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6;12-20
사람이 사는 모양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 들여다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자기위주로 사느냐 하나님 위주로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세상 사람들은 논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섭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누구를 중심으로 사느냐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나는 누구를 중심으로 살고 있습니까? 나를 중심으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고 있습니까?
금년이 개의 해라고 합니다. 저는 개띠니 소띠니 하는 말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개의해라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금년은 개를 사랑하는 해, 이렇게 해서 자연을 생각하는 그런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무지한 인간들이 좋을 때는 개를 세상에 없는 것처럼 사람보다 더 귀하게 대접을 하다가 귀찮아지면 갖다가 쓰레기 마냥 내버려서 길거리에 버려진 개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니 인간이 개만도 못한 시대가 오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귀한 존재들입니다. 개띠니 소띠니 찾지 말고 개를 사랑하는 해 소를 사랑하는 해 원숭이를 사랑하는 해 그래서 최소한 짐승보다는 나은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개에 대한 특성을 좀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는 개는 주인을 알아본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많고 복잡하다 하여도 정확하게 주인을 알아봅니다. 옷을 바꾸어 입던 위장을 하던 주인을 알아봅니다. 그러니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개만도 못한 것이지요. 이사야 선지는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들려줍니다. 1:3절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 하는도다. 하셨도다. 주인을 몰라보는 거예요. 자기들을 애급의 종살이에서 건져 주시고 광야에서 보호하여 주시고 가나안땅에 정착하게 하신분이 누구인지를 모르는 거예요. 개는 주인을 알아봅니다.
개의 특성의 둘은 충성한다는 거예요. 자기주인에게 충성을 다합니다. 어느 분이 그러더군요 개가 자식보다 났다. 왜 그러느냐 했더니 어떤 자식이 그렇게 반가와 하느냐 하는 거예요. 개는 주인이 나갔다 돌아오는 소리를 들으면 난리가 납니다. 짖어대고 팔닥. 팔닥 뛰고 도리 뱅뱅이를 치고 어떤 자식이 부모가 들어온다고 그렇게 반기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개는 주인이 좋은 옷을 입었든 거지 옷을 입었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부자가 되었든 다 망해 버렸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주인이 면 되는 것입니다. 주인이 두들겨 패도 돌아서면 꼬랑지를 살랑살랑 흔듭니다. 삐치는 법이 없고요. 주인에게 대드는 법이 없어요. 주인 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는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 과 나 중심으로 사는 것은 무엇이 다릅니까? 하나님중심으로 살면 내가 온전해집니다. 그러나 나 중심으로 살면 타락합니다. 오늘 고린도 교회이야기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중심으로 살 때는 거룩했어요. 그러나 나 중심으로 살면서 더러워 졌어요. 심령이 더러워지고 심령이 더러워 지다보니 육체가 더러워 졌어요. 육체가 더러워지면 어떻게 됩니까? 결국 마귀의 종노릇 하게 되는 것이고 그 길은 망하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이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1.내 몸에는 무엇이나 유익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2절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메이지 아니하리라. 사람은 무엇이나 다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음식물을 생각한다면 어떤 음식이고 다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다 유익하냐는 것입니다. 술, 담배 마약 다 먹을 수 있어요. 그러나 몸에 유익한 것이 아닙니다. 산에 있는 모든 동물과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잡아먹을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은 몸에 좋다하면 안 먹는 것이 없쟎아요. 그러면 그것이 다 유익하냐? 이것입니다.
언젠가 오래전에 보은지방에 집회를 인도하러 갔습니다. 점심때 집사님 한분이 점심을 대접한다 해서 따라 갔습니다. 가면서 목사님 만세탕 잡수어 보셨어요. 해서 아니요 했지요. 만세탕이 무엇인가 궁금해서 만세탕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가보면 안다는 거예요. 궁긍하기도 하고 기대 반 해서 갔습니다. 미리 주문을 했는지 주방에서 무엇을 끓이는데 매운탕 냄새가 나요. 물고기종류인가 보다 하고 기다리는데 나왔어요.
뚜껑을 여는데 보니까? 열 놈이 허연 배를 내놓고 나란히 누어서 만세를 부르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만세탕이예요. 우리나라 개구리가 씨가 마른다쟎아요. 개구리를 다 잡아 먹으니 모기와 벌레가 극성을 부리는 거예요. 다 유익한 것이 아니지요. 우리가 행동하는 것도 제한된 것이 없어요. 그러나 다 유익하냐? 그러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어서 나오는 말씀이 무엇인가요.
2 내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입니다.
15절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나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럼으로 아무것이나 먹을 수 없고 아무나 만날 수 없고 아무렇게나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살든지 죽든지 주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랬고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와 한몸된 지체들이 보여주어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자유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 같습니다. 자유는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자유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혼돈해서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자유고 하지마아야 할 것을 하는 것이 자유인줄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세금을 낸다. 그것은 해야 할일입니다. 그런데 세금을 내지 않은 것이 자랑입니다. 이번에 어떻게 해서 세금이 얼마 나왔는데 적당히 누굴 만났더니 세금 반 밖에 안 냈어 이게 자랑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어떻게 자랑이 됩니까? 부끄러운 것이지요. 그 이야기를 듣고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한심한 사람입니다. 세금을 떼먹은 도둑을 부러워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보세요. 그 사람이 세금을 떼먹으면 그 세금을 누가 물어야 하느냐 하면 바로 내가 물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세운 예산은 있는데 세금 떼먹는 사람만 있다면 결국 순진한 여러분과 내가 그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것이지요.
서울에서 청주를 올 때 제 속도를 내서 오면 한 시간 반 정도 걸립니다. 그런데 어느 분이 한 시간에 왔다. 그래서 자랑입니다. 서울에서 냅다 밟았더니 한 시간에 왔다는 거예요. 그래서 대단한 것처럼 자랑입니다. 여러분 그것이 자랑입니까? 이 사람은 자유를 잘못사용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 말아야할 것을 행한 사람입니다. 공항 검색 대에 걸린 사람들을 보면 말도 많고 핑계도 많습니다.
어느 분이 자랑을 하는데 호주에서 녹용을 가져 왔는데 걸리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잘 빠져 나왔다는 거예요. 자기가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하나님 걸리지 않게 해주세요. 하고기도 했더니 하나님이 세관 직원의 눈을 다 멀게 해서 보지 못하게 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요란하게 자랑입니다. 그게 자랑입니까? 부끄러운 일입니다.
얼굴을 들지 못할 수치스러운 일을 해 놓고 자랑입니다. 자유를 왜곡하고 있는 거예요. 자유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철저하게하지 않는 것이 자유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해야 할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습니다. 16절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육체가 된다 하였으니 17절 주와 합하는 자는 한영이니라. 할렐루야!
3.내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19절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자신의 것이 아니라. 내 몸은 보통 몸이 아닙니다. 성령을 모시는 몸입니다. 그러기에 몸을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제가 여기 저기 교회를 다니다 보니 교회마다 당회 실이 있고 당회실안에는 그 교회 당회장이 앉는 자리가 있습니다. (참고로 알 것은 우리교회는 당회 실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당회장이 앉는 자리도 없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당회 실은 아무나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당회원이나 초청 받은 사람만 들어갑니다. 그리고 당회장 의자는 아무나 앉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의자 주변에는 꽃꽂이를 해 놓고 정성으로 여러 가지준비를 해 놓았습니다. 그 교회에서 귀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내 몸은 성령님이 거하는 전입니다.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름답게 단장해야 합니다. 진실 됨으로. 거룩함으로, 성실함으로, 단장해야 합니다. 성령님의전을 더러운 욕심으로 이그러진 분노로 간사한 시기심으로 채울 수는 없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이 집안 청소를 별로 안하는데 언젠가 서울에 있는 우리 아이들 집에 가니 집안이 깨끗 한거예요. 웬일이니 했더니 아바가 온다 해서 청소를 했다는 거예요. 기분이 좋았어요. 주님이 우리 마음에 와 계십니다. 내 몸은 성령님이 거하는 전입니다.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김익두 목사님이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시장을 나갔는데 기생이 쫓아 나오면서 오랜만이라고 서방님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하면서 반깁니다. 나 옛날의 김익두가 아닌데 해도 막무가내입니다. 방안에 끌려 들어간 김익두 목사님이 큰일이 났습니다. 도저히 빠져 나갈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소변 보고 오겠다. 하고 나가려는데 여기서 보시라고 제가 그럴 줄 알고 요강을 갔다, 놓았다. 는 거예요.
꼼짝없이 걸렸습니다. 새롭게 살려고 한 것이 한순간 다 무너지는 순간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니 원통해서 못 살겠습니다. 그래서 방바닥을 치면서 김익두 죽네, 김익두가 여기서 죽네 하고 통곡을 하니까? 꼭붙들고 놓아주지 않던 기생이 놀래서 뒤로 벌렁 자빠졌습니다. 이때다 하고 그 틈을 타서 도망을 쳤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의 전을 아름답게 지키시기 바랍니다.
4.내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20절.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했습니다. 값으로 샀습니다. 그것도 비싼 값으로 샀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으로 값 주고 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급에서 10가지 재앙을 내리면서까지 해방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애급이 좋다는 거예요. 이런 기가 막힌 일이 어디 있습니까?
물에 떠내려가는 것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기에 건져 주었더니 떠내려간 보따리 내 놓으라는 거예요. 은혜를 모르는 이런 배은 망덕한자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많습니까? 은혜를 알고 사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내 몸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야 합니다.
몬타나에서 여러 사람이 금광을 찾아 떠났는데 금광은 찾지 못하고 원주민들한테 매만 즉사하게 맞고 가진 것 다 빼앗기고 간신히 살아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뭐가 반짝하고 눈에 띄어서 자세히 보니 노다지입니다. 주변을 살펴보니 금광맥이 사방에 뻗혀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지금은 연장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니 마을에 가서 준비를 해가지고오자 그리고 이것은 우리들만 아는 절대 비밀로 해야 한다 하고 굳게 맹세 했습니다.마을에 돌아갔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열심히 준비를 하고 모이는 장소에 갔더니 온 동네 사람이 다모였습니다.
당신들은 여기에 왜 모였습니까? 하니까? 당신들이 가는 곳에 따라가려고 나왔다 는 거예요. 우리가 어디를 가는데요. 했더니 왜 이러시냐면서 우리가 다 알고 왔다는 거예요. 어느 놈이 배신을 했구나 생각하고 어떻게 알았느냐 했더니 당신들 가운데 배신한 사람은 아무도 없소 그런데 당신들 얼굴에 우리가 금을 발견했소. 노다지를 발견했소. 하고 써있다는 거예요. 노다지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당신들의 얼굴이 그처럼 밝고 신나지 않았을 거라는 거예요 그런데 어찌나 밝고 신이나 있는지 한눈에 노다지를 발견했구나. 하고 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성도들의 얼굴이 노다지를 발견한얼굴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성전을 드나드는 모든 사람들이 노다지를 발견한 것처럼 밝고 신이 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아 저 사람들 보니까 저기에는 뭐가 있구나. 저 교회에는 보화가 있구나. 하나님을 믿으면 저렇게 신나는 일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도록 표정이 밝아지기를 바랍니다. 저 사람이 하는 것 보니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 하는 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강위현 전도사님이 준 예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어느 목사님이 하도오래타서 정말 허름한 봉고를 몰고 시내에 갔습니다. 뒤로 빽을 하면서 그만 세워둔 차를 잘못보고 옆을 긁어 놓았는데 그 비싼 벤츠입니다. 목사님이 생각하니 봉고를 팔아도 그 수리를 다 못해줄 것 같아요. 그런데 다행히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목사님이 고민을 합니다. 전화번호를 적어 놓고 가나. 아무도 안 보는데 그냥 갈까? 그러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차를 몰고 가는데 마음속에서 그래도 네가 목사인데 그냥가면 되냐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차를 돌려서 전화번호를 써서 윈도우 브러시에 끼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와서 전화를 기다립니다. 전화벨만 울리면 가슴이 덜컹합니다. 그리고 마음속에는 하나님 나는 내 할 도리를 다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나를 좀 살려 주세요. 바람을 좀 세게 불어서 종이가 날라 가게 해 주세요. 그것은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바람 좀 세게 불게 해 주세요. 그런데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 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목사님이 죄송합니다. 제가 운전이 서툴러서 그만 차를 긁어 놓았다 용서해라. 차를 고치고 영수증을 주면 물어 드리겠다. 했습니다. 그랬더니 저쪽에서 한번 만나자는 거예요. 이젠 죽었구나.
조폭이 그런 차를 타고 다닌다는데 이젠 목회도 그만하고 문닫아야 할 판 아닌가,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약속의 장소에 나가 만났어요. 덩치가 대단합니다. 조폭이 맞구나 생각해서 죄송하다고 인사를 드렸더니 대뜸 하는 소리가 예수 믿느냐. 는 거예요. 어떻게 아시느냐 했더니 그분 말이 자기차를 긁어 논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닌데 전화번호를 남겨둔 사람은 당신밖에 없어서 자기가 생각할 때 아 이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겠다. 생각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자기 이야기를 합니다. 실은 여기서 살기가 싫어서 며칠 뒤면 이민을 가는데 그래서 차를 팔고 가려고 하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식사나 같이 하자 해서 식사까지 대접받고 모처럼 좋은 분 만나서 그래도 이 나라가 소망이 있다 생각하니까 기분이 좋아졌다고 고맙다고 인사하고 떠났습니다. 용기를 가지고 써놓은 전화번호하나가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 될 줄을 몰랐습니다. 내 몸에서 하나님이 존귀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출처/김영태 목사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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