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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설교 (시편 45편)

by 【고동엽】 2021. 11. 27.

내 마음이 좋은 말로 왕을 위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도다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 용사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입으소서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왕의 위엄을 세우시고 병거에 오르소서 왕의 오른손이 왕에게 놀라운 일을 가르치리이다 왕의 화살은 날카로워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지는도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우리 16절 읽겠습니다. 왕의 아들들은 왕의 조상들을 계승할 것이라 왕이 그들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안에 좀 독특한 장르 중의 하나가 이 사랑의 노래입니다. 여러분께서 45편에 보면 사랑의 노래라고 되어 있죠? 참 특이하죠? 시편에서 이런 노래가 별로 없는데 시편 45편에 사랑의 노래가 있고 시편 2권의 제일 마지막에 72편 보시길 바랍니다. 72편은 솔로몬의 시라고 되어 있죠? 솔로몬의 시라고 되어 있는 뭐뭐의 라고 되어 있는 시가 누가 썼다는 뜻이 아니라 영어로 말하면 누구에게 돌림 이런 뜻입니다. 솔로몬에게 바쳐진 시라는 뜻입니다. 다윗의 시라는 말은 많은 경우 다윗에게 바쳐진 노래 이런 뜻입니다. 다윗이 실제로 썼던 노래도 있지만 다윗에게 바쳐진 노래란 뜻이기 때문에 다윗의 시라는 뜻이 아니라 다윗에게 바쳐진 노래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왕위 즉위식 때입니다. 왕이 등극할 때 부른 노래이고 이게 제 2권의 마지막입니다. 72편 19절요. 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의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끝나니라. 이게 시편 제 2권이 끝났다는 뜻인데요. 여기에 오늘말로 하면 사랑의 노래인데 왕의 결혼식 축가였다는 말입니다. 왕의 결혼식 축가였는데 공주가 누구냐면 10절에도 원래는 이게 있습니다. 두로의 딸이여 이렇게 되어 있거든요. 두로의 딸이여 인데 우리나라 옛날 분들이 번역을 잘못했습니다.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친정을 잊어버리란 말이죠?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저는 그를 공경할지어다 이렇게 번역해야 합니다. 남편한테 경배를 하면 안 되죠? 두로의 딸은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얼굴 보기를 원하리로다 왕의 딸은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의 옷은 금으로 수 놓았도다. 왕의 딸은 왕비란 뜻입니다. 이 시편 45편은 우리나라 개역성경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서 너무 많은 오역을 했습니다. 왕비가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의 옷은 금으로 수 놓았도다 수 놓은 옷을 입은 그는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친구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두로에서 시집 올 때 두로의 모든 왕실 수행요원들이 따라왔다는 말입니다. 그들도 다 왕께 인수인계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

 

그런데 왕의 결혼이 왜 중요했습니까? 왕의 결혼이 중요한 이유는 왕은 옛날 같으면 국가기관입니다. 왕 개인에 대한 칭송이 아니라 왕은 헌법적 정통성을 보증하는 국가기관입니다. 여러분 연속극 같은 것을 보면 왕의 자식 까지고 난리를 피우죠? 왕은 국가기관인 왕통을 계승하는 기관입니다. 그래서 왕의 아들들이 나옵니다. 16절 보십시오. 왕의 결혼식이 중요한 이유, 왕의 결혼식이 이렇게 국가대사가 된 이유는 왕 자체에 대한 아첨이 아니란 말입니다. 아첨이 아니라 왕조 시대 때의 왕은 헌법 기관이었다는 겁니다. 지금 국회하고 똑같은 겁니다. 16절에 왕의 아들들은 왕의 조상들을 계승할 것이라 왕이 그들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 옛날에는 왕들이 자기 자녀들을 지방공무원으로 보냈습니다. 도지사는 전부다 왕자입니다. 왕의 아들들은 왕의 조상들을 계승할 것이라 왕이 그들로 온 국토의 방백들로 삼으리로다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이렇게 헌법적인 정통성을 보유하고 있는 왕을 찬송하는 것, 왕을 경배할수록 그 공동체가 잘 됩니다. 지도자를 칭송하고 따르는 공동체가 일단은 잘 됩니다. 그 이유는 왕은 헌법적 정통성을 가지는 공동체를 단결시키는 중핵입니다. 공동체를 단결시키는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 왕입니다. 공동체를 단졀시키는 가치를 구현하는 것에 있어서 우리 만일에 공동체가 민주주의다 공동체가 평등이다 그 평등의 가치를 절대로 실현하는 사람이 왕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와이 대학교에 서대숙이라는 사람이 쓴 북의 지도자 김일성이란 책이 있는데 이 사람은 오히려 남한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지금 성균관대 정치학 박사를 받았던 이종석, NSC 국가안전보장차장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지금 안전기획부 국정원 기획실장이하는 사람이 서동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전부다 김일성 전문가입니다. 김일성 전문가인데 김일성은 어떤 가치를 구현한 인물인가를 연구를 했는데 김일성은 지금 북한 사회에 가치를 그대로 성육신 한 사람이다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그래서 김일성에 대한 존경이 실제 존경이라고 합니다.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평양 사는 사람들은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왜? 공동체적 가치를 온 몸으로 구현하고 다니는 겁니다.

 

왕은 무릇 뭡니까? 그 공동체 구성원들이 최고로 귀하게 여기는 가치를 온 몸과 삶과 행동과 윤리로 전부 구현하는 사람이 왕이기 때문에 그런 왕을 칭송하여야만이 자기 공동체가 합의한 가치를 최고의 덕목으로 육화시키고 다니는 사람, 구현하고 다니는 사람을 찬양하면 할수록 그 나라가 영구적으로 존속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것은 일종의 정치학입니다. 그래서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한다는 말, 만민이 왕을 영영히 찬송한다는 말은 무슨 조건이 충족되는 한에 있어서요? 그 왕이 국가 공동체 또는 민족 공동체 또는 마을 공동체의 가치를 완벽하게 성육신 시키고 구현한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왕 앞에 절하는 것이 일종의 거래였지 그것이 바보 같은 사람이 왕에게 절하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사람들이 왕에게 절하는 것 보세요. 삼국시대 때 왕에게 절하는 사람이 절대로 숙명론적으로 절한 것이 아닙니다. 옛날도 전부다 왕의 가치를 공동체가 구현하는 가치를 성육신 시키는 것에 실패한 왕은 가차 없이 무덤으로 가야한다고 맹자가 말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통치를 잘못한 왕에 관한 기록은 전 세계에서 다 나옵니다. 3년 내내 기근이거나 그러면 왕이 목이 잘립니다. 그러니까 7년 기근이 온다는 말을 듣고 애굽왕 파라오가 총리 스카웃을 하잖아요. 7년 동안 흉년이 없는 것처럼 꾸미는 겁니다. 그래서 한 공동체에 최고 가치인 공평과 정의를 가장 완벽하게 수호하고 그 가치를 성육신, 구현하는 점에 있어서 왕의 자식들이 중요하고 왕의 자식들이 온 나라의 방백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그 가치를 구현한 것이지 왕에 대해서 그냥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노래를 쓴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시편 45편을 주석하지 않고 지나갑니다. 뭐라고 합니까? 왕의 결혼식 축가 그러고 끝납니다. 그리고 72편에 대해서는 왕의 등극식 한 마디로 그렇게 합니다. 이것의 신학적 가치를 무시합니다. 그것은 잘못 아는 겁니다. 옛날 사람이나 지금 사람이나 왕의 결혼식에 대해서 축가를 불러주는 백성의 마음에 은밀한 거래가 있다는 겁니다. 이 왕이 이렇게 되어 달라고 노래하는 것이지 일종의 압력을 넣는 겁니다. 이것은 압력을 넣는 것이고 아첨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첨의 말도 압력입니다. 탐욕스러운 사람일지라도 자꾸 뭐라고 해야 되냐면 아 정말 청빈하십니다 이렇게 해야 압력을 받지 우리가 여기서 아첨의 말도 심지어 도덕적 명령의 힘이 있다는 것 여러분 느꼈죠? 여러분 자녀교육 시킬 때 그렇지 않았습니까? 아첨 또는 현실과 동떨어진 미래 지향적인 예언을 했죠? 그것도 그 말로 그 자녀를 통제하려 하는 겁니다. 왕에게 바치는 백성의 아첨의 말은 왕을 통제하는 수단입니다. 이렇게 할 때 거래가 일어난 것이고 왕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정신이 혼미케 된 상태에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백성은 어제나 오늘이나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가 시편 45편과 72편의 신학적 가치를 여기서 봅니다. 왜 이것이 성경 안에 있나 저는 있을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네 마음에서 좋은 말이 넘쳐 왕에 대해 지은 것을 말하며 내 혓바닥은 서기관의 붓과 같다. 이 말은 서기관의 붓은 운율에 맞춘 그런 노래를 쓰는 것이 서기관의 붓입니다. 지금 자기가 말하고 있는 노래는 서기관의 훈련 받은 시적 정형화 된 말을 토해내겠다는 말입니다. 노래도 그런 노래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혓바닥은 훈련 받은 작가의 붓과 같이 절도 있는 말을 말하며 왕은 모든 남자들 보다 더 아름다워 왕이 아름답다는 말은 육체가 아름답다는 말이 아닙니다. 왕은 모든 인생보다 더 아름다워 그래서 왕입니다. 왕이 모든 인생보다 더 아름답지 않으면 왕이 아닙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의 지금 시련,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의 시련은 우리 한국 사람들이 지금 착각하고 있는데 우리 한국 사람들이 대통령을 우습게 아는 전통이 우리나라의 대통령 자체가 우리의 도덕적 자아상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은 우리 국민에게서 뽑은 최고의 인물이 그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우습게 얘기해도 그게 우리의 최고 수준입니다. 그래서 우리 도덕적 자아상인 겁니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지금 같이 대통령 될 줄 알았으면 사돈을 맺어도 잘 맺었겠죠? 그런데 그렇게 막 결혼도 하고 평민처럼 살다가 갑자기 대통령이 되니까 옛날에 사돈까지도 사기꾼 사돈으로 드러나고 이렇게 되는 겁니다. 정말로 창피한 일이죠? 대통령이 아닌 모든 사람들은 그런 사기꾼 사돈이 있어도 전혀 사생활 침해를 안 받는데 왕은 모든 인생보다 아름답다는 말은 왕이 갖추어야 할 도덕적 자질입니다. 왕의 도덕적 자질이 모자라면 참 사회가 불안합니다. 왕의 도덕적 자질과 판단력은 모든 사람보다 아름답고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왕은 자비롭고 너그러운 성품을 입술에 가득 담고 있으니 왕이 하는 모든 말들은 자비롭고 너그러우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왕에게 영영히 복을 주신다. 여기서 왕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도 보통 왕은 무릇 신에게 모든 권력을 위임받았다고 하는 왕권신수설과 같은 사상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왕이 인생보다 아름답고 은혜로운 말을 입술에 머금고 왕의 노릇을 제대로 할 때 하나님이 왕에게 영영히 복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 뒤에 좀 나옵니다. 능한 자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받으소서 능한 자여 칼을 허리에 차라는 말은 칼은 유력한 자를 일반 백성들보다 더 압제적인 삶을 살고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지방 호족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왕에게 칼을 주었는데 칼을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입으소서 왕은 진리와 온유 공의를 위하여 위엄 있게 타고 승전하소서 전쟁에서 승리하라는 뜻입니다. 옛날 왕들은 전쟁에 다 나가야 합니다. 만일에 지금도 대통령이 전쟁 일선에 나가서 진두지휘를 해야 한다면 정보전, 첩보전, 기동전이 오기 전까지는 백병전이 벌일 때는 모든 왕들이 항상 앞에 서야 합니다. 왕 또는 왕족이 앞에 서야 합니다. 지금 찰스 황태자라는 영국 황태자도 공군 조종사였고 다 왕족들은 전부다 영국 왕족이 존경받는 가장 큰 이유는 포클랜드 전쟁 때 앤드류 왕자는 전투기 몰고 다닌 사람입니다. 영국 왕실의 존재 이유는 전쟁을 일으킬 때 항상 최첨단에 서 있습니다. 옛날에는 전부다 왕이 전쟁지도자입니다. 우리 신라시대 때 차차웅이 전쟁 지도자입니다. 왕은 칼을 차고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위엄 있게 승전하라 진리와 온유와 공의의 가치를 총체적으로 구현하는 사람이 왕이라는 말입니다. 진리와 온유 이 말은 진리라는 말은 뭐냐면 유력한 자에게는 진리를 선포하고 법으로 다스릴 수 없는 법 이하의 소수점 이하의 인생을 사는 비참한 무리들에게는 온유를 베풀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진리로 처단하여야 할 사람은 처단해야 하지만 온유로 국민 통합에 이바지한 사람은 사면시켜서 다시 데려와 살아야 한다. 공의를 위하여 위엄 있게 타고 전쟁에서 승전이라는 말은 전쟁에서 이기시길 바랍니다입니다.

 

왕은 두 가지 사명이 있습니다. 공동체 내에 가장 궁핍한 자를 보호하는 것이 왕의 사명입니다. 이것은 성경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경 안에서 그렇게 미워하는 가나안 족속도 이 가치를 그대로 구현했고 메소포타미아의 모든 왕들도 항상 자기를 고아와 과부의 보호자가 되는 왕이라는 자의식이 항상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이민족으로부터의 국가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왕의 사명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의 대의명분을 위해서 위엄 있게 말을 타고 전쟁에 나가서 한 시대에 가장 비참한 사람들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국가 공동체 전체를 지키는 사람이 왕입니다. 그러니까 왕의 일이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왕 노릇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씨 조선 때 왕이 너무 힘들어서 정조 대왕께서도 40대 중반에 돌아가셨습니다. 세종대왕도 40대 중반에 돌아가시고 이분이 50을 못 넘겼습니다. 왜? 정조와 세종대왕은 너무나 부지런한 왕입니다. 11시에 자고 5시에 일어나는 것이 왕이었습니다. 잠을 6시간 밖에 자지 못했습니다. 공부양이 너무 많아서 특히 정조 대왕은 일찍 돌아가신 이유가 제자들이 두 번 경연과 조왕을 합니다. 정2품, 3품 전문가 학자들이 와서 강의를 하는데 대학의 세미나와 같습니다. 3시간짜리 세미나인데 정조대왕 같은 경우는 이 세미나의 최고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숙제 내면 다 해오고 그러다가 일찍 돌아가신 겁니다. 그래서 공부 많이 하는 세종대왕하고 정조대왕 때 책이 많이 나온 이유는 자기가 책을 읽어야 신하에게 지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조 대왕과 세종대왕은 경연을 담당했던 교수들하고 필적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하고 그 시대의 중심 가치를 옹호하고 그게 왕이고 국회의원입니다. 우리 국회의원 뽑을 때 일단 공부의 능력, 얼마나 부지런하게 공부하는가, 학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이 공동체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는가 우리 공동체를 섬기기 위한 종의 도를 실천하기 위한 실무지식이 얼마나 완벽하게 구비되었는가를 잘 보아야 합니다. 정당 볼 것이 아니라 사실은 인물을 잘 보아야겠죠? 그런 중심가치,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해서 말을 타고 전선의 제일 앞에 서는 그래서 군대 안 간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면 안 되죠? 자기 자녀를 군대에 안 보냈거나 자기가 군대에 안 간 사람들은 병들어서 갈 수 없는 사람 빼고는 그게 사실은 우리 공동체의 중심 가치와 너무 떨어져 있는 겁니다.

 

말을 타고 승전하십시오 왕의 오른손이 왕에게 두려운 일 즉 왕의 오른손이 왕에게 권능을 베풀어서 원수 압제자들 앞에 무서운 위력을 발휘하게 할 것입니다 왕의 화살은 날카로워서 원수의 염통을 뚫을 것이고 왕을 침략하러 온 만민들은 왕의 발 앞에 엎드릴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여 이것을 왕이여 이렇게 번역해야 합니다. 하나님이라고 왜 번역했냐면 엘로힘이거든요. 엘로힘을 하나님이라고 번역해야 될 때가 있는데 많은 경우에 엘로힘은 권능을 위임 받은 지도자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8장에 그랬죠? 너희 성경에도 그렇게 될 것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 뭐가 이상하냐 성경에도 말하지 않느냐 재판관적 위임을 받은 사람을 신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엘로힘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시편 82편을 인용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능한자여 하고 똑같은 말입니다. 왕이여 용사여 이런 말입니다. 용사여 당신의 보좌가 영원하며 6절은 용사여입니다. 주의 보좌라는 말은 없습니다. 일인칭 단수입니다. 왕이여 당신의 보좌가 영영하며 당신의 나라가 당신 나라의 홀, 홀은 왕의 지팡이 이것이 바로 왕이여 당신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지팡이 그것은 공평한 지팡이입니다. 7절요.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 여기 메시아라는 말이 나옵니다. 기름으로 왕에게 부어 이 말이 메시아라는 동사가 나옵니다. 왕 가치가 무엇인지 아시죠? 우리 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이 어느 정도의 지도력이 있으려면 왕적 지도력에 준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구역장이나 제직 부서장도 지도력에는 항상 이것이 들어갑니다.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이것이 들어가야 지도력이 성립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 왕의 모든 옷은 몰약과 침향과 육계의 향기가 있으며 상아궁에서 나오는 현악은 왕을 즐겁게 하도다 왕이 가까이 하는 여인들 중에는 왕들의 딸이 있으며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꾸미고 왕의 오른쪽에 서도다.

 

여기 두로의 딸이 왕비가 되었다는 말은 두로를 부마국으로 삼음 이런 말입니다. 이 말은 두로가 지금 이 이스라엘 왕국에 복속된 나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만민에게 통치력을 확장해 가는 왕입니다. 그런데 만민에게 통치력을 확장해 가는 그 왕의 보좌의 기초가 뭐냐면 공평과 정의입니다. 이 왕의 중심 가치는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함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기름을 부어 줍니다. 그래서 메시아라는 말은 뭡니까? 공평과 정의로 하나님 마음을 꼭 닮아서 하나님 대신 사람을 다스리는 두 번째 왕, 부왕, 부지사. 그리스도란 말은 기름 부은 받은 자라는 말은 하나님 마음에 꼭 들게 합하게 하나님과 합하여 사람들을 공평과 정의로 섬기며 살아가는 지도자가 왕이다. 그런데 이 왕의 가치를 이런 섬김의 가치, 공평과 정의의 가치를 극단적으로 무한히 구현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님 같은 인물입니다. 사자는 사자인데 얼마나 자기 부인한 사자이기 때문에 사자가 뭐처럼 보여요? 가만히 보면 사자인데 보좌에 앉은 어린 양처럼 보입니다. 사자가 자기 부인 하면 어떻게 되요? 어린 양처럼 온유한 왕이 됩니다. 그런데 어린 양의 보좌에서 만민을 살리는 생명수가 나옵니다. 내가 원래 사자인데 내 왕의 위엄을 극단적인 온유와 공평과 정의에 대한 투신으로 내 몸을 바꾸고 내 인격을 바꾸면 어린 양의 보좌처럼 되어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영구적인 나라인지 왜 믿냐면 저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믿는 이유가 정치학적으로 볼 때 겸손한 왕이 다스린 나라가 가장 오래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나라의 백성이 겸손하고 왕을 닮아서 이웃 사랑에 헌신된 공동체는 쿠데타해도 절대 안 무너집니다. 다른 어떤 나라가 침범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의 나라와 권세는 영원무궁합니다. 대한민국은 하나님이 보우하지 않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기 전에 이 나라는 끝납니다. 이 나라는 공평과 정의의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하나님 나라에 접수될 때 달구지가 ktx 뒤에 달라 붙을 때 달구지가 ktx 속도로 달리는 것이지 대한민국 자체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도록 보호해주실 리도 없고 일본도 보호해주실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나라에 복속될 때 그리스도와 결혼하여 그리스도와 사돈이 되어 가듯이 그리스도의 중심가치를 우리가 구현하고 거기에 투신할 때 우리 공동체는 존속가능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왕국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통치의 홀이 우리 교회를 지배해서 연약한 사람은 더 많은 격려를 받고 지금 말씀 잘 듣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아무 말 없어도 그 자체가 축복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담임 목사의 전화를 많이 안 받는 것이 좋은 겁니다. 그 사람은 잘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계속 제가 전화를 해서 만납시다 이런 것은 매우 이 사람들이 지금 힘들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 형제자매들 중에서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들은 1년 동안 담임목사 전화 하나도 안 받고도 꿋꿋하게 살아 갑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교회도 훨씬 연약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자비와 온유를 경험하도록 여러분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절대로 이것에 대해서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건강한 사람 그 말은 건강 자체가 도움입니다. 따로 심방 안 해도 건강 주신 것이 나의 심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돌보심을 잘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축 쳐져서 점점 깊은 바다로 빠져가는 돌덩이처럼 마음이 무거워 지는 사람들 우리 형제자매들이 각별히 돌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온유와 진리와 공의의 말을 타고 승전하는 주님의 그리스도의 균형잡힌 통치 현장입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리스도의 왕국의 영토로 복속되기를 바라고 이런 원칙이 우리 공동체 내에서 중심 가치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우리 일산두레교회가 진리와 온유와 공의가 아버지 하나님 하늘 위에 높이 찬양되고 칭송되는 중심가치가 되게 도와주시옵시고 우리 주님께서 살아계셨던 주님의 일이 우리 교회의 일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가 이 땅의 가난한 백성들을 돌보는 주님의 마음을 본받게 도와주시옵시고 아버지 하나님 법 위에 군림하려고 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희생을 담보로 번영을 누리는 사람들에게 아버지 참으로 공평의 칼을 겨눌수 있는 정의로운 대항군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우리가 공평과 정의에 너무 무관심 했고 내 자신의 일신상의 영광을 위해 줄달음 쳤던 저희의 지난 삶을 회개합니다. 또 우리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만 쓰고 기도의 지경을 펴지 못한 것을 용서해 주시옵시고 하나님 이 땅에 부릅뜬 눈으로 지켜주지 않으면 자기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는 이 땅의 수많은 어린 아이들이 있고 어른들의 폭력에 자지러지는 어린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버지 교회가 분연히 일어나서 아버지 하나님 이 아동학대 어린 아이들과 청소년들을 유기하고 납치하는 이 모든 범죄 거룩하게 맞서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땅의 국회의원들이 이 일에 나서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땅에 가난한 자 애쓰고 노력하지만 실직하고 망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국가적 구조가 일어나게 하시고 마을 공동체 구조가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애쓰고 분투하지만 희망이 없어 보이는 형제자매들을 살 소망으로 고취시켜주시옵소서. 주님 이미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한 돌보심 때문에 번영 가도를 달리는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 주님의 온유를 품고 낮은 곳으로 내려올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아버지 하나님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을 축복해주시고 우리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 가는 곳곳마다 하나님 은총의 햇살을 비추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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