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하면 복을 받는다 (신6:18)
프랑스의 작은 포목점에서 일하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어떤 손님에게 물건을 팔았는데 잘 못 계산하여 두 배의 값을 받았습니다. 가게 주인은 만류를 했지만 점원은 이 손님을 찾아 결국 더 받은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가게 주인은 점원은 자기 말을 듣지 않았다고 그 자리에서 해고를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손님이 그 점원을 찾아왔습니다.
‘젊은이 사실 나는 파리에 큰 은행을 가지고 있다오. 그동안 자네와 같은 정직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오. 나와 같이 파리로 가서 우리 은행 일을 봐 주시오.“ 시골의 작은 포목점 직원이 정직이라는 자본 하나로 대도시 파리의 은행 경영인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프랑스 루이 14세 정부때 재무장관을 지낸 콜베르였습니다.
돈키호테를 지은 세르반테스는 ‘정직은 최상의 정책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성경에는 이 정직이 얼마나 중요한지 약 ‘125회’나 나옵니다. 이유는 하나님 자신이 정직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 도로 죄인을 교훈하시리로다"(시 25:8).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또한 정직합니다. 시 18:8에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라 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정직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하지 못하다면 지금까지 기독교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정직은 우리 기독교 신앙을 지탱해 주는 기둥이라 할 수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정직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복을 주십니다.
시 112:2에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라 했습니다. 정직한 자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여러모로 특이한 나라입니다. 그 작은 나라에서 세계적인 것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지금도 자동차나 전자제품은 세계 최고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직성 또한 세계적입니다. 어떤 한국 사람이 호텔에 투숙했는데 시내 관광을 하기 위해 호텔 프러트에 방 열쇠를 맡기면서 ”방에 귀중품이 있는데 잘 좀 부탁한다‘고 하면서 팁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호텔 직원이 정중하게 팁을 사양하면서 분명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I.m Japanese”
나는 정직한 일본인이니까 그런 염려는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그들의 정직성이 세계 최고 품질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민족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정직에 대한 금언이 많습니다.
“정직한 것만큼 풍부한 유산은 없다” 세익스피어
“정직한 인간은 신이 창조한 가장 기품이 높은 작품이다.” -포프
“오래 가는 행복은 정직한 것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리히텐 베르그-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의 마음 속에 있다” 영국 속담
“하늘은 정직한 자를 지켜 준다” -영국 속담
“하루를 행복하려면 이발을 해라 일주일을 행복하려면 결혼을 해라 그리고 일 년동안 행복하려거든 새 집을 지어라. 그러나 일평생을 행복하려면 정직하여라” 영국 속담
정직하게 살면 우리는 행복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정직한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까?
1.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정직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모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정직해야 할 이유는 우리는 혼자 있을 때도 거짓되기 때문입니다.
비트겐 슈타인은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정직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도 정직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남을 속이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속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거짓말쟁이의 최대 비극은 자기도 자기 자신을 못 믿는 것이요 날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에게 속고 산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이 아버지가 당시에 드물게 정직한 분이었습니다. 어느날 이 칸트의 아버지가 늦은 밤 홀로 밤길을 걷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다 털렸습니다. 강도들이 묻기를 ‘이게 당신이 가진 것이 다냐?“ 하자 칸트 아버지는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그러자 강도들이 ’그러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빨리 여기를 떠나라‘ 고 보내주었습니다. ’어이구 목숨은 건졌구나‘ 하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도망을 가는데 몸 안에서 덜컥 덜컥하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멈춰서서 몸속을 뒤져보니 지갑이 나왔습니다. 밤 길에 도적을 맞지 않으려고 숨겨놓은 것인데 강도들이 몰랐던 것입니다. 칸트의 아버지는 이 지갑을 꺼내들고서 지금까지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 갔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아까의 강도들을 만났습니다. 강도들이 ’뭐야? 왜 다시 왔어?” 하고 몰려들었습니다. 칸트의 아버지는 ”아까 나는 본의 아니게 당신들을 속였습니다. 여기 지갑이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걸 돌려드리려고 다시 왔습니다“ 강도들이 기가 찼습니다. 강도 역사상 이런 일은 처음 당하기 때문입니다.
강도들이 이걸 받아야 하나 그냥 돌려 보내야 하나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을때 나이든 강도 두목이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남의 물건을 강탈하는 강도라고 하지만 저렇게 정직한 사람의 것까지 빼앗을 수가 없다. 여봐라. 아까 저 사람에게 빼앗은 물건들을 찾아다가 도로 돌려줘서 보내거라’ 강도들이 숙연해졌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정직했던 칸트의 아버지는 강도들까지 감동을 시켰던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에게 조차도 이렇게 철저하게 정직하려고 애썼던 아버지에게서 인간의 양심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규명했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가 태어났습니다. 정직한 후대를 본 것입니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그래서 품성교육의 가장 핵심적인 질문은 ‘아무도 없을 때의 나는 누구인가? 입니다. ’지금 여기 아무도 없다. 그 누구도 나를 볼 수가 없다. 나는 혼자이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모습이냐 이겁니다. 그리고 바로 아무도 없을 때 하는 행동이 바로 진짜 자기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 앞에서는 가식적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 혼자 있다고 여길 때 자신의 본 모습이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품성을 닮은 사람은 먼저 자신에게 정직합니다. 자신을 속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스스로 속이지 말하고 말합니다. 우리 자신에게 진실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이 매사에 진실하고 정직합니다. 우리는 작년부터 지금까지 나라 전체가 진실게임에 돌입해 있는 중입니다. 황우석박사 이야기인데 아직도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루만 지나면 뒤집어 집니다.이제는 식상하기 까지 합니다. 이렇게 복잡한 나라는 없습니다. 분명히 진실은 하나입니다. 누군가, 어떤 세력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워낙 교묘해서 드러나지가 않습니다. 검찰이 수사하고 있지만 검찰 발표도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의 최대 피해자는 황박사도 아니고 미즈메디도 아니고 섀튼도 아니고 바로 우리 국민들이요 우리의 자녀들입니다.
정직과 진실이라는 가치에 혼란을 느끼고 그 중요성과 가치에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진실이 무엇인지 정직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가르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수사에 사용되곤 했던 거짓말 탐지기도 사용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예전에는 70%이상의 거짓말을 탐지하곤 했는데 지금은 30%도 탐지를 못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거짓말을 진실처럼 말하는 능력들이 향상되었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심리학적으로 거짓말하는 사람은 거짓말할 때에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지 못한다거나 눈을 깜빡거리거나, 코를 만지거나, 목소리를 가다듬는다든가, 괜히 손과 발을 움직인다든가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의 조사에 의하면 진실을 말하는 집단과 거짓말을 하는 두 집단을 비교한 결과,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나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그런 행동을 보이는 횟수에서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개인 차도 심하여서, 거짓말 할 때에 상대방으로부터 눈길을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의 경우는 오히려 상대방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실험에 의하면 거짓말 하는 사람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보다 팔, 손, 손가락을 덜 움직이는 경향이 있고, 눈 깜빡이는 것도 적고, 목소리도 더 힘있고 확신에 차있기 까지 한답니다. 결론은 이제는 과학적인 방법이나 또는 심리학적인 접근으로도 거짓말을 탐지하기기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거짓말 하는 사람들 중에 심한 경우는 처음에는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의식하지만, 점차 자신의 거짓말에 몰두되어, 자신의 거짓말이 사실을 반영한 설명이라고 믿게 되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는 도리어 그의 말과 얼굴이 아주 믿음직스럽게 보이게 되기 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어떤 것이 진실인지 어떤 것이 거짓인지 분별하기가 어려운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을런지는 몰라도 자기 자신과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평생을 거짓으로 인한 괴로움을 겪고 살다가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간부터 우리 자신에게 정직해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더 큰 문제는 나 자신을 속이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완전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우리 자신에게만은 진실할 수가 있습니다. 자신에게 정직한 성도들이 되셔서 정직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2. 다른 사람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본문 1절에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평한 추를 그가 기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을 미워하십니다. 며칠 전에 TV에서 식당을 취재했습니다. 고기집들인데 1인분에 몇 그램하고 파는데 취재팀이 실제로 달아보니 하나도 맞게 주는 집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저울을 속이느냐고 항의를 했더니 하는 말이 ‘더 달라면 주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저울을 속이는 것도 모자라 거짓말까지 합니다. 고기 3-4인분 먹고 모자라다고 더 달라고 해서 공짜로 주는 식당이 있습니까?
아예 철판을 깔아놓고 장사를 합니다. 우리가 이렇습니다. 이런 사람, 이런 국민을 하나님은 미워하시고 복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크리스찬은 달라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손해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손해는 의미가 있는 손해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손해를 풍성하게 갚아주십니다.
서울 어느 교회에 다니는 집사님 부부가 하는 설렁탕 집이 있습니다. 이 집사님 부부의 신조는 ‘설렁탕 한 그릇을 끓여도 예수님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끓이자”입니다. 그들은 부끄러움이 없는 설렁탕을 끓이려고 예수님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합니다. 그래서 최고의 재료만 씁니다. 뼈와 고기도 제일 비싸고 좋은 것으로 삽니다. 김치를 담가도 좋은 재료를 씁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뼈를 끓이는데 거래처에서 뼈를 잘못 보냈는지 뽀얀 국물이 우러나는 게 아니라 누런 국물이 나오더랍니다.
24시간 동안 끓여야 하는데 야단났다 싶어 거래처에 급히 전화를 하자 뼈가 바뀐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하면서“오늘만 커피 프림을 타시죠.”라고 알려주더랍니다. 질이 낮은 품질의 뼈를 사다가 커피 프림을 타서 내놓는 설렁탕 집이 많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집사님 내외분은 끓이던 설렁탕 국물을 죄다 내다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날 장사를 하지 않고 문을 닫았습니다. 가게 앞에다 큼지막하게 이런 글을 써 붙였습니다.
“오늘은 설렁탕 재료가 좋지 않아 장사를 못합니다.”
하루 장사를 못하는 손해에다 재료를 다 버렸으니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무리 손해를 보더라도 손님을 속일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이들의 진실을 하나님이 보셨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데 그날 이후 그 설렁탕 집은 이런 소문을 들은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장사가 잘되어 지금은 체인점까지 내게 되었습니다.
정직만 해도 이렇게 복을 받습니다. 또 있습니다.
영락교회 안수집사님이 있는데 아주 오래 전에 친구 빚보증을 잘 못 섰습니다. 친구가 빚을 갚지 못하는 바람에 보증을 선 집사님에게 책임이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보증 선 빚을 갚으라고 하는 채권자에게 그 집사님은 집을 팔아서라도 약속을 지키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너무도 순순히 이야기를 하는 집사님의 말이 믿어지지 않아 그 채권자는 ‘그것이 사실이냐? 정말 그렇게 해 줄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그 집사님은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저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거짓말을 안 합니다’
그리고는 정말 자기 집을 팔아 친구의 빚을 다 갚아 주었습니다. 채권자가 감동했습니다. 그래서 받은 돈 가운데 조금을 떼어 주면서 ‘당신 같은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을 겁니다. 당신 때문에 나도 교회에 나갈 예정입니다.’하더랍니다.
이 집사님이 이 돈으로 서울 변두리에 땅을 사서 집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그 변두리가 지금의 강남 땅 리버사이드 호텔 바로 옆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때 집을 팔아 빚을 갚아준 금액의 30배 이상으로 올랐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정확하게 30배의 복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정직해지고 싶지 않으십니까?
여러분 때문에 교회 다니는 사람의 말은 진실하고 교회 다니는 사람이 하는 행동은 모든 것이 옳다고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게 된다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얼마나 큰 상급을 주시겠습니까? 세상을 향해 이웃을 향해 정직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께 정직해야 합니다.
여러분 정직이란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 성경이 어떤 책인지 아십니까? 시편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시편은 우리가 아는대로 하나님을 향한 기도요 찬송입니다. 기도와 찬송은 진실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아니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자세 전부가 정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무엇을 보고 우리를 판단하시는지 아십니까? 정직입니다. 정직.
구약의 열왕기나 역대기를 보십시오. 모두 이스라엘을 다스린 왕들에 대한 기록들 아닙니까? 그런데 이들 왕의 치적을 평가하는데 무엇이 기준이냐 하면 정직입니다. 주로 이런 식입니다.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왕상 15:11) 모든 왕들이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았느냐 아니냐로 왕들의 업적을 판단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이 정직의 모델인 다윗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면 왕상 15:5에 ‘이는 다윗이 헤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바세바를 아내로 취한 일 외에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일에 정직했고 이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정직으로 우리의 일생을 판단하십니다. 정직히 행하면 복을 주시고 거짓되이 행하면 벌을 주십니다.
잠15:8에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예배만 드린다고 능사가 아닙니다. 정직하지 않은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행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삿비라 사건을 다 아시지요? 그들의 죽음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헌금이 아까워서 빼돌린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정직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5:4) 하나님께 정직한 것이 형통의 비결이요 하나님께 거짓된 것이 패망의 원인입니다.
천국은 거짓이 없는 곳입니다. 진실과 정직만이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우리가 물려줘야 할 자산이 있다면 그것은 정직입니다. 정직한 사람 정직한 나라가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후진국일수록 정직과 거리가 멉니다. 정직하면 손해를 봅니다. 적당히 거짓말을 해야 살 수있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바보 취급을 받습니다. 정직한 사람은 당하지 않아도 될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눈여겨 보십니다.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때 영국 사람들은 세상에서 제일로 정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최고도에 달했던 때였습니다. 신앙의 부흥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세계를 식민지로 삼고 교만해지면서 거짓을 일삼자 영국은 해가 지는 나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이제 세상은 정직이 자산이 되는 시대로 돌입했습니다. 정직이 곧 경쟁력입니다. 개인도 교회도 나라도 정직하면 인정을 받습니다.
경남 거창에 가면 거창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이 학교는 지난 1976년에 이 세상을 떠난 전영창 선생이 미국의 유명한 수정교회의 담임목사인 로버트 슐러 목사님의 후원을 받아 설립한 학교입니다. 전영창 선생님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교육이념을 가지고 이 학교를 시작하였습니다. 인구 5만도 채 안되는 작은 농촌에 있는 이 학교가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된 것은 이 학교의 독특한 교육방식 때문입니다. 학생들에게는 이런 자부심들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 학교 출신 건축가가 세운 다리는 무너지지 않고
우리 학교 출신 농부가 키운 농산물은 안심하고 먹을 수 있으며
우리 학교 출신 의사는 사람의 목숨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깁니다
우리 학교 출신 판사가 내린 판결은 믿을 수 있고
우리 학교 출신 직공이 만든 옷은 단추가 잘 떨어지지 않으며
우리 학교 출신 선생님에게는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습니다
우리 학교 출신기자는 거짓을 전하지 않으며
우리 학교 출신 역사가는 그 무엇보다 진실을 목말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거창고를 빛이요 소금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이런 학교가 이 나라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자랑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정직하게 삽시다. 먼저 나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면 틀림없이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신6:18에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하고 선량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얻고 여호와께서 네 열조에게 맹세하사 네 대적을 몰수히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하신 아름다운 땅을 들어가서 얻으리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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