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하면 더 얻습니다 (신명기 2장 26-37절) < 먼저 평화를 제안하십시오 >
인간 사회에서 전쟁을 완전히 막지는 못해도 최대한 평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십자가란 의와 평화를 위한 희생입니다. 희생양이 되어 잡혀 먹히면 그 희생이 감동을 일으킵니다. 목회자의 참된 카리스마는 희생양이 되려는 모습에서 나타납니다. 왜 예수님은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납니까? 십자가의 희생으로 마음속에 들어오셨기 때문입니다. 희생적인 삶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복된 모습입니까?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늘 평화를 추구하십시오. 싸움 많은 세상에서 늘 전쟁보다는 평화를 앞세움으로 자기상실이 없게 하십시오. 십자가의 희생을 외면하고 타인을 외면하면 자기상실의 길로 가게 됩니다. 인기를 위한 열정으로 살지 말고 인격을 위한 열정으로 사십시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했으면 이웃을 형제자매로 여기고 갈등과 다툼으로 길 잃은 사람들에게 평화로 가는 이정표가 되십시오.
가나안을 향해 갈 때 모세는 헤스본 왕에게 전쟁 전에 평화 제안을 하면서 그들의 땅을 통과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26-28절). 그 제안을 헤스본 왕 시혼이 완강하게 거절해서 결국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싸움에서 이스라엘은 대승해서 요단강 동편의 광활한 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암몬 족속의 땅인 얍복강 가와 산지에 있는 성읍들과 하나님께서 가기를 금하신 모든 곳은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37절).
본문은 특별히 양보하는 삶의 중요성을 교훈합니다. 그저 통과만 하겠다는 이스라엘을 믿고 헤스본 왕 시혼이 자기 땅을 통과하도록 길을 내어주고 양보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시혼은 자기 땅의 통과를 거절하고 평화 제안을 거절해서 결국 모든 소유와 생명을 빼앗겼습니다. 자신이 조금만 양보하면 가정, 교회, 사회가 평화를 찾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많은 불행과 갈등은 양보가 없어 생기는 것입니다.
< 양보하면 더 얻습니다 >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시혼 왕의 것을 빼앗아 말씀에 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달란트 비유에서도 주인은 불순종했던 한 달란트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순종했던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었습니다. 적게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많이 가진 자에게 준다는 뜻이 아니라 불순종하는 자의 것을 빼앗아 순종하는 자에게 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양보하지 않으면 더 빼앗깁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양보하면 더 얻습니다. 특히 평화와 평안을 얻습니다.
‘양보하는 삶’과 ‘순종하는 삶’은 속성이 유사합니다. 자기 뜻을 양보하는 삶이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양보는 성숙의 지표입니다. 미성숙한 사람은 ‘노(No)’라는 말을 많이 할 구실을 찾지만 성숙한 사람은 ‘예스(Yes)’라는 말을 많이 할 구실을 찾습니다. 양보를 모르는 사람은 ‘노’라는 말은 잘 할 줄은 알지만 잘 받을 줄은 모릅니다. 반대로 ‘예스’라는 말은 잘 받을 줄만 알고 잘 할 줄은 모릅니다. 결국 많은 것을 잃습니다.
‘예스(Yes)’를 잘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십시오. 생각 없는 ‘예스맨’이 되라는 뜻이 아니라 “예스!”를 잘 하면서 십자가를 지고 양보할 줄 아는 ‘예수맨’이 되라는 뜻입니다. 양보하면서 더욱 가치 있는 것을 얻는 십자가의 삶을 추구하십시오. 대개 보면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사람이 남보고 말을 잘 안 듣는다고 말하고 가장 결함이 많은 사람이 가장 비판도 많습니다. 남의 말을 잘 안 듣고 양보할 줄 모르면 하나님의 마음도 잃고 사람의 마음도 잃습니다.
양보와 순종을 아는 사람이 교회를 떠나면 “아쉽다!”고 하지만 양보와 순종을 모르는 사람이 교회를 떠나면 “앓던 이가 빠졌다!”고 합니다. 결국 양보와 순종이 없는 삶처럼 불행한 삶은 없습니다. 양보하려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지만 양보를 모르는 마음은 사탄이 주는 마음입니다. 길을 열어줄 때 길이 열립니다. 힘을 가지기를 힘쓰되 그렇게 가지게 된 힘을 힘써 절제할 때 내적인 평안과 외적인 평화를 동시에 얻습니다.
정의와 평화를 위해 때로는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는 말도 맞는 말이지만 역사상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졌던 전쟁을 통해 수많은 더욱 큰 비극들이 벌어졌습니다. 전쟁은 대량살인의 통로이기에 전쟁은 최후의 대안이 되게 해야 합니다. 전쟁에 이기는 길보다 평화를 지키는 길이 참된 지식이고 참된 능력입니다. 평화는 하나님과의 견고한 관계 속에서 얻어지는 결과물입니다.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도 십자가를 지고 양보하는 삶을 통해 더 많은 소중한 것들을 얻고 평화를 이뤄내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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