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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가는 믿음! (요 4:46-54)

by 【고동엽】 2022.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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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가는 믿음! (요 4:46-54)

 

허브 윌러라고 하는 분이 쓴 'Connecting with God'라고 하는 "하나님의 연결",
"하나님과의 연 결"이라는 그런 책이 있는데 그 책 속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한적한, 아주
평화로운 작은 마을이 있었는 데 그 마을에 나이트 클럽이 개업 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이
트 클럽 이 문을 열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 마을 사람들은 큰 걱정에 빠졌 습니다. 이 평
화로운 마을이 시끄 럽게 됐고 젊은 사람들이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면서 타락하게 될 것이
다. 큰 걱정이 돼서 교회에서 는 철야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철야기도 하는 가운데
에 좀 극성스러운 교인들은 뭐라고 기도 를 했는고 하니 '하나님 이 나이트 클럽을 불태워
주십시오' 불을 질 러 달라고 구체적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죄
악으로부터 우리 마을을 건져 주 십시오.' 했는데 얼마 후에 정말 벼 락을 쳐서 나이트 클
럽이 그만 불 타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이트 클 럽 주인은 이 사실을 알고 법정에 고소했습
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이 불 탄데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 려는 겁니다. 우리가 기도를 한
것은 사실이지마는 그 기도 때문에 나이트 클럽이 불탔다는 말은 말도 안 된다고 책임을 부
정하게 됩니 다. 재판장이 양쪽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재판을 하면서 하는 말 씀을 좀 들
어보세요.
"누가 범죄 를 했던지 간에 분명한 것은 나이 트 클럽의 주인은 기도의 능력을 믿고 있는데
교회의 교인들은 믿지 않고 있으며 기도의 능력은 완전히 부정하고 있군요. 그 내가 보기에
는 나이트 클럽 주인의 믿음이 더 훨씬 훌륭하다"고.

여러분 우리가 어떤 때 기도합 니다. 기도의 응답과 기도의 능력 을 믿지 않아요. 기도하면
서도 기 도의 능력을 믿지 않아요. 이게 얼마나 넌센스입니까.
오늘 본문에는 한 왕의 신하의 그 믿음이 여기에 잘 설명되어 있 습니다. 이 본문을 읽으면
서 느끼 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특별한 뜻이 계셔서 이 헤롯왕의 신하되는 이 지체 높
은 한 사람을 구원하시 기 위하여 믿음을 주시고 믿음을 성장케 하시고 믿음을 훈련시키시
고 믿음을 훌륭한 믿음으로 이렇게 완성시켜 가는 그 과정을 오늘 본 문에서 읽을 수 있습
니다. '이 모 든 사건의 역사는 하나님 자신이 주도하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깨닫
게 됩니다. 아시는 대 로 이 왕의 신하가 예수님 앞에 나 왔습니다. 이 사람이 왕의 신하로
서 이 30세 밖에 안된 갈릴리, 바 로 같은 마을이거든요, 자기 동리 인데 가버나움, 이 동리
에 사는 이 청년 한 사람에게 가서 무릎을 꿇 게 되지 않습니까?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
아들이 병들지 않았다 면 어림도 없는 얘기입니다. 상대 도 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아들이 병 들었고 백방으로 애 썼 지만은 병이 낫지를 않아요. 그리 고 이 아들이 죽어 갑
니다. 정말 로 다급했어요. 아주 급하게 되니 까 이제 뭐 체면이고 지위고 할 것 없이 예수
님 앞에 나오게 된 겁니 다. 그러니까 이 아들이 병들었다 고 하는 이 사건은 매우 슬프고
고 통스러운 일이지만은 이 사건으로 인해서 이 지체 높은, 교만한 헤롯 왕의 신하 한 사람
이 예수님 앞에 가서 무릎을 꿇게 됐다―거기까지 인도했습니다. 이 병들었다고 하 는 사건
이 이 사람을 그리스도에게 로 인도했다는 것이지요.

또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적지만은 소문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 헤롯왕의 신하가 소문을
들었어 요. 직접 본 것은 아니고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문둥병자도 고치고 열병환자
도 고치고 장님의 눈도 뜨게 한다더라―하는 소문을 들었어요. 이 소문에 대한 믿음이 중요
합니다. 이 소문을 듣고 '말도 안돼! 그럴 리가 없어. 뭐 갈릴 리 청년 그 목수의 아들 예수,
내 가 잘 아는데 없다. 뭐 그런 일없 다. 아니다.' 그랬으면 이 일은 끝나는 거예요. 그러나
소문에 대 한 믿음을 가졌어요. 이 사실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정보에 대 한 믿음, 전도
에 대한 믿음, 증거에 대한 믿음을 가졌어요. 그리할 때 에 이 사건 앞에서 이 같은 예수님
앞에 나오고자 하는 그런 결심과 믿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자, 이제 보니까 다급해 진 것 같아요. 거의 죽게 되었다 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간적 으로 급하게 됐고, 인간의 방법이 다 끝났고 한계에 왔어요. 지금 시간을 다투어요.
이제 빨리 손쓰 지 않으면 그냥 죽을 거예요. 이 런 시간에 저는 조급한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와서 간구하게 됩니 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적어도 인간의 한계를 몇 가지 한계를
넘 어서야만 했습니다. 이것을 극복 하지 않고는 예수님 앞에 바로 설 수가 없었고, 예수님
의 그 주신 능 력을 수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첫 째가 감각적 한계를 극복해야 했습 니다.
소문은 경험이 아닙니다. 소문은 내 경험이 아니고 다른 사 람의 경험입니다. 내가 본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본 것입니다. 나는 못 보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꼭 보아야 되고 내가 경
험해야 된 다고 고집을 했다면 이 사람은 끝 까지 예수님 앞에 나올 수가 없었 을 것입니
다. 그런고로 잊지 말아 야 합니다. 표적을 믿는 믿음, 그 것은 내 자신의 경험 속에 없는
일 이지마는 우리는 그 증거를 받고 그 사실을 사실대로 믿을 수 있는 감각적 한계를 넘어
서는 믿음이 필 요합니다. 내가 보아야 되고 내가 손으로 만져야 되고…… 그렇게 생각해서
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늘나라에 대해서는 꼭 죽 어봐야만 알겠습니다. 죽음에 대
한 진리는 내가 죽기 전에 모르겠 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영원히 해 결할 수가 없겠지요.
그런고로 우 리는 이 감각, 내가 받는 감각의 세계를 초월하는, 넘어서는 믿음이 필요합니
다.

또 한가지는 공간적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는 대 로 지금 아들이 병들어 누
워있지 요. 아버지는 예수님께 찾아와서
"우리 집에 가십시다"
그래요. '빨 리 가서 지금 죽어 가는데 그 여러 말 하시지 마시고 빨리 가서 이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십시오'하고 부 탁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 공간적 인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님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씀하십니다.
"네 아들이 나았느니라."
이것 참 답답한 일 입니다. 나았는지 안 나았는지 알 수가 없거든요. 자기 소원 같아서 는
예수님이 같이 가서 아들의 머 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이런 장 면이 있었으면 딱 좋겠는
데 예수님 은 아주 단호하게 잘라 말씀하십니 다. '네 아들이 나았느니라.' 갈 필요 없다 그
거예요. 이걸 어떻게 믿어야 합니까? 요새 말로 remote control이요. 원격조정을 하는 겁니
다. 이것을 믿어야 되는 데요. 우리는 가만히 보면은 이걸 믿지 못해요. 내 손에 있어야 하
고 바로 여기 있어야 하지 저기서 이루어지는 것을 믿지 못해요. 저 먼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 의 능력을 내가 여기서 믿지 못한 단 말이에요.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겁니다. 공
간을 초월하는 그런 믿 음을 가져야 했고요, 또 한가지는 시간적 한계를 초월해야 했습니다.
이 사람은 지금 어쨌든 예수님께서 즉시 내려오셔서 자기를 도와주시 기를 바랬는데 예수님
은 즉시 가시 지를 않았습니다. 예수님만이 가 지는 느긋한 시간이 있습니다. 여 유가 있습
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조급합니다. 아주 조급하고 답답 한데, 초조한데 예수님은 아주 여
유 있습니다. '네 아들이 나았느니 라.' 그것으로 끝입니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에디슨 이라고 하는 발명왕을 여러분이 아 실 겁니다.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훌륭한 발명가인데 어느 날 어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데리고 와서
"얘가 유학을 떠난답니다. 그런고로 선생님께서 일생동안 마 음에 두고 좌우명으로 기억할
한 마디 귀한 말씀을 좀 주십시오."
에디슨이 일하다 말고 가만히 갑자 기 이 말을 듣고 생각하다가 시계 를 쳐다보더니 그 때
서야 시계를 쳐다보고 하는 말이 '시계를 보지 마라.' 한마디 했다고 합니다. 자 꾸 시계 쳐
다보는 거 좋은 거 아니 에요. 여러분 설교 듣다가 시계 보는 거 그거 좋은 거 아니에요. 무
엇인가 몰두하고 있는 동안 시계 쳐다보는 거 좋지 않아요. 여러분 누구하고 만나서 대화할
때 시계 보는 거 큰 실례입니다. 빨리 가 세요, 그만 하라고 하는 얘기거든 요.

여러분 우리가 시간을 여러 시 간을 가지고 있어요. 하나는 Calendar time입니다. Calendar
에 서 보는 시간. Physiological Time입니다. 생리학적 시간. 그 런가 하면 하나님의 시간이
있어 요. 내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 엄 청난 거리가 있는 것이에요. 나는 죽어 가는 사람이
요, 나는 나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초조합니다. 시 간이 얼마 안 남았어요. 그러나 하나님께
는 여유가 있습니다.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습 니다. 하나님의 큰 경륜 속에서
내가 가진 초조하고 답답한 시간 관념을 극복해야 되는 거예요. 하 나님은 더 큰 것을 더
영원한 것을 주시려고 해요. 내가 가지는 이 시간적인 잣대로 하나님을 비판해 서는 안돼요.
그런고로 시간적 한 계를 넘어서는 그 믿음이 필요합니 다.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이 애 굽
에서 나와서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에 갈 때 빨리 가고 싶어서요, 그거 뭐 부지런히 걸어가
면 아무리 늦어도 보름이면 갈 수 있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생각한 시간은 40 년이에요.
자 두 주일이면 갈 수 있는 것을 40년을 걸려서 갔어요.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요. 하나 님
의 시간이요. 도대체 우리는 너 무나 초조해요. 모든 일에서 너무 조급하고 급하게 문제를
해결하려 고 들다가 실수를 많이 합니다. 급하게 부하려고 하다가 많을 것을 잃었습니다. 여
러분 알아야 합니 다. 하나님의 시간, 그 시간을 받 아들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가 하면 경험적 한계를 또 넘어서야 됩니다. 내 경험에서만 생각하면 안됩니다. 고정관
념을 버려야 됩니다. 이 답답하고 협소 한 이 생각이 이것이 다인 줄로 생 각해서는 안됩니
다. 내 의견 내 경험이 그거 하잘 턱없는 거예요. 아시는 대로 옛날 어른들, 뭐 저를 비롯해
서 다 그런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어쨌는데……"
그건 그 때 얘기지 지금 그렇게 고집 부린 다고 되나요 그게. 밀어 부치면 된다는 건 그건
옛날 얘기지요. 이젠 잠꼬대 같은 소리하지 마세 요. 다 지나갔어요 이제는. 그 때 는 그 때
요, 지금은 내 경험 내가 가진 경험 다 일단 잊어버려야 됩 니다.

성경에 보면요, '한나'라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 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아이가 없어서 그것 때문에 모든 사람으로부터 수모를 받고 너무 억 울하고 분하
게 느껴서 하나님 앞에 아들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소 박한 한 여인의 기도입니다. 얼마
나 열심히 몰두하고 기도했던지 얼 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어요. 이것 을 제사장이 보고
"이 젊은 사람이 대낮에 무슨 술을 마셨나"
하고 책 망을 합니다.
"아니올시다. 내 간 절한 소원 때문에 이러는 겁니다."
제사장이 마음이 감동을 해서 말씀 하시기를
"하나님께서 네가 구한 것을 들어주시기를 원하노라."
축 복기도를 해 주었어요. 이 말을 듣고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가서 먹고 다시는 얼굴에 수색이 없느니라."
굉장한 믿음이에요. 우 리 애 난다―이거야 두고 봐야 알 지. 열달을 지내봐야 알지. 또 낳
아 가지고도 무사히 살려는지 두고 봐야 알지. 어떻게 이 말씀을 믿 고 갑니까? 먹지고 않
고, 자지도 않고 슬퍼하던 여자가 이 한마디를 듣고 돌아가서
"평안한 마음으로 먹고 다시는 수색이 없었다"
그래 요. 그러니까 어느 의사는 그러대 요. 그 심리적 변화만 가지고도 아이를 가질 수 있었
을 거라고. 뭐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어쨌든 이 믿음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렇 게 마음에 고
통이 있다가 믿고 갔 어요. 평안한 것이에요. 결국은 사무엘을 낳게 되고 훌륭한 믿음의 어
머니로 우리 성경에 기록되고 있 습니다. 과거에 들어본 일도 없고 이런 경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서 믿고 나아 갈 때에 창조 전 역사를 이루게 됐 다는 말입니
다.
그뿐 아니라 인격적 한계를 넘 어서야 했습니다. 보세요. 오늘 이 장면을 자세히 들으세요.
헤롯 왕의 신하입니다. 그는 귀족입니 다. 이 귀족이 초라한 청년, 30세 의 청년 앞에 와서
무릎을 꿇습니 다. 어떤 의미에서 부탁 조로 얘 기 했지만은 그건 신하의 명령이기 도 합니
다.
"내 집에 오셔서 내 아이를 좀 돌보아 주세요."하는 요 청입니다.
"즉시 가 주시기를 바 랍니다."
이런 부탁이 있는데 이 제는 그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명 령에 왕의 신하가 순종해야 될 시
간입니다.
"네 아들이 살았다."
끝. 자, 이 말을 듣고 가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이 엄청난 시간이 에요 지금. 여기서 한
마디 더 했 다고 생각합시다.
"낳고 죽고는 고사하고 좌우간 우리 집에 좀 갑 시다."
이러고 대들었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나 지금 이 시간에 왕의 신하로서 예수님의 명령
앞에 꼼짝 못하고 순종합니다. 자기의 처지, 자기의 경험, 자기의 신분 다 부정해 버리고, 다
비하 시키고 다 비우고 깨끗한 마음으로 순종하는 시간이에요.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입
니까.
"가라."
갑니다. 믿 고 갔어요.

성경에 보면 이 같은 얘기가 여 러 곳에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 라는 사람에게 열두살 난
딸이 있 는데 병들어 죽었습니다. 죽어가 고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가서
"오셔서 내 딸을 좀 돌아봐 주세 요."
그러니까 그 땐 또 예수님이 가시겠다고 해요. 예수님과 같이 지금 일행이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 로 가고 있는데 노상에서 야이로의 집에서 온 하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 하인의 말이
"딸은 이미 죽었습 니다. 그런고로 예수님을 더 괴롭 히지 마세요. 뭐 이미 죽었는데 가고
오고 할 것 없이 그만 시간이 지났습니다."
바로 이 시간에 참 중요한 기로에 섰습니다. 예수님 을 한 의사로 본다면 여기서 끝난 겁니
다. 그러나 예수님을 메시아 로 생각한다면 이제 시작입니다. 바로 이 순간 그가 당황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믿음을 주십니다.
"믿기만 하라.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야이로는 아무 말 없이 순종하고 따라 들어갑니 다. 마침내 딸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경험
하게 됩니다. 자 이 순 간에 사람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예수님을 모시고 가야 합니까, 말
아야 합니까? 그러나 모든 지식, 경험 다 버리고 야이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이
점을 생각 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기로에 설 때가 있습니다. 믿고 가야 하느냐, 아
니면 믿지 못하고 여기서 계속 머물러서 원망과 불평 을 해야 하느냐. 그걸 잊지 말아 야
합니다.

유명한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할 때 홍해 광야 길로
나와서 홍해를 직면하게 됩니다. 뒤에서 는 애굽군대가 따라오고 앞에는 홍 해가 있습니다.
독 안에 든 쥐와 같이 꼼짝 못하고 60만은 지금 죽 게 됐습니다. 그 때 하나님 앞에 호소하
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 에게 말씀하십니다.
"지팡이로 홍 해를 치고 건너가라."
자 이 말을 듣고 이제부터는 전설의 얘기입니 다. 전설대로 보면은 이 지팡이를 들고 홍해

"딱"
하고 쳤는데 안 갈라졌답니다. 그래서 모세가 당 황하고 있을 때에 옆에 있던 청년 이 말을
했습니다. 그를 아마 모 름지기 여호수아라고들 전합니다. 이렇게 말했답니다.
"방금 홍해를 치고 건너가라 하셨는데 왜 서 계 시는 겁니까."
물 속에 뛰어 들었 답니다. 그랬더니 쫙 갈라지더라 고. 난 그것이 마음에 들어요. 지 팡이
로 딱 치니까 갈라졌다 그 다 음에 들어갔다. 그것보다 치고 건 너가라 할 때에 치고 물 속
에 뛰어 드니까 갈라졌다 이거예요. 전설 에 있는 얘기입니다만은 저는 그 쪽에 아주 매력
이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믿음은 감상 이 아니에요. 이것은 행동으로 옮 겨져야 되는 것이에요. 믿
고 건너 갈 때에 갈라지는 거예요. 아브라 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네 고향을 떠나라. 만민의 아버 지가 되게 하리라. 큰 민족을 이 루리라."
그런데 갈 바를 알지 못 하고 갑니다. 동으로 가라는 건지 서로 가라는 건지 몰라요. 갈 바
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익숙하고 평안한 고향을 떠 나서 이방 땅으로 나섭
니다. 나선 다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마."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이것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믿음입 니다. 믿고 가는 것입
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극복해야 될 것이 많아요. 여러분, 지금 우 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
입니까! 다 잃어버렸습니다. 구구하게 말 할 것 없이 다 잃어 버렸어요. 신 용도 지식도 우
리의 능력도…… 지금 어느 누구 하나 뭐 말들은 많 이 합니다만은 하나의 대책도 내세 우
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이제 가야합니
다. 행 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리할 때 에 기적을 보았습니다. 기적을 보 고 간 것이 아닙
니다. 믿고 갈 때 에 저 만큼에서 이적이 나타난 소 식이 들려옵니다. 그리고 그가 확 증을
얻고 기뻐하게 됩니다. 오늘 도 우리 앞에 있는 약속을 하나님 의 말씀만 믿고, 믿고 가는
긍정적 이고 적극적 행동이 있을 때에 이 제 저 먼 앞에서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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