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하이웨이 (시119:1~2,165)
세상에 존재하는 책 중에서 최장수 베스트셀러(Bestseller)는 무엇일까? 두 말 할 것 없이 성경입니다. 성경이 완성된 이후 2천년 가까이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한번도 내 준 적이 없습니다. 양피지에 기록하던 시절에도, 종이에 인쇄한 이후에도, 한 권 한 권 필사하던 시절에도, 대량 인쇄를 할 때도 항상 1위였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가장 안 읽고 그 내용을 모르는 책이 또한 성경이라는 사실입니다. 불신자는 물론이고 성도들조차 비슷한 실정입니다. 물론 1년에 성경을 1독 혹은 그 이상 독파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그 두꺼운 성경 전권을 직접 쓰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성경책이 몇 권씩 되면서도, 성경이 좋다는 것은 알면서도, 성경 읽는 데 인색한 게 사실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신앙생활을 오래 하는데도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대표적인 이유는 성경을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축복의 보고입니다. 그런데 그 보고를 닫아놓고 있으니까 축복이 사장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늘 답답합니다. 뭔가 열릴 듯 열릴 듯 하면서도 꽉 막혀 있습니다. 마치 도로가 막혀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성경을 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에 축복의 대로가 열릴 것입니다. 시원하게 뚫린 하이웨이처럼 말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런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1] 복 있는 사람 : 말씀 안에 사는 사람
모든 사람들이 복을 좋아 합니다.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복의 개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복을 단순히 소유 개념으로만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조금만 생각해 봐도 잘못된 것임을 쉬이 알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행복은 재산 순, 권세 순, 지위 순이어야 할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 자신을 봐도, 주변 사람들을 둘러봐도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은 소유 이전에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정립’이 복이라고 선언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만이 복의 수여자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만이 만복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것을 소유하려고 발버둥치기 전에 우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그 후에 물질, 권세, 지위 등은 저절로 따라오게 됩니다. 마치 자석의 원리와 같습니다. 자력이 없으면 아무리 쇠붙이에 갖다 대도 끌어당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력이 생기면 저절로 쇠붙이가 와서 척척 달라붙습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라야 그 모든 소유를 선용할 수 있습니다. 이래야 진짜 복이 되는 겁니다. 단순히 어떤 것을 소유했다고 무조건 복이 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본문 1절, 2절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행위 완전하여 여호와의 법에 행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를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여기 보면 무슨 말이 두 번 반복됩니까?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1절과 2절에서 “ ... 자가 복이 있음이여 ... 자가 복이 있도다” 어떤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입니까? 하나님 말씀 안에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은 말씀을 매개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배우고 묵상하고 깨닫고 지킬 때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그때 비로소 복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말씀에 대한 태도는 하나님에 대한 태도와 일맥상통합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사도 요한도 강조합니다. 요일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 ”
따라서 오늘 본문뿐 아니라 성경 곳곳에서 말씀 안에 살아가는 사람이 복이 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시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128: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그렇다면 말씀을 멀리 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그것은 곧 하나님을 멀리 하는 것이고, 결코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 은혜를 섭취해야 됩니다. 성경 말씀을 가까이 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데 흔히 ‘말씀의 손’을 사용합니다. 즉 말씀을 섭취하는 방법으로 듣기, 읽기, 연구, 암송, 묵상 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각각 새끼손가락부터 엄지손가락까지 다섯을 가리킵니다. 그 중에서 묵상이 아주 중요합니다. 묵상은 엄지손가락에 해당되는데, 엄지처럼 필수적입니다. 엄지손가락을 사용하지 않으면 성경책을 들을 수 없는 것처럼 필수적으로 중요합니다. 각각의 손가락은 엄지손가락과 마주칠 때 힘을 받습니다. 그것처럼 듣기도 묵상을 통해, 읽기도 묵상을 통해, 연구도 묵상을 통해, 암송도 묵상을 통해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묵상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묵상은 한 마디로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폴 투르니에는 묵상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묵상은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리는 것이다. 조용한 시간(Quiet Time)에 계속 침묵할 때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떠오르게 해 주시는 생각이 곧 하나님의 음성이다.” 이러한 묵상이 있을 때 비로소 성경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일반적인 말씀으로 기록되었지만 묵상의 과정을 통해 나를 위한 말씀으로 바꾸어지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암송의 축복에 대해서 잠시 언급하고자 합니다. 암송은 강력한 영적 무기입니다. 원수 마귀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순간순간 공격해 옵니다. 그때 마귀의 유혹이나 위협을 물리치는 성령의 검이 말씀인데, 이것은 암송하고 있는 말씀을 가리킵니다. 마4:1~11 보면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마귀에 예수님에게 접근해서 시험을 합니다. 예수님은 암송하고 있는 말씀을 통해서 마귀를 물리칩니다. 이처럼 우리가 성경 구절들을 많이 암송하고 있으면 삶의 모든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혹시 성경책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 온다하더라도 하나님과 풍성한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성경 암송은 기도와 더불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강력한 영적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제시 밀러의 간증입니다. 그는 필리핀에서 참전했다가 일본군에게 포로가 되었습니다. 온갖 고생을 했지만 생존자로 남을 수 있었는데 후일 그는 그때의 경험을 회고하며 간증했습니다. “일본군은 나에게서 성경책을 빼앗아갔다. 그때 기분은 차라리 내 오른 팔 하나를 잃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담했다. 다행히 평소에 암송해 두었던 성경 구절들이 나에게 큰 축복이 되었다. 포로수용소에서 성경책이 없이 성공 공부 그룹을 인도할 수 있었고, 고통의 순간마다 하나님 말씀이 생각나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나는 고통 가운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그리고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 아니요 하나님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는 것이 진리임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사람이 있었죠. 벌써 10년이 더 지났지만, 조창호 씨(6.25 당시 국군 소위)가 50년만에 탈북하여 남한으로 왔습니다. 그는 긴 세월 동안 신앙을 지켰고 그 힘으로 남한에 올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오래 동안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 왔는지 간증했 는데, 암송하고 있던 성경 구절과 주기도문, 그리고 찬송가 몇 곡으로 신앙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행히 신앙의 자유가 있는 땅에서 삽니다.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혹시라도 성경책을 빼앗기게 된다면 과연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아찔한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빼앗긴다 해도 신앙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물질을 빼앗기는 것은 조금 빼앗기는 것이고, 건강을 빼앗기는 것은 많이 빼앗기는 겁니다. 그러나 신앙을 빼앗기는 것은 모든 것을 다 빼앗기는 겁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늘 가까이 하고, 특히 많이 암송함으로 어떤 경우에도 신앙을 굳게 지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복 있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2] 말씀 안에 사는 사람에게 펼쳐지는 축복의 하이웨이 : 평안, 형통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면, 그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축복이 임할까요? 165절.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여기 보면 두 가지 축복을 언급합니다. 큰 평안과 형통(장애물이 없음)입니다. 이것은 비유하건대 우리 인생 앞에 펼쳐지는 두 가지 축복의 하이웨이입니다. 하나는 마음속에 펼쳐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활 속에 펼쳐지는 것입니다.
① 마음속의 하이웨이 : 큰 평안
인간의 마음속에는 늘 불안과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두 가지 때문입니다. 하나는 죄의식 때문이고, 또 하나는 무지 때문입니다.
i) 죄의식으로 인한 불안 해결 :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죄를 깨우쳐 주며, 더 나아가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체험하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통해 죄에서 해방되고 참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또한 구원 받은 이후 의의 기준인 말씀대로 살려고 최선을 다함으로 담대해집니다. 잠28:1 보면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사는 사람은 이처럼 마음에 큰 평안이 있습니다.
ii) 무지로 인한 두려움 해결: 인간은 자신의 인생이라도 미래에 대해 무지합니다. 그래서 늘 불안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좌불안석(坐不安席)입니다. 1년 후, 10년 후, 노후에는 어떻게 될까? 죽음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몰라서 근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사는 사람은 미래에 대해 잘 압니다. 물론 세부적인 것까지 알지는 못하죠. 하나님이 늘 동행해 주시고 순간 순간 인도해 주시므로 세부적인 것을 알 필요도 없고, 하나님이 알려주시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할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 영원한 천국이 예비되어 있음을 압니다. 그러므로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사는 사람은 어떤 환란이 닥쳐도 결국은 승리할 것을 알기에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는 것과 전혀 다른 차원의 신령한 평안이 그 심령 가운데 솟아나 게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성도들은 인생의 앞길을 다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진리의 등불을 비춰주시고 한걸음 한걸음 인도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자동차에 네비게이션Navigation)을 장착하고 다닙니다.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위성위치인식시스템)를 통해 현재 위치를 파악해 주고, 목적지까지 지도를 통해, 음성을 통해 안내해 줍니다. 모르는 길을 가도 얼마나 편리하고 안심이 되는지 모릅니다. 인간의 기술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하나님은 아주 먼 옛날 광야에서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네비게이션을 주셨습니다. 불기둥과 구름 기둥이죠.(민9:15~23 참조) 하나님이 그들과 동행하며 광야 길을 인도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을 통해 안전하게 천국까지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② 생활 속의 하이웨이 : 형통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가는 길이 형통합니다. 거칠 것이 없습니다. 시1:3 보면 말씀대로 사는 사람을 가리켜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로 비유합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정말 말씀대로 살면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에 풍성한 열매가 맺어지듯 하나님의 능력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5장을 보면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 사건이 나옵니다. 그는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어부입니다. 그런데 밤새 그물질을 했건만 허탕을 쳤습니다. 우울한 마음으로 새벽에 그물을 씻고 집으로 가려 하는데 예수님과 많은 무리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배에 올라 말씀하십니다. 한참 말씀을 전하신 후에 이제 끝나고 돌아가려는 베드로에게 또다시 명령합니다. 눅5:4 “ ...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고기잡이로 말하면 베드로가 전공자입니다. 뿐만 아니라 방금 전까지 고기잡이를 하다 허탕을 친 상황입니다. 우리가 생각해 봐도 순종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순종합니다. 눅5: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 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 ” 그때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베드로도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습니다. 눅5:6~7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만선의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형통의 개념은 이처럼 순탄한 일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고난과 역경이 닥쳐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마치 돌부리가 나타나도 걸림돌이 되어 넘어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디딤돌로 삼아 힘차게 전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부잣집 아들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갑니다. 애굽에 끌려간 그는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살이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보디발의 집에 있던 요셉을 가리켜 형통했다고 표현합니다. 창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 ”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을 뿌리친 뒤 애매하게 감옥에 갇혔을 때도 요셉을 가리켜 형통했다고 표현합니다. 창39:23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요셉은 이런 고난을 당했지만 나중에 보니까 그 모든 것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과정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과 많은 민족을 흉년의 고통으로부터 구원해 내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지나놓고 보니까 너무 잘된 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당장은 어려운 역경과 풍파라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좋은 결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상황이 쉬우냐? 어려우냐? 그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겁니다. 만일 우리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다면, 그것은 형통입니다. 그 고난은 장애물이 아니라 디딤돌입니다. 롬8:28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처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신앙 상태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며 말씀대로 살고 있다면 그 앞에 축복의 하이웨이가 활짝 펼쳐질 것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에게 이런 축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3] 인생 최고의 투자 : 말씀에 인생을 걸기
하나님 말씀 안에 사는 사람 앞에 축복의 하이웨이가 펼쳐진다면, 우리는 당연히 말씀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바쁘다는 핑계로 성경 읽기를 게을리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정말 핑계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바빠도 할 일 다 하고 삽니다. 신문 안 보나요? TV 안 보나요? 밥 안 먹나요? 다 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바빠서가 아니라,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바빠도 합니다. 예를 들어 몸이 아프면 결근을 하고서라도 당장 병원에 갑니다.
우리가 풍성한 축복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성경 말씀을 소홀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사실을 직시하고 성경 말씀을 중시하며 말씀 묵상에 인생을 걸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정말 우리 앞에 축복의 하이웨이가 활짝 열리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워너메이커라는 분을 기억하시죠? 제가 최근에 좋은 책 한 권(『성경이 만든 사람 - 백화점 왕 워네메이커』전 광 저,생명의 말씀사)을 읽었습니다. 그분에 대해 익히 알고 잇었지만, 이 책에 보면 아주 자세한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그분이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는지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그는 백화점을 창시했고, YMCA 운동에 헌신하여 전 세계 곳곳에 회관을 지어 기독청년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거액의 헌금을 보내 종로 2가에 YMCA 회관을 지어준 바 있습니다. 또한 세계 최대을 베다니 주일학교 설립자이기도 합니다. 특히 체신부 장관 제의를 받았을 때 주일성수와 주일학교 교사 직분을 수행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어 장관직을 수락했고, 재임 기간 내내 위싱턴에서 필라델피아로 주말마다 내려가 봉사했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워너메이커가 80세가 되던 해 사업가로서 6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때 한 기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회장님은 지난 60년 동안 사업에 크게 성공하셨는데, 가장 성공적인 투자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랬더니 그는 서슴없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10살 때 최고의 투자를 했었죠. 2달러 75센트에 가죽 성경 한 권을 샀는데,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투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경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나 정교 교육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일학교에서 배운 성경 말씀이 그를 변화시켰습니다. 10살 때 주일학교 선생님이 단체로 성경을 싸게 구입해 주겠다는 말을 듣고 신청을 했는데, 가격이 2달러 75센트였습니다. 37센트밖에 없었던 그는 할부로 구입했고, 그후 무려 1년반 동안 벽돌을 나르면서 모은 돈으로 완불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인생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 안에 사는 인생은 자신도 상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놀랍게 변화됩니다. 민족도 변화됩니다. 영국은 본래 해적 민족의 나라 아닙니까? 그런데 성경이 신사의 나라로 변화시키지 않았습니까? 성경 말씀에 투자하면 절대 손해보지 않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신앙 생활을 해오면서 풍성한 축복을 체험하셨습니까? 그렇다면 감사한 일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했다면 지금부터라도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데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여러분의 앞에 축복의 하이웨이가 펼쳐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출처/홍문수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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