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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곽선희 목사 설교

예수를 본 받아서! (롬 15:1-6)

by 【고동엽】 2022.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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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본 받아서! (롬 15:1-6)

 

심리학 이론 중에 에니어그램이라고 하는 이론이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일반적인 것입니다.
헬라어로 아홉이라는 숫자를 에니어라고 합니다. 그리고 무게의 단위인 그램(g)을 더해서
복합어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에니어그램, 그런 아주 상식화된 이론이 있습니다. 인간은 본
래 본성은 순수하게 다 같은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더더욱 하나님의 형상으로 태어
난 인간은 다 꼭 같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못합니다. 직면하는 냉혹한 현
실에 적응하기 위해서 그 유형이 변하고 또 발전되기도 하고 그러면서 대체로 봐서 아홉 가
지로 아홉 가지 유형으로 이렇게 나타나게 됐다, 하는 심리학적 이론의 전제입니다. 이 이론
을 가지고 소위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은 수행 지침으로 삼기도 하고, 혹은 우리가 이 세상
을 살아가며 어떤 존재로 또는 인간관계로 살아야 성공적으로 살수 있을까? 하는데 이 이론
을 적용하기도 하고, 특별히 여러분의 가정생활 자녀교육 사회생활 모두에 있어서 이것을
알고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이 지혜로울 것이다, 하는 그러한 말씀이고요. 특별히 사업하는
분들은 인사관리에 있어서 혹은 조직운영에 있어서 이 이론을 조정해 나아가는 그런 경우가
많고 특별히 어떤 기관에서 사람을 채용할 때 아주 심리학자를 불러서 이 유형을 잘 구별해
놓고 거기에 적절하게 안배, 배치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공적이다 하는 것이죠.
이 아홉 가지 유형이라 하는 것은 대체로 이런 것입니다. 긴 설명을 드리지 못합니다만은
첫째가 개혁자형입니다. 이것은 고도의 윤리성을 지닌 사람이고요. 도덕적으로 완벽주의를
기하는 사람입니다. 아주 성실하고 정직합니다. 여러분 아시는 대로 이렇게 정직하고 성실한
것까지는 좋은데 이런 사람들이 대게 편협합니다. 그게 약점이에요. 자기 하나는 정직한데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하지를 못해요. 또 둘째는 협조자형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 사람
은 감정이입이 잘 되고 애끓는 마음과 감정이 풍부합니다. 이것은 좋은데 이 사람은 너무
감정적이라서 의지가 약합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또 때로는 지성적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동기부여자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감이 있고 야심가이
고 최고가 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항상 최고가 되겠다는 그런 사람인데 고집이 셉니다. 그
래서 또 힘듭니다. 그리고는 예술가형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직관적이고 동정심이 많고 그
리고 개성이 강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울하기도 하구요. 정서적으로 강한 대신에 이 사람
은 쉽게 말해서 광기가 있습니다. 그래 예술가하고 살려면 각오해야 됩니다. 가끔 미친 짓을
하는데 이걸 수용하지 못한다면 예술가와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 어떤 때는 천사 같고 어
떤 때는 악마 같고. 그렇다고 해서 불평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건 예술가와 사는 팔자니까
그건 각오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안될 것입니다. 또한 사상가형이 있습니다. 이것은 탁
월한 지각을 가졌고 탐색지능이 있습니다. 어느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나 역시 좀 괴벽하고 편집병적일 때가 있습니다. 그 다음엔 충성가형이 있
습니다. 감정에 호소하고 사랑 받는 사람이고 장난기도 있고 유머도 있고 환심도 사고 아주
충성가형, 아주 좋아요. 그런데 이런 사람은 너무 의존형입니다. 그 이상은 뭐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이게 또 문제라구요. 충성을 잘하는 사람, 큰 일은 못합니다. 자, 그 다음에는 만
능선수형이 있습니다. 순발력이 강합니다. 신바람 나게 삽니다. 그러나 이런 만능선수형이라
는 사람들은 확실히 즉흥적이고 광적일 때가 많고 지구력이 약합니다. 그 다음에 도전자형
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일단 옳다고만 생각하면 누구도 말리지 못합니다. 아주 의지
형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 대개 보면 오만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자기만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곤 아홉번째가 중재자형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수용능력이 많습니다. 신뢰
할 수 있고 느긋하고 낙천적입니다. 이런 중재자형은 참 덕망이 있다고 우리가 말합니다만
은 이런 사람들은 유약하고 수동적입니다. 너무나 수동적이라서 무슨 큰 일을 맡길 수가 없
습니다.
여러분, 자 이렇게 아홉 가지 나누어 보았습니다. 어느 거 하나 마음에 듭니까? 여러분이 생
각하는 완전한 사람이 있습니까? 이런 사람이면 좋겠다고 완벽한 사람이 있느냐 이거예요.
그걸 아셔야 되요. 이런 의미에서 흔히 말하는 완전한 사람은 없어요. 이런 장점이 있는가
하면 저런 단점이 있어요. 그런고로 우리는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단점을 서로 이해하고 덮
어가면서 수용해야만 가정도 사회도 직장도 편할 수가 있고요. 자기자신을 볼 때도 자기장
점을 극대화할 것이고 단점을 줄이도록 노력할 것이지 결코 어느 단점이 있다고 해서 나는
쓸모가 없다던가 나는 교양이 없다던가 나는 구제불능 하다던가 자기자신을 그렇게 비하할
필요도 없다 그말이예요.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남편이건 자녀건 나 자신이건 간에 항상
이런 장점 그 장점을 더 크게크게 인정을 하고 키워가고 단점은 내가 스스로 이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생각하고 받아들이면서 이거를 잘 교정하고 극소화하도록 힘써나가는 것,
그게 지혜올시다.
자, 이제 한번 깊이 생각하십시다. 예수 믿는다는 게 뭡니까?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습니
다 예수를 믿어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러나 두 번째 단계가 뭐냐하면
예수를 닮아가는 것이올시다. 예수 님에 대한 신앙고백을 여러분이 잘 압니다. 베드로가 예
수님께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귀한 고백입니다.
그 고백 속에 예수님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는 제사장이요 선지자요 왕이십니다. 그는 우리
에게 큰 역사를 이루어서 십자가에 대신 죽으셔서 자기 피를 가지고 제사를 드려 우리 죄를
사하셨습니다. 그런 제사적 기능을 이루셨습니다. 그런가하면 동시에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율법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서 가치관에 대해서 모든 것에 대해서 가르칩니다. 가르치는 분
이요 동시에 가르치기만 하는 게 아니요. 본을 보였어요. 그리고 그는 왕이십니다. Living
Christ, 그는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와 우리의 심령과 우리의 세계와 역사를 주관하고 계
십니다. 다스리시는 분입니다. 왕이십니다.
자, 그런데 오늘 본문은 두 번째 문제인 선지자의 문제를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는 우리에게
말로만 가르치는 게 아니에요. 행동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는지 그
리고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그것까지 가르쳤습니다. 이건 절대로 비참한 일이 아니에요. 이
것이 행복의 길이요, 이것이 잘사는 길이요, 이것이 가치 있게 사는 길이요, 그걸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어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행복하게 사는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어요. 모본을
보였어요. 그는 우리의 생의 패러다임이 되는 것이죠. 우리의 성품, 우리의 인간됨에 아주
표본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오늘 본문에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중생하고 그 다음에 성화의
과정은 이제 일생동안 가는 것입니다. 계속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아갈 것이올시다. 이제 문제
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예수님처럼 병 고치고 예수님처럼 서른세살에 죽어야
하고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 이런 형식적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
의 성품입니다. 예수님의 인간됨입니다. 사람됨을 우리가 본받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성경말씀에 오늘 이것을 요약해서 간단하게 몇 말씀으로 사도바울이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
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냐구요. 우리 죄를 우리의 약점을 담당하신 분이올시다. "담당하셨다"
그랬어요. 담당하셨다. 아주 중요한 말씀이에요. 오늘 여기 보니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
을 약한 것을 담당하고, 그랬어요. 그 담당한다는 말 한마디가 아주 중요한 것이올시다. 강
한 자가 누구입니까? 강자, 이 뭐 권력자요 정치가요 돈 많은 사람이요 무슨 씨름선수요 뭐
그런 얘기가 아니에요. 정말로 정신적으로 강한 자가 누구입니까? 인격적으로 성품적으로
강한 자. 세 가지로 요약해 봅니다. 먼저는 이해에 있어서 강한 자예요. 내가 넉넉하면은 이
해할 수 있어요. 이런 사람도 이런 환경도 저런 것도 다 넉넉하게 이해할 수 있어요. 이게
강한 사람이에요. 이걸 이해를 못하고 조그마한 일에서 걸려서 넘어지고 오해가 되고 뭐 원
수 맺고 울고 짜고 절망하고, 이건 약한 것이죠. 뭐 흔히들 속되게 말할 때 '밴댕이 속 같다
' 그러잖아요. 그 쪽은 약한 거예요. 약해서 민감한 거거든요. 그만큼 만사에 알레르기 반응
을 일으키는 거예요. 이게 바로 약자예요. 그런데 강한 사람은 언제나 넉넉합니다. 뭐 놀랄
것도 없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거든요. 그래서 뭐 좋은 사람도 사랑하고 못된 사
람하고도 같이 지내고 이럴 수 있어요. 이해, 이해를 하는 거예요. 언제나 상대방을 깊이 이
해하고 또 역사의 의미도 이해하고 환경이 말해주는 그 방향도 이해하는 것이죠. 그 이해,
Understanding Mind가 넉넉합니다. 이 강한 것이에요. 우리가 자녀들을 이해하잖아요. 어린
아이들이 뭐 어쩌고어쩌고 해도 어른은 어른스럽게 이해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게 있어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면 손자하고 싸워요. 나이가 다시 거꾸로 돌아가서 열두살이 되었거든
요. 이게 문제라고요. 넉넉함이 없어요. 여유가 없어요. 이게 바로 강하다는 것이고요.
그 다음에는 이 깨달은 바 진리를 자기 생활 속에 구체화할 줄 알아요. 이게 능력이 있는
사람이에요. 오늘 여기서 하나님 말씀을 듣습니다. 들으면서 바로 '아, 그렇다. 그런고로 나
는 이렇게 살아야겠다' 하고 적응할 수 있고 구체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그런 소화능
력이 있는데, 어떤 분은 이걸 못해요. 그래서는 그 말씀은 좋은데 나와는 관계없다 이거에
요. 그 말씀은 나와 관계없는 거다. 또 어떤 때 좀 생각을 해보아도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할
까? 그건 대책이 없어요. No idea, 이게 바로 약한 것이에요. 그래서는 진리는 진리대로 신
앙은 신앙대로 행위는 행위대로 성품은 성품대로 따로따로 사는 거예요. 영영 이렇게 살아
요. 이게 바로 약한 사람이에요. 그러면 강한 사람은 진리를 한마디를 배웠든 두마디를 배우
는 데로, 자기 생활 속에 이걸 실천 적응해 나갑니다.
그 다음에 또 강한 사람은 실천 지구력이 있어요. 알기는 하는데 행하지를 못해요. 사랑해야
될 줄 알면서 사랑하지 못해요. 용서해야 될 줄 알면서 용서하지 못해요. 용서했다가도 또
비슷한 일이 생기면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요. 이게 바로 휘청휘청이요. 약한 것이죠. 그런
데 강한 사람은 한번 시작했다 하면 끝이에요. 요새 눈이 많이 와서 좀 보행이 어려웠습니
다. 새벽기도회 때 보니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많이 왔습디다만은 아주 많이 못나왔어
요. 그래 내가 속으로 생각했어요. 뭐 눈이 온건 온 거예요. 어렵긴 어려워요. 그래 그것 때
문에 내가 일생 한 맹세를 여기서 굽힐 수 있어요? 누가 가로막을 거예요? 또 어떤 때 우
리가 한 약속을 그것을 못해서 되겠어요? 자 우리가 이 실천의지, 그게 문제라고요. 문제라
고요.
어떤 학생들 보니까 뭐 공부, 그거 박사공부 하는 거 상당히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요. 5년 6
년 수고해 가지고 마지막에 논문을 쓰는데 이게 잘 안되는 거예요. 그때 가서 날보고 물어
봐요. "계속할까요 말까요? 뭐 그거 뭐 박사 해봤댔자 그거 뭐 별로 길도 없고 취직도 못되
는데 할까요, 말까요? 요사이 뭐 50%도 취직 안된답디다." 그건 그래. 그렇지요. 그래서 나
는 그랬어요. "별거 아니다. 박사란 게 별거냐? 하지만 시작했으니 끝내라." 시작한걸 끝내
지 못하면 한평생 그것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한대요. "아, 사내놈이 시작했으면 끝을 내야지
이제 와서 무슨 딴소리냐? 지금까지 6년 동안 수고한 것이 아까워서라도 마저 해버려" 했더
니 고민하더라구요. 그게 바로 약한 거죠. 이게 바로 사람의 마음이에요.
그러면 강한 자, 이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그래서 이해도 못하고 구체화도 못하고 실천도
못하고 꾸준하게 끌고 나가지도 못하는 이 약한 자를 어떡하면 좋겠어요? 그걸 이해하는 것
이죠. 담당하는 것이죠. 나아가서는 내가 대신하는 것이죠. 약한 자의 약점을 내가 담당한다.
여기에 "파스타제인"이라는 말은 짐을 진다는 뜻이에요. 그의 짐을 내가 대신, 자발적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지는 것이요. 여러분 잘 외우는 성경구절 이사야 53장에 보면 "그는 우
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도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
고 그가 채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가 대신 내가 맞을 것을 그가 맞아요.
내가 받을 비방을 그가 받아요. 그 성품이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이요. 그리스도의 마음은 담
당하는 것이에요. 책임을 대신 지는 거예요. 이게 그리스도의 마음이에요.
제가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 경험한 그 이야기는 정말 두고두고 제 마음에 늘 다시 한번
회상이 됩니다. 의사로 분주하게 다니는 부인이 어떤 날 보니까 자기 남편이 밖으로 돌다가
에이즈 병에 걸려 가지고 왔어요. 기가 막힌 거예요. 그는 남편을 앞에 놓고 이야기합니다 "
내가 의사로서 바삐 돌아가느라고 아내 구실을 못해서 당신이 밖으로 돌다가 이렇게 됐으니
이 책임은 나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이대로 죽으면 당신을 죽인 내가 어떻게
평안하게 살수 있겠느냐고 여기서 둘 다 같이 에이즈 걸려 가지고 죽는 것이 나를 위해서도
좋겠다고. 10년 동안 별거하던 사람이 다시 만났어요. 다시 부부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에이
즈 환자하고 죽기를 결심하고. 이 뜨거운 사랑으로 인해서 두 사람이 다 건강해 졌어요. 샌
프란시스코에 가서 현장에서 이 말을 들을 때 저는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는 기억입니다.
여러분, 누구 책임입니까? 모든 문제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보면 나 책임 다했
다. 밥을 안 줬냐? 옷을 안 줬냐? 학비를 안 줬냐? 너 할 일이나 해라.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에요. 너희들이 잘못된 거 가출한 거 내 책임이다. 남편이 밖으로 도는 거 내 책임이요.
아내가 잘못하는 거 내 책임이요. 내가 담당을 하는 거예요. 저주를 받아도 내가 받는 거예
요. 그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이요. 우리는 어쩌면 내 책임까지 남에게 돌리려고 하는 세상
이에요.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어요.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그가 담당하셨어요. 우리의 약
점을 다 담당하셨어요. 자기 책임으로 돌리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어요. 성품 자체가 약한 자
의 약점을 비판하지 않고 내가 대신 자발적으로 담당하는 그것이 바로 사랑이었어요.
그런가 하면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였다" 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여러분, 자기를 기쁘
게 하려는 마음, egocentric, 자기 중심적인 마음, 이거 한 번 탁 떼버리고 지나가 볼까요?
뭐 이제까지 나 중심으로 살았으니까, 뭐 이젠 나이도 한 50 됐으니까, 이제부터는 나를 기
쁘게 하고자 하는 것 없이 살아보겠다고 한번 확 뒤집어 보세요. 새로운 세상이 보일 것입
니다. 모든 일에서 나를 잊어버리세요. 내 명예, 내 지위, 내 뜻, 내 고집, 뭐 다 잊어버리세
요. 나를 기쁘게 하는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벗어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면은요 여
러분 신비로운 기쁨을 신비로운 행복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 다음에 보니까 "이웃을 기쁘게 했다" 그랬어요. 이것이 강한 의무입니다. 모든 일에
서 남을 기쁘게 하고 남을 편하게 하고 남의 이름을 높이고 바로 그것이 행복의 근본이란
말입니다. 수학분야에 있어서 세계적인 명성을 가졌던 사람 기꾸찌 라고 하는 분이 있었습
니다. 이 기꾸찌 교수가 옥스퍼드 대학에 다닐 때 역시 수학의 천재가 돼서 항상 1등만 하
는 거예요. 영국 백인들이 기분이 나빠요. 자존심이 상해요. 아니 이 동양사람한테 우리 이
영국사람이 지다니. 근데 이 브라운이라는 사람이 항상 2등을 하는 거예요. 그걸 넘어서지를
못해요. 이런 경쟁관계에 있었는데 마침 기꾸찌가 독감에 걸려 가지고 몇주간 동안 학교에
못나왔어요. 이것을 알고 '옳지, 이번 학기는 브라운이, 백인이 1등할 것이다' 생각을 했는데
웬걸요. 또 기꾸찌가 1등을 했어요. 알고 보니까 브라운이 매일같이 강의들은 걸 노트를 가
지고 가서 이 기꾸찌 친구에게 전달강의를 했어요, 매일같이. 왜요? 당신이 감기로 인해서 1
등에서 내려앉는 것을 나는 바라지 않는다 이거예요. 얼마나 깨끗한 마음이에요? 남을 기쁘
게 하고 그래서 밀어주고, 이해해주고, 참아주고, 기다려주고, 그것이 남을 기쁘게 하는 비결
이에요.
EQ라는 말을 우리가 쓰고있지 않습니까? 그것은 자신의 감정상태를 자기가 알아내는 것이
에요. 아이들도 보니까 어떤 때 입이 쭈욱 나와요. 그래서 "너 삐졌냐?" 그러니까 "나 삐졌
어" 그러더라고요. 그거 EQ가 괜찮은 거예요. 내가 지금 잘못되고 있다는 걸 내가 알아야
되요. 그걸 모르는 게 이게 바로 멍청한 거죠. 내 감정을 내가 알고 그 다음에는 내 감정을
스스로 다스릴 줄 알고 그 다음에 이것을 바르게 표현할 줄 알고 그 다음에는 이웃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감정을 내가 잘 수용할 줄 알고 그리고 모든 이웃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해결
해 나가는 사람, 이게 바로 "EQ가 높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것은 엄청난 일로 생각하시죠? 그런 것이 아니에요. 그리스
도인이 됐다면 처음부터 그리스도의 성품을 하나씩하나씩 본받아 가야하는 것이에요. 정말
로 그리스도를 사랑하십니까? 뜨겁게 사랑하면 닮게 돼있어요. 아내건 남편이건 누구든 간
에 열렬히 사랑하면 알게 모르게 그를 닮아가는 것이에요. 이것이 그리스도인이에요. 앙망하
고 사랑하고 높이고 존경하면 그리스도의 마음 본받아갑니다. 본받아서 그의 길을 따라 우
리도 행복하고 그의 길을 따라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는 것이올시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면서도 그리스도를 본받기를 주저하고 기피하
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힘과 능력을 더하사 참으로 그리스도를 본받아가게
하시고, 그 성품 그 가치관 그 귀한 뜻이 바로 우리의 것이 되도록 그리스도를 가까이 본받
아 갈 수 있는 주의 사람들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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