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기도에 최선을 자료원 : 박종순목사 충신교회 발행일 : 95년 03월 05일 일반적으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구원 에 이르게 하는 책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다른 말로 성경을 부른다면 그 것은 [기도의 책]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경은 창세기에서 말라기까지 그리고 마태복음에서 요한계시록까지 기도 에 관한 이야기들과 기도의 사람들에 과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 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하며 필요한 것인가를 설명해 주는 증거들이기도 한 것입니다. 특히 시편은 거의가 다 기도시들로 엮어져 있습 니다. 시편 145편의 경우도 다윗이 을었던 찬송시로 되었습니다만 그 내용 을 보면 그의 간절한 고백과 간구가 전편을 흐르고 있습니다만 그 내용을 보면 그의 간절한 고백과 간구가 전편을 흐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본문 은 어떻게 기도해야 하며 어떤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는가를 설명 해 주고 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내가 날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라고 했 습니다. 무디는 "기도란 내 사고와 목적으로 하나님을 끌어 당기는 것이 아니요 나 의 사고와 배려와 갈망을 하나님 편으로 끌어주어 그의 도안과 예정에 맞추 어 조화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기도의 자세와 응답받는 비결을 찾을 수 있습니다. 1. 간구하는 자에게 가가이 하십니다. 1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 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18절 속에는 다음과 같은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간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라는 말씀의 뜻은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밝혀 줍니다. 기도의 대상설정은 매우 중요합니다.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입 니다. 성모 마리아나 성인은 기도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를 받으 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 뿐입니다. 둘은, 모든 자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특정인의 기도만 들으시거나 특정인에게만 응답이나 계시를 주시 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나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계시를 받고 지시를 받 는다고 생각한다든지 하나님이 내 기도만 들으신다고 생각하거나 말하는 사 람이 있다면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기도하지 않으면서 기도 한다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마치 무당이나 점쟁이를 찾아가 운명을 묻고 점치듯이 무엇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더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입으로 간구하는 자들과 자기 소리로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 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시편 5:2을 보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십니다. 시편 5:2을 보면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 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라고 했고, 시편5:3을 보면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시편 66:17을 보면 "내가 내 입으 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내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내 입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은 모든 자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특정 인에게만 그 응답을 국한하여서는 하나님이 아니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셋은, 진실하게 간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실한 간구란 과장이나 꾸밈이나 거짓이 없는 기도를 뜻합 니다. 현대인은 포장문화에 익숙해 있습니다. 쓰레기 종량제로 포장기피현 상이 일어나고 있다고는 합니다만 시원찮은 상품도 고급포장으로 감싸 놓으 면 고가처럼 보이고 사람들도 겉치장만 화려하면 진면목은 어떻든 높이 평 가하는 세상이 돼 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는 그런 따 위의 포장이 아무 소용없습니다. 예를 들면 고졸의 기도보다 대졸의 기도를 더 잘 들으신다든지 석사의 기 도보다 박사의 기도를 더 높이 평가하신다든지 월수입 100만원 보다는 1000 만원짜리의 기도를 더 잘 들으신다든지 하는 인간적 논리가 전혀 통하지 않 습니다. 하나님이 들으시는 기도는 진실과 간구입니다. 우린 하나님 앞에 정직과 진실과 솔직한 모습과 마음으로 서야 합니다.헛기침을 할 필요도 없고 채색 옷으로 자신을 감출 필요도 없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 유행어 가운데 [알몸표 수영복]이라는게 있다고 합니다. 적나라한 모습을 표현하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설때마다 "나는 알몸표 수용복을 입었습니다."라는 심정으로 서야합니다. [간구]라는 말을 헬라어로 파라칼레라고 합니다. 그 뜻은 '가까이서 부르 다'라는 것입니다. 진실한 사이는 가까운 사이입니다. 서로 허위가 있고 거짓이 있고 꾸밈이 있으면 사이가 가까워질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가까이서 부르지 못하 는 것은 나에게 허위가 있고 감추고 싶은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을 가리켜 무촌간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 라는 뜻이빈다. 부부관계가 왜 가장 가까운 무촌간입니까? 그것은 서로 숨김이 없다는 것 입니다. 부부간에 숨기는 것이 많을수록 사랑은 반비례합니다. 아무 것도 가리지 않고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관계는 부부관계입니다.그러나 그보다 더 적나라하게 만날 수 있는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과 나와의 관 계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가까이서 부르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늘에서 우리를 부르실 수 있었습니다만 가까이서 부르시기 위해 친히 이 땅 우리 곁에 오셨습니 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도 가까이 나와서 부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린 여기서 왜 우리가 때를 따라 교회에 나와야 하며 교회에 나와 기도해 야 하는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요구입니다. 가능하면 교회에 나와 정한 시간에 기도해야 합니다. 여건상 그것이 불그 낭하다면 시간을 정하고 교회가 있는 동부 이촌동을 바라보며 있는 곳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의 기도를 들어주신 다는 것을 믿고 기도합시다. 2.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어 줍니다. 19절을 보면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 음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경외]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높이고 받드는 태도를 의미 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시면서 창조주이십니다. 사랑이시면서 공의이십 니다. 부드러우시면서 강한 분이십니다. 용서하시면서 때리시는 분이십니 다. 부드러우시면서 강한 분이십니다. 용서하시면서 때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한 면만을 보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 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소련의 저항작가 솔제니친이 미국에서의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그의 조국 소련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유는 조국을 버릴 수 없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비록 가난하고 낙후된 조국 러시아이지만 자신의 조국을 인정했기 때 문에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섬기고 돌아가야 할 하나님의 품은 러시아의 품이 아닙니 다. 미국의 품도 아닙니다. 영원히 안전하고 풍요로운 하나님의 품입니다. 그곳에 나의 행복이 있고 응답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품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은 부르짖으면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풍랑으로 난파당한 선원들이 무인도에서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개 월째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들이 취할 태도는 어떤 것이어야 하겠습 니까? 지나가는 배가 스스로 알아서 우리를 구해주겠거니라며 앉아서 잡담 이나 나누고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이왕 죽은 목숨 발버둥 칠 필 요가 있겠느냐며 포기해 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받는 길은 나무를 모아다가 불을 지펴 연기를 피우고 옷을 벗어 높은대로 올라가 흔듦 도 죽을 히을 다해 소리를 질러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서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신다"는 말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르짖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특권입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주님을 향해 부르짖고 두 눈을 떴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부르짖고 딸을 괴롭히던 귀신을 내쫓았습니다. 어떤 과부는 부르짖고 자신 의 억울한 원한을 풀었습니다. 누가복음 18:7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부르짖지 못하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왜 부르짖어야 하는가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 다. 둘째, 목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교만이나 자존심으로 목이 붓고 막히면 소 리지르지 못합니다. 셋째는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르짖고 응답받고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은 소리높혀 하나님을 찾고 부르 게 됩니다. 그러나 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부르짖지 못합니다. 넷째,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부르짖으면 구원받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잇 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부르짖지 못합니다. 요즈음 연예인이나 가수를 따라 다니던 10대 오빠부대가 체육관으로 그 주 소를 옮겼스빈다. 농구나 배구 경기가 벌어지는 체육관은 온통 고래고래 소 리를 지르는 오빠부대들의 괴성으로 떠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한때 일로 끝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극성과 정열은 누구도 흉내낼 수가 없습니 다. 저는 이 괴성과 응원열기를 바라볼 때마다. 우리들의 기도제사와 신앙열기 를 따져보곤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을 갖곤 합니다. 세상일 때문에 악을 쓴다든지 신경질 때문에 소리를 지른다든지 홧 김에 울부짖는 것은 창피스런 일입니다. 그리고 아무런 유익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는 것은 특권이며 영광입니다. 힘써 부르짖어 기도합시다. 3.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보호해 주십니다. 20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린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선한 사 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악인으로 대칭시키고 있음을 주목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보호하신다는 것도 주목해 야 합니다.하나님이 악인을 지키시고 보호하실 까닭은 없습니다. 20절은 시편 145편의 결론입니다. 누구의 기도를 들으시는가, 누구를 지키 시는가 누구를 보호해 주시는가 누구의 소원을 들어 주시는가에 대한 대답 이 20절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기도와 소원을 들어주시고 그를 지키시고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물그릇과 같습니다. 그릇이 크면 물은 많이 담을 수 있지만 그릇이 작으면 물을 적게 담을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많이 크게 하는 사람이 많은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 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의도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증오하고 반역하면서 사랑을 기대하는 것은 오산입니다. 우리는 시편145:20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사랑하면 보호해 주시고 악인은 멸하신다"는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나를 사랑 하시고 내가 사랑하는 주님을 향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안해도 된다는 교 만이나 착각은 버립시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의 지속을 위해,고독한 사람은 그 고독의 극복을 위해, 병든 사람은 치유를 위해, 은혜받은 사람은 감사를 위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뜨거운 사랑의 고백을 위해 기도의 손을 높이 듭시다. 기도에 최선을 다하면서 최상의 응답이 임할 것입니다.
'◑ 자료 18,185편 ◑ > 자료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울한 사람이 부르는 노래 자료원 (0) | 2022.11.16 |
---|---|
향과 기도 자료원 (0) | 2022.11.16 |
주 밖에 없나이다 자료원 (0) | 2022.11.16 |
깨어 있으라 자료원 (0) | 2022.11.16 |
지키시는 하나님 자료원 (0) | 2022.11.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