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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가 가까와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 뒤에 미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지금으로부터 약 3300여 년 전에 이스라엘 민족은 430년 동안이나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큰 구원의 능력으로 출애굽하여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36년 동안 일본의 속국으로 지배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당시 일본은 우리들의 언어, 풍습, 전통 등 우리들의 모든 것을 말살시키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여 민족의 혼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만일에 36년 지배에서 이삼십 년만 더 연장되었더라면 우리는 독립하지 못할 뻔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오늘날 미국에서 이민 생활을 하는 분들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이민간 세대와 그들의 이세․삼세와는 생활 양식에서부터 모든 사고가 확연히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세․삼세들은 한국말은 물론이고 한국적인 문화․생활 등은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일점 오세'라고 해서 일세와 이세와의 중간 세대를 지칭하는 새로운 용어가 생길 정도로 그 세대간의 차이는 급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시간이 흘러갈수록 서양화되어서 민족혼이 점점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없어진 민족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제 다시 이스라엘 민족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들은 43년이 아닌 43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남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여기서는 일세․이세 정도가 아니라 430년 동안이나 죽고 나고, 죽고 나고 해서 대가 이어져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민족혼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이야기가 아닙니까? 더군다나 그들은 한 세대 한 세대가 자유인이 아닌 노예로서의 일생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노예였고 자식이 노예로서, 노예 아닌 것을 생각해 볼 수 없는 생이었습니다. 자유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생으로 430년을 대로 이어가며 살다가 어느 날 하나님의 능력으로 60만 대군으로 뭉쳐 출애굽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자유인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요, 하나님의 주권적인 기적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계시적 사건이요, 말씀으로 오늘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역사에서 모세를 택하시어 쓰셨습니다. 즉 모세를 통하여 그 민족을 구원하시고 교육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출애굽 사건을 가능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10가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이 재앙 때문에 바로 왕은 억지로 손을 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게 됩니다. 능력 많으신 하나님께서 한두 가지 재앙으로도 충분히 애굽을 굴복시킬 수 있을 텐데, 왜 10가지나 되는 재앙을 내리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왕과 애굽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 주고, 또한 그들로 하여금 계속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계시였다고 봅니다. 또 한편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나를 직접 몸으로 체험하게 하여 깊이 인상되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10가지 재앙 중에서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죽음을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온 애굽 사람들의 집안의 장자가 모두 죽어 갔습니다. 그리고 첫해에 낳은 짐승까지 죽어 갔으니, 온 애굽이 송장 냄새로 진동했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때에 바로 왕은 드디어 무릎을 꿇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예물까지 주면서 빨리 나가라고 보내어 줍니다. 상상만 해도 얼마나 신나는 일입니까? 이런 놀라운 역사로 60만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을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들은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지형상으로 가나안에 들어가는 길은 애굽에서 출발하여 북쪽으로 갔다가 동쪽으로 가면 도착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인도하지 않으시고 동쪽으로 동쪽으로 계속 이끌어서 홍해의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3:18에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라고 하나님께서 길을 돌리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제 앞에는 홍해요 뒤에는 애굽 군대가 따라오고 좌우에는 절벽으로, 그야말로 독 안에 갇힌 쥐입니다. 꼼짝없이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이렇게 길을 돌려서 인도하시는 것입니까? 출애굽기 13:17에 보면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홍해를 열었다가 닫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그 능력을 믿고 강하게 서서, 다시는 애굽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을 가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홍해 사건은 분명히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동시에 구원의 사건이요 놀라운 기적입니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하나님의 그 큰 권능에 대한 사람들의 응답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출애굽 사건의 의미를 바로 알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건에 대한 의미를 알고 깨닫는 사건, 믿는 사건, 그리고 받아들이는 사건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받아들이는 만큼 은혜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는 무엇입니까? 첫째,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알고 믿어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셨고 가나안의 약속의 땅을 주셨으니, 과거의 은혜를 믿고 앞으로도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기를 원하십니다. 정말 하나님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430년 동안이나 노예 생활을 하던 자를 구속했고, 완악한 바로 왕의 마음을 깨뜨려서 해방을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안심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막에 물이 없고 홍해가 앞을 가로막아도 지금까지 역사 하신 하나님이 현재도 함께 하시니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넷째는, 어떤 시험이 와도 두려워 말고 전적으로 의지하고 순종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믿음 안에서 전적으로 위탁하는 백성이기를 하나님은 소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소원과는 반대였습니다. 애굽 군대가 따라올 때, 뒤에서 지켜 주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두려워했습니다. 과거에 역사 하신 하나님이 오늘 이 사건에도 함께 하신다는 귀중한 사실을 잊어 버렸단 말입니다. 드디어 원망까지 하게 됩니다. 현재의 고난 때문에 과거의 은혜는 물론 미래의 약속까지도 저버리는 현실주의자들이었습니다. 지금 당장 먹을 것이 있으면 좋다고 야단이고, 좀 불편하거나 먹을 것이 없으면 죽겠다고 아우성을 치며 원망하는 백성입니다. 또한 그들은 지극히 인간적인 판단에 의존하여 불평을 했습니다. 홍해와 애굽 군대에 의해 사면초가가 된 이 형편에서도 모든 것을 인간사로만 생각했고, 합리적인 방법만이 그들을 살릴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절망했습니다. 답답하게도 하나님의 능력과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교육시키시어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역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깨닫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앞뒤가 막히고 옆도 막히면 위로 올라갈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사방이 막히면 끝이라고 자포하게 되는데 위를 바라보는 마음, 즉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그들은 자유의 소중함을 몰랐습니다. 본문에 보면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하고 자유가 무엇인지 정말 모르는 사람들의 항의를 했습니다. 노예 생활로 평생을 살기보다는 자유인으로 며칠만이라도 살고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노예 해방으로 그의 업적이 더욱 빛나고 있습니다. 그가 노예 해방 운동을 시작하는 초기 단계의 어느 날, 각료들이 모여서 정식으로 항의했다고 합니다. 만일에 대통령께서 노예 해방 운동을 계속 주장하시면 모든 각료들은 총 사퇴하겠다는 일종의 협박입니다. 이 때 링컨은 하루만 여유를 달라고 해서, 온종일 밤을 새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진리와 정의가 어디 있으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옵소서." 다음 날 아침, 그는 각료들을 모아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자유와 노예가 공존하는 국가는 있을 수 없습니다. 자유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하면서 노예를 그냥 둔다면, 이것은 자유 국가가 아니란 말입니다. 또한 자유 없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생각으로 그는 끝내 전쟁까지 치르면서 노예 해방 운동을 관철시켜 오늘의 자유 국가의 토대를 닦아 놓은 것입니다. 자유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아무리 강조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간혹 협소한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협소한 민족주의는 소아병"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민족주의가 지상론 같아 보이지만, 과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족주의를 많이 주장하는 사람일수록 심한 독재를 했습니다. 또한 공산주의자들도 민족주의를 제일로 내어놓습니다. 민족주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유입니다. 자유와 진리와 공의가 있고, 그 위에 민족이 있는 것입니다. 민족주의를 지상주의로 생각하는 것은 큰 오판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자유와 민주주의, 정의와 진리가 있을 때에만 그 위에 민족이 있으며 그 민족의 장래와 국가가 존재하고 안정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자유와 노예가 공존한 채로는 국가의 존재가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 본문은 이스라엘의 놀라운 구속사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들에게 믿음 갖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그 믿음이 지식으로 발전하기를 원하며, 그 지식이 용기로, 그 용기가 오늘을 이기는 신앙적 행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고로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 14:13)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한마디 더 추가하면, 조용히 있어서, 하나님인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며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행하는가를 깊이 생각하고 깨달으라고 덧붙이고 싶습니다. 이 깨달음이 믿음이 되고 이 믿음이 오늘을 이기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감스럽게도 첫 번째 당하는 시련부터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본문에서 일어난 사건이 바로 열 가지의 놀라운 재앙 뒤에 경험하는 첫 번째 시련입니다. 그렇게도 엄청난 기적을 보고도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여기까지 끌어와서 죽이려 하느냐"고 원망하며 오히려 노예 생활을 부러워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민족이 겪은 8․15는 분명히 우리에게 주신 유월절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6․25는 홍해가 갈라지는 것과 같은 기적이며, 이 40년간의 생활을 광야 사건이라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이요 기적이요 권능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 민족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사건 사건에서 보아 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것을 알기를 원하시고 믿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일본 속국으로 있을 때를 다시 회상해 보면 그 속에서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일본은 우지나라만 빼앗은 것이 아니라 언어, 도덕, 민족적 긍지, 문화, 역사, 종교 등 모든 것을 빼앗아 갔습니다. 저는 그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언어 때문에 여러 번 곤혹스러움을 겪은 일이 생각납니다. 학교에서는 한국말을 전혀 못하게 했고, 집에서는 일본말을 전혀 못하게 했기에, 가끔 혼란이 와서 실수를 하면 혼이 났습니다. 학교에서는 일본말을 해야 했고, 집에서는 한국말을 해야 하는 것이 아주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러는 동안에 언어를 잃게 되고 민족의 긍지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초등학교 교장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훈시할 때, 우리 민족성이 나빠서 한 사람씩은 일을 잘하는데 두세 사람이 모이면 분쟁하고 분열한다고 이야기했다가 문제된 적이 있습니다. 이 선생님은 일본 정치 하에서 공부했으므로 일본 선생님들이 조선 사람을 무시하면서 하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놓는 실수를 했던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분열하지 않는 민족이 어디 있으며 싸우지 않는 민족이 어디 있습니까? 일본 사람들이 우리 민족을 욕하느라고 말했던 민족성 분열 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니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모릅니다. 또한 그들은 우리의 도덕을 말살했습니다. 그 당시 유곽을 고을마다 세워서 젊은이들로 하여금 나라 잃은 서러움에 술을 많이 마시도록 유도했던 것입니다. 술잔 돌리기라든지 정신없이 폭음하는 풍습이 그 때부터 생겨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청년들을 완전히 타락시키려고 한 무서운 의도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흰옷을 즐겨 입는 우리 풍습까지도 방해했습니다. 여름에 흰옷을 입고 시장에 나온 사람들의 등에다 먹물을 까맣게 칠해 주기까지 한 것입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이렇게 우리의 풍습이나 역사를 완전히 왜곡하려 들었고, 더욱 심각한 것은 종교까지 말살하려 했던 것입니다. 동리마다 신사를 만들어 12시만 되면 소위 일본 천황이 있는 곳을 향해 절을 해야 했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일본에 가서 '천황'의 집이라는 곳에 들러 보았습니다. 그 주변은 옛날에 한국의 노예들을 잡아다 강제로 일을 시켜서 만든 연못이 있는 것을 보고 침통함을 느꼈습니다. 이 '천황'의 집이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의 정신을 말살하고 죽이기까지 했는지 모릅니다. 이것을 반대하다가 많은 주의 종들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해방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써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가 있습니다. 아니 지금도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기적 속에서 내가 너와 함께 하는 것을 알라.
그리고 이것을 믿으라"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경륜과 뜻이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독립운동가였던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18세에 독립운동에 헌신하여 미국 상해 등 여러 곳을 다니며 수고하시다가 1938년 그해에 60세로 옥사하셨습니다. 그가 미국에서 흥사단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할 때, 몇 가지에 중점을 두고 일하셨습니다. 첫째는 "인재를 키웠습니다." 많이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곧 애국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청소하는 것입니다." 먼저 자기 집 안팎을 깨끗이 치우며, 특히 유리창을 열심히 닦았습니다. 그리고는 온 동네의 유리창과 화장실도 청소했습니다. 그 이유는 외국 사람들이 볼 때, 한국 민족은 깨끗한 민족이라는 인상을 주어 그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집을 빌려주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애국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 민족을 향하여 원하시는 바가 있습니다. 이제 믿음을 가지고 그 뜻을 깨달아서 우리에게 주어진 귀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조용하여 내가 하나님 됨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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