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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속으로 〓/영성 교회 성장 10대 지침등(가나다순)

역사(History)와 신학(Theology)의 긴장

by 【고동엽】 2021. 12. 1.

역사(History)와 신학(Theology)의 긴장-월리암 브레데(William Wrede, 1859-1906)와 아돌프 슐라터(Adolf Schlatter, 1852-1938)의 신약신학 비교

 

김회권 교수(숭실대 인문대)

 

서론

이 논문의 목적은 19세기 독일 개신교의 대표적인 신약학자인 월리암 브레데와 아돌프 폰 슐라터가 전개한 신약신학을 비교하고 분석하는 데 있다. 이들은 역사비평학적 입장의 신약신학과 신학적(교회적)-교리적 입장의 신약신학을 대표하는 학자들로서 전자는 신약학의 내용을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기원과 발전과정을 구축하는 작업이라고 간주한 반면, 후자는 기독교 신앙공동체의 신앙고백과 그것의 전후 발전관계를 추적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브레데가 20세기에 만개한 역사적-비평적 주석의 기초를 닦은 학자라면, 슐라터는 역사적 연구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실행하였으나, 역사적-비평적 방법론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하여 노력한 학자였다. 이 글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한 주요 쟁점들을 중심으로 두 학자의 입장을 자세히 비교할 것이다. 우리는 이들의 신약신학을 자세히 살펴보기 전에 그들이 격렬하게 대립했던 전장을 제공한 19세기 독일 개신교의 신학적 환경을 개관해 보려고 한다.

본론에서 우리는 먼저 브레데의 신약신학과 그의 중심적 방법론을 슐라터의 신약신학과 방법론을 자세히 비교하고 대조할 것이다. 우리가 이 글에서 주목하는 주제는 세 가지다. 신약신학의 과업과 내용(subject-matter), 신약신학 방법론, 그리고 신약신학과 교의학과의 관계다. 여기서 우리는 날카롭게 대립하는 두 입장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우리의 신약신학적 작업, 더 나아가 성서신학적 작업에 활용할 것인가를 모색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 두 입장 중 어느 하나를 취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입장이 갖는 장점들과 약점들을 충분히 의식하면서 중간지점에 서는 절충주의를 택할 것인가? 결론적으로 우리는 그들의 창조적 기여와 약점들의 빛 아래서 그들의 신약신학적 기획에 대하여 평가하고자 한다.

 

I. 브레데와 슐라터의 다른 신약신학 기획의 신학적 역사적 배경

19세기 독일 개신교 신학은 성서에 대한 역사비평적 접근의 요구가 대두됨에 따라 전통적으로 신봉되어오던 성경의 계시성과 영감성에 대한 범주를 포기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역사적 방법론은 낡은 교리적 신학(계시된 자료로부터 연역)은 인간의 종교적 경험으로부터 귀납되는 종교경험을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종교사학파에 의하여 이미 대체되었음을 인정하라고 요구했다.2)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현대적” 방법론이었던 역사적 비평적 방법론의 요구를 다 수용했던 19세기 자유주의자들은 인간의 종교(human religion)(슐라이에르마허의 정의에 따른 종교)만이 신약성서의 내용(the subject-matter)이라고 보았다. 브레데(1859-1906)는 이런 흐름의 정점에 서 있고, 반면에 슐라터(1852-1938)는 이런 19세기 주류 신약학계의 흐름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브레데가 주로 종교사학파적 관점에서 기독교 종교와 신학을 기독교 탄생 직전의 유대교의 연속선상에서 발전주의적 관점으로 연구했다면, 슐라터는 하나님의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자의식과 사역에 초점을 맞추어 기독교의 신적 기원 천착에 몰두하였다.

브레데는 그의 신약신학에 대한 학문적 입론들을 그의 기획적인 논문인, “신약신학의 과제와 방법들”(“The Task and Methods of ‘New Testament Theology’”)3) 에서 자신의 “소위” 신약신학의 과제와 성격을 논한다. 이 논문은 종교사학파의 학문적 입장을 천명하는 기획논문으로 광범위하게 인정되어 온 글로서 순전히 역사적 학문으로서 신약신학을 주창한다.4)

 

브레데의 주장은 그 당시 신약신학계에서 지배적인 방법론이던 교리적 방법론에 대한 응답으로서 두 가지 쟁점을 제기했다. 첫째 쟁점은 신약신학의 과제에 관한 것이다. 그는 신약신학은 순전히 역사적인 학문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약신학을 역사적 학문이라고 규정하면서 요한 필립 가블러(J. P. Gabler)의 유산을 창의적으로 계승하려고 했다.5) 이 기획논문에서 브레데는 가블러가 내린 역사적 성격의 성서신학과 교훈적 성격의 교리신학 사이의 차이를 더욱 철저히 드러내려고 했다. 성서 안에 있는 보편적이고 무시간적인 진리를 찾아내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블러는 역사적 특수성에 관련된 모든 것들은 교회를 위한 교의신학을 구축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간주했다. 보편적으로 타당한 이성과 배치되는 모든 것들은 성경에 바탕을 둔 교의신학을 세우는 데 무가치한 것으로 격하되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역사적 특수자를 다루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블러는 성서로부터 역사적인 특수자를 다루는 찌꺼기들을 제거해내는 데 필요한 방법론을 강구했다(“참된 성서신학을 구축하기 위하여”).6) 대조적으로 헤겔 철학에 지배당한 프리드리히 바우어(F. C. Baur)는 역사 전체를 절대정신(the Absolute spirit)의 자기 발현이라고 간주했다. 그는 역사적 특수자들 안에서 보편적인 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즐겨 주창한 주장은 “철학(형이상학)없는 역사는 바보멍텅구리다”였다.7) 헤겔주의 철학의 퇴조로 초대 기독교에 대한 바우어의 역사적 비평적 견해는 신약학계에서 인기를 상실해버렸다. 바로 이 상황이 이제 역으로 브레데의 신약신학이 등장하는 무대를 마련해 준 셈이었다. 바우어의 신약신학을 반(半) 정도만 계승하기를 원하던 바우어의 계승자로서 브레데는 바우어가 그렇게 비판하던 상황, 즉 철학(철학적 신학적 의미 부여)없는 역사를 의미있게 해석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초대 기독교의 역사적 틀을 교리적 개념들의 단순한 연속적 출현이라고 보기보다는 한 살아있는 종교의 발전사(the developmental history of a living religion)로 파악했다. 그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종교”라는 개념과 “발전”이라는 개념이었다. 그는 하나의 주요쟁점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역사적 발전이라는 바우어의 총체적인 개념을 거부했다(헬레니즘 종교전통과 유대교 전통사이의 정반합의 화해로 이어지는 과정).8) 그는 오직 “역사”를 신약신학의 중심재료로 견지하는 점에서만 바우어를 계승한 셈이었다. 그러자 브레데에게는 이 역사는 하나의 지적이고 관념적인 형이상학 아래 용해되어 버리는 역사가 아니라 “순수 사실들”로 가득 찬 역사였다(Wrede, 69-70). 바우어의 형이상학적 역사신학은 거절하는 한편, 브레데는 또한 신학과의 연결고리를 잊어버렸고, 신학적 쟁점들을 다룰 능력까지 잃어버리게 되었다.

브레데의 기획논문이 다룬 두 번째 쟁점은 신약신학의 방법론에 관한 것이었다. 이 기획논문 전체에 걸쳐서 그는 그의 바로 앞 세대의 신약학자들((B. Weiss, Beyschlag, H. J.

Holtzmann, F. C. Baur)에게 만연했던 교리적 개념들 중심의 신약학 방법론(the method of doctrinal concepts)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한다. 신약신학의 방법론에 대한 그의 이해는 신약신학의 과제에 대한 그의 이해에서 비롯된다. 그의 방법론은 그가 비판했던 바로 앞 세대의 신약신학자들이 했던 것처럼, 신약성서의 개별 저자들을 교리적인 틀 안에서 끼어 맞추어 다루는 것을 배척한다. 브레데가 보기에는 신약성서의 여러 저자들은 마치 개별적으로 취급해야 할 만큼 특징적인 신학이나 기독교 종교의 입체적인 발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기껏해야 그 당시의 평균적인 기독교신앙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베드로전서의 희망에 관한 몇 마디 언급들을 토대로 베드로전서의 희망 신학을 만들어내거나, 야고보서에서 나오는 인내나 믿음에 관한 몇 마디 언급들을 바탕으로 야고보서의 인내 신학, 믿음 이해 등을 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브레데는 기독교라는 살아있는 종교, 즉 당시의 역사 속에 자라가던 유기체로서의 기독교의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한 인물들이나 현저하게 구별되는 유형적인 사상가들이 기독교 발전에 기여했으므로 이들이 신약신학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브레데는 신약정경의 범위를 넘는 문서들까지도 신약신학의 연구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반면에, “신약신학과 교의학”(“The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and Dogmatics”)이라는 기획적 논문에서 아돌프 슐라터는 자신이 생각하는 신약신학의 과제와 방법론을 주창한다. 그도 역사를 포기하거나 배척하지 않는다. 그는 교리가 신약신학 연구에서 결코 배제될 수 없다고 주장했고 그래서 신약신학의 범위는 어디까지나 신약 정경의 범위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슐라터의 신약신학은 세 집단의 학자들에 대한 논쟁적 맥락에서 전개되었다.9) 첫째, 그는 브레데의 순전히 역사적인 “신약신학” 기획에 도전한다. 둘째, 역사적 연구의 상대적인 정당성도 거부하고 역사적 비평 이전의 견해들속으로 도피해버리는 보수적인 학자들과 그리스도인들과 맞선다. 셋째, 슐라터는 약간 다른이유로 교리적 개념 중심의 신약신학 방법론을 비판하는 브레데에게 동조한다.

전체적으로 브레데와 슐라터는 약간의 방법론적인 전제들을 공유한다. 예를 들면, 둘 다 신약성서 문헌들에 대한 역사적 연구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교리적 개념 중심의 신약신학 방법론을 비판하는 점에서 일치한다. 하지만 둘은 중요한 영역들인 신약신학의 과제를 설정하는 문제, 신약신학과 교의학적 과제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대립한다.

 

II. 브레데와 슐라터가 대립하는 영역들

이 두 학자가 대립하는 첫째 영역은 신약신학의 주제(the subject-matter)가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이 쟁점에서는 그들이 제일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기에 비록 신약신학이라는 말은 둘 다 사용하지만 그들이 몰두하고 있는 작업은 완전히 다른 두 개의 학문 분야라고 믿게 할 만큼 서로 다르다. 두 번째 쟁점은 신약신학 방법론이다. 둘 다 어떤 방법론적인 면에서는 서로 유사하나 대부분의 경우 서로 다르다. 브레데는 교리적 개념 중심의 신약신학 연구방법론을 격렬하게 비판한다. 슐라터 또한 약간 다른 의미에서이긴 하나 신약문서들에 대한 교의신학적 접근에 반대한다. 둘 다 신약문서들에 대한 역사적 연구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슐라터는 역사적 연구가 신약신학의 전부가 될 수 없고 반드시 교의신학적 판단이 신약신학의 과업 안에 내포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자신의 교의적 해석이 어떤 객관적 중립성을 허용하지 않는 신약성서 자체의 독특한 성격에 의하여 촉발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슐라터는 초대 기독교의 역사를 해석함에 있어서 브레데가 구사하는 발전론적인 패러다임(도식)도 어떤 의미에서 교의학적 경향성(교조적 경향성)을 노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우리는 신약문서들의 성격과 신약의 역사에 대한 다른 이해들이 신약신학의 방법론적 차이를 초래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양자가 충돌하는 마지막 쟁점은 브레데가 비교적 소홀히 다루는 반면에 슐라터가 아주 자세하게 다루는 주제인데 그것은 신약신학과 교의적 과제의 관계다. 신약신학을 기획함에 있어서 요청되는 자료의 범위를 한정하는 문제는-정경적인 책들 안에서 신약신학을 기획할 것인가? 아니면 정경의 범위를 넘을 것인가?의 쟁점-주로 첫 번째 쟁점, 즉 신약신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함께 다뤄져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이 세 가지 쟁점들은 상호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나 편의상 우리는 이 논문에서 세 가지로 구분하여 논할 것이다.

 

(1) 신약신학의 과제와 내용(the subject-matter)

 

<신약신학의 본질>(The Nature of New Testament Theology)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로버트 모건(Robert Morgan)은 브레데의 신약신학과 슐라터의 신약신학을 방법론적인 차이점들과 신약신학의 본질에 대한 상이한 이해들에 주목하며 대조하고 있다.10) 신약신학의 과제와 방법론들을 논함에 있어서 브레데는 역사적 연구와 교의적 판단을 단호하게 구별하고 있는 반면에, 슐라터는 신약신학자의 교리적인 문제에 대한 불가피한 연루와 참여를 옹호하는 입장이다. 이런 전제상의 차이가 중요한 영역에서의 그들의 차이를 초래한다. 이 두 학자 사이의 모든 불일치는 실상 그들이 각각 신약성서를 어떻게 간주하는가하는 문제에서 비롯된다.11) 브레데에게는 신약성서가 더 이상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단지 초기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발생되고 발전되었가를 기록한 역사적 문서들일 뿐이다. 그것은 당시의 기독교인들에게는 규범적인 권위를 가진 가르침들을 내포하고 있을지 몰라도, 현대인들에게는 더 이상 규범적인 가르침들이 아니다. 단지 과학적 연구대상 일뿐이다(종교사학파의 연구 대상). 그래서 신약신학은 순전히 역사적 학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신학은 신학자의 연구 과제라기보다는 역사가의 과제인 것이다. 그것의 관심은 종교로서의 초기 기독교와 신학의 발생과 발전과정을 보다 더 넓은 역사적 맥락 안에서 배치하여 연구하는 것이다. 신약의 역사를 하나님의 위로부터 오는 계시와 말씀에 추동된 구원사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내재적 종교적 신념의 외화과정과 그것을 촉발시키고 그것의 유포를 추동시켜 역사내재적 요소들을 추적하여 “역사적으로 설명해 보자는” 것이다. 신약신학의 목적은 신약문서들로부터 당대적 관심사들에 대한 그것들의 신학적 의미를 발견하는 데 있지 않고, 단지 기독교의 가장 이른 시기에 존재했던 기독교 신앙과 사상의 내용이 무엇이며 그것의 발전 양상이 어떠했는가를 단지 기술하는 데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슐라터에게 신약성서는 여전히 교회의 신앙과 삶을 위한 정경이며 따라서 신약신학은 단지 역사가만의 과업이 아니라 또한 신학자의 과업이기도 한 것이다. 신약신학은 교회의 정경인 신약성서 안에 내포되어 있는 신학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기독교 신학이라는 보다 더 학문분야 안에서 교의적 역할을 불가피하게 맡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12) 이런 관점에서는 신약신학의 연구대상은 단지 가장 이른 시기의 기독교신앙과 신학이 아니라 신약성서 문서들 안에서 포함된 이래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직접 상관성을 가지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초대 기독교인들의 신념들과 경험들이라는 것이다. 슐라터는 신약신학의 고유 과업을 초기 원시 기독교의 신앙표현이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자체의 역사적 상황에서 착근되었는가를 밝히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이 규정에 따르면 슐라터는신약신학의 학문적 과업은 신약문서들에게 던져진 부단히 변화되는 질문들과 관심사들 때문에 부단히 계속되어야 과업임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점에서 신약신학은 초기 기독교 종교와 신학의 단순한 역사적 연구나 제시가 아니라 신약성서와 그것의 신념들을 쉼없는 변화 과정에 있는 삶의 정황에 접목시키고 상관시키는 해석학적 작업인 셈이다.13)

이와 같이 신약신학의 본질과 과업에 대한 다른 이해들이 신약신학을 구축하는 데 요청되는 자료의 범위를 한정짓는 부분에서 이견을 초래한다. 초기 기독교의 종교생활과 신학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위한 자료를 한정함에 있어서 브레데는 정경의 교의적 권위를 우선시하여 정경에 더 많은 권위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정경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정경적 본문들이란 단지 초기 기독교 종교와 신학의 발전사를 증언하는 역사적인 문서일 뿐이다. 자신이 설정한 역사적 학문분야로서의 신약신학의 연구주제에 대한 이해 때문에 신약신학은 신약정경의 범위를 넘어 더 광범위한 자료들을 연구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14) 반면에 슐라터는 신약성서의 대부분이 사도적 기원을 가졌다는 전제 아래 신약문서들과 후대의 교회적 교부문서들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신약신학은 정경을 주요 연구자료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15) 신약성서의 정경성에 대한 그의 견해는 아마도 다음 인용문에서 간결하게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신약성서의 역사와 그것을 증언하는 말씀이 기독교의 존재 토대가 된다는 사실은 신약성서가 교회의 정경이라는 사실에 의하여 표현된다.”16) 슐라터는 신약신학의 독립성은 좀 더 후대의 교회사와 신약문서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바로 앞선 시기의 역사(구약 혹은 유대교 역사) 둘 다에 대하여서도 변하지 않고 견지된다고 생각했다(146).

 

요약하자면, 신약성서 자체가 무엇인가에 대한 다른 이해가 신약신학의 연구과제, 연구대상, 그리고 연구 자료의 범위에 대한 다른 이해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신약신학의 과업과연구 대상 설정상의 차이가 자연적으로 방법론적 차이를 발생시킨다.

 

(2) 방법론적인 차이

그의 기획논문 전체에 걸쳐서 브레데는 당시에 신약신학계의 지배적인 방법론이었던 교리적 개념 중심의 방법론을 철저히 비판한다(Wrede, 73-74). 그의 핵심적 주장은 인간의 경험으로부터 출발한 역사적 귀납방법을 통해 계시된 자료로부터 연역하는, 낡은 교의적 방법을 이미 밀어내버린 19세기 당시의 자유주의 신학이 일으킨 지적인 혁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17) 그의 방법론은 그의 가장 직전 선배 학자들의 신약신학적 저작들과 관련하여 피력되었다(B. Weiss, W. Beyschlag, H. J. Holtzmann, 그리고 F. C. Baur). 브레데는 역사적 학문으로서의 신약신학의 실행문제를 둘러싸고 B. 바이스와 H. J. 홀츠만의 저작들의 상대적 가치들을 인정하면서도 그것들의 불철저한 역사적 연구방법론을 비판한다. 특히 그는 당시의 기준으로 볼 때 역사적 방법론의 불철저한 적용이라는 점만 제거된다면 아주 교과서적인 역사적 비평적 신약신학 저작을 산출한 홀츠만을 비판한다. 그의 저작이 신약신학이라는 명칭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정경만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는 이유로 비판한다(Wrede, 83-86). 브레데는 홀츠만의 경우 성서신학적 작업을 위한 가블러의 제안을 철저하게 적용하지 못한 원인이 역사적인 학문으로서의 신약신학과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믿었는가를 말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여야 하는 데까지 말해야 한다고 느끼는 기독교 신학자의 규범제시적인 활동 사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방법론적인 엄밀성의 결여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한다(Morgan, 8). 브레데의 기획 논문 독일어 제목 안에 있는 “소위 말하는”(“sogenannten”)이라는 표현은 신약신학이라는 용어 자체의 적절성에 대한 그의 문제의식을 잘 부각시키고 있다. 브레데는 “신약신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틀렸다고 보고 그의 연구대상을 명료하게 확정하려고 했다. 첫째, 그는 그의 연구대상을 신약정경에만 한정하지 않고 당시의 모든 기독교 관련 문헌으로 확장하기를 원했다. 그 다음으로 그는 신약신학이라는 말 대신에 가장 이른 시기의 기독교 종교 및 신학의 역사라는 말을 선호했다. 그가 교회의 필요가 초대 기독교 종교사와 신학의 발전 연구에 영향을 끼쳐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펼쳤고 역사적 연구는 그 자체의 목표와 그 목표들에 걸맞는 방법론을 요청한다고 주장한다.18) 역사적 연구의 방법론적 자율성에 대한 이 주장은 신약신학의 연구대상에 대한 그의 앞선 이해와 일관성을 이룬다. 그에 따르면 역사적 학문으로서의 신약신학의 역사적 탐구대상은 신학이나 교리가 아니라 종교사다. 그러므로, 신약성서의 연구대상에 대한 역사적 접근은 그것에 대한 문학적 접근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브레데는 바이스, 홀츠만 등의 연구에서 두드러진 문학비평의 성과를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역사적 학문으로서의 신약신학의 본질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그가 비판한 문학비평은 신약성서의 개별문서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상적, 표현상의 관련성들을 발견하고 크고 작은 교리적 문제들에 관한 그것들 사이에 일어났을 법한 의존관계, 영향력의 작동과정을 밝히는 데 주력하는 작업이었다.19)

브레데는 네 가지 이유들 때문에 이 교리적 개념 중심의 방법론을 비판한다. 첫째, 이 방법론은 신약성서 저자들과 문서들의 정당한 자리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신약성서 저자들은 일련의 교리총람집을 저술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또한 신약문서들 자체의 단편적인 성격을 강조하고 신약성서 저자들의 전기적 자료의 현저한 부재를 들어 저자들 별로, 혹은 문서 별로 교리의 특성들을 정리하고 그 교리들의 이동 경로, 영향력의 수수 관계, 의존과 독립의 관계를 확정하는 일은 처음부터 무리라고 본다. 그는 신약성서의 저자들과 문서들을 교리적 체계로 파악하고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한 과업이라고 간주한다.20) 둘째, 브레데는 “교리”라는 용어 자체가 혼선을 야기한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브레데가 보기에는 신약은 교리적 개념을 거의 내포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의 잡다한 자료들을 하나의 유기적이고 응집성이 있는 체계로 정리하려는 시도는 그것들을 역사적 현실에 배치되는 하나의 틀 속에 강제로 끼워 맞추는 결과를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그 역사적 현실 안에 있었던 살아있는 색채를 빼앗아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21) 셋째, 이 교리적 개념 중심의 방법론은 신약성서의 저자들이 그들의 교리적 개념들과 어구들을 체계적으로 개발하였고 그것들을 정확하게 그리고 그것들의 내용과 의미범위를 충분히 의식하고 적용했다는 전제 위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브레데가 보기에 이런 절차는 모든 성서적 개념이 교리로서의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의 관심사를 충족시킬 뿐이다.22) 이 방법론의 약점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과 유형적인 것과 특징적인 것과 그렇치 못한 것 사이에 있는 차이점들을 식별할 수 없다는 데 있다(Morgan, 81). 넷째, 브레데는 이 교리적 방법론이 신약성서를 일련의 연속적인 개별적 교리들 혹은 명료한 작은 성서신학들의 집성물이라고 간주하는 오류를 범한다고 비판한다(Ibid.). 그는 결론적으로 이 지배적인 방법론은 진실로 역사적인 학문이 되기를 희망하는 신약신학의 역사적 제시를 위해서는 적합하지 않으며 심지어 신약신학의 역사적 성격 자체를 대적한다고 말한다.23)

 

이 교리적 방법에 대항하여 브레데는 신약신학은 명료하게 정돈된 초기 기독교의 사상들과 이념들의 특수성을 보여주어야 하며 그것들을 역사적으로(발전론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Morgan, 83). 정경적 신약문서들로부터 초대 기독교의 종교적 윤리적 세계를 재구성하려는 홀츠만에 맞서서 브레데는 신약신학의 과제를 초기 기독교 종교와 신학의 역사를 펼쳐보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브레데의 관심은 어떤 문서들이 신앙, 교리, 그리고 기타 등등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가장 초기에 무엇이 믿어졌고, 생각되어 졌고, 가르쳐 졌고, 소망되었고, 요구되어 졌고, 분투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연구하는 데 있다(84).

신약신학의 연구주제(subject-matter)를 명료화하기 위하여, 브레데는 종교사에 그 자신의 연구절차를 제시했다. 발생론적이고 비교 연구론이 바로 그것이다. 이 방법론은 거리들, 차이들, 연결점들, 효과들에 주목하는 방법론으로서 무엇이 전형적인 유형이었는가를 탐구하는 방법론이다. 교리적 개념 중심의 연구방법에 대항하여 이 방법론은 예외적이거나 변이사항보다는 일반적이고 유형적인 것에 관심을 주력하고 개별적인 관념들과 해석들은 일반적이며 개별적인 것들에게 영향을 끼친 광범위한 견해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의의가 적다고 보는 입장이다(96). 이런 종교사학파의 관점에서 보면 신약신학은 개별적인 성서 구절들이나 단락들에만 입각해서 주장을 전개해서는 안되고 하나의 발전과정에 입각하여 논증해야 한다(91). 모든 의미심장한 사상이나 개념은 종교의 역사로부터 파생되어 자라는 “살아있는 식물”이라는 것이다. 종교사학파의 구약 쪽 태두인 율리우스 벨하우젠처럼, 브레데는 종교(제의)를 외부의 보다 더 넓은 역사의 토양으로부터 자라나온 나무에 비유한다.24) 그러므로 브레데는 신약신학이 가능한 한 최대한 기독교의 종교와 신학의 발전양상들과 발전들의 양상들을 맥락적으로 명료하게 밝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25) 그의 결론은 초기 기독교 종교와 신학의 대부분(성취와 보상과 관련된 종교적 개인주의, 부활, 심판, 종말론과 묵시론, 그리고 메시야 신앙)은 모두 다 유대교 맥락에서 파생되었다는 것이다.26) 지성적인 교리사보다는 종교에 대한 그의 보다 사회학적 천착 때문에, 브레데는 기독교에 대한 역사적 접근과 전통적인 계시 사이에 있는 긴장을 전면에 부각시켰다.27)

 

이런 이유 때문에 슐라터는 초기 기독교 종교와 신학이 역사를 설명하기 위하여 브레데가 동원한 발전론적인 도식에 심각한 반론을 제기한다. 그는 브레데의 발전론적인 도식에 대하여 “신약 공동체는 그 안에서 자체적으로 형성된 공동체이며 그 자체 안에 발전을 위한 중심점(예수와 그의 활동들에 대한 메시야 신앙적 확신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응대한다.28) 그는 “신약 공동체는 단지 옛 자료들(옛 종교적 개념들)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그 이상인 새로운 추동력으로부터” 유래했다고 주장했다(Ibid.). 그는 “신적 기원과 역사적 매개를 통한 기원은 서로 배척적이 아니라”는 교의적 전제에 기반한다(151-152). 이렇게 다소 포괄적인 의미에서 슐라터는 기독교 신학의 교의적 과제의 빛 아래서 신약신학을 고려한 신약학자의 예로 언급될 수도 있을 것이다. “슐라터의 실제적 신약신학은 교의학의 사슬 안에 속박되어 있다”라는 H. 레제넨(H. Raisänen)의 가혹한 비판에도 불구하고,29) 인상적인 사실은 그가 신학함에 있어서 역사적 연구의 일반적인 필요성을 인정하고 역사가 자신의 개인적 견해를 역사적 연구대상물 안에 억지로 끼워 넣으려는 위험성을 인지한다는 점에서 브레데와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30)

브레데처럼 슐라터도 역사가가 기독교의 발전과정을 추적하려고 시도할 때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자료의 단편적 성격과 결핍 때문에 제한된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다.31) 그는 신약성서 안에 있는 사상들과 외부 역사와의 상호관련성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다.32) 슐라터가 팔레스틴 유대교와 헬레니즘적 유대교 둘 다의 보다 더 넓은 역사적 맥락 안에서 초기 기독교 역사를 이해하려고 애쓸 때 그는 브레데와 더욱 더 가깝다.33)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당시에 만연한 교리적 개념 중심의 신약신학을 비판하는 브레데에게 동조한다는 사실이다. 그도 브레데처럼 성서적 진술들을 교회 체제 안에 통용되는 개별적 교리들과 상관시키는 교회 안에 이미 정착된 사상들과 그것들의 관련성을 논함으로써 가장 이른 시기의 기독교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려고 하는 교리적 개념 중심의 신약신학 방법론을 비판한다.34) 그는 또한 교리적 방법론이 교의적 작업의 결과를 신약성서에 역으로 투사시키고 그래서 너무 손쉽게 역사적 연구의 목적을 비껴갈 수 있다는 사실에 우려를 표한다(136). 그는 또한 교리적 방법론의 연구절차를 지도하는 관심사가 신약성서 말씀의 이해에 맞춰져 있지 않고 교회의 교의적 과업에 봉사한다는 점을 비판한다(161).

슐라터 자신의 역사적 연구 목표가 신약성서의 진술들을 미리 숙고된 종교발전의 전체도식에 따라 종교적 개념들과 사상들의 직선적인 발전의 궤적을 추적하기보다는35) 그것들 자체의 구체적이고 역사적으로 조건지워진 형식 안에서 파악하고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36) 초대 기독교 종교와 신학의 직선적 발전(혹은 인과관계적 고리들)을 보다 더 넓은 맥락(예. 유대교 맥락) 안에서 추적하려는 브레데에 맞서서, 슐라터는 신약성서 문서들 안에 내포되어 있는 교의적 확신들과 외부 역사 사이에 있었던 역동적 관계를 천착한다. 그래서 그는 신약성서의 신학(내적 확신)과 신약성서의 역사(내적 확신에 의하여 창조된 외적 사건들)를 구분할 필요를 느낀다. 신학과 종교를 구분하는 브레데에 대립하여 그는 과학적 지식과 신약성서의 말씀 사이의 질적 차이를 강조한다. 그는 또한 신학이 추상적인 사변체계로 퇴행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신약성서에 대하여 갖는 강력한 연관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신학이 기독교인의 경험 안에 작동하는 상호적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데 봉사한다고 생각한다.37) 비록 그는 가장 이른 시기의 기독교 공동체와 신약문서들을 산출한 외적 사건들(신약 역사)에 대한 역사적 지식의 가치를 인정할지라도, 이 외적 사건들보다 이런 외적 역사적 사건들을 촉발시킨 내적 의지와 신념들에 대한 지식의 존재론적 우선성을 강조한다. 슐라터는 브레데와 같은 발전주의적인 도식에 입각한 신약성서 연구(“역사적으로 조건지워진,” “맥락 안에 속한,” “발전” 등)는 신약성서가 그 자체에 대하여 선포하는 중심적인 진술들을 파괴하는 경향성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경고한다.38) 슐라터의 역사적 연구는 두 단계에 걸쳐 이뤄진다. 첫 번째 단계는 통계적이다(statistical). 신약의 주요 신념들, 이념들, 개념들, 그리고 교리들을 조사하고 통계수치화하는 것이다. 둘째 단계는, 이것들의 기원, 발전, 상호관계들을 규명하는 원인론적(aetiological)인 연구다.39) 슐라터에 따르면 이런 역사적 연구 방식으로 연구하면 누구든지 신약성서 안에 교리적 혹은 교리적 확신들이 구축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교리를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교의적 신약신학이라고 비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공평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슐라터가 교조적인 역사가가 아니라 기독교 교리를 역사적으로 그리고 비교조적으로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기독교 교리들과 상호작용했던 외적 역사와의 관련 하에서 연구하는 역사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신약신학은 F. C. 바우어의 교리사적 신약연구와 B. 바이스(Weiss)의 성서적 교리 연구와는 다르다. 예를 들어, 브레데는 바울의 이신칭의 교리를 그의 필생에 걸친 이방선교의 사역들(외적 사건들)의 부산물이라고 간주한다.40) 반대로 슐라터는 바울의 내적 신념들(이신칭의)이 그를 일생에 걸친 이방 선교사역으로 추동시켰다고 주장한다. 브레데와는 달리 슐라터는 모든 신약신학들(저자들)을 하나의 초지일관한 발전체계 안에 끼워 넣으려고 하기보다는 다양한 신약신학들이 존재할 수 있는 여지를 허용한다. 왜냐하면 모든 각각의 신약성서 저자가 특수한 상황에서 자신의 신학적 신념을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약성서에 대한 슐라터의 역사적 탐구에 관하여 강조해야 하는 또 하나의 다른 요점은 그의 역사 이해가 브레데의 역사 이해와 사뭇 달랐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브레데의 역사는 그 자체의 법칙에 따라 전개된다. 거기에는 어떤 초월적 간섭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사실들로 가득 차 있다. 역사의 사실성은 어떤 종류의 형이상학적이고 신학적인 해석으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롭다. 어떤 의미에서 브레데는 역사에 대한 아주 경직된 교조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마찬가지로 슐라터의 역사 이해도 그 자신의 신학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하지만 슐라터는 역사를 계시의 토대(場)라고 보고 “계시와 역사는 결합될 수 없다”는 논리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바우어와 유사하다.41) 브레데와 슐라터의 서로 다른 역사 이해가 가져온 결과는 무엇인가? 하나의 인상적인 차이가 브레데가 초대 기독교가 앞선 유대 종교와의 관련성과 공통성을 강조한42) 반면에, 슐라터는 초대 기독교를 탄생시키는 데 작용한 어떤 개별적이고 반복될 수 없는 요소를 전면에 부각시킨다.43) 인상적인 점은 슐라터의 관심이 사회학적 발전이 아니라, 예수의 개인적 역사라는 점이다.44) 그리스도의 독특한 초상과 1세기의 유대교 문헌에 드러난 유대교적 메시아 이미지를 철저하게 비교한 후에, 그는 복음서들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초상의 독특성은 종교사학파의 관점으로 볼 때도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우리가 여기서(복음서) 예수의 독특한 메시아적 주장의 증언으로 받아들여야만 가장 잘 설명된다는 결론을 내린다.45) 1909-1910년 사이에 발간된 두 권의 신약신학(1권 Das Wort Jesu; 2권 Die Lehre der Apostel) 에서 슐라터 또한 약간 다른 이유에서 였지만 브레데처럼 앞선 세대의 교리적 개념 중심의 신약신약자들을 비판한다. 그는 예수의 선포만을 따로 떼어내어 연구하기보다는 그의 실제 사역과 행동과의 깊은 관련 하에서의 예수의 가르침을 연구했다. 그에게 예수의 행동과 메시지는 불가분리적인 통일체였던 것이다.46) 또한 그는 예수와 사도들 사이에 있는 신학적 역사적 연속성을 단지 교의학적으로 구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적으로 구명하려고 노력했다.

 

 

(3) 신약신학과 교의신학과의 관계

슐라터는 일관되게 “교리는 기독교 교회의 역사적으로 조건지워진 해석(거의 신념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것은 역사적 보고서 정도의 의미를 가질 수 있으나 확실히 그것은 다른 인식론적 지위를 보유한다.”47) 브레데의 기획 논문이 교리적 개념들 중심의 신약신학 방법론 혹은 신약 자료들에 대한 교의적 접근의 정당성 문제를 비중있게 취급한 반면에, 슐라터의 논문은 교의(초대 교회의 신앙적 신념들)와 그것을 둘러싼 사건들 사이의 관계를 밝히는 데 공을 들인다. 슐라터의 논문은 교의(신앙적 신념들)가 어떻게 초대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 형성되었는지에 관심을 쏟는다.

모건은 브레데의 논문을 “신약신학에 대한 어떤 신학적 사유도 막아버리는 묘비명 같은 글”이라고 평가한다.48) 표면적으로는 브레데가 역사적 연구의 신학적 상관성과 관련해서 두 극단적 입장 사이에 균형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 초대 기독교 종교의 역사는 다른 여타의 역사학 분야 혹은 다른 종교사 분야의 연구와는 다르지 않은 방법으로 취급되고 연구된다. 그는 신약신학에 대한 특별히 신학적인 이해가 과연 신약성서의 사람들에 의하여 이렇고 저런 것이 믿어지고 가르쳐졌다는 그 역사적 사실에 대한 앎을 넘어가는 그런 종류의 앎을 보증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브레데는 신약신학을 순전히 역사적인 학문 분야라고 보는 견해는 신약성서로부터 그것의 심오한 종교적 사상이나 그것의 고상한 윤리적 전망을 박탈하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믿는다(70). 1897년 목사들을 위한 방학 특강 수업에서 브레데는 목회자 집단과 대학에서 가르쳐지는 신학 사이에 있는 광범위한 긴장을 충분히 인지하고 양자 사이에 건설적인 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49) 양자 사이에 균형을 잡아보려는 그의 외견상의 의식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브레데는 실제로 신학적 이해관계가 학자 개인의 신학적 견해를 객관적인 역사 속에 뒤섞어버림으로써 항상 신약성서의 주요 내용들에 대한 이해를 흐리는 상황에 대하여 깊이 우려한다. 신약신학을 위한 역사적 방법론에 대한 그의 일관된 주장은 그로 하여금 신약신학(성서신학)의 역할을 기독교라는 종교의 발전을 객관적이고 서술적인 설명으로 한정하도록 이끈다. 역사가는 만일 자신의 역사적 연구 자체가 교회를 섬기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 한 그의 작업을 통해서 교회를 섬길 수 없다는 것이다.50) 그의 과학적 객관성에 대한 그의 강조가 두 극단의 중간에 서려는 그의 노력과 충돌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점에서 역사적 방법론에 대한 브레데의 옹호는 자신이 논의하지 않았던 해석학의 문제(역사가 자신과 주체와 객체의 대척점들과의 관계 설정 문제)와 관련하여 의문시될 수도 있다. 그런데 바로 이 해석학적 쟁점이 슐라터의 신약신학 구축에 중심쟁점을 이룬다.51) 신약신학과 교의적 과제를 연관시키는 다리 구축을 거절한 브레데와는 대조적으로, 슐라터는 신약신학을 구축함에 있어서 교의학을 깊게 연루시킨다. 그는 역사적 방법론의 교의적 연루 가능성에 대하여 매우 현실적으로 열려 있다. 이런 점에서 슐라터는 브레데만큼이나 R. 불트만의 직계 선배인 셈이다. 20세기 신약신학은 불트만의 종합(역사비평학과 해석학)에 의하여 지배당해 왔다. 브레데와 슐라터로 대표되는 대립적 견해에 의하여 조성된 긴장 해소는 불트만 등의 변증법적인 신학에 의하여 시도되어 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신약신학계에서 보여준 불트만의 필생의 학문적 노작은 신약성서의 역사적 사용과 신학적 사용의 통합을 회복하는 데 바쳐졌다고 볼 수 있다.52)

 

브레데처럼 슐라터도 신약신학을 역사적 학문이라고 간주하지만 신약신학과 교의학의 구분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은 허구라고 간주한다.53) 그는 교의학 그 자체는 순전히 주관적인 학문이 아니라 관찰과 판단에 있어서 가장 엄격한 객관성의 담보를 요구한다는 점을 확증한다.54) 순전히 역사적인 학문이라는 신화에 대하여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면서 슐라터는 더 나아가 “역사비평 그 자체는 결코 역사적 사실에만 토대를 둔 것이 아니라 항상 비평가 자신의 도그마(교조)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두 가지 면모들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교의학은 역사로부터 내용과 그것의 진술들을 위한 정당성을 획득하고 교의적 지식은 역사적 판단에 대하여 확증적이고 정화적(淨化的)인 효과를 끼친다.”55)

요약하자면 슐라터는 존재론적이고도 인식론적 토대 둘 다에 근거하여 역사적 학문과 교의의 불가피한 상호작용을 옹호한다. 신약성서의 역사적 연구에 대한 브레데류의 객관성 고집에 대한 회의를 품고 슐라터는 오히려 역사적 과제와 교의적 과제의 변증법적인 상호작용에 대하여 주목했다. 이 점은 역사(성서신학)가 교의학(교의신학)에 대하여 일방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전제 안에서 성서신학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그것의 고유기능을 추구하던 가블러의 길과는 다른 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슐라터는 “역사적 학문(성서신학)의 독립적인 발전이 그것의 연구대상(역사)의 자의적 재구성들을 어느 정도 막아주는 보호막(물론 오류가 없지는 않겠으나)을 제공한다”는 점을 시인하는 것처럼 보인다(128).

P. 슈틀마허(Peter Stuhlmacher)도 인정했듯이, 슐라터는 역사의 과거성(pastness)과 교의학적 사유의 현재성(presentness)을 관련시킴으로써 해석학적 쟁점을 천착했던 신약학자였다.56) 그는 고착된 전통보다는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훨씬 더 강조한다. 신약신학의 교의적 과제에 관하여 그는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서가 교회 위에 서 있으므로, 교회는 성서의 말씀을 담는 그릇으로 남거나 단지 첫 제자들의 반복이나 모방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신약신학 그 자체가 원시 기독교의 신앙표현이 어떻게 그 자체의 역사적 정황에서 유래했고 그러므로 어떻게 개별적이고 비반복적인 역사적 경험을 맞이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교회의 독립적인 삶에 대한 우리의 안목을 날카롭게 열어준다”고 주장한다(133). 이 “비반복적”인 차원에 대한 슐라터의 해석학적 통찰이 신약신학적 작업은 항상 새롭게 변하는 질문들과 더불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을 보증한다. 로버트 모건에 따르면 이 해석학적 통찰이 불트만으로 하여금 현대사회를 위한 그 자신의 신약신학에서 현대사회를 위한 비신화화 작업에 착수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었다.

 

III. 브레데의 신약신학과 슐라터의 신약신학에 대한 평가

브레데는 그의 신약신학의 방향을 천명하는 기획 논문에서 현재의 해석자들이 신약시대로 옮겨가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요구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학자들은 과학적 객관성에 대한 그의 요구가 해석학적으로는 매우 순진하고 원시적인 발상이라고 평가한다.57) 과학적 객관성에 대한 엄정한 요구의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브레데는 ‘신약성서는 주로 발전도상에 있던 한 종교의 반영체로 이해되어야지 현대적 의미의 신학문서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신약성서는 살아있는 종교(브레데에 따르면 우리는 현재 그것의 극히 작은 부분만을 갖고 있을 뿐이다)의 산물이지 교리들을 담고 있는 문학적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약신학의 과제에 대한 그의 정의에 비추어 볼 때, 만일 우리가 초대 기독교를 탄생시킨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주형을 제공했던 신약성서 시대의 살아있는 종교를 재구성하는 데 필요한 충분한(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증거들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지 못한다면, 브레데가 기획한 신약신학은 심각하게 의문시된다.58) 브레데는 오늘이나 항상 사상들, 이념들, 관념들(특히 종교사에 있어서)의 출현을 관장하는 역사의 내재적인 법칙들을 무비판적으로 신봉한다는 점에서는 종교사학파의 역사주의적 교조주의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59) 브레데의 교조주의적 역사주의에 대한 순진한 신봉에 대한 이런 비판적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그의 학문적 업적들과 통찰들은 20세기 신약학계에 의하여 공증되었고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는 점은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초대 기독교의 탄생을 이해하기 위한 유대교의 중요성에 대한 그의 강조(E. P. Sanders 등), 초대 기독교의 발전에 있어서 바울의 중심적 역할에 대한 그의 통찰(R. Bultmann 등), 초대 기독교에서 종말론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그의 강조는 학문적으로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이런 관찰은 그의 전체 신약신학의 기획을 역사주의적 교조주의라고 규정하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

 

신약신학에 대한 그의 그릇된 정의와 교의적 과제에 대한 그의 무관심 때문에,60) 브레데는 성서신학의 작업결과를 성서적 토대 위에 구축될 교의신학을 위하여 제공하려고 노력했던 가블러와는 달리, 성서신학과 교의학의 각각 구분되는 과업들에 대한 정당한 이해와 긍정적인 규정에 어떤 기여도 하지 못했다. 초대 기독교 종교와 신학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문과 신약신학을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후자 즉 신약신학의 독립적 학문 분야로서의 존재가능성을 인정하는 데 실패했다. 일찍이 가블러는 참된 성서신학(역사)과 순전한 성서신학(교의학을 위하여 유용한 성서신학)으로 구분하여 성서신학과 교의학의 연결고리를 확보해 두었으나 브레데는 교의학을 객관적인 학문연구의 걸림돌이라고 간주했다. 그래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브레데는 신학적 이해관계가 신약성서의 종교와 신학에 대한 역사적 연구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에 실패했다. 그의 신약신학 기획은 여전히 우리들에게 “그렇다면 역사적 연구에 정당하게 바탕을 둔 신학적 방법론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남겨두었다. 이것은 브레데 당시의 자유주의 개신교 신학자들에 대한 반발을 촉발시킨 약점 중의 하나이자 1920년대 변증법적 신학자들의 신학적 성서신학의 부흥운동을 유발시킨 요인이었다.61)

한편 슐라터의 신약신학은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하다. 첫째, 그의 역사적 연구는 동시에 신학적 해석이 되었다는 것이다.62) 둘째, 그는 아주 처음부터 역사적 연구가 객관적일 수 있는 객관성의 신화를 부정한 신약학자였다. 그의 역사는 보다 더 넓은 역사적 맥락 안에서 산출되고 발전된 신약성서의 기독교에 대한 역사가 아니라, 그 자체 안에 그 자신의 발생지점과 발전 원인을 가지고 있는 자기충족적 공동체의 역사다.63) 그래서 그는 신약신학은 신약성서 안에 있는 신학이라는 점을 재삼 강조하였다. 이런 관점은 신약신학은 신약성서 안에서 부분적으로 반영되어 있을 뿐이며 그것마저도 모든 동원 가능한 증거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이해될 수 있다고 말했던 종교사학파적인 주장에 맞선다.64) 하지만 역사적 연구와 교의적 연구가 서로 상호침투적인 관계에 놓여있다고 이해함으로써 그는 다시 한번 “현재적인” 교의학이 역사적 연구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었다.65) 그러나 우리는 그의 교의학적 영향이 슐라터의 역사적 탐구로서의 신약신학적 저술에 학문적 진정성을 훼손할 정도로 대단했다기보다는 신약문서 자체의 성격상 교의학적 고려와 평가가 중요한 범위 안에서 작용한 영향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1922년에 출간된 <사도들의 신학>의 목차가 보여주듯이, 거의 교의학 책처럼 보이지만, 사도들의 신학에 대한 엄밀한 문헌적 역사적 분석과 평가로 가득 차 있다.66)

 

 

IV. 결론

브레데는 교의학(교회적/기독교적)이 신약신학에 끼칠 수 있는 위험성을 예리하게 감지한다. 신약신학과 교의학 간의 상호작용의 불가피성과 필요성에 대한 슐라터의 생각은 사실이지만 교의학이 역사적 탐구에 대하여 끼칠 왜곡 효과를 과소평가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다소간 순진하게 보일 수도 있다. 게다가 헨드리커스 보어스가 지적했듯이, 양자 사이의 대화를 제안함으로써 슐라터는 교의학을 통제할 수 있으나 상호작용까지는 하지 않는 순수한 성서신학을 창조해보려는 가블러의 길에서 이탈한다.67) 역사가의 중립성과 객관성의 쟁점에 관하여서서는 슐라터가 역사가 안에 이미 작용하고 있는 선입관념이나 선이해를 인정했다는 점에서는 브레데보다 더 현실적이다.68)

여기서 언급해야 하는 또 다른 요점은 역사적 연구를 교의적 고려로부터 분리하려는 브레데의 노력은 주로 하나의 중심개념을 바탕으로 신약의 역사를 추적하여 재구성한 F. C. 바우어에 대한 그의 비판에 더욱 더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이다.69) 브레데 자신은 신약신학을 기획하는 데 발생하는 철학적-해석학적 쟁점에 뛰어들기를 원하지 않는다. 브레데는 역사주의에 대한 실존주의자들의 많은 반발을 현재화(modernization, 당대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노력)라고 일축하여 버리기를 원했는데 이것은 어느 정도의 정당성이 있는 대응이라고 평가되고 있다.70)

신약성서의 문서들의 성격을 규정함에 있어서 브레데는 정경적인 접근을 취하지 않고 순전히 역사적 접근을 취한다. 그는 신약성서의 문서들이 부분적이고, 비문헌적이고, 종교적-역사적 자료라고 본다. 그는 초대 기독교에 대한 포괄적이고 전체적인 초상은 우리가 입수할 수 있는 정경화된 자료만을 가지고는 구축될 수 없고 또한 신약성서 안에서 발견되는 약간의 문헌적 상호관련성이 초대교회의 교리적 체제에 대한 자세한 구도를 제공할 수 없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신약성서를 본질적으로 세속적인 역사를 기록한 역사자료라고 보는 그의 견해는 그동안 편집사 비평과 문학비평을 통해 밝혀진 바 있듯이 그 중의 많은 책들이 보유한 것으로 판명된 문학적 특성을 과소평가한다(심지어 마가복음의 경우도 아주 정치한 문학작품이다).

신약성서 안에 포함된 확신들에 대한 슐라터의 탐색은 신약성서 자체의 인지적 차원(the cognitive dimension)을 보다 더 정당하게 평가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가 신약 역사(NT history)에 부과한 비교적 하찮은 역사적 작업은 브레데가 이상적으로 제시하는 역사적 하부구조를 구축하는 데는 다소간 부족해 보인다.

신약신학과 교의학의 관계에 대하여 보어스는 가블러에 대한 브레데의 관계 안에서 하나의 역설을 주목한다.71) 한편으로는 브레데가 가블러의 참 성서신학(true biblical theology) 개념을 순전히 역사적 연구를 통해 전례없이 발전시켰다. 또 다른 한편, 그는 역사적 연구 결과를 구체적인 교의학의 발전을 도울 자료로 치환하기 위한 하나의 병행 분야의 학문을 제시해 주지 않음으로써 가블러의 순 성서신학(pure biblical theology) 개념을 아예 완전히 소거시켜 버렸다. 이런 점에서 역사적 연구와 교의학 사이의 대화를 주창하고 옹호한 슐라터의 입장이 브레데에 비하여 진일보한 개선책이다. 하지만 신약성서와 신약성서를 구분한 슐라터의 입장은 참 성서신학과 순 성서신학을 구분한 가블러의 구분과 유사해 보이지만 실제로서 그것은 역사적 특수자들과 특수상황들과 무시간적인 보편자 사이의 구분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사건들의 역사(events)와 지적(신념들) 역사 사이의 구분이다. 종교사학파의 역사적-비평적 관점에서 슐라터의 신약신학을 평가하면, 슐라터의 정경적 신약신학은 역사적 연구로 보이기에는 너무 교리적인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가 사용한 범주들인 “신념들,” “계시들” 등은 기독교의 유래를 설명하는 충분한 범위의 연구영역이나 연구 자료를 포함하기에는 충분히 광범위하지 않다. 사회사적 역사를 충분히 담고 있는 브레데의 충분한 역사적 개괄이 오히려 신약신학이 교의학과 대화하는 데 요청되는 역사적 배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며 그러면서도 진실로 역사적으로 남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브레데의 순전히 역사적 접근에 대한 옹호, 신약성서 본문들의 역사적 성격에 대한 그의 이해, 그리고 그의 포괄적인 신약학 과제 설정은 가블러의 참 성서신학 구축 과제를 수행하는 데 충실한 틀을 제공한다.

 

역사적 객관성에 대한 슐라터의 의심, 그의 교의학과 신약신학과의 대화 옹호, 신약신학의 규정적인 성격(규범적 성격)에 대한 그의 이해는 브레데의 신약신학 기획의 약점을 바로잡는 귀중한 교정책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만일 학자의 인품이나 인격이 역사적인 연구작업 동안에도 완전히 배제될 수 없을지라도 학자적 동의가 일정한 한계 안에서 통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며 슐라터와 브레데의 중간 지점 어딘가에 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중간에 선다”는 것은 브레데의 신약신학이나 슐라터의 신약신학이 완전히 똑같은 학문분야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겹치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하고 서로의 강점으로 서로의 약점이 치명적인 학문성을 손상시키지 않는 범위로 양자를 변증법적으로 절충하고 지양하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 연구에 주력하는 학자들은 그것의 당대적, 혹은 교의학적 의미를 추출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할 수 있는 가능성에 좀 더 개방적이어야 하고, 교의학과 역사적 연구의 상호적 관계를 인정하는 학자들은 교의학적 편견이 역사적 연구의 사실관계에 중대한 왜곡을 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단히 경계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 사실을 인지한 후에야 우리는 건설적인 대화를 통해 우리의 제한적인 지평들을 융합할 수 있는 모험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이 희망은 어떤 학문 분야에서도 보편적으로 유효한 희망이다.72) 따라서 우리는 제임스 던(Dunn)이 잘 지적했듯이, 브레데의 신약신학과 슐라터의 신약신학 모두에 진실이 혹은 잠재적인 진리가 내포되어 있음을 인정함으로써 양자 사이의 적극적인 일치점 모색이나 상호적 대화 시도에 인색해서는 안된다.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양자 사이의 대화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 1세기와 21세기의 대화, 신약성서 저자들과 현대의 주석가 사이의 대화를 수반할 것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겠지만 신약신학의 기술적 성격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21세기에 속해 있으며 따라서 지극히 당대적이고 현대적인 관심사에 속박되어 있음을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73) 이 양자 사이의 대화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우리가 전제들, 우리 나름의 지평들을 이미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고 우리의 인식이나 사유가 우리의 지평이나 시좌에 의하여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위에서 제시된 양자 사이의 접점없는 대립이야말로 어쩌면 비현실적임을 깨닫는다. 그래서 과학적 중립성에 대한 교조적 집착이나 해석학적 순환에 대한 절망(주관 개입의 필연성) 둘 다를 지양해야 한다. 전제가 이미 결론을 결정해버린다고 믿으면 이 해석학적 순환은 절망의 기호가 될 것이지만 이 해석학적 순환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대화를 통해서 우리의 선이해, 선입견을 교정할 수 있고 개선할 수 있는 인격적 존재다. 우리는 보편적인 학문의 언어는 건전한 인격, 즉 대화에 의하여 개선가능성이 있는 존재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이런 대화를 통해 전제에서 결론으로 바로 치닫는 불행한 해석학적 순환이 이제 더 이상 닫힌 순환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새롭게 열린 지평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자신의 외연을 확장하고 내포를 더욱 견실하게 하는 나선형적인 순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신약신학은 대화다. 왜냐하면 1세기를 탐구하려는 어떤 21세기 시도도 대화의 운명을 거절할 수가 없다. 신약성서 문서들을 심각한 신학적 관심사들을 갖고 탐색한다하더라도 그것 자체가 엄밀한 의미의 역사적 연구 준칙을 위반하는 것이 아닐 수가 있다. 우리는 우리 당대에 사로잡힌 대화의 파트너로서 우리 자신의 질문들이 신약성서 안에서 해결되는 경우도 자주 발견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이 신약성서 자체의 도전을 받고 문제시되는 경험 또한 빈번히 한다. 실상 신약성서가 내재적으로 대화적인 구조로 형성되어 있기에 모든 세대의 독자들과 대화하기에 적합한 책이다. 신약성서 자체가 바로 1세기 그리스도인들과 유대교라는 종교적 유산 사이에 일어난 대화 아니었던가?74)

 

우리는 한국교회의 신학은 하나님께서 2,000년 교회사를 통해 일으키신 믿음의 선진들과 선학들이 남겨둔 풍성한 유산과의 대화를 통해 풍성해 진다고 믿는다. 역사적-비평적 및 탈근대주의적 방법론의 헤게모니가 대안적 학문방법론을 움돋게 하는 데 방해가 되는 현실에 직면하여, 우리는 견실한 역사적 연구와 주석적 토대를 확보하면서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활용가능한 주석전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성서 본문의 과거성, 낯섦음, 이미 주어짐을 강조함으로써 현재 독자들의 해석학적 요구에 쉽게 수용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강조하는 브레데와 역사적, 신학적 학문의 요구를 해석학적인 문제로 파악하여 양자의 건강한 대화를 도모한 아돌프 슐라터의 간학문적인 방법론과 진지하게 대화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75) 특히 슐라터가 성서 본문의 과거성과 해석자의 현재성 사이에 불가피한 긴장과 얽힘이 있음을 솔직히 인정하고, 성서주석은 필시 해석학적 쟁점과 조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인했다는 점에서 그는 이미 오늘날의 탈근대적 해석학적 무정부주의를 이해하고 그것을 바로잡는 데 유용한 자산이 된다.

아돌프 하르낙이 자유주의를 신봉하고, 루돌프 불트만이 데이빗 프리드리히 쉬트라우스(David Friedrich Strauss)의 신화론적 접근과 마틴 하이데거의 실존주의를 절충하여 신봉하고 있던 바로 그 당대에 아돌프 슐라터는 성서에 대한 성서신학적- 신학적, 구원-역사적 읽기를 주창하며 성서에 대한 존숭의 태도를 견지하였다. 특히 그의 그리스도 중심적 신약신학 기획은 자칫 기독교 유신론적 형이상학으로 증발되기 쉬운 신약학을 지상의 현실로 착근시키는 데 긴요한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슐라터는 결코 역사라는 차원을 포기한 적이 없다.76) 특히 1920년에 출간된『그리스도의 역사』(History of the Christ) 서문에서 슐라터는 “예수에 대한 지식이 신약신학의 가장 중요하고 필수불가결한 중심요소다”라고 썼다. 이 지식은 단지 신앙의 지식이 아니라 엄정한 역사적 연구를 거친 지식이기도 한다. 이것은 똑같이 두 권짜리 신약신학을 출간한 불트만의 “예수의 메시지는 신약신학 그 자체의 일부라기보다는 전제다”라는 언설과는 정반대의 선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빠져버린 신약신학 혹은 성서신학이 가능한 것처럼 믿어지는 탈근대주의적 해석학적 무정부 상황에서 우리는 저자 중심의 역사적, 신학적 신약신학의 회복 실마리를 슐라터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77)

 

주제어(Key Words): 월리암 브레데(William Wrede), 아돌프 슐라터(Adolf Schlatter), 성서해석학(biblical hermeneutics), 역사비평학(historical-criticism), 종교사학파(the religion of history school), 교리적 개념 중심의 방법론(the method of concepts of dogma), 신약신학(New Testament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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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Tension between History and Theology-Comparison of the New Testament Theologies of William Wrede(1859-1906) and Adolf Schlatter(1852-1938)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investigate the NT theologies of William Wrede and Adolf Schlatter with a focus on their distinctive understandings of NT theology and its relation to dogmatics. In the following paper, I will engage Wrede and Schlatter in detailed debate around several common issues which they respectively raised and discussed in their programatic essays. Before turning to bring their NT theologies into discussion, I will review the historical and theological context which set the stage for inviting them into the battlefield of NT theology in the 19th century German Protestant theological scholarship. In the main section I will engage them in debate with each other around major issues common to them. I will first discuss Wrede’s NT theology and his methodological considerations and then bring Schlatter into debate and dialogue largely in terms of his contradistinction to Wrede. The present paper will focus on the following debatable issues: (1) The task and the subject-matter of NT theology; (2) Methodology; (3) The relationship of NT theology to dogmatic theology; (4) The boundaries of NT theology.

The primary aim of this section is to ask what to do with two opposing approaches and more specifically to seek how to creatively adopt them into our own scholarship. Do we have to make a choice between them or do we have to stand in the middle way between them, being fully aware of their respective weaknesses and their strengths? Fully aware that the ways of Wrede and Schlatter are not to be categorized as under the same NT theology, this paper is inclined toward the latter position. Thus, another goal of this section is to show that they stand closer to each other concerning some issues than has been hitherto assumed and therefore to find a common ground between the two approaches. Finally, I will venture to make some tentative eval‎uations of their historical and theological enterprises with consideration of the implications for contemporary hermeneutical debate. In the concluding part I will argue that the Bible itself is a product of multi-layered dialogues and thus requires a constructive dialogue for a better informed new testament theology in agreement with James Dunn.

 

 

 

 


1) 이 논문은 2008년 3월25일에 열린 숭실대-장신대 공동학술심포지움에서 발표된 원고를 수정보완한 원고임을 밝힌다.

2) Robert Morgan, The Nature of New Testament Theology (SBT 25; Naperville, ILL: Alec R. Allenson Inc., 1973), 1, 34.

3) 독일어 원제목은 “Der Aufgabe und Method der sogenannten neutestamentlichen Theologie”이다 (William Wrede, 1897, 70).

4) Heikki Raisänen, Beyond New Testamentament Theology(London: SCM, 1990), 12. “소규모 괴팅겐 교수단”("Kleinen Göttinger Fakultat")의 일원이었던 브레데는 “종교사학파”라고 알려진 그 용어 안에 내재된복합적인 음성들을 관통하는 몇 가지 특징들을 감지했다. 1903년에 행한 한 강연에서(“Das theologische Studium und die Religionsgeschichte” [1903], 64-73], 종교사학파의 주요관심사를 다섯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순전히 역사적 관점에서 모든 비기독교적 종교의 연구, 둘째, 유대적 기독교의 종교사의 빛 아래서 초기 기독교 연구, 셋째, 경건의 역사로서 기독교 종교사의 연구, 넷째, 초대 기독교에 대한 전승사적-역사적 연구 경주,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비기독교적 종교들을 반영하는 종교적-철학적 체계 구축에 대한 관심이 그것들이다(Hans Rollmann, “Theologie und Religionsgeschichte,” Zeitschrift für Theologie und Kirche [1983], 78).

5) W. Wrede, “The Task and Methods of 'New Testament Theology',” in R. Morgan, ibid., 68; Morgan, ibid., 14.

6) J. P. Gabler, “On the Proper Distinction Between Biblical and Dogmatic Theology and the Specific Objectives of Each," reprinted and translated in J. Sandysunsch and L. Eldredge, “J. P. Gabler and the Distinction Between Biblical and Dogmatic Theology: Translation, Commentary, and Discussion of His Originality,” SJT 23 (1980), 142.

7) R. Morgan and J. Barton, Biblical Interpreta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8), 276.

8) Wrede, 92.

9) R. Bultmann, New Testament Theology, Vol. 2 (New York and London: Scribners, 1955), 249.

10) Morgan, The Nature of New Testament Theology, 1-7.

11) Wrede, “The Task and Methods of New Testament Theology,” in Morgan, The Nature of New Testament Theology, 101.

12) Schlatter, “The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and Dogmatics,” 146.

13) James D. G. Dunn, New Testament Theology in Dialogue: Christology and Ministry(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87), 2.

14) Wrede, 101.

15) Schlatter, 146.

16) Schlatter, 120.

17) Morgan, 9.

18) Wrede, 69-70, 72-73.

19) Wrede, 79.

20) Morgan, 4.

21) Morgan, 6.

22) Wrede, 79.

23) Wrede, 82.

24) J. Wellhausen, Prolegomena to the History of Ancient Israel, trans. W. Robertson Smith(New York: The World Publishing Company, 1957), 81.

25) Wrede, 91.

26) Wrede, 114.

27) Morgan, 23.

28) Schlatter, 146.

29) H. Raisänen, Beyond New Testament Theology (London and Philadelphia: SCM Press and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0), 25.

30) Morgan, 29.

31) Morgan, 15.

32) Morgan, 43; Schlatter, 156-158.

33) Morgan, 31.

34) Schlatter, 160.

35) Wrede, 96.

36) Schlatter, 161.

37) Schlatter, 162-163.

38) Schlatter, 151.

39) Schlatter, 136-149.

40) Wrede, 100-101.

41) Schlatter, 152.

42) Wrede, 114. 이 진술과 “초대 기독교의 교리적 발전은 유대교 시기의 괴상한 유대교적 가르침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라고 말한 W. 베이슐라그(Beyschlag)의 진술을 비교해 보라(Morgan, ibid., 193, 각주 95).

43) Schlatter, 133.

44) Die Geschichte des Christus(Stuttgart: Calwer Vereinsbuchhandlung, 1928) 또는 『그리스도의 역사』, 한제호 역(서울: 자연, 2007)는 이런 슐라터의 방법론을 철저하게 적용한 기념비적 저작이다.

45) Schlatter, Das christliche Dogma(Stuttgart: Calwer, 1984), 263.

46) Schlatter, The Theology of the Apostles, trans. A. Köstenberger(Grand Rapids, MI: Baker Books, 1999), 10-11.

47) Morgan, “Introduction: The Nature of New Testament Theology,” 31.

48) Morgan, 14.

49) Morgan, “Notes to Wrede,” 각주 1번, 182-183.

50) Wrede, 116.

51) Morgan, 25.

52) Morgan, 34-35.

53) Schlatter, 117, 123, 156-157.

54) Schlatter, 119.

55) Schlatter, 155.

56) Schlatter, Das christliche Dogma(3rd ed.; Stuttgart: Calwer, 1977), 373(this is requoted from P. Stuhlmacher, “Adolf Schlatter’s Interpretation of Scripture,” NTS 24[1978], 439).

57) Hendrikus Boers, What is New Testament Theology? The Rise of Criticism and the Problem of a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Philadelphia: Fortress, 1979), 57.

58) Morgan, 24.

59) Wrede, 96.

60) “조직신학자가 성서신학의 결과를 어떻게 입수하여 어떻게 다룰 것인가? 그것은 조직신학자 자신의 소관사일 뿐이다..... 신약신학은 그 자체의 목적을 갖고 있다.... 그래서 모든 교의와 조직신학과는 전적으로 무관하다”(Wrede, 69).

61) Morgan, “Introduction: The Nature of New Testament Theology,” 24.

62) 슐라터는 성서가 인간적이고 역사적이며 동시에 신적이고 영적인 문서라고 보았으며 따라서 역사적 연구만으로는 성서이해가 불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성서해석은 역사적 연구를 바탕으로 신학적 해석(어떤 시대의의 독자들에겐 의미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책으로서의 성서 권위를 확정하는 작업)에 이를 때에야 충족스러운 성서해석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Werner Neuer의 2002년 서울 장신 강의안).

63) Schlatter, 146.

64) Hans Rollman, “Theologie und Religionsgeschichte,” 69.

65) Stephen Neill, The Interpretation of the New Testament. 1861–1961(London/New York/Toronto 1964), 337. 영국 성공회 신부는 1938년에 슐라터가 별세하자 그를 오거스틴, 칼빈, 벵엘, 그리고 웨스트코트 같은 “공교회의 공식 신학자” 반열에 들어갈 학자라고 평가하였다(이 글은 현존 슐라터 연구의 최고 대가 중인 일인인 Werner Neuer의 2002년 서울 장신대원 강의안, “Adolf Schlatter: Leben, Werk, Wirkung” 각주 4에서 재인용한 것임). 베르너 노이어는 슐라터의 신학을 그리스도 중심(바울 중심이 아니라), 성서적인 토대 위에 구축된, 그리고 교회의 필요에 응답하는 신학이라고 규정한다(Demgegenüber wollte Schlatter für eine vom Evangelium erneuerte Theologie arbeiten, die christozentrisch, biblisch fundiert und kirchlich verantwortet war. In diesem dreifachen Ziel wußte er sich mit jenen Kreisen des Berner Pietismus verbunden, die ihn zu der Habilitation veranlaßt hatten)(2002년 서울 장신 국제학술대회 강의안. II. Leben. 4. Privatdozent in Bern [1880–1888]).

66) Schlatter, The Theology of the Apostles, 5-7.

67) Boers, 73.

68) Morgan, 21.

69) Wrede, 84.

70) Morgan, 21.

71) Boers, 46-47.

72) Dunn, 5.

73) Dunn, 3-4.

74) Dunn, 7.

75) Morgan, “New Testament Theology,” in ABD Vol. 6, 473-483(특히 474).

76) 역사적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슐라터의 강조는 다음 인용문에 잘 드러나 있다: “It is the historical objective that should govern our conceptual work exclusively and completely, stretching our perceptive faculties to the limit. We turn away decisively from ourselves and our time to what was found in the men through whom the church came into being. Our main interest should be the thought as it was conceived by them and the truth that was valid for them. We want to see and obtain a thorough grasp of what happened historically and existed in another time. This is the internal disposition upon which the success of the work depends, the commitment which must consistently be renewed as the work proceeds(The History of the Christ: the foundation for New Testament theology, trans. A. J. Köstenberger[Grand Rapids, MI: Baker Books, 1997], 18). 그에게 역사적 주석의 목표는 신학적 해석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Wener Neuer의 2002년 서울 장신강의안).

77) “역사의 문제”를 괄호 안에서 넣고 본문만을 최종적인 해석대상으로 삼으려는 최근의 성서신학적 노작들에 대한 논의(특히 월터 브루거만의 <구약신학> 등)를 보려면, 필자의 논문 “구약신학의 쟁점과 전망” (한중식, 한석환 편, 『기독교학의 과제와 전망』[서울: 숭실대 출판부, 2004], 187-222)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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