔습니다. 그 형태는 명령형입니다. 또한 복수형입니다. 그러니까 그 뜻을 정확하게 풀이하면 “너희는 찬양하라”입니다.
그리고 할렐루야의 마지막 글자인 “야”는 하나님의 성호 여호와의 단축형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를 줄여서 “야”라는 한 글자로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할렐루야의 뜻은 “너희는 여호와를 찬양하라,” 또는 이를 줄여서 “여호와를 찬양하라”입니다.
시편은 일명 “찬양의 책”이라고 불립니다. 그만큼 시편에는 “할렐루야”라는 단어를 비롯해서, “찬양하다,” “찬송하다,” “송축하다,” 또는 이와 비슷한 의미의 단어들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시편의 주제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입니다.
그러나 시편의 초반부에 나오는 시편들은 사정이 다릅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기보다는 하나님에게 하소연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여기에서는 시편 기자들이 자기들의 문제와 고통과 슬픔을 하나님에게 애타게 호소하고 있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시3:1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시4: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시5:1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이와 같이 초반부의 시편에는 당면한 문제로 인해서 야기된 고통을 하나님께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그 내용이나 어조가 슬플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시편은 뒤로 가면 뒤로 갈수록, 그 분위기가 점점 밝아집니다.
슬픔이 사라지고 기쁨이 점차로 찾아옵니다. 하소연하며 간구하는 내용이 감사하는 내용으로 서서히 바뀝니다. 그리고 찬양이 넘쳐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시편의 끝 무렵에 가면,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눈에 뜨일 정도로 그 강도가 깊어집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시편 150편은 시편의 마지막 편입니다. 말하자면 시편의 결론인 셈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점점 강도를 더해오던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시편 150편에서는 그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시편 150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찬양하라”는 단어가 11번이나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시편 150편은 기쁨과 감사 속에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으로 충만한 노래입니다.
시편 전체의 내용을 비유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이와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축복의 땅인 가나안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많은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돌보심에 따라, 그들은 광야를 통과하고 드디어 가나안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나간 날들을 되돌아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큰 기쁨과 감사 속에 전심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것이 바로 시편 전체의 줄거리입니다. 또한 그 가운데서 시편 150편이 차지하는 위치입니다. 이와 같이 시편 150편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노래입니다. 또한 그로 인해 힘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가 바로 시편 150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입당 감사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나간 날들을 돌이켜볼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너무나도 큽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큰 기쁨과 감사 속에, 전심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시편 150편은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해야 하는가를 네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어디에서 찬양할 것인가? 둘째, 왜 찬양할 것인가? 셋째, 무엇으로 찬양할 것인가? 넷째, 누가 찬양할 것인가? 오늘 우리는 이들 네 가지를 차례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성도는 광야를 지나가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물며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이르게 되었으면, 성도는 더더욱 소리 높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깊이 생각하면서, 큰 기쁨과 감사 속에 전심을 다해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해서 이 입당 감사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찬양의 장소에 대해서 살펴봅니다(Where).
시150:1 할렐루야 (1)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2)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우리는 어디에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1절은 찬양의 장소를 두 곳으로 요약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성소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권능의 궁창입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 찬양의 장소를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의 성소는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말하자면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소에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시149:1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할지어다
이와 같이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성소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집합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라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와 같이 생각합니다. 아니 혼자서는 찬양을 못하나? 꼭 멀리 가서 함께 모여하만 하나? 물론 혼자서도 얼마든지 찬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도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모여서, 더 많이 더 크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히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이와 같이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모이기를 싫어한다든지, 모이더라도 억지로 마지못해서 모이는 것을 바라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기쁘고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힘써 하나님의 성소에 모이는 것을 바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오늘 우리가 이 곳에 함께 모였습니까?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오직 하나님께로 두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오로지 하나님께로 향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이 곳 하나님의 성소에서 힘써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높이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기쁨과 평강을 크게 더하실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큰 은혜와 더 풍성한 축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권능의 궁창에서
“궁창”이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말의 궁창(穹蒼)은 “하늘 궁(穹)”과 “푸를 창(蒼)”이 합쳐진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궁창의 문자적인 뜻은 “푸른 하늘”입니다. 성경에서 궁창이라는 단어가 맨 처음으로 사용된 경우는 천지 창조의 둘째 날입니다.
창1: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이와 같이 천지 창조의 둘째 날 하나님은 궁창을 만드시고, 그 이름을 하늘이라 칭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세 종류의 하늘이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고후12:2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늘은 대기를 가리킵니다. 새가 날아다니는 곳입니다. 둘째 하늘은 우주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떠있는 곳입니다. 셋째 하늘은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면 이 가운데서 궁창은 어느 하늘을 가리킵니까?
창1:20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첫째 하늘)
창1:14 ....하늘의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를 나뉘게 하라....(둘째 하늘)
겔1:26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셋째 하늘)
이와 같이 궁창에는 새가 날라 다닙니다. 또한 궁창에는 해와 달과 별들이 떠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보좌는 궁창 위에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이 말씀하는 궁창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하늘들, 곧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을 포함해서 일컫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궁창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끝없이 높고 광활한 하늘을 바라보면서, 또한 밤하늘에 떠있는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씀 한 마디로 온 우주를 순식간에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의 궁창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예컨대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면서도, 또는 우리가 우주 공간에 있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궁창이 하나님의 권능을 밝히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소에 함께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는 공개적이며 집합적인 찬양입니다. 우리가 주일날 하나님의 성전에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시149:5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저희 침상에서 기쁨으로 노래할찌어다
성도들은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 그 어디서라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예컨대 성도들은 자신의 침상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침상은 지극히 사적이며 은밀한 곳입니다. 따라서 이는 성도들이 언제 어디서라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함을 뜻합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먼저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찬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소에 오르기를 싫어하지 마십시오. 이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올라와서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기뻐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는 하나님의 권능의 궁창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소 밖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일이 아닌 평일에도 한결같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혼자 있을 때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행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와 같이 바울과 실라는 한밤중에, 그것도 옥중에서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래서 옥문이 다 열리고, 그들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도 힘써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리해서 우리를 가두고 있는 것이 있다면, 이 시간 그 문이 활짝 열리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를 얽매고 있는 것이 있다면, 이 시간 그 매인 것이 다 벗겨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찬양의 이유에 대해서 살펴봅니다(Why).
시150:2 (1) 그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하며 (2)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따라 찬양할지어다
찬양의 장소가 두 곳으로 설명된 것처럼, 찬양의 이유도 두 가지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찬양의 이유를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능하게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능하게 행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앞으로도 능하게 행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과거, 현재, 미래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시146:6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과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시146:7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시146:8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시146:9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현재)
시146:10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미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에벤에셀이 되십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은 능하신 행동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붙드시고, 우리를 지키시며,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에벤에셀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임마누엘이 되십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은 지금도 능하신 행동으로 우리와 늘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지키시며, 우리를 돌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임마누엘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은 여호와이레가 되십니다.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은 능하신 행동으로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우리의 발걸음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호와이레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빌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계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약 이년 전에 본당의 보수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말씀대로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가 되셨습니다.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도 하나님이시며, 오늘 이와 같이 입당 예배를 드릴 수 있게 역사하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모두 에벤에셀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합시다. 또한 오늘 입당 감사예배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합시다. 아울러 이제부터 우리에게 승동의 시대를 활짝 열게 하실 여호와이레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합시다.
(2)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
우리는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을 찬양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전자는 하나님의 행하심, 곧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후자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곧 하나님의 본성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십니다. 그것도 지극히 위대하십니다. 사람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하나님은 높고 위대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더 깊이 깨닫고 하나님을 더욱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시44:21 ....무릇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全知)
시50:1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全能)
시92:8 여호와여 주는 영원토록 지존하시니이다(永遠)
시130: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遍在)
시146:10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主權)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본성을 몇 가지만 생각해보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외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의로우심, 무궁하신 지혜 등을 생각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절로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찬양의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을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입당 감사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과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 그리해서 이 시간 찬양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찬양의 방법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How).
시150:3 (1)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2) 비파와 (3)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시150:4 (4) 소고 치며 (5) 춤 추어 찬양하며 (6) 현악과 (7)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시150:5 (8)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9)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여기에 찬양의 방법이 아홉 가지로 묘사되었습니다. 그 한 가운데 있는 다섯 번째는 춤을 추는 동작입니다. 그 나머지 여덟 가지는 모두 악기의 이름들입니다. 그러니까 마치 한 가운데서는 춤을 추고, 그 주변에서는 여러 가지 악기들을 연주하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우선 여기에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사람의 목소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의 입은 굳게 다물고 악기 소리만 내면서 우리의 몸 동작만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뜻입니까?
시149:1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시149:6 그들의 입에는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있고....
이와 같이 우리는 먼저 우리의 입으로, 우리의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러 악기들을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여기에 사용된 악기들은 우리의 입으로 부르는 찬양에 맞추어서 반주하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물론 이들 악기들은 단순하게 음악적인 효과만을 높이기 위하여 사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 이들 악기들은 어떤 영광스러운 일이 있을 때, 그 일을 특별하게 기념하기 위해서 사용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차례대로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 나팔
민10:10 또 너희의 희락의 날과 너희가 정한 절기와 초하루에는....나팔을 불라....(절기)
수6:20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삼하6:15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법궤를 옮길 때)
이와 같이 나팔은 기쁘고도 영광스러운 일이 있을 때 특별하게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나팔 소리로 찬양하라는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과 그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우리가 크게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2) + (3) 비파와 수금
대하5:12 ....비파와 수금을 잡고....(예루살렘 성전 봉헌)
느12:27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게 되니....비파와 수금을 타며....(예루살렘 성벽 봉헌)
비파와 수금은 현악기의 일종입니다. 이것들은 예루살렘 성전과 예루살렘 성곽을 하나님께 봉헌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비파와 수금도 아주 기쁘고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하여 특별하게 사용된 악기들이었습니다.
(4) + (5) 소고와 춤
우리말의 소고(小: 작을 소, 鼓: 북칠 고)는 손으로 자루를 잡고 치는 작은북을 가리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이것을 주로 탬버린이라고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성경에서는 소고가 타악기의 일종으로, 춤을 출 때 손에 들고치는 악기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출15:20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홍해를 건넌 후)
삿11:34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전쟁에서 승리)
이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적을 무찌르고 승리했을 때, 소고를 잡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들의 큰 기쁨과 감사함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라는 말씀은 그만큼 큰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뜻입니다.
(6) 현악
시45:8 ....상아궁에서 나오는 현악은 왕을 즐겁게 하도다
현악은 말 그대로 현악기의 일종입니다. 말하자면 현 곧 줄을 타거나 켜서 소리를 내는 악기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이미 언급된 비파와 수금 이외의 어떤 다른 종류의 현악기를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성경에서 현악은 오늘 본문과 시45:8에만 사용되었습니다. 시45:8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악은 왕궁에서 왕을 즐겁게 하는 악기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우리의 찬양으로 즐겁게 해드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7) 퉁소
나팔과 마찬가지로 퉁소도 관악기에 해당합니다. 말하자면 퉁소는 입으로 불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이것을 주로 플루트(flute)로 번역을 합니다. 또한 우리말 성경에서는 같은 단어가 때때로 피리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욥21:12 그들은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
마11: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이와 같이 퉁소나 피리도 우리의 기쁨과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악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과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찬양할 때, 우리의 마음에는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흘러야 마땅할 것입니다.
(8) + (9) 큰 소리 나는 제금과 높은 소리 나는 제금
성경에서 말하는 제금은 타악기의 일종인 자바라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두 짝으로 만들어져서, 그 둘을 서로 마주 쳐서 소리를 내도록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영어 성경에서는 이것을 주로 심벌즈(cymbals)라고 번역을 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당시에는 두 종류의 제금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종류는 큰 소리를 내는 제금이었고, 또 다른 한 종류는 높은 소리를 내는 제금이었습니다. 아무튼 이들 제금들도 즐거운 소리를 내는 악기들이었습니다.
대상15:16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
대상15:28 이스라엘 무리는 크게 부르며(성악) 뿔나팔과 나팔을 불며(관악기) 제금을 치며(타악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며(현악기)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어 올렸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때에, 우리의 힘을 다하여 최선의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바라십니다. 물론 우리가 학교의 도서관이나 직장의 사무실에서, 큰 목소리를 내거나 악기를 동원해서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과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찬양할 때는 사정이 다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높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악기를 연주하는 자들도 자신의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대하5:13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대하5:14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성전을 봉헌할 때의 광경입니다. 노래하는 자들과 악기를 연주하는 자들이 다 함께 일제히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들은 소리를 높여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들은 자신들의 온 힘과 온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그들의 찬양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그에 대한 표징으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하나님의 전을 가득하게 채우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입당 감사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들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의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과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우리 모두 소리 높여 찬양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기쁘게 흠향하시며, 이 곳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의 마음에 기쁨과 감사함이 넘쳐흘러서, 이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로, 찬양의 주체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Who).
시150:6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누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까? 호흡이 있는 자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호흡이 있습니까? 지금 이 시간 우리가 살아서 숨을 쉬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마땅합니다.
롬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여기에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합니다.
그러기에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은 핑계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그들에게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그들 스스로가 자초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입당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을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지극히 위대하심을 분명하게 나타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여 우리의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우리의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도 아니하지는 않습니까? 이와 같이 경건하지 아니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우리 가운데는 한 사람도 없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합시다. 그리해서 여기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승동의 시대를 활짝 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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