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다 롬6:1~11
◑1. 은혜를 안다면
롬6:1 '그러면 우리가 무슨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까?'
앞서 5:20절에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말씀합니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일수록, 사죄의 은총이 큰 것입니다.
빚을 많이 진 사람일수록, 탕감받은 은혜가 감격적인 것입니다.
인생을 정말 밑바닥에 떨어져서 살았던 사람일수록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의 은혜는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어떤 죄도, 그분 앞에 정직하게 내려놓을 때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우리의 인생을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죄와 사망에 얽매여 사탄의 종노럿 하던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 받는 친자녀, 친백성 삼아주신 것이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제 이런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은
죄악의 자리, 사망의 자리, 저주의 자리를 떠나게 되어 있다는 거죠.
이전처럼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본문 1절에 반문한 것처럼
'내가 은혜를 계속 받기 위해서, 죄를 계속 짓겠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만약 있다면
이것은 영적인 궤변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길이기 때문이죠.
가령 이렇게 생각을 해 보세요.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가장 큰 은혜가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가출을 내서 가산을 탕진하고 돌아왔는데도
아버지가 나를 아들로 받아 줬다는 것이죠.
근데 그 은혜의 감격이 너무나 좋아서
내가 이 은혜를 계속 누리기 위해서
또 가출을 해서 또 가산을 탕진 하겠다...
만약에 이런 논리를 편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종교적 윤리적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의 은혜와 감격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의 삶과 행위가 변화되는 것이 정상이라는 거에요.
그러므로 '행위와 구원의 관계가, 절대적 상관관계다'.. 라고 주장하면 율법주의, 행위구원에 빠지게 되고
또 정반대로 '구원과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 라고 주장하게 되면 도덕적 방임주의(율법 폐기론)가 됩니다.
그래서 두 가지가 다 문제가 되고
사실 복음의 길을 걸어 간다는 것은 이 양극단과는 다른 것이죠.
행위로 구원을 받는 건 아니에요.
근데 자꾸 종교적 행위를 강조하다 보면
그것이 마치 구원의 원인인 것처럼 얘기하기 때문에, 율법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이제 구원 받았으니 행위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무슨 죄를 저질러도 나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이렇게까지 나가는 것은
도덕방임주의죠.
오늘 날 현대판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구원파가 여기 해당이 되는 것이고요.
초대교회 때는 영지주의가 이런 패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복음은 무엇이냐면,
믿음으로 구원 받는 건 맞아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감격이 있다면, 삶이 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은 자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화는 자원함이 있어야 됩니다.
늪에 빠져 있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 스스로 걸어 나오겠어요?
구원자가 그를 건져 주어야만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구원 받은 사람이
구원의 감격과 감사와 기쁨이 있다면
'내가 다시는 늪에 빠지는 인생을 살지는 말아야겠다'
이런 자원하는 마음이 결단이 일어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런 마음이 있어야만, 진짜 하나님의 자녀 다운 삶을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물질만능 시대가 되다보니까
갈수록 사람들에게 중독의 패턴이 많아지고 있어요.
최근에 한 영상을 보니까, 미국이 팬데믹 기간에
마약중독으로 인해서 사망하는 비율이 40% 급증을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팬데믹 기간에 사람들이 우울감을 호소하고,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이 복음을 전해야 되는 때입니다.
지금이 지쳐있는 영혼들을 구원해야 되는 때입니다.
그런데 이 중독이 굉장히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마약중독, 알코올중독 같은 '물질 중독'의 문제이든
아니면 성중독이나 쇼핑중독 같은 '행위 중독'의 문제이든
의존증 (다른 사람에게 감정적으로 지나치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의존증) 이나
분노중독이나 우울증 같은 '감정적인 중독'이든
중독에 빠진 사람에게 '당신 왜 그렇게 빠져 있느냐? 거기서 나와라'
이렇게 얘기해도 스스로 못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것은 중독은, 하나의 늪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스스로 나오라고 얘기해도 별 소용이 없지만
나올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하면, 그가 빠져나올 수 있게 되어 있어요.
아니 뭐 약물로도 해결 안 되고, 입원을 시켜도 치료가 안 되는데,
신앙생활 한다고 해결이 되겠는가요? 해결이 됩니다.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이 <거리에 아이들> 이라는 책을 쓰셨는데
너무 너무 감동적인 책이에요.
목사님이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한 시골마을에 목회를 하시던 분인데
하나님께서 기도 가운데 감동을 주셔서, 아무런 계획 없이 뉴욕으로 가게 되죠.
그리고 뉴욕에서 밤거리를 헤매는 범죄조직에 연루되어 십대 아이들을 만나게 돼요.
그리고 그 십대 아이들이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마약에 깊이 잠겨서 살아가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복음의 능력으로 역사하시고, 성령으로 감동하셔서
이 아이들이 병원에 입원시켜도 치료가 안 되고
법적인 것으로 압박해도 치료가 안 되던 아이들이
하나 둘씩 치료가 되기 시작하죠. 할렐루야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윌커슨 목사님이 시작하신 팀챌린지 라는 십대선교회와
마약 중독 회복 프로그램이
다른 일반적인 회복 프로그램 과는 달리, 너무나 많이 회복이 되고 치료가 되니까
주정부에서 지원을 하고, 이것이 미국 전역으로 이 프로그램이 확산되게 됩니다.
여러분, 복음은 어떠한 영혼도 치유하고 회복하는 능력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은혜를 은혜되게 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1절에서 반문한 것처럼,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만드는 삶은
내가 구원받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여전히 죄 가운데 사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도,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않고
그냥 내 고집대로, 세상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죠.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이 놀라운 은혜를, 값싼 은혜로 전락시키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참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현대 교회에 너무나 세속적인 크리스천들이 많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셨다고 믿으면서도
여전히 알콜중독에, 성중독에, 향락 쾌락중독 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근데 이뿐일까요?
업적 중독에, 성공 중독에 빠져 있는 사람들...
이것은 어찌 보면 우리 모두의 정직한 민낯입니다.
과연 우리는, 정말 나를 죄 가운데서 건져 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일까?
그리고 그 주님이 성령으로 내 안에 내주하시며
감동하시고 인도하시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일까?
만약에 그런 사람이라면, 삶이 변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거예요.
▲제가 어릴적에 잠실 신천 지역에 살았어요.
동네 아이들이 놀이터에 모여서 놀고 있으면
동네에서 돌아다니다가 놀이터에 와서 애들을 협박해서 돈을 삥 뜯는 건달이 하나 있었어요.
학교도 안 다니고, 일도 안 하고, 저녁 때만 되면 항상 이렇게 취해서 돌아다니면서
동네에서 청소년 아이들을 괴롭히는 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형이 어느 날부터 교회를 나오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더니 정말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눈물로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하는 삶을 살더라고요.
그러면서 그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얼굴이, 예전의 모습이 전혀 아닌 거예요.
천사같이 환하게 빛나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더니 어느날 저를 불러 '상준아, 나 술 끊었다. 이젠 술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저녁마다 술독에 빠져서 살던 사람이 완전히 변화가 된 거예요.
여러분, 세상 자랑, 세상 기쁨, 세상의 헛된 길에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시는 삶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당연시 여기고, 여전히 죄의 패턴 가운데 살아가게 되면
여러분의 영혼은 차라리 주님을 모르고 죄 가운데 빠진 사람들보다
더 나쁜 상태로 떨어질 수가 있는 거예요.
가령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어려서부터 결핍을 많이 겪은 아이들은
내면의 인생에 대한 목마름이 있고, 적어도 노력을 하려는 게 있다고요.
그런데 어려서부터 이런 모든 조건들이 갖춰져 있는 집에서
돈을 달라고 하면 뭐 큰 돈을 요구해도 그냥 주고
비싼 장난감을 요구해도 다 사주고
숙제를 해 달라 그러면 부모가 숙제 다 해 주고
그리고 10대나 20대가 되어서 나가서 사고를 쳤는데도
부모가 힘이나 지위가 있어서 그 영향력으로 다 무마시켜 주고
그러면 이게 은혜가 아니죠. 이거는 그 아이를 망치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아셔야 돼요.
나를 구원해 주셨다고 해서, 도덕 방임으로 인생을 살아도
그냥 하나님이 다 가려주시고, 다 무마시켜 주시고, 다 덮어 주신다는 생각은
성경 어디에서도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건 굉장히 복음을 왜곡시키는 길을 가는 거예요.
교회도 성도들의 영혼을 망가뜨리는.. 그런 잘못된 은혜를 이야기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진정한 은혜는, 죄를 용서해 줄 뿐만 아니라, 그 죄에서 우리를 건져내시는 힘이에요.
하나님의 은혜는, 나의 무수히 많은 죄를 씻어 주시고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악한 죄들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해 주시는 능력인 줄로 믿습니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 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다시는 그 죄악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붙잡아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해 보면, 마중물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중물은, 펌프에서 물이 나오게 하려면, 그 지하수를 마중나가는 물이라고 해서 '마중물'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는 마중물과 같아서, 마중물을 붓고 펌프질을 하면
그 샘의 근원으로부터 콸콸 물이 나오는 것이죠. 하나님의 은혜는 그런 것입니다.
우리에게 한량없이 그분의 은혜를 부어주실 뿐만 아니라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냥 은혜만 받고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이제는 그 은혜에 반응해서, 우리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서 하나님의 은혜의 길을 따라 가는 삶을 살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갓난아기에게 밥을 떠먹이잖아요. 이유식도 떠먹이고 어려서는 음식을 떠먹이는데
내가 평생 이렇게 떠먹일 것을 생각하고, 애에게 떠먹이는 건 아니잖아요.
이제 아이가 성장하면 스스로 숟가락을 들고
자기가 식사를 할 거라는 기대감이 있는 거잖아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집중적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때가 있고요.
그러나 우리가 삶 가운데, 이제는 내가 그 은혜에 반응해서 스스로 결단 해야 될 때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고백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고
찬양과 기도와 예배의 감격을 이제 막 경험하신 분들이 있다면
그 은혜의 마중물을 지금 많이 담아두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결단의 타이밍에
인생의 중요한 고난이 시작될 때,
'어~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은혜를 계속 안 주십니까?' 라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스스로 분연히 일어나 믿음의 길을 걸어가고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부어졌으니
이제는 내가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겠다'고 나서는
그런 믿음의 결단이 있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지금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부어질 때, 거룩의 결단을 하셔야 돼요.
반복되는 죄악의 습관을 이제는 멈추고
거룩한 삶의 습관을 시작하겠다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요8장에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에게 정죄받고 돌에 맞을뻔한 여자를 향하여서 질문 하시죠.
'여인아, 너를 정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느냐?'
'선생님, 없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내가 너를 정죄하지 않고, 너를 사죄하였으니
사죄의 은총과 기쁨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가서 다시는 이 죄를 반복하지 말라'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받았어요.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권면이 무엇입니까?
'가서 다시는 이 죄를 반복하지 말라, 다시는 죄의 늪에 빠지지 말라.
다시는 받은 은혜를 쏟지말라, 은혜를 은혜되게 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6:2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해 죽은 우리가
어떻게 죄 가운데 그대로 살겠습니까?'
'죄에 대해 죽은 우리'에 밑줄을 그어보세요.
하나님이 좋아서, 또 구원의 감격이 너무나 충만해서
'내가 세상 등지고 십자가 바라보며, 주님만 바라보며 살겠습니다..' 했는데
어떻게 죄악된 소돔과 고모라에 다시 돌아 가겠는가요?
그럴 수 없다는 것이죠.
우리는 죄에 대해서 죽은 사람들인데,
그 영역에 이제는 문을 닫은 사람들이에요.
죽은 사람은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저와 여러분은 죄에 대해서 죽은 사람들이고
죄와 사망과 저주의 권세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인 줄로 믿습니다.
물론 여전히 죄의 쓴뿌리가 남아 있어서 우리의 인생을 괴롭힐 때가 있지만
그러나 정말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주해 계시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감동 하시고, 인도 하신다면
예전과 같이 죄의 유혹에 완전히 무너지고 쓰러지는 패턴으로 갈 수는 없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 길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현상적으로, 임상적으로 심각한 문제는 무엇이냐면
'나는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인데, 여전히 죄의 유혹에 흔들리고 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인가요?'
하나님의 자녀인데도, 죄의 유혹에 인생이 심하게 흔들리는 분이 있다면
그러면 죄의 유혹이 거부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서도 아니고
사탄의 공격이 내가 막을 수 없을 만큼 파상공세 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게 너무 강해서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굉장히 중요한 거를 놓치고 있습니다.
그 죄의 권세, 죄의 유혹, 사탄의 공격보다 압도적으로 강력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근데 그 하나님의 은혜를 내게 부어주셨는데,
내 안에 채우며 살지 않았던 것이에요.
그렇게 되면 이 구원의 은혜가, 단순히 종교적이고 어떤 철학적인 개념일 뿐이지
내 영혼에 피와 살이 되지를 못합니다.
내 영혼에 피와 살이 되지 못하면, 삶에 거룩한 영향력으로 나타나지 못 하는 거예요.
그리고는 죽은 신앙이 되는 거죠.
안 믿는 사람 보다 차라리 못한 상태가 되는
그런 어려움 가운데 빠지는 거예요.
근데 그렇게 은혜가 떨어져서 내면이 굶주려 있고
영혼이 굶주려 있는 영혼들은, 세상의 쓰레기통을 뒤지게 되어 있어요.
자기 영혼이 목마르기 때문에, 사탄이 주는 먹이를 먹으며
그 허기를 채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인데, 어둠의 영들에게 조롱을 당하면서 살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여, 하나님의 은혜 안에 충만할 지어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지어다!
▲어떤 분들은 '아~ 내가 하나님을 믿으면 됐지, 무슨 성령충만한.. 그렇게 열광주의로 가고 싶지 않다..
나는 그냥 이성적인 신앙생활을 하겠다!' 여러분, 과연 그게 가능할까요?
엡5:16절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이 말씀은 무슨 뜻이냐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고 세월은 악한데
내가 선하신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려면, 세파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살아야 된다는 거예요.
'아이, 무슨 물을 거슬러 올라가기까지 해야 되니까?
그냥 나는 이 자리에 서 있겠습니다.'
아뇨, 그대로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고, 계속 떠내려 가게 되어 있어요.
이 세상의 어둠의 영향력의 급류에 떠내려 가기 때문에
거슬러 올라가는 삶을 선택해야 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는 거예요.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술 뿐이겠습니까? 세상 것에 취해서 살지 말라!
세상 것에 취해서 살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성령충만하면 너무 마음이 행복해집니다.. 이런 권면의 얘기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성령 충만을 받아야 된다.. 는 명령의 말씀이잖아요. 엡5:18절이!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그 피값으로 사함받은
그 구원의 은총을 깨닫지 못하게 하고
죄악의 습관에 여전히 묶여있게 만드는 모든 어둠의 영들은 떠나갈지어다!
우리의 심령 가운데 쓴 뿌리로, 우리 자녀들의 심령 가운데 유혹의 손길로,
우리 가운데 남아서 역사 하고자 하는 어둠의 영들은 끊어질 지어다!'
여러분 성령충만하고, 은혜 충만하게 살기로 결단하셔야 돼요.
내 마음 가운데 거룩의 결단도 없이
'아~ 나는 그냥 구원이 보장 됐으니까...'
그런데 오히려 세상사람 보다 못 하게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 천국문 앞에서 주님 품 안에 안기기까지
은혜 안에 걸어가는 인생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2. <그리스도와 함께>
6:3 '그리스도와 연합해 세례를 받은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해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합니까?
6:4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해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인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6:5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으로 그분과 연합한 사람이 됐다면
분명히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같은 부활로도 그분과 연합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3절에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했다'
5절에 '부활로도 그 분과 연합했다'고 했습니다.
물세례의 의미와, 성화의 의미를 연결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롬6장~8장까지는 본격적인 성화에 대한 메시지 입니다.
장로교회는 물을 머리에 뿌려서 세례를 주지만
실제로 침례를 할 때는, 물속에 넣었다가 건져내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물 속에 넣는 것은, 나의 옛사람이 죽는다는 뜻입니다.
죄악과 사망에 묶여있는 나의 옛사람이 죽는 거예요.
그러나 그 물에서 다시 건져 내는 것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연합해서 새사람으로 살아남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두 가지 모티브는, 죽음과 부활, 십자가와 부활 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처럼, 나도 함께 죽고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처럼 나도 함께 부활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어떤 분들은 '내가 죽어야 되는데, 내가 죽어야 되는데..'
그런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죽은 건가요, 안 죽은 건가요?
아직 안 죽은 거죠.
▲근데 뭐 윤리도덕적으로 나를 자책을 하든
아니면 종교적 기준으로 죄책감을 갖든
자책감이나 죄책감으로 사람이 죽지 않아요.
내 옛사람이 그걸로 해결되지 않아요.
'참아야 하느니라' 그러면서도, 얼마나 이 혈기가 자주 살아납니까?
얼마나 내 옛사람이 자주 올라 옵니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나의 옛사람이 죽는가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야 죽는 거예요.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아멘!
여러분 우리의 옛사람은, 십자가에 팔과 다리가 다 못 박힌 거예요.
옆구리에 창이 찔린 거예요.
그러니까 이거를 다 뽑아내고, 다시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돌아다닌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는 거예요.
십자가를 바라볼 때, 그 십자가의 예수님..
우리가 <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 영화를 봐도 얼마나 처절합니까.
그 참혹한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나의 죄악의 문제가 이렇게 참혹한 것이구나...
이 죄악의 문제로 허덕이는 나의 영혼이 이렇게 비참한 것이구나!'
그것을 깨닫는 사람만이,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주님과 함께 못 박게 되어 있어요.
근데 그거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단순히 종교적으로, 교리적으로, 공식적으로
그냥 구원의 교리를 아는 사람인데..
그는 그냥 교리를 아는 거지,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은 사람인 거예요.
그러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사람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아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이, 우리 안에 역사하심으로써
다시 살아나는 거예요.
무엇이 다시 살아나는가요?
하나님이 처음 나를 창조하실 때, 내 안에 담아두신 하나님의 형상,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
성령이 내 안에 감동하실 때, 그 감동하심을 온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갈망,
이것들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와 감동하심이, 여러분 안에 살아나기를 축복합니다.
▲6:11 '이와 같이 여러분도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산 자로 여기십시오'
이제 우리는 죄에 대해서 죽은 자이고,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종일 묵상해 보시면 좋겠어요.
'죄에 대해서 죽은 자', '하나님께 대해서 산 자' 이 표현을 주목해 보십시오.
죄와는 이제 내 인생의 쳅터가 끝난 것입니다.
죄와는 이제 나와 관계가 끝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겠습니다... 하는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세상에 어떤 것보다도 강력합니다.
죄의 유혹보다 훨씬 강력한 거예요. 훨씬 수위가 높은 거예요.
사탄의 공격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는 압도적인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온갖 중독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가 가능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은
다른 그 어떤 것으로도 거기서 꺼낼 수 없어요.
과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것에 대해서 제가 묵상 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사람의 여러가지... 뭐 음식에 대한 것이든, 문화에 대한 것이든
사람의 입맛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어린아이 때는 뭐 사탕, 과자, 불량식품 이런 거를 좋아했잖아요.
근데 나이가 들면서 정말 좋은 음식을 맛보게 되고,
자연 그대로의 건강식이 몸에 좋다는 생각 뿐만 아니라
진짜 더 맛있게 느껴지기 시작하면
이 고급해진 입맛은, 다시 저급해지기가 굉장히 어려운 거예요.
물론 가끔 군것질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죠.
그러나 여러분, 다시 옛날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음악을 듣는 사람의 귀가 수준이 높아지면, 다시 떨어지기가 쉽지 않아요.
넓은 집에 살던 사람이, 작은 집으로 들어가는 거 쉽지 않아요.
사람의 문화적인 수준도 올라가면, 그게 떨어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거예요.
영적인 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의 기쁨을 맛본 사람은, 세상 향락으로 돌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아요.
그러므로 '아~ 나는 죄를 짓지 말아야 되는데...'
이거는 여러분이 죄와 씨름할 문제가 아니고요,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히 채워지는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갈망으로 사셔야 돼요. 우리는 죄와 씨름하는 인생이 아니라
은혜를 붙들고 씨름하는 인생이 되어야 돼요.
여러분, 죄와 씨름한다고 여러분이 해결할 수 있어요? 해결 못 합니다.
해결할 능력이 내게 없어요.
그러나 내 안에 그리스도의 보혈을 덮이고,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으면
넉넉하게 승리하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은 그분의 은혜를 체험하면, 죄가 더 이상 되게 기쁨이 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 시간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참된 신앙의 길, 거룩의 길을 가기를 원합니다.
얍복 나루터에서 야곱이 '하나님,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지 않으면
제가 하나님을 보내 드릴 수가 없습니다' 하고 매달렸던 것처럼
하나님, 우리가 죄의 문제와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에서 씨름 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성령 충만하고 진리의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들이 되어서
우리의 삶의 모든 죄의 유혹과, 세속 사상과 거짓들을
넉넉히 이겨낼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은혜와 은총을 구합니다. 우리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세상을 이길 수 없고, 우리 힘으로는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주의 압도적인 은혜가 우리를 둘러싸시고, 우리를 충만케 하시면
사방으로 우리를 공격하는 모든 죄악에 유혹과, 사탄의 공격을 넉넉하게 이길 줄로 믿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결단하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고
소돔과 고모라로 돌아가지 않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사람, 구별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 시대가 너무나 많은 세상적 자랑과 기쁨과 유혹 거리로
우리 세대 뿐만 아니라, 우리 자녀 세대를 사방에서 전방위적으로 압박하고 유혹하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잠재울 수 있는 압도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심령에 충만하게 하옵소서...
그리하면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순탄하게 이끌어가실 줄로 믿습니다.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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