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44편 제가 9절부터 봉독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하게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우리를 대적들에게서 돌아서게 하시니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자기를 위하여 탈취하였나이다 주께서 우리를 잡아먹힐 양처럼 그들에게 넘겨 주시고 여러 민족 중에 우리를 흩으셨나이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헐값으로 파심이여 그들을 판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나이다 주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주께서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기 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하게 하셨나이다 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 때문이요 나의 원수와 나의 복수자 때문이니이다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우리의 마음은 위축되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주께서 우리를 승냥이의 처소에 밀어 넣으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다면 하나님이 이를 알아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무릇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여 주의 얼굴을 가리시고 우리의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우리 영혼은 진토 속에 파묻히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구원하소서. 이 시편 말씀은 너무나 간절하고 절절하기 때문에 9절부터 26절까지 읽으면 그냥 우리 마음이 숙연해지고 이 기도의 언어가 참 내 심장과 폐부를 진동하는 언어구나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시길 바랍니다. 1절부터 8절을 보면 옛날에 하나님께서 한때 우리를 번성케 하시고 백전백승 하게 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먼저 회상합니다. 1절을 보면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열조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우리 귀로 들었습니다 주께서 주의 손으로 열방을 쫓으시고 열조를 심으시며 주께서 민족들을 괴롭게 하시고 열조는 번성케 하셨습니다. 우리 열조가 칼로 땅을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칼로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오른손과 팔과 얼굴의 빛으로 구원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 주님은 우리의 왕이시니까 우리 야곱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십시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여 대적을 이기겠습니다. 나는 칼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칼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것을 압니다. 그런데 오직 주께서 우리를 대적에게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하여금 수치를 당케 해 주십시오. 그런데 이런 과거에 백전백승, 과거에 일방적인 구원들 보십시오. 과거의 칼과 활의 이름으로 받은 구원이 아닌 과거의 번성, 과거의 구원 이 모든 구원의 경험이 오늘 현실 앞에서는 산산히 조각났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9절에 과거에는 이렇게 우리와 함께 하셨던 백전백승 늘 동행하셨던 하나님이 오늘 현재 안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9절에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케 하시며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니이다.
여기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것은 패배할 때입니다. 입찰에 들어갔는데 입찰에서 떨어질 때 입시에서 패배할 때 승진에서 누락할 때 내가 60억 정도를 벌 수 있었는데 딱 입찰에서 한두 가지 실수해서 졌다 이런 것들 분명히 내가 이길 패인데 내가 돈을 다 잃었다 이런 식으로 패배를 경험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버렸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욕을 당케 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오늘도 전쟁에서의 패배를 경험한 한 공동체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패배할 이유가 없는데 패배한 것에 대해서 항변하는 내용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상관없이 패배를 당하게 하실 까요? 왜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상관없이 욕을 당하게 하시나요?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죄와 상관없이 우상숭배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만일에 하나님 이름을 잊어버리고 우리 손을 펼쳐서 이방신을 향했다면 하나님은 금방 이것을 더듬어 찾아내셨습니다 왜냐면 주님은 마음의 비밀을 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혹시 은밀하게 우상을 숭배해서 패배했다면 그것은 응당 맞습니다. 이번 이 패배는 도저히 하나님이 그동안 패배 이후로 제시했던 어떤 이유로도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변했습니다 당신이 변하지 않고는 우리에게 이런 낭패스러운 일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겁니다 이렇게 거룩한 항변의 언어를 구사하는 겁니다. 그런데 성경의 언어는 이런 거룩한 대듦의 언어 항변의 언어를 신앙의 이름으로 영접합니다. 이게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항변하게 하시고 탄원하게 하시고 하나님께 덤벼들게 하시는 이 하나님 자신이 오해를 무릅쓰면서까지 우리가 이렇게 답답한 것을 경험하도록 허용하십니다. 이게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이런 경험이 여러분에게 아마 있었을 것이고 앞으로도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가 영적으로 경성에 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시게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러분이 영적으로 깨어있을 때 당한 고난은 대부분이 이런 고난입니다.
그래서 고난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 죄를 징계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의 명백한 잘못을 징계하는 고난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고 나면 우리는 죽음에 이르는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로부터 돌이키게 만드는 크고 작은 고난은 죄와 더불어 분명히 옵니다. 이 분석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죄는 고난을 가져온다 이것은 철칙입니다. 죄는 반드시 고난을 가져옵니다. 우리 죄 때문에 오는 고난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 죄와 상관없이 다른 사람의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해석하냐면 내가 이 죄 많은 세상 안에 있는 일원으로 사는 자의 고난입니다. 이 말은 이것도 죄로 인한 고난입니다. 왜? 인류의 죄에 대한 연대적 책임을 지는 고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1910년에 한일합방이 일어났을 때 한일합방 조약에 싸인을 한 것은 순종입니다. 그러나 이 당시에 태어난 모든 어린 아이들은 자기 조상 잘못 만나서 고난당한 겁니다. 보십시오. 어떤 특정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서 자신의 죄는 아니지만 연대적인 죄책을 짊어지는 경우가 허다하게 많습니다. 이것도 분명히 고난이죠? 자기로 인한 죄의 고난, 연대적인 책임의 일환으로서의 고난이 있습니다. 세 번째로 교육용 영적 각성용, 성화 촉진용, 거룩함을 돋보이게 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거룩함을 돋보이도록 돕는 고난이 있습니다. 이 고난은 여기까지가 보통 고난입니다. 보통 우리 인간이 당하는 고난입니다. 이 세 번째 고난이 바로 오늘 이 고난입니다. 이 세 번째 고난 죄와 상관없는 고난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한 네 번째 고난이 있는데 그리스도의 고난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죄가 아주 없는데 누구의 영혼을 대속하기 위한 대속적 고난이 있습니다. 사람도 대속적 고난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이 가져오는 구원을 그런 구원을 가져오는 고난을 겪지 않지만 구원에 방불하는 일련의 혜택을 가져다 주는 고난이 있습니다. 내가 고난을 겪었기 때문에 혜택을 가져다 주는 고난이 있습니다. 우리 군대에 간 젊은 장병들의 수고가 대속적 고난입니다. 편안히 앉아있는 우리로 하여금 전쟁으로부터 면제를 줍니다. 그러니까 군대에 있는 군인들은 사실은 전쟁에 참여하지는 않지만 전쟁을 억제하게 함으로써 나름대로 전쟁에 참여함과 같은 고난을 겪습니다. 군인들 때문에 우리가 여기 편안히 있는 겁니다. 군인들의 그 대속적 고난이 없으면 전쟁상태가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대속적 고난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아주 신앙이 성숙한 사람, 십자가를 지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에게 대속적 고난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가 이 대속적 고난을 받을 때까지 성장하도록 부탁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세 번째 고난입니다. 오늘 교육용 성화를 촉진시키는 고난입니다. 성화를 촉진시키는 고난 중에는 전쟁에 패배가 있고 경쟁에서의 패배가 있고 낙심되는 수치와 낭패를 당하는 일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니까 열방 중에 13절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웃에게 욕을 당하게 하시니 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조소하고 조롱하나이다 우리를 뭇 백성 중에 이야기 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듦을 당하게 하셨나이다. 이렇게 말거리가 되게 합니다. 김회권 당한 고난은 말거리가 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일산두레교회 어느 누구가 당한 고난이 말거리가 됩니다. 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었으니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 때문이요 나의 원수와 나의 복수자 때문이니이다. 이게 바로 욥의 고난이죠? 그래서 시편 44편하고 욥기는 쌍둥이입니다. 나를 비방하고 욕하는 소리 때문이요 나의 원수와 나의 복수자 때문이니이다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 우리의 마음은 위축되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주께서 이렇게 올바르게 신앙생활한 우리 공동체를 사정없이 밟았습니다 당신은 사망의 그늘로 우리를 덮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신앙생활 잘하는 권사님의 가정에 사망의 휘장을 치고 갑자기 축축한 어둠으로 지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께서 아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비단 신앙생활을 잘 하더라도 이런 사망의 음침한 휘장으로 여러분 인생을 치는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을 깨우도록 기도하게 만드는 겁니다. 이유는 23절입니다.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원히 버리지 마소서. 여러분 그래서 이 세 번째 고난은 사실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으로 가는 성장단계에 있는 사람들의 고난입니다. 그러니까 이 고난을 깨닫는 사람이 매우 깊은 수준입니다. 세 번째 이 고난 자기 죄와 상관없는 고난을 당함, 성화, 예수 그리스도를 닮도록 촉구하는 고난을 당함 이것은 대속적 고난으로 가는 비밀을 터득하는 중간 단계의 고난입니다. 종일토록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머리를 흔들며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구나 저가 남의 자식들은 열심히 교육시키더니 제 자식은 엉망으로 만들었네 이런 비난입니다. 저가 남의 사업을 위해서 축복기도 하더니 자기는 망했네 이런 식의 말입니다. 그래서 이 고난, 이 인격적 모욕, 이 수치 그리고 내 이웃, 나를 잘 아는 사람이 나를 갖고 노는 것 이것이 바로 오늘 이 시편 시인이 주님을 깨우면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누가 깹니까? 지금 누가 누구를 깨우고 있습니까? 시인이 하나님을 깨우죠? 그런데 이 상태도 사실은 누가 누구를 깨우는 겁니까? 사실은 하나님이 우리를 깨우는 거거든요. 하나님이 우리를 영적으로 각성시키기 위해서 이런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기막힌 역설적인 고난을 허락하십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배에 누워있는 예수님을 깨웠죠? 주여 일어나십시오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에서 심지어 주님이 타고 있는 배 안에 있는 제자들마저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아래로 들어가는 거대한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배를 삼키려고 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웁니다. 그런데 이때 누가 누구를 깨우는 거였습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운 것이 아니라 누워 계신 예수님이 제자들을 깨운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깨운다 결국은 우리에게 영적 각성을 가져오는 고난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여러분 우리 교회가 매우 높은 수준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고난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기도가 깊어 집니다. 만일에 우리가 기도했더니 너무 잘 되었더라는 이런 삼박자 축복식의 신앙만 많아서는 매우 분위기는 들뜨고 아주 밝은데 철들지 않는 압구정동 오렌지 자녀들의 밝은 얼굴과 같은 겁니다. 여러분 우리 압구정동 오렌지 자녀들 얼굴이 밝죠? 잘 먹고 잘 컸기 때문에 압구정동 오렌지족들은 구김살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압구정동 오렌지 자녀들이 우리나라의 미래를 책임질만한 그런 밝은 빛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지도자는 압구정동식의 밝음이 아니라 이 세상의 고난을 흡수하고 사망의 그늘진 창가에 앉아보고서 그 고난을 통과하고 나서 그 통과한 후에 오는 고요한 그 밝음 죽음의 그늘을 통과한 밝음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교회의 수준은 이런 고난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가 우리가 대속적 고난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 교회 수준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쉽게 세상 사람처럼 기죽지 말아야 합니다. 전쟁에서의 패배, 입시에서의 패배, 사업에서의 패배, 위축된 이런 모든 일들 이런 것들 때문에 금방 마음이 상해버리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런 교육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은 정신의 강고함을 유지해야 되고 우리 믿음의 열조들도 보십시오. 우리 영혼은 진토에 구부리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습니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인하여 우리를 구속하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는 말은 괄호하고 사랑하는 아들아 죄와 상관없는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내가 십자가의 고난을 가르칠 수 있고 십자가의 고난만이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 죄 없는 자가 죄 있는 자 때문에 대신 고난당하는 그 고난의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죄와 상관없는 고난을 먼저 겪은 사람만이 그 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이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런 삼단계의 고난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들이 십자가의 고난으로 부르심 받는 것 통속적인 오해를 중단하셔야 합니다. 무슨 일 많이 하는 것이 십자가의 고난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중책 맡는 것이 십자가의 고난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중책 맡은 사람 중에서는 십자가의 십자도 모르면서 그냥 혈기로 일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러나 십자가의 고난은 초청입니다. 왕의 침실로 초청받는 것이고 왕의 만찬장으로 초청받는 것이기 때문에 십자가의 고난은 여러분이 그냥 말거리 삼을 정도가 아닙니다. 엄청난 고요한 깊은 축복이기 때문에 대속적 고난의 비밀을 아는 사람들은 그 가문을 살리고 그 공동체 전체를 살려버리는 복덩어리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이해하는 한 사람이 있으면 한 사람만 있어도 그 교회는 삽니다. 제대로 갑니다. 그렇게 위대한 것이 십자가의 고난을 터득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의 고난에 접근하는 고난이 바로 죄와 상관없이 패배당함, 종일 도살할 양처럼 죽임을 당해봄, 여기 22절은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이 인용한 본문이죠? 그래서 결국은 우리를 깨우기 위한 죄와 상관없는 고난이 있다 이 고난을 여러분이 당할 때 여러분 우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지 않아서 패배당했다고 느끼는 그 외로운 순간에 의기소침하는 순간에 내가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내가 죄와 상관없이 오는 고난은 언제 많이 일어납니까? 첫째 영적으로 깨어있을 때 당하는 고난은 대부분이 죄와 상관없는 고난입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을 향한 감미로운 순종의 마음이 들 때 당하는 고난도 영적 각성을 위한 고난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향한 감미로운 순종의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데 고난이 일어나면 그것은 죄와 관련된 고난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떤 경우에 제가 참 형제자매들을 가만히 보면 그렇게 영적으로 최고 상태에서 고난을 당합니다. 다시 말해서 엄청나게 풍요롭게 많이 먹고 나서 주님의 말씀을 많이 먹고 나서 기적을 맛보고 나서 굴러떨어집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보고 나서 갈릴리 바다에서 배가 뒤집힐 위기에 처한 것과 같습니다. 풍요롭게 먹고 나서 충만한 은혜를 받고 나서 고난을 받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마음에 깊이 대비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은혜를 많이 받는 후에 대부분이 고난의 파도가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한 일종의 교육 소품과 같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힘을 내셔서 우리 주님의 대속적 고난의 비밀까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자라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그렇게 신앙이 견고했던 한 공동체가 하나님 알 수 없는 이유로 전쟁에 패배해서 부러지는 기도를 읽었습니다. 주님 우리를 각성시키기 위해서 우리를 깨우기 위해서 이 고난의 비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 우리가 기고만장하고 득의양양한 축복만 받을 때만 감사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기죽이고 의기소침으로 인도하는 이 말할 수 없는 패배, 사람들의 조롱과 야유를 불러일으키는 패배 이 패배를 당할 때도 하나님 아버지 영적인 평정을 유지케 하시고 일찍이 우리의 믿음의 열조도 이 놀라운 고난의 비밀 속에 탄원의 기도를 드린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깨우도록 우리를 인도하셔서 사실상 우리 영혼을 깨우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주님을 깨우는 형식을 빌려서 우리 영혼을 깨우고 하나님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의 비밀에 세상을 구원하는 고난의 비밀에 우리를 입학시켜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 사랑하는 우리 형제자매들이 이 깊은 고난의 비밀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알 수 없는 병으로 자기의 죄와 상관없이 당했던 엄청난 고독과 패배와 질병으로 지금 생명의 불꽃이 시들어가는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생명의 불꽃을 지펴주시고 생명의 능력, 접촉을 강화시켜 주시고 나는 결코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는 깨닫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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