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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짖는 기도의 축복 (시 3:1-8)

by 【고동엽】 2022. 2. 22.

부르짖는 기도의 축복 (시 3:1-8)

 

이 시간 “부르짖는 기도의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목회하면서 간혹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꼭 소리 내서 부르짖어야 하나요?” 하는 질문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해 주시렵니까? “부르짖는 기도란 성경에 없는 것이니 하지 마세요. 하나님 귀먹지 않았어요” 하시렵니까? 아니면 “부르짖는 기도는 성경적이니 필요 적절하게 활용하세요.”라고 대답하시렵니까? 답을 말씀드리면 후자입니다. 항상 부르짖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르짖는 기도가 필요할 때 부르짖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부르짖는 기도를 무수히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부르짖는 기도란 무엇일까요? 성경의 예는 많지만 다윗이 경험한 말씀으로 오늘 시편 3편을 통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본문은 다윗이 부르짖는 기도로 위기를 극복하는 장면입니다. 본 다윗의 시편은 크게 두 단락으로 나뉩니다. 먼저는 부르짖지 않았을 때 있던 일과 다음은 부르짖은 후에 있었던 일입니다.

부르짖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1. 대적들이 일어나 득세하였습니다.


1절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본시는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난을 피해 다닐 때 지은 시입니다. 그 때 당한 답답함과 괴로움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믿고 믿은 사랑하는 아들이 아버지의 왕좌를 차지하겠다고 군대를 이끌고 잡으러 다니니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온 나라의 사람들이 압살롬의 편에 섰으니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모두가 다윗의 대적들뿐입니다.

혹시 대적이 많아 마음이 산란하고 상한 사람 이런 사람은 안 계십니까? 평안하지 않고 이런 일 저런 일로 세상 살기가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 섬기면 평안하다는데 평안이 없습니다. 기도하면 평안하다는데 평안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핍박을 받고 매를 맞으면서도 기쁨이 충만한데 그런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신앙 안에서 사는데도 마음의 괴로움뿐이라면 왜 그런지 알아야 합니다. 부르짖는 기도의 부족 때문입니다. 다윗은 아들이 반란을 일으킬 때 잘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너무나 부끄럽고 슬프고 그리고 아들과 싸우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당하고 말지 아들과 싸우려는 아버지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피하기만 하고 부르짖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온 나라에 자기를 배반하는 대적들로 가득차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부르짖어 보세요. 사단은 물러갑니다. 상한 마음과 괴로움도 물러갑니다. 문제가 심하다면 묵상만 하려고 하지 말고 부르짖으시기 바랍니다. 가정을 위해 기도하세요. 교회를 위해 기도하세요. 사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하세요. 부르짖으세요.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 다 물리쳐 주시고 평안함을 주실 것입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강력한 포화와 같습니다. 2차대전의 승패가 어떻게 났습니까? 노르만디 상륙작전의 성공입니다. 노르만디 해안에 연합군 수만명이 상륙할 때 어떻게 했나요? 독일군 병력들이 해안에 포진해 있을 때 상륙한다면 집중 포화를 맞아 실패합니다. 그런데 함대과 비행기로 폭격해서 노르만디에 주둔해 있는 독일군을 초토화시켜 상륙작전에 성공했습니다. 6.25전쟁 때 인천상륙작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먼저 함포로 적군을 초토화시킬 때 성공했습니다. 이처럼 기도로서 이 세상 악한 영들에게 포화를 가해야 합니다. 기도 없이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는 불가능합니다. 한국교회에 기도가 살아난다면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한 민족보다 더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미국의 최신예 폭격기 F22와 F16이 시뮬레이션으로 가상 공중전을 했습니다. F22기 1대가 F16 144대를 격추시켰습니다. 여러분 F16기나 F18기도 세계 최강 전투기입니다. 그런데 144대가 완전히 격추 당했습니다. F22 1대면 세계 제 2위의 스텔스기 F35 10대 이상을 카버합니다. 이론상으로는 F35 10대 가진 것보다 F22 1대 가진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이 F22를 판매하지 않아서 차세대 전투기로 F35를 도입하려고 하는데 그러나 이걸 가지고는 일본을 방어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F22와 같은 강력한 기도의 용사가 많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에 우리의 모임에 우리의 집회에 부르짖는 기도가 살아나길 원합니다.


2. 부르짖지 않을 때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2절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하나님이 다윗에게 함께 하시는 증거가 나타나지 않자 사람들이 실망하는 장면입니다. 백성들은 다윗 편에 설 것인가? 반란을 일으킨 아들 편에 설 것인가? 특히 신하들은 그런 고민에 휩싸였습니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대세를 살펴봅니다. 그런데 아들은 형통한데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도움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온 나라는 압살롬을 따릅니다.

북한의 김일성이 죽었을 때 김일성의 죽음을 전후로 한 스토리가 있어 관심을 끌게 하더군요. 어느 정도 사실인지 모르지만 김일성을 죽인 사람은 김정일이라고요. 칼로 죽인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심장병이 발했을 때 주치의도 분리시켜 놓고 방치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남한과 통일을 급속히 진행하는데 그것을 김정일이 좋아할 리 있겠습니까? 자기 실권이 사라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 북한의 실권자들이 대부분 김정일의 편에 섰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장 안전하다고 보았습니다. 이처럼 다윗에게 하나님의 도움이 나타나지 않으니 사람들은 압살롬을 따랐습니다. 그 원인은 부르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의 부흥의 역사를 보면 소리가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소리가 터를 울렸습니다. 지금도 살아있는 교회들을 보면 기도소리가 있는 교회들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부흥은 소리에 있었고 한국교회의 쇠퇴 역시 소리에 있었습니다. 소리가 있을 때는 부흥했지만 소리가 약해질 때 쇠퇴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임이 조용해졌습니다. 예배가 조용해졌습니다.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소리 내는 기도를 유치하게 생각합니다. 이 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통성 기도할 줄을 모릅니다. 비정상입니다. 성경은 부르짖는 기도를 말씀하는데 내 맘대로 성경을 고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율법에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 법 하나가 있습니다. 신22:23-24에 여자가 성읍에서 강간을 당하면 강간한 남자와 처녀를 함께 죽였습니다. 왜 남자만 죽이지 않고 여자까지 죽였을까요? 남자가 범죄했는데 왜 여자까지 죽였느냐는 말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율법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처녀는 성읍 중에 있어서도 소리 지르지 아니 하였음이요. 그 남자는 그 이웃의 아내를 욕보였음이라” 여자가 충분히 소리 질러 피할 수 있었음에도 소리 지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합니까? 기도에 대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텐데 기도하지 않고 우리 심령이 세상에 물들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순결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 책임이라는 말입니다. 내 잘못입니다. 항상 부르짖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르짖는 기도가 필요할 때 부르짖어야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것은 당하느냐 여부를 결정짓는 사항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참으로 어려운 가운데 몰리고 몰리며 쫓기고 쫓기다가 비로소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3절에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이렇게만 외쳤는데도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달라집니까?

부르짖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3. 부르짖을 때 하나님의 응답이 나타났습니다.


4절에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부르짖는 기도가 환경을 역전시켰습니다. 시50:15에 "환난 날에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어둠의 세상을 개혁할 수 있었던 것은 힘찬 찬송과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리고 성도 소리로 무너졌습니다.

하갈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광야에서 목말라 죽어갈 때 방성대곡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물을 주셨습니다. 삼손도 블레셋과 싸울 때 목이 갈하여 잡힐 위기에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우묵한 곳을 터치셔서 물을 주셨습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회복 될 때 우리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러나 극복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소년과 노인의 차이가 있는데 소리에 있답니다. 노인은 소리 내기를 싫어합니다. 시끄러운 소리도 싫어합니다. 너무 조용한 것도 좋아하지는 않지만 시끄러운 소리는 정말 싫어합니다. 이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내 영혼이 살기 위해서라도 늘 소리를 내야 합니다.

4. 부르짖을 때 하나님의 붙드심을 느꼈습니다.

5-6절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 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다윗이 부르짖고 나자 먼저 변한 것은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붙드심을 느꼈습니다. 천만 인이 둘러치려 하여도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붙드심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부르짖을 때 성령의 충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성경의 명령이며 약속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했습니다. 사30:19에도 “시온에 거하며 예루살렘에 거하는 백성아 너는 다시 통곡하지 않을 것이라 그가 너의 부르짖는 소리를 인하여 네게 은혜를 베푸시되 들으실 때에 네게 응답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도 부르짖을 때 모세를 보내 구원해 주셨습니다.

5. 부르짖을 때 승리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7절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여기 꺾으셨다는 말씀이 이해가 되십니까? 승리를 얻기 전에 승리의 확신이 온 것입니다. 사사기를 보세요.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부르짖음에서 하늘의 구원이 시작되었습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부르짖었던 이스라엘, 그러나 믿음 없는 사람들은 부르짖지 않고 원망하기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눅18:7) 하셨습니다. 그만큼 소원을 품고 부르짖으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제자들에게 부르짖는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신앙생활은 성경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적당한 소리로 발성의 기도를 시작하십시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회복합시다. 우리 모두 다윗과 같이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서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을 받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 :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 agaser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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