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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 바른 이해

by 【고동엽】 2006. 2. 7.
 
 

 

장로 바른 이해



감독(episkopoV)(에피스코포스'):  감독은 교우들을 돌보아주는 역활의 뜻을 지니고 있다.  즉 감독은 교회를 다스리는 직능과 더불어 교인들의 생활전반을 보살펴주는 책임을 맡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감독의 직은 유대교에서는 찾아볼수 없었고 바울의 교회 직분 목록(고전 12:28 혹은 엡4:11)에도 나와 있지 않다. 그러므로 초대교회에서 장로는 직명인데 비해 감독은 그 직의 내용을 말한것으로 이해 할수 있다.  



한편 초대 교회에서는 '장로'는 말씀 선포를 전담한 '가르치는 장로'와 봉사 기능을 전담한 '다스리는 장로'가 있었다. 그러나 사도시대 이후 교회 직제가 발달 되면서 점처 감독직을 장로직과 구분하여 감독직을 장로직보다 위에 두었는데 그것이 곧 로마 카톨릭과 동방 정교회 등에서 볼수 있는 감독직이다.



그러나 어느 조직에 있어서나 그 조직에 필요한 여러직분의 직급과 직책 및 체계화는 고정 불변의 본질적 요소가 아니라 그 조직의 본 뜻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하여 언제나 제조정할수 있는 가변적 형식이다.

 

그래서 교회의 직분은 비상직분과 통상직분을 구분할수 있는데 비상직분은 초대 교회 창립을 위한 존재했던 사도. 선지자. 전도자 등으로 오늘날에는 더 이상 존재할수 없는 직분들이다.



그러나 '통상직분'은 비상직분자들이 사라진 이후 교회가 계속 존속하기 위하여 효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항존직으로 세우신 장로 집사 등이다. 그런데 장로직은 다스리는 장로직을 '감독'으로도 불리웠음을 알수 있이다(행20:28:  딤전3:1,  딛1:5-7).

 

그래서 '장로'는 연장자 혹은 유대교에 주로 썼던 명칭이고 '감독'은 관리자 혹은 이방인 교회에서 주로 쓰였던 명칭이기도 하다.



그리고 두번채로 '가르치는 장로'에 대해서는 교회초창기에는 사도와 선지자 전도자등이 가르치는 직무를 맡았지만 이들이 죽고 사라지자 장로들이 가르치는 일도 맡게 된것이다.

 

따라서 장로들 중에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자들을 구별하여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도록 했던 것이다. 그들을 엡4:11절에 목자(목사가 아니고 그러나 후에 목사로 돌변)(ποιμενας-포이메나스)로 불리워지기도 했다.



오늘날의 교회에서 장로와 집사와 더불어  목사 직무는 다변화 되어 교회의 각종 직무의 통합 조정자 및 그 대표자로서 기능까지 가진 직분이 되었지만 그러나  근본적으로 목사의 직무는 가르치는 직무를 가진 '장로(πρεσβυτεροζ-푸레스 뷰테로스)의 직분'에 비롯된것이라 할수 있겠다.



그래서  예장통합총회는 장로 노회장의 설교권과 축도권 문제로 한때 골머리를 앓았던 적이 있었는데 장로의 설교권과 축도권을 인정 가능하다는 쪽과 불가능하다는 쪽이 첨예한 대립을 보이며 한동안 교계를 들썩거리게 했다.

 

가능하다는 쪽에서는 장로도 성직자이고,  장로직도 설교를 할 수 있고, 장로직도 당회장을 할 수 있고, 장로직도 성례전을 집례할 수 있고, 장로도 축도할 수 있다는 등의 주장들이었다.



그 이유로서 미국 장로교회(PCUS)에서 1832년에 처음으로 장로직을 중시하는 논문이 프린스턴 대에서 나와서 1834년에는 목사 안수에 장로가 가담하는 일이 있으면서 부터였다.

 

그리고 그들 헌법에 ‘다스리는 장로’(Ruling Elder)와 ‘가르치는 장로’(Teaching Elder)로 하며, 목사직을 장로직에서 나오거나 분류를 한 것처럼 한 것 때문이다.

 

결국 1879년에는 이런 문제로 미국 장로교회가 양분한 것인데, 바로 이런 헌법이 한국 장로교회에 들어 온 것이다. 그러나 미국 장로교회는 그 때 갈라진지 120여년 만에 통합하며 문제시 되는 ‘다스리는 장로’와 ‘가르치는 장로’설을 그들 헌법에서 삭제하고 폐기 처분했다.

미국 장로교회가 1885년에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부터 한국 장로교회는 ‘장로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설교와 치리를 겸하는 자를 목사라 하고 치리만 하는 자를 장로라 한다’(4장 22조)로 복제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야고보서 5장 14절에 “너희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라고 되어 있으나 그 때 목사가 있었다면 “너희중에 목사들이 있느냐 청할 것이요”라고 했을 것이다.

 

니케아 예루살렘 공의회에 목사의 참석이 없었다. 주후 200년 후기에 와서 특별히 영성이 있고 성경 지식이 능한 사람을 선별하여 세운 직이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1977년 신구교가 공동으로 원뜻을 살려 목자로 번역해 놓았다는 것이다.



집사가 세례주었다는 성경적인 근거는 있어도 목사가 세례주었다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  상술한 바와 같이 목사직은 제사장직에 계승이며 예수님이 직접 부르셨다는 말씀은 전혀 성경에 근거가 없다.

 

장로교회는 헌법을 성경위에 두어서는 안되며 잘못된 헌법을 하루속히 개정하고 비성경적인 제도개혁, 비성경적인 의식개혁, 비성경적인 헌법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이상이 장로입장 표명이었다.



그러나 반대쪽에서는  목사직이 장로직에서 분류되거나 종속되는 성서적 근거가 전혀 없다.상식적으로 목사직은 장로직에서 나온 직분이나 분류된 직분이나 종속되는 직분이 아니다. 목사직은 장로직에서 나온 직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부름을 받으면서 나온 직분이다. 목사직의 구약적 기원은 제사장과 선지자와 랍비와 서기관이다.

그리고 주님이 오셔서는 열둘을 직접 사도로 선지자로 복음 전하는 자로 목자(Pastor)로 교사로 부르신 직분을 말한다. 목사의 직분이 장로직에서 나왔다거나 분류가 되었다거나 기인된다거나 종속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언어도단이다.

프레스비터(Presbyte)는 ‘장로’(長老)보다 ‘원로’(元老)  성서에는 장로교회라는 말이 없다. 장로교회라는 말은 칼빈이 한 말도 아니다. 장로교회라는 말은 칼빈이 죽은 후 60여 년이 지나 스코트랜드 교회에서 처음 한 말이다.



그들이 말한 장로교회란 목사가 목회를 하는데 있어서 협력자들을 어느 직분으로 할 것인가를 놓고 여러 해 동안 승강이를 벌이다가 ‘감독제도'가 아니라 ‘원로회 제도'로, 교회정치와 치리를 하여야 한다는 의미에서 ‘피레스비테리안 처치’(Presbyterian Church)를 말한 것이다. 이는 ‘장로들의 교회’(Elder's Church)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로회 정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교회’라 한 것이다.

장로직은 소명을 받아서 임직이 되는 직분이 아니며, 신학교육과 목회훈련을 받아서 시험을 치거나 자격을 따거나 인허를 받아서 임직되거나 파송되거나 위임되는 직분이 아니다. 장로직은 목회직이 아닌 대의직(代議織)의 참정직과 치리직이다.



장로직은 모세 때부터 나라와 민족의 정치적이며 의회적인 대의직이었으며 원로직이었다. ‘70인 의회'는 12지파에서 6인씩 대의원으로 뽑았다.


물론 마을이나 성읍의 노인들은 대의직이 아닌 장로나 원로 그대로 였으나 ‘시나고구’(회당)나 ‘게루시아’(시찰회)나 ‘프레스비터리’(노회) 나 ‘산헤드린’(총회)의 총대일 때는 반드시 대의직으로 선출됐다.

장로직이 교회의 직분이 되기 시작한 것은 주님 이후의 사도교회에서 사도들이 일손이 부족하였을 때 회당에서 개종한 원로들 중에서 선출하여 임명하였다.

 

교회의 정치적인 문제나 치리될 문제가 있을 시에는 사도들이 장로들과 함께 원로회의로 모여서 치리하였다. 사도들은 장로직을 목회의 동반자(파트너)로 하지 않았다. 장로직은 교인들과 마찬가지로 목사의 목회를 받아야 하는 본분과 사명에 있었으며 필요에 의하여 사도들이나 목회자들이 요청하는 일에 협력하였다.



장로가 목사의 직무를 하고 싶으면 신학교로 들어가 목사가 되는 소정의 길을 밟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목사의 업무나 직무를 수행하고자 하는 것은 불법이며 무법이며 빼앗음이다. 이같이 반대쪽의 변론이다.



결론적으로 오늘날의 교회에서 장로와 집사와 더불어  목사 직무는 다변화 되어 교회의 각종 직무의 통합 조정자 및 그 대표자로서 기능까지 가진 직분이 되었지만 그러나  근본적으로 목사의 직무는 가르치는 직무를 가진 '장로(πρεσβυτεροζ-푸레스 뷰테로스)의 직분'에 비롯된것이라 할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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