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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설교[1,404편]〓/성탄절 설교

(지용수 목사 성탄절 설교) 목자들의 성탄(눅2장8-14)

by 【고동엽】 2021. 10.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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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들의 성탄(눅2장8-14)

성경본문: 누가복음 2:8-14

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해마다 <성탄절>이 다가 오면 한 해가 마감되어 가면서 사람들의 마음이 온통 들뜨기 시작 합니다.

<성탄절>을 기해서 시작되는 겨울방학,캐롤,첫눈,카드, 망년회, 연하장, 새해, 연휴,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어우러지면서 우리 사회는 온통 어수선 해지고 들뜨기 시작합니다.

 

우리 어릴 때는 <성탄절> 날 하루를 위해서 12월 한 달 내내 들떠서 살았습니다. 12월이 시작되자 마자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카드를 그리고, 24일 날 밤에 어른들 앞에서 발표회를 하기 위해서 노래와 무용을 연습하고 성시와 연극을 준비하느라고 정신 없이 보냈습니다.

 

24일 날 밤은 으례히 밤을 새우는 것이 전통이었고 이제 도시에서는 찾아 보기도 힘들어졌지만 시골에서는 집집마다 돌아 다니며 기쁘다 구주 오셨네 새벽찬송을 불렀던 일들은 잊을 수 없는 지난 날의 추억입니다.

그 새벽송을 핑게로 해서 밤을 새우면서 선물도 교환하고 목이 아프도록 노래도 부르고 게임도 하고 웃어대고 그랬습니다.

그 밤에 흰눈이라도 내리게 되면 그 밤은 정말로 황홀한 밤이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모두 이같은 추억들이 나름대로 다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옛날 그 어렸을 때의 그 추억을 생각하면 과연 그 때가 좋았었다 하는 생각과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닙니다.

<성탄절>만 되면 세계의 모든 나라 사람들이 다 그렇게 보냅니다. 축제로서 노래를 부르고, 장식을 하고, 선물을 교환하고,추억 거리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들이 오늘 우리에게도 소개된 것들이 많습니다.

 

산타 크로스 할아버지는 홀랜드에서 시작된 것이고, 성탄목은 독일에서 시작되었고, “성탄”에 촛불을 켠 것은 아일랜드에서 시작 되었고, 성탄 카드는 영국에서, 성탄 노래는 팔레스틴에서, “성탄”에 장식을 하게 된 것은 이태리에서 각각 처음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성탄절>을 보다 재미 있게 보내려다 보니까 이런 것들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성탄 노래도 그렇습니다. "오 작은 마을 베들레헴" 은 1868년 미국교회의 부룩스라는 목사님이 만들었고,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는 노래는 1719년 영국교회의 와츠라는 목사님이 만들었고, "그 맑고 환한 밤중에" 라는 노래는 1815년 시어스라는 목사님이 만들었고,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1818년에 오스트리아의 모르라는 신부가 각각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계의 사람들 모두는 <성탄절>만 되면 거의 같은 마음으로 즐기고, 웃고, 노래하며, 카드를 보내고, 선물을 주고 받으며 보내는 축제의 날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도 그렇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에 있습니다.

그 이후 철이 들고 나이를 먹으면서 좀 깊이 있게 생각을 하게 되니까 “성탄”이 이런 것인가 하는 회의를 갖게 되었습니다.

“성탄”의 본 뜻은 그렇게 밤을 새우고, 선물을 교환하며, 웃고, 노래나 하는 것이 성탄은 아니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성탄”의 본 뜻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탄”의 본 뜻을 알려면 오늘 읽은 본문을 자세히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성탄”의 날은 너무나 엄숙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태어나신 소식을 맨 먼저 전해들은 사람들은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제사장들도 아니고, 서기관들도 아니고, 당시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던 랍비들도 아닙니다.

그들은 평소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던 목자들이었습니다.

이 목자들은 누구입니까.

1. 이들은 그 당시 "소외계층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당시 예루살렘이나 도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광야나 산지, 벌판 같은 곳에서 양이나 치며 야영생활을 하고 살던 그런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진행되는 각종의 종교행사에는 참석 조차도 할 수 없었던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각종 직업 가운데서도 가장 낙후되고 소외된 사람들이나 해 먹고 살던 양을 치는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시대의 소외계층 입니다. 무시되고 소외되고 도외시 되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이 그 누구보다도 이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졌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나심을 제일 먼저 알았어야 할 사람들은 제사장들이었고, 서기관들이었고, 당시 선별된 사람들이었어야 합니다.

그들은 그 사회의 기득권자들이었고 종교적인 전문가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지식인 계급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정작 그들은 메시야가 탄생되는 과정에서는 철저하게 무시되었고 그런가 하면 대중들에게는 관심 조차도 없었던 그 황량한 벌판에서 양이나 치며 살아가던 목자들에게 주님의 나심을 제일 먼저 알려주신 것은 분명 하나의 기적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성탄”의 신비 입니다.

이것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아주 분명하게 시사해 주는 모습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이같이 무시되고 소외된 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셨다는 말입니다.

그의 탄생의 장소가 마구간이라는 사실이 또한 이를 뒷받침 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탄절>만 되면 교회들이 으례히 소외된 사람들과 버려진 이웃들에게 새삼 관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2. 이 목자들은 "성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비록 사람들이 목자라는 직업을 귀하게 알아주지도 않았고 그 사회에서 뒤지고 소외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기는 했지만 그들은 누구보다도 책임감이 있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한 밤중에 자기들의 양떼를 지켰다고 했습니다.

목자라는 직업이 어려운 것은 예고 없이 다가 오는 맹수들의 습격과 도적떼들을 지키기 위해서 한밤중에도 잠을 잘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양치기에게 부여된 제일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한 밤중에도 꼬박 밤을 새워가며 양을 지켜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더구나 그들이 지키고 있는 양은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데 사용되는 제물용 양입니다.

우선 그 양들은 몸에 상처를 내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이 양들은 제물로 바쳐질 양들이기 때문에 살이 찌고 실하게 길러내야 합니다.

그 일은 하나의 사명감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그런 일입니다.

그런데 이 목자들은 그 밤에 자기들에게 주어진 양들을 지키느라고 그 밤을 꼬박 새우고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할 일을 위해서 성실하게 일을 수행하고 있던 그 밤입니다. 그런데 그 밤에 이 목자들이 주님의 탄생 소식을 제일 먼저 듣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그 목자들에게 제일 먼저 “성탄”의 소식이 전해지게 된 배경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무슨 일에 종사하고 살던지 그 일에 하나의 사명감같은 정신을 가지고 일을 하면서 살아 간다고 하는 것은 분명한 축복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지난 시대에 부자였던 록펠러라는 사람은 장래성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첫 사랑에서 버림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후에 세계적인 백만장자가 되어서 세가지 면에서 기적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첫째는 가장 가난했던 사람이 가장 부자가 된 일이고 둘째는 가장 많은 돈을 남에게 준 사람이며 셋째는 재벌 중에서 가장 장수하여 98세 까지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나중에 그같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던 동기를 그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말하기를 "나는 매일 같이 성경을 읽으며, 바르게 살고, 부지런 하며, 내게 주어진 일을 하나님이 특별히 주신 일로 알고 미친 듯이 일을 했기 때문" 이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탄”의 기쁜 소식을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제쳐두고 하필이면 들에서 양을 치고 있던 목자들에게 들려 준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단순히 그들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겠습니까?

그것은 한 밤중에도 자기들에게 맡겨진 양들을 정성껏 지킬 수 있는 그 성실함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같은 정신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좋아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누구보다도 자기에게 부여된 양들을 생명을 걸고 잘 지켰던 다윗을 불러서 이스라엘의 목자로 삼으셨던 아닙니까?

이것이 사람들이 그렇게 무시했던 목자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3. 이 목자들에게는 "메시야 대망신앙"이 있었습니다.

목자들은 가난은 했지만 그들은 적어도 하나님께 제물로 사용될 양떼를 치는 일에 기쁨과 사명감 같은 마음을 가지고 그 일을 해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메시야 대망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목자들은 한적한 들에서 양을 치면서도 자꾸만 허물어져 가고 있는 조국의 앞날을 걱정했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이 나라가 망하고 말 것인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메시야가 와 줄 때가 되었는데 왜 이렇게 지체되고 있는 것인가. 그러면서 이 목자들은 메시야의 도래를 고대하면서 그날 그날을 기도하면서 양들을 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결실은 언제나 심는자만이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 않은 사람은 거둘 것이 없습니다. 그들에게 메시야를 대망하는 신앙이 없었다면 하나님이 누구 보다도 먼저 성탄의 소식을 그들에게만 전해 주셨을리가 없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먼저 그들에게 이 소식이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그만큼 이 메시야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망의 신앙이 컷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기다리는 자에게 먼저 주어지고 응답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예루살렘에 안나라는 노인과 시므온이라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메시야의 탄생을 고대하면서 살아갔던 사람들 입니다.

이분들은 무너져 가고 있는 조국의 쓸쓸한 모습을 지켜 보면서 이 때쯤 메시야가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셔야 할텐데 근심하며 조국의 앞날을 걱정 하며 주님의 탄생을 위하여 기도하며 경건하게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그들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그들은 이 탄생한 메시야를 품에 안아 보고 죽는 영광을 안았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성탄절>은 기다리고 대망하는 정신이 있는 사람들에게 만이 의미가 있고 뜻이 있는 날입니다. 제사장이나 그 밖의 종교인들을 다 비켜 놓으시고 유독 들에서 양을 치며 초라하게 살아가고 있던 목자들에게 성탄의 소식이 전해진데는 이같은 메시야 대망의 신앙이 있었기 때문임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4. 그러면 목자들에게 주어진 "멧시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서워 말라" 는 말입니다. 하늘에서 "무서워 말라"는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주석자는 이것을 "하늘에서 선포된 설교"라고 했습니다.

한 밤중 어두운 광야에 난데 없이 천사들이 나타났으니 목자들이 얼마나 무서워 하며 놀랐겠습니까?

사람은 이 세상에서 무서워 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 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자연의 재해를 무서워 했습니다.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이 없었을 때니까 자연을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는 일입니다.

“일기의 변화”, “태풍”, “홍수”, “지진”, “화산” 등 이것은 옛날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했던 것들 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땅을 섬기고, 해를 섬기고, 산을 섬기고, 그랬습니다. 자연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대 보다도 지식이 가장 발달되어 있다는 오늘에 와서 가장 무서운 것은 자연이 아니고 사람입니다.

이 시대에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입니다.

이웃이 무섭고, 동료가 무섭고, 낮선 사람은 더욱 무섭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 해야 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밤이고 낮이고 마음을 놓고 길을 걸어 다닐 수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강도 같이 보이고 인신매매범 같이 보입니다.

그래서 문을 이중 삼중으로 걸어 잠그고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이 시대의 비극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놀랠일들이 많은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실존입니다.

죽음 입니다. 어제까지 튼튼하던 사람이 오늘은 싸늘한 시체로 변하는 세상입니다.

그것도 세상을 많이 산 사람이 아니고 젊은 분이 하루 아침에 싸늘한 시체로 변해버릴 때 우리는 그 앞에서 할말을 잊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을 두려워하게 하는 것들이고 우리를 무서워 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목자들도 그 밤에 놀라고 또 놀랬습니다. 갑자기 천사들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나타난 천사들은 그들을 놀라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주려 함이었습니다. " 두려워 말라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탄생하였느니라"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의 소식을 기쁜 소리, 기쁜 소식, 즉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모든 인간들이 이 세상에서 두려워 해야 하는 “자연으로 부터의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실존으로 부터의 두려움” 등 이 땅의 모든 두려움으로 부터 우리를 해방시키시기 위해서 이 땅에 구세주가 오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기쁜소식이라고 하고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칼 빨트의 말대로 "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인간은 땅에만 있다면 하나님과 인간은 서로 사귈 수가 없고 영원과 시간이 서로 만날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친히 인간과 친구가 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인간으로 태어 나신 소식"을 목자들은 그 밤에 제일 먼저 듣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전하여 준 하늘의 멧시지입니다.

 

이것이 “성탄”의 의미입니다. 밤을 새우며 노래하고 선물이나 주고받는 것으로 성탄을 대신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목자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하며 메시야 대망의 신앙을 가지고 경건하게 살아갈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메시야의 탄생을 가장 먼저 알려주신 것 처럼 오늘의 <성탄절>에도 이같은 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성탄”을 맞이 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2021년도가 <성탄절>과 함께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온갓 두려움과 불안에 쌓여 살아가고 있는 나약한 우리에게 이같은 두려움을 다 몰아내시기 위하여 오시는 우리 주님을 기쁨으로 영접할 수 있는 성탄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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