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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스가랴 9장9-12 /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예언

by 【고동엽】 2022. 11. 18.
■2022년 9월21일(수)■
 
(스가랴 9장)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
11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12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너희는 요새로 돌아올지니라 내가 오늘도 이르노라 내가 네게 갑절이나 갚을 것이라




(묵상/슥 9:9-12)


◆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왕


(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며칠 전에 제자들에게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 새끼를 끌고 올 것을 명하셨다. 예수께서 그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자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하며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하고 외쳤다. (마 21:1-9, 눅 19:28-38)


이 사건을 마태는 바로 오늘 본문의 스가랴가 예언한 말씀이 성취된 것으로 말했다(마 21:5).


예수님께서는 구약에서 수없이 예언된 분이시며, 그분은 이 예언을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이루셨다.


가령 예수께서 나귀를 타지 않으셨다면 성경의 예언은 오류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구약에 정통했다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은 이 구절을 무수히 읽었지만, 이것이 그런 방식으로 성취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리새인들이나 제사장들이 해석한 바로는 예수님 같은 자가 그리스도일 수는 없었다. 예수님께서 세우고자 하는 하나님 나라와 그들이 상상하는 하나님 나라가 달랐다. 


그들은 볼품없는 나사렛 청년이 나귀를 타고 입성하면서 그리스도 행세하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 얼마나 다급했는지, 그 주간이 다 하기도 전에 예수님을 잡아서 십자가에 매달았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이 맞았음을 거듭 확신했다. 그리스도께서 저렇게 허무하게 잡혀서 죽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겨우 3일 만에 모든 것은 반전되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이다. 부활은 엄청난 사건이다. 부활하심으로써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시는 나라는 이 땅의 '이스라엘'이 아닌 하늘의 이스라엘, 곧 하나님 나라임을 드러내셨다.


구약의 수많은 예언이 재해석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을 향한 상당수의 예언이 하나님 나라에 적용되어야 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이 땅에 국한된 나라가 아니라 우주적인 나라이며 현재에만 한정된 나라가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나라임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종종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범했던 오류를 똑같이 범한다. 자기 생각에 갇혀서 자기가 만든 하나님을 섬기며, 자기 상상대로 신앙생활 하는 자들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종교 생활이 힘들고 고달픈 반면에 어떤 사람은 방자하고 심하게 경박스럽다.


주님, 우리가 제멋대로 하나님을 상상함으로써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매일 새롭게 해주십시오.


◆ 화평의 복음


(10)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끝까지 이르리라


우리가 위의 예언을 이스라엘에 문자적으로 적용하자면 역사적으로 한 번도 이루어진 적이 없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늘 전쟁에 휩쓸려있었으니까.


그러면 위의 예언은 완전히 비유적이거나 천년 왕국에서나 이루어질 예언일까?


9절이 예수께서 나귀 새끼까지 타심으로써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다면 10절도 문자 그대로 성취될 것을 기대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것을 이스라엘 국가에 적용하면 문자적인 것은 물론, 비유적으로도 해석이 곤란하게 된다.


반면에 복음에 적용하면 놀랄정도로 잘 들어맞는다.


나귀를 타신 그 왕이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과연 예수님의 증인들은 '화평'을 전하는 자들이 되었다(사 52:7).


그리고 이 복음 안에서 세계의 모든 사람이 민족과 피부 색깔과 나라를 초월하여 하나가 되며 생명수 강가로 초대되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통치가 땅끝까지 이르리라고 하셨는데, 과연 복음은 예루살렘으로 시작해서 땅끝까지 퍼져나갔고, 우리는 그러한 사명을 받은 전도자들이다. 이제 주님께서 재림하심으로써 이러한 예언이 완성될 것이다.




◆ 언약의 피


(11)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여기에서 언급한 '너'를 이스라엘로 간주한다. 그리고 언약의 피를 시내 산에서의 언약이나 아브라함과의 언약으로 해석하고, 갇힌 자를 바벨론의 포로에게 적용한다. 그렇게 해석해도 제법 잘 들어맞는 듯하다. 그러나 그러한 성취는 예표와 그림자에 불과하다.


이 예언의 진정한 성취는 미래에 올 그리스도에게 적용해야 한다. 그것이 문맥적으로 자연스럽다.


그리스도께서 스가랴의 예언대로 나귀 타고 입성하셨다. 그리고 바로 며칠 후에 제자들에게 포도주를 돌리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


이 말씀은 스가랴서에서 언급한 언약의 피가 바로 자신의 피를 가리킴을 선포하신 것이다.


생각해보라.
어떻게 스가랴가 예언한 대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것은 예수님에게 적용할 수 있지만, 같은 본문에 있는 언약의 피는 다른 것에 적용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 스가랴서 9장에서 9절까지만 읽으시고 11절은 미처 못 읽으셨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따라서 11절의 '너'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언약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다.


예수님께서는 이 예언을 그대로 성취하셨다. 물 없는 구덩이에 갇힌 바 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건짐을 받았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셨다. 할렐루야!


구약의 예언들은 이렇게 문자적이면서도 영적으로 성취됨을 본다. 즉 십자가에서 언약의 피를 흘리신 것은 매우 문자적이지만, 그 피로 정결케 되어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사건은 매우 영적이다.


문자적이면서도 영적인 이 기묘한 성취를 보면서 나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래서 성경을 연구하면 할수록 나는 성경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명한다고 믿는다.


이제 하나님께서 갇혀있는 사람들에게 '요새'로 돌아오라고 초대하신다(12).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강력한 요새가 되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헛된 미혹에 속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자.


존귀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오묘하신 지혜를 찬양합니다. 어리석은 자만이 하나님이 없다고 믿을 것입니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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