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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믿고 변화된 삭개오! (눅 19:1-10)

by 【고동엽】 2022. 2. 3.

예수 믿고 변화된 삭개오! (눅 19:1-10)

 

사람의 행위는 세 가지 판단을 받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판단입니다. 이 판단은 굉장히 자기주의입니다. 너그럽고, 자기 합리화에 빠지는 모순이 있습니다. 두 번째는 남이 판단하는 내 모습이 있습니다. 이것을 사회적 평가, 세상적인 평가라고 말합니다. 상당히 정확합니다. 그러나 다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이 평가하시는 내 모습이 있습니다. 정확한 판단입니다. 이 판단에 우리가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 안에서 변화된 내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은 기뻐하실줄 믿습니다.
지금 수많은 좌담회, 대담 프로그램에서 한결같이 논하고 있는 화두가 변화입니다. 정부가 변해가 된다, 정당이 변해야 된다, 기업이 변해야 된다, 대학이 변해야 된다, 군대가 변해야 된다. 그리고 교회가 변해야 된다 이렇게 모두가 변화를 부르짖고 있습니다. 변화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나쁘게 변화든지, 좋게 변하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 좋게 변해야 합니다. /할/
지금 우리 사회는 급변하는 세 가지 영역이 있습니다. 하나는 세계화시대입니다. 이제는 이 세계화가 얼마나 실감이 있느냐 하면 우리 스스로는 이제는 식생활도 안됩니다. 우리 식탁에 들어와 있는 이 세계의 농산물, 축산물, 우리가 먹는 것, 입는 것, 쓰는 것 이 모든 환경이 이제는 세계의 것이 다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것도 세계로 다 나갑니다. 이제는 막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세계가 한 가족이 되어 있습니다. 세계화에 아무도 역행을 할 수가 없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고령화시대입니다. 지금 고령화시대를 우려하고 염려하던 때가 15년 전입니다. 15년 전의 미래학자들이 고령화시대를 많이 예언을 했는데 이제 도래했습니다.
세 번째는 전문화시대입니다. 이제는 전문화가 안 되면 살지를 못합니다. 전문화가 안 된 사람들은 이제는 다 밀려납니다. 이제는 쓰레기를 치워도 전문성을 가지고 해야 됩니다. 세상은 이렇게 급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변화에 중요성은 우리 내면의 변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롬12: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그 다음 것이 변화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엡4:22절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우리 마음의 중심,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성경은 크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 삭개오는 예수 만나 변화를 받아 새로운 인생, 새로운 인격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삭개오는 예수 안에서 변화 받은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인가를 비춰주는 값진 거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변화된 모습과 생활에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없다면 우리의 신앙이 정상이 아니라고 진단해도 큰 잘못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 삭개오를 배우고, 삭개오처럼 변화되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제목소개!▶

 

그러면 삭개오를 찾아가 봅시다. 본문의 시작은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지금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는 여정길입니다. 왜 올라가십니까? 죽으러 올라가십니다. 인류의 죄의 문제를 가슴에 앉고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지금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고 있는 여정 길에 여리고를 지나가고 계십니다. 이 길이 마지막 길입니다. 오늘 삭개오는 기회를 잘 포착했습니다. 여러분! 기회를 잘 잡아야 합니다. 예수 믿을 기회가 바로 오늘이요, 은혜 받을 기회가 바로 오늘입니다. 예수 위해 살 기회도 바로 오늘이요, 주님 위해 봉사할 기회도 바로 오늘입니다. 오늘이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고후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1. 여리고 성읍에 대하여 알아보자!

 

우리가 흔이 이스라엘하면 떠오르는 곳이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을 본래는 여부스 족속들이 살던 한 마을이었는데, 다윗왕 때 그 성을 빼앗아 수도로 정하면서 역사 속에 중요한 도시로 자리잡고 오늘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2천 년도에 예루살렘 정도3000년 축제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여러 지역 가운데 예루살렘보다도 더 오래된 성읍이 있는데 그 성읍이 바로 여리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제일 먼저 정복한 성이 여리고성입니다. 고대 성읍들은 역사속에서 대부분 폐허가 되어 지금은 그 흔적들이 남아있지 않습니다만 이 여리고라는 도시는 지금도 유대인들에게도, 아랍인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도시에 해당합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에서 약 80리 정도 떨어진 요단 계곡에 자리잡고 있으며 '하나님의 낙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리고는 종려나무가 울창하고 향료 생산지로 유명했기 때문에 여러 나라의 무역상들이 국제적인 교역의 중심지로 삼고 있었던 곳으로 경제적인 부를 상당히 누리는 곳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헤롯 대왕이 그의 아들과 함께 이 여리고를 더욱더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도시 계획을 세우고 정비를 하면서 그들의 겨울 궁전을 짓고 체육관과 또 극장을 건설하기도 했던 도시입니다. 로마 역사에 나오는 '안토니우스'가 자기 애인 '클레오파트라'에게 선물로 주기도 한 도시가 바로 이 여리고성입니다. 이 여리고는 다른 도시와는 달라서 교통의 요지였고 또 교역의 중심지였습니다. 특별히 요단 동편지방을 통하는 하나의 관문으로서의 도시역할을 감당했고 북으로는 다메섹 두로와 시돈이 연결되는 길이 나 있었고, 서편으로는 가이사랴와 욥바로 향하는 길이 있었고, 남편으로는 이집트를 연결하는 그런 중요한 길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부터 이 도시는 많은 전쟁의 중심지가 되어졌고 또 이런 교통의 중심지와 또 교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어떤 나라든지 어떤 세력이든지 이 도시를 점령하기 위해서 애를 썼던 것을 보게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이 도시는 교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큰 세관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2. 삭개오는 어떤 사람인가?

 

2절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신약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어린아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은 인기를 독차지 하고 있는 사람이 삭개오입니다. 성경에서는 잠간 등장하였다가 사라진 사람이지만 그가 예수님을 만나 구원을 얻는 장면은 너무 극적입니다. 한번 들어도 잊어지지 않습니다.
세리장은 지금의 세무서 서장쯤 되는 직위입니다. 여리고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부를 누리는 곳입니다. 이렇게 부유한 지방에 세리장이였으므로 그 지위는 대단하여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은자리입니다.
그 덕분에 삭개오는 이미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부자였지만, 그 반면에 유대인들로부터는 특별한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멸시했던 네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창기, 세리, 이방인과 죄인들입니다. 특히 세리는 창기와 똑같이 거의 구제불능의 폐인으로 낙인이 찍혀있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언제나 이 둘은 바늘과 실처럼 붙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세리와 창기가 단지 차이점이 있었다면 창기는 돈이 없었고, 세리는 돈이 많았다는 것 뿐 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삭개오는 어린 시절에 부모를 여의고 친척들의 신세를 지며 이집 저집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철이 들면서 쌀쌀한 분위기 속에서 눈치 밥을 얻어먹고 사는 자신의 신세가 얼마나 불행한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는 돈을 벌어야겠다고 마음으로 로마 정부에 충성을 다해서 세리라는 직위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유대나라는 로마의 식민지였는데 그때 로마 정부는 세금징수를 위한 전담 공무원을 유대나라에 파송하고 그 밑에 세금 청부원으로 식민지 사람들을 고용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특별한 업적이 있고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을 세리 장으로 뽑았습니다.
그가 세리장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동족들의 피를 빨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동족들의 저주를 받고 민족반역자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제 36년 핍박 밑에서 일본사람의 앞잡이 노릇을 하면서 동족의 피를 빨고 자신의 부와 이익을 위해서 민족을 헌신짝처럼 저버린 매국노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 당시 세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돈을 위해서는 믿음이나 인간성까지도 팔아먹고 나라와 가문과 명예도 다 팔아먹는 그런 위인들입니다. 그래서 유대나라의 경전인 탈무드에서는 '세리는 거짓말을 참말처럼 사용하는 사람으로 공인'되어 있습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삭개오의 이름에서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삭개오는 '순결하다, 의롭다'는 뜻입니다. 유대나라에서는 자녀가 태어나서 8일이 지나면 할례 식을 하면서 이름을 지어 주는데 이때에 주로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구약에 나오는 위대한 선조들의 이름을 그대로 따서 붙이는 방법입니다. 이 경우는 어린아이가 자라면서 그 이름의 인물을 사모하고 본을 받도록 하려는 교육적인 배려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예는 약간의 미신적인 색채를 풍기는 방법입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가 촛불을 여러 개 밝히고 거기에다 원하는 이름들을 쓴 꼬리표를 각각 달아놓고 기다립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꺼지지 않고 남는 촛불의 이름을 자녀들에게 붙여준다고 합니다.
삭개오는 구약에 없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촛불을 밝혀 놓고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마 그 부모는 그에게 만인이 존경하는 깨끗한 인물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삭개오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삭개오는 그 이름과 정 반대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돈 때문에, 또한 난쟁이를 겨우 면한 작은 체구에서 오는 열등감 때문에 일종의 자학적인 선택이 아니었나 봅니다. 아무튼 사람들이 삭개오라는 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얼마나 속으로 빈정거렸을까요? "순결해, 뭐 의롭다고, 웃기네. 그 이름가지고 세리가 되다니..."
요즈음 믿음의 가정에서 성인들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별한 뜻이 있는 만큼 자녀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하고 잘 양육해서 훌륭한 지도자로 키우시기 바랍니다. 잘못하면 이름 값도 못한다고 비웃음을 살수도 있습니다.

 

3. 삭개오는 돈의 노예가 된 현대인의 표본입니다.

 

돈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큰 위력을 가진 현대인의 우상입니다. 심리학자들이 분석한 바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 중에 50%가 돈 생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90%는 돈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습니다. 눈만 뜨면 '돈, 돈'하다가 그것도 모자라서 꿈속에서까지 '돈, 돈' 하다가 돌아버리는 현대인의 처량한 모습이 아닙니까?
확실히 팽배해질 대로 팽배해진 황금만능의 사조가 오늘을 사는 많은 사람들의 선악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있습니다. 돈만 벌 수 있다면 수단은 어떠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선이냐, 악이냐를 따지는 것이 오히려 어리석은 것으로 여깁니다. 이렇게까지 비천해진 윤리관이 오늘날 범죄를 더욱 심각하게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만은, 오래 전에 우리나라 모 신문 여론조사에서는 돈을 많이 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믿는 자들이 63%나 된다고 밝혔습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사회에서는 큰돈을 벌려면 비뚤어진 방법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정석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일단 돈이 수중에 들어오면 대게는 먹고 즐기는 향락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본다면 본문의 주인공 삭개오는 향락을 즐기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돈은 많았지만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돈도 많고 명예도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죄인 취급을 받았고, 항상 외로웠습니다. 함께 앉지도 앉고 동행하지도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세리에게 인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세리라는 직업은 매국노와 같았고, 사나운 독사와 같은 정도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에 속담처럼 유행하는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은 "산에는 사자가 있고, 광야에는 독사가 있고, 성내에는 세리가 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였답니다.
또 하나 그에게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키가 작다는 것입니다. 우리 노회에도 키가 작은 목사님이 계시는데 그 목사님을 '삭개오 목사"라고 부릅니다. 키가 작다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와 상처를 받습니다.
세상적으로 봐서는 이 삭개오는 출세한 사람입니다. 세상적으로 로마 식민지시대에 성공한 사람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늘 가슴이 답답했고 무언가 그를 짓누른다는 그런 기분에 살았습니다. 길거리에 나가면 좋은 옷을 입고 거드름을 피우고 걸어다니지만 많은 자기동족들이 자기를 향해서 손가락질을 하는, 손가락질을 받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악착같이 모아서 부자가 되었지만 자기가 모은 부의 모든 것이 그렇게 다른 것처럼 가치 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돈과 지위가 마련되어지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존경하고 자기도 행복할 줄 알았는데 돈과 지위는 얻었지만 그는 행복한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동족으로부터 이웃으로부터 비난받고 소위 말하는 왕따 당한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4. 삭개오에게 어린아이의 순진성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여리고에는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그 당시 풍속으로는 어떤 유명한 인사가 지나가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몰려나와 그 유명인사가 마을을 벗어 날 때까지 같이 걸어가면서 그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예수님이 이 동네 오시기 직전에 바디매오라는 소경이 고침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행차는 여리고를 더 요란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세리 장 삭개오도 이 소문을 듣고 나와 보았지만, 예수님을 둘러싸고 인산인해를 이룬 사람들 때문에 가뜩이나 키가 작은 삭개오로서는 예수님의 그림자조차 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생각 끝에 길가에 뽕나무 위로 기어올라갔습니다.
유대인들은 뽕나무를 가로수로 심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삭개오의 또 다른 일면을 보여주는 행동이었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악하다해도 100% 다 악한 것은 아닙니다. 그 내면의 어딘가에는 적어도 부드러운 한 부분이 있습니다. 삭개오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어린아이의 순진성이 남아있었습니다. 삭개오의 이 마음이 그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예수님께 더 가까이 가 보려는 적극적인 행동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유명한 종교개혁자 칼빈은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과 단순성은 믿음의 준비단계'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런 마음을 결코 놓치지 않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는 자를 뽕나무 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장막 뒤에 가려져 있다 할지라도 다 아시고 만나주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삭개오의 귀한 믿음 몇 가지를 채크해 봐야 합니다.
①예수의 소문을 듣고 관심을 가졌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한번도 만나 본 일은 없었지만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사랑이 많으시고, 죄인들과 가난한 자들과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는 좋으신 분인 것을 알았습니다.
특별히 마태라는 세리를 불러서 예수님의 제자로 삼았다는 그 소문이 전국의 각처에 세관이나 세무서에 쭉 퍼져 있었습니다. 삭개오는 '대체 예수라는 분이 어떤 분인데 정말 사람들이 멸시하고 죄인시하는 세리까지 제자로 삼았을까?' 이런 관심을 가지고 살다가 기회가 와서 그 예수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만사 제쳐놓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②예수 만나는데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키가 작은 것이고, 또 하나는 많은 인파들입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포기하지 아니하고 절망하지 아니했습니다. 찾으면 방법이 나옵니다. 그가 올라간 곳은 뽕나무 위입니다. 뽕나무는 유대의 가로수입니다. 그런데 세무서장이 뽕나무에 올라갔다는 사실은 그 명예에 금이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이 그렇게 순수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순수한 사람을 만나주십니다.
③삭개오가 왜 예수님께 나왔습니까? 돈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사업을 위해, 병고치기 위해, 결혼을 목적으로 나온 것도 아닙니다. 더더욱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나온 것도 아닙니다. 그의 동기는 매우 순수했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저가 예수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려는 동기였습니다. 그는 소문을 들어 예수님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친구요, 귀신들린 자를 고치셨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으며, 38년된 중풍병자를 걷게 하신 분이셨습니다. 삭개오는 이것이 궁금하여 예수님을 한번 만나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여기 '보고자 하되'라는 말은 '보기를 열망하되', '간절히 사모하되'라는 뜻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간절히 보기를 원했습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다는 취약점 때문에 뽕나무에 올라갈 수 있었고 그랬기에 예수님의 눈에 띄었던 것입니다.
마침 예수님께서 그 앞을 지나가시다가 뽕나무에 있는 삭개오를 보았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너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예수님이 자기 집에 유하시겠다는 말씀을 듣는 삭개오는 꿈인지 생시인지 너무 기뻐서 즉시 자기 집으로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바리새인 보다 서기관보다 어떤 랍비보다 권세 있고 수만 명이 그를 메시야로 모시는 그분이 삭개오집에서 하루 밤을 유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천하고 부정하고 개보다 못한 자기 집에 오셔서 하루 밤을 유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감격과 기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삭개오는 급히 뽕나무에서 내려와서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우리 집에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 하늘나라 왕을 우리 집에 모신 것은 내 집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습니까?

▶그런데 대중들의 모습을 보십시다! 6절과 7절은 대조를 이룹니다. 먼저 6절을 보세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이 모습이 축복입니다.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십시오! 주일을 기쁘게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영접하십시오! 우리는 영접기도문을 주일마다 합니다. 왜?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요1:12절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할/
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의 심정과 예수님의 심정은 서로 딱 맞아 떨어 졌습니다. 한 영혼에 대한 사랑, 한 영혼에 대한 애착, 한 영혼에 대한 측은함을 가진 예수님의 마음과 주님을 통해서 자기의 문제를 해결 받아야 되겠다. 주님을 통해서 자기의 과거를 청산해야 되겠다는 간절한 심정을 삭개오와 주님의 마음이 맞아서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길거리에 나와서 서 있던 많은 사람들이 보고 수군거리면서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저런 거룩하신 귀한 예수님이 어떻게 저렇게 우리 유대인들이 가장 멸시하고 미워하는 죄인의 집에 들어갈 수가 있느냐" 하면서 비난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여러분 그 길거리에 나와있던 많은 사람들의 관점은 예수님과 달랐습니다. 오늘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자신의 기준과 내 자신의 관점이 다름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다른 사람의 선한 일을 문제삼고 시비 걸고 때로는 욕을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의 판단보다도, 이웃의 판단보다도, 하나님의 판단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합니다. 초림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려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찾아 구원하시려고 오셨고, 10절에 말씀처럼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5. 예수 만난 삭개오는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8절).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9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이것은 대단한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돈 많은 부자가 구원받기가 마치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고 비판적으로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가능하게 보이던 일이 눈앞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세리 장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자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기독교는 새 사람 창조 운동입니다. 여기에는 자기 수양의 가능성은 전적으로 배제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갈고 닦아서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스스로 깨끗해지고 의로 와지는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삭개오처럼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주님을 찾아 나오는 사람에게 거듭나는 은혜를 주십니다. 그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을 믿는 새 사람으로 바꿔 주십니다. 이 일은 인간이 자기 수양의 결과도 사람의 강요에 의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이루실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삭개오에게 두드러지게 돋보이는 사건이 생깁니다. 그것은 그에게 예수님을 믿는 증거가 당장에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신앙생활 10년을 했다고 해도 정말 구원받았는지 아리송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이 현대 교회의 고민인데 반해 삭개오의 증거는 너무나 확실합니다. 그 증거는 회개와 봉사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토색한 것을 4배나 갚겠다고 합니다. 그 당시 유대나라 법은 착취한 것에 5/1만 더 내면 법적인 보상이 이루어졌습니다. 예를 들면 10만원을 착취했다고 할 때 12만원만 돌려주면 되는데 삭개오는 40만원을 갚겠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것도 부족했던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재물의 반을 이웃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고 돕는데 내 놓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삭개오의 결단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한마디로 돈에 대한 애착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그는 돈의 사슬에서 해방을 받은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스위스 법학자 '칼힐터'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인간을 지배하는 세 가지 강력한 힘이라고 할 수 있는 '돈과 명예와 향락과 관계를 끊어버리면 그때부터 사람은 비로소 자기가 자유롭다고 느낄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삭개오가 바로 이런 경지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 결과 삭개오는 여태껏 그를 지배해 왔던 생활철학이 바뀌었습니다. 변화 받기 전에 남의 것을 착취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급급했던 사람이 이제부터는 자기 것을 털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는 다른 사람에게 입힌 손해와 고통에 대해서 무관심한 사람이었지만 이제부터는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고 싸매어 주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자기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런 변화가 꼭 일어나야 합니다. 주님의 능력은 위대합니다. 주님 앞에 나오기 만하면 돈의 노예로부터 구출해 줍니다. 돈의 굴레에서 일생을 허무하게 살은 사람도 삭개오처럼 변화됩니다. /믿으시면 아멘/

▶여러분! 회개가 무엇입니까! 첫째는 죄를 자복하고 돌아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마3:6-8).
둘째는 과거 생활을 청산하고 주님을 따르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마4:20/눅5:2-8).
셋째는 과거에 자기가 알지 못했을 때에 행한 일들! 남에게 손해를 주었거나 아프게 한 일에 대해서 공적으로, 사적으로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손해를 배상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남에게 토색한 것에 사배를 배상하였습니다. 이렇게 하기 전에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넷째는 세상을 향하여 나가던 발걸음을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향하여 돌리고, 주님을 향하여 전진하는 것입니다(빌3:13-14). 회개에는 열매가 있어야 하는데 삭개오는 그 첫 열매로 자기의 재산 절반을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주고 남에게 토색한 것의 사배로 보상해 줌으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저는 20세기 최고의 부귀영광을 누린 사람은 희랍의 선박 왕 오나시스 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은 세계적인 부호입니다. 그는 인간으로서 가지고 싶은 것은 다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세계도처에 가장 경치 좋은 섬 열 개를 사서 초호화 별장을 만들어 놓고 온 세계를 유람하며 즐기고 살던 사람입니다. 호화 요트를 여러 척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세계적인 프리마돈나와 염문을 뿌렸고 그가 소유하고 싶은 여자들은 다 소유했습니다. 이 땅에 비교가 안 되는, 그 누구도 경쟁이 안 되는 케네디의 미망인 재클린 여사까지도 자기 손에 다 넣었습니다. 수천억을 투자해서 재클린을 산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는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은 여자든 요트든 별장이든 무엇이든 다 가졌습니다. 그런 부귀영광을 누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비참한 종말을 맞았고 그 자신도 비참하게 끝났습니다.
여러분, 권력과 돈은 인생의 답이 아닙니다. 대통령이라는 지위는 어마어마한 권력의 자리입니다. 대통령이 부르면 모든 장관들이, 모든 비서관들이, 모든 국회의원들이 모든 판검사들이 안 올 사람이 없습니다. 대통령이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부를 수 있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자리입니까? 그러나 인생의 진정한 자유는 그 속에 없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오직 예수 안에 있습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6.고통은 어디에서 옵니까?

 

많은 사람들이 고통 하는 근본 문제는 돈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부하면 부한 대로, 돈을 사모하다가 도리어 돈의 노예가 되어 혹사당하는 것이지 실제로 돈이 없어서 고통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자신의 생명과 행복의 조건이라고 믿고 돈 앞에만 가면 맥을 못 쓰는 그것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지 돈이 많지 않아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돈이 매여 있으면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염려와 불안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자유를 돈에게 다 빼앗긴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돈이 인간의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뉴욕 타임지에서 돈과 행복의 함수관계를 발표했습니다. 재물이 많은 사람들을 광범위하게 조사했는데, 돈→재미→행복의 공식이 성립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부자가 되면 치명적인 몇 가지 피해가 있는데 ▶의욕이 약해지고, ▶지루함을 느끼게 되고, ▶땀을 덜 흘리고 번 돈일수록 죄책감과 열등감을 느끼게 되고, ▶감정이 매 마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돈이 장미 빛 거실을 꾸며 줄지는 모르지만 사람에게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잘 알려진 세계적인 거부 존 록펠러도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나는 천만 불을 모아 보았으나 그것이 나에게 행복을 주지 않았습니다" 또 자동차의 왕으로 불리 우는 헨리포드도 이와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돈과 행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도 젊어서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할 때였다"
▶좀 오래된 이야기지만 한 여성 잡지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홍연자'여인의 눈물겨운 사연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부모 친척 하나 없는 천애 고아의 두 남매가 결혼도 않고 동냥에서부터 구두닦이며 쌀 배달이며 가리지 않고 일을 하여 돈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90년에는 전국에서 가장 착실한 저축 왕으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홍 여인이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쌀가마니를 자전거에 실고 한 길을 가로질러 달리다가 그만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 사건이 보도되자 각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조의금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그때 그 돈 봉투를 받아든 홍 여인의 오빠는 '이놈의 돈 때문에..'하고 그 자리에서 돈을 찢고 통곡했다는 것입니다. 돈이 전부인 줄 알고 자신을 송두리째 내 던져 몸부림 쳤는데 그 결과가 이렇게 죽음으로 끝났습니다.
루터의 말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재물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중 가장 가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끔 돈 이외에 다른 것을 줄 것이 없는 바보들에게 그것을 주신다' 요점은 무엇입니까? 돈은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초막이나 궁궐이나 주님과 함께하는 것임을 믿으시면 아멘/
딤전6:9-10절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이 말씀을 주의 깊게 잃고 묵상해 보면 고통이 어디서 오는지 근방 알 수 있습니다.

 

7. 마지막으로 진정한 행복은?

 

재물 욕에서 벗어난 삭개오의 환한 모습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아끼고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던 돈을 들고 가난한 이웃들에게 아낌없이 건네주고 또 자기가 부당하게 착취했다고 생각하고 집을 찾아가서 겸손하게 용서를 빌고 4배나 얹어서 갚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삭개오가 진정으로 회개할 때 여리고에는 얼마나 큰 감동의 물결이 일어났습니까?
주님은 삭개오에게 직장을 그만두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직장이 구조적으로 잘못되어서 양심적으로 살지 못한다고 핑계합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은 썩은 자리로 들어가서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나 자신이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삭개오가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물질이 자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물질은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웃을 위해서 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게도 생명처럼 여긴 재산을 절반을 가난한자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성실하게 사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졌느냐 못 가졌느냐, 얻었느냐 잃었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나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이고 이웃과의 바른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삭개오에게 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나자 주님이 드디어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 구원이 이집에 이르렀도다" 9절도 다시 한번!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아멘/
여러분! 우리도 삭개오처럼 마음에 자유를 얻으십시오. 돈에서 해방을 얻으십시다. 그리고 주님을 모시고 사는 자유인이 되십시다. 재물을 하나님 나라와 바꾸지 마십시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할 때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행복 자는 예수 안에서 자유를 얻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그 감격으로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입니다. 탐욕을 버리십시다. 이 탐욕은 마음의 갈등과 불안의 원인이 됩니다. 참된 회개의 생활이 삭개오처럼 자유를 얻는 길입니다. (2004년 6월 20일 대예배 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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