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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의 기쁨과 축복 이야기 (엡2:13-18, 고후5:17-19, 골1:20, 시133:1-3)
오늘 아침 ‘화해’란 주제로 ‘화해’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사실 ‘화해’를 이루는 것은 인간적으로 말해서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잡아서 죽인 다음 가죽을 벗겨서 성문에 진열하던 앗수르 사람들과 화해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백여 년 이상 이스라엘 사람들을 잡아서 노예로 부려먹던 애굽 사람들과 화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나라를 빼앗아 점령하고 그 나라의 총독이 예수님을 잡아 죽인 로마 나라와 화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나라를 합방하고 36년 동안 착취하던 일본과 화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6.25 전쟁을 일으키고 온 나라를 황폐하게 만든 북한과 화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미움과 적대와 대결이 가득한 이 세상에 화해를 가져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를 통해서 이 세상에 화해를 가져오셨습니다.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엡2:13,16).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20).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만드시고 그리고 그 둘이 함께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늘과도 땅과도 자연 만물과도 화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 이런 불가능한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5:18,19). 여기 ‘화목’이란 말이 네 번이나 나옵니다. 표준 새 번역 성경은 ‘화목’이란 말을 모두 ‘화해’란 말로 번역했습니다. 영어 성경은 모두 reconcile 또는 reconciliation 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저는 ‘화목’이란 말 대신 ‘화해’란 말을 사용합니다.
‘화해’란 단어는 너무나 중요한 의미를 지닌 고귀한 단어입니다. 그런데 저는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공부할 때 어떤 교수님 'reconciliation’ 즉 ‘화해’란 말을 너무 강조했을 때 좀 불만이 있었습니다. ‘구원’이란 말을 더 강조해야지 ‘화해’란 말을 너무 강조하는 것은 인본주의적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는 ‘구원’과 ‘화해’는 동전의 앞 뒤와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구원’과 ‘화해’는 꼭 같은 것입니다. ‘구원’이 곧 ‘화해’입니다. ‘화해’는 너무너무 중요한 말이고 너무너무 고귀한 말입니다. 미움과 적대와 불화가 가득한 이 세상에 십자가의 피가 가져다 준 고귀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제부터 “화해의 기쁨과 축복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첫째, 성경에 나타나 있는 화해의 이야기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창33:3,4에 야곱과 에서가 화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 형 에서에게 가까이 하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맞추고 피차 우니라.” 창45:1-5에 요셉과 그의 형들이 화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에게 자기를 알리니 때에 그와 함께한 자가 없었더라 요셉이 방성대곡하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능히 대답하지 못하는지라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화해의 장면입니다. 남북으로 갈라진 우리 민족이 이렇게 야곱과 에서같이 요셉과 그의 형들같이 서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방성대곡하며 화해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행10:23-28에 유대인 베드로와 로마인 고넬료가 화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튿날 [베드로가]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의 모인 것을 보고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사실 유대인 베드로가 개나 되지 같이 취급하던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유대 법에 어긋나는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주님의 강권에 의해서 고넬료의 집으로 갔고 거기에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는 이방에 대한 그의 세계관이 완전히 뒤집어지고 말았습니다. 유대인 베드로가 로마인 고넬료와 화해했습니다.
둘째, 손양원 목사님의 화해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이야기는 아마 교회 역사상 가장 찬란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이야기일 것입니다. 제가 만 4년 전인 2003년3월9일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란 제목으로 설교한 설교의 일부를 여기 그대로 옮깁니다.
“그의 사랑의 극치는 1948년 10월 19일 여수 순천 반란 사건 때 나타나 보였습니다. 사랑하던 믿음의 두 아들 동인군과 동신군이 공산 폭도들에게 붙잡혀 10월 21일 순천 경찰서 뒷 마당에서 총살을 당했습니다. 반란 사건이 진압되고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손양원 목사는 밤을 새워 통곡하고 기도하고 교회를 나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내 아들들은 죽어서 천국에 갔지만, 안재선은 죽으면 지옥 갈텐데, 저 영혼이 불쌍해서 어쩌나.’ 손양원 목사의 마음에는 커다란 사랑의 폭풍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를 살려야 한다. 그를 용서해야 한다. 그를 사랑해야 한다.’ 10월 26일 두 아들의 시체를 담은 관이 애양원 뜰에 도착했을 때 손양원 목사와 정양순 사모는 관 위에 엎어져 울부짖으며 비통해 했습니다. 두 아들을 잃은 비통함이 그렇게 컸었는데도 불구하고 손양원 목사는 그 좌익 학생을 용서하고 사랑하기로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두 아들을 죽인 안재선이 체포되어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손 목사는 계엄 사령관에게 딸을 보내어 그를 사면할 것을 간청했습니다. 그를 양자로 삼아 교육시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손양원 목사는 안 가겠다고 반항하며 대드는 딸 동희를 설득하여 용서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했습니다. 아버지는 듣지 않으려는 딸을 설득했습니다. ‘동희야 내 말 잘 들어 봐라. 내가 무엇 때문에 5년 동안이나 너희들을 고생시키면서 감옥 생활을 견뎌 냈겠니?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겠느냐. 제 1,2 계명과 함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도 똑같은 하나님의 명령인데 내 어찌 이 명령은 순종치 않는단 말이냐. 원수를 사랑하라는 명령에 순종치 않는다면 과거 5년 간의 감옥살이가 모두 헛수고요, 너희를 고생시킨 것도 헛고생만 시킨 꼴이 되고 만다. 그러니 동희야, 가만히 생각해 보아라. 그 학생을 죽여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되겠느냐?’ 딸은 몇 번이나 반항하며 아버지에게 소리를 지르며 대들었습니다. 혹 용서는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아들을 삼는다는 것은 무엇이냐고 악을 쓰며 달려들었습니다. ‘동희야, 용서만 가지고는 안 된다. 원수를 사랑하라 했으니 사랑하기 위해 아들을 삼으려는 것이다.’
“딸은 자기 의지에 반해 아버지의 하나님 절대 신앙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결국 딸은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를 국군 심문자에게 그대로 전하므로 처형되기 10여분 전에 원수를 살려냈습니다. 동희양은 취조 군인에게 달려가서 이렇게 아버지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아버지가 두 오빠를 죽인 자를 잡았거든 매 한 대도 때리지 말고, 죽이지도 말라 하셨어요. 그를 구해 아들 삼겠다고요. 성경 말씀에 원수를 사랑하라 했기 때문이래요.’ 그는 숨도 쉬지 않고 단숨에 말을 토해 놓고는 책상에 엎드려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동희양의 말이 끝나고, 동희양이 울음을 터뜨리자 방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취조를 하던 군인은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으며 '위대하시다' 하고 감탄의 소리를 토해 냈습니다. 안재선까지도 고개를 숙인 채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손동희 권사는 그 때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이 광경이야말로 오늘까지 내 눈 앞에 잊혀지지 않는 역사적인 장면의 한 토막이었다.’ 사랑의 원자탄이 떨어진 장면이었습니다.
“안재선은 살아났습니다. 안재선은 석방이 되었습니다. 손목사는 그를 자기의 양 아들로 삼아 부산 고려 성경 고등학교에 보냈습니다. 1950년 10월 13일 애양원에서 손양원 목사의 영결식이 거행되었을 때 옷을 찢으며 통곡하는 1천 여명 애양원 식구들 중 더욱 더 슬피 통곡하는 이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안재선이었습니다. 그는 후에 결혼하여 4남매를 두었는데 장남은 대한신학교에 다녔다고 합니다. 그는 후에 서울 이태원 외국인 아파트 경비의 일을 하며 가난한 삶을 살았는데 평생 죄책감에 사로잡혀 어둡게 살다가 1979년 12월에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보름 전 손동희를 찾았습니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울었습니다. 손동희 권사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젠 이런 것, 저런 것, 슬픔도, 미움도 한갓 꿈에 본 듯 잊어버리는 순간이었다. 떠나려는 그의 옷자락 붙들고 우리는 목을 놓아 소리 높여 울었다. 한이라도 풀듯이…미움이 애처러움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떠나면서 여전히 울음 섞인 음성으로 나에게 자기의 진실을 말했다. '동희야, 나 지금 집으로 돌아가면 곧 하늘 나라로 간다. 내가 죽어서 천당에 가면 네 두 오빠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련다.' 그 말을 남기고 내 곁을 떠난 그는 정확히 보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마 지금쯤 저 천국에선 내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두 오빠와 재선 오빠가 손에 손을 잡고 이 시간 집필하는 내 모습을 지켜 보며 우리 여호와 하나님을 영원히 찬양하고 있을 것이다.’ ”
이것이 제가 만 4년 전인 2003년 3월 9일에 한 설교의 일부였습니다. 이 보다 더 아름답고 보배로운 용서와 사랑과 화목과 화해의 이야기는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감정이나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를 모두 뛰어넘은 순수한 사랑과 화해의 이야기입니다. 그 사랑과 화해는 오직 십자가의 피에서 비롯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의 피는 우리에게 죄 사함과 구원을 그리고 용서와 사랑과 화해를 가져다 줍니다.
셋째, 부족하지만 저 자신의 화해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저는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거의 모든 교파와 모든 계층의 사랑들과 화해를 이루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화해를 심는 일들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9일 화해를 주제로 진보와 보수의 교계 및 정치계 지도자들을 우리 강변교회에서 초청해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모임을 가지게 된 것도 그와 같은 일들 중의 하나입니다. 타 종교 지도자들과 함께 우리 사회 안에 화해와 상생을 심으려는 화해와 상생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화해에 관심을 가지고 화해를 힘쓰게 된 배경 이야기를 간단하게 하겠습니다.
저는 본래는 교제와 사귐을 폭넓게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미국에 유학 가서 처음 몇 년 동안은 몇몇 한국 학생들과만 교제하며 지냈습니다. Faith 신학교와 Westminster 신학교에 다닐 때는 김상복, 손봉호, 백병건, 김의환, 박희천, 한의신, 한기범 등 친한 한국 학생들과만 교제하며 지냈고 주로 공부만 했습니다. 일본 학생들과는 별로 가까이 지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예일 대학교와 아이오와 대학에 가서 공부하면서 교제와 사귐의 폭이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저의 삶의 가치관의 변화에서 비롯한 것이었습니다. 공부의 목적도 중요하지만 공부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다음에 목사가 되어서 성도들과 교제하면서 성도들을 봉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내가 만나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저들을 섬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일 대학교와 아이오와 대학에 다닐 때 지나가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다가가서 친절하게 인사를 먼저 건네고 그들에게 교제의 손을 내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주말에는 내가 살고 있던 작은 방에 몇몇 외국인 학생들이 모여서 즐거운 교제의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박한 음식도 대접했습니다. 저는 그 때 남을 위해 돈을 쓰는 즐거움과 남을 대접하는 즐거움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오와에서는 내가 한인 유학생들을 불러모아 놓고 운동회도 하고 야외 소풍도 했는데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한인회가 만들어졌고 나중에는 한인 교회가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그 때 이미 인생은 만남이고 나눔이고 기쁨이란 사실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식사비를 내가 먼저 내는 습관도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학위와 연구를 모두 마치고 미국 동부 뉴 헤이븐에서 서부 파사데나에 가서 8개월 동안 선교학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뇌수정으로 태어난 생후 2,3 개월 밖에 되지 않는 어린 아들 철원이가 로스안젤스 췰드런즈 호스피탈에서 뇌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술을 하는 의사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의 아기가 수술을 받은 후 장애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 아들 철원이가 수술 후 장애아가 된다면 내가 그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Yes 라는 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며칠을 고민하면서 기도했습니다. 며칠 후 답이 나왔습니다. "나는 철원이가 장애아가 되어도 그를 얼마든지 사랑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철원이가 나의 아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사고의 변화는 나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못난 사람, 모자라는 사람, 병든 사람, 예쁘지 않은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물론 지금도 약간은 그렇지만, 잘난 사람, 온전한 사람, 건강한 사람, 예쁜 사람들을 주로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나의 시각에 변화가 생긴 다음 이런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네가 무슨 권한으로 하나님께서 똑같이 사랑하는 여러 종류의 하나님의 자녀들을 차별한다는 말인가!" 저는 그 음성에 항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해(1974년) 8월 후암교회의 교육 목사로 부임한 다음 후암동 109번지의 제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다 깊은 애정을 쏟게 된 것도, 폐결핵으로 쓰러져서 마산 결핵 요양소로 간 원의숙 학생을 비롯한 불치의 병든 사람들을 찾아가서 돌보게 된 것도 모두 이와 같은 나의 시각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나의 시각의 변화는 그 후 나로 하여금 강자보다는 약자 편에 서게 했고, 부유한 사람들보다는 불우한 사람들 편에 서게 했고, 여당보다는 야당 편에 서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차츰 흑인 편에 서게 되었고, 북한 동포 편에 서게 되었고, 조선족 편에 서게 되었고, 최근에는 모슬렘 편에도 서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변화였습니다. 이와 같은 나의 시각의 변화는 나로 하여금 여러 종류의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었습니다. 보수적인 사람들과는 물론 진보적인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타 종교인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되었습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들에게 대한 이해와 포용의 폭이 점점 넓어졌습니다. 정치와 문화와 종교가 다를 찌라도 그들의 영혼 속에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고귀한 인성과 영성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들을 귀하게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화해의 폭이 점점 더 넓어진 것이었습니다.
저는 언제부터인가 제가 그렇게도 싫어하던 일본 사람들과도 친밀한 교제와 사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본 사람들을 받아드리게 되었고 일본 교회 지도자들을 존경하게 되었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와 일본 교회가 우호 관계를 맺고 이를 증진하는데 제가 앞장을 서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이 일에 있어서는 한경직 목사님의 영향이 컸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또한 제가 그렇게도 싫어하던 북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아드리게 되었고 북한 동포 돕는데도 앞장을 서게 되었습니다. 이 일에 있어서는 손양원 목사님의 영향과 스티브 린튼 박사님의 영향이 컸다고 하겠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또한 제가 처음에 많이 비판하던 강원용 목사님이나 조용기 목사님과도 친밀한 교제를 나누면서 그분들을 인정하고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두 분은 참으로 한국교회의 귀한 어른들인데 부족한 저의 말을 잘 들어주셨고 저를 많이 믿어주고 격려해주셨습니다. 강원용 목사님은 마지막에 저를 많이 기억하시고 많이 사랑해주셨습니다. 그분의 마지막 저서의 추천을 저에게 부탁할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한 때는 경동교회의 박종화 목사님을 많이 비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저와 가장 가까운 몇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박종화 목사님과 자주 의논을 합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저는 KNCC를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분들과 아주 가까이 지내고 있습니다. 작년 부활절 연합예배를 준비하면서 그분들과 친밀한 협의를 하면서 어려운 문제들을 헤쳐 나아갔습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이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불교 스님들과도 가까이 지내고 천주교 신부들과도 가까이 지냅니다. 물론 저의 신앙은 성경적이고 복음적입니다. 종교다원주의는 절대로 아닙니다. 저는 기도나 예배는 타 종교인들과 함께 드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자연 은총의 영역에서는 얼마든지 함께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해와 친교는 우리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 줍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 저와 이중표 목사님과의 친밀한 화해와 친교는 우리 두 사람에게 애인 사이 같은 깊은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송명희 시인과의 관계도 애인 같은 깊은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 줍니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선교사들과의 사랑과 애정의 사귐은 저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 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놀라운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스라엘이나 유대인들에게 국한하지 않았습니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사람들에게도 향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이스라엘이나 유대인들에게 국한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사람 고넬료에게도 향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 그리고 반 기독교 세력의 중심부였던 로마에까지 가서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면서 그의 생애를 거기서 마무리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신학적으로 헬라인이나 로마인이나 이방인들과의 화해를 논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과 한국 사람들과의 화해부터 논해야 할 것입니다. 남한 사람들과 남한 사람들끼리의 화해부터 논해야 할 것이고 남한 사람들과 북한 사람들과의 화해를 논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 먼저 한 교단과 한 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끼리의 사랑과 화해를 먼저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시133을 읽으므로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의 복이로다"(시133:1,3). 한 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이 연합하여 함께 있으면서 친밀하게 사랑하고 친밀하게 화해하는 것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 라고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복을 명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의 복이로다." 화해에는 선함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고 기쁨이 있고 영생의 복이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교제와 화해의 모델이었는데 빌립보 교회에는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저에게 화해의 기쁨과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도 화해의 기쁨과 축복을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부족한 저에게 화해를 심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도 같은 은혜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화해의 기쁨과 축복"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행복한 성도들이 다 되기를 축원합니다.
출처/김명혁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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