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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누가복음 4장22-30 / 나사렛에서 배척 당하시다

by 【고동엽】 2022. 11. 19.
■2022년 10월26일(수)■


(누가복음 4장)


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24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30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




(묵상/눅 4:22-30)


◆ 나사렛 사람들


(24)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에서 자라셨지만, 세례 받고 나서는 가버나움에서 사셨다(마 4:13). 그리고 얼마 후에 나사렛에 가셔서 안식일에 성경을 읽으시고 말씀을 전하시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깜짝 놀란 이유는 자기 동네에서 평범하게 살던 청년이 갑자기 놀라운 사람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평소에 랍비로 살던가, 아니면 공부하러 오랫동안 동네를 비웠다가 나타났다면 몰라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네에서 목수 일을 하던 자가 예루살렘을 한번 다녀오더니 수 개월만에 나타나서 예언이 응했다고 하면서 그리스도를 자처하니 얼마나 놀라겠는가?


예수님의 말씀은 힘있고, 지혜로웠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 사람이 어디에서 이런 지혜와 놀라운 능력을 얻었을까??"(마 13:54 표준새번역)


진리를 진리로 받고, 은혜를 은혜로 받으면 좋으련만, 그런 것은 관심 외다. 어떻게 당신 같은 사람이 이런 놀라운 지혜와 능력을 가질 수 있는가에만 관심을 가진다.


사람들은 은혜를 받을만한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로 말씀을 트집잡고, 배격하는 짓을 저지른다.


나와 다를 바가 없던 친구가 갑자기 뛰어난 능력을 보이면 시기와 질투심 때문에 그를 인정하기가 어려워진다. 어떻게 해서든 그를 깎아 내려야 위로가 된다.


주님, 제가 이런 죄에 빠지지 않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은 그들의 선생이 아니라, 판단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가버나움에서 행한 기적들 - 백부장의 하인(마 8:5), 귀신들린 사람(막 1:21), 친구들에 의해 들려온 중풍병자(막 2:1-5) 등을 치료하심 - 을 나사렛 고향에서도 행해보라고 요구했다.


고쳐달라가 아니라, 고쳐보라는 요청이다.
배우려는 겸손이 아니라, 판단하려는 건방짐이다.


인간의 교만의 극치가 바로 이것이다.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 그 순간부터 인간은 은혜와 멀어진다.


예배에 대해 공부하고 나면 예배를 더 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 드리는 자들을 판단한다. 찬양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고나면 찬양을 더 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찬양하는 자들을 판단한다.


교사 시절에 학생 전도집회에 초청받아서 갔다. 학생들 여러 명이 나와서 율동하면서 찬양을 인도했는데, 마음을 다해서 찬양하는 그들의 순수한 태도에 감동했다. 나도 마음을 다해서 함께 찬양하고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말씀이 끝나자 그 교회 전도사라는 분이 나와서 찬양팀에 대해서 비판하는 말들을 했다.


자기는 찬양이란 이런 것으로 생각하며, 찬양팀이 지나치게 감정에 흐르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둥. 나는 깜짝 놀랐다. 지금 전도 집회인데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찬양하는 내내 팔짱 끼고 저렇게 판단하고만 있었단 말인가? 그 뜨거웠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냉각되었고, 찬양 인도하던 아이들은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 전도사는 불 끄는 능력이 탁월했다.


사람들은 진리를 알고자 하는 것보다 자신이 높여지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 진리의 지식조차도 남을 판단하는 데 사용하는데만 사용하는 자들이다. 그 알량한 지식으로 이 사람 저 사람 판단하고 심지어 하나님조차도 판단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판단 받는 것을 거절하신다(롬 3:4).


아무 것도 모르는 인간이 하나님을 판단하는 건방짐이란 역겨운 것이다. 욥은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극심한 고난을 겪자 친구들의 미혹에 빠져서 결국 하나님을 판단하는 큰 죄를 범하였다. 그의 고난은 아마도 그의 깊은 속에 감추어진 자만을 드러내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어린아이는 남을 판단하지 않는다.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주님의 말씀은 이런 것을 포함함을 기억하자.


◆ 예수님을 죽이려고 함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나사렛 사람들은 자기들과 아무런 별 차이도 없는 자가 감히 자기들을 책망했다는 생각에 분노했다.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낭떠러지까지 끌고 갔다. 죽이려고 한 것이다. 무서운 사람들이다.


진리보다 자기 자존심이 더 중요한 자들이 이렇다.


성도들은 진리 앞에서 자존심을 내려놓고 회개할 줄 아는 자들이다. 성도들은 남이 자기를 무시하는 것에 그렇게 민감하지 않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고전 4:3)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아무리 내가 볼 때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그의 책망이 옳으면 회개할 줄 아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바다. 너나 잘하라고 발끈하는 것은 성도답지 못하다.


그런데 나사렛 사람들은 발끈하다 못해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쫓아냈고, 예수님을 산 낭떠러지로 몰아갔다. 나사렛은 해발 375m 산에 있는 동네다.


감히 예수님을 낭떠러지에 떨어뜨려 죽이려고 하다니 얼마나 무지막지한가?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지나쳐서 나오셨다.
아마도 능력을 사용하신 듯하다. 천군을 12군단도 더 동원하실 수 있는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능력을 사용하시면 누구도 못 건드린다.


그 후로 예수님은 다시는 나사렛에서 어떤 일도 하지 않으셨다. 나사렛 사람들은 교만과 판단 때문에 자신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을 차버린 셈이다. 가장 어리석은 결정이었고, 영원히 후회할 행동이었다.


주님,
제가 진리보다 자존심을 앞세우는 일이 없게 해주십시오.
시기와 질투 때문에 형제를 비판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십자가에 내 옛사람이 죽었음을 인정하고,어떤 책망도 수용할 줄 아는 겸손함을 갖게 해주십시오.

출처 : https://cafe.daum.net/soongsari/WDob/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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