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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요한 믿음! (약 2:1-9)

by 【고동엽】 2022.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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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요한 믿음! (약 2:1-9)

 

경제문제를 전문으로 연구 하는 학자들의 사이에서는 사업이라는 말과 경영이라는 말의 개
념을 구분하여 사용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우리가 사업이 든 경영이든
그게 그건가보 다 이렇게 그저 보통으로 그 렇게 이해하고 있지만은 학 자라고 하는 것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좀 더 예민하게 개념을 쪼개서 분석해서 이 렇게 설명하고 이해하고 또
비판하게 됩니다. 그런 학 자적 개념에서 보면 사업과 경영은 다릇습니다. 사업이 라는 것은
돈을 버는 것이 요, 경영이라는 것은 사람을 버는 것입니다. 사업이라는 것은 돈을 관리하는
것이요, 경영이라는 것은 사람을 관 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업이 잘 됐다 하는 말은
돈 벌었다 하는 말이요, 그 러나 경영이 잘됐다 하는 말 은 결국은 그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일하게 됐다. 다 같이 행복했다. 그런말이 됩니다.
그러니깐 예를 들어서 구 멍가게 주인은 자기 혼자서 부지런을 떨면 발술이나 먹 습니다.
그러나 사업이 좀 커지면 이제는 경영에 능력 이 있어야 합니다. 경영능 력이 있어서 많은
사람을 모 아서 적재적소에 세워서 그 들로 하여금 자기능려과 지 식과 경험을 100번,
100% 발휘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창의적으로 일할수 있게 요 새말로 말하면 관리를 잘하
고, 교통정리를 하고, 알선을 하고, 분위기를 만들어 놔야 해요. 이 경영 잘하는 것 그러니까
경영을 잘한다 하 게 되면 일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해야 돼요. 누구도 기 분나쁜 사람이 있
어서는 안 돼요. 그리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능력을 10분 발휘하는 열심히 일하는 그런 환경,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야 경 영에 성공했다 말할 수 있겠 습니다. 그러니까 사업가하 고 경
영인은 다릅니다.
참 미안하지만 우리가 지 금 어디서 고민을 하게 되는 냐 하면은 사업들은 했는데 경영은
못했어요. 경영에서 결국은 실수 했다 하는 말입 니다. 이 경제라고 하면은 우리가 일반적으
로 생각하기 를 자본이 있어야 하고, 지 식이 있어야 하고, 기술이 있어야 하고, 뭐 경험이
있 어야 하고.... 뭐 이런 얘기를 하게 됩니다. 뭐 노하우가 어떻고, 또 로얄티가 어떻 고....
뭐 이런 얘기를 합니다 만은 이거 다 경제에 있어서 꼭 필요한 요소들입니다만은 이보다 더
중요한 최대의 요 소는 인간입니다. 사람입니 다. 사람, 이거 모두다 사람 이 하는 일이예요.
그러기 때문에 인간문제, 인간성 문 제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소프트웨어 중에 가
장 기본적인 것이 인간 자 신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얻지 못하면 되는 일이 아무 것도 없
어요.
그렇다면 인간의 능력 그 사람이 가지는 지식 또 창의 력, 기술 이것을 최대한도로 극대화
할 수 있으려면은 먼 저 신뢰성이 있어야 합니다.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아 시는대로 누군
가가 나를 믿 어준다든가 전적으로 믿어준 다 할 때 나는 용기가 생기 고 삶에 보람도 있고
밤새워 일해도 피곤하지도 않아요.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다 하고 싶어요. 요새말로 말 하
면 충성을 하고 싶단 말입 니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믿어주지 않아요. 나도 나 를 못믿어.
일이 이렇게 되 면은 자기가 가진 지식 아무 소용 없습니다. 자기가 가 진 지식, 능력 아무
쓸데없 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런 고로 이 신뢰성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예요.
이게 기본적이 것이요. 그 건 바로 인간의 문제요 인간 존재와 인간의 성품에 관한 문제가
되더란 말입니다. 신뢰성 우리는 지금 이 문제 에 부딪혔습니다. 흔히 말 하기를 이세상을
사는데 필 요한 것이 아이큐다. 지능 지수다 하고 생각합니다. 또 요새와서는 이큐다. 감 성
지수가 중요하다. 엠큐다. 이제는 도덕성지수가 문제 다. 도덕성에 문제있다. 씨 큐다. 지도
력에 문제있다 했는데 제가 한개 더 만들겠 습니다. 티큐다. 이것은 신 뢰성지수다. 신뢰지
수 어디 까지 믿을 수 있느냐?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느냐? 당신 은 어느정도에 믿는 사람
이 됐느냐? 믿을 수 있는 사람 이 됐느냐? 그것이 그 사회 를 결정하는 것이요. 가장 무서
운 세상이라는 것이 뭡 니까? 못 믿을 세상이죠. 나도 못믿고, 너도 못믿고. 그 의심이 점점
극해지면은 큰일이죠. 흔히 있지 않습 니까? 의부증, 의처증 이건 살인으로 이어지는 거예
요. 그 사람이 지식이 얼마나 있 든 없든 뭐 잘났든 못났든 아무 소용 없어요. 의처증 환자
하고 살면 참 힘들죠. 의부증 환자하고 살면 지옥 이지. 그건 사는게 아니죠. 자 오늘 우리
는 바로 이러한 분위기 속에 있다는 말씀이 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하실때 제자들이
예수 님을 따라다니면서 보니까 예수님의 믿음이 대단해요. 예수님의 그 신뢰지수, 신앙 지
수가 너무 높아요. 풍랑 이 일어날때에도 조용히 주 무세요. 아 깨워서 우리 죽 게 됐습니
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어찌 의심하느냐 예 수님은 마음이 평안하세요. 하나님을 믿으니까.
그런가 하면 또 예수님께서 그 장면 은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어요. 죽은 나
사로 장례까지 치뤘는데 무 덤을 찾아가서 돌을 옮겨 놓 으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소 리지르는데 저는 아무리 생 각해도 그 대목은 참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만
일에 안 나오면 어떡하죠. 나사로야 나오라! 고 소리지를때에 안 나오면 그런 국제 망신이
어 디있습니까? 어쩌자고 무덤 앞에 가서 소리를 지르는 겁 니까? 대단한 대단한 깜짝 놀
랄만한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에 믿음에 스승을 앞에 놓고 제자들이 너무 부끄러 워서 예수
님께 주여! 우리에 게 믿음을 더하소서. 우리 에게 믿음 좀 주세요. 그런 믿음 좀 가지게 해
주세요. 이렇게 부탁드리는 이야기를 성경에서 읽을 수가 있습니 다. 오늘 본문에도 보니까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가난한 자 를 택하여 믿음에 부요하게 했다.
매우 귀한 말씀이올 시다. 요새 세계적으로 문 제가 된 베스트셀러 책이 있 습니다. 프렌시
스 후꾸야마 라고 하는 사람이 쓴 책인데 「트러스트」 라고 하는 책 입니다. 이건 신뢰라
고 하 는 말입 니다만은 그 말의 뜻이 개념이 특별하기 때문 에 번역하지 않고 책의 이름
도 그대로 트러스트 하고 뒀 드만. 한번 사업하시는 분 들은 반드시 읽어 보실만 합 니다.
누구도 권하고 싶습 니다. 그런데 모든 문제 이 경제윤리에 문젠데 경제 윤 리에 바탕은 트
러스트라는 거예요. 신뢰성 지수에 따 라서 경제가 이루어지는 것 이다.
여러분 아시는대로 공산주 의 사회가 하나같이 좀 경제 적으로 어려워졌죠. 그 이유 가 어
디에 있습니까? 기술 이 부족해서, 노력이 부족해 서, 지도력이 부족해서.... 아 니에요. 공산
주의가 경제적 으로 어려워진 이유는 간단 해요. 믿지 않기 때문이예 요. 안믿어요. 그래서
비밀 경찰이 있고, 한 사람에게 명령을 하고 그 뒤에 감시자 를 두고 그 뒤에 또 감시자 를
두고 그 뒤에 또 감시자 를 두고... 삐꺽 하거든 죽 여버려라. 이렇게 살아요. 전부 의심해요.
아무도 못 믿어요. 그러는 동안에 인 간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잠 재력 능력, 지혜, 기술 다
소 멸되고 말았어요. 이게 못 살게 된 이유예요. 그걸 알 아야 합니다. 오늘도 마찬 가지요.
신뢰지수 얼마나 믿느냐? 이게 문제라는 겁 니다. 그런데 그 책에서 지 적하는 말 가운데
이런 얘기 가 있습니다. 한국인은 중 국인보다도 더 유교적이다. 중국에서는 충을 강조합니
다. 충성, 나라에 충성하는 충을 강조하는 것에 비해서 한국은 효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중
국사람 보다더 한 국사람이 더 효를 중심한 효 를 최고의 도구로 생각했더 라 그말입니다.
여기서 어 떻게 되느냐 하면은 결국은 철저하게 가족지향적 사회가 되고 맙니다. 그것도 협
소 한 의미에서 내가 좀 내새 끼, 내자식, 나밖에는 몰라 요. 철저한 이기적이요. 그 결과로
어떻게 되나 봅시다. 양자를 삼을 때도 중국 사람 이나 일본 사람도 양자를 삼 을때 자식이
없으면 남의 자 식 데려다가 양자를 삼아서 법적으로 완전한 자기 자식 을 만들어서 이렇게
가족을 만들고 기업을 이어갑니다. 그런데 한국사람은 절대로 안해요. 양자를 삼을때는 꼭
자기 핏줄기 조카라든가 뭐 하다못해 몇방울이라도 핏줄기가 이어진 것 이렇게 밖에는 못하
는 거예요. 왜 요? 못 믿으니까. 이게 바 로 우리의 좁은 마음이요. 그러면 이렇게 가족지향
적 사회가 되면은 전부가 불신 이 됩니다. 가족들끼리도 이게 친자식냐, 서자냐, 첫째 냐, 둘
째냐, 사위냐, 딸이 냐.... 도대체 이건 끝도 없는 거예요. 무서운 불신이 이 루어 집니다. 그
결과로 이제 보십시다. 우리나라에 큰 기업 이십대 기업을 조사 해 보면은 그 가운데 중역
에 31%가 가족입니다. 가족들 끼리 하는 거에요. 다른 사 람 못세워요. 여기에 문제 가 있
는 것이에요. 결국은 아무도 못믿어요. 가족 갖 다 놓고도 이것이 몇천이냐 에 따라서 또다
시 의심을 하 는 거에요. 이렇게 되니까 비가족들은 소외되는 것입니 다. 가족들끼리 하는일
에 다른 사람이 거기에 충성해 줄일이 없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들 보면은 얼마하다가는 다
그 경험도 쌓고 기술도 좋은 분들이 다 나와버려요. 그 회사에 더 있질 않습니 다. 있을 필
요가 없습니다. 집안 식구들 하는일에 내가 왜 거기서 충성을 하느냐? 언젠가는 쫓겨날텐데
다 나 와버렸어요. 그러니까 ㅏ그 귀한 지식, 노하우가 그냥 빠져나가는데 이 회사가 되 겠
어요. 이래서 한국경제가 어려워진 것예요. 불신 때 문에. 자 이제 예를 들어 봅시다. 일본에
김봉학 장 로님이라고 계시는데 잘 아 시는 여러분 존경하시는 어 른인데 그 일본에서 세계
적 인 큰 프라스틱 회사를 합니 다. 제가 거기 방문했을때 깜짝 놀랐습니다. 이 회사 가운데
나와 더불어 30년 이 상 여기에 근무한 사람이 100명이 넘는다고 그래요. 자기 비서를 소개
하는데 그 비서가 24년 됐데요. 자기 하고 같이 있는지가... 이러 기 때문에 기업이 커지는
거 요. 우리는 아무도 못 믿어 요. 그 소중한 노하우를 다 짤라버려요. 다 내쫓아요. 다 도망
가 버렸어요. 그래 집안 식구들이 붙들고 있는 데 이 기업이 이 세계 경쟁 에서 어림도 없
는 겁니다. 이래서 어려워졌다는 거죠.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해야 합니다. 신용지수입니다.
얼마나 믿느냐? 전적으로 믿어 주어야 또 믿을 수 있 어야 내가 생을 바쳐서 열심 히 일할
수 있겠는데 믿을 수가 없으니까 일할 수도 없 고, 일할 필요도 없어요.
이래서 그 많은 능력들이 다 소장되고 말았다 하는 얘 깁니다. 여러분 경제가 돈 으로 되는
게 아니요. 신용 으로 되는 거예요. 경제가 일어서고 못서고는 바로 신 뢰지수에 정비례한다
는 겁니 다. 불신은 불행을 초례하 고 불행해 지면 불안해 지고 불안해 지면 창의력이 다
상 실되어 지고 맙니다. 마지 막엔 무능해지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실 때 유명
한 달란트 비유를 말 씀합니다. 다섯달란트, 두달 란트, 한달란트씩을 주었다. 가서 장사해가
지고 돌아왔을 때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 에서 칭찬합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을 했기에 내가 큰 일을 맡기리라. 이렇게 칭찬할걸 볼 수가 있습니다. 누구에 게
일을 맡깁니까? 누구에 게 돈과 기술과 건강과 능력 을 누구에게 맡기느냐 착하 고 충성된
자에게 여기 신실 이라는 말이나 충성이라는 말이 원래 피스토스 같은 단 어입니다. 신실이
충성. 그 신뢰지수에 따라서 일을 맡 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 러분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 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 을때 구원에 이릅니다. 하 나님이 우리를 믿을 수 있을 때 복
을 받는 겁니다. 하나 님이 우리를 믿을 수 있는 그 믿음은 우리의 행위, 신 실한 충성된 행
위로 증거되 어야 합니다. 결국은 내가 지닌 신뢰지수에 따라서 하 나님의 축복이 임한다는
것 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믿 음의 뿌리는 오늘 본문 2장 1절에 있는 말씀대로 그리스 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 았으니... 거기에 뿌리가 있 습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십자 가의 사랑을 믿습니다. 하 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지혜 와 그 경륜을 믿습니
다. 이 믿음이 기본이요. 둘째로는 나 자신을 믿어야 됩니다. 십자가 안에 있는 나 자신을
믿는 믿음입니다. 나 자신 에 대한 정체의식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 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믿어줍니다. 그런고로 나는 소중합니다. 그 자신
의 정 체감 그 믿음이 아주 중요한 것이요. 현실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웃을 믿습니
다. 그것은 이웃을 믿기 보 다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이웃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
문에 아내를 믿습니 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남편을 믿고, 자식을 믿습니 다. 친구를 믿습
니다. 하나 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나를 믿고, 이웃을 믿게 되는 것 입니다. 본문에 더 깊은
뜻 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 시고... 믿음에 부요하게 하 시고...
믿음을 부요하게 만 들어 주신다는 거예요. 가 난한 자를 택하사 역설적인 진리입니다. 믿음
은 하나님 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선 택된자의 기본자세입니다. 그런데 부요하게 되는것 믿
음이 부요하게 되는 것이 어 디서 이루지느냐? 가난속에 서 이루어 지고 역경 속에서 이루
어 집니다.
제가 인천에서 목회할때 그런 아주머니 하나를 만나 보았습니다. 지금은 뭐 그 때만 하더라
도 재벌에 가까 울 정도로 돈이 많은 사업을 잘 하는 사람인데 그 부인이 조금 입이 좀 걸
어요. 그래 서 욕설을 잘하고 그런 분이 요. 옛날 얘기를 하는데 6.25전쟁때 피난다닐때 너
무 나 어려울때 죽 한그릇을 쑤 어 놓고 서로 한숫가락만 더 먹으라고 권했데요. 당신 밖에
나가 일할꺼니까 한숫 가락 더 떠먹고 가라고. 아 니 당신이 아이들과 하루종 일 수고해야
되니까 당신이 한숫가락 더 떠먹으라고. 죽 한그릇을 놓고 서로 더 먹으라고 권하고 할때에
믿 음도 있었고, 사랑도 있었고, 행복도 있었데요. 요새 와 서 사업을 한다고 돌아다니 니까
열흘에 한번 코빼기도 볼 수가 없데요. 바쁘시데 나.. 그래가지고 그래 이 아 주머니가 뭐라
고까지 하는고 하니 이놈의 사업 다 망해 넘어져라. 그러더라고요. 그래가지고 사람답게 살
아봤 으면 그러더라구요. 왜요? 신뢰가 없어졌어요. 믿음이 없어졌어요. 이젠 행복도 없어요.
여러분 이걸 아셔 야 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오히려 신뢰가 있어요. 거 기에 행복도 있어요.
하나 님께서 이스라엘 민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향할때 그들 로
하여금 많은 고통을 당하 게 했어요. 고난중에 하나 님께 대한 믿음, 형제간에 대한 믿음,
이 신뢰지수를 높여 가지고 가나안에 들어 가게 했어요. 이걸 잊지 말 아야 합니다. 이것이
근본 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유 학시절에 64년인거 같습니 다. 아주 옛날에 돈을 좀 벌어야
할 이유가 있어서 고 학을 하면서 공장에 가서 일 을 했습니다. 여름방학 한 참 더울때 가
서 일을 좀 해 봤는데 월리암 스포즈라고 하는 큰 공장에 가서 강철 공장입니다. 쇠를 깎는
강 철을 만드는 거요. 아주 강 하고 굳은 쇠를 만드는 공장 입니다. 아마 가만히 보니 까 쇠
덩어리를 불속에다 넣 다가 꺼내가지고 5톤짜리 쇠 덩어리 한발을 내려쳐요. 때려. 자꾸 때
리고 또 불속 에 넣다가 또 때리고 또 집 어 넣었다가 또 때리고 그냥 때리는거야. 왜 이렇
게 하 느냐구요. 이렇게 때려야 여기 찌꺼기가 다 빠져나가 고 분자와 분자가 강하게 밀 착
됩니다. 그래서 강해지는 거래요. 불순물이 다 빠지 고 순수해지고 분자와 분자 의 사이가
가깝게 되어서 강 한 강철이 된다고 하는 거예 요. 저는 그거 하나 배웠습 니다. 여러분 고
난속에서 읽어버렸던 진실을 되찾습니 다. 거품같은 것, 위선같은 것, 체면같은 것, 쓸데없는
것 다 벗어버리고 순수한 마 음으로 돌아가서 서로 껴안 고 사랑할때 진실하게 됩니 다. 그
다음에야 정죄도 일 어납니다. 지금같이 거짓 투성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우리 인격
자체에 서부터 진실을 그리고 믿음 을 회복해야 됩니다. 디모 데후서 3장이나 마태복음 24
장에 보면은 말세에 징조에 대해서 말할때 이 세상 끝에 가면은 재난도 있고, 지진도 있고,
환란도 있고, 전쟁도 있고, 뭐 많은 어려움이 있 겠다고 말씀하실때 사랑이 식어지며 배신하
는 일이 있 으리라. 믿음이 없어질 것 이다. 서로서로 잡아주고 서로서로 우매하는 이러한
불신 사회가 될 것이라고 예 언해 주고 있습니다. 여러 분 예수님을 보십시다. 그 제자들 아
무리 보아도 우리 가 보아도 시원치 않은 제자 들이오. 예수님을 세번이나 모른다고 도망가
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 가실때 다 도 망가고 말았지요. 이런 시 원치 않은 참 부끄러운
제자 들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믿었습니다. 아무 말없이 내 양을 먹이라. 내 가
나를 위하여 고난을 당해 야 할 것이다. 내가 나를 위하여 순교하리라. 너희가 나를 위하여
증인이 되리라. 십자가로 구속한 그 교회, 그 거룩한 백성을 그 사랑하 는 제자들에게 위탁
했어요. 위임했습니다. 믿어 주었습 니다. 완전히 믿어 주었습 니다. 사랑이 뭡니까? 사 랑은
믿는다는 것이예요. 주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됨을 믿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믿 었습니다. 그
리고 구원받은 미래와 그 소망에 대해서 믿 었습니다. 오늘은 쓸모없는 자 같으나 장차 훌
륭하게 쓰 여질 것이라고 하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미래를 믿었고, 약속을 믿었습니다. 내
증 인이 되리라. 내가 나를 위 하여 순교하리라. 나보다도 더 큰 일을 하리라. 전적인 신뢰
입니다. 그것이 믿음입 니다. 여러분 성도 여러분 다시한번 생각합시다. 우리 가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 같으나 이제 믿음만 회복 할 수 있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을 믿 고, 나를 믿고, 이웃을 믿 고... 믿어야 하고, 또 믿을 수 있고... 하나님은 오늘도 이
많은 사건들을 통해서 우 리에게 믿음을 더하십니다. 믿음을 새롭게 하십니다. 믿게 하십니
다. 믿음을 순 수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신뢰성을 구축하고 거기서 다시 일으킬 것입니다.
이 은혜가 함께 하시길 바랍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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